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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인류의 지혜]인도_2#40

인도_2

In ancient India, Brahman priests dominated religious rituals, but dissatisfaction led to a rise in ascetics practicing renunciation and self-denial. Key figures like Buddha and Mahavira embraced these practices, aiming for liberation from materialism and the cycle of rebirth. Ascetics sought inner spiritual fire through fasting and meditation rather than traditional sacrifices. Jainism promoted extreme non-violence and strict self-discipline as the path to escape worldly bondage, while Buddhism advocated the middle way between indulgence and severe asceticism, forming the basis of early Buddhist teachings.

 

포기의 문화

기원전 1000년대 중반까지 북인도에서는 <베다>가 정한 제의를 수행하는 브라만 사제들이 공식적인 종교생활과 의식을 독점했다. 그러나 점차 일부 사제들과 다른 계급 사람들은 이제 회생제가 더 이상 종교적 욕구를 채워주지 못한다고 느끼면서 포기와 자기부정의 수행방법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방랑의 길을 택한 수도승들의 수는 계속 증가했다. 이들은 희생제의 불인 아그니를 숭배하기보다 금식과 명상으로 내면의 불을 추구했다. 불교의 창시자인 부처와 자이나교의 창시자인 마하비라는 스스로 포기의 길을 택한 수도승이 되어 그러한 포기의 길을 택한 자들의 추종을 받았다. 수도승들의 목적은 물질적 세계로부터 그리고 생사의 끝없는 반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은둔철학의 중심에는 윤회와 카르마라는 개념이 있다.

자이나교도들은 물질적인 세계의 구속으로부터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혹독한 자기절제와 비폭력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부처가 삶의 고통을 불식시키기 위해 택한 길은 극도의 고행과 물질주의 사이에 중도를 걷는 것이었다. 이것은 수도승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따를 수 있는 가르침으로서 초기 불교의 바탕이 되었다.

숲속의 철학

기원전 8세기 이후부터는 속세를 떠난 수도승들 이 무리를 지어 북인도의 숲을 떠돌아다녔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불교, 자이나교 그리고 아 지비카에 흡수되었다. 이 방랑승들은 동료와 가족과의 연대를 포함한 사회와의 모든 고리를 끊 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음식을 구걸하거나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 과일과 채소로 연명했다.

이러한 포기행위의 중심에는 가정으로부터 벗 어난다는 개념이 있었다. 그들은 숲에서도 특정한지역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기 위해, 우기에 세찬 비로 인해 이동이 불가능한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해 서 이동해 다녔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물질적인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그래서 일부는 지독한 고행을 하고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르 도록 굵으며 육체를 정신적으로 통 제하기 위해 극도의 추위와 더위를 겪는 수련을 기꺼이 해냈다. 이들 이 택한 구도의 길은 물리적으로 너 무나 험난하고 힘겨운 것이었기 때 문에 슈라마나(노력하는 자들)라 고도 알려지게 되었다.

<리그베다>(16~17쪽 참조)의 찬가들 중 하나에는 이들에 대해 "무니는 황홀경에서 구원을 구하고자 고행과 명상수행을 하며 떠돌아 다니는 수도승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부처와 자이나 교의 스승 마하비라(40~41쪽 참 조)는 생의 상당 부분을 방랑하는 수도승으로 지 내며 (베다>가 말하는 무니들과 비견되는 수행을 했다. 부처, 마하비라, 고살라 등 숲속의 철학자들 내면의 희생을 강조했다. 희생제의 블(아그니)은 을 명상과 수도를 통한 내면의 열(타파스)로 대체 한 것이다. <베다>의 희생제와 마찬가지로 이들의 고행도 세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들 은둔자는 (베다>의 사제들과는 달리 그 한계 를 극복하는 힘을 마음을 통제함으로써 얻고자 했다. 마음을 통제하면 신체와 외부세계에 대한 인 식을 모두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과 윤회라는 <우파니샤드)의 중요한 두 이론은 기원전 6세기까지는 인간 존재에 대한 기본적 인 상식으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졌다. 윤회는 축 적된 자신의 업으로 인해 초래되는 계속되는 환생 의 반복이다. 환생은 해탈을 추구하는 구도자가 최종적 목표로 삼는 궁극적 진리인 평안의 세계와 반대되는 것이다. 윤회는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 하는 환영과 고통뿐인 속세에 또 다시 태어나는 것 이다. 자이나교와 아지비카. 불교의 공통점 중 하나 이러한 윤회이론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는 들은 모두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장 우선적인 목표로 삼았다. 환생이 남에게 해를 주 는 행위에서 야기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은둔자 때때로 다르마로 위장된 사회제도의 규범들은 거부하고 바른 행위를 통해 해탈하고자 했다.

부처의 생애

부처(깨달은 자)는 기원전 563년경 싯다르타 고차마라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보다 그는 오늘 인도의 내경에 자리잡고 있던 사키마족 지심 생존했던 미시적인 인물이 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경제적으로 용심하고 시 최적으로 연들이 많았으며, 북인도에서 그리스까 지길이 나 있어서 양쪽의 사상이 자유롭게 교환 수 있는 상황이었다 부치는 피타고라스 헤라클 레이트스 그리스 철학자와 자이나교의 마지 티트탕카라인 마하바라의 동시대 사람이었다.

29세 이전의 싯다르타의 생애에 대해서 알려 진것은 거의 신화적인 수준이다. 후에 대승불교 이 문헌들은 싯다르타고타이를 칭송하려는 목적 으로 그 이전의 생애를 모두 부치가 되기 위해 에 정된 운명의 길로 묘사했다. 아버지인 사키아의 국왕은 그가 부처가 되는 험난한 길을 건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물질적인 풍요를 맛보게 하고 궁 언에만 머물게 하는 등 왕자가 세상과 거리를 두 도록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16세에 싯다르타는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고 아들도 하나 두었는데, 이것으로 인도의 가장이 전통적으로 해야 할 최소 한의 기본적 의무를 다한 것이었다. 싯다르타는 29세가 되었을 때 드디어 궁의 바깥세상을 탐험하게 된다.

신들은 이 순간을 싯다르타가 운명의 길을 택 하는 전환점으로 만들기 위해 네 가지 신호를 보냈 는데 그 첫번째가 지팡이에 의지한 노쇠한 남자 있다. 신은 왕자로 하여금 이 늙은이를 보게 했다. 지금까지 바깥세상의 고통의 실제로부터 완신히 격리되어 있던 싯다르타는 마부에게 그 사람이 히 야한 까닭을 물었다. 마부는 그 남자는 늙었고, 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저렇게 고통스럽게 만 는다고 대답했다. 미래의 부처는 이 경험으로 내 단히 고통스러워했다. 그가 다음날 궁 밖으로 나갔을 때 이번에는 두 번째 신호인 병으로 다 죽어 가는 사람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 이 유를 물었고, 모든 사람은 병에 걸리면 저렇게 고 통을 받게 된다는 대답을 들었다. 세 번째로 그는 화장터로 실려 가는 시신을 보았다. 그리고 세상 에는 죽음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늙음, 질병, 죽음은 삶이 영속되지 않음을 알리 는 세 가지 신호로 알려지게 된다. 이로 인해 왕자 는 인간의 삶은 덧없는 것이기 때문에 고통과 분리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의심에 가득 찬 왕 자는 다시 한번 궁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 신호로, 신이 방랑하는 성자의 모습으로 그 앞에 나타났 다 성자의 평안한 모습을 본 왕자는 명상이 그가 보았던 존재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싯다르타는 아내와 아들을 남 겨둔 채 방랑하는 수도승이 되어 출가했다. 장차 부처가 될 이 왕자는 먼저 학문의 중심지 가 있는 중부 지방으로 깨달음을 찾아 떠났다 그 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구루(정신적 스승)들로부터 전통적인 철학을 배우고 난 후 그는 숲속의 한 암자에 도착했다. 발가벗고 극도의 고행을 통해 수도를 하고 있던 수도승들은 고통과 자기부정이 야말로 자유로워지는 길이라고 가르쳤다. 싯다르 타는 이를 부정하면서 몸은 마음을 통해 움직이 므로 완전한 통제를 해야 할 대상은 육신이 아니 라 마음이라고 논쟁을 벌였다 그는 고행의 길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깨달음을 위한 길을 찾아 나섰다

싯다르타는 35세에 부다가야에 도착해서 후에 생명의 나무(33쪽 참조)라고 불리는 보리수 아래 에 앉았다. 그는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절대로 일 않겠다고 맹세했다. 49일간 고독하게 명상어서지 한 끝에 그는 열반, 즉 덧없이 변하는 삶 속에서 영 원히 변하지 않는 영속성을 얻었다. 그는 이렇게 해서 부처, 즉 완전히 깨달은 자가 되었다.

 

부처의 깨달음

부처의 깨달음은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를 막론하고 불교 전체에 있어서 가장 핵심 적인 사건이다. 싯다르타는 6년 동안 극도의 고행을 하면서 정진했으나 이와 같은 길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음을 깨달았고, 그 사이 몸은 너무 많이 상했다. 그는 다시 정상적으로 음식을 섭취했고 단식을 가르친 수도승들과 관계를 끊었다. 싯다르타 고타마는 오늘날 부다 가야(깨달음의 장소)라고 불리게 된 곳에 있는 나무 아래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 보며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이곳에서 절대 움직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리스도교 <성서>에 보면 광야에서 예 수가 유혹을 물리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와 유사한 일화가 있다 미래의 부처 앞에 죽음의 신인 마라가 그 아들인 혼란 환 락 자만 그리고 딸인 정욕 환희 속박 등 을 데리고 나타났다. 이들은 왕으로서의 의 무를 상기시키고 부와 명예를 가질 수 있다 고 유혹하면서 깨달음에 대한 목표를 포기 하도록 종용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물질 적인 세상을 보는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마라는 홍분/환희/중독/갈망/죽음 의 공포 같은 유혹의 화살을 들고 다시 나타나 싯다르타에게 화살을 퍼부었다. 그러 나 화살은 싯다르타를 해치지 못했다. 그는 세속의 정체성을 완전히 벗어나 죽음의 공포를 두려워할 주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라는 마침내 무시무시한 군대를 싯다르타에게 보냈다. 싯다르타의 눈앞에서 머리가 여럿 달린 악마들이 포효하고 벌거벗은 여자들이 해골을 들고 미친 듯 이 돌아다녔다. 하늘에 있는 신들도 공포에 떨며 달아났지만, 싯다르타는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라는 이번에는 이마어마한 광풍을 일으켰다. 그 러나 싯다르타의 옷자락조차도 벗기지 못했다. 오 히려 바위와 무시무시한 무기들이 그의 명상의 힘에 의해 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죽음의 왕이 만 는 이둠은 밤이 새벽에 밀려가듯 소멸되고 말았 다. 마라는 패배하고 사라진 것이다.

그날 밤의 첫번째 무시를 통해 그는 자신의 전 생을 알게 되었다. 모든 존재는 허망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게 되었 다. 모든 존재가 고통과 윤회의 끝없는 환생에 얽 매여 있었다. 두 번째 투시에서 그는 인간을 윤회 의 굴레에 갇히게 하고 모든 고통의 뿌리가 되는 인과의 사슬을 꿰뚫어 보았다. 마지막으로 싯다르타는 업의 작용에 대한 완전 한 이해를 갖게 되었고, 드디어 그는 완전한 깨달 음에 도달하기 위한 여덟 단계를 통과했다. 그 순 간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부처는 완벽한 영적 안목 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우주적 순간을 맞자 자연은 이 영적 사건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스스로 반응 했다. (우주의) 일만세계가 축하에 들여 천둥이 치 고 하늘이 흔들렸다. 인류가 이제 끝없는 고통과 생사의 반복이라는 사슬에서 해방될 수 있게 되었 기 때문에 하늘에서는 축하의 뜻으로 꽃비를 내려 주었다.

다시 마리가 그를 유혹하리 왔다. 마라는 깨달 음을 얻은 싯다르타에게 힘들고 지루한 설법을 멀 리하고 열반(털어버린다' 라는 뜻으로 '자아의 소 멸을 의미)의 천계에서 자신만을 위한 깨달음을 즐기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의 가 르침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마라의 협박을 극 복하고 싯다르타는 자신이 주창한 팔정도를 가르치려고 길을 떠났다.

 

스투파

1000년대 초기 이전 인도의 종교예술과 건축물에 대해서는 거의 알기 힘들다. 이는 인도의 기후가 혹독하고 당시 건축자재로 대부분 나무를 사용했 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원전 2세기 이후의 동굴사 원들과 그 안에 새겨진 부조 등은 그 규모와 세밀 함이 주목할 만하다.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 는 석조건물은 아마도 불교 스투파일 것이다. 기 념비의 역할을 하는 분묘인 스투파는 후대로 갈수 록 정교해졌고 때로는 조각 등의 기법으로 장식했 는데, 불교가 왕조의 종교로서 힌두교를 대신할 정도였던 7세기까지 불교예술을 대표했다고 할 수 있다.

첫번째 스투파는 기원전 3세기경 마우리아 왕 국의 아소카 왕 때 만들어졌는데, 아소카는 불교 로 개종한 왕이었다. 아소카 왕은 개종한 열정으 로 급속도로 그 영토를 넓혀가고 있던 왕국 전체에 대대적으로 스투파를 만들도록 명령했다. 돔처럼 생긴 이 기념비들은 깨달음으로 가는 부처의 길을 상징하고 있으며, 그 안에는 부처와 대표적인 제 자들의 유골이 있다고 여겨진다.

 

아소카 왕은 1,000개에서 8 4,000개의 스투 파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비디샤에 있는 것을 제 외하고는 현재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오늘날 남아 있는 스투파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은 인도 동부 의 산치에 있는 제1스투파(산치 대탑)이다. 고대 인도에서 목재를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해서 우 리가 지금 알고 있는 대부분은 제1스투파의 입구를 구성하는 문의 장식과 기교를 연구함으로써 얻 것들이다. 이는 당시 석공들이 이미 사라지고은 없는 그 지역의 목제건축 디자인을 본떠 만들었기 때문이다. 산치 입구에 있는 문의 기둥과 가로대 등에 부처의 전생에 대한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는 데, 이야기의 순서대로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 러나 부처는 비어 있는 자리, 발자국 그리고 수레 바퀴와 같은 간접적인 표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부조들을 만든 정열과 감각은 굽타 왕 조와 팔라 왕조, 4~8세기의 정교한 불교예술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초기에 표현 된 이미지와는 달리 오늘날 부처는 스스로 깨달음 얻은 역사적인 한 왕자이며, 새로운 종교의 기을 반이 된 가르침을 설법한 샤키아족의 한 성자로 묘사 되고 있다.

 

자이나교

자이나 Jain 라는 단어는 '정복자'를 의미하는 산 스크리트 지나jina에서 유래되었다. 지나는 영원 한 윤회의 반복으로부터 해방을 얻기 위해 금욕적 인 검소함을 통해 자신들의 마음과 욕망 그리고 육 신을 정복한 24명의 '여울을 건넌 자, 즉 구원자에 게 주어진 별칭이다. 자이나교는 인도의 모든 종 교를 통틀어 가장 금욕주의적인 삶을 요구하는 종 교이다. 이 종교의 목적은 절대신의 영광을 추구 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세계를 점진적으로 포기함 으로써 자기완성을 달성하는 데 있다. 그래서 그 중심에는 극단적인 비폭력에 대한 믿음이 있다. 자이나교는 어떠한 생명체도 다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모든 살아 있는 생물체는 서로를 도와 야 한다고 가르친다. 24명의 티르탕카라(구원자) 중 마지막인 마하 비라는 자이나 금욕주의자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이 었다. 출가한 순간부터 그는 벌거벗은 채 돌아다녔 으며 잠자리, 청결함, 음식과 식수에 대해서 집착 하지 않았다. 자이나 승려와 수녀들은 물질적인 세 상과의 모든 연결고리를 끊음으로써 마하비라를 따라 해탈의 길로 들어서려고 했다. 자이나 경전은 분노에서부터 전생의 기억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서 포기해야 할 열 가지를 나열하고 있다. 이 열 가지는 금욕주의로 들어가는 통과의례인 셈이다.

실제 입문식의 내용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입 문자가 금욕에 대한 맹세를 하고 성욕을 포기한다 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 는 의식이다. 자이나 문헌은 이 의식의 과정을 "옷 을 모두 벗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뽑는다" 고 적고 있지만, 오늘날 대부분 입문자들은 입문 식 전에 쉽게 뽑을 수 있을 만큼의 머리카락을 남 겨두고 삭발을 한다. 자이나교에 입문하면 다섯 가지 대서약(마하바라타)을 하며 이를 좋은 목적 에 사용한다고 약속한다. 다섯 가지 대서약 가운 데 첫번째는 비폭력이다. 고행자는 어떤 생물체도 절대 죽이지 않는다고 서약하고 과거에 행한 폭력 행위를 뉘우쳐야 한다.

자이나교의 비폭력은 일상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통제한다. 걸을 때 자신의 발에 생물체가 밟 해를 입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말을 할 때에혀 는 폭력적 언사를 인용하거나 암시해서는 안 되며, 머릿속에 어떤 폭력적인 생각을 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모든 먹을 것과 마실 것에 살아 있는 생명체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먹기 전에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음식을 다 먹은 후 그릇 내려놓을 때에도 그 밑에 깔리는 생명체가 없나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벌 레가 있을지 모르므로 빗자루로 쓸어내면서 걷고, 숨쉬거나 말할 때 벌레들이 입 안으로 들어가는 것 을 막기 위해 입마개를 쓴다. 자이나 고행자는 음식을 요리하지 않으며 물도 여과해서 마신다.

 

자이나교의 위대한 스승

자이나교도들은 24명의 티르탕카라(어울을 건! )를 역사적 스승으로 받아들인다. 이 인물들은 물질세계와 모든 관계를 끊음으로써 완비한 지혜 를 획득했다고 한다. 티르탕카라들은 왕과 전사 계급인 크샤트리아(부처 역시 이 계급 출신임)에 속한다. 23번째와 24번째 티르망카라인 파르슈바 와 마하비라를 제외하고 나머지 티르탕카라는 몇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 '세상의 시기에 살고 있는 전설적인 인물들이다. 첫번째 티르탕카라인 리사바나타는 몇백만 년을 살았다고 전해지는 데 반해, 마하비라는 인간의 평균수명을 살았다.

마지막 티르탕카라인 마하비라는 현대 자이나 교의 창시자이다. 그는 부처와 동 시대에 살았으며 부처의 라이벌이었다. 이두사 람의 이야기는 공통점이 많다. 마하비라와 부처는 24명의 티르탕카라는 세상의 시기 가운데 바 퀴의 회전에 의해 정해진 시간에 나타났다. 그런 데 바퀴가 하강함에 따라 티르탕카라의 체격이 줄 어들고 수명이 단축되어 지상에서의 티르탕카라 의 삶이 짧아지게 되었다. 천성적인 이야기지만 가장 초기의 티르탕카라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수명을 누린 거인들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두 귀족 출신으로 비슷한 인생의 시기 에 속세를 떠나 금욕주의를 추구하는 무 리 속에 끼어 방랑을 했다. 부처의 가르 침과 마찬가지로 마하비라의 가르침도 욕망과 고통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자유 로워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지만 부처가 사치와 금욕 사이의 중도를 설법 (34~35쪽 참조)한 것과는 달리, 마하비 라는 엄격한 금욕주의를 실천하며 물질 세계를 철저히 부정한 것으로 유명하 다. 마하비라는 위대한 금욕주의자이자 정신과 육체의 가장 성공적인 정복자로 알려져 있다.

자이나교의 업

자이나교의 업을 사상 가운데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엄이 육신을 구속해 영혼의 자유를 방해 하는 미세한 먼지 같은 물질적인 요소로 인식된다 는 점이다. 따라서 인간은 여러 생을 통해 자신의 영혼에 붙은 먼지와 같은 임을 제거하고 해방을 얻 어야 한다. 자이나교도들에게 지바, 즉 영혼이란 사람, 동물, 심지어 식물 등 모든 살아있는 생명 속 에 구현되어 있다. 원래 순수하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지바는 업을 쌓을 수밖에 없는 육신에 여러 차례 얽매이는 동안 더럽혀진다. 아지바는 이와 반대로 물질적인 것이든 비물질적인 것이든 생명 이 없는 존재이다. 영혼이 물질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고 있는 이 시공간도 아지바에 속한다.

여러 번의 윤회를 거듭하면서 이룰 수 있는 게 인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아성취와 영혼의 해방이 다. 자이나교의 엄이란 생각과 말, 행동으로 표현 되는 모든 폭력, 즉 부정적인 행위의 결과를 말하 는 것이므로 그러한 행위를 절제해야 새로운 업을 쌓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전생에 쌓인 업은 반드시 금욕과 고행 그리고 세 가지 보물, 즉 올바른 행동, 올바른 믿음, 올바른 지식을 엄격하게 준수해서 제거해야 한다. 초기의 자이나교 원전에서는 의도 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모든 형태의 폭력은 업을 끌 어들인다고 주장하지만, 현대 자이나교의 경전에 서는 '의도하지 않은 폭력은 부정적인 행위라고 반 간주하고 있다. 자이나교 평신도의 생활은 마치 금욕주의적인 수도자의 삶을 살려고 지독하게 준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이들은 생을 마칠 때도 다음 생에 는 지금보다 나은 상태로 태어나리라는 기대를 하면서 비집착을 보여 주는 최후의 의례인 살레 카나. 즉 굴이 죽는 방법을 택한다. 이렇게 자이나교에서 지바는 새로운 업이 생기지 않을 때까지. 그리고 이미 존재하고 있는 엄이 씻겨 나갈 때까 지 지속적으로 윤회를 반복한다. 지바는 업이 완전히 소멸된 후에야 해탈 또는 순수영혼의 해방 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인도 리처드 워터스톤 치음/ 이재숙 옮김 종교와 의례, 신과 우주, 명상과 요가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