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문학의 향기_1
Chinese literature, with a history of over 3,000 years, has remained relatively unchanged. Geographically, differences between the northern and southern regions influenced literary themes. Philosophically, Confucianism, Daoism, and Buddhism shaped the internal drive for literary development. Additionally, the logographic nature of the Chinese language influenced literary forms, with poetry and prose being the two main genres that evolved over time.
역사적 특징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문학은 세계의 주요한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로서 적어도 기원전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3천 년이 넘는 지속적인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지속적인 역사성은 세계문학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특성 가운데 하나이다. 중국문학은 수천년이란 긴 역사를 거치면서도 거기에 사용된 문자나 문학 형태는 물론이고 그 문학이념이나 문장의식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큰 변화 없이 꾸준히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왔다. 중국문학이 이토록 오랜 역사를 통하여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거의 변함없이 그대로 계승되고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의 매체인 중국어가 발음상의 점진적인 변화, 지역적인 방언의 존재, 문자의 구조적 표현상의 몇 단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구어와 문어의 두 측면에서 쉽게 변할 수 없는 특성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리적 특징
지리적으로 볼 때, 중국의 영토는 한대로부터 열대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문학은 자연히 이러한 지리적인 여건에 따른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중국에서 북방은 대체로 황하(黃河) 유역을 중심으로 하여 그 이북 지역을 가리키며, 남방은 장강(長江) 유역을 중 심으로 하여 그 이남 지역을 가리킨다. 북방은 기후가 한랭하고 초목이 잘 자라지 않으며 생활에 필요한 물자의 생산이 풍부하지 못한 반면에, 남방은 기후가 온난하고 초목이 무성하며 생활에 필요한 물자의 생산이 풍부하다. 이러한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북방 사람들은 현실적·이지적(理智的)·투쟁적·산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 남방 사 람들은 환상적·낭만적·평화적·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남북의 기질상의 차이는 바로 문학에 반영되어 있는데, 시가에 있어서 선진 시대의 『시경(詩經)』과 『초사(楚辭)』, 희곡에 있어서 원대 잡극(劇)과 명대 전기(傳奇), 강창(講唱) 문학에 있 어서 청대의 고사(詞)와 탄사(詞) 등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사상적 특징
사상적으로 볼 때, 중국문학은 크게 유가·도가 불교 사상이 서로 융합되어 그 발전의 내재적인 원동력을 제공했다. 유가의 학술사상은 수천 년의 중국 역사를 통하여 그 사회윤리의 바탕을 이루어 왔고 또한 정치이념의 근간이 되어 왔다. 따라서 한대(漢代) 이후로 발전한 중국의 전통문학도 유가사상에 의해 지탱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문인들이 문학창작에 있어서 시대성이나 개성의 발휘보다는 이전 시대의 문학양식의 계승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계속된 것은 유가의 복고주의적 성향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시나 산문을 막론하고 문 학의 내용보다는 형식이나 격률을 중시하는 경향이 짙었던 것은 유가의 예교 주의적 성향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가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현실적인 모든 가치 판단을 부정하고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하던 도가사상은 중국 문학에 끊임없이 청신한 바람을 불어넣어 주었다. 도가사상은 전국시대부터 성행했고, 한대에서는 신선사상 등과 결합되면서 도교로 변신했으며, 민간신앙과 섞이면서 중국인의 일상생활에 파고들었다. 도가사상은 유가적인 공용주의(用)나 형식주의 같은 인위적인 문학의식에서 벗어나, 순수한 인간 본연의 상태에서 온갖 문학의 가능성을 추구할 수 있게 했다. 무엇보다도 도가의 상대적인 가치평가와 그 절대성의 부정은 그들의 미의식에도 그대로 널리 이용되어 그들의 예술관의 바탕을 이루었다. 또한 도교의 신선사상과 불로장생의 추구는 유가에 결여되어 있는 환상과 허구를 가능케 하여 중국문학의 내용을 풍부하게 해 주었다. 이 밖에 동한(東漢) 말에 중국에 전입된 불교도 도가사상과 함께 중국문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불교의 심오한 철리성은 물론이고 그 내세관·윤회관·응보관 등은 중국문학의 이 론을 발전시키고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데 큰 몫을 해냈다.
언어적 특징
언어적으로 볼 때, 중국어의 기록 측면상 도화(圖畵的)인 특성은 중국문학과 그것의 전파에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영향을 미 쳤다. 중국문학, 특히 시가는 독자들에게 청각은 물론이고 시각적으로 심미적인 호소를 하는 데 뜻을 두었다. 이러한 시각적인 호소는 사실상 중국에서 서예의 지위를 제고 시켰는데, 서예는 최 소한 지난 16세기 동안 회화에 비견되는 훌륭한 예술로 여겨지고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러한 기록체계는 교육과 문자의 보급에 장애가 되어 문학작품을 감상하는 독자층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한편으로 중국의 문자는 그것의 분명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주변지역의 동화된 이민족 집단을 포함한 여러 중국민족의 문화적 단합을 유지시키는 잠재역량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또한 중국어 중에는 전혀 뜻이 서로 통하지 않는 방언만도 상해 (上海) 지방의 오어(吳語), 복건(福建) 지방의 민어(閩語), 광동(廣 東) 지방의 광동어, 몇몇 지방에 흩어져 있는 객가어(客) 등을 비롯하여 10여 종류나 되지만, 이처럼 말과 풍속이 다른 여러 지 방의 사람들이 글을 쓸 때에는 똑같은 문자를 사용하여 그 문화적 통합성이 유지되었다. 중국어의 발음 역시 중국문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단일 발음을 갖고 있는 각각의 글자는 하나의 문 장 안에서 많은 동음이의(同音異義)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말하거나 읽을 때 오해와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 한 하나의 방법은 발음상 성조(調)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중국어의 이러한 음조상의 특징은 시가와 음악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맺게 했다. 중국시가의 모든 주요한 형식이 근본적으로 음악을 곁들여 노래된 점이 이를 증명한다.
갈래별 특징
중국문학은 기본적으로 운문과 산문의 두 갈래로 나뉘는데, 여기에 운·산문의 특징을 함께 내포하고 있는 형식과 운·산문을 혼용하는 형식을 덧붙일 수 있다. 운문은 다시 시(詩). 사(詞)·산곡(曲) 등의 작은 갈래로 나뉘 는데, 서로 형식상의 분명한 차이점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를 통틀어 시가라고 한다. 중국 시가는 음률을 맞추기 위하여 운율 과 협운(韻)에 의존하는 외에 함축성과 간결성을 특징으로 한 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시인은 서정성을 강조할 때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억제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표현하는데, 대명사나 접속사는 생략하고 한두 단어로 매우 복잡한 사고나 감정의 기복을 나타내곤 한다. 중국 산문은 크게 문언문(文)과 백화문(文)의 두 부류 로 나뉘는데, 여기에 전통적인 산문과 소설 등의 작은 갈래가 포 함 된다. 일반적으로 고문으로 불리는 문언문은 고대 작가들이 수립한 문장 규범과 풍격을 따르고 유가의 경전과 성현의 저술을 근거로 한다. 또한 과거시험의 수요와 문학상의 성취로 인하여 전통적으로 존중을 받았기 때문에 문언문은 마침내 대부분의 산문작가들이 사용하는 어문의 도구가 되었다. 백화문은 문언문과 판이하게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작가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살아 있는 언어로 지은 문장이다. 이러한 문체는 전통적으로 낮게 평가되어 오다가 송대 말엽부터 비로소 소설가와 희곡가들에 의해 널리 쓰이게 되었다. 산문과 시가 사이의 한계선은 다른 나라의 문학에서보다 중국 문학에서 훨씬 불분명하다. 이러한 경향은 다음의 세 가지 문학 갈래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부(賦)라는 갈래는 시가와 산문의 경계선상에 있으며 그 양자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부는 리듬과 음운 그리고 대구를 사용하는 동시에 산문적인 특징도 갖고 있기 때문에 '시적인 산문', '산문시'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 다른 갈래인 변려문(文)은 대구의 문장 구조와 균형 잡힌 음운 형식이 특징이다. 변려문은 시가와 비슷한 음악적인 효과와 산문적인 설명과 의론이 동시에 들어 있다. 또 변려문의 일종이라 할 수 있는 팔고문(文)은 이러한 특성을 특이하게 변형시킨 것으로 대구적인 문장구조와 대비적인 음운형식을 최 대한 활용했는데, 단어와 단어, 구와 구, 문장과 문장을 대응시켜 긴 문단을 이루는 논문을 작성해야 한다. 지금은 문학적으로 가 치가 없다고 여겨지지만 과거 수세기 동안 과거시험생의 지침으로서 중국문단을 지배했었다. 또한 중국문학에는 운문과 산문이라는 서로 다른 문학 갈래를 한데 섞어 사용하는 독특한 형식이 존재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희곡과 강창이다. 운문 부분은 주로 노래로 불리므로 '창(唱)'이라 하고, 산문 부분은 주로 강술하기 때문에 '강'이라 한다. 희곡과 강창은 바로 이러한 '강창'의 수법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것으로 민간 문학적인 성격이 강하다. 이상에서 언급한 중국문학의 여러 갈래의 발전 과정을 도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상의 분류 외에 문학평론 갈래를 첨가할 수 있는데, 중국 문학의 경우 평론은 시·사·부·고문·변려문·소설 등의 갈래 속에 산재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갈래로 귀속시키기가 어렵다. 따 라서 위의 도표에서는 문학평론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시대별 특징
선진문학(BC1400~BC222)
'선진(先) 문학'이란 상고시대부터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 이전까지의 문학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고고학적인 발굴에 의해 입증된 중국의 신사시대 (信史時代)는 갑골문(甲骨文)이 발견된 은(殷)나라로부터 시작되지만, 오늘날 기록으로 남아 있는 문학 자료는 거의 대부분 춘추 전국시대에 이루어진 것이다. 춘추전국시대는 정치적으로는 춘추오패(春秋)와 전국칠웅(戰國)이 서로 패권을 다투던 약육강식의 혼란스러운 시기였지만, 정치사상과 학술문화 측면에서는 치국의 방략을 제시한 다양한 학설이 나와 이른바 '백가쟁명 (百家)'의 황금시기를 이루었다. 이 시기에는 중국 최초의 시가집인 『시경(詩經)』과 중국 전통 산문의 근원으로 여겨지는 「상서(尙書』가 출현하여 중국문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갑골문
중국 최초 문자기록의 실물은 은(殷)나라 후기 300년 동안 거북 등과 짐승 뼈에 새겨 놓은 복사(辭)이다. 이러한 복사는 모두 당시 왕실에서 신에게 제사 드리거나 점을 칠 때 사용하던 것으로, 너무 간단하고 단편적이어서 문학작품으로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복사 중에는 이미 적잖은 어휘가 담 겨 있기 때문에 이것으로 오늘날 중국문자의 근원임을 증명할 수 있다.
신화
초기의 중국문학에는 신화 지식을 구체화한 위대한 서사시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으며, 지금까지 전해지는 신화자료 또 한 개략적이고 단편적이어서, 완전하고 체계적인 신화를 제공하기가 매우 어렵다. 은나라 때의 자료에는 한계가 있으며, 주(周)나라의 자료는 비교적 풍부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운용할 때는 한(漢)나라의 저작들을 참고해야만 한다. 초기의 중국신화는 늦어도 주나라가 개국될 당시에 유행하던 종교적인 상황에서 형성되었으며, 주나라 말기에는 심오한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초기의 신들이 전반적으로 새롭게 재해석되어 일부 신들과 신화 속의 주인공들이 추상적인 개념이나 역사인물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예를 들어 황제(黃 帝)와 치우(蚩)의 전쟁신화는 도교사의 일부분이 되었으며, 더 나아가 수호전(水滸傳)』과 『서유기(西遊記)』와 같은 후대 통속소설의 창작에 부분적인 소재를 제공했다.
시가
중국 최초의 시가 총집인 『시경(詩經)』은 민간 가요인 「국풍(國風)」, 조정 음악인 「아(雅)」, 묘당(廟堂) 음악인 「송(頌)」 으로 이루어진 고대 시집으로 모두 305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일반적으로 주나라 초기(BC1122)에서 춘추시대 중엽 (BC570)에 이르는 시기에 북방의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생겨난 것으로 여겨진다. 형식은 4언을 위주로 하며 내용은 서사성보다는 서정성을 중시한다. 또한 음악적인 효과를 위하여 협운을 강조하며 음악과 배합하여 노래 부를 수 있는데, 특히 「송」은 가무를 겸할 수 있다. 『시경』은 오경(五經:「詩』,「書」,「易」,「禮春秋) 가운데 하나로서 대대로 숭고한 지위를 누려 왔는데, 그것은 『시경』이 가장 고전적인 문학작 품이며 일찍이 공자(孔子)가 친히 시를 산정(刪)하여 유가 (儒家)의 중요한 경전이 되었기 때문이다. 「시경』은 후대 중국 시가 문학에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 『시경』과 대략 같은 시기에 나왔지만 또 다른 체재의 시가는 초사(楚)이다. 초사는 초나라 사람의 노래라는 뜻으로 남방의 양자장 유역을 중심으로 한 초나라에서 훙기했다. 그것은 『시경』과 마찬가지로 구句) 끝에 협운을 했지만 문체는 서로 다르다. 구절이 비교적 길고 불규칙적이며, 보통 한 구절의 중간에 '혜(兮)'자를 집어넣어 감탄의 어기를 강조한다. 초사의 초기 작가와 작품은 중국문학사상 위대한 시인 가운데 하나인 굴원(屈原: BC4C~BC3C)의 「이소(離騷)」가 대표적이다. 「이소」는 굴원 자신의 가계(家)를 밝히고, 임금과 나라를 사랑하는 충성 심과 국사에 대한 걱정을 표현했으며, 참소를 당하고 떠돌아다니는 자신의 슬픈 심정을 달래기 위하여 먼 이역과 하늘나라에서 펼친 상상의 여행을 묘사했다. 굴원이 창시한 이러한 양식은 이후 5세기 동안 계승·발전되었다.
산문
이 시기의 중국산문은 크게 역사산문과 제자산문으로 나눌 수 있다. 역사 산문은 한 나라나 여러 나라의 역사 사실을 기 록한 것으로 「상서(尙書)』·『춘추(春秋)』·『국어(國語)」·「전국책(戰國策)」 등이 있으며, 제자산문은 제자백가의 학술과 사상을 설파한 것으로 「노자(老子)」·「논어(論語)」·「맹자(孟 子)」·「장자(莊子)」·「묵자(墨子)」·「한비자(韓非子)』 등이 있다. 『상서」는 중국 최초의 역사 산문집으로 서사(誓辭)·정령(令)·서찰과 단편적인 사건 기록을 포함한 고대 국가의 정부 문건을 모아 놓은 것이다. 『춘추』는 노(魯)나라를 중심으로 하여 각국의 역사사실을 기록한 편년체의 사서이고, 『국어』와 『전국책』은 각국의 대사를 나누어 기술한 국사별 사서이다. 「노자』는 『도덕경(道德經)』이라고도 하며 노자 학설의 요체로서 부분적으로 운(韻)이 들어 있는 간결 하고도 정련된 산문이다. 『논어』는 공자 학설의 정수로서 주로 공자와 제자들 사이의 문답을 기술한 것이다. 『맹자』 와 장자는 각각 공자와 노자의 학설을 계승·발전시킨 것으로 문장이 훨씬 길어지고 가다듬어졌으며 우언고사를 잘 운용하여 문학성이 증가되었다. 『묵자』는 묵가를 대표하는 저작으로 논리성이 뛰어나며, 『한비자』는 법가를 대표하는 저작이다. 그밖에 제자백가의 여러 학설을 종합하고 많은 민간전설을 내포하고 있는 『여씨춘추(呂氏春秋)』는 이 시기 산문의 가장 발전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선진 문학은 중국문학이 발생하고 발전하는 출발점으로서 중국문학의 전통과 특징의 형성·발전, 나아가 심미의식( 美意識)의 역사적 연원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진·한대 문학(BC221~AD220)
기원전 10세기 말 북방의 신흥국가였던 진나라는 군사적·정치 적으로 급속히 발전하여 마침내 중원의 제후들과 각축을 벌였지만, 문학상으로는 축적된 유산이 많지 않았다. 또한 기원전 221년 진시황(秦始皇)이 천하를 통일하여 대제국을 건설했지만 15년 만에 몰락하고 말았으므로 문학상 발전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게다가 진시황은 부국강병책으로 통치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법가의 정책을 받아들여 형법을 중시하고 학술을 통제하여 마침내 '분서갱유焚書坑)'를 단행함으로써 문학의 발전을 크게 저해했다. 유방(邦)에 의해 기원전 206년에 건국되어 기원후 220년까지 지속된 한나라는 외척 왕망()에 의해 잠시 제위를 찬탈당하여 그가 세운 신(新)나라를 전후로 서한과 동한으로 나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행정조직을 정비하여 강력한 중앙집권 전제 국가를 이루었다. 학술사상 측면에서는 서한 무제(武帝) 때 동중 서(董仲)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학을 숭상함으로써, 이후 중국 전체의 사상적·문화적 통일성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시가
이 시기에 새롭게 등장한 부(賦)는 시와 산문의 요소를 함께 지니고 있는 형식으로 초사체(楚辭體)와 직접적인 계승관계 가 있는 문체이다. 보통 한대 초기에 유행한 소체부(騷體賦)와 경제(帝) 때 일어나 무제(武帝)·선제(宣帝) 때 흥성한 산체장부(體賦)의 두 종류로 나뉜다. 특히 후자는 길게 늘여서 꾸미는 포장(張) 수법과 조탁에 힘을 기울여 한나 라의 궁정문학이 되었으며, 귀족들의 사치스런 생활을 묘사 하거나 도성의 성대하고 화려한 경관을 노래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때문에 사마상여(司馬相如 BC179~BC117) 등과 같은 유명한 부 작가들은 모두 궁정의 배우와 비슷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부(漢賦)는 독특한 풍격을 지닌 문체로 인정받고 있다. 문학사상 한나라 때 이룩한 또 다른 공헌은 무제 원(元) 3년(BC126)에 정식으로 악부(樂府)를 세운 것이다. 이보다 앞서 이미 악부령(樂府)이라는 관직이 설치되긴 했지만, 무제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기구가 완비되어 담당 관리가 시가를 채집하고 악기에 맞추어 음악화했다. 묘당의 교사(祀)나 연사(射) 류의 송가외에도 각 지방에서 채집한 민가가 보존되어 있는데, 서정적인 시가를 포함한 아름답고 애잔한 가요 등은 모두 묘당문학에 비하 여 매우 진지하고 활발한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시대의 대표 적인 작품으로는 「고아행(孤兒行)」・「맥상상(上)」·「공작 동남비(孔雀東南飛)」·「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등을 들 수 있는데, 이 가운데 「공작동남비」는 초기 중국문학에서 가장 장편의 시가로서 총 353구로 되어 있다. 악부 시가, 특히 민가는 대부분 5언을 위주로 하고 있는데 이러한 형식은 후대 5언시의 원류가 되었다.
중국문학의 향기: 중국문학 장르별 이해
김장환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