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대해서_1
Ancient India boasted a sophisticated civilization that began in the early 2000s BCE along the Indus River. This civilization flourished around Harappa and Mohenjo-daro, worshiping various gods. However, about 1,000 years later, the Indus civilization declined as the Aryans conquered northern India. The Aryans established a religion and culture centered around rituals, using the Vedas as their sacred texts.
The urban civilization along the Indus River coexisted with those in Mesopotamia and Egypt, featuring advanced city structures, including sewage systems. Religious practices involved the worship of numerous animals and goddesses, sacrifices, and even early traces of yoga.
The Aryans, with their military superiority, ruled India, and the Vedas they left behind became the foundation of Hinduism. Gods of war in Aryan mythology symbolized truth and heroism, with deities like Varuna and Indra playing significant roles. One of their key rituals, the Soma sacrifice, is believed to have involved a plant that induced hallucinogenic states.
Goddess worship was also important, with deities like Kali symbolizing life and death. Animal sacrifices, and occasionally human ones, were offered, though these later evolved into more symbolic rituals.
고대 인도에 대해서_1
기원전 2000년대 초기 인더스 강 유역은 토착문화가 상당히 세련되고 사회·정치적으로 전성기였으며 많은 신들을 숭배하고 있었다. 봄베이(지금의 봄바이)에서까지 이 문명의 유적이 발견되는데, 이 문명의 힘과 영향력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유적지는 지금의 파키스탄 지역인 하라피와 모헨조다로이다. 1,000년 후 아리아인들이 인도대륙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이 분쟁은 쇠퇴하고 있었다. 아리아인들은 우월한 군사력으로, 그리고 본고장이었던 중앙아시아로부터 들여온 문화와 종교의 블럭으로 인도 북부를 장악했다. 그들의 종교적 제의 가운데 가장 중요한 희생제는 그들이 베다)라고 부르는 일련의 경건에 근거한 것이다. 아리아인들의 주요한 신들 가운데 아그니는 제례의식의 불과 화로를 주재하는 신이다. 또 전쟁과 비의 신 인드라와 바루나는 아리아인들 이전에 존재했던 악마의 영역을 덮고 있던 혼돈스러운 어둠을 베다의 정의와 진리로 빛나게 했다.
인더스 강 유역의 문화
기원전 3000년 중반 인도의 첫 문명은 하라파, 모 헨조다로 등의 도시와 함께 출연했다. 이 두 유적 지는 인디스 강을 끼고 서로 약 640km 정도 떨어 저 있는데, 현재는 파키스탄의 건조한 평원이지 만 당시에는 강이 흘리서 물이 풍부한 지역이었 다. 이 지역에 음성했던 도시문명을 '인디스 강유 역의 문화라고 부른다. 이는 메소포타미아와 이 집트의 문명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존재했다고 보는데, 많은 고고학적 발굴에도 불구하고 이 지 역의 문명에 대한 기록은 발굴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하라파와 모헨조다로 유적 의 거리구조 가옥형데, 우물, 하수구 등을 볼 때 이 두 도시가 유사한 문화에 의해 건설되었다는 데 동의한다. 인디스 강 유역의 문화유적은 파기
스탄의 70여 곳과 인도의 구자라트, 라자스 단 등에 걸쳐 발굴되었다. 지금까지 발굴된 유적들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은 현재의 파키스탄 보다도 넓어서 상당한 규모의 제국 혹은 연합국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메소포타미아와 교 역을 했다는 증거도 있다. 1950년대 초 이 유적을 발굴한 사람은 영국의 고고학자인 모티어 휠리 경이었는데, 그는 이 유 적지가 로마 제국의 출현 이전에 만들어진 가장 대규모의 정치적 공동체의 흔적이며, 계승적인 정치와 사회의 체계를 갖춘 청동기시대 전성기의 도시문화였다고 믿었다. 확실히 하수설비 등은 후에 로마인들이 만든 것과 견줄 만했다. 모헨조 다로에 있는 대단위 목욕탕은 83㎡ 규모이고, 토 탈에 있는 부두 또한 인상적이다.
젖소 황소 뱀 같은 동물들이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인디스 강 유역의 초기 거주자들은 남신 뿐 아니라 다산과 풍요의 신으로 여신도 숭배했 으며, 동물을 제물로 삼는 희생제가 중요한 세의 있던 것으로 보인다. 많은 고고학자들은 이 지역 에서 발굴된 여러 유키에시 인도 특유의 문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흔적들을 발견했다. 특 히 가로 보이는 것들과 요가 자세로 앉아 있는 신을 새겨 넣은 인장들이 발굴됐다. 인더스 강 유역의 문명이 어떻게 사라졌는가 하는 의문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기원전 1500 년경 아리아인들(12-13쪽 참조)이 북인도 지역 으로 들어왔을 때 하리파의 모헨조다로는 이미 버러지고 파괴된 상태였다.
선사시대 요가수행의 흔적
인도의 철학 종교외 연관해서 가장 많이 알려진 분야는 아마도 요가 수행(82~91쪽 참조)일 것이다. 많은 요가 수행법들은 황홀경에 이르는 '내면의 열기를 얻기 위해 호흡조절과 리듬 소리 약물·춤 등을 이용한 샤머니즘적 의식을 행한 데서 생겨났을 가능성이 크다.
연꽃 형상으로 가부좌를 하고 명상을 하는 요가 수행자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이미지이다. 흥미롭게도 인더스 강 유역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인장들을 보면 4,000여 년 전에 이러한 요가 수행법의 초기적인 형태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아무 기록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인장이 의미하는 것을 정확히 증명할 길은 없다. 그러나 특정 동물영혼의 안내, 초능력의 획득, 자유자재로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능력 초혼招, 극도의 추위나 더위에서 견디는 수련법 등 샤머니즘적 특징들이 오늘날 인도 요가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아리아인
기원전 2000년대 중반 아리아 전사들이 인도대륙 에 들어온 사건은 인도의 문화와 종교에 있어서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그들의 전차는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사냥이나 농사에 종사하는 몇몇 집단 을 만났을 뿐인데, 이미 인더스 강 유역의 문명이 파괴(10~11쪽 참조)되어 버린 상태였기 때문이 다. 아리아인들은 그 상대에 비해 군사력이 월등 했으며, 영광스러운 신들의 판테온에서 우러나온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이것이 바로 시인들 혹은 현자들이 <베다>(16~17쪽 참조)를 기록하도록 영 감으로 작용한 힘이었다. <베다>는 아리아인들의 우수성에 대해 1,000년 이상 불려진 찬가와 시를 모은 것인데, 이 경전을 기록한 언어는 인도유럽 어족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산스크리트이다.
아리아인들이 어디에서부터 어떤 경로를 거치 며 이동해 왔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리고 인도에 서의 1,000여 년에 걸친 역사에 대해서도 아직 알 려진 바가 거의 없다. 다만 우리는 그들이 고향을 떠나온 이유를 추정해 볼 수는 있다. 아리아 인들이 카스피 해와 아랄 해 사이에 있는 초원지역에서 이동을 했다면 그 원인은 인구과밀 때문일 수 있 다. 목축을 하는 다른 종족들에게 추방되었거나 가축을 위한 적당한 목초지를 차지하려고 이동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리아인들은 유목민이었지만 그 선조들은 어쩌면 유라시아 평원에서 몇 천년 간 사냥을 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철기 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돌로 집을 짓지도 않았다. 고고학자들은 몇몇 토기조각을 가지고 있을 뿐 아리아인들의 초기 인도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 는 유물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아리아인들이 인도대륙을 장악한 시대는 <베타>가 만들어진 시대와 거의 일치하는데, 이 시기다>가 를 베다 시대라고 한다. 이 경전은 아리아인들의 공동체적 생활상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주지는 못하지만, 전차를 탄 신들에 대한 묘사와 그들이 어둠의 힘을 무찌를 때 등 뒤로 태양이 빛나고 있 는 장면을 통해서 당시 아리아인들이 전쟁을 좋 아하고 본래 유목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숭배한 주요한 신들은 달보다 는 태양과 연관이 많고, 신화는 운명론적이기보 다는 자유와 인간승리에 대한 확신을 불러일으키 베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전쟁과 연관된 신들
아리아의 신들은 어둠의 힘에 맞서 싸우는 진리 의 태양 빛을 상징하며 영웅적인 전사의 모습으 로 그려진다. 생명과 에너지를 주는 신 사비트리 에 대한 <리그베다>의 찬가를 보면이 여신은 한 쌍의 찬란한 준마가 이끄는 황금마차의 마차꾼으로 묘사되는데, 질병을 없애고 태양을 향해 승리로 나아간다. 이러한 아리아 신화 에는 다른 문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데. <베다>의 신들은 서아시아의 전통뿐 아니라 아리아인 본거지의 전통에서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인더스 강 유역으로 들어온 초기 아리아인들은 바루나라는 신을 숭배했다. 바루나라는 이름은 덮다'라는 뜻의 산스크리트 브리vri에서 파생된 것으로 이 신은 세상을 덮고 있는 자. 즉 가장 잘 알려진 우주의 지배자이다. 바루나는 또한 우주의 질서인 리타를 떠받치고 있는 자이다. 리타란 다른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 는 우주적 질서라고 할 수 있는 데, 수메르의 메me, 정의·진 리·조화를 뜻하는 이집트의 마트maat와 유사하다. <구약성서> 의 야훼나 수메르의 이누처럼 바루나는 무시무시한 분노의 신이 지만, 자신을 숭배하는 사람들 에게 자비를 베풀기도 한다.
바루나는 도덕을 다스리는 신으로, 초기 아리아 신들 가운데 가장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 아리아인들은 우주의 질서가 하늘 뿐 아니라 인간이 사는 땅과 지하 세계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별들이 정해 진 길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도덕적 행위에도 올바른 길이 있다고 믿었다. 우주의 질서인 리타 에 대한 인식은 수메르의 수학과 천문학에서 도 발견된다. 아리아인들이 이주해 오기 전 에 살았던 원주민인 드라비다인들도 베다 종교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바루나는 베다 신들의 우두 머리인 인드라에게 그 자리를 내주게 되는데, 인드라는 지배자라기보다 는 영웅적인 모습을 한 신이었다. 바루나는 변덕스럽고 복수심에 불타는 신이었지만, 인드라는 변함이 없고 강직한 신이었다. 인 드라의 가장 대표적인 공적은 혼 돈·무지 어둠을 상징하는 악마 브리트라를 무찌른 것이다. 인드 라는 전사 아리아인의 전형이었 는데, 이는 인더스 강 유역의 도 시문명에서는 낯선 모습이었다.
베타
전쟁터에서 무적의 힘을 과시한 아리아인 들이지만, 그들이 인도대륙으로 들어와 이루어낸 가장 커다란 업적은 <베다>(지혜의 책)를 지었다는 것 이다. 이들은 아리아의 신들에게 희생제를 올릴 때 찬가를 부르고 제례용 주문인 만트라(98~99 쪽 참조)를 외웠다. 비록 후대의 교육에 가려지기 는 했지만 <베다)는 오늘날까지도 힌두인들 삶의 중심이 된다. <베다>는 네 가지로 이루어졌다. <리그베다>는 기원전 1200년 이전에 지어졌으며, 다음으로 <사마베다>와 <야주르베다>, 그리고 <아타르바베다> 순으로 만들어졌다. <아타르바베다>는 다른 <베다>보다 상당히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각 각의 <베다>는 찬가 및 만트라가 들어 있는 상히 타와 그에 대한 주석이 실린 브라마나 두 부분으 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베다>는 희생제에 참여 하는 여러 종류의 브라만 사제들을 위해 쓰여졌 다. 회생제를 주관하는 호트리는 <리그베다>의 만 트라를 외웠고, 우드가트리는 <사마베다>를 암송 했다. 제식을 수행하는 아드바리우는 (아주르베다)의 주문을 읊었고, 브라만은 <아타르바베다> 를 낭송했다. 사제가 아니면 <베다>에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베다>는 그 기원과 전승방식이 전적으로 암송 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특이하다. 힌두교도들 은 그 내용을 믿을 뿐 아니라 그 내용을 암송하는 소리에도 신성함이 들어 있다고 믿는다. 브라만 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암송으로 <베다>를 오늘날 까지 전해온 것이다. 트리베디(세 가지 베다). 차투르베디(네 가지 베다) 등의 성씨들은 그 조상들 의 사제로서의 역할을 말해 준다.
힌두교도들은 <베다>가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니 라 신의 계시를 기록한 것이며, 신들의 힘이 단어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베다>는 신과 인간이 태어난 성스러운 글자들을 가지고 있어서 우주보다 더 이전부터 존재했기 때문이다. <베다> 자체는 성스러운 글자 '옴Om' (108~109쪽 참조) 창조되었다고 한다.
희생제의 신들
희생제는 베다 전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제의였다. 아리아인들은 이런 성스러운 수단을 통해 신들을 불러내고 또 신들을 기쁘게 했다. 희생물 은 자신을 바침으로써 우주를 탄생시킨 최초의 인간의 역할을 대역하는 것으로 회생제는 세상의 창조를 상징하기도 했다.
담당하는데, 소마 신을 모시는 의식의 경우 17명 의 사제가 참여한다. 희생제 의식의 세부사항을 낱낱이 기록한 것이 <브라마나>로 불리는 <베다> 의 부속서들이다. 산문인 <브라마나>는 일종의 주 석으로 분량이 상당하다. <브라마나>에 따르면 브 라만이 우선 희생제를 지내는 장소에서 정화의식 을 행하고, 그 제의를 후원하는 부부는 따로 떨어 져 지내면서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며, 제단은 세상을 낳은 근원적 요소인 흙과 물로 정화한다 고 되어 있다.
소마
소마 신은 액체/차가움/달을 대변한다. 그는 신들이 흠향하는 희생제의 제물 가운데 하나인, 한 모금의 불멸성이다. 소마는 환각상태를 유발하는 식물을 의인화한 것이며, 베다 희생제의 가장 중요한 제사 준비물 가운데 하나이다. 희생제 기간에 눌러 짜서 그 즙을 마신다는 이 소마라는 식물이 과연 정확히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소마가 환각을 유발하는 독버섯인 광대버섯이라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 신들의 음료이기도 한 소마는 마시면 도취감과 황홀감이 일어난다고 한다. 소마도 광대버섯처럼 붉은색일 것으로 추정하는데 마시기 직전에 눌러 짜서 병에 담는다. <리그베다>에는 소마를 꿀 혹은 황갈색 액체를 지칭할 때에도 쓰였다. 이것은 아마 눌러 짜고 나면 버섯이 짙은 노란색으로 변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광대버섯은 몇천 년 동안 시베리아의 샤먼들이 황홀경의 상태에 진입하기 위해 사용해온 식물이다. 이 식물은 시베리아와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자생하는데, 아리아인들의 본거지에 흔하게 자라던 것과 유사한 식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더스 강 유역과 인도 북부 지역에서는 이것을 구하기가 어렵다. 이 독버섯을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점점 더 소마 제의에 집착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독버섯은 아마도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을 것이고, 결국에는 <베다>에 언급된 황홀경의 상태를 간접체험하기 위해 주술적인 의식과 신성한 주문으로 가득 찬 제의가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모신
인도의 모신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몇천 년을 내려온 배우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모신은 본 질적으로 배풀고 파괴하는 양면 성을 지닌다. 여신의 펑퍼짐한 엉덩 이는 숲의 모든 생명체들이 나온 생명의 자궁을 상징하고 있다. 여 신은 길고 붉은 최와 거무스름한 피부를 가졌으며, 끔찍하게도 해 골로 만들어진 목걸이를 하고 있 다. 변덕스러운 그녀는 자기 자식 인 생명체들에게 부여한 생명을 거두어 들이고 있다. 이러한 여신의 이미지는 힌두교 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오늘날 인간의 무지 와 환영을 가차 없이 파괴하는 두르가와 칼리에서, 그리고 시바신의 총애를 받는 배우자인과 르바티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모신숭배의 중심에는 삶, 죽음 그리고 끝없는 순환이라는 식물성 달의 신화가 있다. 매달 죽고 다시 태어나는 달처럼 숲속의 식물과 동물들은 덧 없고 위험이 가득한 삶으로 끊임없이 태어난다. 그들은 다른 생명의 죽음으로부터 자양분을 얻고 자신들도 죽으면서 또 다시 태어날 다른 생명의 먹이가 된다. 이런 회춘에 대한 기본 신화는 한 신적인 남자가 실해되는 내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살해된 후 마을 묘지에 묻혔는데 그의 무덤에서 세상의 음식이 생겨났다. 이 음식을 먹자 성기가 만들어졌다. 성과 여자, 남자의 구별이 이 사건의 결과로 유래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모신은 성과 죽음이라는 두 얼굴을 두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는 끊임없이 돌고 도는 삶의 쳇바퀴의 가장 본질적인 두 개의 요소이다. 모신숭배의 중심에 있는 외식 역시 희생제이다. 캘커타 지역에서 행해지는 칼리가트 축제에 서는 오늘날에도 800마리 이상의 염소들이 도살 되고 있으며, 그 머리를 칼리 여신상 앞에 쌓아 놓 것을 볼 수 있다. 인도의 시골지역에서는 많은 동물들이 칼리 여신의 만족할 줄 모르는 허기를 충족시키기 위해 제물로 희생되고 있다. 사람을 회생제물로 바치는 것은 1835년에 와서야 법으로 금지되었는데, 그 당시 회생제가 시골지역에서 얼마나 유행했는지를 말해 주는 자료가 많이 남아 있다. 아리아의 선지자들은 이런 희생제를 추상화하고 상징화했는데, 결과적으로 정교한 의식용 주문과 브라만 사제 가 행하는 제례과정은 도살만큼 중요 한 부분이 되었다.
모신 숭배와 더불어 인간이나 동물을 제물로 삼는 회생제의 기원은 아리아 인들이 인도대륙으로 들어오기 이 전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 다. 기원전 3000~기원전 2000 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여 러 개의 테라코타가 인도 전역에 걸쳐서 발굴되었는데, 풍만한 가슴과 펑퍼짐한 엉덩이를 가진 여성의 모습이다. 정성을 들인 머리장식과
우파니샤드
(우파니샤드)는 기원전 7~5세기에 지은 문헌을 몸은 것이다. 이것은 아리아인들의 성스러운 경 전인 <베다)(16~17록 참조)를 구성하는 마지막 부분으로 베단타(베다의 검은)라고 불린다. 하지 만(우파니샤드)는 초기(바다)와는 그 내용과 어 조가 상당히 다르다. 이 문헌들 안에는 철학적이 고 신화적인 질문들이 초기 베다의 관심사였던 희생제를 대신하고 있다. 108개의 문서들은 후기 힌두교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여기에 많은 주 석들이 첨부되었다.
기원전 500년에 인도의 종교와 사회는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도시가 급속도로 성장 하면서 강력한 상인계급이 출현하자 당시까지 이어져 내려오던 바르나(사제·무사 상인·노 예동네 계급)가 이제 더 이상 현실과 맞지 않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내려온 고행자 신비주의 자 은둔자의 무리에서 일탈한 분파들이 브라만 사제들의 권위를 거부하고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그들의 종교 독점현상을 무너뜨리게 된 것이 다. 이들은(30~35쪽 참조) 부처가 된 싯다르타 고타마. 마하비라가 된 바르다마나 같은 새로운 스승들을 따랐다. 이는 인도의 종교생활에 변화를 가져왔다.
다른 힌두 경전보다 <우파니샤드)는 이러한 변 화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우파니샤드>는 외부에 있는 신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 는 산을 찾고, 의례적인 희생제가 아니라 모든 것 안에 내재되어 있는 신성한 힘의 원천인 브라만 을 찾으라고 가르친다. 아리안의 성자들이 제의 가 신의 뜻을 구현하고 반영한다고 믿은 것처럼, 새롭게 출현한 철학은 아트만이라는 개체적 영 혼 안에 브라만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았다. 신과의 교감은 이제 의례적인 의식을 통해서가 아니 내적인 전환을 통해 가능한 것이 되었다.
몇 십마리의 동물을 희생시켜야 했던 후대 베 다 종교에서 중요한 산을 숭배하는 의식은 이제 삼갈 정도가 아니라 강력하게 거부되었다. 기원 전 700년경 인도의 성자들은 '네티 네티(그게 아니다. 그게 아니다)를 암송하면서 환영에 불과한 외부세계의 궁극적인 실재를 부정하고 모든 것의 영혼에 내재된 브라만의 영원한 불꽃을 찾았다. (우파니샤드)의 최고의 관심은 윤회의 쳇 바퀴로부터 벗어나 모크샤, 즉 영원한 자유를 얻는 데 있으며, 이는 명상과 요가 그리고 고행을 통해 가 능하며 아트만을 브라만과 하나가 되게 하는 것 이었다.
업
카르마, 즉 업의 법칙이란 모든 행위에 그 원인이 있는 것처럼 행위 하나하나에 피할 수 없는 반 작용이 든다는 것이다. 입은 운명의 원인이며, 생각하고 행하는 대로 실현되는 사안의 법칙 이다. 현재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자신 이 과거에 저지른 행동의 결과를 겪고 있는 것이 다. 그러므로 엄의 법칙에 의하면 사상을 선택해 삶의 불행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입은 피하 거나 떠넘길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을 피하려고 한 다면 결과는 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업을 남길 뿐 이기 때문이다.
현재 생을 살면서 하는 행위는 다음 생의 운명 을 결정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의식은 보다 높은 차원의 의식인 초의식에 저장 되었다가 아트만, 즉 영혼이 여러 환생을 거치는 동안 저장된 업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임의 원인 이 되는 것은 욕망이다. 이 세상에서 평탄한 삶을 살고 싶은 욕망, 인위적인 행위를 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끝없는 환생, 즉 윤희의 꿈에 속에서 태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바가바드기타)에서 아르주 나 왕자의 전차를 옮았던 크리슈나에 따르면 살 고 싶어 하고 작위적인 행위를 하고 싶어 하는 한 현 옷을 버리고 새 옷을 입는 것과 마찬가지 로 영혼은 육신, 즉 껍데기를 취한다고 한다. 세 속을 떠나 깊은 숲속에서 전혜진 철학적 전통은 인위적인 행위를 완전히 버리라고 권한다. 외부 는 것이다. 세계에 대한 환상을 포기할 때 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윤회로부터 해방을 맞을 수 있다.
<바가바드기타>에서 크리슈나는 우리의 행위가 모두 부정적인 업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행위를 하여 집착하지 않으면 자기가 한 일에 대한 보상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그러 한 행위는 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크리슈나 에 따르면 이렇게 절제하는 행위이말로 육신을 입은 인간이 바로 진리로 가는 길이요. 브라만에 게 가는 길이다. 우리의 모든 행위, 생각 그리고 말을 브라만에게 바치게 되면 입의 나쁜 결과는 소멸되고 아트만은 자기중심적인 욕망으로부터 풀려날 수 있다고 한다.
다르마(의무)는 현대 힌두교의 근간이다. 인도 인들은 힌두교를 무궁한 다르마, 즉 영원하고 우 주적인 가르침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다르마는 모든 사물의 중심을 잡아 주는 기능과 같은 것이 우주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은 우주의 정사에다. 나타나고, 또 인간의 행위에 적용되어 정의로운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그래서 기본적인 도덕적 법규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따 라 마땅히 행해야 하는 도리인 것이다. 브라만은 그 나름의 다르마를 가지고 있는데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계급도 마찬가지이다. 크리슈나 의 말처럼 욕망에 매이지 않는 행위가 바로 다르 마에 부합되는 행위이며, 우리를 보다 높은 차원 의 의식으로 인도해 주는 것이다. 크리슈나는 말 한다. "나에게 귀의하도록 만드는 모든 것이 다르마이다".
포기의 문화
기원전 1000년대 중반까지 북인도에서는 <베다>가 정한 제의를 수행하는 브라만 사제들이 공식적인 종교생활과 의식을 독점했다. 그러나 점차 일부 사제들과 다른 계급 사람들은 이제 회생제가 더 이상 종교적 욕구를 채워주지 못한다고 느끼면서 포기와 자기부정의 수행방법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방랑의 길을 택한 수도승들의 수는 계속 증가했다. 이들은 희생제의 불인 아그니를 숭배하기보다 금식과 명상으로 내면의 불을 추구했다. 불교의 창시자인 부처와 자이나교의 창시자인 마하비라는 스스로 포기의 길을 택한 수도승이 되어 그러한 포기의 길을 택한 자들의 추종을 받았다. 수도승들의 목적은 물질적 세계로부터 그리고 생사의 끝없는 반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은둔철학의 중심에는 윤회와 카르마라는 개념이 있다. 자이나교도들은 물질적인 세계의 구속으로부터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혹독한 자기절제와 비폭력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부처가 삶의 고통을 불식시키기 위해 택한 길은 극도의 고행과 물질주의 사이에 중도를 걷는 것이었다. 이것은 수도승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따를 수 있는 가르침으로서 초기 불교의 바탕이 되었다.
인도 리처드 워터스톤 치음/ 이재숙 옮김 종교와 의례, 신과 우주, 명상과 요가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