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mu's wisdom fostered trust and diplomacy; Shangsu's cunning secured power in Qin, ousting Ganmu. Bai Qi, despite his ruthless victories, succumbed to court intrigue and died tragically. Wang Jian's careful strategy ensured Qin's triumph, unifying China under its rule. Amidst the era's turmoil, great figures balanced fame and misfortune in their political journeys.
먼저 정적을 제거하라
감무 : 세 사람이 비방하면 효자도 살인자가 된다
감무甘茂는 장의張儀(일찍이 소진과 함께 귀곡 선생을 스승으로 섬기면서 유 세술을 배웠다. 소진이 합종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라면, 장의는 연횡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위魏나라 사람으로,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 기여했다)의 천거로 진나라의 장수가 되었고, 진나라 무왕 때엔 촉나라를 평정시킨 공으로 좌승상이 되었다. 무왕 3년이 되자 왕은 한韓나라 정벌의 뜻을 밝혔다. 감무는 왕의 명 을 받고 연합작전을 성사시키기 위해 위魏나라를 찾아갔으나 일부러 빈 손이 되어 돌아왔다. 무왕이 눈이 휘둥그레져 물으니 감무가 차근차근 설명했다. “신이 빈손으로 돌아온 이유를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효자로 이름난 증삼曾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증삼과 이름이 같은 자가 살인을 저질 렀습니다. 어떤 이가 증삼의 어머니에게‘아들이 사람을 죽였다'고 말 했습니다. 그러나 증삼의 어머니는 자식의 성품을 잘 아는지라 이를 믿 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소문을 전하는 사람이 세 사람이나 되자 그 어머니는 베 짜던 베틀을 내던지고 담을 넘어 달아났다고 합니다. 신이 중도에 돌아온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신이 한나라 정벌을 위해 타국에 서 일을 벌이는 동안 신에 대한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자가 세 사람이 넘습니다. 또한 신의 어짊이 증삼보다 못하고, 왕께서 신을 믿음이 증 상의 어머니가 자식을 믿는 것보다 못합니다. 게다가 신은 타국 출신의 신하입니다. 이와 같을진대, 왕께서는 신을 변함없이 믿어주시겠습니까?" 진나라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했다. “과인은 헛소문을 퍼뜨리는 자의 말을 듣지 않기로 그대에게 맹세하 노라." 감무를 비방하는 무리들이 있었지만 마침내 진나라 왕은 마음의 동 요 없이 감무를 지원했다. 그리하여 감무는 한나라 의양을 함락시켰다. 이에 한나라 양왕이 신하를 보내어 강화를 청해왔다. 진나라와 한나라의 친선은 감무로 인해 맺어지게 되었다. 진나라의 무왕이 죽고 소왕 때였다. 당시 초나라가 한나라를 공격한 일이 있었다. 소왕의 어머니 선태후가 초나라 여인이었으므로, 진나라 는 팔짱만 끼고 구경을 하였다. 다급해진 한나라 왕이 진나라 감무에게 사람을 보내 구해달라고 매달리니, 비로소 그는 소왕에게 나아갔다. “만약 초나라가 한나라를 쳐서 합친다면 초나라는 반드시 두 나라의 군대로 진나라를 칠 것입니다. 앉아서 남이 치는 것을 기다리는 일과 내가 먼저 남을 치는 일, 어느 편이 더 유익하겠습니까?” 소왕이 머리를 끄덕이고 나서 군사를 보내 한나라를 구원하게 하니, 초나라의 군사가 물러갔다.
쓸 만한 사람이면 원수라도 등용한다
상수向壽는 선태후의 외척인 데다가 소왕과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이므로 중용되었다. 그가 초나라 사절로 가니 초나라는 소왕과 상 수의 친분관계를 생각해 그를 극진하게 대접했다. 상수가 진나라를 위하여 한나라를 치려고 하자 한나라는 소진의 동 생 소대蘇代를 시켜 상수를 만나게 했다. 소대도 형처럼 천하를 떠돌아 다니며 세 치 혀를 놀리는 유세가였다. 소대가 상수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존귀하게 되는 까닭을 정확히 아는 자는 존귀 하게 된다'고 합니다. 지금 공의 지혜와 능력은 감무보다 못합니다. 그 런데도 진나라 왕이 공을 신임하는 이유는 타국 출신인 감무를 견제하 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만약 공께서 진나라 국익을 생각하지 않고 초 나라와 가깝게 지낸다면 진나라 왕은 공을 멀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초나라는 배신과 속임수를 밥먹듯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친선정책 결과도 공 혼자 짊어져야 되므로 공이 존귀하게 되는 것과는 더욱 거리 가 멀어지게 됩니다. 한나라는 공의 원수이기는 하지만 이미 감무에 의해 친선을 맺었습 니다. 무리하게 공이 한나라를 치면 그 틈을 타 초나라가 진나라를 공 격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공께서 감무가 말한 것처럼 똑같이 한나라와 친선을 지키고 초나라에 대비하자고 말한다면, 공께서는 '외부에서 사 람을 등용할 때에 쓸 만한 사람이면 원수도 꺼리지 않는다'는 칭송을 듣게 됩니다. 이래도 한나라를 치시겠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어찌 한나라와 친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진나라로 돌아온 상수는 한나라와의 친교에 대한 증거로 초나라가 한나라에서 빼앗은 영천 땅을 되돌려주게 했다. 감무가 반대했으나 그 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명한 자가 중용되면 이웃나라가 위태롭다
'아, 여기 있다가는 큰 해를 입겠구나!' 상수에게 밀려난 감무는 제나라로 도망쳤는데 우연히 소대를 만났 다. 소대는 한나라에서 유세를 마친 뒤 제나라에 머물러 있었다. 소대 가 제나라를 위하여 유세를 하려고 진나라로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감 무가 말했다. “신은 이곳 제나라에 왔지만 몸을 의탁할 곳이 없습니다. 신은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길쌈을 하는 가난한 여인과 부유한 여인이 있었 습니다. 가난한 여인이 말하기를, '나는 촛불을 살 만한 돈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대의 촛불에는 다행히 빛이 있으니, 그대는 나에게 그 빛을 나누어주십시오. 그러면 그대의 밝음에 손상을 끼침이 없이 나도 이익 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합니다. 지금 신은 곤궁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외국 사절로 가는 높은 몸입니다. 이 몸의 처자가 진나라에 있 으니, 군께서는 남은 빛으로 그들을 구제해주십시오.” 소대가 허락하고 드디어 진나라로 들어갔다. 소대가 진나라 왕을 설 득했다. "제나라에 가 있는 감무는 비상한 인물입니다. 3대에 걸쳐 진나라에 서 중용된 그가 진나라 지형이 험한지 평탄한지 모를 리 없습니다. 그 런 그가 제나라에 한나라와 위나라가 맹약을 맺게 한 뒤 진나라를 친다 면 이보다 더한 위험은 없을 것입니다.” 진나라 왕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소?" "왕께서는 후한 예물을 보내 그를 진나라로 불러들이는 것이 좋습니 다. 그가 오게 되면 귀곡에 귀양보내 종신토록 나오지 못하게 하십시오." 진나라 왕은 소대의 말을 듣고 곧 벼슬과 예물을 보내 감무를 불렀으 나 그는 제나라를 떠나지 않았다. 소대가 제나라 민왕에게 말했다. "감무는 어진 사람입니다. 지금 감무가 진나라 왕의 벼슬과 예물을 사양한 것은 그가 왕의 신하 되기를 간절하게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 면 왕께서는 무엇으로 그를 예우하시렵니까?" 이 말을 듣고 제나라 왕은 감무에게 즉시 상경 벼슬을 내렸다. 이에 뒤질세라 진나라에서도 감무의 집안을 회복시켜 주고 그를 데려가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그러자 제나라는 감무를 사신으로 삼아 초나라로 보냈다. 이 당시 진나라는 초나라와 혼인관계를 맺고 있었다. 진나라 사자가 초나라로 와 감무를 데려가기를 청했다. 초나라 회왕이 범연에게 물었다. "과인이 감무를 진나라 재상으로 추천하고자 하는데 어떻겠소?" 범연이 반대했다. “안 됩니다. 대체로 현명한 자가 중용되면 이웃나라가 위태로운 법입 니다. 감무는 장의의 변설 속에서도 휘말리지 않고 살아남아 열 가지 벼슬을 역임하는 등 진나라에서 3대 동안이나 중용된 사람입니다. 그 런 그가 진나라 재상이 된다면 초나라에 득보다 손해가 된다는 건 뻔한 일입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진나라 재상을 추천하시겠다면 상수를 추 천하십시오. 상수는 진나라 왕과 가까운 사이로 어려서는 서로 옷을 나 누어 입고, 장성해서는 수레를 함께 타고 다니며 일을 처리하고 있지 않습니까? 진나라 왕은 지금 상수와 사사로운 정을 떨치지 못하고 있습 니다. 왕께서는 반드시 상수를 진나라 재상이 되게 하십시오. 감무보다 못한 상수가 진나라 재상이 되는 것이 초나라의 이익입니다." 이리하여 초나라가 사자를 보내어 재상을 추천하니, 과연 초나라의 생각대로 상수가 진나라 재상이 되었다. 감무는 끝내 진나라로 들어가 지 못하고 위나라에서 죽고 말았다. 감무는 미천한 집안 출신으로 등용되어 제후들 사이에서 이름을 떨 치고 제나라와 초나라에서 중용되었다. 그러나 당시 천하는 권모와 술 수가 횡행하던 때라 주위 여건이 허락지 않아 안타깝게도 끝내 큰 포부 는 펼치지 못했다.
백기와 왕전의 힘으로 천하를 통일하다.
백기왕전 ; 생매장당한 40만 군사의 원혼
백기白起는 용병술이 뛰어나 진나라 소왕을 섬겼다. 그는 진나라에 이웃한 조·위·한 나라의 군대를 물리쳐 이들 세 나라의 수십 개의 성 을 빼앗았고, 남쪽 초나라로 진격해 수도 영을 함락시켰다. 초나라 왕 은 동쪽으로 도망하여 수도를 진陳으로 옮겼다. 백기는 이 공으로 무안 군武安君이 되었다. 소왕 47년, 진나라는 다시 조나라를 공격했다. 조나라 왕이 염파廉頗 를 장군으로 삼아 방어하자, 진나라 재상 응후는 천금을 뿌려 소문을 퍼뜨리며 적을 내분시키는 작전을 썼다. "진나라가 두려워하는 이는 오직 조괄趙括이다. 그가 장군이 된다면 난공불락이다. 그러나 염파는 상대하기 쉽다. 그는 싸우자마자 진나라 에 항복할 것이다." 이때 명장 염파는 철옹성을 구축하며 수비작전으로 일관하여 진나라 군대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조나라 왕은 떠도는 소문만 믿고 염파 대신 조괄을 장수로 삼아 진나라를 치게 했다. 그런데 조괄이 초나라 장군이 되는 것을 가장 반대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그의 부모이다. 조 괄이 어릴 때 그의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다. “아들은 너무 쉽게 전쟁을 입에 올린다. 만약 이 아이가 장군이 된다 면 반드시 자신의 군대를 파멸시킬 것이다." 남편의 이 말을 기억하고 있던 조괄의 어머니가 왕에게 간했다. "제 아들은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인물입니다. 공을 독차지하여 뽐내 기가 거만하기 짝이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제발 이 아이에게 맡긴 장 군의 인태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왕은 듣지 않았다. 그러자 조괄의 어머니가 말했다. “정 그렇게 하시겠다면 혹 아들이 설사 임무를 다하지 못하더라도 이 어미를 연좌시켜 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나라 왕이 그 청을 받아들였다. 그후 조괄은 과연 어미의 예언대로 섣불리 군사를 출동시키다 진나라의 유인작전에 말려 식량 보급로도 끊기고 장평 땅에 갇히고 마는 신세가 되었다. 조나라의 병사들은 먹지 못한 지가 46일이나 되자 몰래 서로를 죽여 서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틈을 타 무안군은 조나라 군대를 공격하 여 조괄을 죽이고 포로로 잡은 군사 40만 명을 죄다 구덩이에 생매장시 켜 잔인하게 죽였다. 살아서 조나라로 돌아간 사람은 어린아이 240명뿐이었다. 조나라 사람들은 무안군이 매우 두려워 벌벌 떨었다. 조나라 왕은 두려운 나머지 진나라 재상 응후에게 몰래 사람을 보내 무안군과 이간질을 시키니, 무안군은 날이 갈수록 소왕의 눈 밖에 벗어 나게 되었다. 그러자 무안군은 병을 핑계 삼아 더는 싸움에 나아가지 않았다. 무안군이 없는 진나라 군대는 위나라와 초나라가 연합한 조나 라 군대에 대패하였다. 소왕은 무안군을 다시 불렀다. 그러나 무안군은 병을 핑계로 나아가 지 않았다. 이로 인해 무안군을 의심하게 된 소왕은 크게 화를 내며 사 자를 시켜 그에게 칼을 내려보냈다. 받은 칼로 자결하라는 뜻이었다. 무안군은 왕이 보낸 칼을 자신의 목에 대며 탄식했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 그는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내 본래 죽어야 마땅하도다. 장평 싸움에서 항복한 조나라 군사 40 만 명을 생매장해 죽였으니 그 원혼이 어찌 나를 가만히 놔둘 리 있으 리요!" 무안군은 말을 마치고 드디어 자결했다. 진나라 소왕 50년 11월의 일 이다. 무안군은 죽었으나 사실 죽을 만한 큰 죄를 지은 것이 아니었으 므로 사람들은 그를 가엾게 여겨 향읍鄕邑마다 모두 그의 제사를 지내 주었다.
부자 3대는 있어도 장군 3대는 없다
왕전은 젊어서부터 병법을 좋아하였으며, 진나라 시황始皇을 섬기게 되었다. 왕전은 조나라를 공격한 지 1년 만에 조나라를 무너뜨려 진나라 땅으 로 편입시켰다. 다음 해에 연나라를 쳐 연나라 왕 희喜를 요동으로 몰아 내고, 이어서 위나라를 쳐 평정했다. 진나라가 이미 삼진三晋(조·위·한) 을 멸망시켰고 연나라 왕을 요동으로 달아나게 했으므로 다음은 초나 라를 무너뜨릴 차례였다. 이때 시황제는 젊은 장군 이신름을 불러 물었다. "초나라를 치는 데 그대에게 얼마의 병사를 주면 되겠는가?" "20만이면 충분합니다." 시황제는 이번에는 왕전에게 물었다. "그대는 몇 만이면 되겠는가?" 그러자 왕전이 이렇게 대답했다. "60만은 있어야 합니다." 시황제가 그 말을 듣고 비웃으며 말했다. “왕장군도 이제 늙었구려. 저 용감한 이 장군을 보시오. 무엇을 그렇 게 겁내오?" 드디어 시황제는 이신과 몽염에게 군사 20만 명을 주어 초나라를 치 게 했다. 그런데 이신은 초나라의 기습에 대패해 부상병만 이끌고 진나 라로 돌아왔다. 그제야 시황제는 왕전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고 왕전에 게 사과한 뒤 다시 물었다. “초나라가 지금 기세를 몰아 우리를 침략한다고 하오. 얼마면 저들을 깨뜨릴 수 있겠소?" “전에 말씀드린 대로 꼭 60만 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자 시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군의 계책을 따르겠소.” 결국 왕전은 60만 군사의 장수가 되었다. 그런데 왕전은 출전하기 전 시황제에게 그 대가로 수많은 봉읍封邑(임금에게서 받는 땅)을 요구했다. 그러자 시황제가 말했다. "장군은 걱정 말고 갔다오시오. 나라를 살린 장군이 어찌 가난함을 면치 못하겠소?" 그래도 왕전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왕의 장군이 되어 공은 많았으나 후候로 봉해지지 못했습니다. 그래 서 동산과 연못 등을 청하여 자손이나마 그 혜택을 편안하게 누리라는 뜻에서 이렇게 청하는 것입니다." 시황제는 크게 웃고 말았다. 그러나 왕전은 함곡관에 도착한 뒤에도 무려 다섯 번이나 사자를 보 내어 봉읍을 계속해서 청하였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장군의 요구가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왕전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소. 진나라 왕은 거칠고 포악하여 남을 믿지 않소. 그래서 군대의 지휘권을 모두 내게 맡겨두고도 왕은 틀림없이 나를 의심하고 있을 것이오. 내가 자손을 위해 많은 봉읍을 요구하는 것은 나에게 그 목적 외에 다른 뜻이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요. 이를테면 봉읍은 충성을 기약하는 담보물인 것이오.” 초나라는 왕전이 이신을 대신하여 공격해온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전병력을 동원하여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왕전은 나아가 싸울 생각은 하지 않고 성채를 견고히 하며 굳게 지키기만 했다. 초나라 군대가 자 주 싸움을 걸어 왔으나 끝까지 응하지 않았다. 대신에 왕전은 날마다 군사들을 쉬게 하고 좋은 음식을 먹여 그들을 보살폈다. 왕전 자신도 친히 사졸들과 음식을 같이 먹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왕전은 부하 를 보내 병사들을 시찰하게 한 후 이렇게 물었다. "병사들이 놀고만 있던가?" “너무 무료한 탓인지 돌 던지기와 뛰기 시합을 하고 있습니다.” 왕전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 "이러니 병사들의 체력이 안 좋아질 리 있으리요? 이제야 병사들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왕전은 군대를 출동시켰다. 이때 초나라 군대는 진나라가 응 전하지 않자 방심하고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철수하고 있던 중이었 다. 왕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신속히 추격하여 초나라 군대를 크 게 물리친 뒤 이 승세乘勢를 몰아 초나라로 쳐들어가 초나라 왕자 부추 負芻를 포로로 사로잡고 마침내 초나라를 평정하여 진나라의 군현郡県 으로 편입시켰다. 또한 남쪽으로 백월百越의 군주를 정벌하기에 이르렀다. 왕전의 아들 왕분은 이신과 함께 연나라와 제나라의 땅을 평정했다. 진나라 시황제 26년에 천하를 모두 평정했는데, 왕씨와 몽씨의 공이 많아, 이 두 가문의 명성이 후세까지 남게 되었다. 진나라 2세 황제 때 엔 왕전과 그의 아들 왕분은 모두 죽고, 또 몽씨도 자손이 끊겼다. 이때 진승陣勝이란 자가 조나라를 세워 진나라에 반기를 드니 진나라에서는 왕전의 손자 왕리를 시켜서 조나라를 치게 했다. 왕리가 마침내 진승을 거록성鉅鹿城에서 포위했다. 어떤 이가 말했다. "왕리는 강대국 진나라의 명장이다. 지금 미약하기 짝이 없는 신흥국 조나라를 치니 결과는 보지 않아도 왕리의 승리다." 이때 지나가던 사람이 그 말을 듣고 말했다. "그렇지 않소. 3대에 걸쳐 장군이 된 자는 반드시 망한다 했소. 조부 와 아버지 대에 사람을 많이 죽여서 그 살벌한 기운이 후손에 전해지기 때문이오. 그러니 어찌 후손이 재앙을 당하지 않으리요. 바로 왕리가 3대째의 장군이오.” 과연 얼마 안 되어 왕리는 조나라를 구원하러 온 항우項羽의 손에 잡 히고 말았다. 백기는 이름이 천하를 진동시켰으나 자신의 환란은 구제하지 못하였 다. 왕전은 자신의 일신의 안일만을 구하다가 죽었으니, 손자 왕리 때 에 이르러 항우에게 잡힌 것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소설보다 재미 있는 사기열전
지은이 : 사마천
편역자 :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