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gyuanjun and Yu Qing both worked to save the state of Zhao but had different approaches. Pingyuanjun lost and regained trust due to personal missteps and succeeded in securing aid from Chu through his advisor Mao Sui. However, his focus on personal safety during crises was criticized, requiring intervention by another advisor, Li Tong, to rally the troops. Yu Qing, on the other hand, proposed practical, strategic solutions to Zhao's plight but suffered personal sacrifices due to his loyalty and righteousness. These stories highlight the importance of understanding people and leveraging situations effectively during crises.
구국의 방법이 달랐던 두 대신
평원군·우경 : 세치 혀가 백만 명의 군사보다 강하다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은 조나라 여러 공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빈 객들을 맞아 같이 어울리기를 좋아하여 그의 문하에 모여든 빈객의 수 가 수천 명이나 되었다. 어느 날 평원군의 애첩이 동네 절름발이를 비웃은 일이 있었다. 절름 발이가 평원군을 찾아와 항의하며 그녀를 죽여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 러나 평원군마저도 그를 비웃고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후 평원군의 빈객들이 조금씩 떠나가니, 그 수가 빈객의 절반을 넘었다. 평원군이 이를 이상하게 여겨 빈객 중 한 사람에게 물었다. "나는 선비를 대우할 때에 아직까지 예를 잃은 일이 없소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선비들이 저를 떠나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절름발이를 비웃은 여인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 비들이 공께서 여색을 사랑하고 선비를 천시한다고 생각하여 떠나는 것입니다." 그제야 평원군이 깨닫고 애첩의 목을 벤 후에 절름발이를 찾아가 그 목을 보이며 사과했다. 그 뒤로 선비들이 차츰차츰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무렵 조나라에 평원군이 있다면 제나라에는 맹상군, 위魏나라에는 신릉군, 초나라에는 춘신군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 네 사람을 ‘사군자 四君子'라 불렀는데, 이들은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선비들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진나라가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포위하자, 조나라는 평원군을 시켜 서 초나라에 구원을 청하게 했다. 평원군은 자신의 빈객 중 20명을 선 발하여 수행 사절로 데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19명은 선발되었지만, 나 머지 1명은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이때 문하에 모수毛遂라는 자가 평원군 앞으로 나와 스스로 자신을 추천했다. 평원군이 물었다. “선생께서 내 빈객으로 있은 지 몇 해나 되었소?" "3년입니다."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는 것을 비유하면, 주머니 속에 송곳이 있 는 것과 같아서 그 끝이 금세 드러나 보이는 법이오. 그런데 선생이 내 빈객으로 있은 지 3년이 되었지만 그 누구도 아직 선생을 칭송한 일이 없었으며, 나 역시 그대의 이름을 들은 바가 없소. 이것은 혹시 선생께 서 재능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겠소?" 그러자 모수가 평원군의 말을 반박했다. “그래서 신이 오늘에서야 공의 주머니 속에 있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만약 공께서 신을 좀더 일찍이 주머니 속에 있게 했더라면, 송곳 끝만 아니라 송곳의 자루까지 밖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평원군은 마침내 모수와 함께 가기로 했다. 다른 19명은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서로 눈짓하며 스스로 자기를 추천한 모수를 비웃었다. 드디어 평원군이 초나라 왕 앞에서 합종의 이해득실을 따져 구원의 약속을 받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아침에 시작한 논의가 오후가 되어도 끝나지를 않았다. 이때 모수가 계단을 뛰어올라가 칼을 어루만지면서 소리쳤다. “합종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이렇게 단 두 마디의 말이면 충분한데, 이걸 갖고 시간을 끈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초나라 왕이 모수를 꾸짖었다. “어서 썩 내려오지 못할까? 나는 너의 주군과 말하고 있는데, 네가 뭘 안다고 여기까지 올라와 떠들어대느냐?" 모수는 칼을 어루만지며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왕께서는 여기가 초나라이고, 주위에 초나라 사람이 많음을 믿고 큰 소리치십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열 걸음 안에서는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왕의 목숨이 제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 렇듯 천하의 움직임은 사람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형세에 있는 것입니다. 은나라 탕왕이 70리의 땅으로 천하를 거느리는 왕이 되고, 주나라 문왕이 100리의 땅으로 제후들을 신하로 삼았던 것은 바로 형 세에 의거하여 그 위엄을 잘 떨쳤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하면 초나라의 그러자 모수가 평원군의 말을 반박했다. “그래서 신이 오늘에서야 공의 주머니 속에 있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만약 공께서 신을 좀더 일찍이 주머니 속에 있게 했더라면, 송곳 끝만 아니라 송곳의 자루까지 밖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평원군은 마침내 모수와 함께 가기로 했다. 다른 19명은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서로 눈짓하며 스스로 자기를 추천한 모수를 비웃었다. 드디어 평원군이 초나라 왕 앞에서 합종의 이해득실을 따져 구원의 약속을 받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아침에 시작한 논의가 오후가 되어도 끝나지를 않았다. 이때 모수가 계단을 뛰어올라가 칼을 어루만지면서 소리쳤다. “합종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이렇게 단 두 마디의 말이면 충분한데, 이걸 갖고 시간을 끈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초나라 왕이 모수를 꾸짖었다. “어서 썩 내려오지 못할까? 나는 너의 주군과 말하고 있는데, 네가 뭘 안다고 여기까지 올라와 떠들어대느냐?" 모수는 칼을 어루만지며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왕께서는 여기가 초나라이고, 주위에 초나라 사람이 많음을 믿고 큰 소리치십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열 걸음 안에서는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왕의 목숨이 제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 렇듯 천하의 움직임은 사람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형세에 있는 것입니다. 은나라 탕왕이 70리의 땅으로 천하를 거느리는 왕이 되고, 주나라 문왕이 100리의 땅으로 제후들을 신하로 삼았던 것은 바로 형 세에 의거하여 그 위엄을 잘 떨쳤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하면 초나라의 무능하다 하지 않겠소?" 평원군은 마침내 초나라에서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조나라 로 돌아왔다. 평원군은 그 일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 감히 다시는 인물을 평가하지 않겠다. 내가 대단치 않게 생각했 던 모 선생이 한 번 초나라에 가매 조나라를 대려大呂(주나라 왕실 종묘에 있던 큰 종)보다도 무겁게 만들었다. 모 선생의 세치 혀는 초나라의 백만 군사보다도 강하지 않던가! 내 감히 다시는 선비를 안다고 말하지 않으 리라.” 그리고 드디어 평원군은 모수를 상객上客으로 모셨다.
나라가 망하면 포로가 될 수밖에 없다.
평원군이 조나라로 돌아간 뒤, 초나라에서는 춘신군을 장수로 삼아 조나라를 돕도록 했다. 위나라에서도 신릉군을 보내 조나라를 돕도록 했다. 그런데 초나라와 위나라의 구원군이 오기도 전에 진나라 군사들 이 조나라에 들이닥쳐 수도인 한단이 함락될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평원군은 나라의 운명보다는 집안 식솔들의 안전에만 신경을 썼다. 이에 이동李同이라는 문객門客이 평원군 앞에 나와 간하였다. "당신은 나라가 망하는 것이 걱정되지도 않습니까?" "나라가 망하면 나는 포로가 될 터인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오?" 이동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조나라의 수도 한단의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서로 자식을 바꾸어 먹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집에는 쌀과 고기가 남아 돌고 있으며, 후궁들은 물론 노비들까지 비단옷을 입고 있습니다. 나라 가 망한다면 당신이 이런 것들을 어떻게 누리겠습니까? 지금 당장, 부 인과 아랫사람들을 병사들과 같이 일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가지고 있 는 것을 풀어서 병사들을 먹이십시오. 그러면 어려운 처지에 있는 병사 들이 군주의 은혜에 크게 감격해할 것입니다." 평원군이 이동의 말을 따르니, 죽음을 각오한 3,000명의 군사들을 얻 게 되었다. 이동이 드디어 3,000명과 함께 진나라 군대를 향해 나아가 니, 진나라 군사들은 3,000리 밖으로 잠시 물러났다. 때마침 초나라와 위나라의 구원군이 도착하자, 진나라의 군대는 물러가고 조나라는 가까스로 멸망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결과가 똑같다면 앉아서 당할 필요가 없다
우경虞卿은 유세를 하는 선비이다. 그는 짚신을 신고 어깨까지 덮는 챙이 큰 우산 같은 삿갓을 쓰고 조나라로 와서 효성왕을 설득했다. 효 성왕은 우경의 말을 한 번 듣고는 황금 2,000냥과 흰 옥 한 쌍을 선물로 주었으며, 두 번째 만나서는 조나라 상경上卿(재상)으로 삼았다. 우虞가 성인지라 관직 명칭을 붙여 우경이라 불렀다. 조나라가 장평長平 전투에서 진나라에게 패하자 효성왕은 화친이냐, 항전이냐를 놓고 고민했다. 이때 누창樓昌이란 장수가 화친론을 주장하 자 우경이 반대했다. "누창이 화친을 말하는 이유는 화친하지 않으면 조나라 군대가 반드 시 패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화친을 하고 안 하는 것은 진나라의 의사에 달린 것이지 조나라의 의사에 달린 것은 아닙니다. 또 왕께서 보시기에 화친을 하면 진나라가 공격을 멈출 것 같습니까, 그렇 지 않다고 보십니까?" 왕이 대답했다. "진나라는 끝까지 힘을 다해 우리를 무너뜨릴 것 같소.” 그러나 조나라 왕은 우경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진나라에 화친을 청했다. 이후 조나라는 진나라 계책에 말려들어 장평에서 대패하고 수 도 한단까지 포위당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조나라는 6개 현縣을 진나라에 떼어주기로 하고, 왕이 진나라에 들어 가 사과하는 치욕적인 조약을 맺고서야 간신히 진나라의 포위에서 풀 려날 수 있었다. 조나라 왕이 돌아와 진나라와의 약속대로 이행하려고 하니 우경이 또 반대했다. “일단 화친을 성사시켜 눈앞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나 화친은 결국 자멸하는 길입니다. 차라리 6개 현을 합종의 대가로 천하 제후들 에게 나누어 주고 그들의 신뢰를 얻어 진나라를 치는 것이 조나라에 유 리할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 땅을 떼어주어서 자신을 약화시키고 진나 라를 강하게 만드는 것과 비교한다면 어느 것이 더 유리합니까? 더구나 왕의 땅은 한정되어 있지만 진나라의 요구는 그침이 없습니다. 한정된 땅을 가지고 그칠 줄 모르는 요구를 만족시켜 주다 보면 언젠가 조나라 는 없어질 것입니다.” 우경은 화친을 주장하는 신하들 앞에서 끈질기게 항전의 논리를 펴 조나라 왕을 설득하려고 했다.
큰 고통이 오히려 이름을 남기게 하다
조나라 왕이 어찌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진나라의 동정을 엿 보기 위해 갔던 누완樓緩이라는 신하가 돌아왔다. 조나라 왕이 누완에 게 화친을 할 것인지, 항전을 할 것인지에 대해 자문을 했다. 누완이 사양하며 말했다. "신이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왕이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왕께서 혹시 저 공보문백公甫文伯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옛날 공보문백이 노나라에서 벼슬을 살다가 죽으니 그를 따라 규방 안에서 자살한 여자가 두 명 있었습니다. 공보문백의 어머니가 그 이야기를 듣 고도 곡하지 않으니 그 집 종이 이상히 여겨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에 그 어머니가 대답하기를, '아들의 스승인 공자가 노나라에서 쫓 겨났을 때 아들은 스승을 따라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아들이 죽으니 그를 위하여 자살한 여인이 두 사람이나 된다. 이런 결과는 아들이 자신 의 주군에겐 박하고 여인에겐 후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지 않 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합니다. 이 말을 그 어머니가 하면 어진 어머니 라고 하겠습니다만, 아내가 이 말을 한다면 반드시 질투심이 많은 아내 라고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말의 내용은 같지만 말 하는 사람이 다르면 곧 듣는 사람의 마음도 다르게 생각되는 것입니다. 지금 방금 신이 진나라에서 돌아왔으니, 성을 주지 말라고 한다면 그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니라 할 것이고, 성을 주라고 한다면 왕께서 신이 진나라와 내통한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두려워 감히 대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께서 굳이 물으신다면 신은 진나라에 6개 성 을 떼어주고 화친을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입니다." 우경이 이 말을 전해 듣고 조나라 왕을 찾아가 아뢰었다. “신은 땅을 주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라, 다만 진나라에 주지 말라고 한 겁니다. 왕께서는 6개 성을 제나라에 뇌물로 주십시오. 그러면 제나 라는 이익에 어두워 조나라와 합종하고 진나라를 칠 것입니다. 이는 왕 께서 6개 성을 제나라에 주고 그 보상을 진나라에서 받는 격입니다. 그 리하여 제나라와 조나라는 진나라에 대한 원한을 갚을 수 있고, 천하에 조나라가 일을 잘 처리하는 능력이 있음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좋소.” 조나라 왕이 우경의 권고대로 제나라와 합종하려고 했다. 그때 마침 위나라가 조나라에게 합종을 먼저 청해와 위와 조는 합종을 맺었다. 그 뒤 진나라의 재상 범수가 자신의 원수인 위제魏齊(위나라의 재상을 지냄)를 넘겨달라고 조나라에 협박을 해왔다. 범수는 원래 위제 밑에 있던 사람이었으나 그에게 매질을 당한 후로 진나라로 도망쳐 재상이 된 인물이다. 조나라 왕이 협박에 못 이겨 위 제를 넘겨주려고 하자, 위제는 우경을 찾아가 몸을 의탁했다. 우경은 위제를 위해 스스로 부귀영화를 포기한 채 그를 데리고 몰래 조나라를 떠나 대량大梁으로 갔다. 그후 우경은 이국 땅 양나라에서 어려운 생활 을 했다. 위제가 자결한 후 우경은 이루지 못한 뜻을 책으로 엮었다. 위로는 《춘추春秋》에서 따오고 아래로는 근세를 살핀 것으로, <절의節義〉, 〈칭호稱號〉, 〈췌마〉, 〈정모政謀> 등 모두 8편이다. 그는 이 책에서 국가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따지고 비판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책을 《우씨춘추虞氏春秋》라고 한다. 평원군은 드넓은 하늘을 힘차게 날아가는 새처럼 높은 기상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나라를 다스리는 큰 이치를 살필 줄 몰랐다. 속담 에 '이로움에 사로잡히면 지혜가 흐려진다'는 말이 있다. 평원군은 그릇된 말에 지나치게 빠져 장평 전투에서 조나라 군사 40 만이 산 채로 매장되게 하였고, 수도 한단까지 거의 함락되는 지경에 이르게 했다. 우경은 사태를 헤아리고 정황을 추측하여 조나라를 위한 계책이 매 우 뛰어났다. 그러나 위제와의 정의 때문에 마침내 대량에서 큰 고통을 겪었다. 평범한 사람도 그 옳고 그름을 알 것인데, 하물며 어진 우경이 그것을 몰랐겠는가! 그러나 우경이 큰 고통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책을 지어 후세에 자기 이름을 알리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소설보다 재미 있는 사기열전
지은이 : 사마천
편역자 :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