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 있는 인류의 지혜]인도_5#46

인도_5

The Hindu goddess Devi is worshipped in various forms, often associated with fertility and the earth. Goddesses like Durga and Kali are revered for their destructive power yet respected as divine mothers. Yoga is a practice of purifying the body and mind to achieve enlightenment, aiming for supernatural powers and liberation. Traditions like Hatha Yoga focus on physical purification to attain immortality, emphasizing control over the body and mind.

데비

여신 데비는 힌두교에서 가장 오래되고 또 가장 자주 나타나는 신이다. 고대 아리아 이전의 모신 처럼 데비는 엉덩이가 펑퍼짐한 생산자와 생명을 파괴하는 무서운 파괴자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 다. 데비는 인도의 작은 마음에서 고대 대지의 여 신인부, 히말라야(74-75쪽 참조)의 딸인 파르바 티, 복수심에 불타는 칼리와 두르가(80~81쪽 참 조), 수많은 남신들의 배우자 여신 등 수없이 많은 형태로 숭배된다. 이신은 북인도에서는 마타 혹은 마타지, 남인도에서는 암만, 즉 어머니로 불린다. 또한 여신은 남성의 링가(66~67쪽 참조)를 둘러 싸고 있는 이성의 원리로서 요니로 표현되기도 한다.

고대의 모신처럼 데비는 주로 다산 및 땅과 연 관이 있다. 인도대륙 자체가 데비의 몸으로 비유되기도 하고, 특정 지형에서 데비의 특징이 나타 나기도 한다. 엘커타(칼리 가트)와 같은 도시는 데비의 형태에서 지명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 편 여신들의 이름도 자연의 지세나 지형에 따라 이름이 지어지기도 했다. 라마의 배우자인 시타 이름은 '고량'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에서 나의 왔다. 힌두교 신들 가운데 남신은 전혀 다른 세계 있는 것같이 느끼지지만 이신의 화신들은 활에 달하고 보다 가깝게 느껴진다. 데비는 속세의 환 영과 떨어져 있지 않고 오히려 마하마야(거대한 환영)라고 불린다. 땅 자체가 이신의 몸이기 때문 용이하다. 에 여신은 신봉자들에게 쉽게 이해되고 접근도 용이하다. 힌두교의 세 신인 시바, 브라마, 비슈누 신은 모두 남신으로서 이상을 구현해 보이 주는데, 신 봉자들은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브라마는 추상 적인 초월의 원리(브라만)보다 약간 구체적인 뿐 이다. 비슈누는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할 만큼 순수한 도덕적 이상을 제시한다. 시바의 고통은 인 간들로서는 따라할 수 없는 경지이다.

그러나 여신들은 이 세상에서 활동하는 모습 으로 알 수 있다. 시바가 저 높은 히말라야에 은 거해 명상을 하고 있는 동안에 여신은 화신 칼리 의 모습으로 전쟁에 나가 악마들을 죽인다. 그것 도 크리슈나가 말하는 '사심 없는 행위로서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증오의 칼을 휘두른다. 인간세상에서의 여성의 힘은 탄트라)로 블리는 문헌들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틴트라 학자들은 데비를 신의 권능의 중심이며 그것을 유지하고 있는 힘이라고 본다. 칼리와 두르기에 서와 같이 여신의 공포스러운 형상은 타원한 남성 신들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 최고의 힘으로서 탄트라의 의례들을 통해 숭배된다.

 

 

 

두르가와 칼리

두르가는 데비가 변형된 또 다른 모습으로, 히말라야(74-75쪽 참조)의 딸인 부드 러운 파르바티의 공포스러운 이면이다. 인도 전역 에서 칼리는 광범위하게 숭배된다. 파르바티가 시 바의 배우자 역할을 하는 반 면 두르가는 파르바티의 오 큰쪽에 서서 자신의 잔인한 힘으로 무지하고 탐욕스러운 악마들을 죽인다.

1세기 이후 두르가는 인도 전역에서 물소악마 마히샤수 라를 죽이는 여신으로 숭배를 받기 시작했다. <두르가의 업적>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힌두교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의 하나이다. 어마어마한 힘의 소유 자인 마히샤수라가 지독한 고행을 함으로써 신들 이 그에게 거의 무한한 힘을 허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마히사수라는 당장 물소의 모습 하고 하늘의 문을 들이받았다. 악마의 이런 끝을 찍한 힘과 그로부터 야기되는 무질서를 보고 화 가 난 신들은 두르가를 만든다. 신들이 모든 힘을 한데로 모아서 온갖 능력을 모두 갖춘 한 명의 여신을 만든 것이다 이 무적의 여신은 악마군대를 모두 전멸 시키고 결국 마히샤수라의 목을 뽑아 죽인다.

칼리는 '검은 여자'라는 뜻인데 길고 붉은 혀 를 내밀고 있는 공포스러운 모습을 한 여신이다. 두 눈은 싸움과 학살을 갈망하는 듯 붉게 충혈되 어 있고 해골로 만든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다. 칼리의 이미지는 모든 힌두교의 신들 가운데서도 가장 공포스럽다. 그렇지만 칼리는 두려움의 대 상이 되는 만큼 숭배의 대상이 된다. 람프라사드 센과 라마크리슈나 같은 18세기와 19세기의 인도 시인과 학자들은 칼리를 '성스러운 어머니'라 고 불렀다. 초기의 탄트라적 종파는 칼리 여신 안 혈되 에 최고 신의 권능이 있다고 주장했다.

시바와 마찬가지로 칼리는 다른 신들을 두렵게 하고 달래 주는 아웃사이더이다. 칼리와 시바 는 추방자이기 때문에 둘 다 화장터에 머물러 있 다. 하지만 명상에 넋을 놓고 있는 시바와 달리 칼리는 속세의 전쟁터에서 사납게 뛰어다닌다.

 

 

 

 

 

 

 

요가의 기술

 

요가는 자기각성의 구체적인 방법이고 모든 존재들을 정화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다. 그리하여 몸과 마음이 일상이라는 환영 뒤에 숨어 있는 완전한 실체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본래 요가는 힌두교 철학의 전통 속에 깔린 보편적인 요소였는데, 이제는 힌두교도뿐 아니라 그리스도교도, 불가지론자 그리고 무신론자 등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실천하고 있는 일반적인 구도의 방법이다. 요가는 종교라기보다는 신체적 수양이 그 사람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정신적인 수련의 하나이다. 또한 수련자는 마음을 집중함으로써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제어력을 갖게 된다. 한편 단순한 운동으로서 요가는 수도자에게 잠시 요가적 초능력을 경험하게 하는데, 특히 공중부양 같은 것은 대표적인 요가적 초능력으로 알려져 있다. 보다 숙달된 요기들은 마음대로 모습을 감추는 등 특별한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그러한 능력을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라자 요가가 신체를 환영으로 보고 가볍게 생각하는 반면에, 하타요가는 신체를 해탈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하타 요기들은 신체를 훈련하고 정화하기 위해서 '초능력의 요가를 수련한다. 그래서 업과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신비스러운 몸'을 만든다. 일단 정화되고 나면 신비스러운 몸과 마음은 사마디 라는 황홀경에 빠지는 상태가 되는데, 이때 보다 집중적인 명상을 하면 계속 해탈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쿤달리니 요가는 수련자 자신의 신비스러운 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여성력의 상징인 쿤달리니라는 뱀을 초월의 신이 머무는 자리인 머리의 정수리에 있는 에너지 센터까지 끌어올림으로써 시비와 시크티의 결합을 추구한다.

 

요가

 

요가는 물질적 세계로부터 해탈을 얻는 과학이 며 실천적 방법이다. 그런데 불교와 자이나교처 럼 해탈로 가는 길을 막연히 지칭하는 것이 아니 라 그 해탈의 지경에 도달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알려 준다. 근래에 서양에 알려진 요가는 신체의 자세를 중시하는 하타 요가(88-89쪽 참 조)이다. 이것은 요가의 한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요가는 육파철학의 하나이다. 신체적인 수련은 정화하는 방법이 되는데, 이것은 육신을 제창조해 마야, 즉 환영의 세계로부터 해탈을 얻 을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요가가 흔히 결합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 기는 하지만 문자적인 의미는 '불집아메다'에 가 깝다. 요기는 우리가 흔히 자아라고 부르는 낮은 단계의 의식을 절대 신의 최고의 의식에 붙잡아 메려고 하는 것이다. 자아통제, 고행, 수행은 몸과 마음의 훈련이 이루어져서 브라만이라는 지고의 실체에 들어맞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깨달음이란 것은 몸과 마음이 '경험하는 것이 라기보다는 '깨어 있는 혹은 세계의 진정한 실체 '연결된 의식이 '목격하는 것이다. 자신을 궁에 극적인 진리에 '연결'하려는 요기의 최고 목적 은, 금욕적인 초연함과 감각의 제어를 통해서 환 영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세상의 속성은 환영과도 같아서 호수에 바람이 볼 때 그 표면에 연거푸 생겨나고 사라지는 물의 출렁임과 같은 것이다. 일단 바람이 멈추면 파편화된 이미지와 호수의 표면에 보이던 연속적인 출렁임이 그 본 안정된 모습, 절대적인 신격의 영속성과 유래의 사한 항상성을 가진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 이다.

이와 유사하게 요가는 끊임없이 변하는 인식의 결과물과 생각으로 마음이 가득 차면서 생기 의식의 방황과 출렁임을 가라앉히는 것을 목는 적으로 한다. 초심자가 한 지점에 집중을 한다든 가호흡 자체에 집중해서 요가 수련을 시도할 세 마음은 곧 방황하게 되는데, 이것은 상상의 대화 기억, 잡생각들이 수련자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요가는 이원론 철학(상키아)에서 출발했 데. 이 상기아 철학은 물질과 정신이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다는 관심을 가졌다. 특히 그 중에서 정신이 물질에 매이게 된다고 보았다. 즉 열여 신익에 따라 마야(완성)에 메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섬의 고리를 경험해야 하기 때문 에 윤회의 끝없는 갯바위를 돌면서 다시 태어나 야 한다. 욕망이란 모든 행위의 근원이고 이 세 상에 결과를 남기게 되므로, 지난 업의 결과를 없애고 새로운 업이 쌓이는 것을 막으려면 요가는 욕망을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한다.

요가의 여러 측면 가운데 보다 비밀스러운 유 행은 아리아인들이 들어오기 이전부터 있었던 샤머니즘으로부터 유래한 것 이다. 요가는 세속적 대상들의 허상을 '태워버 릴 수 있는 내면의 열을 믿기 때문에 샤머니즘 적 기술을 최면이나 초외식의 몰입상대로 이끄 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샤머니즘이 그러한 초능 리과 우주의 신에게 접근하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생각하는 반면, 요기는 이러한 능력을 초월 해서 신들조차도 넘어서는 궁극적 실체와의 단계 에 도달하려고 노력한다.

요가에 대한 <베타> 문현의 첫 언급은 <카타우파니샤드>에 보이는데, 여기에서는 요가를 사고있는 외식이 마루가 되고 육신은 수태가 되는 여자에 비유하고 있다. 육신에 대한 통제는 갑자 을 통제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이 말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시 연계되어 있어서 육체적인 고행이 외식에 영 땅을 지고 김을 통제하게 되면 불길에 대한 성복, 조연을 갖게 된다고 하는 초기 요가이 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은 하타요가 와 호흡법 기술 가운데 쿤달리니 라는 개념을 포함하는 요가적 방법에 의해 발견 되었다. 한편 높고 낮은 의식의 단계는 바로 이 호흡에 의해서 생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바가바드기타>는 때때로 어떤 의미에서 요가 경전이라고 소개된다. 이 문헌이 개인적 의식과 우주적 의식의 균형을 이루는 요가의 핵심기술이 자기수련과 감각의 통제라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크리슈나가 괴로워하는 아르주나에게 충고 한다. "마음이 요동치며 안절부절못하고 계속 방황 때는 의식을 안으로 끌어 여야 한다. 그리고 매순 아트만에 초점을 맞추도록 해야 한다... 요가는 조화이다. 크리슈나는 또 먹고 쉬는 데도 조화가 있고, 잠자고 깨어 있는 동안에는 조화가 있다. 그것은 무엇을 하든 완전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크리슈나가 (바가바드기타)에 밝힌 요가는 행 위로서 자아를 통제하는 카르마 요가, 헌신적인 믿음을 바치는 바크티(58-59목 참조) 요가이다. 귀의란 하나의 신앙적 접근법으로 신봉자의 사랑 과 갈망의 힘으로 상상 속의 독립적이고 인격적 인 그리고 활동하는 신에게 도달하는 것을 말한 다. 바크티 요기들은 일상적 세계의 환영으로부 터 탈출을 갈망하기보다는 그들이 숭배하는 신의 영광이 세상의 모든 곳에 드러나 있다고 말하면 서 오히려 포용한다.

크리슈나는 바크티를 요가의 가장 훌륭한 형태라고 말한다. "모든 요기들 가운데 나를 꾸준히 숭배하는 자. 사랑 속에서 소아를 버린 자는 나의 마음에 가장 가까이 오게 되고 결국 나에게 향하게 된다

오늘날 서구에 알려져 있는 요가의 형태는 과 탄잘리가 지었다는 <요가 수트라>에 정리되어 있 다. 어떤 학자들은 이 문 현을 기원전 2세기경에 쓴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사실 그보다 훨씬 나중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195개의 팔마한 장이나 경구로 이루어 더 있다. 여기에 주석이 붙여지기 시작했는데 백 년 동안에 걸쳐 계속 스어졌다. 이 가운데 가장 3명이 있는 것은 <요가 아시아>라는 요가에 대한 주식이며, 500년경 비아 사라는 전설적인 성자의 이름과 동명이인이거나 혹은 이 이름을 빌려 쓴 학자가 지은 것이다. <타트바 바이샤라디>(실 체에 대한 학문) 850년경에 쓰여졌으며, 바차 스파티 미슈라가 지었다고 한다.

<요가 수트라>의 사상적 체계는 기본적으로 이원론이다. 파탄잘리는 무엇보다도 개인의 영 혼이 세속적 문제나 또 다른 영혼에 대한 집착에 서 벗어나는 것을 '해탈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권하는 해탈의 방법은 정신적인 집중을 통 해서 세속적 경험으로부터 관심을 점차 거두어 들이 그것을 환영이 아닌 영원한 의식을 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타요가

사들일 수 있는 신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니 속제적인 측면을 중시한다. (130~13 이다. 하다 요기들은 예식의 자이를 두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것을 똑같은 생명의 한이라고 받아들인다. 모든 요가 수련에 사용해 신제이완 기술은 하타요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있다. 하다 요가는 어 숲에 신기한 연속동들을 단계로 삼아 호흡을 조 시작한다. 하다 요가의 행위 사업의 사용과 정신 조성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그림에 일산시 소로 전두교의 정봉주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지인 라이라고 말하면서 다양한 요가요 제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사사 지했다.

히타 요기는 처음에 10세기의 고승이면서 나타 사두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구루의 한 사람인 고라크나트가 설립한 칸파타 요가파에 의해서 전파 되었다. 탄파타의 나타 싯다들은 연금술을 펼치는 것처럼 신체를 '신 비스러운 몸'으로 변형시켜 업과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초능력까지 얻게 되었다고 한다. 호흡조절과 같은 신체적인 운동은 가장 밑바닥 에 있는 생명 에너지를 자극해 차크라(95쪽 참 조)를 통해 수슘나 나디로 흐르도록 한다. 수습 나 나디는 골반 밑바닥으로부터 머리의 가장 꼭 대기에 있는 '순수한 의식', 시바의 자리이며 천 연화天蓮花 자리라고도 하는 곳까지 이르는 핵심통로이다.

하타 요가는 정화과정 자체에 상당한 비중을 둔다. 하타 요가 의 첫번째 목적은 우선 몸속에 있는 질병을 없애고, 그 다음에 는 수련을 진전하는 데 방해하는 부정한 요소를 없애는 것이다. 그러면 정수리의 차크라를 채우 고 있는 소마 혹은 암리타(불사 의 영약)로부터 새롭고 '완전한 육신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불로 장생의 묘약은 밑바닥에서 올라 와 수슘나 나디를 흘러 가장 꼭 대기 정수리의 차크라에서 방울 우는데,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증발해 없어진다.

이 생명의 묘약이 다 없어져 버리기 전에 그 올라오는 흐름을 뒤집는다면 수련자는 평범한 육 신을 태워 없애고, 참으로 귀한 생명수로 불멸의 육신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요기는 육신 을 '완전한 신과 같은 존재로 변형시킴으로써 저 절로 신과 같은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상태 에 도달하면 수련자는 창조의 다양한 형태 속에 서 돌아다닐 수도 있고 마음대로 그 모습을 바꾸 는 마야의 힘을 능동적으로 사용하면서 창조적 유희를 즐겁게 즐길 수 있다.

하타 요기들은 그러한 구도방법이 인간이 불 멸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 다. 이들은 한 개인이 해탈을 얻는 것은 '완전 한 육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신 성한 힌두교 경전들뿐 아니라 라자 요가의 정신 수련 중심의 가르침까지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고 본다.

 

요가의 초능력

힌두교와 불교, 자이나교 신화에는 고행 끝에 아 주 기이한 초능력을 얻은 거룩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인도에서 고행승들은 존경을 받지만, 반면에 주술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거나 모습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거나 저주를 내린다는 믿 음 때문에 그만큼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싯디는 요가 기술의 '성취를 말하는데, 싯다 라는 숙련자들은 자신의 신체와 마음뿐 아니라 자연의 힘까지도 정복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싯 디는 요가의 부수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가를 수련하면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누구에게 나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다고 한다. 하지만 요기 들은 이러한 초능력을 얻고자 일부러 애써서는 안 되며, 고행수린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스스로 수련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표 시로만 받아들여야 한다. 단순한 초능력에 집착 하지 말고 세상이 환영이라는 사실을 깨달음으 로써 '최고의 성취인 해탈로 가는 과정에 사용 할 수 있는 진정한 초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요가에 관한 문헌으로 잘 알려진 <요가 비자)에 는 "자기의 감각을 정복해 통제할 수 있는 자는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여러 모습을 취하고 또 그 모습을 사라지게도 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요가 우파니샤드)는 요가의 초능력을 칼피타 (인위적인) 싯디와 아칼피타(인위적이지 않은) 싯디의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 '인위적 인 샷다는 일시적인 것으로 약초, 의식, 주술 만트 라 혹은 최음제 등을 이용하며 상대적으로 얻기 쉬운 것이다. 인위적이지 않은 싯디는 '자기의 지'를 통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진 정한 수련자의 표시로 인식된다. 수많은 인도전 설들은 최고 단계에 도달한 요기는 그 어떤 일도 못해 내는 것이 없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전 설에 보면 이들이 미래를 예언하고, 산을 크게도 했다가 먼지처럼 줄어들게도 하며, 자기 몸에서 불을 만들어내고, 어떤 모습으로라도 변신을 할 수 있다. 심지어는 초능력으로 우주 전체를 사라 지게 하는 요기들도 등장한다. 한편 인도의 대중종교는 때때로 종교지도자 들의 정신적인 탐구의 깊이보다도 초능력에 그 교세가 좌우되는 경우가 있다. 요가 문헌들은 요 가를 수행하면서 생긴 싯다를 다른 사람에게 보 이고 싶은 '유혹'에 빠지면 구도의 길을 다른 방 탕으로 틀어버리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수없 이 경고하고 있다. 환영을 초월해야 하듯이 환영 을 만드는 능력도 초월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 가우파니샤드는 관중들에게 초능력을 보이는 것은 수련의 심적 평정상태를 깨고 자만심을 갖 게해 결국 카르마의 덧에 밀려드는 결과를 낳을 뿐이기 때문에 수련자는 싯다를 보이지 말고 숨 거두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부처는 초능력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느 날 부처는 강가 를 거닐다가 고행을 하고 있는 수도승을 만났다. 고백승은 부처에게 10년 동안 한쪽 다리로만 서 고행을 한 끝에 물 위를 실을 수 있는 능력을는 얻게 되었으며, 이제는 강을 길어서 건널 수 있 말했다. 부지는 이에 대해 시큰둥해하면서다고 오히려 그에게 "여기 강득에 강을 건너게 해주는 메가 있는데 당신은 왜 40년씩이나 굳이 물 위를 걸어 강을 건너려고 시간을 낭비했느냐고 묻는 자이나교의 설립자인 마타비라(42-43. 조도 마찬가지였지만 부지 역시 요가를 통해 초 능력을 연마하는 것을 반대했던 것이다. 이것은 명상을 하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장에 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부처가 초능력을 키우는 요가를 무조건 반대한 것은 아니다. 그것이 자비 의 마음을 키우고 인간의 고통을 완화하는 데도 움이 된다면 허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인도 리처드 워터스톤 치음/ 이재숙 옮김 종교와 의례, 신과 우주, 명상과 요가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