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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문학 작품의 이해편]중국_3#45

중국문학의 향기_3

Early Chinese poetry emerged from collective labor, often integrated with music and dance. Shijing, China's earliest poetry anthology, reflects the north's folk songs and political observations. It contains 305 poems, categorized into Feng, Ya, and Song. The work influenced later poetic forms like the Yuefu, which started as folk songs but evolved into literary compositions. The Yuefu's lyrical style shaped Chinese poetry, contributing to the development of five- and seven-character verse structures in later periods.

시가

感時花濺淚 恨別鳥驚心 烽火連三月 家書抵萬金

 

원시시가

인류 최초의 시가는 노동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되었으며 가무(歌舞)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 원시 시가는 대부분 자구가 간단하고 내용이 질박하며 집단성이 강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또한 같은 글자나 비슷한 운으로 압운하기도 하고 운이 없는 것도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기록 중 원시시가에 비교적 가까운 작품은 「탄가(彈歌)(『吳越春秋)와 사사」 등이 있으며, 그 밖에 복희()의 「망고가(), 신농()의 「풍년가(豊年歌), ()의 「격양가(擊壤歌), 순의 경운가(卿雲歌)」등이 있지만, 대부분 후대 사람들의 위작으로 추정된다.

 

「사냥 노래」

대나무 자르고, 대나무 잇고, [彈弓 을 만들어]

흙덩이 날려, 짐승 쫓는다.

斷竹,續竹. 飛土,逐肉.

[『古詩源』卷1]

 

「태평 노래()

해 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쉬고, 우물 파서 마시고, 밭 갈아 먹으니, 임금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 있으랴!

日出而作日入而息. 鑿井而,耕田而食. 帝力於我何有哉!

[『古詩源』卷1]

 

『시경』

중국 시가의 진정한 출발은 「시경(詩經)』에서 시작되었다. 『시경』은 대략 주()나라 초기(BC1122)에서 춘추시대 중기 (BC570)까지 500여년간에 수집·정리·창작된 중국 최초의 시가 총집으로, 대부분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므로 북방문학이라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채시관()이 민간가요를 수집하여 태사(太師)에게 바치면, 태사가 그것을 음악화하여 군주에게 들려주었고, 군주는 이것으로 정치의 득실을 살폈는데, 이러한 가요가 바로 『시경』의 원류가 되었다.

『시경』은 오경 가운데 하나로서 대대로 숭고한 지위를 누려 왔는데, 그것은 『시경』이 가장 고전적인 문학 작품이며 일찍이 공자가 친히 시를 산정(刪定)했다고 하여 유가의 중요한 경전이 되었기 때문이다.

『시경』에는 총 311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그 중에서 가사는 없고 제목만 있는 6편의 '생시(笙詩)'를 제외하면 총 305편이다. 『시경』의 체재는 「풍()·「아()「송()」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풍」은 총 160편이 실려 있고, 주남(周南소남(召南((((((((((((() 15국의 민간가요를 수록한 것으로, 악기 반주가 필요 없는 청창()이다. 「아」는 총 105편이 실려 있고 다시 「대아(大雅)」와 「소아(小雅)」로 나뉘는데, 「대아(大雅)」는 조정의 조회 때 사용되었고 「소아(小雅)」는 일반 연회 때 사용되었다. 이것은 악기로 반주하는 가창()이다. 「송」은 총 40편이 실려 있고 다시 「상송(商頌)「주송(周頌)·「노송(魯頌)」으로 나뉘며, 종묘의 제례악(祭禮樂)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음악과 동작이 곁들여진 가무(歌舞)이다. 또한 『시경』의 표현법에는 부()()() 3가지가 있는데, ''는 사실을 그대로 묘사하는 수법이고, ''는 한 사물을 가지고 다른 사물에 비유하는 수법이며, ''은 본의()를 펼치기 전에 다른 사물을 빌어 감흥을 일으키게 하는 수법이다. 이상의 ''·''·''·''·''·''을 『시경』의 육의설() 이라고 한다.

『시경』의 내용은 크게 서정시·서사시·사회시·풍속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서정시로는 열렬한 사랑을 묘사한 「정녀() [~~], 부모를 애도하는 「요아(蓼莪)[「小雅], 몹쓸 애인을 원망하는 「건상(褰裳)[「鄭風] 등을 들 수 있다. 서사시로는 후직(后稷)의 탄생을 묘사한 「생민(生民)[「大雅], 무왕(武王)의 벌주(伐伐)를 묘사한 「대명(大明)[「大雅] 등을 들 수 있다. 사회시로는 망국의 슬픔을 묘사한 「서리()[「王], 백성의 고통을 묘 사한 단()[「魏], 귀족들의 가렴주구를 풍자한 「석서(碩鼠「~], 농사짓는 것을 묘사한 「칠월(七月)」「~],등을 들 수 있다. 풍속시로는 결혼을 축하하는 「관저(關雎)·「도요(桃夭)[「周南」], 자손 많음을 축하하는 「종사)·「인지지(麟之趾)[「周南」] 등을 들 수 있다.

 

「징경이의 노래[關雎]

관관- 암수 징경이, 하수 모래톱에서 정답고요.

덕성 어린 고운 아가씨, 님의 좋은 짝이지요.

들쭉날쭉 마름잎, 물길 따라 찾고요.

덕성 어린 고운 아가씨, 자나깨나 찾지요.

찾아도 만나지 못해, 자나깨나 가슴에 새기지요.

오래도록 오래도록, 이리저리 뒤척이네요.

들쭉날쭉 마름잎, 여기저기서 캐고요.

덕성 어린 고운 아가씨, 금슬로 벗하지요.

들쭉날쭉 마름잎, 여기저기서 고르고요.

덕성 어린 고운 아가씨, 종과 북으로 즐기지요.

 

關關雎鳩 在河之洲 窈窕淑女 君子好逑 參差荇菜 左右流之 窈窕淑女 寤寐求之 求之不得 寤寐思服 悠哉悠哉 輾轉反側 參差荇菜 左右采之 窈窕淑女 琴瑟友之 參差荇菜 左右芼之 窈窕淑女 鍾鼓樂之 [國風.周南]

 

「치마 걷고」

그대가 날 생각해 준다면야, 치마 걷고 진수라도 건너겠지만,

그대가 날 생각 안 해주니, 어찌 다른 사내 없으랴? 별 미친 녀석 다 보겠네!

그대가 날 생각해 준다면야, 치마 걷고 유수라도 건너겠지만,

그대가 날 생각 안 해주니, 어찌 다른 사내 없으랴? 별 미친 녀석 다 보겠네!

子惠思我 褰裳涉溱 子不我思 豈無他人 狂童之狂也且 子惠思我 褰裳涉 子不我思 豈無他士 狂童之狂也且 [「國風.風」]

 

「큰 쥐[]

큰 쥐야, 큰 쥐야, 우리 기장 그만 먹어라. 삼 년 동안 너를 모셨는데, 그래 날 좀 못 봐주겠니?

가련다, 너를 버리고, 저 즐거운 땅으로 가버리련다. 즐거운 땅, 즐거운 땅, 그곳에선 내 설 곳 찾겠지.

큰 쥐야, 큰 쥐야, 우리 보리 그만 먹어라. 삼 년 동안 너를 모셨는데, 그래 나에게 선심 좀 못 써주겠니?

가련다, 너를 버리고, 저 즐거운 나라로 가버리련다.

즐거운 나라, 즐거운 나라, 그곳에선 대접받고 살겠지. 큰 쥐야, 큰 쥐야, 우리 나락 그만 먹어라.

삼 년 동안 너를 모셨는데, 그래 날 좀 못 달래주겠니? 가련다, 너를 버리고, 저 즐거운 들로 가버리련다.

즐거운 들, 즐거운 들, 그곳에선 아무도 탄식할 사람 없겠지.

 

碩鼠碩鼠 無食我黍 三歲貫女 莫我肯顧 逝去女 適彼樂土 樂土樂土 得我所 碩鼠碩鼠 無食我 三歲貫女 莫我肯德 逝將去女 適彼樂國 樂國樂國 得我直 碩鼠碩鼠 無食我苗 三歲貫女 莫我肯 逝去女 適彼樂郊 樂樂郊 誰之永號 [「國風魏」]

 

『시경』은 북방의 민가로서 내용이 인사와 실제에 치중되어 있으며 현실성이 강한 점이 특징이다. 형식상으로는 묘사가 소박하고 4자 위주의 단구로서 쌍성(雙聲첩자(疊字첩구(疊句첩운(疊韻)이 많다는 점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시경』은 중국 최초의 시가 총집으로 후대 각종 운문의 시조가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5·7언시와 악부(樂府)등 주로 민간가요에 영향을 미쳤다.

악부

'악부()'는 본래 한 무제 원삭(元朔) 3(BC126)에 설치한 음악을 관장하던 관청 이름이었다. 조정에서는 '악부령()'을 두 어 전문적으로 민간가요를 채집·정리하고 음악에 맞춰 넣게 했는데, 이러한 과정을 거친 민가를 '악부시', 또는 줄여서 '악부'라고 불렀다. 나중에는 채집한 민가를 모방하여 지은 문인의 작품까지도 모두 '악부'라고 불렀다. 악부시의 분류는 매우 복잡한데 역대로 가장 타당하게 분류했다고 인정받고 있는 송대 곽무천(郭茂情)의 『악부시집(樂府詩集)』 에서는 전체 악부시를 총 12가지로 분류했다. 즉 교묘가사(~~), 연사가사(燕射歌辭: 宴會樂), 고취곡사(鼓吹曲辭:軍樂), 횡취곡사(橫吹曲辭軍樂), 상화가사(相和歌辭: 民樂), 청상곡사(淸商曲辭: 民樂), 무곡가사(舞曲歌辭: 舞樂), 금곡사가(琴曲歌辭: 琴樂), 잡곡가사(雜曲歌辭: 民樂), 근대곡사(近代曲辭:隋唐代의 雞 曲歌辭), 잡가요사(雜歌謠辭: 俗謠), 신악부사(新樂府辭:唐代의 新 樂府詩)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 문학성과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은 대부분 상화가사·잡곡가사·청상곡사·횡취곡사에 들어 있으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악부민가는 바로 이 4부류에 대부분 속해 있다. 악부민가의 예술적인 특징으로는 참신하고 다양한 형식, 정채로운 서사수법, 질박하고 자연스러운 언어풍격 등을 들 수 있다. 『시경』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악부민가는 가깝게는 5언시의 발생과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멀리는 당대 백거이(白居 易) '신악부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한대 악부

한대 악부민가의 주요 작품에는 「전성남(戰城南)·「십오종군정(~~)·「부병행(婦病行)·「고아행(孤兒行)·「상산채미무(上山蕪)·「맥상상(陌上桑)·「공작동남비(孔雀東南飛)」 등이 있다. 「공작동남비」는 본래 제목이 「고시, 초중경의 처를 위하여 지 [古詩爲焦仲卿妻이며, 353 1765자로 된 중국 고대의 가장 장편이자 가장 뛰어난 서사시로서, 한대 말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내용은 봉건적인 가족제도와 전통적인 윤리도덕 때문에 희생된 초중경(焦仲卿)과 유란지(劉蘭)라는 젊은 부부의 슬픈 사랑 이야기이다.

「공작새는 동남쪽으로 날아가고」

한나라 말 건안 연간에 여강부의 소관() 초중경의 처유씨가 초중경의 모친에게 내침을 당했다. 유씨는 개가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맹세했지만 그녀의 집에서 개가하라고 강요하자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초중경은 그 소문을 듣고 역시 정원의 나무에 스스로 목을 매었다. 당시 사람들이 이를 슬퍼하여 다음과 같이 시를 지었다. 공작새는 동남쪽으로 날아가며, 5리마다 한 번씩 배회하네. “13살엔 비단 짤 수 있었고, 14살엔 옷 짓는 걸 배웠어요. 15살엔 공후를 탔고, 16살엔 시·서를 읊었지요. 17살에 당신의 아내 되었지만, 마음속은 늘 괴롭고 슬퍼요. 당신은 부리가 되어, 절조 지키며 딴 마음 먹지 않지만, 천첩은 빈방에 남아, 서로 만나는 날이 늘 드물어요. 닭 울 때 베틀에 올라, 밤늦도록 쉬지도 못한 채, 사흘에 다섯 필씩 끊어내도, 어르신은 일부러 늦는다고 탓하세요. 베 짜기가 늦는 게 아니라, 당신 집의 며느리 노릇하기가 어렵네요. 천첩을 부릴 만하지 않다면, 공연히 놔두어봤자 쓸모도 없으니, 부모님께 얼른 말씀 드려서, 일찌감치 돌려보내주세요." 부리는 그 말 듣고, 안채로 올라가 어머님께 아뢰었네. "소자는 박복한 팔자인데도, 다행히 이 아내를 얻었습니다. 머리 얹고 부부가 된 것은, 황천까지 함께 갈 생각이었습니다. 함께 부모님 모신 지 두세 해, 이제 막 시작이고 오래되지도 않았습니다. 아내의 행실에 잘못도 없는데, 어찌하여 야박하게 하십니까?" 어머님은 부리에게 이르셨네. "어찌하여 그다지도 용렬하냐? 네 처는 예절도 없고, 거동도 제멋대로다. 내가 분을 품은 지 오래되었는데, 네가 어찌 마음대로 하려 드느냐? 동쪽 집에 참한 색시가 있는데, 진라부라고 한단다. 어여쁜 몸매가 그만이니, 어미가 널 위해 얻어주마. 그러니 속히 네 처를 쫓아내고, 다시는 들일 생각 말아라." 부리는 한참을 꿇어앉아 말씀드렸네. “삼가 엎드려 어머님께 아룁니다. 지금 만약 이 처를 쫓아내신다면, 늙어 죽도록 장가들지 않겠습니다." 어머니는 이 말 듣고, 마루를 치며 대노하셨네. "이놈이 두려운 게 없구나! 어찌 감히 계집의 역성을 드는 거냐? 나는 이미 은의를 잃었으니,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 ......(중략)...... 부리의 말은 앞장서고, 신부의 수레는 뒤따랐네. 삐걱삐걱 또 느릿느릿, 함께 큰길 어귀에 다다랐네. 말에서 내려 수레 안으로 들어가, 머리 숙이고 귀에다 말했네. "맹세코 당신과 헤어지지 않으리니, 잠시만 친정으로 돌아가 있으시오. 나는 지금 관청으로 가야 하니, 오래지 않아 틀림없이 돌아오겠소. 하늘에 맹세코 저버리지 않겠소." 신부가 부리에게 말했네. "당신의 절실한 마음이 사무쳐요. 당신이 저를 거두어 주신다니, 머지않아 당신이 오시길 기다리겠어요. 당신은 반석이 되시고, 소첩은 갈대가 되겠어요. 갈대는 실처럼 질기고, 반석은 꿈쩍도 않지요. 저의 아버님과 오라버님은, 성격이 천둥처럼 급하시니, 아마도 제 뜻대로 두시지 않고, 오히려 제 마음을 태울 거예요." 손들어 오래오래 흔드니, 두 마음 모두 아련했네. ..... (중략)...... 부리는 집으로 돌아가, 안채로 올라가 어머님께 절했네. “오늘 큰바람이 차갑게 부니, 찬바람에 나무가 꺾이고, 서릿발이 마 당의 난초에 맺혔습니다. 소자는 오늘 저 어두운 곳으로 갑니다. 어머님을 뒤에 홀로 남겨 두고. 일부러 못난 일을 하는 것이니, 더 이상 귀신일랑 원망 마십시오. 남산의 바위처럼 장수하시고, 옥체만강하십시오." 어머님은 이 말 듣고, 눈물 흘리며 대답했네. "너는 대갓집 자식으로, 관청에서 벼슬하는 몸이다. 제발 계집 때문에 죽지 마라. 귀천이 다른데 무엇이 박정하단 말이냐? 동쪽 집에 참한 색시 있는데, 아리따움이 온 성에 소문났단다. 어미가 널 위해 얻어줄 테니, 잠시만 기다려라." 부리는 두 번 절하고 돌아와, 빈방에서 길게 탄식하며, 계획을 세운 뒤 일어났네. 고개 돌려 방안을 둘러보니, 점점 서글픔이 밀려들었네. 그날 소와 말이 울 때, 신부는 초례청으로 들어갔네. 어둑 어둑 황혼 진 뒤, 고요하게 인적 끊길 때, “내 목숨 오늘 끊어지리니, 넋은 떠나고 주검만 남으리." 치마 걷고 명주 신발 벗어 놓고, 몸 들어 맑은 연못에 뛰어들었네. 부리는 그 일 듣고, 영원히 이별한 것을 알았네. 나무 밑에서 배회하다가, 동남쪽 가지에 스스로 목을 매었네. 두 집안에서 합장하자고 요구하여, 화산 곁에 합장했네. 동서로는 소나무·측백나무 심고, 좌우로는 오동나무 심었네. 가지와 가지가 서로 덮고, 잎과 잎이 서로 얽혔네. 그 안의 새 한쌍, 원앙새라 불렸네. 고개 들어 서로 바라보며 우는데, 밤마다 오경까지 이어졌네. 행인은 걸음 멈추고 듣고, 과부는 일어나 방황했네. 거듭 말하노니 후세 사람들이여, 거울삼아 삼가 잊지 마시라.

漢末建安中,廬江府小吏焦仲卿妻劉氏,仲卿母所遣,自誓不嫁,其家逼 之,乃投水而死,仲卿聞之,亦自溢於庭樹.時人傷之,爲詩云爾: 孔雀東南飛,五里一裴徊, “十三能纖素,十四學裁衣 十五彈箜篌,十六誦詩書, 十七爲君婦,心中常苦悲. 既為府吏,守節情不移, 賤妾留空房,相見常日稀, 鷄鳴入機織,夜夜不得息, 三日斷五疋,大人故嫌遲. 非爲織作遲,君家婦難爲. 妾不堪驅使,徒留無所施, 便可白公姥,及時相遣歸.” 府吏得聞之,堂上阿母, “兒已薄祿相,幸復得此婦. 結髮同枕席,黃泉共爲友. 共事三二年,始爾未, 女行無偏斜,何意致不?” 阿母謂府吏“何乃太區區? 此婦無禮節,擧動自由 吾意久懷念,汝得自由? 東家有賢女,自名秦羅敷, 可憐體無比,阿母汝求。 便可速遣之,遣去莫府吏長跪告,“伏惟阿母 今若此婦,終老不復取阿母得聞之,便大怒, “小子無所畏,何敢助婦語? 吾已失恩義,會不相從許.” ......(+)... 府吏馬在前,新婦車在後 隱隱何甸甸,俱會大道口. 下馬入車中,低頭共耳語, “誓不相隔卿,且還家去. 吾今且赴府,不久當還歸,誓天不相負食品自高張雙表 新婦謂府吏“感君區區懷, 若見錄,不久望君來 君當作盤石,當作蒲葦. 蒲葦如絲,盤石無轉移, 我有親父兄,性行暴如雷, 恐不任我意,逆以煎我懷,” 擧手長勞勞,二情同依依, ............(中略)...... 府吏還家去,上堂拜阿母, “今日大風寒,寒風摧樹木,嚴霜結庭蘭 兒今日冥冥,令母在後單. 故作不良計,勿復怨鬼神, 命如南山石,四體康且直阿母得聞之,零淚應聲落, “汝是大家子,仕宦於臺閣, 婦死,貴賤情何薄? 東家有賢女,窈窕城郭 阿母汝求,便復在旦夕。府吏再拜還,長歎空房中,作計乃爾立 轉頭向戶裹,漸見愁煎迫. 其日牛馬嘶,新婦入. 奄奄昏後,寂寂人定初, 我命今日,魂去尸長留. 攬裙脫絲履,擧身赴. 府吏聞此事,心知長別離. 徘徊顧樹下,自掛東南 兩家求合葬,合葬華山. 東西植松柏,左右種梧桐 枝枝相覆蓋,葉葉相交通 中有雙飛鳥,自名鴛鴦. 仰頭相向鳴,夜夜達五更 行人駐足聽,寡婦起彷徨, 多謝後世人,戒之勿忘 [『玉臺新詠』]

위진남북조 악부

위진남북조 시기에는 악부민가에 많은 발전이 있었다. ()에서 서진(西晉)에 이르기까지 비록 악부의 기구가 있긴 했지만 당시의 사회적인 혼란으로 인하여 민가를 채록하지 못했다. 따라 서 당시의 악부는 대부분 문인의 모방작이었으며 진정한 민가는 매우 드물었다. 그 후 동진(東晉)에서 남북조(南北朝)에 이르러서 야 비로소 많은 민간악부가 출현하여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조탁을 일삼지 않는 일종의 민간문학을 형성했다. 일반인들도 그러한 형식을 빌어서 시가를 창작했는데 비록 입악()할 수 는 없었지만 모두 '악부'라고 불렀다. 남조 악부민가의 내용은 대부분 남녀간의 연정을 묘사한 것으로 서정성이 강하다. 그 특징은 편폭이 짧고 대부분 5 4구이고, 언어가 청신하고 자연스러우며, 성음의 조화와 이중의 뜻을 지닌 쌍관어()를 즐겨 사용했다. 또한 기세가 온유하고 정감이 섬세하며 격조가 청신하고 음률이 구성진 풍격을 지니고 있다. 주된 곡류()는 청상곡사(淸商曲辭)이며, 「자야가(夜歌)·「삼주가 (三歌)」등 400여 수가 현존한다.

「자야의 노래 [夜歌]

처음 님과 사귀고자 할 땐, 두 마음 하나이길 바랐지요.

실 다듬어 짜다 둔 베틀에 넣지만, 한 필도 못 짤 줄 어찌 알았겠어요?

始欲識即時 兩心望如一 理絲入殘機 何悟不成

북조 악부민가의 내용은 서사성이 강하며 무용(武勇)을 노래 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전쟁의 참상, 종군()의 고달픔, 목축 생활 등을 묘사하거나 연정을 노래한 것도 있다. 그 특징은 체제 상 5 4구 외에 7 4구의 칠절체(七絶體)의 발전도 보이며, 언어상 표현이 솔직 담백하다. 또한 기세가 호방하고 감정이 격앙 되고 격조가 질박하고 음률이 소박한 풍격을 지니고 있다. 주된 곡류는 고각횡취곡(鼓角橫吹曲)과 잡곡가사(雜曲歌辭)이며, 「칙륵가」·「목란시(木蘭詩)」등 70여 수가 현존한다.

「칙의 노래[勒歌]

칙륵의 냇가, 음산의 아래. 하늘은 둥근 천막 같이, 사방 들판을 뒤덮고 있네.

하늘은 푸르고 푸르고, 들판은 아득하고 아득한데, 바람 불어 풀 누우니 소와 양이 보이네.

勒川 陰山下 天似穹廬 天蒼蒼 野花 風吹草低見牛羊

위진남북조 악부민가는 체제상 5·7언 절구체의 출현으로 짧은 서정시의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으며, 표현수법상 대구법과 쌍관어의 사용 및 정련된 구어의 운용 등은 후대 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연정을 노래한 남조의 '염곡()'은 양·진대 궁체시의 형성과 발전에 영향을 미쳤으며, 당대 이후 남녀 연정 시의 의경(意境)과 언어 방면에도 영향을 미쳤다.

 

중국문학의 향기: 중국문학 장르별 이해

김장환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