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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문학 작품의 이해편]중국_4#47

중국문학의 향기_4

During the Tang Dynasty, two main forms of poetry coexisted: Yuefu (Music Bureau Poetry) and regulated poetry. Yuefu had two variations: imitation of ancient Yuefu and new Yuefu. Poets like Li Bai used the former, while poets like Du Fu and Bai Juyi contributed to the latter. The tradition of Yuefu gradually declined and transformed into a form for the upper class. By the Ming and Qing dynasties, folk songs, expressing everyday emotions, became prominent in literature. These poems emphasized simplicity and reflected popular sentiment, contrasting with earlier elite poetry.

당대 악부

당대에는 근체시 외에 악부시의 형식도 유행했는데, 크게 의악부(擬樂府)와 신악부(樂府) 두 종류가 쓰였다. 의악부는 옛 악부의 제목을 빌어 자신의 감정을 펴내는 것으로 자수()와 구수(句數)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한대 악부 가운데 고취요가곡의 형식을 빌려 쓴 이백(李白: 701~762)의 「장진주」등이 여기에 속한다.

「술잔을 드리며」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황하 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바다로 세차게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함을!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고대광실 맑은 거울 속의 슬픈 백발이, 아침엔 검푸른 비단실 같더니 저녁엔 눈발 날림을!

인생이란 뜻대로 될 때 모름지기 즐겨야 하니, 황금술단지를 달 아래 그냥 두지 마시게.

하늘이 내게 주신 재주는 반드시 쓰임이 있을 것이요, 천금도 다 써버리면 다시 돌아온다네.

양 삶고 소 잡아 잠시 즐거움 누리나니, 모름지기 한 번에 삼백 잔은 마셔야지. 잠 선생, 단구 선생,

드리는 술잔 그대는 멈추지 마시게. 그댈 위해 노래 한 곡 부르리니, 그댄 날 위해 귀 좀 기울여주시게.

멋진 풍악도 맛난 음식도 귀한 게 아니니, 다만 오래도록 취하여 깨지 말기만 바라네.

자고로 성현님 네는 모두 쓸쓸했나니, 오직 마시는 자만 그 이름 남겼다네.

진왕은 옛날 평락관에서 잔치 벌릴 때, 한 말에 만 냥짜리 술을 마음껏 즐겼다네.

주인장은 어찌하여 돈 적다하시는가? 곧장 술 받아와 그대와 대작해야겠네. 오화의 말, 천금의 갖옷.

아이 불러 가져다가 좋은 술로 바꿔 와서, 그대와 함께 만고의 시름 풀어보리라.

君不見,

河之水天上,奔流到海不回。君不見,

高堂明悲白髮,朝如暮成雪 人生得意須盡歡,莫使金樽空對月. 天生我材必有用,千金散盡還復來. 烹羊宰牛且,會須一三百杯. 岑夫子·丹丘生,進酒君莫停. 與君歌一曲,請君我傾耳聽. 鐘鼓饌玉不足貴,但願長醉不用醒 古來聖賢皆寂寞,惟有者留其名, 陳王昔時宴樂,斗酒十千恣歡謔 主人何言少錢,須沽取對君的 五花馬.千金裘. 呼兒將出換美酒,與爾同銷萬古愁

신악부는 가사는 악부와 비슷하지만 '입악()의 과정을 거치 지 않기 때문에 '신악부'라고 하며, 옛 제목을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두보(杜甫: 712~770)의 「여인행(麗人行) 과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신악부(新樂府) 50수 등이 여기에 속한다.

「숯쟁이 노인炭翁]」白居易

숯쟁이 노인, 남산 속에서 나무 베어 숯을 굽네. 재 뒤집어쓴 얼굴은 온통 그을음 색, 양 귀밑머리는 희끗희끗하고 열 손가락은 새까맣네. 숯 팔아 번 돈으로 무얼 하나? 몸 위의 옷과 입 속의 밥을 사네. 가련하게도 몸에는 홑옷 달랑 걸쳤지만, 숯 값 싸진다고 걱정하여 날씨 춥기만 바라네. 밤사이 성밖에 눈이 한 자나 쌓이니, 새벽에 숯 수레 몰고 빙판을 구르네.소는 지치고 사람은 배고픈데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어, 저자 남문 밖 진흙탕 속에서 쉬네. 펄렁거리며 말 타고 달려오는 저 두 사람은 누굴까? 노란 옷 입은 관리와 흰 옷 입은 아이라네. 손에 문서 들고 어명이라 소리치며, 수레를 돌리고 소를 채찍질하여 북쪽으로 끌고 가네. 수레 가득 실은 숯 천근이 넘지만, 궁중 관리가 끌고 가니 아깝지만 할 수 없네. 붉은 생명주 반 필과 능라 한 장, 소머리에 매어주며 숯 값으로 치라네.

賣炭翁,伐薪燒炭南山中. 滿面塵灰煙火色,兩鬢蒼蒼十指黑 賣炭得錢何所營,身上衣裳中食 可憐身上衣正單,心憂賤願天寒, 夜來城外一尺雪,曉駕車輾氷轍, 牛困人飢日己高,市南門外泥中敭 融翺兩騎來是誰,黃衣使者白衫兒, 手把文書口稱勅,迴車牛牽向北, 一車重千餘斤,宮使驅將惜不得 半疋紅一丈,繫向牛頭充 [「樂」第32]

그러나 당대의 악부시는 음악을 전제로 한 민가의 가사라는 '악부'의 본래 성격에서 이미 벗어나 사대부 계층의 시가로 바뀌었기 때문에 진정한 악부시의 전통은 그 명맥이 사실상 끊어졌다 고 할 수 있다. 악부시의 전통은 당대 이후 민가로 이어졌는데, ··원대를 거쳐 명대에 이르러 많은 민가들이 정리·편찬되었다.

명대 민가

명대 민간문학 가운데서 두드러진 발전을 보인 것은 민가였다. 명대의 산곡() 중에도 백화로 씌어진 것이 있긴했지만 수량이 많지 않았고, 산곡이 전아함을 추구함으로써 민간의 감정을 담아낼 수 없게 되어 민중과 멀어지자, 잡곡()과 소곡(小曲)을 위주로 한 민가가 유행하게 되었다. () 지방을 중심으로 발달 한 민가의 풍격은 전아한 산곡과는 달리 소박하고 통속적이며, 내용은 남녀의 애정을 묘사한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형식은 7언이 기본이지만 자구가 자유로운 소곡을 중심으로 하며, 언어는 생동감 넘치는 백화를 사용하여 표현력이 강하다. 명대 전기의 민가는 대부분 민간의 창기(娼妓)들에 의하여 불린 것으로 질박하고 음악성이 비교적 강조되었지만, 후기의 민가 는 민간의 소곡이 널리 유행함에 따라 점차 문인들이 참여하게 되어 본래의 면모를 잃게 되었다. 주요 민가집에는 「산가()」외에 『괘지아(掛枝兒)·『벽파 옥()』등이 있다. 『산가』 (10)는 풍몽룡(馮夢龍:1574~1645)이 엮였으며, 명대의 민가를 가장 많이 수록한 책으로 총 345수가 실려 있다. 가장 짧은 것은 7 4구이며 가장 긴 것은 1400여 자에 달하는 것도 있다.

「산가()

님에게 마음이 있고, 저에게 마음이 있다면, 사람이 많고 집이 깊숙한들 무엇이 두렵겠어요?

사람이 많다한들 천 개의 눈이 있으려고요? 집이 깊숙한들 만 겹의 문이 있으려고요?

郞有心,姐有心,羅伯人多屋又深? [馮夢龍『山歌』] 人多那有千隻眼?屋深那有萬重門?

「오가」

달 뜰 때 만나자고 님과 약속했는데, 기다리다 보니 달이 이미 서산으로 넘어가네요.

모를 괘라, 나 있는 곳의 산이 낮아서 달이 일찍 뜨는 건지, 아니면 님 계신 곳의 산이 높아서 달이 더디 뜨는 건지.

約到月上時,看看等到月蹉西.生 不知奴處山低月出早,還是處山高月出? [田汝成『西湖遊覽志餘]

청대 민가

청대 민가의 종류는 주로 도시의 기루(妓樓)나 찻집 등에서 유행한 시민계층의 노래로서 그 수량이 가장 많은 시조소곡(時調小曲:俗曲), 동남 지방의 민가로서 농촌의 순박한 민중 노래인 월가(), 서남 지방의 민가인 사천산가(四川山歌) 등이 있다. 이러 한 민가의 체재는 짧은 것은 산곡() 중의 소령()과 비슷하고, 긴 것은 투곡(套曲)과 비슷하며, 대화를 삽입한 것은 희곡과 비슷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주요 민가집에는 「예상속보(霓裳續 譜)·『월풍()·『심양시고(瀋陽詩稿)』 등이 있는데, 그 내용 은 남녀의 애정을 노래한 것이 대부분이며 사회현실을 반영한 것도 있다.

「더부살이 풀[寄生草]

연애편지를 쓰고자 하나, 나는 글자를 몰라요. 번거롭게 남에게,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번거롭게 남에게 부탁할 수 없는 노릇이지요. 하는 수 없이 동그라미 몇 개 그려 표기하지요.

이 편지는 오직 님만이 이 뜻을 알 거예요. 홑 동그라미는 저구요, 겹 동그라미는 당신이에요.

말로 다할 수 없는 괴로움, 한 줄기 동그라미만 자꾸 그려가네요.

欲寫情書,我可不識字, 煩個人兒,使的! 無奈何畵幾個圈兒爲表記. 此封書惟有情人知此意, 單圈是奴家,雙圈是 訴不盡的苦,一溜圈兒圈下去, [自德『霓裳]

한편 청대에는 산곡 계통의 민간가요인 도정(道情)이 널리 유 행했는데, 대부분 한적함과 안빈낙도를 묘사한 내용과 말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에 '도정'이란 명칭이 붙었다. 주요작가로는 정섭(鄭燮서대춘()이 있다. 특히 서대춘(1693~1711)은 창조성을 발휘하여 도정의 내용과 형식을 확충시켜 일종의 새로운 운문 체재를 이루었는데, 그의 도정 작품은 민요의 정취를 살려 표 현이 통속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도정집으로 『회계도정』이 있다.

서대춘 「산 나들이의 즐거움 [遊山樂]

산속에 들어서면, 바로 신선이 되네. 만 그루 나무엔 소나무 바람소리, 백 줄기 폭포수. 또한 저 산새들은 사람 불러,

승방과 대나무 정원으로 날 인도하네. 기이한 향초와 그윽한 꽃향기는 뼈에 스며들고, 기암괴석은 가파르게 하늘까지 솟았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머리 돌려보면, 경치는 그때마다 변하네. 걸어갈수록 길은 험해지지만, 말을 탈수록 정신은 건강해지네. 저 산 끝 물줄기 굽이진 곳에 이르니, 또 다른 별천치 있네. 맑은 바람 나에게 불어와 속세의 마음 씻어주니, 오늘 저녁이 어느 해인지 모르겠네. 저 멀리 목동과 나무꾼 바라보며, 맑은 샘물에 발 씻네.

그들에게 말을 걸었더니, 당·송·원·명을 까맣게 모르네. 맑은 연못에서 해질 때까지 줄곧 얘기하다가, 초가집 빌려 머물자니, 꽃 앞에서 차 따르고 한 그릇 정갈한 밥 차려주네. 머리 들어 쳐다보니, 등나무에 걸렸던 달이 천만 산봉우리 끝에 걸렸네.

到山中,便是仙. 萬樹松風,百道飛泉. 更有那野鳥呼人,引我到僧房竹院. 異草幽花香入骨,奇峰怪石峭嶙天 一步一回頭,景象時時變

越走得路崎嶇,越騙得精神健 到了那山窮水轉,又是個別有洞天, 風吹我塵心斷,不知今夕是何年, 遙望着牧豎樵夫,洗足, 與他言,竟不曉得唐宋明元 直說到日落虞淵,借宿在草閣茅軒,花前茶澆一椀晶飯 擡頭看,只見藤蘿月掛在萬峰尖,

고체시와 근체시

고체시

고체시는 엄격한 격률의 제한을 받지 않는 당대 이전의 시체 (詩體)를 말하는데, '고체' 또는 '고시'라고도 한다. 근체시와 비교하여 고체시의 형식상 주요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구법()에 제한이 없다. 고체시는 매수의 구수와 매구의 자수에 제한이 없으며,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의 필요에 따라 임의로 안배할 수 있다. 둘째, 평측이 자유롭다. 당대 이전의 고체시는 평측 방면에 있어서 어떠한 제한도 없다. 근체시가 출현한 이후에 일부 시인들이 고체시를 지으면서 평측을 따지는 경우도 있었으나 근체시와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셋째, 대우(對偶)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 고체시는 일반적으로 대우를 맞추지 않는데, 설령 대우를 맞춘다 하더라도 격률이나 평측 등을 따지지 않고 고정된 위치도 없으며 정해진 구수도 없다. 넷째, 용운(用韻)이 자유롭다. 고체시는 압운을 하더라도 운자에 평측의 제한을 받지 않아 평성자와 측성자를 모두 압운할 수 있다. 또한 매구마다 압운하거나 몇 구마다 압운할 수 도 있으며, 하나의 운을 끝까지 사용할 수도 있고 중간에서 환운(換韻)할 수도 있다.

악부와 고시를 비교해 보면, 본질상 악부는 민간문학이 일정한 과정을 거쳐 정리된 것이지만, 고시는 민간에서 자연적으로 발전했다. 형식상 악부는 장단구가 많지만, 고시는 오언이나 칠언으로 자구가 일정하다. 내용상 악부는 서사성이 강하지만, 고시는 서정성이 강하다. 리듬상 악부는 노래 부를 수 있으나, 고시는 노래 부를 수 없다. 풍격상 악부는 질박하고 강건한 반면에, 고시는 부드럽고 온아하다. 작자상 악부는 대부분 민간의 가요이지만, 고시는 대부분 문인의 작품이다. 고체시는 시구의 자수에 따라 사언시·오언고시·칠언고시·잡언시()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에서 오언고시와 칠언 고시가 주류를 이룬다.

근체시

근체시는 중국 시가 중에서 가장 정형화된 형식으로, 위진남북조시대에 발달한 오. 칠언고시를 바탕으로 하여 당대에 완성 되었다. 근체시는 크게 율시()와 절구(絶句)의 두 가지 종류를 포함하고 있다. 율시는 격률이 들어 있는 시라는 뜻이고, 절구는 절구·단구(斷句)라고도 하는데 율시 가운데 일부분을 절취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런 명칭이 생겼다는 설도 있다. 절구는 4구로 구성되고 율시는 8구로 구성된다. 절구는 오언과 칠언 두 종류가 있으며, 대구는 반드시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평측은 정해져 있다. 율시는 오언·칠언·배율(排律) 3종류가 있는 데, 배율은 일반적으로 오언이 많으며 구수(句數)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최소한 10구 이상이고 많게는 200구가 넘는 경우도 있다. 근체시는 구법(평측(平氏대우(對偶용운(用韻) 등에서 엄격한 규정이 있다.

구법

한 수의 시에는 정해진 구수()가 있고 각 구에는 정해진 자수가 있어서 마음대로 증감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오언절구 는 4 20, 칠언절구는 4 28, 오언율시는 8 40, 칠언율시는 8 56자로 구성된다. 또한 절구와 율시를 막론하고 오언시는 일반적으로 각 구가 의미상 2자와 3자로 끊어지며, 칠언시는 4자와 3자로 끊어진다.

평측

각 구의 글자는 모두 정해진 규칙에 따라 평성 또는 측성을 사 용해야 하며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다. 당시의 한자는 평(((()의 사성(四聲) 가운데 하나에 속했는데, 평성을 평성이라 하고 나머지 상··입성을 측성이라 한다. 율시의 경우 각구의 제1·3·5자는 평측을 혼용할 수 있고 제 2.4.6자는 평측이 분명히 정해져 있는데, 이것을 '일삼오불론(一三五不論)', '이사륙분명(四六分明)'이라 한다. 또한 시의 두 번째 글자가 평성으로 시작되면 평기식()이라 하고, 측성으로 시작되면 측 기식()이라 하는데, 일반적으로 율시의 경우 오언율시는 측 기식이 정격()이고 칠언율시는 평기식이 정격이다. 물론 이러한 평측의 규정에서 어긋난 시도 있지만 그것은 매우 드문 경우이다. 이 밖에도 평측에 관계된 것으로 '이사부동, 이륙대(四 不同, 二大對)', 반법(反法), 점법(黏法), 고평(孤平고측(孤仄하삼련(下三連)의 금지 등과 같은 까다로운 규정이 있다.

대우

대우는 두 구가 서로 문자상 또는 의미상으로 짝을 이루는 것을 말하며, '대장(對仗)'이라고도 한다. 짝이 되는 두 구 가운데 앞 구를 출구(出句)라 하고 뒤 구를 대구(對句)라 한다. 근체시의 대우는 주로 율시에서 사용한다. 율시의 전체 8구는 제1·2구를 수련, 3·4구를 함련(), 5·6구를 경련(頸聯), 7.8구를 미련(尾聯)이라 하는데, 이를 다시 차례대로 기()()()()이라고도 한다. 이 중에서 함련과 경련은 반드시 대우를 맞 추어야 하며, 수련과 미련은 대우를 맞추어도 되고 안 맞추어도 되는데 일반적으로 맞추지 않는다. 대우의 규정은 매우 엄격하여 출구와 대구의 품사까지도 구조적인 대응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용운

용운은 바로 운을 맞추는 것을 말하는데, '압운(押韻)'·'협운(協 韻)'·'협운(마韻)'이라고도 한다. 근체시의 압운 규정 역시 매우 엄격하여 반드시 지켜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첫째, 반드시 평 성으로 압운을 해야 한다. 간혹 측성으로 압운을 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특수한 경우에 속한다. 둘째, 반드시 하나의 운을 끝까지 사용해야 하며 중간에서 운을 바꿀 수 없다. 이를 한 운으로 끝까지 간다는 의미에서 '일운도저(一韻到底)'라고 한다. 셋째, 짝수 구의 마지막 글자에 압운한다. 이를 한 구씩 건너뛰어 서 압운한다는 뜻에서 '격구운(隔韻)'이라고 한다. 간혹 맨 첫 구에 압운을 하는 경우도 있다. 넷째, 반드시 동일한 운부(韻部) 에 속하는 운자()를 써야 하며 다른 운부의 운자와 통압(通押) 해서는 안된다. 다섯째, 운자를 중복해서 쓸 수 없다. 이상에서 살펴본 근체시의 작시 규정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 하여 칠언율시 평기식의 예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 표와 같다.

근체시의 출현은 중국 시가에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와 중국문학사상 심원한 영향을 미쳤다. 이때부터 중국 고전시가는 형식상으로 더욱 정제되어, 근체시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가장 널리 사랑하는 시가형식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한대 시

한대는 중국시가 발전의 역사에 있어서 시의 형태가 오언과 칠언으로 정형화되기 시작한 단계이다. 오언고시의 기원에 대해서는 서한 때 이릉()과 소무() 의 화답시(和答)에서 비롯되었다는 설, 「고시십구수(古詩十九 首)」가운데 매(枚乘)이 지었다고 하는 9수의 시에서 비롯되었 다는 설, 서한 때 민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동한 때 발전했다는 설 등이 있다. 오언고시는 자연스럽고 간결하고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평이하고 솔직한 표현을 그 특징으로 한다. 주요 작품에는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가 있다. 「고시십구수」의 작자는 미상이며, 내용으로 보아 한대 말기의 중하층 문인들이 지은 것으로 보인다. 내용은 어지러운 동한 말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 남녀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 대부분인데, 세련된 오언과 진솔한 서정성이 탁월하여 한대 오언고시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가고 또 가고 (行行重行行)

가고 가고 또 가고 가서, 님과 생이별했어요. 서로 만여 리나 떨어져, 각각 하늘가에 있어요.

길은 험하고도 머니, 만날 날을 어찌 알겠어요? 오랑캐 말은 북풍에 기대고, 월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 깃들지요.

서로 떨어져 날로 멀어지니, 허리띠는 날로 느슨해져요. 뜬구름이 밝은 해를 가렸기에, 떠난 님은 돌아올 생각도 안 해요.

님 생각에 사람은 늙는데, 세월은 어느덧 저물어가요. 버려진 이 몸 더 이상 말씀 마시고, 열심히 식사나 잘 하세요.

行行重行行 與君生別離 相去萬餘里 各在天一涯 道路阻且長 會面安可知 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 相去日已遠 衣帶日已緩 浮雲蔽白日 遊子不顧返 思君令人老 歲月忽已 棄捐勿復道 努力加餐飯

[「十九第1]

 

「교교한 달빛[明月何咬岐]

밝고 맑은 저 달빛, 나의 비단 침상 휘장 비추네요. 근심과 시름에 잠들 수 없어, 옷 걸치고 일어나 배회해요. 나그네 길 즐겁다고 말하지만, 일찍 돌아오는 것만 못할 거예요. 방문 나서서 혼자 방황하니, 이 시름 누구에게 말할까요? 목 빼고 기다리다 도로 방으로 들어오니, 흐르는 눈물 옷을 적시네요.

明月何皎皎 照我羅牀幃 憂愁不能寐 攬衣起徘徊 客行雖云 不如早旋歸 出戶獨彷徨 愁思當告誰 引領還入房 淚下霑衣

[「古詩十九第19]

악부시에서 발달한 오언고시는 가벼운 리듬과 청신한 문장으로 새로운 서정의 세계를 개척하여 후대 중국 서정시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칠언고시의 기원에 대해서는 서한 무제가 신하들과 함께 지은 「백량대시(柏梁臺詩)」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동한 장형(張衡)의 「사수시(四愁詩)[我所思兮在泰山,欲往從之梁父艱,側身東望兮沸霜 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칠언고시는 오언고시에 비하여 리듬이 장중하고 표현이 수식적이라는 점을 그 특징으로 한다. 초사와 한부()에서 부분적으로 영향을 받은 한대의 칠언고시는 아직은 미숙하지만 이미 하나의 시체(詩體)를 이루었으며, 위진남북조에서 성행한 유미주의 문학풍조 아래서 수사기교를 다진 뒤 당대 초기에 이르러 근체시로 발전하게 된다. 오언고시와 칠언고시를 중심으로 한 고체시는 위진남북조시대에 이르러 문학성과 예술성이 크게 발전했다.

 

중국문학의 향기: 중국문학 장르별 이해

김장환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