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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재미있는]사기 열전_81

Ogi and Ojasŏ are characters who stop at nothing in their pursuit of success and revenge. Ogi killed his wife to clear suspicions against him and gain fame for his mastery of military strategy, but ultimately met his demise due to power struggles. Ojasŏ, after the downfall of his family in the state of Chu, fled to the state of Wu, where he sought revenge and is credited with ultimately orchestrating the downfall of Chu.

실전 병법의 최고수

오기 : 출세를 위해 아내를 버리다

오기吳起는 위衛나라 사람으로 병법을 끔찍이 좋아했다. 그는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에게서 배웠으며, 노나라 군주를 섬겼다. 제나라가 노 나라를 공격하자, 노나라에서는 오기를 장군으로 삼고자 했다. 그런데 오기의 아내가 제나라 여자여서, 노나라는 오기와 제나라의 관계를 의 심했다. 그러자 오기는 출세를 위해 아내를 죽여 제나라 편이 아님을 증명해 보였다. 마침내 노나라는 그를 장군으로 삼았다. 오기는 병사들을 이끌 고 제나라를 쳐서 대승을 거두었다. 노나라 사람 중 어떤 이는 오기를 이렇게 악평했다. “오기란 자는 의심이 많고 잔인하다. 그의 집안은 원래 천금의 부자 였지만 그가 젊었을 때 돈으로 벼슬자리를 구하러 돌아다니느라 그 많 은 재산을 탕진했다. 마을사람들이 이를 비웃자, 그는 자신을 비웃는 사람들을 30여 명이나 죽이고 위衛나라를 도망쳐 나왔다. 오기는 어머 니와 헤어지면서 자기 팔을 깨물어, '소자는 재상이 되지 않으면 결코 고국에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약속했다. 그 뒤 증자를 섬겼는데, 얼마 뒤에 어머니가 죽었는데도 돌아가지 않았다. 증자가 이를 꾸짖으 며 그를 파문하자 오기는 노나라로 가서 병법을 배워 노나라 군주를 섬 겼다. 그런데 오기는 노나라 군주가 자기를 의심하자 출세를 위해 아내 를 죽이면서까지 장군이 되었다. 노나라와 같은 작은 나라가 제나라와 같은 큰 나라와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사실이 천하에 알려지면 곧 모든 제후들은 우리를 공격 대상으로 삼을 게 틀림없었다. 게다가 노나라와 위나라는 형제지간의 나라인데 오기를 중용한다면 위나라와 원수가 되는 게 아닌가." 이러한 소문을 들은 노나라 군주는 오기를 미덥지 않게 여겨 마침내 멀리하기 시작하였다.

은혜를 베푸는 것도 병법의 하나

이때 오기는 위魏나라 문후文侯가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그를 섬기려 하였다. 문후가 이극李克에게 물었다. "오기는 어떤 사람인가?" “오기는 탐욕스럽고 여색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군사를 부리는 일만 큼은 사마양저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이 말을 듣고 위나라 문후는 오기를 장군으로 삼아 진秦나라를 쳐서 5개의 성을 함락시켰다. 오기는 장군이 되자 신분이 낮은 병사들과 같은 옷을 입고 식사를 함 께 하였다. 잘 때에는 자리를 깔지 못하게 하였으며 행군할 때에도 말 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자신의 식량은 직접 짊어지고 다니는 등 병사들 과 함께 고통을 나누었다. 한번은 병사 가운데 등에 큰 부스럼이 나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오기는 그 병사를 위해 고름을 입으로 빨아주었다. 병사의 어머니가 그 소식을 듣고는 통곡하자 옆에 있던 사람이 의아해 물었다. “아들의 고름을 장군이 친히 빨아주었는데, 어찌 통곡합니까?" 그러자 오기의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작년에 장군께서 그 애 아버지의 등창을 빨아준 적이 있었는데 그이는 감격한 나머지 용감하게 싸움터에 나가 싸우다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장군이 지금 또 아들의 등창을 빨아주었으니 자 식도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다 어딘가에서 분명히 전사할 게 틀림없습 니다. 그래서 우는 것입니다."

험난한 지형보다 임금의 덕행이 보배

문후는 오기가 용병에 뛰어나고 청렴·공평하여 모든 병사들의 신망 을 얻고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그를 서하西河의 태수로 삼아 진나라 와 한나라를 방비하도록 했다. 위나라 문후가 죽자 오기는 그의 아들 무후武侯를 섬기게 되었다. 어느날 무후가 배를 타고 서하를 내려가다가 주위 산세를 돌아보며 오기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막히도다, 산천의 험난함이여! 이것이 위나라의 보배로구나!" 이 말에 오기는 이렇게 말했다. “나라의 보배는 임금의 덕행에 있는 것이지 지형의 이점에 있지 않습 니다. 하나라의 걸왕桀王이 살던 곳은 황하와 제수濟水를 왼쪽에 끼고 태산泰山과 화산華山이 그 오른쪽에 있으며 이궐(용문산)이 그 남쪽에 있 고 양장羊腸(태행산에 있는 고갯길)이 그 북쪽에 있었지만, 어진 정치를 베 풀지 않아 은나라의 탕왕에게 쫓겨났습니다. 또 은나라 주왕의 나라는 왼쪽에 맹문산을 두고 오른쪽에 태행산, 북쪽으로는 상산을 두고 남쪽 으로는 황하가 지나고 있었지만, 주왕이 정치를 함에 덕을 베풀지 않아 무왕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나라를 다스리는 데 중요한 것은 임금의 덕행에 있지 지형의 험난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임금께서 덕을 닦지 않으시면 앞으로 이 배 안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적이 될 것입니다.” 무후가 무릎을 치며 말했다. "옳은 말이로다."

오기는 왜 재상이 될 수 없었는가

오기가 서하의 태수로서 어진 정치를 편다는 칭송이 자자했다. 그런 데 무후는 전문田文을 재상으로 임명했다. 그러자 재상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오기가 불쾌한 표정으로 전문에게 따졌다. "국가의 공을 가지고 그대와 나를 비교해보았으면 하오. 어떻소?" 전문이 대답했다. "좋소." 오기가 물었다. “장군으로서 병졸들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게 하고, 적국이 감히 우리를 넘보지 못하게 한 공에서는 나와 그대 중 누가 더 낫소?" 전문이 대답했다. "내가 그대만 못하지요." 오기가 물었다. "백성을 나라에 충성하게 하고 민심을 순화시키고 국고를 충실하게 한 공에서는 나와 그대 중 누가 더 낫소?" "내가 그대만 못하지요." 다시 오기가 물었다. “서하를 수비하여 진나라에게 공격할 틈을 주지 않고, 한나라와 조나라를 복종하게 만든 공에서는 나와 그대 중 누가 더 낫소?" 전문은 이번에도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그대만 못하지요." 오기가 물었다. “이 세 가지 점에서 그대는 다 나보다 못함에도 나보다 윗자리에 있 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전문이 대답했다. "왕이 아직 어려서 나라가 안정을 찾지 못하고, 신하들은 말을 들으 려 하지 않으며, 백성들 또한 왕을 믿지 못하고 있소. 이런 시기에 그대 와 나 어느 쪽이 재상으로 적합하겠소?" 오기는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나라도 그대에게 맡기겠소.” 전문이 말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그대보다 윗자리에 있는 까닭이오.” 오기는 비로소 자기가 전문만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임금의 시체 위에 엎드려 죽은 오기

전문이 죽은 다음 공숙公叔이 그 뒤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 공숙은 위 나라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여 막강한 권세를 휘둘렀다. 하지만 오기 가 늘 눈에 거슬렸다. 어느 날 주인의 속마음을 눈치챈 하인이 공숙에 게 속삭였다. "지조가 있고 청렴한 사람은 명예에 집착하는 법입니다. 오기의 사람 됨도 이러하니 나리께서 먼저 무후께 이렇게 아뢰십시오. '오기는 현 인입니다. 그런데 위나라는 약소국이고 강국인 진나라와 국경을 접하 고 있으니 오기의 마음은 분명 위나라에 오래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오기에게 공주를 아내로 주겠다고 시험해보십시오. 오기가 위나라에 남아 있을 생각이라면 이 명을 받아들일 것이고, 생각이 없다면 반드시 사양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오기를 집으로 초대하여 오기가 보는 앞에 서 공주가 나리를 깔보도록 만드십시오. 이를 보면 오기는 공주를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할 것이고, 그러면 틀림없이 임금의 명이라도 사양할 것 입니다." 얼마 후 오기는 공숙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그 자리에서 오기는 공 주가 재상인 공숙을 깔보는 것을 보고 무후의 청을 사양하였다. 그 때 문에 오기는 무후의 눈 밖에 나고 말았다. 오기는 불안해하다가 죄를 입을까 두려워 초나라로 갔다. 초나라 도왕悼王은 오기의 명성을 익히 들어 왔으므로 그가 오자마자 재상으로 중용했다. 오기는 초나라의 법 령을 정비하고 군대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그가 주장하는 정치의 핵심 은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대를 강하게 만들어, 세치 혀로 나라를 들 었다 놨다 하는 유세객들의 입을 틀어막는 데 있었다. 그리하여 이웃나 라들을 하나씩 점령해가니 제후들은 초나라가 점점 강성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더구나 초나라에서 오기의 권력이 더욱 막강해지자 왕족 들은 그를 해치려고 기회를 엿보았다. 도왕이 세상을 뜨자 기회를 엿보던 조정 대신들과 왕족들이 마침내 난을 일으켜 오기를 공격하였다. 도망치던 오기는 더 달아날 길이 없자 도왕의 시신 위에 엎드렸다. 오기를 공격하던 무리들이 오기를 활로 쏘아 죽였는데 그때 도왕의 시체에도 화살이 박히게 되었다. 도왕의 장례식이 끝난 후 태자가 즉위하여 영윤슈尹(초나라의 최고 관 직)에게 오기를 활로 쏠 때 왕의 시신에까지 화살을 쓴 자들을 모두 베어 죽이게 했다. 이로써 오기의 일에 연루돼 죽은 일족이 70여 집에 이르렀다. 세상에서 병법을 말하는 자들은 모두 《손자병법》과 《오기병법》을 말 한다. 이 두 책은 세상에 많이 알려져 있으므로 서술하지 않고 그들의 행적과 계책에 관해서만 말하였다. 옛말에실행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며, 말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실행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손빈이 방연을 해치운 계략은 뛰어난 것이었으나, 그 전에 다리가 잘 리는 형벌을 막지는 못했다. 오기는 무후에게 지형의 험난함이 임금의 덕행만 못하다고 말했지만, 초나라에서 행한 그의 정치는 각박하고 인 정이 없어 목숨까지 잃었으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닌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 복수의 화신

오자서 : 미녀 때문에 부자의 천륜마저 끊어버리고

오자서伍子胥는 초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운員이다. 그의 아버지는 오 사伍奢이고, 형은 오상伍尙이다. 그의 조상 중에 오거伍擧라는 사람이 초 나라 장왕莊王을 잘 섬겨 오씨 집안은 초나라에서 명성이 높았다. 따라 서 그 후손들은 초나라에서 이름 있는 가문이 되었다. 초나라 평왕주포에게는 건建이라는 태자가 있었다. 평왕은 오사를 태 자의 태부太傅로 삼고, 비무기費無忌를 소부少傅로 삼았는데, 비무기는 태자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았다. 어느 날 평왕은 비무기를 불러 진나라 로 가서 태자비로 삼을 여자를 맞이해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비무기는 진나라 공주가 미인인 것을 알고는 다녀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나라 여인은 절세 미녀입니다. 왕께서 먼저 진나라 공주를 왕비로 맞이하시고, 태자를 위해서는 다른 아내감을 구하게 하십시오.” 그러자 여자를 밝혔던 평왕은 비무기의 아첨에 넘어가 진나라 미녀를 왕비로 맞이하였고 아들 진軫을 낳게 되었다. 그리고 태자 건에게는 다른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게 했다. 비무기는 진나라 공주의 일로 평왕에게 잘 보인 후에 태자를 버리고 평왕을 섬겼다. 그런데 그에게는 한 가지 큰 걱정이 있었다. 만일 하루아침에 평왕이 죽고 태자가 임금의 자리에 오른다면, 자기는 죽은 목숨이나 진배없었다. 그것을 두려워한 비무기는 자기가 살기 위해 태자 건을 모함하기 시작하였다. 그 때문에 평왕은 차츰 태자 건을 멀리하더니 끝내는 성보읍이라는 변방으로 보내 국경을 지키는 장수로 삼았다. 비무기는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자 계속 태자 건을 헐뜯었다. "태자가 진나라 여인의 일로 분명 원한을 품고 있을 것입니다. 태자 가 변방의 군대를 거느리게 된 후부터 나라 밖의 제후들과 사귀고 있습니다. 분명 반란을 일으킬 조짐입니다.” 화가 난 평왕은 태자의 태부인 오사를 불러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오 사는 비무기가 태자를 헐뜯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렇게 간했다. "왕께서는 어찌 하찮은 신하의 참소만 믿고 골육의 정을 끊으려 하십니까?" 그러나 의심이 많은 평왕은 비무기의 참소를 철석같이 믿고는 오사 를 옥에 가두고 태자를 죽이라고 명했다. 겁에 질린 태자는 송나라로 달아났다.

운명을 달리 정한 두 형제

태자 건을 놓친 비무기는 계속해서 참소를 했다. “오사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모두 현명합니다. 지금 그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장차 초나라의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 아비를 인질로 삼 아 아들을 불러들여 후환을 제거하십시오." 평왕은 비무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사에게 사신을 보내 말을 전했다. “너의 두 아들을 불러들이면 살려주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면 죽일 것이다." 옥에 갇힌 오사가 당당하게 말했다. "큰아들 상은 사람됨이 어질어서 아비가 부른다고 하면 반드시 올 것 이오. 그러나 자서는 다릅니다. 강건하고 모질어 치욕을 참고 능히 큰 일을 도모할 것이오. 그 녀석은 이곳에 와도 가족이 모두 죽을 것을 뻔 히 알기에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곧이 듣지 않고 오사의 두 아들에게 사람을 보냈다. “지금 당장 달려오면 너희 아비를 살려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너희 아비를 죽이겠다." 소식을 들은 오상이 아버지에게 가겠다고 하자 동생 오운이 말렸다. "초나라 왕이 아버지를 살려준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아버 지를 인질로 삼아 우리 가족을 모두 죽이려는 흉계입니다. 뒷날의 후환 을 없애려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가 간들 아버지의 죽음에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우리 모두 죽는다면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차라리 다른 나라로 달아났다가 병력을 빌려 원수를 갚읍시다.” 그러자 형 오상이 말했다. "나도 그 사실을 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목숨을 구하고자 나를 부 르시는데, 어찌 나만 살 길을 구하겠느냐. 그렇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 다가 훗날 아버지의 치욕도 씻지 못한다면 천하의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그리고는 오운에게 말했다. "너는 몸을 피하거라. 너라면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가서 아버지와 함께 죽음을 맞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오상은 순순히 왕의 사자를 따라갔고, 오자서는 송나라로 도망쳤다. “장차 초나라의 군주와 신하들은 전란으로 고통을 받겠구나!" 오자서가 송나라에서 태자 건을 모시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오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큰아들 오상은 초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 오사와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오나라에서 때를 기다리다

오자서가 송나라에 도착했을 때 화씨華氏의 난(송나라 원공元公 때 송나 라 대부인 화해華亥, 화정華定 등이 일으킨 반란)이 일어났다. 그는 태자 건과 함께 다시 정나라로 도망쳤다. 정나라 사람들은 그들을 잘 대접해주 었으나 태자 건은 다시 진晉나라로 떠났다. 작은 정나라는 자기에게 힘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진나라 경공頃公이 말했다. “정나라에서는 태자를 신임하고 있소, 태자가 정나라로 돌아가 안에 서 나를 도와주고 내가 밖에서 공격하면 정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을 것 이오. 정나라가 멸망하면 태자를 그곳의 왕으로 봉하겠소.” 태자는 진나라 경공의 말을 믿고 정나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가 데 리고 있던 종이 진나라와 내통한 사실을 밀고하여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태자 건에게는 승勝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해를 입을까 겁이 난 오자 서는 승을 데리고 오나라로 달아났다. 그들이 소관昭關(초나라의 관문으 로, 오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있다)에 이르렀을 때 소관을 지키는 병사들이 그들을 붙잡으려고 하였다. 오자서는 승과 헤어져 혼자 도망쳤으나 거 의 붙잡힐 지경에 이르렀다. 오자서가 강가에 이르렀을 때 강 위에서 한 어부가 노를 젓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자서가 다급히 간 청하자 어부는 강을 건네주었다. 목숨을 건진 오자서는 배에서 내리면서 자기의 칼을 풀어 어부에게 주었다. “이 칼은 백금百金의 가치가 나갑니다. 감사의 표시이니 받으십시오.” 오자서의 말에 어부는 고개를 저었다. "초나라에서는 오자서를 붙잡는 자에게 곡식 5만 석과 높은 벼슬을 준다고 하였소이다. 내 만일 이익을 탐한다면 어찌 이런 백금의 칼로 만족하겠소." 어부는 끝내 사양했다. 오자서가 오나라에 이르렀을 때는 왕요僚가 막 정권을 장악하고, 공 자 광光이 장군으로 있었다. 오자서는 공자 광을 통하여 오나라 왕을 알현하게 되었다. 한편, 초나라 국경 마을인 종리鐘離와 오나라 국경 마을인 비량지卑梁 氏의 사람들은 모두 누에를 치며 살았는데, 이 두 마을의 여자들이 서로 뽕잎을 차지하려다가 싸움이 일어나게 되었다. 초나라 평왕은 크게 화 가 났고, 두 나라는 군대를 동원하여 서로 싸우기에 이르렀다. 오나라 에서는 공자 광에게 초나라를 치게 하였다. 공자 광이 초나라의 종리와 거소居巢를 함락시키고 돌아오자, 오자서는 오나라 왕 요에게 이렇게 권하였다. “초나라를 무너뜨릴 수 있으니, 다시 공자 광을 보내십시오." 공자 광은 오나라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자서의 아비와 형이 초나라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가 왕에게 초나라를 치기를 권하는 것은 자신의 복수 때문입니다. 설령 초나라를 친다고 해도 아직은 멸망시킬 수 없습니다." 공자 광은 오나라 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려는 속셈이 있는 자였다. 그것을 알아챈 오자서는 아직 나라 밖의 문제를 가지고 말할 시기가 아 님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공자 광에게 전제專諸라는 사람을 추천하 고 자신은 물러나 태자 건의 아들 승과 함께 초야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로부터 5년 뒤 초나라 평왕이 죽었다. 다음 왕으로 평왕이 태자 건 에게서 가로챈 진나라 여자의 아들 진軫이 올랐으니 그가 바로 소왕昭王 이다. 오나라 왕 요는 초나라의 국상을 기회로 군대를 보내 초나라를 습격 하게 하였다. 공자 광은 도성이 비게 된 틈을 타, 전제를 시켜 오나라 왕 요를 찔러 죽이게 하고 왕위를 차지했다. 그가 바로 오왕 합려이다.

오나라의 힘을 빌려 초나라를 깨다

합려는 뜻을 이루자 오자서를 불러 행인行人(외무대신급 관직) 벼슬을 주어 함께 국사를 모의하였다. 한편 초나라에서는 대신 극완과 백주리 가 죽임을 당하자, 백주리의 손자인 백비가 오나라로 도망쳐 왔다. 오나 라에서는 백비를 대부로 삼았는데, 오자서의 천거로 등용된 것이었다. 어느 날 오나라 대부 피리가 오자서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신은 백비를 남다르게 대하는데,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요?" 오자서가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초나라에서 아버님과 형님을 잃었고, 백비의 가족들 역시 초나 라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소. 그대는 어부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어봤소?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는 서로 가엾게 여기고, 같은 근심거리가 있으면 서로 돕는다. 놀란 새는 함께 날아오르고 내려앉을 때도 같이 앉는구나. 호마胡馬(북쪽 오랑캐 말)는 북풍이 불면 울고, 월조 越鳥는 고향 생각에 남쪽으로 둥지를 틀고 있네.' 이 노래가 나와 백비의 신세를 그대로 말해주는 것 같소." 이 말을 듣고 피리가 경고했다. “이해합니다. 그러나 백비를 경계하십시오. 그의 눈은 독수리 눈과 같고 걸음걸이는 호랑이 같습니다. 관상을 보니 이런 인물은 틀림없이 명예욕이 강하고 잔인하며 공로를 독차지합니다.” 그러나 오자서는 피리의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합려는 왕위에 오른 지 3년 만에 군사를 일으켜 오자서와 백비에게 초나라를 치도록 했다. 합려가 초나라의 수도 영까지 치려고 하자, 장군 손무가 제지했다. “전쟁으로 백성들이 지쳐 있으니 아직은 때가 이릅니다." 합려는 이 말에 수긍하고 철수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오나라는 그동안 사소한 전투에서 많은 승리를 거둬 기세가 충만했다. 합려가 오자서와 손무에게 말했다. “과거에 그대들이 초나라의 수도 영을 함락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소?" 오자서, 손무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같았다. “초나라 장수 낭와는 탐욕스럽기 때문에 속국인 당唐나라와 채蔡나라 가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나라와 채나라를 우리 편으로 끌어 들인다면 영을 점령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합려가 두 사람의 계책을 받아들여 당나라·채나라와 손을 잡고 공 격하니 초나라 소왕은 수도 영을 버리고 도주하여 운몽雲夢 땅으로 들 어섰다가 다시 운나라로 달아났다. 그러나 초나라 평왕 때부터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민심은 소왕 편이 아니었다.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구나

예전에 오자서에겐 신포서申包胥란 친구가 있었다. 오자서가 초나라 를 탈출할 때 신포서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내 반드시 돌아와 초나라를 뒤엎어 버릴 것이다!” 그러자 신포서가 맞받아쳤다.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지킬 것이다!"” 오나라 군사들이 초나라 영에 입성했을 때, 오자서는 초나라 평왕의 무덤을 파서 그의 시신을 꺼내 채찍으로 300번이나 내리쳤다. 신포서는 산중으로 도망가다 이 사실을 전해 듣고 오자서에게 사람을 보내 다 음과 같이 말했다. “아무리 원수를 갚는 일이라 해도 그대는 사람의 도에 크게 어긋나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내가 듣기로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길 수 있 으나, 일단 하늘의 뜻이 정해지면 사람을 깨뜨릴 수 있다'고 한다. 그대 는 일찍이 평왕의 신하로서 그를 섬겼던 자이다. 그런데 그 시신을 끔 찍스럽게 욕보였으니 이보다 하늘을 거역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자 오자서가 말했다. "당장 가서 신포서에게 전하라. 내가 살 수 있는 날은 점점 저물어 가 는데, 아직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영에서 탈출한 신포서는 진나라를 찾아가 구원을 청했다. 그러나 진 나라는 초나라가 망해가는 것을 고소해하고 있던 터여서 어림도 없었 다. 그러자 신포서는 진나라의 궁전 뜰에 서서 칠일 밤낮을 통곡하였 다. 그를 가엾게 여긴 진나라 애공袁公이 말했다. “초나라는 비록 사람의 도리를 찾아볼 수 없었으나 이런 충신이 있으 니 어찌 망하게 내버려둘 수 있겠는가?" 그리고는 전차 500대를 보내 초나라를 도와 오나라를 공격하게 하였 다. 6월에 초나라와 진나라 연합군은 오나라 군대를 직稷 땅에서 무찔렀다. 한편 오나라 왕 합려가 초나라에 머물면서 소왕을 잡으려고 하는 사 이, 합려의 사촌동생 부개가 오나라에서 왕위를 차지했다. 이 소식을 들은 합려는 초나라를 포기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와 부개를 물리치고 다시 왕위에 앉았고, 부개는 패하여 초나라로 도망갔다. 초나라 소왕은 오나라에 내란이 일어난 것을 알고는 이 틈을 타 영으 로 돌아왔다. 초나라는 다시 오나라와 맞서 싸워 이기니, 오나라 왕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복수전의 최후 승자

2년 뒤 합려는 오자서와 손무의 계책을 받아들여 서쪽으로는 초나라 를 물리치고, 북쪽으로는 제나라와 진나라를 눌렀으며, 남쪽으로는 월 나라 사람들을 굴복시켰다. 그로부터 4년 뒤, 공자孔子가 노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5 년 뒤에는 오나라가 월나라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월나라 왕 구천句踐 이 고소姑蘇에서 오나라를 무찌르고 이 와중에 합려가 손가락 부상을 당하자 오나라 군사는 물러났다. 그 뒤 합려는 상처가 더 심해져 목숨 을 잃게 되었다. 그는 태자 부차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너는 월나라 구천이 이 아비를 죽인 것을 잊지 마라.” 부차는 다짐했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왕위를 이은 부차는 백비를 태재太宰(왕실의 내외 사무를 관장하는 관직) 로 삼고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스스로 고단한 잠자리를 택해 '섶에서 자며' 군사를 훈련시켰다. 2년 뒤 부차는 월나라를 공격하여 드디어 부 초산夫椒山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월나라 왕 구천은 대부 문종文種을 사 신으로 보내 백비에게 수많은 뇌물을 바치게 한 뒤 이렇게 빌게 했다. “나라를 송두리째 오나라에게 바치고, 자신은 오나라 왕의 신하가 되 며, 자신의 아내를 오나라 왕의 첩으로 바치겠습니다. 부디 받아주십시오." 월나라의 사신에게서 뇌물을 받은 백비가 옆에서 강력하게 거드니 오나라 왕이 이를 허락하려고 했다. 그러자 오자서가 나서서 간했다. “월나라 왕은 괴로움과 어려움을 능히 이겨내는 사람입니다. 왕께서 지금 그를 죽이지 않는다면 뒷날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나라 왕은 백비의 말을 좇아 월나라와 친교를 맺었다. 월나라 왕 구천은쓸개를 맛보며' 패배와 치욕을 스스로 상기하면서 복수심을 불태웠다. '두고 보자. 내 반드시 이 치욕을 갚으리라! 그로부터 5년 뒤, 오나라 왕은 제나라 경공景公이 죽자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공격하였다. 그러자 오자서가 이렇게 간했다. “구천이 밥 먹을 때에도 두 가지 반찬을 먹지 않으며 백성의 아픔을 제 몸같이 아파하는 것은 장차 그들을 군사로 쓰려 하기 때문입니다. 구천이 죽지 않으면 틀림없이 오나라의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오나 라 옆에 월나라가 있는 것은 마치 사람의 배와 가슴 속에 병이 있는 것 과 같습니다. 이에 비하면 제나라는 기껏해야 팔에 생긴 부스럼에 지나 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왕께서는 먼저 월나라를 처치하지 않고 제나라를 치는 데 힘을 쓰고 계시니 어찌 잘못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오나라 왕은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고 군사를 출병시켜 제나 라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기세가 등등해진 오나라 왕은 잇따라 나라 밖으로 군대를 출병시켰다. 그 뒤로 오나라 왕은 오자서의 계책을 소홀히 대했다. 오나라 왕의 귀에는 월나라의 뇌물을 받아먹은 백비의 달콤한 말만 들렸다. 그래서 오나라 왕은 백비의 계책대로 월나라의 소수 병력과 연 합하여 대병력을 이끌고 본격적으로 제나라를 공격했다. 오나라는 승 리할수록 전력이 약화되니 월나라의 의도대로 점점 국력이 기울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러하자 오자서는 오나라 왕에게 월나라를 먼저 쳐야 한다고 다시 간하였다. 그러나 오나라 왕은 이 말을 듣지 않고 오자서 를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오자서는 떠나기 전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의 간언을 왕께서는 전혀 듣지 않는구나. 내가 보기에 오나라는 곧 망할 것이다. 너마저 오나라와 함께 망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 지 못한다." 그리고는 아들을 제나라로 데리고 갔다가 포씨鮑氏에게 맡기고 혼자 서 오나라로 돌아와 제나라 정세를 보고했다. 그런데 백비는 이를 빌미 로 오자서가 제나라와 밀통한다는 누명을 씌웠다. 오자서를 의심하고 있던 오나라 왕은 사신을 보내 촉루라는 검을 내리며 이렇게 전했다. "이 검으로 자결하라." 오자서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아, 슬프도다! 참소를 일삼는 신하 백비로 인해 나라가 어지러운데, 왕은 도리어 나를 죽이는구나. 나는 그의 아버지를 패자로 만들었고, 그가 왕이 되기 전 여러 공자들과 왕위를 다툴 때 목숨을 다해서 왕위 에 오르게 하는 데 기여했다. 그가 왕위에 오른 후 나에게 오나라를 나 누어주려 했으나 나는 받지 않았다. 그런데도 한갓 아첨만 하는 신하의 말만 듣고 덕망 있는 나를 죽이려 하다니!" 그리고는 집안 사람들에게 이렇게 유언했다. “왕의 관으로 쓸 수 있게 나의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라. 그리고 나의 눈을 빼내 오나라 동문東門 위에 걸어놓아라. 내 반드시 오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리라.”      그리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나라 왕은 이 말을 전해 듣고 분노하여 오자서의 시체를 말가죽 주 머니에 넣어 강물에 던져버리게 했다. 오나라 사람들은 그를 가엾게 여 겨 강가에 사당을 세우고 '서산胥山'이라고 이름지었다. 오자서가 죽은 후, 오나라 왕이 나라 바깥에서 계속 전쟁을 벌이는 사이 월나라 왕 구천은 기회를 틈타 오나라로 쳐들어왔다. 구천은 오나 라의 태자를 죽이고 오나라 군사들을 무찔렀다. 오나라 왕이 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와 월나라와 화친을 맺었으나 기울고 있는 나라를 다시 일으킬 수는 없었다. 9년 뒤, 월나라 왕 구천은 대병력을 이끌고 가 드디어 오나라를 치고 오나라 왕 부차를 죽였다. 태재 백비 또한 뇌물을 받고 자기와 내통하 였다는 이유로 죽여버렸다. 이렇게 하여 오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원한을 품고 복수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정말 무섭다. 임금이라도 신 하에게 원한을 품게 해서는 안 되거늘, 하물며 동등한 지위에 있는 사람끼리야 어떻겠는가. 일찍이 오자서가 그의 아버지를 따라 죽었다면 그 죽음은 땅강아지 나 개미의 죽음과 무엇이 달랐겠는가. 작은 의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 어서 이름을 후세에 남겼으니 그 뜻이 비장하다. 추격병에 쫓기고 걸식 을 하면서도 수치스럽게 생각지 않고 결국 복수의 뜻을 이뤘으니 장렬 한 의기를 지닌 대장부가 아니면 누가 감히 이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소설보다 재미 있는 사기열전

지은이 : 사마천

편역자 :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