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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재미있는]사기 열전_80

Han Fei highlighted the importance of understanding rulers’ psychology in governance but faced a tragic fate in Qin; Sima Yangzhu exemplified disciplined, fair military leadership to restore Qi’s strength; and Sun Wu, through The Art of War, demonstrated the universal effectiveness of strategic principles by successfully training palace women as soldiers.

스스로 화를 벗어나지 못한 말더듬이

한비 : 용의 비늘을 잘못 건드리면 죽임을 당한다

 

한비韓非는 타고난 말더듬이였다. 그 때문에 남 앞에서 말은 잘 못했. 지만 글재주 하나는 뛰어났다. 그와 같이 순자荀子를 스승으로 섬겼던 이사李斯도 자신의 글재주가 한비를 따르지 못한다고 늘 한탄할 정도였 으니까. 한비는 한나라의 땅이 줄어들고 국력이 약해져 가는 것을 보고 너무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한나라 왕에게 글을 자주 올려 간언했으나 그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나라 왕은 어진 인재를 구하여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대를 강하게 키워 나라를 튼튼히 하는 일에는 별로 관 심이 없었다. 오히려 나라를 좀먹는 소인배(유학자)들을 등용하여 나라 에 공을 세운 사람들보다 높은 벼슬을 주었다. 한비는 이들을 나라가 편안할 때는 명예를 좇고 서로 작당하여 이익을 챙기다가 나라에 위급한 일이 생기면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무사들을 이용하는 등 나라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라고 여겼다. 이런 신하들 때문에 청렴 강직한 인재들이 나라에 등용되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였다. 그리하여 옛날 왕들이 시행한 정치의 실패와 성공에 관 한 내용을 살펴 10여 만 자의 글을 지었다. 특히 <세난說難>편에 이러한 내용을 매우 자세하게 다루었다. 그러 나 정작 자신은 진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죽임을 당해 그 위험에서 벗 어나지 못했다. 그는 <세난> 편에서, “유세가는 자신의 언변을 펼치기 위해 먼저 윗사람의 신뢰를 얻어야 하며, 상대방의 변화하는 심리상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반응도 염 두에 두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옛날에 이윤伊尹(본래는 요리사였으나 나중에 은나라의 재상으로 등용된다. 은나라 탕왕은 명재상 이윤의 도움으로 왕도정치를 폈다)이 요리사가 되고, 백 리해白里奚(춘추시대 사람으로 진秦나라 목공穆公에게 인정받아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가 포로가 된 것은 모두 군주에게 등용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재능 있는 인재는 천한 일을 통해서 큰 일 찾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송나라에 어떤 부자父子가 있었다. 어느 날 비가 와서 그 집 담장이 무너졌다. 그러자 그의 아들이 말했다. "아버님, 담을 다시 쌓지 않으면 도둑이 들 것입니다." 이웃 늙은이 역시 아들과 똑같은 충고를 했다. 그날 밤 과연 부자의 집에는 도둑이 들어 많은 재물을 잃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반응은 달랐다. 자기 아들에 대해서는 매우 지혜 있다고 칭찬했으나, 이웃 늙은이에 대해서는 혹 자기 집 재물을 털어 간 도둑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었던 것이다. 예전에 정나라 무공은 호나라를 정복하기 위하여 자기 딸을 호나라 임금에게 시집보냈다. 그리고는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과인이 이제 군사를 일으켜 국토를 넓히고자 하오. 칠 만한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이때 임금의 속마음을 눈치챈 관기사關其思가 나서며 아뢰었다. "호나라를 쳐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무공은 화를 버럭 냈다. "호나라는 우리와 형제자국이다.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리고는 즉시 관기사를 붙잡아 처형했다.호나라 임금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역시 정나라는 형제의 나라라 고 안심하여 특별한 방비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공은 이를 기회로 호나라로 쳐들어가 쉽게 나라를 빼앗고 말았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관기사가 유세가라 한다면, 그는 윗사람의 의중 을 정확히 파악했으나 바로 이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잃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는 지혜를 가지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지혜를 어떻게 쓰느냐가 어려운 것이다.

옛날에 미자하彌子瑕라는 미소년은 위나라 군주의 총애를 많이 받 았다. 그런데 위나라의 법에는 몰래 군주의 수레를 훔쳐 탄 자는 월형 (발꿈치를 베던 형벌)에 처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어느날이었다. 어머니가 병이 났다는 소식을 들은 미자하는 군주의 명령이라고 속이고 군주의 수레를 타고 나갔다. 즉각 위나라 군주에게 보고가 올라갔다. 그러나 군주는 미자하를 칭찬하며 말했다. "효자로구나. 병이 든 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발꿈치를 베는 형벌 도 두려워하지 않다니!" 그런 뒤 어느 날이었다. 군주가 미자하를 거느리고 함께 과수원에서 노닐고 있었다. 미자하 눈에 복숭아가 들어왔다. 미자하가 복숭아를 따먹어 보니 맛이 있었다. "한번 드셔 보시옵소서. 굉장히 맛이 좋사옵니다." 미자하는 먹다 만 복숭아를 군주에게 바쳤다. 군주는 그에게서 복숭아를 받아들었다. '얼마나 나에게 맛있는 걸 바칠 생각이었으면 제 입에 넣은 복숭아 란 걸 까맣게 잊을까? 군주는 미자하의 행동에 감탄할 뿐이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어느 덧 미자하의 고운 얼굴빛이 쇠하였다. 그만큼 군주의 총애도 식게 되었다. 어느 날 미자하가 작은 죄를 짓게 되었다. 그러나 군주의 반응은 예전과 판이하게 달랐다. "일찍이 이 자는 과인의 명령이라고 속여 내 수레를 타고 갔으며, 또한 제가 먹다 만 복숭아를 과인에게 주었도다. 괘씸하도다!" 미자하의 행동은 처음이나 나중이나 변함이 없었지만, 예전에는 어 질다고 칭찬을 받았고 나중에는 벌을 받게 되었다. 그 원인은 군주의 마음이 변했기 때문이다.

군주에게 총애를 받을 때에는 신하의 지혜가 군주의 마음에 맞아 친 밀해지고, 군주에게 미움을 받을 때에는 같은 지혜라도 군주의 마음에 맞지 않아서 벌을 받고 더욱더 소원해진다. 따라서 간언하는 유세자는 반드시 군주의 애증을 살핀 뒤에 설득해야 한다. 대체로 용이란 동물은 길들이면 그 등에 탈 수 있다. 그러나 턱 밑 에 한 자 길이의 거꾸로 난 비늘이 있는데 사람이 이곳을 건드리면 용은 반드시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다.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유세는 거의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한비도 정작 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이 한비의 저서를 읽고 진나라에 가지고 와 전했다. 진나라 왕은 한비가 지은 <고분孤憤>·<오두>(진보적 역사관으로 유가의 복고사상을 비판하였고 신흥지주계급에 손해를 끼치는 유생·협객·유세객·병역도피자·투기상인 등을 '오두' 즉 다섯 가지 좀벌레라고 폭로하였다) 두 편의 글을 보고 말 했다. "아아, 과인이 이 글을 쓴 사람과 만나 사귈 수만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으련만!" 그러자 곁에 있던 신하 이사가 말했다. 그는 한비와 같이 순자를 스 승으로 모셨던 사람이다. “이 글은 한나라에 있는 한비라는 사람이 쓴 것입니다." “그러하오? 그렇다면 이 사람을 얼른 데려와 만나봐야겠소.” 진나라 왕은 한비를 제나라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급히 한나라에 쳐 들어갔다. 이때 한나라 왕은 한비를 등용하지 않았으나 위기가 닥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급히 한비를 사신으로 삼아 진나라에 보냈다. 한비를 만나 본 진나라 왕은 그를 매우 좋아했으나 믿고 등용하지는 않았다. 이사는 한비가 진나라 왕에게 등용되면 자신의 지위가 위태로 워질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요고姚賈라는 신하와 함께 한비를 해칠 계획을 꾸몄다. 그들은 진나라 왕에게 이렇게 한비를 헐뜯었다. "한비는 한나라의 여러 공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지금 왕께서 천하 를 손에 넣으려고 하시는데, 한비는 결국 자기 조국인 한나라를 위할 뿐 우리 진나라를 위해 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으로서 당 연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지금 왕께서 그를 등용하지 않고 오랫동안 우 리나라에 머물게 했다가 돌려보낸다면 이는 스스로 뒤탈을 남기는 일 이니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이는 것이 좋습니다." 진나라 왕은 이사의 말에 홀라당 넘어가 한비를 잡아 옥에 처넣게 했 다. 이사는 '옳다구나! 하고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관리를 시켜 한비 에게 독약을 보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했다. 옥 안에서 한비는 자신의 억울함을 왕에게 호소하려 하였지만 방법 이 없었다. 결국 한비는 독약을 마시고 저 세상으로 갔다. 뒤늦게 자신 이 한 일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된 진나라 왕이 사람을 시켜 한비를 놓 아주려 했으나 그는 이미 죽은 뒤였다. 신불해申不害(전국시대의 한韓나라 학자·정치가·사상가. 처음에는 정鄭나라의 하급관리로 일하다가 후에 한나라의 소후昭侯를 섬겨 재상으로서 15년간 나라를 태평하게 다스렸다. 신불해의 학설은 황로黃老의 학설을 근본으로 하나, 형명刑名을 주장하였다)와 한비는 모두 글을 남겨 후세에 전하니 그것을 배우는 사람 이 많다. 그러나 한비는 <세난> 편을 지어 유세의 어려움을 세상에 알리 고도 자신은 정작 그 화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으니 오호라, 슬픈 일이다.

 

군명君命보다 군명軍命을 우선시하다

새라양저 : 출신은 미약했으나 병법은 심오했다

사마양저는 사마가 성이고, 양저가 이름이다. 혹시 헷갈리지 마시길 바란다. 전완田完의 먼 후손이라고 하는데, 전완은 원래 진나라의 공자 로 성이 진씨였다고 한다. 그러나 제나라로 망명한 후 스스로 성을 전 씨로 바꾸었다. 제나라가 진晋나라와 연燕나라의 침략을 받자, 제나라 왕 경공은 근 심에 빠졌다. 그러자 안영이 전양저를 추천했다. "양저는 전씨의 첩 태생이기는 하나 문장은 여러 사람의 마음을 흔들 고 무예는 적의 기세를 꺾을 만합니다. 왕께서는 시험삼아 등용해보시 옵소서." 경공은 안영의 말대로 양저를 불러 병법을 들어보고는 고개를 끄덕 였다. 그리고 곧 그를 장군으로 삼아 연나라와 진나라의 군사를 막게 했다. 양저는 떠나기 전 경공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께서 시골 군대의 무리 속에 섞여 있는 신을 발탁하시어 대부大夫의 윗자리에 두었으므로 병사들이 따르지 않고 백성들 또한 믿지 않으니, 저는 권력이 미비한 미천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원컨대 왕께서 총애하 시고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 군대를 감독하게 하십시오." 경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장고莊賈에게 함께 가도록 했다. 양저는 경 공에게 하직 인사를 드린 후, 장고와 약속하였다. “내일 정오에 군문軍門에서 만납시다." 다음날 양저는 먼저 군영으로 달려가서 해그림자를 보는 표목을 세 우고 시각을 계산하는 물시계를 설치해놓고 장고를 기다렸다. 그러나 장고는 본래 교만한 사람이어서 마음속으로 양저를 업신여기고 있었 다. 양저 장군이 이미 군영에 가 있으니 자신이 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그는 친척들이 베푼 송별연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정오가 되어도 장고가 오지 않자 양저는 물시계를 쏟아버리고는 군 영으로 들어가 군사들을 점검하고 군령軍令을 선포하였다. 장고는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난 저녁때가 되어서야 군영에 도착하였다. 양저가 위엄을 갖추고 엄하게 물었다. "당신은 어찌하여 작전시간을 어겼습니까?" “친척들이 베푼 송별연 때문에 늦어졌소이다." “장수란 작전 명령을 받는 순간부터 자기 집을 잊어야 하고, 군에 몸 담고 있으면 어버이도 잊어야 하며, 북소리가 급히 울리면 제 몸을 잊 어야 합니다. 지금 적국이 나라 안에 깊숙이 침입하여 온 나라가 어지 럽고 병사들은 국경에서 노숙하고 있습니다. 왕께서는 잠을 자도 자리 가 편안치 않고 음식을 먹어도 맛있는 줄 모르십니다. 백성들의 목숨이 다 당신에게 달려 있거늘 어찌 송별연 때문에 늦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양저는 장고를 크게 나무라고서 군정軍正(군법을 맡아 다스리는 군관)을 불러 물었다. “군법에 작전시간을 어긴 자는 어떻게 처리하라고 되어 있소?" “참형에 처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나는 꼼짝없이 죽게 생겼구나! 장고는 군대를 장악하기 위한 양저의 병법에 자기가 희생양으로 걸 려든 것임을 비로소 깨닫고 후회를 하였다. 장고는 경공에게 사람을 보 내 자기가 죽게 되었음을 알리고 살려줄 것을 청했다. 그러나 양저는 경공에게 달려간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장고의 머리를 베어 전군에 돌려 보였다. 그러자 비로소 전군의 병사들이 두려움에 벌벌 떨며 양저를 떠받들었다. 얼마 후, 장고의 사면장을 가진 경공의 사자가 급히 말을 달려 군영 에 들이닥쳤다. 그러나 양저는 고개를 저었다. "장수가 군영에 있을 때에는 왕의 명령이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소." 그리고 다시 군정을 불러 물었다. “군영에서는 말을 달리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이를 어겼을 때는 어떻게 다스리라고 했는가?" “참형에 처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에 사자는 벌벌 떨며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양저는 고개를 저었다. "왕의 사자를 죽일 수는 없지." 양저는 대신 사자의 하인과 수레 왼편의 마부가 기대는 나무와 왼쪽 말을 칼로 베었다. 그리고 양저는 사자를 왕께 보내 그대로 보고하라고 전하며 싸움터로 나갔다. 군대의 기강이 바로잡힌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병든 군사들도 분발하게 만든 병법

양저는 병사들이 훈련하고 행군을 할 때마다 어디서든 같이하였다. 또한 그들의 침식과 사소한 건강상태까지 일일이 확인하며 보살펴 주 었다. 장군인 자기의 식량은 모두 가져다가 병사들과 고루 나누어 먹었 으며, 자신은 가장 몸이 허약한 병사들의 몫과 비슷하게 먹었다. 병사 들은 비로소 양저를 우러러보게 되었다. 양저는 군대를 다시 점검하며 이렇게 말했다. "싸울 수 없는 병사들은 돌아가도 좋다.” 그러나 병사들은 조금의 동요도 없었고, 오히려 병든 군사들까지도 싸움에 나가기를 자청하며 나섰다.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 다. 진나라 군영에서는 이 소문을 듣고 싸우기를 포기한 채 퇴각해 버 렸다. 연나라 군사들도 황하를 건너서 도망치고 말았다. 양저는 그들을 추격하여 빼앗겼던 옛 땅을 되찾고 돌아왔다. 경공은 여러 대부들과 함께 교외로 나와 양저를 맞이했다. 경공은 양 저를 크게 칭찬하고 대사마大司馬로 삼았다. 양저의 가문들은 제나라에 서 더욱 존경을 받게 되었다. 후에 제나라의 위왕은 대신들을 시켜 고대의 《사마병법》을 연구하도 록 하고, 양저의 병법을 그 책 속에 덧붙여 《사마양저병법》이라고 했다. 《사마병법》은 뜻하는 바가 심오하고 원대해서 하·· 3대의 왕 자들조차도 그 뜻을 다 실천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양저가 하찮은 소 국 제나라를 위해 군사를 움직였으니, 어찌《사마병법》에 보이는 겸양 의 예절을 활용할 틈이 있었겠는가?

 

후세에 이름을 날린 손씨 가문의 병법서

손무·손빈 : 미인도 병법에는 예외가 아니다

그 유명한 손자병법에 관한 이야기다. 손무孫武는 제나라 사람으로 병법에 아주 밝은 사람이었다. 그는 어느 날 병법을 가지고 오나라 왕 합려闔閭를 찾아갔다. 합려가 그를 보고 물었다. "과인은 그대의 병법 13편을 다 보았소. 병법대로 실제 군대를 훈련 시킬 수 있겠소?" "좋습니다." 손무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여인들이라도 괜찮겠소?" "좋습니다." 손무의 대답이 떨어지자 합려는 즉시 궁중의 부녀자 180명을 불러내 었다. 손무를 시험해볼 요량이었던 것이다. 손무는 180명의 부녀자를 두 편으로 나누고, 왕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는 두 궁녀를 각 편의 대장 으로 삼았다. 그리고 모든 이에게 창을 들도록 하고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은 가슴, 왼손, 오른손, 등을 알고 있는가?" 부녀자들이 안다고 하자 손무가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하면 가슴 쪽을 보고, '왼편' 하면 왼손 쪽을 보고, '오른 편' 하면 오른손 쪽을 보고, '뒤로' 하면 등 뒤쪽을 보아라.” 부녀자들이 대답했다. "알겠사옵니다." 손무는 이렇게 군령을 선포하고 나서는, 부월(옛날 군법에서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하던 도끼)을 쥐고서 여러 번 군령을 설명했다. 그런 다음 손무 는 '오른편! 하고 북을 쳐 군령을 내렸다. 그러나 부녀자들은 군령을 따르지 않고 깔깔거리며 웃기만 했다. "군령이 분명하지 않고 명령에 익숙하도록 만들지 못한 것은 장군의 죄다." 손무는 자신의 잘못인 양 군령을 거듭 밝히고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이번엔 '왼편! 하고 북을 쳤다. 그러나 부녀자들은 여전히 웃어댈 뿐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것은 장군의 죄가 아니다. 이미 너희들이 군령을 명백하게 아는 마당에 군령대로 하지 않는 것은 병사들의 죄다." 손무는 이렇게 말하고 양편에서 대장을 맡고 있는 두 부녀자를 베려 고 했다. 오나라 왕이 대臺 위에서 이를 지켜보다가 몹시 놀라 급히 사람을 보내 명을 내렸다. “과인은 이미 장군이 용병에 능하다는 것을 알았소. 과인은 이 두 궁 녀가 없으면 밥을 먹어도 맛을 모르오, 제발 베지 마시오.” 그러자 손무가 말했다. “신은 이미 왕의 명을 받고 장수가 되었습니다. 장수가 군대 안에서 는 왕의 명령을 받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손무는 끝내 대장격인 두 부녀자의 목을 베어서 왕이 지켜보는 가운 데 궁녀들에게 돌려 보였다. 그리고는 그들 다음으로 총애를 받는 궁녀 를 대장으로 삼고 다시 북을 쳤다. 그러자 부녀자들 모두 왼편, 오른편, 앞으로, 뒤로, 꿇어앉기, 일어서기 등의 명령을 자로 잰 듯이 호령대로 움직이며 감히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손무는 비로소 사자를 시켜 왕에 게 보고했다. "군대는 이미 정렬을 끝마쳤습니다. 왕께서 내려오셔서 시험해보셔 도 좋습니다. 왕께서 원하신다면 그들은 불 속이라도 뛰어들 것입니다." 오나라 왕은 말했다. "장군은 그만 훈련을 그치고 숙사로 돌아가라. 과인은 내려가 보기를 원하지 않노라." 손무는 말했다. “왕께서는 한낱 병법에 적힌 말만을 좋아할 뿐 그것을 실제로 쓸 줄 은 모르십니다.” 그러자 합려는 마음이 움직여 마침내 손무를 장군으로 임명했다. 그 뒤, 오나라가 서쪽의 강력한 초나라를 무찌른 다음 수도 영을 차지하고, 북쪽으로 제나라와 진晉나라를 위협하여 제후들 사이에 이름이 알 려지게 된 것은 모두 손무의 공이었다. 다리를 잘리고 병법서에 이름을 올리다 손무가 죽은 뒤 100여 년이 지나서 제나라 출생의 손빈이라는 병법 가가 나타났다. 손빈은 손무의 후손이었다. 손빈은 일찍이 방연과 함께 병법을 배웠다. 그런데 방연이 먼저 출세하여 위魏나라에서 혜왕惠王의 장군이 된 후 몰래 사람을 보내 손빈을 불렀다. 방연은 자기보다 뛰어 난 손빈의 재능을 늘 시샘하고 두려워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재 능이 손빈을 따를 수 없다고 생각한 방연이 마침내 손빈을 없애려고 계획을 세운다. 방연은 손빈이 위나라에 도착하자 두 다리를 절단하는 형벌인 빈형 에 처하였다. 그리고 얼굴에다 칼로 흠집을 내어 먹으로 죄목을 새겨 넣는 형벌인 자자형刺字刑까지 가했다. 손빈의 활동 반경을 제약하고 아예 얼굴을 들고 세상에 나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제나라 사자가 위나라에 오게 되었을 때, 손빈은 몰래 그 사자를 만 나 구원을 요청했다. 제나라 사자는 손빈이 대단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 라 생각하고 수레에 몰래 태워 제나라로 데려갔다. 제나라 장군 전기田 忌는 손빈의 재능을 인정하여 귀한 손님으로 예우해주었다. 당시 전기가 제나라의 공자公구들과 마차 경주를 자주 하고 있을 때 였다. 손빈이 보니 말들이 각기 상··하 세 등급이었다. 손빈이 전기에게 말했다. “장군께서는 내기를 크게 하셔도 좋습니다. 신이 장군이 이길 수 있 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장군의 하등마와 상대방의 상등마를 대결하게 하고, 장군의 상등마와 상대방의 중등마를, 그 다음 장군의 중등마와 상대방의 하등마를 대결하게 하십시오." 세 번의 경마 결과, 전기는 한 번만 지고 두 번 승리를 거뒀다. 마침내 왕의 천금을 전기가 차지하게 되었다. 손빈의 재주에 감탄한 전기가 손 빈을 왕에게 추천했다. 손빈이 왕에게 병법을 설명하자 왕이 군사軍師 로 삼았다. 그 후 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자, 위급한 상황에 처한 조나라가 제 나라에 구원을 청해왔다. 왕이 손빈을 장수로 삼으려 하자, 손빈이 사양했다. “형벌을 받은 적이 있는 자가 장수가 됨은 옳지 않습니다.” 그래서 왕은 전기를 장군으로 임명하고, 손빈을 군사로 삼아 휘장 친 수레 속에 앉아 작전을 구상하도록 했다. 전기가 군대를 이끌고 조나라로 가려고 하자 손빈이 말했다. "얽힌 실을 풀려고 할 때에는 주먹으로 쳐서는 안 되며, 싸움을 말리 려고 할 때도 주먹을 휘둘러서는 안 됩니다. 전쟁도 이와 마찬가지입니 다. 급소를 치고 빈틈을 찔러 위나라의 형세를 불리하게 만들면 저절로 물러날 것입니다. 지금 위나라는 조나라와 총력전을 펼치느라 날쌘 정 예군대는 모두 국외로 빠져나가고, 국내에는 힘 없고 지친 노약자들만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장군께서는 어서 위나라의 수도인 대량을 치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조나라 공격을 중단하고 자기 나라를 구하러 돌아 올 것입니다. 그때 지치고 쇠약해진 위나라를 기습하면 됩니다. 이것이 야말로 일격에 조나라를 구원하고 위나라를 피폐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전기가 그 계책을 따르니 위나라는 과연 조나라의 수도 한단에서 물러났다. 제나라 군대는 계룽桂陵에서 위나라의 군사를 신나게 쳐부술 수 있었다.

배신한 친구를 죽이고 후세에 이름을 전하다

그로부터 13년 뒤, 위나라와 조나라가 함께 한韓나라를 공격했다. 한 나라가 제나라에 위급함을 호소하니, 제나라에서는 전기를 장수로 삼아 구원군을 보내 곧장 대량으로 쳐들어가게 하였다. 위나라의 장수 방 연은 그 소식을 듣고는 한나라 공격을 중지하고 본국으로 돌아갔으나, 제나라의 군사는 이미 위나라 국경을 지나서 서쪽으로 가고 있었다. 손빈이 전기에게 계책을 내놓았다. “위나라 군사들은 본래 사납고 용맹스러워서 제나라를 가볍게 여기며 제나라 군사들을 겁쟁이라 부르며 깔보고 있습니다. 진실로 싸움을 잘하는 자는 불리한 형세를 유리하게 만드는 법입니다. 병법에 '승리 를 얻고자 100리 되는 거리를 다투어 달려가면 상장군上將軍을 잃게 되 고, 승리를 얻고자 50리의 거리를 다투어 달려가면 겨우 군사들의 절반 만 도착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제나라 군대가 위나라 땅에 들어서면 10 만 개의 밥짓는 아궁이를 만들게 하고, 다음날에는 5만 개의 아궁이를 만들게 하며, 또 그 다음날에는 3만 개의 아궁이를 만들게 하십시오.” 방연은 제나라 군대를 추격한 지 사흘째가 되었을 때, 아궁이 숫자가 줄어든 것을 보고 희희낙락했다. “제나라 군대가 겁쟁이란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우리 땅에 들 어온 지 사흘 만에 도망친 병사가 반도 더 될 줄은 몰랐도다!" 그리고는 보병들은 남겨두고 날쌘 정예부대들만 데리고 밤낮으로 제 나라 군대의 뒤를 쫓아갔다. 손빈은 방연의 추격 속도를 헤아려 보니 날이 저물면 틀림없이 위나라의 마릉馬陵에 도착할 것이라 생각했다. 마릉은 길이 좁고 막힌 데가 많으며 길 옆은 천길 낭떠러지여서 군사 들을 숨겨두기에 알맞았다. 손빈은 큰 나무의 껍질을 벗겨내고 눈에 잘띄도록 희게 칠한 뒤방연, 이 나무 아래에서 죽을 것이다'라고 써놓았 다. 그리고는 제나라 군사 중에서 활을 잘 쏘는 사람들을 골라 길 양옆 에 매복시켰다. 그런 후 밤에 불빛이 보이거든 일제히 활을 쏘라는 명령을 내렸다. 밤이 되자 과연 방연이 큰 나무 아래에 이르러 흰 글씨가 새겨진 것을 발견하고는 불을 밝혀 글씨를 비추었다. 그 순간 제나라 군사들의 화살 이 일제히 날아들었다. 위나라의 군사들은 혼비백산하여 흩어졌다. 방 연은 자기의 지혜가 모자라서 손빈에게 당한 것임을 알아차리고, “결국 놈의 이름을 세상에 떨치게 하였구나!” 하고 울부짖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제나라 군대는 이 승리의 기세를 몰아 위나라의 군대를 전멸시키고 위나라의 태자 신申을 포로로 잡아 돌아왔다. 이 일로 손빈은 천하에 이 름이 드러나게 되었으며, 그의 병법이 세상에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

 

소설보다 재미 있는 사기열전

지은이 : 사마천

편역자 :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