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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문학 작품의 이해편]중국_13#63

중국문학의 향기_13

During the Qing Dynasty, the popularity of the miscellaneous dramas declined, similar to the Ming Dynasty, with one-act plays reflecting the emotions of literati becoming popular. Notable works from early Ming include the "Five Major Works," such as "The Killing of a Dog" and "The White Rabbit." The Song Dynasty's Jie Gong Zhao gained widespread popularity, while Tan Sha emerged from earlier narrative forms and flourished in southern cities. Guo Sha also became popular during the Ming and Qing Dynasties, and all these literary forms played a significant historical role in the development of later literary styles.

청대 백화 장편소설

청대 소설은 명대 소설의 발전에 이어 백화소설 창작의 전성기를 이루어 청대 문학을 대표하게 되었다. 청대 소설이 발달하게 된 몇 가지 원인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김성탄(金聖嘆이어(李漁원매(袁枚기윤등 의 문인들이 소설의 가치를 높이 선양함으로써 소설에 대한 인식을 제고 시켰다. 특히 김성탄은 『수호전』과 『서상기』를 『이소』, 장자()·『사기(史記)·『두시(杜詩)』와 함께 '6재자서라고 하여 소설을 정통문학과 동렬에 놓기도 했다. 둘째, 일반 민중 가운데 소설을 감상할 만한 소양과 여유를 갖춘 사람이 늘어나 독자층이 확대되었다. 셋째, 인쇄·제지술의 발달로 일반 서적과 함께 소설책이 널리 보급되었다. 넷째, 만주족의 지 배 아래에 있던 한족 지식인들이 자신의 불만을 소설 창작을 통하여 토로하고 해소하려 했다. 청대 소설의 주류는 역시 백화 장편소설이었다. 주요 작품에는 풍자소설의 대표작인 『유림외사(儒林外史), 인정소설의 대표작 인 『홍루몽(紅樓夢), 재학소설의 대표작인 「경화연(鏡花緣), 화류소설의 대표작인 『품화보감(品花寶鑑), 협의공안소설의 대표 작인 『아녀영웅전(兒女英雄傳)』등이 있다. 『유림외사』는 오경재(吳敬梓: 1701~1754)의 작으로 통행본은 56회이다. 원본은 55회본이었으나 이후 50. 56 · 60회본이 유행했다. 내용은 과거제도의 폐단과 부패에 대한 폭로를 중심으로 하여 봉건 사대부들의 추악한 면모와 당시인들의 악습을 풍자한 것이 대부분이다. 『유림외사』는 중국 고대 풍자예술의 전통을 계승하여 중국 문학사상 가장 뛰어난 장편 풍자소설을 이루었으며, 생동감 넘치는 인물묘사와 통속적인 북방 구어의 운용에 뛰어났다. 특히 소설 전체가 단편 일화들로 엮어지고 전체적으로 중심인물이나 통일된 줄거리가 없는 독특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유림외사』는 청 말 견책소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범진이 과거에 합격하다[范進中]

......(전략)..... 그 이웃 사람이 나는 듯이 시장으로 달려가 도처를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계속 찾아 시장 동쪽까지 갔더니 범 진이 닭을 안고 손에는 물건 팻말을 쥐고서 비척거리면서 이러 저리 둘러보며 닭을 사갈 사람을 찾고 있었다. 이웃 사람이 말했다. 범상공, 빨리 집으로 가시오. 과거에 합격한 당신을 축하하려고 온 통지인들이 집안에 빽빽이 찼어요." 범진은 그에게 코웃음을 치며 짐짓 못들은 체하면서 머리를 숙이고 앞으로 걸어갔다. 이웃 사람은 그가 대꾸하지 않는 것을 보고 달려 가서 그의 손에 든 닭을 빼앗으려 했다. 범진이 말했다. "당신, 내 닭을 뺏어서 어쩌려고요? 당신이 살 것도 아니면서." 이웃 사람이 말했다. "당신이 과거에 합격했단 말이오. 그러니 당신은 집에 가서 통지인 들에게 희전()을 주어 떠나게 해야지요." 범진이 말했다. "고씨 아저씨, 당신은 내가 오늘 쌀이 없어서 이 닭이라도 팔아 연명 하려고 하는 줄을 잘 알면서 왜 그런 말을 해서 나를 골탕 먹이시오? 나는 또 당신처럼 그렇게 어리석지 않으니, 당신이나 돌아가시오. 내가 닭 파는 것이나 훼방 놓지 말고." 이웃 사람은 그가 믿지 않는 것을 보고는 손으로 닭을 홱 낚아채서 땅에 내동댕이친 뒤 그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통지인이 그를 보고 말했다. “아이구, 새 귀인이 돌아오셨군요." 막 그를 에워싸고 말을 하려고 했다. 범진이 두세 발짝 집안으로 들어가서 보았더니, 중간에 통지문이 이미 높다랗게 걸려 있었는데, 그 위에는 '귀댁의 나으리 범자 진자께서 광동 향시에서 제7등 아원 으로 영광스럽게 합격하셨음을 통지합니다'고 씌어 있었다. 범진은 보지 않았으면 그만 이었겠지만, 한 번 보더니 다시 한 번 읽고 나서 스스로 두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런! 아이구! 내가 합격했어!" 이렇게 말하면서 뒤로 한 발 물러나다가 발이 꼬여 넘어지더니 이를 꽉 깨물며 인사불성이 되어 버렸다. 노마님이 당황하여 황급히 몇 모금의 찬물을 범진의 입에 흘려 넣어 주었더니, 그는 기어서 일어 나 또 박수를 치면서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런! 아이구! 내가 합격했어!" 그는 웃으면서 다짜고짜 곧장 대문 밖으로 나는 듯이 달려 나갔다. 통지인과 이웃 사람들이 모두 한바탕 놀랐다. 범진은 대문을 나서서 얼마 가지도 못하고 발이 미끄러져 연못으로 빠져 버렸다. 나오려고 발버둥치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모두 풀어헤쳐졌고 두 손엔 누런 진흙이 가득했으며 온 몸에서 물이 줄줄 흘렀다. 사람들이 그를 붙잡으려 했으나 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손뼉을 치고 웃으면서 곧 장 시장으로 뛰어갔다.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져 가지고 서로 쳐다보며 일제히 말했다. “새 귀인이 너무 기뻐서 미쳐버렸어." 노마님이 울면서 말했다. "무슨 이런 사나운 팔자가 있단 말인가! 무슨 거인에 합격했다고 하더니 금세 이런 몹쓸 병에 걸리다니! 이 미친병이 언제나 좋아 질런가?" 부인 호씨가 말했다. "아침에는 멀쩡하게 나갔는데 어떻게 이런 병에 걸린단 말인가! 도 대체 어떡하면 좋을꼬?"

............(前略)......... 那隣居飛奔到集上, 一地裏尋不見. 直尋到集東頭, 見范 進抱着鷄, 手裏個草標, 一步一的, 東張西望在那裏尋人買. 隣居道: “范相公, 快些回去. 恭喜中了擧人, 報喜人臍了一屋裏. ”范進道是典他, 只裝不聽見, 低着頭, 往前走, 隣居見他不理, 走上來, 就要奪他手裏的鷄. 范進道奪我的鷄恁的? 又不買. "隣居道: "中了了, 家打 發報子哩. ”范進道: “高隣, 曉得我 今日沒有米, 要賣這雞去救命, 甚麽 拿這話來混我? 我又不同, 自回去罷, 莫誤了我賣. ”隣居見他不 信, 手把了, 損在地下, 一把拉了回來. 報人見了道: "好了, 人回來了。正要擁着他說話, 范進三兩步走進屋裏來, 見中間報帖已經升 掛起來, 寫道捷報貴府老爺范諱進高中廣東鄕試第七亞元 京報連登 黃甲.'范進不看便罷, 看了一遍, 又念一遍, 自己把兩手拍了一下, 笑了一 聲道: “! 好了! 我中了!"說着, 往後一交跌倒, 牙關咬緊, 不醒人事, 老太 太慌了, 慌將幾口開水灌了過來, 他們將起來, 又拍着手大笑道: "!! 中不由分說, 就往門外飛鉤, 把報錄人和隣居都噶了一跳走 出大門不多路, 一脚端在塘裏, , 頭髮都散了, 兩手黃泥淋淋滴滴 一身的水, 衆人拉他不住, 拍着笑着一直到集上去了. 衆人大眼望小眼, 一道元新貴人歡喜瘤了. "老太太哭" 恁生遣樣苦命的中子- 個人, 就得了個一了, 幾時得好?" 娘子胡氏道: "好好出去, 恁的就得了遣樣的病! 却是如何是好?"......(後略)...... [『儒林外史』 제3]

 

「홍루몽』은 원래 서명이 『석두기(石頭記)』이며, 일명 『정승록 (情僧錄)·『풍월보감(風月寶鑑)·『금릉십이차(金陵十二銀)·『금옥연()』 등으로도 불렸다. 통행본은 120회인데, 80회는 조점(1715?~1763?, 호는 雪芹)의 작이 확실하고 뒤 40회는 고악(高陽)의 속작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판본은 크게 지본(脂本: 脂硯齋重評本)과 비지본(非脂 本)으로 나뉘는데, 지본은 80회본으로 조설근의 원본에 가깝고 비지본은 대부분 120회본으로 다시 정갑본(程甲本)과 정을본(程 乙本)이 있다. 내용은 봉건 대지주 집안인 가부(賈府)의 몰락과정을 통하여 주인공 가보옥(賈玉)과 그를 둘러싼 12미녀[金陵二의 사랑 과 비극을 묘사한 것이다. 중국소설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는 『홍루몽』은 개 성적인 인물묘사를 통한 불후의 인물전형 창조, 일상생활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경험에서 우러난 사실적인 묘사, 인물의 정신세계 를 뛰어나게 부각시킨 심리묘사, 수많은 인물과 사건의 유기적인 안배를 통한 탁월한 구성력, 등장인물에 걸맞은 정확하고 세련되 고 생동적인 언어 구사 등 소설문학의 최고 경지에 올랐다. 「홍루몽」이 대대적으로 유행하자 『홍루몽보(),「후홍루몽」,「홍루몽』,『홍루환()몽」,「홍루중()몽』 등의 속작이 나와 이른바 '홍루'문학을 형성했다. 근래에는 「홍루몽』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홍학(紅學)'이 형성되어 그 열기가 대단하다.

 

「금릉십이차곡陵十二曲)

(전략)...... 술을 마시는 중에 열두 명의 춤추는 선녀가 나와서 무슨 곡조로 연주할 것인지를 묻자 경환이 말했다. “새로 지은 '홍루몽십이지곡'을 연주해 올려라." 춤추는 선녀들이 대답하고 장단을 가볍게 치며 은비파를 능숙하게 연주했다. 선녀들이 "천지가 개벽한 이래 ......”라고 막 한 구절을 불렀을 때 경환이 말했다. “이 곡조는 반드시 생. . · 말의 구분이 있고 또 남북구궁조가 있는 속세에서 만든 전기의 곡조와는 다르다. 이것은 한 사람에 대 해서 읊거나 한 가지 일에 대해서 느낀 점을 가지고 한 곡조를 이루 게 되면 곧 악보를 만들어서 음률에 맞출 수 있다. 만약에 어떤 곡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면 그 속에 담겨 있는 오묘함을 모르게 된 다. 내가 생각건대 너도 역시 이 곡조를 깊이 알지 못하는 것 같은 데, 만약에 먼저 그 가사를 보지 않고 그 곡을 듣는다면 아무런 재미 가 없을 것이다."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시종들에게 홍루몽곡의 가사를 가져오라 고 명하여 보옥에게 건네주자, 보옥은 눈으로는 가사를 보고 귀로는 노래를 들었다.

 

【홍루몽 인자]

천지가 개벽한 이래, 누가 애정의 씨앗 심어놓았나? 모두가 풍월의 정이 깊어진 탓이다. 어찌 할거나! 지난날의 회포로 상심하고 적막할 때, 어리석은 나의 충정 달래나봐야지. 이로 인하여 연출하노니 금과옥을 슬퍼하고 애달파하는 홍루의 꿈 이여!

 

【종신오]

모두들 금옥 같은 좋은 인연이라 하나, 나는 오직 목석같은 전생의 맹세만을 생각하네. 산속의 고사는 맑고 밝은 눈을 부질없이 대하고 있으나, 세상 밖 아름다운 선녀가 사는 적막한 숲을 끝내 잊지 못하네. 인간세상을 탄식하노니, 아름다움 중에도 부족함이 있음을 이제야 비로소 믿겠노라. 비록 깍듯이 남편을 받들어 모신다 해도, 도저히 나의 심정은 편안 하기 어렵네.

 

[왕응미]

하나는 낭원의 신선 꽃이요, 하나는 티 없는 고운 옥이로다. 만약 기이한 연분이 없다 하면 금생에 어찌 또 그를 만났으며, 만약 기이한 연분이 있다 하면 어찌하여 서로의 애정이 헛된 말로 끝났는 가? 하나는 속절없이 스스로 탄식하고, 하나는 부질없이 애만 끓이네. 하나는 물속의 달이요, 하나는 거울속의 꽃이로다. 눈 속에 얼마나 많은 눈물구슬이 있을까? 가을이 흘러 겨울 되고 봄이 흘러 여름 되는 것을 어이 견디리! ..(중략)......

 

【수미·비조각투림]

벼슬한 사람은 가업이 쇠락하고, 부귀한 사람은 금은이 모두 흩어졌네. 은덕 있는 사람은 죽음 속에서 회생하고, 무정한 사람은 분명히 응 보를 받았네. 전생에 명이 짧은 사람은 명이 이미 길어졌고, 전생에 눈물 적게 흘린 사람은 눈물이 이미 말라버렸네. 업원에 보응함이 어찌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랴? 헤어지고 만남도 모두 운명에 정해진 것. 명이 길고 짧음을 알려거든 전생의 행업을 보면 되고, 행업이 악하되 늙어서 부귀하면 이건 요행이라네. 홍진을 간파한 사람은 불문으로 숨어 들어갔고, 치정에 미혹된 사람 은 목숨을 부질없이 마쳤도다. 이 모든 건 마치 실컷 주워 먹은 새가 수풀로 돌아간 뒤, 황량한 대지만 깨끗하게 남아 있는 것과 같도다.

(前略)...............酒間, 又有十二個舞女上來, 請問演何詞曲, 警幻道: “就將新制紅樓夢十二支演上來舞女們答應了, 便輕敲檀板, 款按銀箏, 聽他歌道是: “開闢鴻蒙......” 方歌了一句, 警幻便說道: “此曲不比塵世中 所塡傳奇之曲, 必有生旦淨末之則, 又有南北九宮之限 此或咏嘆一人, 或 感懷一事, 偶成一曲, 即可譜入管絃, 若非個中人, 不知其中之妙, 料爾亦 未必深明此調, 若不先閱其稿, 後聽其歌, 翻成嚼蠟矣。”說畢,回頭命小 鬟取了「紅樓夢』原稿來,遞與寶玉,寶玉接來,一面目視其文,一面耳聆其 歌曰:

【紅樓夢引子】 開闢鴻蒙, 情種? 都只爲風月情濃, 趁着這奈何天, 懷日, 寂寮時, 試見愚衷, 因此上, 演出這懷金玉的紅樓夢

【終身誤】 都道是金玉良姻, 俺只念木石前盟. 空對着, 山中高士晶瑩雪, 終不忘, 世外仙姝寂寞林, 人間,美中不足今方信, 縱然是齊眉擧案, 低意難平.

【枉凝眉】 一個是閬苑仙葩, 一個是美玉無瑕, 若說沒奇緣, 今生偏又遇着 , 若說有奇, 如何心事终虚? 一個自嗟呀, 一個空勞牽挂, 一個是 水中月, 一個是鏡中花, 想眼中能有多少淚珠兒, 經得秋流到冬盡, 春流 到夏!

【收尾·飛鳥各投林】 官的, 家業凋零, 富貴的, 金銀散盡, 有恩的,死裏 逃生. 無情的, 分明報應欠命的, 命已還, 欠淚的, 淚已盡冤冤相報實非 , 分離聚合皆前定, 欲知命短問前生, 老來富貴也僥倖, 看破的,遁入 空門, 痴迷的,枉送了性命, 好一似食盡鳥投林, 落了片白茫茫大地眞乾淨! ......(후문)...... [「紅樓夢」]

 

『경화』은 이여진(李汝珍: 1763?~1830?) 작이며 100회로 되어 있다. 『경화연』은 천계에서 쫓겨난 화신()들이 인간계 내려와 100명의 재녀() 되어 기예를 자랑하는 내용으로, 중간에 기이한 환상이 많이 삽입되어 있다. 풍부한 환상·해학. 박학을 이용하여 불평등한 부녀문제와 사회의 폐단을 비판함으 로써 자못 독특한 견해와 이상이 담겨 있으나, 지나치게 현학적 묘사는 다소 번잡한 느낌을 준다. 그밖에 하경거(夏渠) [야수폭언][20 154], 진구() 『연산외사(燕山外史)[8] 등도 재학소설에 속하는 작품이다. 『품화보감』은 진삼(陳森: 1835전후) 작이며 60회로 되어있다. 『품화보감』은 화류계의 실제인물을 모델로 본격적인 장편 소설로, 북경의 배우와 기녀들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한 것인데, 동성연애 외설적인 묘사가 들어 있다. 밖에 위수인(魏秀仁) 『화월흔(花月痕)[16 52], 유달의 청루몽(靑樓夢)[64], 한방경(韓邦慶) 『해상화열전(海上花列傳)[64] 등도 화류소설에 속하는 작품이다. 『아녀영웅전』은 문강(: 1868전후) 작이며, 40[원래는 53]이다. 『아녀영웅전』은 여자 협객 십삼매(+三妹) 부친의 원수를 갚고 은인 안기()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이야기로, 재자가인소설에 무용담을 삽입한 형태이며 순수한 북경어로 썼기 때문에 방언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밖에 석옥곤(石玉崑) 『삼협오의(三俠五義) [120. 나중에 수정하여 俠五義』로 개칭함], 작자 미상의 『시공안기문 (施公案奇聞)[97], 탐몽도인(夢道人) 『팽공안(彭公案) 등도 협의공안소설에 속하는 작품이다.

 

청말 견책소설

청대 말기, 특히 1890~1910년의 20년간은 중국소설의 변혁기로서, 내우외환에 대한 대처능력을 잃어버린 부정과 부패를 일삼은 정부와 관료를 비판하는 작품들이 쏟아졌다. 아영() 그의 『만청소설사(晩淸小說史)』에서 시기에 설이 발달하게 원인으로 다음의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쇄술과 신문의 발달로 출판이 쉬어짐에 따라 소설의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다. 둘째, 서구사상의 영향을 받은 지식인들이 소설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셋째, 지식인들이 소설을 이용하여 외세에 굴복하고 부패에 찌든 조정을 비판하고 사회 개혁과 애국사상을 고취시켰다. 청말에는 소설잡지와 소설에 관한 논문이 대거 등장하여 소설의 사회적 효용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잡지 방면에서는 양계 (梁啓超: 1873~1929) 『신소설[1902] 필두로 이보가(1867~1906) 『수상소설(繡像小說)[1903], 오옥요(吳沃堯: 1866~1910) 『월월소설(月月小說)[1906], 증박(會樸) 『소설림』[1907] 전문적인 소설잡지가 대량으로 발행되었다. 방면에서는 양계초의 「소설과 정치의 관계를 논함[論小說與群] 비롯하여 소설의 사회적 중요성을 역설한 논문들이 많이 발표되었다. '견책소설(譴責小說)'이란 명칭은 노신(魯迅) 『중국소설사략』 에서 비롯된 것으로, 내용은 관계(官界) 부정과 부패를 폭로한 것이 대부분이며, 형식은 대부분 「유림외사』처럼 여러 일화를 연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대표 작품에는 '4 견책소설' 불리는 이보가의 관장현형기(官場現形記) [60], 오옥요의 『이십년목도지괴현상(二十年目睹之怪現狀) [108], 유악(劉鄂: 1857 ~1909) 『노잔유기(老殘遊記)[20], 증박의 『얼해화(海花) [20]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일종의 시대적인 임무를 띠고 었기 때문에 주제표현은 매우 분명하지만, 『유림외사』와 같은 냉정한 풍자가 부족하고 언사가 노골적이어서 문학성은 다소 떨어 진다. 밖에 정치소설이라 불리는 일련의 작품들이 나왔는데, 이러 작품에는 주로 서양 근대사상의 본질을 이해하고, 봉건사회의 병폐를 파헤치며, 혁명의 이상을 고무시키는 내용이 많다. 작품에는 양계초의 『신중국미래기(新中國未來記), 진단여사의 『자유결혼』, 진천화(陳天華) 『사자후(獅子喉) 등이 있다.

 

번역소설

번역소설은 서양의 문학을 중국에 전파시킨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대표 주자는 임서(: 1852~1924)였다. 그는 유창한 고문으로 외국의 대표적인 소설 150 종을 번역하여 문인·지식 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중에서 프랑스 뒤마 피스(A. Dumas fils) 『춘희(椿姬)[La Dame aux Camélias]』를 번역한 『파리의 동백꽃 아가씨 이야기[巴黎女遺』는 1899년에 나온 중국 최초의 번역소설이다. 그밖에 미국 마담 스토우(Mdm. Stowe) 『톰 아저씨의 오두막[Uncle Tom's Cabin]』을 번역한 『흑노유 천록(黑奴錄), 영국 스코트(W. Scott) 『아이반호(Ivanhoe) 번역한 『살극손겁후영웅략(撒克遜劫後英雄略) 등이 있다. 신을 비롯한 당시의 많은 문인들이 이러한 번역소설을 탐독하여 중국 신문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희곡

如今是三伏天道 若竇娥委實冤枉 身死之後 天降三尺瑞雪 遮掩了竇娥屍首

중국 희곡의 기원

중국 희곡은 선진시대에 무격(巫覡) 제사드릴 추던 원시 가무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러한 원시 가무의 형태가 점차 발전하여, 한대에는 가무희(歌舞골계희·괴뢰희·각저희·참군희등을 포함한 여러 가지 '백희' 성행했으며, 전문적인 배우도 등장했다.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서역 음악의 영향으로 발두(답요낭(踏搖娘) 같은 무희가 특히 성행했으며, 당대에는 가무희가 더욱 발전하고 골계 희도 상당히 진보했다.

 

희문

이상과 같은 희곡 전통을 계승하여 송대에는 비교적 완정한 형태의 희곡이 창작되었다. 송대 초기의 희곡은 골계희·가무희·강창희가 주로 공연되었다. 골계희는 가무없이 해학과 풍자를 위주로 했으며, 당시에는 '잡극()'이라 불렀다. 가무희는 음악·가무·언어·동작등을 배합하여 구성과 형식이 골계희보다 진보했으나 여전히 대언체() 아닌 서사체() 위주였다. 강창희는 노래와 고사를 위주로 하고 반주 악기와 표정 연출도 있었지만 정식 가무가 빠져 있었다. 남송대에는 중국 희곡의 출발을 알리는 희문이 등장하여 중국희곡사상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희문은 남희문·남희·온주잡희등으로도 불렸다. 형식은 편폭이 원대 잡극의 10배나 되고 절이나 척의 구분이 없으며, 작품으로는 「장협장원」·「소손도」등이 있다. 이러한 희문은 비교적 완전한 형식을 갖춘 중국 희곡의 출발로서 명대 희곡인 전기(傳奇) 많은 영향을 미쳤다.

 

원본

() 북방 이민족인 여진족(眞族) 세운 나라로서, 북송을 침략하여 중원을 차지한 뒤부터 ()에게 망할 때까지 남송 대등한 세력을 유지했다. 금대에는 다른 어떤 문학보다도 희곡이 문학의 주류를 형성했다. 금대에 희곡이 발달하게 원인은 금나라의 북방 통일로 인한 정치적인 안정, 수도 연경(燕京) 중심으로 대도시의 인구 집중, 희곡 발전의 경제적인 뒷받침을 가능케 농업과 상공업의 발달등을 있다. 금대의 희곡은 일반적으로 원본이라 불리는데, 명칭 '유행가무반(行歌舞班)'[行院] 공연할 사용한 대본이라는 뜻이다. 원본은 당대의 참군희(參軍) 기타 가무 잡희와 북송 잡극에서 발전되어 나온 것으로, 송대 잡극이 원대 잡극으로 발전해가는 과도기의 역할을 수행했다.

 

잡극

원대에는 중국 희곡의 본격적인 발전이라 있는 잡극이 등장하여 중국희곡사상 찬란한 꽃을 피웠으며, 원대를 대표하는 문학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원대에 잡극이 흥성하게 원인으로는 다음의 가지를 있다. 첫째, 희곡문학 자체의 발전이다. 한대부터 이어져온 곡문학의 성과를 계승하여 원대에 비로소 완벽한 형태의 잡극이 창작되었다. 둘째, 도시경제의 번영이다. 희곡은 직접적으로 군중의 수요에 기초하기 때문에 이들의 오락문화를 뒷받침하는 도시경제의 번영이 잡극의 발전을 촉진했다. 셋째, 북방 민족의 악곡 전파이다. 민족간의 문화적인 교류로 북방 민족의 악곡이 전파되어 잡극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넷째, 유학의 쇠미와 과거제도의 폐지이다. 몽고족이 지배한 원대에는 유학이 침체되어 이제껏 비천하게 여겨졌던 희곡이 자유롭게 발전할 회를 갖게 되었으며, 과거제도의 폐지로 인해 경전의 연구에 두했던 선비들이 일반문학에 눈을 돌리게 되어 잡극 예술이 진보 하고 우수한 작가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잡극은 송대의 희문이나 금대의 원본보다 훨씬 엄격히 제한된 형식을 지니고 있다. 체제상 대본 하나는 4(: 지금의 幕에 )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이며, 앞이나 중간에 설자() 하는 서막이나 간막이 삽입되기도 하는데, 보통 4 1설자로 되어 있다. 음률상 매절은 같은 궁조의 곡패() 조성된 하나 투곡()이다. 구성요소상 절은 (: 노래). (: 동작(: 대화) 3요소로 이루어지는데, 창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창은 남자나 여자 주인공이 혼자서 끝까지 불러야 한다 규칙이 있다. 배역은 (: 남자역, 주인공은 正이라 ), (: 여자 , 주인공은 正旦이라 ), (: 남자 조연 ), (: 어릿광대 ) 4 각색() 외에 (: 벼슬아치 ), (: 할멈 ), 발로(: 영감 ), 내아(: 아역), 방로( : 건달 ) 등의 잡이 있다. 극명() 전체 내용을 요약 제목(題目) 극의 정식 명칭인 정명(正名) 끝에 붙여 마무리하는데 8자로 1~2구절로 되어 있으며, 일반적으로 정명 끝의 3~4자를 따서 약칭으로 쓴다.잡극은 문장이 소박하고 표현이 솔직할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색채가 농후하여 실제 사회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했으며, 북방의 구어·방언과 이민족의 언어를 혼용하여 표현예술 역량이 뛰어난 특색을 지니고 있다.

 

원대 잡극

원대 잡극의 발전은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살펴볼 있다. 전기의 잡극은 북방을 중심으로 성행했는데, 문장이 솔직하고 질박한 특색을 지니고 있으며, 당시의 사회와 인간상을 반영했다. 또한 잡극을 대표하는 뛰어난 작가가 시기에 많이 배출 되었다. 대표적인 작가는 이른바 '원곡 4대가' 불리는 관한경(關漢卿) •왕실보(實甫) • 백박(白樸) • 마치원(馬致遠)이다. 관한경(1246전후) 명실 공히 원대 잡극의 대표자로서 중국 희곡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작가이다. 그는 잡극의 제재를 확대하고, 자유로운 형식 추구로 희극과 비극을 표현했다. 또한 언어풍격상 등장인물의 성격에 어울리는 언어를 사용하여 생동감이 넘치고, 묘사기교상 인물의 형상화가 뛰어나고 음악성까지 곁들였으며, 창작수법상 현실주의적인 예술수법을 통하여 당시의 혼란한 역사 환경과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밀도 있게 반영 했다. 주요 작품으로 『구풍진(趙昕兒風月救風塵)·『두아원(感天 動地娥寃)·『배월정(閨怨佳人拜月亭)』등이 있다.

 

『두아원』 (3)

('' 사형 감독관으로 분장하여 등장한다)

사형 감독관: 나는 사형 감독관이다. 오늘 범인을 처형할 것이니, 사령들로 하여금 골목을 막아 쓸데없이 오가는 이가 없게 하라. ('' 사령으로 분장하여 북을 치고 징을 울리는 동작을 한다. 망나니는 깃발을 흔들고 칼을 휘두르며 '정단'에게 칼을 씌운 압송하여 등장한다) 망나니: 움직여! 움직이라구! 사형 감독관께서 형장에 납신 지오 래되셨단 말이야!

정단(두아): 【정궁】 【단정호]

연유도 모른 법을 어겼다고, 손도 써보지 못한 형벌을 받게 되었네. 억울함을 외치니 땅도 흔들리고 하늘도 놀라네! 잠시 후면 떠도는 혼이 먼저 삼라전에 이르겠지, 어찌 하늘과 땅까지도 원망하지 않겠는가? ...... (중략)......

정단(두아): 【사해아]

두아가 괜히 이런 근거 없는 소원을 말하는 아니라, 정말 억울하기 짝이 없어서요.

만약 어떤 영험한 일로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는다면, 푸른 하늘의 공명정대함도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방울의 뜨거운 피도 더러운 홍진에 뿌리고 싶지 않으니, 모두 팔척 깃대 위의 비단에 걸려서,

사방의 사람들이 모두 보게 거예요. 이게 바로 억울하게 죽은 장홍의 피가 벽옥이 되고,

망제가 두견새 되어 울던 것과 같은 이치지요. 망나니: 무슨 말이 있소? 지금 감독관 나으리께 말씀드리지

않으면 언제 할려구!(정단이 다시 무릎 꿇는 동작을 한다)

정단(두아): 나으리, 지금은 삼복더위지만 만약 두아가 정말로 울하다면, 몸이 죽은 후에 하늘에서 척의 눈을 내려 두아의 시체를 덮어줄 것입니다.

사형 감독관 : 이런 삼복더위에 너에게 설사 하늘을 찌르는 원한이 있다 한들 송이 불러오지 못할 테니, 헛소리 말아라!

정단(두아): [이살]

나으리께선 더위가 한창이라, 때가 아니라 하시지만, 추연 때문에 유월에 서리가 날렸단 듣지 못하셨나요?

만약 가슴 가득한 원한이 불꽃처럼 뿜어 나온다면, 정녕 하늘도 감동하여 육각 얼음 꽃이 솜처럼 깔려, 시체가 드러나지 않게 겁니다. 그러니 수레에 싣고 말로 끌어, 황량한 들판으로 보낼 필요가 있겠어요!

(정단이 다시 무릎 꿇는 동작을 한다)

정단(두아): 나으리, 두아의 죽음은 진실로 억울합니다. 이제부터 초주에 동안 가뭄이 닥칠 것입니다.

사형 감독관 : 닥쳐라! 어디서 함부로 그런 말을 하느냐!

정단(두아): [일살]

나으리께선 하늘도 기약할 없고, 사람들도 불쌍히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시지만, 하늘도 인간의 소원을 기꺼이 들어주신다는 모르십니다. 어찌하여 동해에 삼년 동안 단비가 내리지 않았던가요? 일찍이 동해의 효부가 억울하게 죽었기 때문이지요. 이젠 당신네 산양현 차례이니, 모든 관리들이 바른 법을 펼칠 마음이 없고, 백성들이 입이 있어도 말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망나니가 깃발 흔드는 동작을 한다)

망나니: 어째서 금세 하늘이 어두워지지? (안에서 바람 소리를 낸다)

망나니: 아이구! 써늘한 바람이람?

정단(두아): 【살미]

구름도 위해 어두워지고, 구슬픈 바람도 위해 불어주니, 가지 소원이 분명히 드러나리라.

(우는 동작을 하며) 어머님, 유월에 눈발이 날리고 삼년 동안 가뭄이 드는 것을 기다려보세요.

그때서야 당신의 억울하게 죽은 두아의 원혼이 드러나겠지요!(망나니가 칼을 휘두르자 정단이 고꾸라지는 동작을 한다)

감독관: (놀라며) ? 정말 눈이 오다니, 이런 기이한 일이 있는가!

망나니: 나도 말하건대, 평소에 사람을 죽이면 땅에 선혈이 낭자한데, 두아의 피는 모두 1 2척의 비단 깃발로 날아올라가 방울도 땅에 떨어지지 않으니, 정말로 괴이한 일이야.

감독관. 사형수에겐 필시 억울한 사정이 있나보군. 앞의 가지 소원은 이미 이루어졌는데, 삼년 동안 가뭄이 들것이라는 말은 맞을지 어쩔지 모르겠군. 어디 두고 보자. 여봐라, 개일 기다릴 필요 없이 시체를 들어다 채노파에게 넘겨주도록 하라. (사람들이 대답을 하며 시체를 들고 퇴장한다)

(外扮監斬官上, )下官監斬官是也, 今日處決犯人, 着做公的把住巷口, 休放往來人閒走. (淨扮公人, 三通,羅三下科, 創子磨旗,提刀, 押正旦 , )行動些, 行動些,監斬官去法場上多時了, (正旦唱)

【正宮】【端正好】沒來由犯王法, 不提防遭刑憲, 叫聲屈動地驚天!頃刻間遊魂先赴森羅殿, 不將天地也生埋怨?......(中略)......

靈聖與世人傳, 也不見得湛湛天我不要半星熱血紅塵灑, 都只在八尺旗 鎗素練懸, 等他四下裏皆, 這就是萇弘化碧, 望帝鵑 (子云)還有的說話? 此時不對監斬大人說, 幾時說那! (正旦再跪科, )大人, 如今是三伏天道, 若竇娥委實寃枉, 身死之後, 天降三尺瑞雪, 掩了竇娥屍首. (監斬官云) 這等三伏天道, 便有衝天的怨氣, 也召不得一 片雪來, 可不胡說!(正旦唱)

【二煞】道是暑氣暄, 不是那下雪天, 豈不聞飛霜六月因鄒衍? 若果有一 腔怨氣噴如火, 定要感的六出花滾似綿, 免着我屍骸現,要甚素車白 , 斷送出古荒阡! (正旦再跪科,)大人, 我竇娥死的委實寃枉, 從今以後, 這楚州亢旱三 , 監斬官云)打嘴!那有這等說話! (正旦唱)

【一煞】道是天公不可期, 人心不可憐, 不知皇天也肯從人願, 做甚麽三 年不見甘霖降, 也只東海會經老婦寃 如今輪到山陽縣, 這都是官吏每 無心正法, 使百姓有口難言! (子做磨旗科, )怎麼這一會兒天色陰了也? (做風科, 子云)好冷 風也!(正旦唱)

【煞尾】浮雲爲我陰, 悲風爲我旋, 三兒誓願明題徧(做哭科, ) 婆也, 直等待雪飛六月, 亢旱三年呵, ()那其間把個死的冤魂這 竇娥顯! (子做開刀, 正旦倒科)(監斬官驚云)? 的下雪了, 有這等異事!( 子云)我也道平日殺人, 滿地都是,這個竇娥的血都飛在那丈二白 , 並無半點落地,委實奇怪, (監斬官云)這死罪必有寃枉, 早兩兒應驗 , 不知亢旱三年的說話, 准也不准?且看後來如何左右, 也不必等待雪 , 便與我他屍首, 還了那蔡婆婆去罷, (衆應科, 擡下)

 

왕실보(1234전후) 관한경과 쌍벽을 이루는 작가로서, 관한경의 작품이 민중적인 성향이 강한 반면 그의 작품은 귀족적인 성향이 농후하다. 그의 작품은 내용상 대부분 상류사회의 생활을 제재로 하여 봉건예교에 반항하는 청춘남녀의 사랑이 중심을 이루고 있고, 언어풍격상 ·사와 민간 구어를 흡수하여 자연스러 우면서도 화려하며, 묘사기교상 인물의 내면심리 묘사를 통하여 인물의 성격을 효과적으로 부각시켰다. 또한 전체적으로 서정성 뛰어나다. 주요 작품으로 "서상기(崔鶯鶯待月西廂記)·『여춘당(四丞相歌舞麗春堂) 등이 있다. 특히 『서상기』는 4절로 일반적인 잡극의 체제와 다른 5() 20절로 장편의 대작으로, 표현기교가 뛰어나고 문장이 세련되어 있기 때문에 극본 자체 로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백박(1226~1285?) 곡사() 전아하여 시적(詩的) 성과를 거두었으며, 주요 작품으로 『오동우(唐明皇秋夜梧桐雨)·『장두마상(裴少俊牆頭馬上)』등이 있다. 마치원(1251전후) 귀족의 생활이나 신선고사를 즐겨 제재로 삼았으며, 곡사는 매우 화려하여 읽기 위한 희곡의 성격이 짙다. 주요 작품으로 『한궁추(破幽夢孤雁漢宮秋)·『황량몽(邯鄲道省悟 黃粱夢)』등이 있다. 후기의 잡극은 남방을 중심으로 성행했는데, 실제생활 문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여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왕실보의 영향으로 전아한 문사 위주의 작품이 많이 창작되어 점차 연극으로 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민중과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작품의 수준 또한 전기에 훨씬 뒤진다.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는 전기의 4대가와 함께 '원곡 6대가' 불리는 정광조(鄭光祖) 교길(喬吉) 있다. 정광조(1294전후) 역사극을 많이 창작했으며, 『서상기』의 예술수법을 발전시켜 화려한 문장으로 연정() 감동적으로 묘사했다. 주요 작품으로 『천녀이혼(迷靑瑣情女離魂)·『한림풍월 (芻梅香驕翰林風月)』등이 있다. 교길(1280~1345) 문인들의 풍류를 제재로 작품을 많이 지었으며, 문사가 아름답고 염정() 표현에 뛰어났다. 주요 작품으로 『양세인연(玉簫女兩世因緣)『양주몽(杜牧之詩酒揚州)』등이 있다.

 

명대 잡극

명대에는 소설과 함께 희곡이 대대적으로 흥성하여 정통문학을 압도하는 형세를 이루었다. 명대의 잡극은 전기(傳奇) 기세에 눌려 그다지 발전을 하지는 못했지만, 전기의 영향을 받아 가지 주목할 만한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명대 초기의 잡극은 원대 잡극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남희의 영향을 받아 1() 5() 하거나 에서 합창을 하는 형식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왕실 작가인 주권(朱權: ?~1448)•주유돈(朱有燉 1379~1439) 등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명대 중기의 잡극은 전기에 눌려 쇠퇴의 길을 걸었으며, 왕구사(王九思: 1468~1551)•강해(康海: 1475~1540)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명대 말기에는 잡극의 형식에 변화가 일어나 단극() 등장했다. 단극은 이제까지의 형식을 탈피하고 어떤 고사 가운데서 가장 정채로운 부분만을 짧은 형식으로 표현하는 문인들의 즉흥극을 말하는데, 기원은 원대 왕생() 「위기틈국圍棋 )」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단극과 잡극과의 주요 차이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구성상 잡극은 매편이 4절로 구성되고 설자() 앞이나 중간에 두지만, 단극은 절의 제한이 없고 설자를 앞에만 둔다. 내용상 잡극은 매편이 하나의 이야기이지만, 단극은 제한이 없다. 창법상 잡극은 사람이 독창하지만, 단극은 제한이 없다. 악곡상 잡극은 북곡만을 사용하지만, 단극은 대부분 ·북곡을 혼용한다. 명말의 단극을 대표하는 작품은 서위(徐渭: 1521~1593) 『사성원(四聲)[「狂_吏」「玉禪師」「雌木蘭」「女_]이다.

 

청대 잡극

청대의 잡극은 전기의 위세에 눌려 명대와 마찬가지로 쇠퇴의 길을 걸었으며, 문인들의 회포와 정한(情恨) 묘사하기에 용이한 1절로 단극이 감상을 위한 문학작품으로서 자못 유행했다. 주요 작가와 작품에는 망국의 한을 묘사한 오위업(吳偉業) 『임춘각(臨春閣), 굴원() 입을 통하여 자신의 울분을 토로 우동() 『독이소(讀騷), 백거이(白居易) 「비파행 ) 극화한 장사전 『사현추(四秋), 대표적인 단극작가로서 32종의 단극을 지은 양조관(楊潮觀) 등이 있다.

전기(傳奇)

명대에는 원대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던 잡극이 여전히 창작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주류는 새롭게 등장한 '전기(傳奇)'였다. 전기는 송대의 남희()에서 발전되어 나온 것으로 잡극과 다른 새로운 형태의 희곡문학을 말하는데, 남곡(명곡(남희()라고도 불렸다. 명대에 전기가 흥성하게 원인으로 다음의 가지를 있다. 첫째, 남희의 발전이다. 남희는 송대에 생겨났지만 원대에는 잡극의 극성으로 빛을 보지 못하다가 명대에 들어와 잡극의 장점들을 흡수하여 형식과 예술상에서 크게 진보하여 전기의 발전을 가져왔다. 둘째, 군주와 귀족의 제창이다. 명초에 군주와 족들이 모두 전기를 좋아하여, 태조(太祖: 朱元璋) 「비파기( )』를 사서오경에 견주었으며 그의 아들 주권() 손자 주유돈(朱有燉) 등도 모두 전기를 창작하여 전기의 활성화에 이바지했다. 셋째, 문인들의 참여이다. , 원대에는 문장이 엉성하고 형식이 산만했던 남희가 명대 문인들의 참여로 문학성이 제고되고 예술기법이 성숙해져 수준 높은 전기가 창작되었다. 전기는 잡극과 여러 측면에서 다른 점이 많은데, 주요 사항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구성상 잡극은 매본() 4 절로 구성되며 설자() 극의 앞이나 중간에 삽입하지만, 전기는 잡극의 절에 해당하는 척의 수에 제한이 없으며 1척을 가문 또는 개장(開場), 개종(開宗)이라 하고 전체 극의 대의를 설명한다. 창법상 잡극은 매절에서 사람이 독창하지만, 전기는 독창·대창·합창을 있다. 음률상 극은 절에 하나의 궁조와 한운만을 사용하지만, 전기는 척에 일정한 궁조가 없고 운도 바꿀 있다. 문체상 잡극은 대부분 구어체를 사용하지만, 전기는 변려체도 사용한다. 정조상 잡극과 전기는 중심지역이 다르고 악기와 악보가 달라 곡의 정조와 흥취가 서로 다르다. 이상과 같이 전기는 구성·창법· ·문체 여러 면에서 잡극보다 훨씬 자유롭다는 것을 있다.

명대 전기

명대 초기를 대표하는 전기 작품은 이른바 '5 전기' 알려진 『살구기(殺狗記)·『백토기(白兎記)·『배월정(拜月亭)·『형차기』·『비파기』이다. 「살구기」 [36] 서희(徐田臣) 작이라고 하나 민간의 작품으 추정된다. 작품은 원대 소덕상() 잡극 『살구권부(殺狗勸夫)』를 개작한 것으로, 곡사() 비속하다고는 하지만 제재의 시대성과 무대예술의 통속성이 고려되어 있다. 「백토기』[32] 작자 미상의 민간 작품이다. 작품은 송대 『오대사평화(五代史話)』의 유지원() 고사와 금대 유지원 제궁조遠宮調)』를 개작한 것으로, 곡사가 질박하고 감정이 진지하여 감동을 준다. 『배월정』 [40] 일명 유규기(幽閨記)』라고도 하며, 원대 시혜의 작이라고 하나 민간 작품으로 추정된다. 작품은 대관한경() 잡극 『규원가인배월정(閨怨佳人拜月亭)』을 개작한 것으로, 등장인물의 신분에 맞는 어투를 사용하여 생동감이 넘친다. 『형차기』[48] 주권() 작이라고 하며, 원대 가단구경 중柯) 작이라는 설도 있다. 작품은 왕십붕朋) 고사를 상연한 민간의 여러 남희를 개작한 것으로, 곡사가 청신 하고 비애감이 뛰어나 감동을 준다. 「비파기』[42] 5 전기 가운데 유일하게 작자가 분명하게 밝혀진 작품으로 고명(高明: 1305?~?) 작이다. 고명은 지나친 형식미를 지양하고 윤리도덕과 사회문제를 중시했으며, 희곡의 가치와 공효성을 인식하여 희곡을 교화의 공구로 삼고자 했다. 작품은 송대 희문() 『조정녀채이랑(趙貞女蔡二郞)』을 개작 것으로, 절묘한 곡사, 극중 인물의 뚜렷한 개성 표현, 생동감 넘치는 대화 등으로 극의 예술성이 매우 높아 명초 5 전기 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비파기』 20 「쌀겨로 연명하다[糟糠自厭]

((조오낭) 등장하여 노래한다) [산파양]

황량하기 짝이 없는 여물지 않는 흉년, 아득히 멀리 떠나 돌아오지 않는 낭군.

안절부절 초조함을 견지지 못하는 양친, 많고 나약하여 처리 서툰 외로운 .

옷은 모두 저당 잡혀서, 오라기도 몸에 걸치지 못하네.

번이나 죽어 버릴까 했지만, 아들 없는 시부모님을 누구에게 돌봐 달라 거나? (합창한다)

생각하나니, 허공에 나부끼는 듯한 운명을 어찌 기약하리? 견디기 힘들구나! 정말로 재난과 위험은

【전강]

방울방울 흘러도 마르지 않는 눈물, 얼기설기 뒤엉켜 풀기 어려운 근심의 실마리.

불거지도록 깡말라 부지하기도 힘든 병든 , 전전긍긍 살아가기 힘든 시절.

겨야, 너를 먹지 않자니, 굶주림을 어찌 견디란 말이냐? 너를 먹자니, 어떻게 넘기란 말이냐?

(시늉한다) 괴롭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먼저 죽는 낫겠지만,

양친이 돌아가실 때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앞부분을 합창한다)

(조오낭): 내가 아침에 시부모님께 진지 올렸는데, 맛난 어채를 사고 싶지 않은 아니라 돈이 없으니 어찌하랴. 그런데도 뜻밖 시어머님은 다짜고짜 원망하시며, 혼자 몰래 먹는다고 시네. 내가 먹는 것이 오히려 쌀겨인줄도 모르시니, 이런 먹는다고 감히 알려드리지 못해서 피했을 뿐인데. 설령 죽어라 원망하신 대도 감히 말씀드릴 수는 없네. 괴롭구나! 정말 쌀겨를 어떻게 먹으란 말인가? (먹는 동작을 한다) (노래한다) ...... (중략)......

[옥포두]

온갖 폐를 끼치는군요. 제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요? 결국 어머님 시신을, 관도 없이 황무지로 보내는 아니겠지요?

(합창한다) 지경을 서로 바라보니, 사람이라면 눈물 흘리지 않는 없네.

원수가 아니면 다시 만나지 않는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이라네. ((장태공) 노래한다)

【전강]

너무 염려하지 마오. 시어머니 장례비는 나한테 있으니.

부인은 단지 정성껏 시아버지를 모셔서, 시아버지마저 구완하지 못하게는 하지 마시오. (앞부분을 합창한다)

(조오낭): 이렇게 해주시니 아저씨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단지 없이 어머님을 보내드려야 하다니!

(장태공): 부인은 안심하시오. 일은 깊이 상의하면 반드시 해결될 게요. (합창한다)

집에 돌아가서는 소리로 곡도 못할 테니, 듣는 사람마다 애간장 끊어질까 걱정이네. (함께 퇴장한다)

(旦唱)【山坡】亂荒荒豊稔的年歲遠迢迢回來的夫壻急煎煎 不耐煩的二親, 軟怯怯不濟事的孤身己, 盡典, 寸絲不掛體, 幾番要賣了 奴身已, 爭奈沒公婆敎誰看取? ()思之, 虛飄飄命恁期? , 實丕 災危!

【前腔】滴溜溜難窮盡的珠淚, 亂紛紛難寬解的愁, 骨崖崖難扶持的病 , 戰欽欽難推過的時和歲, 逗糠阿, 我待不吃, 敎奴恁忍飢? 我待吃阿, ?! 思量起來不如奴先死, 圖得不知他親死時. (合前) () 奴家早上安排些飯與公婆, 非不欲買些鮮菜, 爭奈無錢可買, 不想婆婆 抵死埋, 只道奴家背地自吃了甚, 不知奴家吃的却是細米皮糠, 吃時不 敢他知道, 只得回避便埋寃殺了, 也不敢分說苦! 眞實溢怨的吃得? (吃介) () ......(중략).

【玉包肚】千般生受, 敎奴家如何措手? 終不然把他骸骨, 沒棺槨送在荒邱? () 相看到此, 不由人不珠淚流, 正是不是寃家不聚頭(末唱)

【前腔】不須多憂, 送婆婆是我身上有, 但小心承公公, 他又成不 . (合前) (旦白) 如此, 謝得公公. 只爲無錢送老娘! (末白) 娘子放心, 須知此事有商 .()正是,歸家不敢高聲哭,只恐人聞也斷腸. (井下)

명대 중기의 전기는 성격과 곡조상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두드러진 작가로는 전기의 교화성을 선양한 구준) 전기 변화를 이끈 소찬() 있다. 구준(1420~1495) 대유() 대신(大臣)임에도 불구하고 희곡을 민중교화와 윤리선양의 예술로 인식하여 명대의 희곡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작품으로 『오륜전비기(五倫全備記)』등이 있다. 소찬은 구준을 계승하여 '이재도(以劇道)' 관념으로 전기를 지었는데, 그의 작품 『향낭기()』는 변려체와 전고를 량으로 사용하여 희곡의 통속성을 잃어버리고 전려화(典麗化) 경향을 보였다. 또한 시기에는 중국희곡사상 주목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바로 곤강(崑曲) 흥성이었다. 명대 중엽에는 익양강 (: 지방에서 발생), 여요강(浙江 지방에서 발생), 해염강(浙江 지방에서 발생), 곤산강(崑山中에서 ) 등의 지방 곡조가 각기 세력권을 형성하면서 발전했는데, 가정 (연간에 곤산() 사람 위량보(魏輔) 10년간의 연구 ·북곡의 장점을 흡수하고 곤산강을 개량하여 다른 지방의 곡조를 압도함으로써 전기의 곡조를 곤강으로 통일시켰다. 이러한 곤강을 사용하여 창작된 최초의 극본은 양진어(辰魚: 15201580) 지은 『완사기(浣記) [45]이다. 작품은 (() 전쟁 범려(范蠡) 서시(西施) 고사를 극화한 것으로, 곤강이 다른 곡조를 압도할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의의가 있다. 『비파기』가 체제상의 혁신을 가져왔다면, 『완사기』는 곡조상의 혁신을 일으킨 작품이라 있다. 그밖에 강으로 창작된 주요 작품에는 『수호전』의 임충() 고사를 극화한 이개선(李開先: 1501~1568) 『보검기(寶劍記), 명대의 간신 엄숭() 부자가 충신들을 박해한 고사를 극화한 왕세정(世貞: 1526~1590) 『명봉기(鳴鳳記), 당대 전기소설 『규염객(客傳)』의 홍불) 고사를 극화한 장봉익(張鳳: 1527~1613) 『홍불기(紅拂記) 등이 있다. 곤강은 중국 희곡사상 일대 혁신을 일으켰으며, 명대 중엽 극단의 독보적인 존재로서 청대 건륭乾隆) 말년까지 300여년 동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명대 말기의 전기는 곡률·궁조·곡사·창법 등에 치중하고 구성이나 내용. 대사 등을 소홀히 하여 희곡이 격률과 문사 방면으로 발전함으로써, 이상 민중의 오락물이 되지 못하고 인들의 감상 작품으로 변해버렸다. 시기를 대표하는 유파 격률파와 문사파이다. 격률파는 오강파(吳江派)라고도 하며, 오강 사람 심경() 중심으로 여천성(복세신(世臣왕기덕() 등이 여기에 속한다. 심경(1555?~1615) 곡사와 곡률의 합치를 주장했 으며, 작품으로는 「속옥당전기(屬玉堂傳奇) 17 가운데 「의협 ()』가 유명하다. 격률파는 곡률에만 집착하여 내용이 약한 형식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었다. 문사파는 임천파(臨川派) 또는 옥명당파(玉堂派)라고도 하며, 임천 사람 탕현조(湯顯祖) 중심으로 완대성(阮大鉞),오병(吳炳),이옥등이 여기에 속한다. 탕현조 (1550~1617) 곡률보다는 곡사를 중시했으며, 품으로는 '옥명당사몽(玉茗堂四夢)' 유명하다. '옥명 당사몽' 당대 전기소설 『이혼기(魂記)』를 개편한 것으로 '사몽'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환혼(魂記) [일명 『곽소옥전(小傳)』을 개편한 『자차기』, 『남가태수전(南柯太守傳)』을 개편한 『남가기』, 『침중기』를 개편한 『한단기』를 말한다. 문사파는 유미주의의 경향이 후하지만 문학적으로는 격률파보다 예술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명대에는 희곡문학이 유례없는 성황을 이루게 되자 그에 따른 곡선집(曲選集) 곡론서(曲論書)들이 많이 나왔는데, 중에서 원과 중엽의 희곡 가와 작품을 논평한 왕세정의 『곡조(), 남곡의 창법과 곡률을 논한 남곡보() 보감인 심경의 『남구궁보(南宮譜), 궁조와 곡운을 기준으로 작품을 선별하고 품평한 심경의 『남사선운(南詞選韻), 원말부터 명말까지의 전기를 품평한 여천성의 『곡품』, 『곡품』과 쌍벽을 이루는 곡론서인 왕기덕의 「곡률(曲律), 『남구궁보』와 쌍벽을 이루는 북곡보의 보감인 이옥의 『북사광정보(詞廣正譜), 원과 명초 극목() 수록하고 품평한 주권의 『태화정음보(太和音譜), 중요한 희곡 자료와 남희에 대한 비평을 수록한 서위의 『남사서록(詞敍錄) 등이 중요 저작으로 꼽힌다.

청대 전기

청대의 전기는 명대 전기를 이어 받아 실질적으로 청대 중엽까 전통 희곡의 중심이 되었는데, 엄밀한 구성, 풍부한 정감, 아한 언어, 치밀한 곡률 등으로 문학작품으로서는 비교적 우수하 지만 무대예술로서는 결함이 있었다. 주요 작가로는 이어(李漁홍승(洪昇공상임() 있다. 이어(1611~1685) 청대 최고의 곡론가이자 극작가이다. 한정우기(閑情偶寄)』에서 연출, 구성, 곡사, 곡률, 빈백(賓白), 무대설치 희곡 전반에 걸쳐 체계적인 이론을 전개하여 희곡 문학의 가치를 인식하고 무대효과와의 결합을 중시했으며, 가벼운 조소와 해학을 삽입하여 희곡의 풍치를 농후하게 드러냈다. 또한 빈백을 중시하고, 알기 쉽고 통속적인 곡사를 사용했으며, 모방과 전고를 피하고 수사를 중시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입옹십종곡(笠翁十種曲) 『내하천』이 유명하다. 홍승(1645~1704) 현종과 양귀비의 애달픈 애정고사를 극화한 『장생(長生殿)[50] 지었는데, 『장생전」은 생동감 넘치는 극정(), 탁월한 성격묘사, 치밀한 구성, 무대연출의 실제 효과 고려, 정련된 곡사 예술성이 뛰어나다. 공상임(1648~1718) 홍승과 함께 '남홍북공 (南北)'이라 불린다. 그의 대표작인 『도화선( 花扇)[44] 명말 문인 공자 후방역(侯方域) 명기 이향군(李香君) 파란만장한 애정고사를 배경으로 명말의 어지러운 사회상과 조정의 부패를묘사한 것인데, 애정극이자 역사극으로서 주제표현이 명확하고, 역사적 사실과 예술적 진실을 결합했으며, 세련된 곡사에 명한 뜻을 실어 언어운용이 뛰어나다. 밖에 장사전(蔣銓: 1722~1784) 탕현조(湯顯祖) 생애를 극화한 임천(臨川夢)』을 지었다.

청대 지방희와 경극의 형성

청대는 고증학의 학술기풍 아래 문인들이 사장·경학 훈고() 등을 숭상하고 희곡을 비롯한 통속문학을 천시함으로써, 전반적으로 희곡의 발전이 쇠퇴 또는 의고적인 수준에 머물게 되었지만, 청대 중엽 이후에는 토속조의 지방희가 흥성하 민간연예의 하나로 자리 잡으면서 청대 희곡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했다. 청대 중엽 건륭연간(乾隆年間: 1736~1795)에는 전통 희곡인 곤곡() 지칭하는 '아부()' 대하여 토속조의 지방희가 새롭게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화부()' 또는 '난탄( )'이라 불렀다. 지방희의 종류에는 지방의 고유한 곡조에 따라 익양강(弋陽腔한조(漢調경조(京調휘조(徽調) ·천조(川調). 이황조(二黃調서피조(西調방자강(나라강腔) 여러 강조(腔調) 있었다. 이러한 지방희 가운데 일부 강조는 소멸되거나 또는 흡수 통합되어 새롭게 변모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독립성을 유지한 발전하여 지금까지 주요 지방극으로 상연되고 있다. 청대 후기에는 중국희곡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는 경극(京劇) 등장이 있었다. 경극은 호북(湖北) 지방의 황강(黃岡황피()에서 발생한 이황조와 감숙(甘肅) 지방에서 발생한 서피조가 융합된 피황(皮黃) 건륭 말년에 4대휘반(四大徽班) 의해 북경으로 도입된 , 여러 강조의 장점을 흡수·발전하여 북경의 극단을 제압함으로써 모습을 드러냈다. 이러한 경극의 완성은 경극의 비조로 추앙받는 정장경(程庚)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는 동료들과 함께 피황을 바탕으로 곡의 장점도 흡수하여 경극을 완성시켰다.

경극의 주요 특징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곡사는 전기 잡극만 못하지만 희곡의 본질상 진보했다. 둘째, 척수나 절수의 제한을 받지 않고 장단이 자유롭다. 셋째, 무대배경·음악· (調) 등의 구성이 비교적 복잡하여 곤곡처럼 단조롭지 않다. 넷째, 고사는 대부분 고극()에서 취했지만 언어가 통속적이고 민중 심리에 적합하여 무대연출 효과가 높다. 경극은 이후 매란방(梅蘭芳) 같은 불후의 명배우의 활약에 힘입어 중국 희곡의 대표적인 존재로서 지금까지 공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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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

身手應是如瓦碎 手足當時如粉沫 沸鐵騰光向口澆 着者左穿右穴 銅箭傍飛射眼睛 劍輪直下空中割

변문

당대에는 민간문학의 일종으로서 변문()이라는 독특한 문학형식이 새롭게 등장하여 발전했다. '변문' '불경변상지문(佛經變相之文)'이란 뜻으로, 불곡(佛曲속문(俗文강창문(講唱文) 등으로도 불린다. 변문은 동안 잊혀져 있다가 1907 5 감숙성(甘肅省) 돈황(敦煌) 천불동(千佛洞) 석실에서 헝가리의 지리학자 슈타인이 대량의 필사문헌과 도화를 처음으로 발견함으로써 세상에 알려 지게 되었다. 변문은 불교 교리의 전파 수단에서 비롯되었다. 승려들은 이해 하기 어려운 불교 교리를 널리 전파하기 위하여 불경의 내용을 통속적인 고사로 바꾸는 동시에 음악적인 성분을 가미하여 일반인들이 쉽게 기억할 있도록 했는데, 이것을 속강()이라고 하며 속강을 문자로 정착시킨 것이 변문이다. 또한 남북조·수대 이미 불경 독법의 수단으로 전독(정확한 음조와 박자로 불경을 낭송하는 ), 범패(梵唄: 불교 敎義를 찬송하는 노래), (唱導 佛道의 강연과 설법) 있었는데, 안에 이미 강창의 수법이 들어 있었다. 변문의 형식은 먼저 산문으로 불경의 뜻을 강술한 다시 운문으로 노래하는 방식, 산문으로 고사의 실마리를 풀어낸 이어서 운문으로 자세히 서술하는 것으로 산문과 운문의 내용 중복되지 않는 형식, 산문과 운문을 혼용하여 구분 없이 사용 하는 형식 등으로 나눌 있다. 변문의 내용은 크게 불사(佛事) 관한 것과 사사(잡사 (雜事) 관한 것으로 분류할 있다. 전자는 불교 경전에서 제재를 취한 불교설화로서 『유마힐경변 (維摩詰經變文), 『항마변문(降魔變文), 『대목건련명간구모변 (大目乾連冥間母變文)』등이 있다.

「목건련이 지옥에서 어머니를 구하는 변문

[大目乾連冥間母嬰]

......(전략)...... 목련이 말을 마치고 다시 앞을 향하여 갔다. 잠시 뒤에 지옥에 도착하여, 목련이 옥주에게 아뢰었다. “이 지옥에 혹시 청제부인이 계십니까? 분은 소승의 어머님이시 기에 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옥주가 대답했다. "스님, 지옥엔 모두 남자들뿐이고 여자는 명도 없소이다. 도산 지옥에 가서 물어보시면 틀림없이 만날 있을 것이오." 목련은 앞으로 가서 지옥에 도착했는데, 왼쪽은 도산이라 하고 오른쪽은 검수라 했다. 지옥 안에는 날카로운 칼이 서로 향하고 있고 피가 뚝뚝 흘러내렸는데, 옥주가 무수한 죄인을 몰아서 이지 옥으로 들여보내고 있었다. 목련이 물었다. “이곳은 무슨 지옥이라 합니까?" 나찰이 대답했다. “이곳은 도산검수라는 지옥이오." 목련이 물었다. “이 지옥에 있는 죄인들은 무슨 죄업을 지었기에 지옥에 떨어진 것입니까?" 나찰이 대답했다. " 지옥에 있는 죄인들은 살아 있을 사원을 훼손하고 도량을 더럽혔으며 사원의 과일을 함부로 쓰고 사원의 땔감을 훔치길 좋아했는데, 오늘은 손으로 검수를 잡고 오르다 마디마디가 모두 끊어져 떨어지는 벌을 받고 있소이다." 도산엔 백골이 종횡으로 난무하고, 검수엔 천만 개의 사람 머리가 달렸네. 도산에 오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사원에 좋은 흙을 채우고, 과수를 재배하여 가람으로 들여오고, 종자를 뿌려 사원을 경작하면 된다네. 너희 죄인들은 말하지 말라. 영겁토록 죄를 받아 항사를 건너나니, 부처께서 열반하신 후에도 벗어나지 못한다네. 지옥은 동서로 수백 리요, 죄인들은 어지럽게 달려 다니며 어깨를 서로 줍는다네. 바람이 불을 지펴 앞에서 타오르는데, 옥졸은 몽둥이로 뒤에서 밀어 넣네. 몸은 응당 기와조각처럼 부서지고, 수족은 즉시 가루처럼 빻아지네. 끓는 쇳물의 치솟는 빛이 입으로 흘러 들어가면, 닿는 곳마다 왼쪽으로 뚫리고 오른쪽으로 터지네. 구리 화살이 옆에서 날아와 눈동자에 박히고, 바퀴가 곧장 내려와 공중에서 찢어버리네. 말하노니 동안 사람으로 환생하지 못한 , 철파루에 모여 그렇게 살아간다네. ...... (중략)......

목련은 불법의 위력을 받들어 몸을 솟구쳐 아래로 향했는데 바람과 화살처럼 빨랐다. 잠깐 새에 곧장 아비지옥에 도착했다. 공중에서 보니 50명의 우두귀신 · 마두귀신과 나찰· 야차가 검수 같은 이빨과 쟁반 같은 입과 뇌성 같은 목소리와 번갯불 같은 눈을 하고서 하늘을 향해 지키고 있다가, 목련을 보고 멀리서 말했다. "스님은 오지 마시오! 이곳은 좋은 곳이 아니오. 이곳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오. 서쪽의 검은 연기 속에는 온통 지옥의 독기가 퍼져 있으니, 그것에 쏘이면 스님은 먼지가 것이오." 스님은 들어보지 않았소? 아비지옥의 철석에 닿으면 모두 죽게 된다는 .

지옥은 어디에 있는가? 서쪽의 자욱한 검은 연기 속이라네.

목련이 항사처럼 염불을 외우니, 지옥도 원래 집이라네.

눈물 닦으며 공중에서 석장을 흔드니, 귀신이 즉시 삼처럼 쓰러지네.

흐르는 땀은 비에 젖은 하고, 정신이 혼미하여 헉헉거리네.

손에 삼만봉을 놓고, 어깨 위로 멀리 육설차를 던지네.

여래께서 나를 보내 어머니를 만나, 아비지옥의 수렁에서 구하게 하셨네.

목련이 곧장 몸을 솟구쳐 나아가니, 옥졸들 서로 쳐다보며 감히 막질 못하네. .....(후략).......

(前略).........目連言訖, 更向前行. 之間, 至一地獄, 連啓 : "此箇地獄中, 有提夫人巳? 是頻道阿故來認覓.”獄主報言: “和尙, 此獄中總是男子, 並無女人, 向前問有刀山地獄之中, 問必應得見" 目前行, 至地獄, 左名山, 右名劍樹地獄之中, 鋒劍相向, 涓涓血流, 見獄主驅無量罪人, 入此地獄, 目連問曰: "此個名何地獄?"羅察答言:" 是刀劍樹地獄"目連問曰: "獄中罪人, 作何罪, 當墮此地獄.”獄報 :"獄中罪人生存在日, 侵損常住游泥伽藍, 好用常住菓, 盜常住柴薪, 交伊樹,支支節節,皆零落處." 刀山白骨亂縱橫,劍樹人頭千萬顆. 欲得不攀刀山者,無過寺家好土, 栽接木入伽藍,布施種子倍常住, 箇罪人不可說,累劫受罪度恒沙,從佛涅盤仍未出 此獄東西數百里,罪人亂走肩相掇, 業風吹火向前燒,獄卒巴從後押. 身手應是如瓦碎,手足當時如粉沫, 沸鐵騰光向口澆,着者左穿右穴 銅箭傍飛射眼睛,劍輪直下空中割, 言千載不,鐵把樓聚還交活 ......(+)......

目連承佛威力,騰身向下,急如風箭,須臾之間,即至阿鼻地獄,空中見五 十箇牛頭馬腦,夜叉,牙如劍樹,口似血盆,聲如雷鳴,眼如制電,向天 曹當直,逢着目連,遙報言:“和尙莫來,此間不是好道,此是地獄之路,西 邊黑煙之中,總是獄中毒氣着,和尙化灰塵處” 和尙不聞道阿鼻地獄,鐵石過之皆得殃 地獄言何處在,西邊那黑煙中. 念佛若恒沙,地獄原來是我家, 拭淚空中搖錫杖,鬼神當即倒如麻, 白汗交流如雨濕,昏迷不覺白噓嗟 手中放却三慢棒,臂上遙六舌叉. 如來遣我看慈母,阿鼻地獄求波, 目不住騰身過,獄卒相看不敢遮 ......(후략)......

후자는 역사적인 사실이나 인물에 관한 고사를 변문의 형식을 빌려 강술한 것으로, 이는 변문이 점차 불경과의 관계를 떠나 중오락으로 발전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순자지효변문( 至孝變文), 『오자서변문(伍子胥變文)[일명 「列國傳』, 『왕소군변 문昭君)[일명 「明妃傳] 등이 있다. 변문이 후대 문학에 미친 영향은 다음의 가지로 정리할 있다. 첫째, 설화(說話) 직접 연계되어 송대 화본() 소설의 발생에 영향을 미쳤다. 둘째, 강창문학의 시조로서 고자사·제궁(宮調탄사(彈詞보권()등과 직결되는 강창 문학의 계보를 형성시켰다. 셋째, 희곡에서 () () 용하는 것은 변문의 계시와 영향을 받은 것이다. 넷째, 장편소설 중간에 때때로 ·· 등을 삽입하는 것도 변문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제궁조

송대에 들어오면 변문에서 시작되었던 강창은 더욱 다양하게 발전하여 여러 형태로 분화되었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도시마다 와사() 구란(勾欄)이라고 불리던 유락() 장소들이 있었 , 그곳에서 고자사() · 전답(轉踏애사崖詞도진(陶眞). 제궁(복잠() 다양한 강창이 공연되었다고 한다. 중에서 제궁조는 상당히 규모가 컸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 대중적인 인기도 대단했다고 한다. 강창문학의 일종으로서 제궁조는 금대(金代) 크게 발전했다. 제궁조는 민간 예인(藝人) 당대의 속강(). 변문(變文), . 송대의사, 송대의 교방대곡(敎坊曲) 당시에 유행하던 속곡 (俗曲) 등을 흡수하여 만들어낸 것으로, 형식은 여러 궁조의 많은 단투() 연결하여 하나의 완전한 고사를 연출하는데 산문, () 운문을 사용했다. 주요 작품에는 작자 미상의 유지원제궁조(知遠諸宮調)』와 동해원(董解元) 『서상기제궁 (西廂記諸宮調)』가 있다. 「서상기제궁조』는 일명 동서상(西廂)』이라고도 하며, 작자 동해원(解元 해원은 당시 문인에 대한 통칭)이다. 작품은 당대 전기 『앵앵전()』의 비극을 희극으로 개편한 것으로, 사상과 내용이 심원하고, 구성예술이 치밀하며, 언어와 풍격이 아름답다. 특히 작품은 원대 왕실보(實甫) 잡극 『서상기 바탕이 되었다는 중국희곡사상 의의가 있다.

탄사

탄사() . 송대의 강창문학으로부터 발전된 것으로 () 함께 . 청대에 크게 유행했다. 지역은 주로 소주(蘇州남경(南京항주(杭州) 상업이 발달한 남부 도시에서 유행했다. 반주악기로는 삼현() 주로 비파 · 양금 등이 사용되었다. 형식은 운문과 산문을 혼용했 는데, 창사() 7언의 운문이 기본이며, 강백() 일반 설의 서술과 비슷하다. 탄사에는 표준어로 국음() 탄사와 방언으로 () 탄사가 있는데, 단편은 4~8, 중편은 10, 장편은 30 이상으로 되어 있어서 장단이 일정치 않다. 내용은 재자가인의 애정담이 대부분이고, 작자와 감상층이 대부 여성이다. 주요 작품에는 『재생연(再生緣)·『천우화(雨花)『진주탑(珍珠塔)·『의요전(義妖傳)』등이 있다.

고사

명·청대에 유행한 고사() 탄사와 마찬가지로 송대의 () 원대의 사화에서 발전된 것으로, 주로 북방 지역 에서 유행했다. 반주악기로는 북과 삼현이 주로 사용되었다. 형식은 탄사와 찬가지로 운문과 산문을 혼용하는데 운문은 7언이 기본이다. 중엽 이후에는 장편의 고사 가운데서 정채로운 부분만을 골라 강창하는 '적창()' 유행했다. 내용은 전쟁과 국가의 흥망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주요 작품에는 『삼국지』 『수호전』·『서 유기』·『봉신연의』 등의 장편소설과 『서상기」· 「백토기」 등의 극이나 전기를 개편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강창문학은 자체의 문학적 의미보다는 곡이나 소설과 같은 보다 발달된 후대의 문학양식들이 성립되는 있어서 모태 혹은 전단계의 역할을 했다는 역사적 의미가 중요시된다.

 

중국문학의 향기: 중국문학 장르별 이해

김장환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