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업 경쟁력]적재적소의 원칙-375

Crises often lead to extraordinary productivity and collaboration within organizatio ns by fostering focus, creativity, and cooperation among individuals and teams. For example, the Cuban Missile Crisis saw U.S. President Kennedy shift to open and coll aborative decision-making, enabling his team to respond effectively to the threat. S imilarly, during 9/11, the FAA grounded 4,600 flights in hours, and Verizon restored critical communication systems for the NYSE within days, showcasing teamwork an d rapid problem-solving. These examples highlight how crises can unlock latent po tential, drive innovative solutions, and break down hierarchical barriers, offering le ssons for applying such heightened productivity and collaboration during normal o perations.

 

위기는 생산성 향상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위기상황에서 이런 위력이 발생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 이다. 평소에는 서로 협력할 수도, 협력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 하던 사람들이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자연스럽게 서로 손을 잡 는다. 위기가 해소된 뒤에도 이런 식의 협력관계가 계속 지속 된다면 그 기업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① 갖가지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온다

모든 사람들이 최대한 빨리 위기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아드레날린 분비가 촉진된다. 저마다 집 중적인 노력을 기울이면서 창의적인 사고로 아이디어를 짜내 기에 부산하다. 그에 따라 좋은 아이디어는 채택되고 시원찮은 아이디어는 곧바로 폐기된다. 평상시보다 위기를 맞았을 때 더 많은 아이디어가 나온다면, 그런 창의적 에너지를 평소에도 계속 발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② 다른 사람의 의견과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위기를 맞으면 모든 부서와 조직이 한층 원활하게 협력하는 것처럼, 개개인도 견해 차이나 직위의 차이를 떠나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즉 누가 공을 세우고 인정을 받느냐는 문 제 따위는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다.

③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고 실행하는 데 적극성을 띠게 된다

타이레놀 복용 사망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존슨&존슨 사 내부에서 타이레놀의 포장 형태를 바꿔 내용물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게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제시되었을 법하다. 그러나 끔찍한 사고가 발생할 때까지는 아무도 포장 형태를 바꿔야 할 필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사고가 일어나 새로운 규정이 마련되 면서 타이레놀뿐만 아니라 제약업계의 다른 업체들도 포장 형 태를 바꾸게 되었다. 위기가 발생하면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게 된다. 평 소에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이를 지지해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입밖에 꺼낼 생각을 안 하던 사람들도 위기가 닥치면 서슴없이 아이디어를 내놓고, 다른 사람들도 남이 내놓는 아이 디어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인다.

평소에도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내 놓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회사의 혁신성은 두드러지 게 높아질 것이다.

④ 직원들의 잠재능력이 발현된다

홍보 담당자가 보도자료를 이토록 빨리 쓸 수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고객 설득 작업에 나선 직원이 사람들을 그렇게 잘 다루는 줄 누가 알았겠는가?

존슨&존슨 사 회장은 위기관리 업무에 전념하면서 회사의 일상적인 경영 업무를 다른 중역에게 맡겼는데, 이 중역은 자 신에게 리더십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처럼 위기상황은 임직원들의 잠재역량을 이끌어낸다. 만약 기업이 일상적인 활동 속에서 이런 잠재능력을 발휘하도록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인력을 늘리거나 인건비를 추가하지 않고도 직 원들의 능력을 극대화함으로써 최상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 이다.

⑤ 무사안일한 태도에서 벗어나 생산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

자기 업무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게 아니라면 문제점이 있어 도 지나쳐버리는 경향은 임직원 사이에서, 부하직원이 상사를 대하는 태도에서 습관적으로 드러난다. 대체로 사람들은 평지풍파를 일으키려 하지 않는다. 긁어부 스럼을 만드느니 가만히 앉아 중간이나 가자는 생각을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문제가 생겨도 적당히 넘겨버리고, 개선방안을 알고 있어도 그런 생각을 남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위기가 발생해 사태가 심각해지면 이런 적당주의가 사라진다. 사람들은 조직이 위기를 맞았으니 자신의 관심이 필 요하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위기가 지속되는 동안은 조직 내 상향성 커 뮤니케이션이 늘어난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의견과 아이디어를 내놓음으로써 실적 과 성과를 향상시키는 데 장애가 되는 많은 요인들을 제거할 수 있다. 평상시에도 위기상황이 몰아오는 이런 참신한 바람이 인다면 얼마나 생산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겠는가?

⑥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더라도 업무 성과가 크게 향상된다 자연스럽게 업무 능률이 오르는 현상은 평사원보다 임직원 가운데에서 두드러진다. 물론 위기상황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임직원이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체로 위기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두드러 진 주역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임직원들이 허심탄회한 마음 을 갖고 경계심과 인식능력을 한껏 고조시킨 결과다. 모두가 개방적인 의식을 갖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점이 뛰어난 주역들의 등장과 기여를 이끌어낸다.

위기대응 행동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극복한다

이제 다른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위기대응 행동이 혼란스런 상황을 극복하면서 사태를 정상화시키는 과정을 살펴보자.

○ 쿠바 미사일 위기를 이겨낸 주역들

정부가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일하거나 매우 능률적으로 움 직이는 조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대한 조직도 위기상황에 부닥치면 평소와 달리 긴장도 를 한껏 높여 짧은 시간 안에 대단한 성과를 이뤄낼 수 있다. 냉전시대를 돌이켜볼 때 미국이 쿠바 미사일 위기 때만큼 위 험했던 적은 없었다.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의 감독 아래 쿠바에 공격형 미사일 기지가 구축되고 있다는 정보를 입 수하고 참모들과 함께 곧바로 위기대응 체제로 들어갔다. 당시는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침공 결정의 참담한 패배라는 쓰디쓴 경험을 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의 대응은 쿠바 침공 결정 때와는 큰 대조를 보였는데, 케 네디에게 한 번의 경험이 있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케네디가 쿠바의 피그만을 침공하도록 승인한 것은 1961 4월이었는데, 널리 알려진 대로 이 작전은 완전한 실패로 끝났 다. 쿠바 망명자들로 구성된 침공군은 쿠바에 상륙한 직후 피 델 카스트로의 정부군에 의해 수백 명이 사살되고 약 1,200명 이 생포되었다. 케네디는 이 작전의 성공 가능성에 관한 CIA와 군 지도자들의 견해를 자신이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했다. 케네디의 쿠바 침공 결정과 관련해 꼭 지적해야 할 점은 그 에게 자문그룹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그룹이 해야 할 역할 은 대통령이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자문단과 의 첫 회동에서 케네디는 이 작전의 재가 의지를 공개적으로 강하게 드러냄으로써 반대 의견이 나오는 것을 사실상 봉쇄해 버렸다. 당시 쿠바 침공은 위기상황에 대응하는 행위가 아니었기 때 문에 이 회의에 참석한 각료들과 보좌관들은 대통령의 의지를 그대로 존중했다. 이 자문단은 새로 구성된 위원회였고 사실상 대통령이 좌지우지하는 조직이었기 때문에 그의 계획에 반대 의사를 밝히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케네디를 경영관리자로 본다면 그는 정확한 정보를 제대로 취합해 검토하지 않은 탓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옳게 판 단하지 못했다. 역사가들이 이 침공을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작전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케네디가 허심탄회한 의견 개진 기 회를 봉쇄해버렸기 때문이다. 이 작전의 의미와 필요성, 성공 가능성을 정확하게 평가하려면 자유롭게 찬반 의견을 밝힐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케네디가 그런 기회를 막아버린 셈이었다. 그런데 위기상황이 닥치면 이런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질까? 쿠바 침공 작전이 실패로 끝난 지 1년 반이 지난 뒤에 구성원 이 거의 바뀌지 않은 이 자문단이 다시 회의를 갖고 쿠바 미사 일 위협에 대한 대응방안을 협의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회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케네디가 쿠 바 침공 문제를 협의하던 때의 잘못을 깨닫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는 갖가지 선택방안이 충분히 협의되고 그 과정에서 반대의 견이 자유롭게 개진되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 쿠바 침공 때는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쿠바 미사일 위기 때는 절박감이 회의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대통령 자문위원들은 논의 과정에서, 대부분의 다른 조직보다 이기적인 방어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편이다. 그 러나 14명으로 구성된 이 자문단은 평소 서로간에 드러냈던 거 리감과 장벽을 걷어내고 논의를 원만하게 진행시킬 수 있었다. 모든 위원들은 다함께 지고 있는 막중한 임무에 관심을 집중시 키면서 서로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그래 서 갖가지 아이디어와 의견이 그때그때 신속하고 자유롭게 개 진될 수 있었다. 자문단은 여섯 가지 대응방안을 내놓았다. 물론 최종적으로 이 중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은 케네디의 몫이었다. 허심탄회 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토의ㆍ검토된 결과인 만큼 케네디 로서는 가능한 온갖 방안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케네디는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는 제한된 대응으로서 소련 의 미사일 운송선들을 해상에서 봉쇄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물 론 해상봉쇄로 인해 위기는 절정에 이르렀으나, 결국 소련 선 박들은 해상 대결을 회피했다. 뒤이어 미사일 기지를 해체하는 내용의 합의안이 타결되었다. 이처럼 일단의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13일 동안 정력적으로 움직이면서 신속한 대응조치를 취해 긍정적인 성과를 이뤄냈 다. 위기상황이 닥친 탓에 이들이 중요한 문제에 집중적인 관 심과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09.11 테러를 이겨낸 과정

세계무역센터(WTO) 쌍둥이 빌딩에 대한 9·11 테러를 둘 러싸고 그 동안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졌다. 소방대원과 경찰, 구조대원들의 눈부신 활동은 여러 차례에 걸쳐 상세하게 보도되었다. 또한 자원봉사자들과 시민단체도 대단한 활동을 벌였다. 정부기관의 대처능력도 뛰어났다. 그들이 그렇게 헌신 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는 위기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테러공격이 감행된 지 세 시간도 채 안 되는 사이 에 연방항공청이 미 대륙 상공을 비행하는 항공기 4,600대를 모조리 착륙시키는 데 성공한 사실을 기억하는가? 연방항공청은 이런 일을 연습해보기는커녕, 한 차례 시도할 계획을 세워본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위기상황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한 가지 목표, 즉 모든 비행을 즉각 중단시켜야 한다 는 목표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다. 막후에서 전개된 또 하나의 눈부신 활동은 뉴욕증권거래소 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증권거래소 통신망은 9·11 테러공격 이 감행되면서 곧바로 파괴되었다. 베리존 커뮤니케이션은 이 위급한 상황을 타개해야 했다. 이 회사는 뉴욕증권거래소와 연결된 전화회선의 80%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무역센터 가까이에 있는 교환시설이 파괴되면서 거래소와 많은 회원사의 회선이 끊어졌다.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옆에 위치한 베리존의 통신 중추센터 에서는 평소 1,737명이나 되는 많은 인력이 근무하고 있었다. 하지만 케이블이 끊어지고 전력이 끊기고 대형 수도관 파열로 자가발전 시설이 침수되면서 통신 서비스는 완전히 중단되었 다. 다른 설비도 분진과 잿더미에 파묻히다시피 했다. 이런 상 황이다 보니, 빠른 시간 안에 시스템의 일부라도 되살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그러나 연방정부와 뉴욕시 관계자들은 통신시스템이 속히 복구되기를 바랐다. 이들은 뉴욕증권거래소의 재개장이 미국의 위기극복 능력을 전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상징적 조치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에 따라 다음 주 월요일에는 반드시 증 권거래소를 재개장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해졌다. 그렇다 면 준비작업은 나흘 동안에 끝마쳐야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불가능할 거라고 여겼다. 그렇지 않아도 바로 옆에 있는 무역센터 빌딩이 허물어지면 서 거의 혼이 빠지다시피 한 베리존의 직원들은 곧바로 여러 개의 팀을 만들어 이 엄청난 작업을 나눠 맡았다. 시스템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소프트웨어는 파손된 빌딩 안 에 있어 회수가 불가능했다. 결국 시스템을 처음 구축했던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소프트웨어 복제품 을 입수했다. 무역센터 빌딩에 있던 수많은 증권사들이 다른 장소로 이전 함에 따라 전화망 수천 회선을 새로 깔아야 했다. 베리존은 휴 대전화 통신망을 보완하고 그 일대에 24개의 고속데이터 링크 도 갖춰야 했다. 주말이 되고 점점 월요일이 다가오자 모두가 극도로 긴장했 다. 작업이 워낙 복잡해 베리존은 다른 업무는 거의 손도 대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자 이 회사는 작업을 제대로 진척시키기 위해 위기대응 심리를 이용했다. 우선 한 가지 목표에 모든 관심과 노력을 집중시켰다. 월요 일 아침에 뉴욕증권거래소가 다시 문을 열게 만들겠다는 목표 였다. 그에 따라 평소의 계층구조가 무시되는 대신, 작업 완결 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추구하는 조직구조가 갖춰졌다. 이런 구조 속에서 업무를 부여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보통 이상의 성과를 이뤄냈다. 더구나 직원들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마감기한에 시달리면서 도 온갖 지식과 지혜를 동원해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그들은 분발했을 뿐 아니라 한층 슬기롭게 움직였다. 베리존이 부분적이나마 통신망을 복구한 것은 월요일 새벽 5시였다. 마침내 뉴욕증권거래소의 개장 벨이 울리면서 금융시장은 다시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로버트 E. 레프턴 & 제롬 T 로브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