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ext explaints resilience and discusses the three componen. ts that constitute resilience: self-regulation ability, interpersonal skills, and positivi ty. It emphasizes that enhancing positivity can simultaneously improve self-regulat ion and interpersonal skills, and that anyone can increase their resilience by habitu ating positivity.
The brains of people with high resilience and those with low resilience respond diff erently to adversity, which can be observed through brainwave experiments. There are two methods of brainwave analysis: component analysis and frequency analysi s. Modern neuroscience primarily uses component analysis, especially event-relate ..d potential (ERP) analysis. Frequency analysis is used as a supplementary method, focusing on analyzing the brain's response to specific stimuli.
[철학_회복탄력성_3]
웬만한 불행한 사건은 당신을 흔들어 놓지 못한다. 오히려 역경은 당신을 더 높은 곳으로 올려놓기 위한 스프링보드 이니 즐겁게 받아들일 일이다. 이제 회복탄력성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인 자기조절 능력, 대인관계능력, 그리고 긍정성에 대해 설명하고 이러 한 요소들을 어떻게 강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살 펴볼 것이다.
성질 급한 독자를 위해서 먼저 결론부터 밝혀 두자면, 답은 긍정성의 강화다. 긍정성을 강화하면 자기조 절능력과 대인관계능력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긍정성을 습관화하면 누구나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다. 긍정성을 습관화한다는 것은 뇌를 긍정적인 뇌로 바꿔나간다는 뜻이다. 회복탄력성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의 뇌는 어떻게 다른가? 실수를 대하는 긍정적인 태도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의 뇌는 역경에 반응하는 방식이 다르다.
이는 뇌파 실험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뇌파 실험은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뇌의 반응 방식 을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 우 선 20대 젊은층 46명 중에서 회복탄력성 점수가 가장 높게 나온 두 명과 가장 낮게 나온 두 명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과 낮은 사람들의 뇌가 실수에 대해 어떻게 다르게 반응하는가를 살펴보기로 했다. 뇌파 측정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특정한 자극 직후에 나타나는 일정한 요소나 형태components를 측정 하고 분석하는 형태 분석이고 다른 하나는 독자들도 한 번 쯤은 들어보았을 알파파니 감마파니 하는 특정한 주파수를 분석하는 것이다.
형태 분석은 보통 자극이 주어진 후 0.5 초 이내에 뇌가 어떤 세기의 반응을 보이는지를 밀리세컨 드millisecond. 1,000분의 1초 단위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반면에 주파수 분석은 상당히 긴 시간-수 초에서 수십 초-에 걸쳐서 어떠한 주파수 - 뇌파 파장의 주기 – 가 나타 나는가를 분석하는 것이다.
주파수 분석은 상대적으로 측정 하기가 쉽기 때문에 100여 년 전부터 측정되고 연구되어 왔다. 그러나 주파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여전히 분명치 않다. 그것은 수많은 신경세포의 매우 다양한 활동을 한데 묶어서 측정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뇌파가 8~12 Hz 전후 - 1초에 10번 내외 진동에 움직이는 파장 을 알파파라고 하는데 이것은 어떤 일에 집중할 때, 잠자기직전, 지루할 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 그냥 멍하 니 있을 때 등등 다양한 경우에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알파 파의 의미는 특정한 뇌의 작용이나 기능과 연결시키기가 매우 힘들다. 온 신경을 곤두세워 집중하고 있을 때도 나타 나지만 지루하거나 졸리거나 멍하니 있을 때도 나타나는 것이 알파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현대 뇌과학의 뇌파 연구는 대부분 형태분 석 방법, 특히 사건유발전위event-related potential 분석을 사용한다. 주파수 분석은 보조적으로 사용되는 정도다. 사건유발전위에서 '사건'이라 함은 뇌파 실험에서 주어지는 특정한 자극을 말한다. 즉, 특정한 자극이 주어졌을 때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분석하는 것이다. 주파수 분석에서는 뇌파 반응의 크기보다는 파장의 주기를 분석하지만, 사건유 발전위 분석에서는 파장의 주기보다는 파장의 크기와 그 파장이 일어나는 시간대를 주로 분석한다.
충동통제력이 높다는 것의 의미
우리나라 사람들의 충동통제력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유난히 높은 편이다. 레이비치와 샤테의 회복탄력성 검사 도구를 통해 미국인과 비교했을 때, 회복탄력성의 여 러 요소들 중에서 한국인이 더 높은 수준을 보인 유일한 것 이 바로 충동통제력이었다. 다른 요소들은 현저하게 낮았 다. 우리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한국인들의 충동통제력이 높게 나타나는 것 자체는 일 단 높이 평가할 만 하다. 그러나 이러한 충동통제력이 건강 한 것이 되려면 그것은 반드시 긍정성이나 자율성과 균형 을 이루어야만 한다. 내가 하고 싶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이 니까,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의미있는 일 이니까 다른 충동을 통제해가면서 그 일에 집중하는 것은 건강한 충동통제력이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성이나 자율성 이 동반되지 않는 충동통제력은 단순한 인내심의 발휘이며 이는 점차 우리를 약하게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충동통제력이 높아 보이는 것은 어려서부터 강요받은 참을성에 대한 교육의 결과라 할 수 있 다. 우리의 교육환경은 지나치게 경쟁중심적이다. 내신 성 적 또는 학급의 석차라는 상대적 우위에 최고의 의미를 부 여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성장한 한국인들은 해야 할 모든 일을 일단 '참아내야 할 고통'으로 간주하는 습관에 젖게 된 다. 이러한 교육환경 덕분에 비록 외형적으로 충동통제력은 높아 보이고, 따라서 가장 많은 시간을 공부하고 일하는 국 민이 되어버렸지만, 이처럼 강요된 충동통제력은 전체적인 창의성과 효율성을 갉아먹는다. 우리나라의 왜곡된 교육환경과 교육철학은 역시 왜곡된 결과로 나타난다. 국가간 학력 비교 조사인 PISA국제학업 성취도평가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중3(15세) 학생들의 수 학, 과학, 읽기 등의 학업 성취도는 계속 최상위권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 2009년만 하더라도 65개국 학력 비교를 보면 우리나라는 읽기, 수학, 과학 세 영역 모두 최상위권(4위 이내)에 들었다.
OECD 국가만 놓고 보면 읽기, 수학은 1위, 과학은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 학생들은 높은 학업성취 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흥미도, 내재적 학습 동기, 학업 효능감(학업에 대한 자신감), 다른 학생들과 팀을 이뤄 학습하는 협동학습에 대한 선호도, 평생학습에 필요한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 등에서는 최하위 수준이었다. 반면 미국과 독일, 프랑스, 핀란드 등 유럽 선진국들은 이 점수가 높게 나왔다. 특히 우리나라 학생들보다 학업성취도가 훨씬 낮은 미국 학생들마저도 학업에 대한 흥미도나 동기, 학업효능감 등에 있어서는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수학의 경우 한국의 학업성취도는 3위로 최고 수준이었지만 흥미도는 31위, 동기부여는 38위로 최하위 수준이었다. 이렇게 학업성취도와 학업흥미도의 수준이 극 과 극으로 나타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또 다른 57개국 학 력 비교에서 2006년 과학의 경우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5위 정도 수준이었지만, 학업흥미도는 57개국 중 55위로 거의 꼴지였다. 2009년 읽기의 경우도 학업성취도 는 최상위권이었으나 학업흥미도는 28위에 그쳤다. 더욱이 자기학습관리 능력(자기조절능력)에서는 최하위권인 58위 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타인이 강제로 시켜야만 성취도가 높으며, 자기 스스로 흥미를 느끼며 자발적으로 학습하는 능력은 최하위인 것이다.
보통 학업성취도와 학습동기, 흥미도, 효능감은 정적인 상관관계를 보인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공부에 흥미를 느 끼고 자신감도 느끼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 라 학생들은 공부는 다른 나라 아이들에 비해서 훨씬 더 잘 하지만, 공부에 대한 흥미도, 동기, 자신감 등은 최하위 수 준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이 보이는 독특한 현상이다. 다른 나라 학생들의 경우 학업성취도와 학업흥미도, 효능감 은 관련성이 높다. 우리나라만 거꾸로 가고 있다.
나약하고 불행한 아이들, 무엇 때문일까
우리나라 학생들은 무엇이 문제이길래 이러한 현상을 보이는 것일까? 사실 이는 어린 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다. 지나친 외적보상 - 당근과 채찍, 처벌과 보상 - 에 의해서만 동기부여를 이끌어내려는 잘못된 교육철학 때문이다. 성적 만을 강조하는 학부모와 학교가 아이들을 망가뜨리고 있다.
한국의 입시위주 학교 교육과 조바심치는 학부모들은 아이 들에게 찰고무공 같은 회복탄력성을 심어주기는커녕 바닥 에 떨어지면 산산조각이 나는 유리공 같은 나약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
얼마전 인터넷의 블로그에서 본 이야기다. 여자 중학생 이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했다. 중학교 1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였다. 워낙 재주가 많아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쓰는 데다 공부도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수재였다고 한다. 성격도 쾌활해서 모든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투신자살을 해서 주변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결국 성적에 대한 중압감이 자살의 원인으로 밝혀졌다.
초등학교 때 1, 2등을 하던 그 학생의 성적은 중학교 입학 후 약간 떨어졌고, 이 때문에 부모에게 꾸지람을 들어 늘 성적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시험을 앞두고 가출하거나 우울증에 빠지는 청소년들이얼마나 될까. 누가 우리 아이들을 이런 사지로 내모는 것인 가. 사회학자들의 지적처럼 이렇게 어린 아이들의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20~30대 젊은층의 자살률은 최근 수년간 크게 증가 해서 자살이 2, 30대의 사망원인 1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자살을 권하는 사회인 한국에서 태어난 우리 청소년들에게 는 집단적인 불행감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팽배해 있다.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느끼는 행복 수준은 OECD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우리나라 청소년과 아이들 은 지금 병적인 수준의 불행감을 느끼고 있으며, 집단적인 우울증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에게는 무 슨 일이 닥쳐도 다 잘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회복탄 력성이 꼭 필요하다.
청소년들의 삶이 활기차고 즐거울 수 있으려면 그들의 회복탄력성을 키워줘야 한다. 아이들의 인 생을 역경으로부터 지켜줄 회복탄력성이라는 보험에 들 필 요가 있는 것이다. 무엇이 아이들을 이토록 불행하고 나약하게 만들고 있 을까? 바로 입시위주의 교육이다. 한국 교육 시스템을 관통 하는 단 하나의 이데올로기는 고진감래다. '고통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No Pain, No Gain'는 이데올로기는 학 부모나 교사나 학생이 아무런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는 신 앙과도 같은 신념이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놀 지 말고 공부하라”고 이야기한다.
학생이나 학부모나 모두 노는 것과 공부하는 것을 대립시킨다. 그럼으로써 노는 것 은 즐거운 것이지만, 공부하는 것은 괴로운 것이라는 위험 한 '상식'을 아이들에게 주입시킨다. 결국 공부에 대한 부정 적인 느낌만 가득 심어준다. 공부는 재미없고 괴롭지만 훗 날의 즐거움을 위해서 '참아 내야 하는 고통'이 되어버린다. 공부를 고통의 덩어리로 만들어 놓고 그러한 고통을 누가 누가 잘 견디나 하는 고문하기 게임을 집단적으로 하고 있 는 것이 한국의 교육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한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의 글이 있어 소개한다.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교실이란 감옥에 갇혀 교 복이란 죄수복을 입고 실내화란 죄수 신발을 신고 공부란 벌을 받고 졸업이란 석방을 기다린다.'
이 글에는 '학교=감 옥, 공부=벌, 졸업=석방'이라는 등식이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다. 왜 학생들이 졸업식 때 밀가루를 뒤집어 쓰고 교복을 찢다 못해 알몸 뒤풀이라는 과도한 방식으로 해방감을 표 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가? 학생들에게는 공부가 고통 이고 학교 생활 자체가 억압이기 때문이다. 누가 이런 학교라는 감옥을 만들어냈는가?
물론 우리 어른들이다. 그리고 이렇게 학교라는 감옥에서 자란 아이들은 다시 대학과 직장이라는 좀더 그럴듯한 감옥으로 옮겨간다. 말하자면 인생 자체가 감옥인 셈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출세지상주의와 경쟁지상주의 사이에 서 시달린다. 초등학교 때 잘해야 중학교 때 성적이 좋고 중학교 때 성적이 잘 나와야 고등학교 때도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서 출세할 수 있다는 식이다.
공교육이던 사교육이던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 전체가 좋은 대학 보내기라는 지상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이러한 경쟁 위주의 교육환경에서는 공부가 고통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입시 경쟁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특히 충동억제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어릴 적부터 받는다. 탈 벤 샤하르가 말하는 출세 지상주의자Rat Racer만이 양성되고 있는 것이다.
회복탄력성을 읽고
김주환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