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_회복탄력성_1]
회복탄력성의 향상을 위해서 스스로 행복해져라
우리의 삶은 늘 크고 작은 시련과 역경의 연속이다. 살아 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닥치는 여러 가지 도전과 어려움을 끊임없이 극복해나가는 과정이다. 질병, 사고, 이혼, 파산, 가족의 죽음, 경제 위기, 자연 재해, 전쟁의 위험 등 커다란 시련도 있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사소한 갈 등이나 작은 실수 혹은 짜증스러운 일 등 자잘한 어려움도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시련 중 하나다. 모든 일이 언제나 뜻대로 이루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사람이 아니 라 신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 있어서 커다란 시련은 지금부터 꼭 10년 전인 2001년 3월 초 어머니가 갑작스레 하늘의 부름 을 받으셨을 때 찾아왔다. 그리고 2년 반 뒤에 아버지마저 어머니 곁으로 떠나셨다. 대학 초년 시절부터 캠퍼스 커플 이었던 두 분은 평생을 동갑내기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내 셨고, 나는 부모님과 함께 어울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자라났다. 부모님의 부재不在로 인해 견딜 수 없었던 가장 큰 슬픔 은 앞으로 영원히 어머니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단 10분만이라도 좋으니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지금도 눈시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시던 두 분이 이 세상에 계시지 않다는 사실에 어떤 일을 해도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결국 수년간 상당한 무기력증에 사로잡혀 지내야 했다. 그런 나 에게 긍정심리학과의 만남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그로 인해 회복탄력성을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마틴 셀리그만의 《진 정한 행복Authentic Happiness》과 애브라함 매슬로우의 《존재의 심리학Toward Psychology of Being》은 나에게 깨달음의 기쁨을 주었다. 그 후 디씨와 라이언의 자기결정 성이론, 바바라 프레드릭슨의 확장과 수립이론, 앨리스 아 이센의 긍정적 정서의 힘에 관한 논문들을 읽으면서 긍정 심리학과 커뮤니케이션 연구를 접목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06년 9월 한국심리상담연구소(소장 김인자 교수)의 초청으로 마틴 셀리그만 교수가 연세대학교에서 특강을 하 게 되었고, 나는 그와 몇 차례 만나 긍정심리학과 커뮤니케 이션학의 접목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펜 실베니아 대학의 회복탄력성 프로그램(PRP: Penn Resiliency Program)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이때였다. 긍정심리학의 핵심은 심리학이 그동안 병적인 심리 상태를 치유하는 것에만 초점을 두었다는 반성에서 출발한다.
오랫동안 심리학은 비정상적인 사람을 정상적으로 만드는 일에 주력해왔다. 셀리그만 교수는 이제 정상적인 사람을 더욱더 고양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긍정심리학을 제안하였다. 커뮤니케이션 학 역시 소통 장애나 커뮤니케이션 불안 등에 관한 연구가 주를 이루어왔다. 커뮤니케이션 장애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들이 있지만, 정상적인 사람들의 소통능 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나는 정상 적인 사람들의 소통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 역시 누군가는 반드시 연구해야 하는 주제라는 확신과 사명감을 갖고 연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소통능력은 말만 그럴듯하게 잘하는 언어구사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소통능력의 기본은 제대로 된 인간 관계를 맺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인간적인 신뢰를 주지 않고서는 진정한 설득이나 리더십 발휘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소통능력의 향상은 긍정적 정서의 함양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때문에 나는 긍정적 정서 향상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개발을 연구의 기본 방향으로 잡았다.
소통능력 향상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면서 대인관계와 커뮤니케이션, 행복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 능력 개발 등의 과목을 개설하여 연구한 내용을 학생들에게 강의하기 시작했다. 이즈음에 하버드 대학에서 긍정심리학 강의로 명 성을 높이던 탈 벤 샤하르 박사는 이메일을 통해 많은 도움 을 주었으며, 행복 커뮤니케이션 과목과 관련된 강의 자료 의 사용도 허락해주었다. 또한 한국긍정심리학회(회장 문 용린 교수)의 연구 모임에 참여한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긍정심리학에 관심 있는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로부터 다양 한 지적 자극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세대 의과대학 영상의학과의 박해정 교수를 만나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뇌영상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그와 의기투합하여 소통능력과 커뮤니케이션 효과에 관해 다양한 사회신경과학적인 연구 - 사회신경과학이란 사회과 학의 여러 연구 문제들을 뇌영상기법 등 신경과학적 방법 을 통해 연구하는 새로운 분야이다.
2008년 초 EBS는 글로벌 리더 인터뷰 시리즈의 하나로 내게 MIT의 노엄 촘스키 교수와의 인터뷰를 제안하였 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는 MIT에서 멀지 않은 하버드 대학 캠퍼스를 거닐다 구내서점에 들어가 책들을 살펴보기 시작 했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도 구석에 꽂혀 있던 《회복탄력성 의 요인The Resilience Factor>이라는 책이 시선을 사로잡 았다. 일전에 셀리그만 교수가 언급한 적이 있던 PRP의 레이비치와 샤테가 쓴 책이었다. 나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 서 책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생각했다. 이 책의 내용을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에게 꼭생,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아빠로서 두고두고 해주고 싶은 말들을 정성껏 써내려갔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 도록 놔두질 않는다. 가장 밝고 즐겁게 살아야 할 나이에 가 장 어둡고 고통스런 삶을 살아간다. 부모와 학교와 학원과 입시제도가 일치단결하여 아이들을 깨지기 쉬운 유리공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청소년의 행복감은 세계 최 하위고, 우울증과 자살률은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책 이 우리 청소년들을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해낼 수 있는 탄력 있는 고무공으로 만들어주는 데 자그마한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이 책은 마음의 힘을 기르기 위한 지침서라 할 수 있다. 마음에도 힘이 있다. 몸의 힘이 몸의 근육에서 나오듯 마음 의 힘은 마음의 근육에서 나온다. 마음의 근육이라니, 은유 적인 표현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마음의 근육은 분명 히 실재하는 존재다. 마음의 근육 역시 체계적이고도 반복 적인 훈련을 통해 키울 수 있다. 마음의 근육이 단단하면 단단할수록 어떠한 어려움과 역경이 닥쳐도 헤쳐 나갈 수 있 는 힘이 생긴다. 바로 그 힘이 회복탄력성이다. 그러나 회복 탄력성은 시련이나 역경에 처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이 건강하도록 도와주는 기초 체력과 같은 것이다. 결국 회복탄력성을 키운다는 것은 여러 가지 역경과 시련에 대한 면역력을 키운다는 뜻과 같다. 인생은 크고 작은 어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단 하루도 회복탄력성이 필요하지 않는 날은 없다. 당신이 수행하는 일이건 당신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건 모두 회복탄력성을 요구한다. 회복탄력성을 높이면 업무 성취력이나 대인관계력은 저절로 높아지기 마련이다.
마음의 근력, 회복탄력성
회복탄력성은 '기억하는 자아'의 문제다. 기억자아는 자신의 경험에 대해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고 스토리텔 링을 하는 자이다. 이 기억자아가 고난과 역경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긍정적으로 스토리텔링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바로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이다. 회복탄력성이란 무엇인가 역경을 극복하는 힘 회복탄력성은 자신에게 닥치는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힘이다. 성공은 어려움이나 실패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역경과 시련을 극복해낸 상태를 말한다. 떨어져본 사람만이 어디로 올라가야 하는지 그 방향을 알고, 추락해본 사람만이 다시 튀어 올라가야 할 필 요성을 절감하듯이 바닥을 쳐본 사람만이 더욱 높게 날아 오를 힘을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회복탄력성의 비밀이다. 우리의 삶은 온갖 역경과 어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행복한 일도 있지만 그보다는 힘든 일, 슬픈 일, 어려운 일, 가슴 아픈 일이 더 많다. 불행한 일은 항상 행복한 일보다 양도 더 많고 질적으로도 강도가 더 센 것처럼 느껴져서 우 리를 좌절하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우리 모 두는 인생의 역경을 얼마든지 이겨낼 잠재적인 힘을 지니 고 있다. 그러한 힘을 학자들은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 부른다. 성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실패가 필요한 법이다. 별다른 고생 없이 평탄한 삶을 산 사람 중에 커다란 업적이나 성취 를 이룬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창업 이래 한 번도 실패나 어려움을 겪지 않은 대기업도 없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위인전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을 보라. 어떤 분야에서든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대부분 역경을 극복한 사람 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하나같이 역경을 극복하고 위 대한 인물이 되었을까? 바로 여기에 작은 힌트가 숨어 있 다. 위인들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사실 역경 '덕분에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역경이야말로 사람을 더욱더 강하게 튀어 오르게 하는 스프링보드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한 마리의 개구리도 앞으로 뛰려면 반드시 뒤로 움츠려야만 하는 법이다. 만약 모든 일이 술술 풀려 인생에 그 어떤 시련도 없었더라면 가장 위 대한 대통령으로 칭송받는 링컨도 보잘것없는 시골 변호사 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고, 처칠 수상은 평생 자그마한 사업 이나 운영했을 것이며, 이순신 장군은 이름 없는 말단 장군 으로 전전하다가 정년퇴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역경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졌다가도 강한 회복탄력성 으로 되튀어 오르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원래 있었던 위치보다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간다. 그야말로 실패를 성공 의 원동력으로, 오늘의 아픔을 내일의 기쁨의 원천으로 삼 는 셈이다. 이들에게는 역풍이 오히려 반가운 존재다. 마치 하늘을 나는 연처럼 바람이 불면 더욱더 높이 날아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회복탄력성을 누구나 다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고무공처럼 강하게 되튀어 오르 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리공처럼 바닥에 떨어지는 즉시 산산조각 나서 부서져버리는 사람도 있다. 통계적으로 보면 고무공보다는 유리공의 비율이 두 배 이상 더 많다. 실패를 성공의 도약으로 삼는 사람들이 오히려 소수다. 따라서 세 상에는 성공한 사람보다는 실패한 사람의 숫자가 언제나 훨씬 더 많은 법이다. 회복탄력성은 마음의 근력과 같다. 몸이 힘을 발휘하려 면 강한 근육이 필요한 것처럼, 마음이 강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마음의 근육이 필요하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마음의 힘은 일종의 '근육'과도 같아서 사람마다 제한 된 능력을 갖고 있으며, 견뎌낼 수 있는 무게도 정해져 있 다.1 그러나 마음의 근육이 견뎌낼 수 있는 무게는 훈련에 의해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이 책은 강한 회복탄력성을 발휘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 을 키우기 위한 지침서다. 몸의 근육이 몸의 면역력을 높여 주듯이, 마음의 근육은 마음의 잔병치레를 막아준다. 회복 탄력성은 꼭 커다란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서만 필요한 힘 이 아니다. 자잘한 일상사 속에서 겪는 수많은 스트레스와 인생의 고민과 인간관계에서의 갈등을 자연스럽게 이겨내 기 위해서도 필요한 힘이다. 사람마다 지니고 있는 회복탄력성의 크기는 천차만별이 다. 마치 사람마다 체력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과 같다. 체계 적인 운동과 훈련을 통해 우리의 체력을 기를 수 있듯이, 회 복탄력성도 체계적인 노력과 훈련을 통해 키워나갈 수 있 다. 이 책을 통해 당신은 회복탄력성이 어떠한 요소로 이루 어져 있는가를 알게 되고, 그러한 요소들을 개발시키기 위 해서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 제 인생의 크고 작은 시련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 려 성공을 위한 도약의 발판이 될 테니 즐겁게 맞이할 일이다.
역경에 대처하는 사람들 서울대 이상묵 교수의 경우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여러 역경 중에서 최악 의 경우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의 이상묵 교수의 경우를 보자. 그는 국비 장학생으로 MIT 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전도 유망한 해양지질학자였다. 첨단 해양탐사선 온누리호의 수석과학자로서 전세계 바다 곳곳 을 누비며 세계적인 학자들과 여러 공동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탐험가였다. 한창 일할 나이인 45세 되던 2006년 여름. 이상묵 교수 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공동으로 야외지질조사 프로젝 트를 수행하게 된다. 그런데 그는 머나먼 미국 땅에서 차량 이 전복되는 사고를 당하고 만다.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를 달리던 차는 뒤집어졌고 그는 정신을 잃었다.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불행이 어느날 갑자기 이상묵 교수에게 찾아왔다. 사고 후 3일이 지나서야 그는 의식을 회복했지만 눈만 껌뻑일 수 있을 뿐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전신마비였다. 눈을 한 번 깜빡이면 긍정, 두 번 깜빡이면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겨우 의사표현을 했고 3주가 지나서야 가 까스로 입을 떼서 말을 할 수 있었다. 결국 그는 목 아랫부 분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세계가 좁다며 5대양 6대주를 탐험하며 연구하던 그에게는 치명적인 역경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묵 교수는 전신마비라는 중증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냉정하고 정확하게 파악했다. 처지를 비관해 우울해 하거나 현실을 부정하려 하지도 않았고 있는 그대로 받아 들였다. 보통 전신마비 환자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을 부정하며 사실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평균 3년 이상이 지나야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비로소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담당 의사에 따르면 이상묵 교수는 처음부터 자신에 에 일상생활에 복귀하는 놀라운 회복탄력성을 보였다.
불행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6개월만 그는 전동 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학교로 복귀하여 강의 와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오직 입만 움직일 수 있을 뿐인 그는 노트북과 연결된 마우스로 프로젝터 스크린을 작동하 여 강의하는데, 마우스를 빨면 왼쪽 클릭, 불면 오른쪽 클릭 이 되는 식이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이 교수는 재활 경험 과 긍정적 인생관을 담아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뉴욕타임 즈> 등 세계 언론이 그를 주목했으며, 스티븐 호킹 등을 대중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노바 채널에서 그의 일대기를 다 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는 이제 한국의 스티 븐 호킹에 비유되고 있다. “이 정도만 다쳐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그는 보조재활공학센터를 만들어 장애인을 위한 기 술개발을 시작했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데 앞장 서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다시 교단에 설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일밖에 모르던 내가 사고 후에 오히려 희망 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 다. “나는 큰 행운아입니다." 이상묵 교수와 아주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던 나의 한 친 구는 그가 워낙 성품이 부드럽고 낙천적이며 주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성격을 지녔다고 말한다. 그의 낙천적 성 격은 방송에 비친 모습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다른 사람 의 도움을 받아 관을 통해 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힘든 상황 에서도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 노력 한다. 그는 말한다. “사고 때문에 오히려 더 마음이 편해진 면 도 있다.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고 집착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그는 얼굴로 전 동휠체어를 조정하고 입술로 컴퓨터 마우스를 조정해야 하 는 상황에서도 활발히 연구 활동을 전개하여 오히려 사고 전보다 세계적으로 더 주목받는 학자가 되었다.
사고 후 5년이 흐른 2010년 말에는 KT와 함께 중증장 애인용 IPTV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자신처럼 손발을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장애인들이 주변의 도움 없이 구강용 마우 스를 이용해서 TV를 켜고 채널과 볼륨을 조절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상묵 교수는 “나에게 닥친 사고를 불운의 시작이 라고 보지 않고, 몰랐던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인 생 방향의 전환"이라고 역설하며 장애인 학생들에게 희망 을 불어넣어주는 희망메이커의 역할을 담당하는 한편 장애 인을 위한 따뜻한 융합 기술의 개발에 열정을 쏟고 있다. 이상묵 교수의 말처럼 '역경도 극복만 할 수 있다면 좋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극복만 할 수 있다면, 역경이 아예 없 었던 것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역경을 극 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역경 그 자체에 달려 있는 것이 아 니라, 역경을 겪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극복해낼 수 있는 힘, 즉 회복탄력성에 달려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회복탄력성을 누구나 지니고 있는 것은 아 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상묵 교수처럼 강인한 회복탄력성을 보이는 사람들이 아주 특수하거나 예외적인 것도 아니다.
생각보다는 상당히 많다. 대략 전체 인구의 3분의 1정도는 인생의 역경에 대해 강한 내성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 다. 이는 세 사람 중에 두 사람은 역경이 닥치면 무너지거나 주저앉을 가능성이 높은 반면 나머지 한 사람은 꿋꿋이 이 겨내고 더 큰 성장과 발전을 이뤄낸다는 뜻이다.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사람들을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 람들(R집단: resilient group)이라 하고, 이와는 반대로 역 경을 만나 맥없이 무너지고 굴복하는 사람들을 깨지기 쉬 운 사람들(F집단: fragile group)이라 부른다. 전체 인구 중 에서 R집단과 F집단의 비율은 대략 1:2 정도인 것으로 알려 져 있다(1대 2의 법칙). 이상묵 교수는 물론 F집단이 아니라 R집단에 속하며 그 중에서도 상위그룹에 속한 대표적인 경 우다. 그러나 이 분류가 불변하는 원칙은 아니다. F집단에 속한 사람도 노력과 훈련을 통해 R집단으로 옮겨갈 수 있으 며, R집단에 속한 사람 역시 회복탄력성을 더욱더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연구가 입증하고 있다.2 이제 회복탄 력성이 높은 사람들의 특징을 좀더 살펴보기로 하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이상묵 교수의 이야기는 여러 뉴스 기사와 그가 쓴 책을 통해서도 알려졌지만, 특히 자세히 소개된 것은 2009년 2 월 14일에 방영된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 - 절망을 이겨 낸 사람들의 7가지 비밀>을 통해서다. 2008년 말에 SBS 망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나에게 자문을 구해 왔다. 그때 나는 제작진에게 '회복탄력성'이라는 개념을 소개 하면서 이를 집중적으로 다뤄볼 것을 권유했다. 회복탄력성 이라는 개념은 아직 우리나라 일반 대중에게 제대로 소개 된 적이 없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전국적인 조사가 이루어 진 적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내친김에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과 함께 우리나라 국민들의 회복탄력성 지수를 조사 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에 대한 뇌파실험을 진행하는 동시에 우리나라 최초로 전문 조사기 관에 의뢰하여 전국민 샘플 309명의 '회복탄력성 지수RQ: Resilience Quotient'를 측정하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아 직 우리나라 일반인을 위한 적절한 RQ 검사도구가 개발된 것이 없는 상황이어서 우선 레이비치 Reivich와 샤 테Shatte가 개발한 56개 문항의 검사도구3를 번역하여 사 용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인의 회복탄력성 수준을 대략이나 마 미국인과 비교해 볼 수 있었고 그 내용이 방송을 통해 소 개되었다. 검사 결과, 한국인은 낙관성, 원인분석력, 공감능력 등에 서 미국인과 거의 비슷한 수준을 보였으나 충동통제능력이었다. 그러니까 한국인들은 충동통제능력 - 하고 싶은 것을 다 참아가면서 목적한 바를 이루는 능력 - 만은 미국인들보다 훨씬 더 높다는 것 인데 이는 매우 주목할 만한 현상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상묵 교수 외에도 각기 다른 시련을 이겨낸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다루었다.
28세의 우정훈 씨는 비보이계의 고참으로 최고의 스트리트 댄서였다. 9년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여 행복한 신혼 생 활을 시작한 그는 어느 날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 장애자가 되었다. 결혼한 지 8개월밖에 안 된 시점이 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 커다란 시련을 담담하게 받아들 이고 남편을 향해 환히 웃으며 따뜻하게 보살펴주는 아내 김성희 씨가 있었다. 우정훈 씨는 사고를 당한 지 1년도 채 안 되어 일상으로 복귀했다. 휠체어를 타고 랩을 하며 무대 에 오르고, 비보이 전문 사회자와 방송인으로 활약하며, 대 학에서 강의도 시작했다.
좌절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무엇 이냐는 질문에 그는 매일 아내와 나누는 대화라고 대답했다. 인터뷰에서 우정훈 씨의 아내 김성희 씨는 밝은 표정으로 이렇게 얘기한다. “만약 사고가 안 났더라면 서로에게 얼마만큼 힘이 되어줄 수 있고, 또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영원히 몰랐을 거예요. 사고가 안 났더라면 서로 자신을 더 내세우며 많이 싸우고 갈등을 겪었겠지요.” 우정훈씨 역시 사고로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생각하고 괴로워하 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힘'을 보여주었다. 회복탄력성은 신체적 장애의 극복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류춘민 씨는 부산에서 연 매출 50억이 넘는 한우고깃집을 운영하던 사업가였다.
언덕 위에 자리잡은 그 의 음식점은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산책로 를 포함해서 1만1천 평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였다. 좌석만 해도 500석이 넘고 종업원도 100명이 넘었다. 그러나 1997년 IMF 사태가 닥치면서 매출은 반토막이 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9년에는 광우병 파동까지 일어났다. 계 속 빚을 늘려가며 음식점을 운영하던 그는 2004년에 100 억에 이르는 빚을 지게 되었다.
결국 류춘민 씨는 음식점을 모두 처분하여 빚을 갚고 빈 털터리가 되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너무 쉽 게 성공해서 자만에 빠진 것이 패인이라고 진단하는 그는 “끝까지 욕심내서 붙들고 있다가 부도라도 냈으면 직원들 퇴직금이나 줬겠어요? 팔아 넘긴 게 다행이지요”라고 환한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하루아침에 빈털터리로 전락한 그는 아내와 함께 4년 동안 고생한 끝에 8천만 원으로 14평짜리 작은 국수집을 하나 차릴 수 있었다. 밝은 표정으로 도마질 을 하면서 이야기하는 류춘민 씨의 얼굴은 환히 빛났다. 하 루 종일 국수를 팔아 버는 돈이 예전 식당의 한 테이블에서 나오는 매출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그 는 “이제 하루에 백 그릇만 팔자는 목표가 생겨서 좋다”고 했다. 희망이 보인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온갖 걱정이 많았 지만 지금은 걱정이 없어졌어요. 하루하루가 감사하지요." 류춘민 씨와 함께 식당 일을 열심히 하는 부인 역시 이 렇게 얘기했다. “어떤 면에서는 좋죠. 제자리에 돌아온 것 같아요. 옛날에 큰 식당을 할 때에는 땅을 딛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붕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제 자리에 제대로 땅을 딛고 서 있는 느낌이지요.” 류춘민 씨 역시 우정훈 씨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내가 지금 얼마나 가졌느냐 보다도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이렇게 웃으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 수원에서 직원이 5명뿐인 작은 두부 공장을 운영 하는 김동남 사장의 경우를 보자. 그는 스스로를 평생 단 한 번도 가난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특히 1997년 IMF 위기 때에는 그나마 있던 작은 희망마저 사라 져버리는 완벽한 절망을 경험했다. 착하게 열심히 살아도 안 되는구나 하는 비관에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결국 노숙 자로 전락했다. 술에 취한 채 공원 바닥에 쓰러져 잠들었다 가는 눈 뜨자마자 다시 술을 마셔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 정 도로 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다행히도 노숙인 쉼 터를 운영하던 우정섭 씨에 의해 발견되었다.
우정섭 씨에 의하면 김동남 씨를 발견했을 당시 그는 혼자서는 걸음조차 걸을 수 없어 사람들에게 업혀서 쉼터로 들어왔다고 한다. 김동남 씨는 노숙자 쉼터에 옮겨 온 후에도 몇 차례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술을 계속 마셨다. 그야말로 죽음이 눈앞에 닥칠 만큼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김동남 씨는 그 당시 이대로 죽느냐 아니면 다시 한번 제대로 살아보느냐의 마지막 갈림길에 서 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고, 마지막은 죽음뿐이겠 구나 하는 생각이 든 순간, 그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다시 일어서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 었다고 한다.
가장 밑바닥까지 추락한 뒤에 마침내 되튀어 오를 힘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노숙자 쉼터 근처에 방 한 칸 크기의 작은 공간에서 중고 두부 기계 하나를 마련해 놓고 두부를 만들기 시작 했다. 처음에는 계속 불량이 나와서 무료로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러나 꾸준히 노력한 결과 이제 두부 공장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는 “지난 해 매출은 2,500~3,000만 원 정도였는데, 이제는 어떻게 해서든지 4,000만 원은 만들어보자는 희망을 갖고 열심히 일한다”고 이야기했다. 김동남 씨는 지금도 쉼터에 두세 달에 한 번씩은 꼭 방 문하여 두부를 전달한다. 노숙자 쉼터에서 그는 '살아 있는 신화'로 통한다. 불굴의 의지로 재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김동남 씨는 두부 공장을 자신처럼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 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으로 키워나가는 꿈을 갖 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이 변화하게 된 것은 이러한 목적의 식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목 적의식이 자신에게 재활의 의지를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 김동남 씨 역시 이렇게 말한다. “부모 원망하고, 세상 원망 하고, 좌절해서 술 마시고 그랬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오 히려 그러한 고통과 절망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자신의 역경을 바라보 는 이들의 긍정적 관점이다. 이상묵 교수는 “하나를 잃고 열 개를 얻었다”며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표현했으며, 우정훈 씨와 아내 김성희 씨는 "사고 덕분에 서로를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고 말했다. 류춘민 씨와 그의 아내 역시 “예 전에는 걱정이 많았지만 지금은 걱정도 없고, 하루하루가 감사하다"고 했다. 김동남 사장 역시 “과거의 고통과 절망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으며 희망과 목적이 있어서 행복하 다”고 말했다.
이들은 역경을 극복했기 때문에 역경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역경을 긍정적으로 봤기 때문에 역경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도약의 기회로 삼는 것, 그것이 바로 회복탄력성의 핵심이다. 회복탄력성의 다른 예를 좀 더 살펴보자. 에이미 멀린스의 경우 에이미 멀린스는 선천적 기형으로 태어날 때부터 종아 리 뼈가 없어서 한 살 때 두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 무릎 아래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다. 하지만 멀린스는 장애 인에 대한 편견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장애를 지닌 사람들 에게 희망을 주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피플> 선정 '아름다운 여성 5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 멀린스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뭔가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독특한 특 징과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사람으로 봐야 한다고 당당하 게 주장한다. 멀린스에 따르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멀린스는 자신은 장애disabled가 있 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여성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그리고 장애가 무엇인지에 대해 여러 강연을 통 해 오히려 반문한다.
테드닷컴www.ted.com에 가면 그의 강연 장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자신의 여러 개의 인조 다리 세트를 무대 위에 쭉 펼 쳐놓고 연설하던 멀린스가 다리 하나를 번쩍 들면서 이렇 게 말하는 것이다. “성형으로 유명한 파멜라 앤더슨은 저보다 더 많은 보철술prosthetics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무 도 파멜라 앤더슨을 장애인이라고는 하지 않잖아요?” 사실 그의 강연 모습을 보면, 일반인과 다른 점을 찾을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멀린스는 자신의 다리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놀라운 힘을 주었다고 말한다. 이는 은유가 아니다. 그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것이 아니라 장애 '덕분에 슈퍼 스타가 되었기 때문이다. 멀린스는 운동 선수, 패션모델, 영화 배우 그리고 동기부여 강연까지 수많은 활 동을 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두 다리가 없기 때문에 가능 해진 일들임을 본인 스스로 분명히 밝히고 있다.
멀린스는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조지타운 대학에 입학 한 후 장애인 올림픽에 미국 대표 선수로 출전해 자신의 존 재를 세상에 알렸다. 그는 의족을 끼고 1996년 장애인 올림 픽에서 세계기록을 세웠다. 100미터 15.77초, 200미터 34.60초, 그리고 멀리뛰기 3.5미터의 기록을 갖고 있다. 또 한 패션 모델로서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의 런던 쇼에서 수공예로 만든 구두 일체형 인공다리로 멋지 게 런웨이를 걷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멀린스는 책을 저술 하고 강연 활동을 펼치는 동시에 영화 배우로도 왕성한 활 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그는 멋진 강연을 통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동기부여 전문가motivational speaker 로도 활약하고 있다. 멀린스는 자신의 인조 다리를 통해 인체의 다양한 아름 패트리샤 휘웨이, 조앤 롤링, 안데르센의 경우 영국에 사는 패트리샤 휘웨이는 전문직에 종사하던 커 리어 우먼이었다. 그러나 한창 일할 나이인 40세가 되던 2000년, 그는 일을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되기로 결심한 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를 위해 전업주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여기까지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의 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극성엄마'의 이미지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패트리샤의 희생의 이 유는 심각한 장애를 지닌 아들 때문이었다. 패트리샤의 아들 조지는 간질과 학습장애에다가 식이장 애까지 갖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가 먹는 모든 음 는 확신하게 되었다. 조지는 우유와 밀가루 음식 그리고 거 의 모든 식품첨가물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먹는 음식 마다 토하고, 설사하며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다가 간질 발 작까지 일으키는 어린 아들을 부둥켜 안고 눈물로 지새는 식이 아이의 상태를 더 나쁘게 만든다는 사실을 패트리샤 밤이 늘어갔다. 패트리샤의 어린 시절 역시 평탄하지는 못했다. 공군이 었던 그의 아버지는 휘웨이가 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났다.
아 버지의 죽음 이후 어머니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방랑식을 만들겠다는 자신의 계획을 밝히면서, 제대로 된 슈퍼 마켓이라면 이러한 음식을 판매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휘웨 이는 아들의 상태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했다. 놀랍게도 테스코 경영진은 휘웨이의 제안을 받아들였 다. 테스코는 휘웨이에게 알레르기 환자용 식품 개발을 맡 겼으며, 유명한 '프리 프롬Free From'시리즈 생산과 유통 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006년 패트리샤 휘웨이는 테스코 의 브랜드 매니저가 되었다. 프리 프롬 라인 외에도 첨가물 이 없는 ‘테스코-키즈' 시리즈와 '페어트레이드' 시리즈도 개발했다. 이제 그는 영국의 식품 산업을 주도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아이의 질병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경력을 잃을 뻔했던 패 트리샤는 오히려 더 화려한 경력을 쌓아갈 수 있게 되었다. 페트리샤 휘웨이 역시 멀린스처럼 역경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다.
역경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역경 덕분에 성공적이고도 행복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페트리샤 휘웨 이에게 회복탄력성이 부족하였다면, 아마도 자신에게 닥친 역경에 굴복하여 처지를 비관하면서 눈물과 절망으로 하루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해리 포터》의 저자인 조앤 롤링은 20대 초반에 영국에 서 포르투갈로 가서 그곳 남자와 결혼하였으나, 딸을 낳고 2년 만에 이혼하였다. 어린 딸과 함께 무일푼 신세가 되어 이처럼 역경을 극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역경 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성공과 도약의 발판이자 원동력이 라고 말한다.
회복탄력성을 읽고
김주환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