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 Zhonglian rejected wealth and power, preserving his integrity even in poverty. He helped save Zhao from Qin and persuaded against recognizing Qin as the celestial kingdom. Lü Buwei, a merchant, used strategic investments to elevate Zichu to the throne, even sacrificing his lover in the process. His efforts led to the rise of Ying Zheng, later known as Emperor Qin Shi Huang. These figures demonstrate resolute integrity and calculated wisdom in shaping history.
가난함을 택하여 세상을 가볍게 보며 살리라
노중련 : 뜻이 원대한 사람은 벼슬로 몸을 구속하지 않는다
노중련魯仲連은 제나라 사람으로 벼슬에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홀로 고상한 절개를 지키면서 살았다. 그가 조나라를 떠돌아다닐 때였다. 조나라는 진나라와의 장평 싸움 에서 대패하고 수도 한단이 함락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진나라의 속셈은 조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조나라에서 천자天子의 나라 라는 칭호를 받는 것이었다. 이때 이미 양梁나라는 진나라를 높여 황제 의 나라로 받들어 모시고 있었다. 양나라 왕은 객장군客將君(국적에 얽매 이지 않는 장군) 신원연新垣衍을 조나라로 보내 진나라가 천자의 나라임을 인정하게 하려 했다. 노중련이 이 소식을 듣고 조나라를 돕고자 신원연을 만나 이렇게 말 했다. “세상에서는 포초鮑焦(혼탁한 세상을 미워하여 은거하다 굶어서 죽은 주나라 의 선비)를 비판하나 이는 잘못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가 자기 한 몸의 이름을 위하여 죽었다고 하나, 그는 죽음으로써 세상 인심을 교화시키 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듯 내가 지금 포위된 이 성에 있는 것도 나만 의 일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저 진나라는 예의를 버리고, 적의 머리를 벤 숫자로 공을 따지는 나 라입니다. 그들은 군사들을 권모술수로 부리고 백성들을 노예처럼 부 립니다. 저들이 만약 방자하게 천자의 나라가 되어서 천하를 잘못 다스 리게 된다면, 나는 차라리 동해에 몸을 던져 죽을지언정 그 백성이 되 는 것을 참을 수는 없습니다. 내가 장군을 뵌 까닭은 조나라를 돕기 위 해서입니다.”
만승의 나라는 다른 나라를 섬기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노중련은 진나라를 황제의 나라로 섬기는 양나라를 다 음과 같이 빗대었다. “그 옛날 제나라 민왕이 힘이 강했으면서도 쇠약해진 주나라에 복종 한 것은 주나라는 천자의 나라요, 제나라는 제후의 나라였기 때문입니 다. 그러나 양나라는 같은 제후국인 진나라를 천자의 나라로 섬기고 있 습니다. 이 어찌 된 일입니까?" 그러자 신원연이 반박했다. “선생께서는 하인의 행동을 보지 못했습니까? 10여 명의 하인이 한 명의 주인에게 복종하는 것은 힘으로 이기지 못하거나 지혜가 그만 못 하기 때문이겠습니까? 아니지요. 단지 주인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 다." 노중련이 탄식했다. "아아, 그렇다면 양나라는 진나라의 하인이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신원연이 대답하자 노중련이 한마디했다. "그렇다면 내가 진나라 왕에게 양나라 왕을 삶거나 젓을 담그라고 해 야겠소." 신원연은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아, 선생의 그 말씀은 너무나 지나치지 않습니까. 선생은 무슨 방 법으로 진나라 왕에게 양나라 왕을 삶거나 젓을 담그게끔 한단 말입니 까?" “문제없습니다. 옛날에 구후九侯·악후鄂候ㆍ주문왕周文王은 은나라 주왕의 삼공三公이었습니다. 구후가 얼굴이 고운 자신의 딸을 주왕에게 바쳤는데, 주왕은 그녀가 못생겼다면서 구후를 죽여 것을 담갔습니다. 이에 악후가 강력하게 간하니 주왕은 그마저 죽여 포를 떴습니다. 주문 왕이 이 소식을 듣고 크게 탄식하자, 주왕은 주문왕을 유리 땅의 감옥 에 가둔 뒤 죽이려 했습니다. 이러할진대 양나라 왕이 진나라 왕과 똑같이 왕의 신분이건만 어찌 갑자기 신하가 되어 포를 떠 소금에 절여지는 처지에 놓이려고 합니까? 그 옛날 천자의 행세를 했던 제나라 민왕도 추나라와 노나라에서 거만 하게 천자의 예우를 받으려 하다가 결국 비웃음을 당했습니다. 머지않 아 진나라 왕도 마찬가지 신세가 될 것입니다. 지금 진나라는 만승萬乘의 나라이고, 양나라 또한 만승의 나라입니 다. 그런데 어찌하여 진나라를 천자의 나라로 섬기고 있습니까? 보십시 오. 앞으로 양나라의 대신들은 결국 진나라에 의해 벼슬을 잃고, 그 자 녀와 첩은 진나라의 노비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양나라 왕이 어 찌 태연할 수 있으며, 장군 또한 무엇으로 예전과 같은 총애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신원연은 그제야 일어나 두 번 절하며 감사를 표했다. “처음에는 선생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선생의 말 씀을 듣고 지금에야 천하의 높은 선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곳 을 떠나는 순간부터 다시는 진나라를 '천자의 나라'라고 주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선비는 남을 구원하고도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이때 마침 양나라 신릉군이 장수 진비의 군사를 빼앗아 조나라를 구 원하려고 진나라 군대를 공격하니 진나라의 군대가 드디어 한단의 포 위를 풀고 물러났다. 조나라의 평원군은 노중련에게 벼슬을 주려 했으나 노중련은 끝내 사양했다. 그래서 평원군은 노중련을 위한 술잔치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평원군이 노중련의 장수를 빌며 천금을 내놓으며 축하하자 노중 련이 웃으며 말했다. “소위 천하의 선비라는 자가 귀하게 여겨지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재앙 을 없애주고 고민거리를 해결하고도 보상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 일 보상을 받는다면 이것은 장사치나 하는 행동입니다. 저는 도저히 받 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는 평원군에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 이후 노중련은 평생동 안 평원군을 만나지 않았다. 그 뒤 20여 년이 지나 연나라가 제나라의 요성聊城을 빼앗았다. 제나 라는 전단田單을 보내 그 성을 공격했지만, 연나라 군사의 저항이 강해 1년이 지나도 함락시키지 못했다. 노중련은 자신이 쓴 편지를 화살 끝 에 매달아 성 안으로 쏘아 올렸다. 이 편지를 받아든 연나라 장수는 두 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제가 듣건대, 지혜 있는 사람은 때를 거역하여 불리한 처지에 빠지 지 않으며, 용사는 죽음을 두려워하여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아니하고, 충신은 제 몸만을 생각하여 임금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장군께서는 간신의 모함으로 연나라 왕의 의심을 받고 있는 줄로 압니다. 그래서 성을 굳건히 지켜 의심을 풀려고 하나 연나라 왕에게 좋은 신하가 없음을 알면서도 돌아가지 않는 것은 충성스런 행동이 아닙니 다. 요성을 잃고 장군도 죽게 되어 제나라에 위엄을 떨칠 수 없게 된다 면 이 또한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닙니다. 공이 허물어지고 명예를 잃게 되어 후세에 칭송을 받지 않게 되는 것도 지혜로운 행동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행동을 한 사람을 세상의 임금들은 신하로 쓰지 않을 것이고, 유세하는 사람들도 입에 올려 거론조차 하지 않을 것입 니다. 그런 까닭에 지혜 있는 자는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고, 용감한 자는 죽음을 겁내지 않습니다. 장군은 지금 사느냐 죽느냐, 영예냐 치욕이 냐, 부귀냐 빈천이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습니다. 원컨대 장군께서는 깊이 헤아려 세속의 평범한 사람들과 동일한 태도를 취하지 마십시오. 초나라와 양나라가 제나라의 변방을 공격하고 있지만 제나라가 이 를 방비하지 않는 것은, 그쪽 땅을 잃는 것은 손실이 작지만 요충지 요성을 수복하면 이익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공께서 는 더 생각할 것 없이 지금 당장 성을 비우십시오. 더군다나 연나라는 큰 혼란에 빠져 나라는 피폐하고 백성들은 궁핍 해져 있습니다. 이런 때에 병력을 온전하게 하여 연나라에 돌아가면 연나라 왕은 틀림없이 기뻐할 것이며 백성들 또한 환영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공의 이름은 드러날 것이고 업적은 길이 남을 것입니다. 만 약 그렇게 할 의사가 없다면 제나라에 몸을 맡기십시오. 그러면 제나 라에서는 반드시 땅을 떼어 당신의 봉지를 정해줄 것이니 공의 부는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커지게 됩니다. 또한 나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작은 절개에 얽매이는 자는 큰 이름을 드러낼 수 없고, 조그마한 수치를 부끄러워하는 자는 큰 공을 세울 수 없다고 합니다. 옛날 관중이 죽이려고 마음먹었던 환공에게 무릎을 꿇었으나 그 치욕을 참고 환공을 모셨던 것은 그를 천하 패자 로 만들려는 큰 뜻이 있어서였고, 조말이 제나라에 세 번 패했으나 스 스로 목숨을 끊지 않은 것은 제나라에 빼앗긴 성을 되찾으려는 큰 뜻 을 위해서입니다. 이 두 인물이 실로 작은 절개를 이룰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다만 공과 이름을 세우지 못하고 자결하여 후손의 대를 끊는 것은 지혜 있는 사람이 취할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관중과 조말은 개인의 사무친 원한을 버리고 평생토록 빛날 수 있는 이름을 세웠으며, 원한에 사로잡힌 작은 절개를 버리고 후대에 길이 남을 공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의 업적은 삼왕三王(하·은·주 3대의 개국 군주, 즉 우왕 ·탕왕·문왕)과 우열을 다툴 만하고 이름은 천지와 함께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원컨대 공께서는 이 가운데 한 가지를 택하여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연나라 장수는 노중련의 편지를 읽고 사흘 동안이나 울며 망설이며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연나라로 돌아가려니 이미 왕과 거리가 멀어져 죽을 것이 두려웠고, 제나라에 항복하자니 제나라 사람을 수없 이 죽였으므로 항복한 뒤에 당할 치욕이 두려웠다. 그는 쓸쓸히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남의 손에 죽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죽는 것이 낫겠다.” 그리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로써 전단이 요성을 수복할 수 있 었다. 마침내 전단이 돌아와 제나라 왕에게 노중련의 공을 말하고 그에 게 벼슬을 줄 것을 청했다. 그러나 노중련은 도망가 바닷가에 숨어살며 이렇게 말하였다. “부귀로우면서 남에게 굽히고 사는 것보다 차라리 가난할망정 세상 을 경시하면서 내 마음대로 살아가리라.” 노중련은 벼슬이나 지위도 없으면서 제후들에게 굽히는 일 없이 호 탕하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 당대에 자신의 언변을 떨치며, 고관들의 권력을 꺾은 것은 실로 칭찬할 만하다. 아마 강직하고 절개를 굽히지 않는 사람 중에서 노중련만 한 이는 없을 것이다.
상인의 눈에는 사람도 투자 대상이다.
여불위 : 투자는 미래를 보고 한다
여불위呂不韋는 한나라의 큰 상인으로, 그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 서 싼 값에 물건을 사다 비싸게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 진나라 소왕 40년에 태자가 죽자, 42년에 둘째아들인 안국군安國君이 태자가 되었다. 안국군에게는 20여 명의 아들이 있었다. 안국군은 많은 첩 중에서 총애하는 첩을 정부인으로 삼아 그녀를 화양부인이라 불렀 다. 그런데 화양부인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안국군의 둘째아들은 자초 子楚인데, 그는 조나라에 인질로 보내져 있었다. 자초는 사실 안국군의 눈 밖에 난 아들이기 때문에 조나라는 그를 무 례하게 대했다. 그리하여 자초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조차 부족하 고 생활이 어려워 실의에 차 있었다. 여불위가 장사하러 조나라 수도인 한단에 갔다가 자초를 보고는 깜짝 놀라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 사람이야말로 기화가거奇貨可居(진귀한 물건이 생산될 수 있는 곳)가 아닌가! 이 재물은 사 둘 만하도다.' 그리고 자초를 찾아가서 말했다. “내가 당신의 가문을 크게 열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자 자초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우선 그대의 가문부터 크게 여시고, 그 다음 나의 가문을 열어주시오” “그것은 당신이 모르는 말씀입니다. 나의 가문은 당신의 가문이 열려 야 커질 것입니다.” 자초는 여불위가 말하는 뜻을 알아차리고 집 안으로 불러들인 뒤 속 마음을 털어놓았다. 여불위가 말했다. “태자 안국군이 사랑하는 화양부인에게는 아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를 후사後嗣로 세우느냐는 화양부인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은 20여 명의 아들 중 하나이지만, 사랑받지 못하여 남의 나라의 인질이 되었습니다. 대왕이 돌아가시고 안국군이 왕위에 오른다 해도 당신은 다른 아들들과 태자의 자리를 놓고 다툴 수는 없습니다.” 자초가 말했다. "사실 그렇소. 이를 어떻게 하면 좋겠소?" "가난한 당신을 위해 제가 천금의 돈으로 안국군과 화양부인을 섬겨 서 그대를 후사로 삼도록 하겠습니다." 자초는 머리를 조아려 감사를 표했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면, 진나라를 그대와 함께 나누어 가지겠소.”
사랑하는 여인도 투자를 위해 버릴 수 있다
여불위는 우선 자초에게 500금을 주어 조나라 고위 인사들과 사귀게 했다. 그런 후 나머지 500금으로 진귀한 물건을 사서 진나라로 건너갔 다. 진나라로 간 여불위는 그 물건을 죄다 화양부인에게 바치면서 자초 가 보내준 것이라고 했다 “자초는 어질고 지혜로우며 조나라에서 천하 제후들의 귀한 손님들 과 두루 사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화양부인을 하늘처럼 생각하 고 밤낮으로 태자와 부인을 흠모하여 눈물을 흘립니다.” 여불위의 말에 화양부인은 감격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여불위는 이 때를 틈타 그녀를 설득했다. “소인이 들으니, 아름다운 얼굴로 남을 섬기는 사람은 아름다운 얼굴 빛이 쇠하면 사랑도 식는다고 합니다. 나이 젊고 얼굴빛이 아름다울 때에 대책을 세워놓지 않으면 얼굴빛이 노쇠하여 왕의 사랑이 식은 뒤에 는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왕께서 귀담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이럴 때 후 사 순위에서 밀려난 자초를 천거하여 태자로 만든 뒤 아들을 삼는다면 부인의 훗날은 든든하게 보장될 것입니다. 자초가 부인의 은덕에 감사 하여 부인을 일생 동안 받들어 모실 것이 아닙니까?" 화양부인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는 기회를 엿보다 태자에게 이 렇게 말했다. “조나라에 인질로 가 있는 자초는 현명할 뿐만 아니라 효심이 깊어, 그곳을 왕래하는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첩이 다행히 후궁의 자리에 있으나 불행하게도 아들이 없습니다. 원 하옵건대 자초를 후사로 삼아서 첩의 몸을 의탁하게 해주십시오.” 안국군은 화양부인이 불쌍하여 별 생각 없이 이 청을 받아들였다. 여 불위는 자기가 의도한 대로 결과가 나오자 조나라로 돌아왔다. 조나라 한단에는 여불위의 여자들이 많았다. 여불위는 그 중에서도 미모가 뛰어나고 춤 잘 추는 여인을 제일 사랑했는데 그녀는 임신중이 었다. 어느 날, 여불위는 자초와 술자리를 같이 하였다. 자초는 여불위 옆에 앉아 있는 미모의 여인에게 한눈에 반해 자꾸 눈길을 주다가 여불위에게 그녀를 달라고 청했다. 여불위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참고 재빨리 저울질을 해보았다. 순간 여불위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미 자신의 전 재산을 자초를 위해 쓰고 있는 마당에 여인 하나가 아까울 게 없었다. 그래서 그 여자를 기꺼이 자초에게 바쳤다. 그 여인은 자기가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만삭이 되어 아들을 낳았다. 그러자 자초는 그녀를 부인 으로 삼고, 아들 이름을 정政(진시황의 이름)이라고 했다.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뺄 수 있다면 천금을 주겠다
진나라 소왕 50년에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였다. 그러자 조나라 에서는 자초를 죽이려고 했다. 이에 놀란 여불위는 황금 600금을 조나 라 관리에게 뇌물로 바쳐 자초를 데리고 본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후 진나라 소왕이 재위 56년에 죽으니 드디어 태자 안국군이 왕위 에 올랐다. 그러나 안국군이 왕의 자리에 오른 지 1년도 못 되어 죽자 시호를 효문왕孝文王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초가 왕이 되니, 이 사람이 장양왕蔣襄王이다. 장양왕은 양어머니 화양부인을 화양태후라고 하고, 생모 하희를 높 여서 하태후라고 했다. 또한 여불위를 승상으로 삼고 문신후文信侯에 봉하였으며, 하남 낙양의 10만 호를 식읍食邑(천자가 제후에게 주는 땅)으로 주었다. 그런데 장양왕도 단명하여 즉위 3년 만에 죽자, 태자 정이 왕위에 올 랐다. 그는 여불의의 친아들이다. 정은 여불위를 높여서 상국相國으로 삼고 중부라고 불렀다. 여불위의 집안 하인은 만 명이나 되었다. 이 당 시 위나라에는 신릉군, 초나라에는 춘신군, 조나라에는 평원군, 제나라 에는 맹상군이 있었는데, 그들 군자들은 선비와 빈객들을 불러모으는 일을 두고 경쟁하였다. 여불위는 진나라가 강한 나라이면서도 그와 같은 주군과 빈객들이 진나라에 없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선비들을 초대해서 정성껏 대하니 식객이 3,000명에 이르렀다. 이때 제후들 밑에는 말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순경과 같은 사람들은 글을 지어서 천하에 퍼뜨리기도 했다. 그래서 여불위는 자기 빈객들을 시켜서 각각 그들이 들은 바를 저술 하게 하여 <팔람八覽>·<육론六論>·<십이기+二紀〉 등 총 20여 만 언 으로 모아, 이 책이야말로 천지, 만물과 고금에 관한 내용을 두루 갖추 고 있다고 여겨 《여씨춘추呂氏春秋》라고 불렀다. 이 책을 수도 함양의 시장 문 앞에 진열하여 놓고 그 위에 천금을 달아 놓은 뒤, 천하 유세가 와 빈객이 보는 가운데 여불위는 큰소리를 땅땅 쳤다. “이 책에서 단 한 글자라도 더 보태거나 뺄 수 있는 자가 있으면 천금 을 주겠다." 이때부터 '일자천금 字千金'이란 말은 고칠 게 없는 완벽한 글을 뜻 하는 용어가 되었다.
한때의 부귀영화는 물거품과 같은 것이다
태후는 시황이 점점 장년이 되어가는데도 여불위를 불러들여 계속 정을 통하였다. 여불위는 세월이 지나면서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만약 이 일이 발각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 뻔했다. 얼마 후 여불위는 노애라는 자를 하인으로 두게 되었다. 노애는 잘생 긴 남자로 여자면 누구나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자였다. 이 소문은 곧 태 후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자 태후는 노애를 한 번 보고 싶어 하였다. 이에 여불위는 기회가 왔구나 싶어 노애를 궁중으로 보냈다. 태후는 완벽하게 일을 꾸미기 위해 노애의 수염과 눈썹을 뽑아 환관 으로 만들어 시중을 들게 하였다. 태후는 노애와 정을 통하면서 그를 끔찍이도 사랑했다. 그러다가 임신이 되자 태후는 이 사실을 남들이 알 까 두려워서 아픈 척한 뒤 점쟁이를 매수하여‘궁궐을 옮겨 옹 땅에서 살아야 낫는다'는 점괘가 나오도록 하였다. 태후는 궁중에서 나와 옹 땅으로 거처를 옮긴 후 노애와 아예 터놓고 정을 통했다. 노애는 이제 모든 일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게 되 었다. 노애의 하인은 수천 명이나 되었으며, 노애에게 잘 보여 벼슬자 리나 얻어 보려고 그의 심복이 된 빈객들도 천여 명이나 되었다. 진나라 시황 9년, 시황은 마침내 태후와 노애의 음행을 알게 되었고, 이 일이 여불위와도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시황은 노애의 삼족을 멸하고, 태후가 낳은 두 아들을 죽였으며, 태후를 옹 땅에 유폐시켰다. 시황은 상국 여불위도 베고자 했다. 그러나 여불위가 선왕을 받든 공 로가 너무나 크고 또 그의 사주를 받은 빈객과 변사들이 입을 모아 반 대하여, 시황은 그를 파면하여 하남 땅으로 떠나게 했다. 그러나 여불 위가 복직이 되어야 한다는 상소가 그치지 않자, 시황이 여불위에게 글 을 내려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진나라에 무슨 공이 있기에 진나라가 그대를 하남에 봉하고 10만 호를 식읍으로 내렸단 말인가? 그대가 진나라와 무슨 친족관계가 있기에 중부라는 호를 가지게 되었는가? 즉시 그대는 가족과 함께 촉 땅으로 옮겨 살도록 하라.' 여불위는 이제 자신의 최후가 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누려왔 던 부귀영화는 물거품과 같은 것이었다.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두려웠던 그는 스스로 독주를 마시고 죽었다. 공자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명문名聞(명성)이라는 것은 겉으로는 인 仁을 취하는 체하면서 행동은 그와 다르며, 그렇게 행동하면서도 인을 자처하여 의심받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나라에서도 반드시 이름이 드 러나고 집안에서도 반드시 이름이 드러난다.” 실로 '명성 있는 자'는 여불위를 두고 일컫는 말이 아니겠는가!
소설보다 재미 있는 사기열전
지은이 : 사마천
편역자 :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