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보다 재미있는]사기 열전_79

하늘은 과연 착한 사람의 편인가?

백이 숙제 : 수양산에서 굶어 죽은 백이와 숙제

적어도 이 땅의 팔팔한 사람이라면 '백이佰夷·숙제叔齊 이름 정도는 어디선가 들어보았으리라. 그렇다. 백이·숙제는 아주 까마득한 옛날, 중국에 있던 고죽국孤竹國이란 나라의 왕자였다. 이제 그 옛날의 이야 기로 잠시 돌아가 보자.

고죽국의 임금은 이제 나이가 들어 왕위를 물려주어야 할 때가 왔다 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구에게 왕위를 물려줄까 생각하다가 셋째인 숙제에게 넘겨주기로 했다. 아마 맏이인 백이보다 셋째인 숙제가 더 마음 에 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고죽국의 임금은 숙제가 왕위에 오르는 것 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보위는 형님의 것이오. 제가 어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겠습니까?" 숙제는 형인 백이에게 보위를 내놓았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자네가 보위를 이어받는 것은 돌아가신 아바 마마의 명령일세.” “그럴 수 없습니다. 보위는 맏이인 형님이 이어받아야 합니다.” "아바마마의 명령을 거역할 셈인가?" 백이는 숙제가 말을 듣지 않자 멀리 도망쳐 버렸다. 그러자 숙제도 보위를 버리고 백이를 따라서 도망치고 말았다. '이런 세상에………………

남들은 보위를 차지하기 위해 형제끼리 서로 죽이며 피를 흘리는 일 이 허다한데 이상한 일이었다. 고죽국 사람들은 할 수 없이 둘째아들인 중자中子를 임금으로 삼았다. “들으니 서백창西伯昌(주나라 문왕文王의 이름)은 늙은이를 잘 부양한다 고 하니 우리 그리로 가서 몸을 의지해보세.”

오갈 데가 없게 된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들이 주나라를 찾아갔을 때 문왕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허허, 이거 우리 꼴이 우습게 되었네.” 두 형제는 마주보며 쓸쓸히 웃음을 지었다. 주나라는 문왕의 뒤를 이 어 그의 아들인 무왕武王이 임금의 자리에 올라 있었다. 무왕은 보위에 오르자마자, 아버지의 상도 채 끝내지 않았는데 은나라 주왕紂王을 치 려고 전쟁을 일으켰다.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는가?" 백이와 숙제는 전쟁터로 떠나는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매달렸다.

“아버지의 장례도 다 치르지 않고 전쟁을 일으키려 하시니 어찌 효자 라 할 수 있습니까? 또한 신하인 제후로서 천자를 시해弑害하려 하시니 이 어찌 어진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당시 은나라는 천자天子의 나라요, 주나라는 제후의 나라였다. , 천자의 나라는 모든 제후국들의 추앙을 받는 나 라이며 제후국과는 급이 달랐다는 정도로 이해하자. 그렇기 때문에 설 령 은나라의 주왕이 폭군이라 하더라도 제후국인 주나라가 폭력으로 이를 제압하려고 하는 것은 어짊仁을 숭상하는 당시 중국에서는 명분도 없고 손가락질받을 만한 일이었다.

어찌 됐든 낯모르는 사람 둘이 무엄하게도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길 을 막으니 좌우의 신하들이 가만 둘 리 없었다. 그들은 즉시 칼을 빼들 고 백이와 숙제를 내리치려 하였다. 이때 무왕의 군사軍師인 태공망 여 상呂尙이 놀라서 말리고 나섰다. “이 사람들은 의로운 사람이니 죽이지 마라." 태공망은 한눈에 백이와 숙제를 알아보았다. 두 사람은 태공망의 덕 분으로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그러나 무왕은 결국 은나라를 치고 천하를 평정하니 온 천하가 그를 우러러보게 되었다. 그때도 아마 세상 은 힘 있는 자의 편에 많이 섰던 모양이다. 그러나 어짊을 중시 여기는 사람들은 땅을 치며 탄식했다. '부끄러운 세상이로다! 우리가 어찌 주나라의 곡식으로 먹고 살아가 겠는가!"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의 백성이 된 것을 탄식하며 수양산으로 들어 갔다. 그리고 그곳에 숨어 고사리를 캐어 먹으며 살다 굶어 죽었다. 그때 백이와 숙제는 이런 노래를 지어 불렀다 한다. 저 산에 올라가 고사리를 뜯네. 포악한 방법으로 포악함을 반복한 무왕은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하네. 신농神農·우虞·하夏 나라 시대는 지나갔으니 우리는 어디로 가서 몸을 의지해야 하나? 아아, 남은 것은 죽음뿐, 우리 운명도 이제 다하였구나! 어떤 이는 말하기를, 하늘의 도는 공평하여 늘 착한 사람의 편에 있 다고 한다. 백이와 숙제는 어짚을 쌓고 행동을 깨끗하게 하였으니 착한 사람이 분명하다. 그런데 하늘은 어찌하여 두 사람을 굶어 죽게 한 것 인가? 공자는 70명의 제자 가운데서 안연淵만이 학문을 좋아한다고 칭찬 했다. 그러나 그는 끼니를 자주 걸렀으며 술지게미나 겨밥 같은 거친 음식조차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결국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복을 준다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이에 반해 춘추시대 말기의 도적인 도척盜은 어떤가? 그는 날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생간을 회쳐 먹은 포악한 인물이었다. 이 악랄한 도척은 수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천하를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말로 할 수 없는 못된 짓을 다하였으나, 천벌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장수하였으니 이는 그에게 과연 덕행德行이 있어서인가? 요즘 세상의 일을 보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어떤 사 람은 남에게 온갖 악행을 일삼으면서도 대를 이어 부귀영화를 누리는 가 하면, 땅을 가려서 딛고, 적합한 때를 기다려서 말을 하며, 큰 길이 아니면 다니지를 않고, 공정한 일이 아니면 나서지를 않는데도 환난과 재앙을 만나는 사람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런 것이 하늘의 도, 즉 천도라고 한다면 그 천도는 과연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의 백성이 된 것을 탄식하며 수양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숨어 고사리를 캐어 먹으며 살다 굶어 죽었다.)

파리는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천 리를 간다

공자는 말하기를도가 같지 않은 사람과는 더불어 일을 꾀하지 않 는다"고 했다. 추운 겨울이 된 뒤라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어 떨 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도 했다. 세상이 흐려지면 비로소 깨끗하고 맑은 사람은 드러나 빛이 난다. 공자는 또 "같은 종류의 빛은 서로 비추어 주고, 같은 종류의 물건은 서로 어울린다하였으며, "구름은 용을 따라 생기고, 바람은 범을 따라 일어난다. 이처럼 성인이 나타나야 세상 만물도 다 뚜렷이 드러나게 되 는 법이다"라고도 하였다. 백이·숙제가 비록 불우하게 일생을 마쳤으나 그들의 이름은 공자의 칭송하는 말을 얻어서 온 세상에 빛이 나지 않았는가. 안연이 학문을 매우 좋아하기는 하였지만, 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천 리를 갈 수 있듯이 그도 공자의 칭찬을 받아 더욱 드러나게 되었다. 산중에 은거하는 선비는 일정한 때를 보아 세상에 나아가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람들의 이름이 그대로 사라지고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시 골에 묻혀 사는 사람이 덕행을 가다듬어 세상에 이름을 알리려 해도 공 자와 같은 성현의 덕으로 칭송되지 않는다면, 후세에 그 이름이 전해질 수 없다.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관중·포숙 : 관중과 포숙아의 두터운 우정

관포지교란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사귐에서 유래된 고사성어로, 우정이 돈독하고 아주 친한 친구 사이를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관중 은 포숙과의 사귐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가난하게 살 때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한 일이 있었다. 나는 장사 해서 얻은 이익을 나누어 가질 때 포숙보다 많이 가졌다. 그러나 포숙 은 나를 탐욕스럽다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 다. 한번은 내가 일찍이 포숙을 대신해 일을 도모한 적이 있었다. 그런 데 그만 그 일이 잘못되어 포숙을 궁지에 몰아넣고 말았다. 그러나 포 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말하지 않았다. 사람에게 운運이란 것이 있어 유리한 때도 있고 불리한 때도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 내가 벼슬을 할 때 세 번이나 임금에게 쫓겨난 일이 있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못 났다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때를 만나지 못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내가 전쟁터에서 세 번 싸우다가 세 번 달아난 일이 있었 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비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나에게 노모老母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 준 이는 포숙이다."

젊은 시절부터 포숙은 관중의 현명함을 알아주었고, 그가 곤궁하여 자주 속였지만 포숙은 변함없이 잘 대해주었다. 친구의 사람이 이 정도 는 되어야 우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제나라 양공襄公 때의 일이다. 양공은 음탕하기 그지없는 임금으로 사생활이 극도로 문란하였다. 양공의 사생활이 이러하니 정치는 보나마나 썩어 문드러졌을 일이다. 그런 나라가 과연 오래 가겠는가. 양공의 아들인 규糾와 소백小白은 장 차 제나라가 혼란에 빠질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이 곳에 남아 있다가는 장차 화를 당하겠구나!

두 왕자는 다른 나라로 몸을 피했다. 이때 관중과 포숙이 같이 따라 가게 되었다. 두 사람은 젊었을 때부터 아주 친하게 지내온 사이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섬기는 주인이 각각 달랐다. 포숙은 소백을 주군으로 섬겼고, 관중은 소백의 형인 규를 주군으로 모시고 있었다. 마침내 제나라의 양공이 죽고 왕의 자리가 비게 되었다. 소백과 규 두 왕자는 고국을 향해 부지런히 말을 몰았다. 먼저 제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이 왕위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소백과 규 일행이 길에서 마주쳤다. 이때 관중은 소백 일행을 보고 물러나는 척하면서 번개같이 활을 잡아당겨 수레 위에 앉아 있는 소백을 쐈다. 그 순간 소백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말에서 고꾸라졌다.

관중은 비로소 규를 모시고 제나라로 천천히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이미 죽은 줄로만 알았던 소백이 먼저 도착해 임금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관중을 비롯한 규 일행은 그만 앞이 캄캄해졌 다. 그렇다면 화살을 맞고 말에서 떨어진 소백은 죽지 않았단 말인가. 그랬다. 관중이 쏜 화살은 소백을 명중시킨 게 아니라 사실 그의 허릿 대를 맞췄을 뿐이었다. 소백이 규 일행을 안심시키려고 잠시 꾀를 썼던 것이다. 그리하여 소백은 환공桓公이 되었다. 훗날 춘추시대의 첫 패자 가 되는 사람이 바로 그다.

'하늘이 우리를 버리니 어찌하랴!'

관중은 나라 바깥을 떠돌며 피해 다니다가 결국 환공 앞에 잡혀 오게 되었다. “하하하, 오랜만이구나 관중. 나를 죽이려 하더니 꼴 좋게 되었구나. 어디 내 손에 죽어 봐라." 환공은 예전의 일을 떠올리며 칼을 빼들어 당장이라도 목을 베려 하 였다. 그러자 포숙이 일어나 앞을 가로막았다. "참으소서, 신하된 자로서 그 누가 자기 주인을 위하여 일하지 않겠 습니까. 관중이 주공을 쏜 것은 그가 규를 주인으로 섬겼기 때문일 뿐 입니다. 이제 주공께서 과거를 용서하시고 그를 쓰시면 관중은 마땅히 주공을 위해 활로 천하를 쏠 것입니다. 만약 주공께서 이 제나라만으로 만족하신다면 신 하나로 충분하리라 봅니다. 그러나 천하를 얻으려 하신다면 반드시 관중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주공께서는 어찌 그까짓 허 릿대 맞춘 일에만 집착하십니까?"

(관중과 포숙은 제나라 사람들로 둘은 절친한 친구이면서도 섬기는 주인이 달라 훗날 소백이 제나라 왕이 되었을 때 관중은 포로로 붙잡혀 목이 베일 처지였다. 이때도 포숙은 관중 의 목숨을 구해 준다)

환공은 결국 포숙의 강력한 추천에 마음이 움직여 관중을 재상으로 등용했다. 포숙은 관중을 천거한 후 스스로 관중의 아랫자리에 들어가 일하는 겸손을 보였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훗날까지 관중의 재주를 칭찬하기보다는 포숙의 사람됨을 칭송하였다. 두 사람의 우정은 그렇 게 지속되었던 것이다.

주는 것이 천하의 민심을 얻는 길

제나라 정사를 맡은 관중은 재주를 발휘하여 상업과 유통업을 발전 시켰다. 재물을 축적하여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대를 훈련시켜 강하 게 만들었다. 또한 습붕과 같은 어진 신하를 추천하여 적시적소에 일을 맡기니 제나라의 국력은 날로 강성해졌다. 이에 환공은 관중의 공을 기 려 '중부仲父'라고 불렀다. 중부란 어버이와 같은 존재라는 뜻이다. 어느날 환공이 조회에서 모든 신하들에게서 신년 축하를 받고 관중 에게 물었다. "과인은 중부의 가르침을 받아 국정을 쇄신하고 군사와 군량도 풍족 하게 하였소, 물자가 풍부해지니 자연히 백성들도 예의를 알게 됐소. 이제 맹주盟主(동맹국의 우두머리)가 되어 천하의 권세를 얻고 싶은데 장 차 어떻게 하면 좋겠소?" 관중은 곧 계책을 내놓았다.

“천자의 뜻으로 모든 제후를 모은 뒤 명령하되, 안으로는 왕실을 높 이고 밖으로는 사방 오랑캐를 물리치십시오. 또한 난을 일으켜 천하를 어지럽히는 자가 있거든 다른 제후들과 함께 그 자를 토벌한다는 명분 을 밝히십시오. 그러면 천하의 제후들이 우리를 따를 것입니다. 이것이 천하의 패권을 잡는 길입니다." "그거 참 좋은 생각이오. 내 그리 해보겠소.” 환공은 크게 기뻐하며 관중의 계책대로 천하 제후들을 불러들여 동 맹을 맺자고 하였다. 그런데 이 자리에 약소국인 노나라가 참석하지 않 았다. 제나라가 가끔 노나라를 침범하여 괴롭혔기 때문에 좋은 감정이 아니었다.

"이런 괘씸한.......” 화가 난 제나라 환공은 노나라 장공을 불러들였다. '허허, 이거 큰일났구나. 제나라 환공의 심사를 뒤틀리게 하였으니 장차 이 일을 어찌할꼬? 노나라 장공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제나 라 환공이 불렀으니 아니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때 조말曹沫이라 는 장군이 장공을 모시고 따라가겠다고 자원했다. 그는 지난날 제나라 와세 번 싸워 세번 모두 패한 바 있는 사람이었다. "그대는 세 번이나 제나라 군사에게 패한 사람이 아닌가? 제나라 사 람들이 그대를 보고 비웃으면 어찌할 것인가?" 노나라 장공이 미덥지 못해 물었다. "부끄러운 일을 세 번씩이나 당했으니, 이번에 가서 단번에 치욕을 되돌려 줄 생각입니다.”

조말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지만 장공은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 다. 마치 적진에 홀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노나라 장공과 제나라 환공이 마주하게 되었다. 둥둥둥 북소 리가 세 번 울리자 제나라 습붕이 검은 소와 백마의 피가 가득 든 옥잔 을 들고 올라와 무릎을 꿇었다. 습붕이 두 군주에게 삽혈(맹세할 때 입가 에 짐승의 피를 바르는 의식)하려는 순간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조말이 단상으로 뛰어올라와 환공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지금 그대는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가?" 환공이 호통을 쳤으나 조말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자주 침범하는 것은 도에 어긋납니다. 지난날 전 투에서 빼앗은 우리 땅을 돌려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 모임 은 끝장날 것입니다.” 환공은 일단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조말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약 속했다. 그러자 조말이 단상을 내려가 신하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의 안색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기상 또한 늠름했다. 환공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약속은 했으나 생각해보니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 없었다. "중부, 이 약속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이오. 분이 치밀어서 견딜 수가 없소. 저 조말이라는 놈을 쳐죽이고 없었던 일로 하겠소.” 그러나 관중이 정색을 하면서 말렸다. “협박을 당해 할 수 없이 했다고 해도 약속은 약속입니다. 약속을 없 었던 것으로 하고 상대를 죽인다면 신의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제후들의 신뢰를 잃게 되어 천하의 민심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약속대로 이행하십시오. 주는 것이 얻는 길입니다. 작은 이익을 탐하여 만족하시면 제후들의 신망을 잃게 되며 천하의 명성을 스스로 버리게 됩니다." 결국 환공은 관중의 말에 따라 지난날 빼앗은 땅을 노나라에 되돌려 주었다. 비록 협박을 당해서 한 약속이었지만 환공의 신의 있는 행동에 천하의 제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제나라와 동맹을 맺고자 하는 나라가 점점 더 많아졌다. 환공 7년에 드디어 제후들은 환공을 맹주로 추대하고 견 땅에서 의식 을 치렀다. 그리하여 제나라 환공은 마침내 춘추오패春秋五覇(제후를 모 아 그 회맹會盟의 맹주盟主가 된 자를 패자覇者라고 한다. , 제나라 환공, 진晉나라 문공文公, 진秦나라 목공穆公, 송나라 양공襄公, 초楚나라 장왕莊王을 가리킨다) 중 첫번째 패자가 되었다.

공자는 관중을 소인이라 평하고

환공 41, 마침내 관중이 병으로 쓰러졌다. 환공은 관중의 후임자를 정하는 것이 제일 급한 일이라 문병을 가서 관중에게 물었다. "그대의 후임자로 포숙을 정하면 어떻겠소?" 그러나 관중은 고개를 흔들었다. “포숙은 군자君子이기 때문에 정치를 못합니다. 그는 선악을 대하는 태도가 지나치게 분명합니다. 물론 선을 좋아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나 그만큼 악을 미워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포숙은 나쁜 일을 한 사람을 평생 미워합니다. 그러니 누가 포숙 밑에서 견뎌내겠습니까. 이것이 포숙이 정치를 할 수 없는 결점입니다." 환공이 초조해서 다시 물었다. "그럼 습붕은 어떻겠소?" "습붕이면 무난하리이다. 그는 성격도 원만하고 공사소천도 잘 구분 할 정도로 충실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명이 길지 않을 듯싶 습니다." 환공이 다시 물었다. "역아易牙는 어떻겠소?" 관중이 손을 휘저으며 대답했다. “주공이여, 더는 묻지 마소서. 역아뿐만 아니라 수조, 개방開方 이 세 사람을 결코 가까이하지 마소서.” "역아는 지난날 과인이 입맛을 잃었을 때 제 자식을 삶아서 과인에게 먹인 사람이오. 그는 자기 자식보다도 과인을 사랑한 사람인데, 그래도 의심해야겠소?"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큰 사랑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제 자식 을 죽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임금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개방은 어떻소. 그는 위나라 공자면서도 자기 나라를 버리 고 과인의 신하로 있는 사람이오. 더구나 그는 부모가 죽었어도 본국에 돌아가지 않았소. 그는 친부모보다 과인을 사랑하는 사람이잖소?" "그는 부모에게 불효했습니다. 인륜을 저버린 사람이 폐하께 무슨 도 움이 되겠습니까. 그가 주공 밑에 와 있는 것은 큰 욕심이 있어서일 겁 니다. 가까이하시면 이 나라가 혼란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조는 어떻소?" “수조는 스스로 거세去勢하여 폐하께 아부한 인물입니다. 이 또한 인 간으로서 도리가 아닙니다. 그를 신임해서는 안 됩니다." 환공은 말없이 관중의 집을 나와 궁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관중이 자신을 천거하지 않았다는 말을 습붕에게서 전해 들 은 포숙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처럼 관중을 천거한 사람은 바로 나였소. 관중은 나라에 대한 충성만이 있을 뿐, 친구나 자기 개인을 위해서 나 랏일을 잘못 판단할 사람은 아니오. 만일 관중이 나에게 사구司寇(지금의 법무부 장관) 벼슬만 시켰더라면 내가 벌써 이 나라 간신을 다 내쫓아 버 렸을 것이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나도 이걸 생각하면 참 분하구려." 옆에서 이 말을 들은 역아는 포숙의 말에 얼굴을 붉힌 채 슬며시 물러 났다. 드디어 관중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환공은 관중의 말을 듣지 않고 수조와 개방, 역아를 중용하였다. 환공이 이들 간신에 둘러싸이니 어느 덧 패자로서 면모는 사라지고 국력은 기울기 시작했다. 관중이 죽은 지 2년 후 겨울에 환공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환공은 원래 대단한 호색가라 세 명의 부인 외에 많은 여인들을 첩으로 거느리 고 살았다. 그런데 환공은 불행하게도 세 부인에게선 아들을 얻지 못하 고 첩들의 아들만 여럿 두었다. 환공은 첩 중에서 정희 소생의 아들인 소를 태자로 세웠으나 그가 죽은 후 역아가 장위희와 작당하여 그녀의 소생인 무궤를 즉위시키려 하였다. 이 소식이 퍼지자 궁중 안은 공자들간의 권력 투쟁으로 피가 튀기 시 작했다. 아직 환공의 장례도 치르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하여 두 달 동 안이나 침실에 방치된 환공의 시체에서는 구더기가 들끓었다. 이러한 혼란 후 제나라는 급속하게 국력이 약화되어 결국 패자의 권위를 잃고 말았다. 관중을 세상 사람들은 어진 신하라고 평했으나, 공자孔子는 그를 소 인小ㅅ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관중이 주나라 왕실의 운명이 쇠한 상황 에서 어진 환공을 도와 인의仁義 정치를 행하도록 힘을 기울이지 않고, 무력으로 천하를 다스리려는 동맹국의 우두머리로 이름을 떨치게 하였 기 때문이다. 옛말에 '군주의 잘한 점은 더 잘하게 하고, 잘못된 점은 지적하여 바 로잡아 주어야 군주와 신하가 서로 친하게 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아 마도 이 말은 관중을 두고 한 말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환공은 부인 세 명과 여러 첩들을 거느릴 정도로 호색가였다. 그러나 세 부인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하 고 첩의 아들만 여럿 두어 그가 죽자, 곧바로 권력 투쟁이 벌어졌다. 아직 환공의 장례도 치르지 못한 상 태였다. 두 달 동안 침실에 방치된 환공의 시체에서는 구더기가 들끓었다.

 

뜻과 생각이 깊어도 몸은 낮춘다

안영 : 군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자에게 뜻을 펼친다

월석보越石父라는 어진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쩌다 죄인의 몸이 되어 오라에 묶인 채 끌려가게 되었다. 당시 제나라의 재상이었던 안영이 길 거리에서 우연히 이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 수레의 왼쪽 말을 풀어 죗값으로 내주고 월석보를 자신의 수레에 태워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한 안영은 월석보에게 인사 한 마디 건네지 않고 내실로 들 어가 버렸다. 그러자 잠시 후에 월석보가 안영에게 떠나겠다는 뜻을 전 해왔다. 안영이 깜짝 놀라 옷과 관을 가지런히 하고 뛰쳐나와 사과하며 말하였다. “제가 비록 어질지는 못하나 당신을 어려울 때 구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렇게 빨리 떠나려 하십니까?" 그러자 월석보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듣건대 군자는 자기를 몰라주는 자에게는 뜻을 굽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자에게는 뜻을 펼친다고 합니다. 내가 묶 여 있을 때 저 포졸들은 나를 몰라주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깨달은 바 있어 나를 구해주었으니 나를 알아준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알아주면서도 이렇듯 예에 어긋나게 대해주신다면 이는 진실로 내가 묶여 있을 때보다도 못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그만 큰 무례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안영은 잘못을 깨닫고는 즉시 월석보를 귀한 손님으로 모셨다. 안영이 제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였다. 안영이 외출하려는 모습을 마부의 아내가 문틈으로 엿보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재상의 마부였는데, 커다란 차양을 받쳐들고 네 필 말에 채찍질을 하면서 의기양양하여 매우 만족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 간이 지나 마부가 집으로 돌아오자 그의 아내는 침통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난 당신과 더는 살 수 없어요. 우리 헤어집시다." "헤어지자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오?" 안영의 마부는 놀라서 그 까닭을 물었다.

"당신이 모시는 주인은 키가 6척도 못 되지만, 제나라의 재상이 되어 제후 사이에 이름을 드날리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그분의 외출하는 모 습을 보니 뜻과 생각이 깊고 항상 겸손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신 은 키가 8척이나 되건만 마부 신세인데도 의기양양하여 교만에 차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첩이 떠나고자 하는 겁니다."그 일이 있은 후부터 마부는 겸손해졌다. 안영이 이상히 여겨 그 사 유를 물으니, 마부가 사실대로 아뢰었다. 그러자 안영은 그를 추천하여 대부大夫로 삼았다.

재상의 마부인 남편은 키가 8척이나 되건만 의기양양하며 교만에 차 있었다. 제나라 재상 안영은 키가 6척도 안 되지만 생각이 깊고 겸손했다.

 

죽은 임금의 시체 앞에서 곡하는 재상

안영은 재상 자리에 있으면서도 검소하여 반찬으로 두 가지 고기를 먹지 않았다. 물론 첩에게도 비단옷을 걸치지 못하게 했다. 조정에 나 아가 임금 앞에서는 항상 신중하게 말과 행동을 하였고, 집에 들어와서 도 몸가짐이 조신했다. 임금이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리면 그 명령에 순 종하였지만, 그렇지 않고 바르지 않은 명령이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 고 따르지 않았다. 제나라 장공莊公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장공은 신하인 최저의 집에 들르게 되었다. 그런데 집 안에서 최저의 아내를 처음 본 장공의 눈썹이 저절로 치켜올라갔다. '절세미인이로다. 최저가 어디서 저렇게 어여쁜 부인을 얻었을까? 장공은 그만 넋을 잃었다. 그러지 않아도 미인만 보면 눈동자를 데굴 데굴 굴리는 장공이 아니었던가. 기회만 엿보던 장공은 기어코 그녀와 정을 통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일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사람들 보는 앞에서 최저의 관을 벗겨 모욕을 주었다. '어디 두고 보자!' 최저는 이를 부드득 갈며 장공에게 복수할 날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장공의 귀에, 최저가 병이 났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최저가 장공을 불러들이기 위해 함정을 파놓은 것이었다.

'와아! 이거야말로 하늘이 내게 주신 기회가 아닌가? 장공은 다시 한 번 최저의 아내와 정을 나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여기며 무릎을 쳤다. 그러지 않아도 최저의 집에 찾아가고 싶어 안달이 났는데 말이다. 마침내 장공은 병 문안을 핑계삼아 최저의 집을 찾아 갔다.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장공은 최저의 부인과 밀통하려는 생각에 그만 호위병을 문 밖에 세 워두고 부인의 방으로 몰래 들어갔다. 이때 옆방에 숨어 있던 최저의 부하들이 무기를 손에 든 채 부인의 방으로 들이닥쳤다. “웨, 웬놈들이냐?" 장공은 문을 박차고 나와 급히 정원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그는 멀리 못 가서 이내 잡히고 말았다. 장공은 창피했지만 위엄을 갖춰 소리쳤다. "네 이놈들! , 나는 너희들의 임금이다. 저리 물러서지 못할까?" 그러나 최저의 부하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잡으려는 건 음탕한 도둑놈이지 임금이 아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한꺼번에 달려들어 장공을 베어버렸다. 조정의 대 신들이 뒤늦게 이 소식을 들었지만, 최저의 무서운 기세에 눌려 모두 문 을 걸어 잠근 채 쉬쉬했다. 하지만 안영만은 서둘러 최저의 집으로 달 려가 문 밖에서 통곡을 했다. “임금이 나랏일로 죽었다면 신하 또한 충성을 다해 죽는 것이 당연한 일이로다. 하지만 사사로운 욕심으로 죽어 그럴 수도 없다. 그렇다 해 도 임금의 총애를 받았던 사람이 장례조차 지내주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하겠는가." 안영의 충성스런 마음에 감동을 받은 최저가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안영은 바로 달려들어가 시체 위에 엎드려 다시 한 번 통곡한 다음 예를 다하고 나왔다. 그때 최저의 부하가 말했다. “이번 기회에 아예 안영도 없애버리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명령만 내리십시오." 그러자 최저가 말했다. “안 된다. 안영은 지금 세상의 인심을 얻고 있다. 그를 없애면 천하가 나를 손가락질할 것이다." 안영은 최저에게 시해된 장공의 시체에 엎드려 곡하고 예를 다한 뒤 에 나왔으니, 이것을 보고 어찌 '의를 보고도 행하지 않은 용기 없는 짓'이라고 할 것인가? 그 후 최저가 장공의 동생을 임금의 자리에 앉히니 바로 경공景公이다. 이제 조정은 최저의 손에 넘어가 있었다. 최저는 경공을 앞세워 조 정 대신들을 한 사람씩 불러 충성 서약을 받았다. 대신들은 모두 벌벌 떨며 최저가 요구하는 대로 머리를 굽실거렸으나 안영만은 예외였다. 그는 얼굴색 하나 변함이 없이 꼿꼿이 서서 자신의 생각을 떳떳이 밝혔 다. 안영의 높은 인품과 학식에 조정 대신뿐만 아니라 최저도 감탄했 다. 안영은 임금이 바뀌었지만 재상으로 다시 등용되어 나랏일을 맡게 되었다. 안영은 임금에게 간언할 때에는 왕의 면전에서도 기탄 없이 직언했 으니, 이것은 소위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물러나서 는 허물을 보충할 것을 생각한다'는 자세였을 것이다. 만약 안영이 지금 살아 있다면, 그를 위하여 말채찍을 잡는 비천한 일을 해도 좋을 만큼 흠모할 것이다.

장공은 신하 최저의 집에 우연히 들렀다가 최저 부인의 미모에 넋을 잃는다. 기회만 엿보던 장공은 기 어이 그녀와 정을 통하지만, 결국 죽음을 면치 못한다.

 

소설보다 재미 있는 사기열전

지은이 : 사마천

편역자 :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