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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인류의 지혜]인도_10#58

 

인도_10

Shiva Nataraja, in Hinduism, is the god of dance, symbolizing the creation and destruction of the universe. Jain cosmology views time and space as infinite, with souls reincarnating endlessly. Hindu temple architecture evolved after the 5th century, particularly in South India. The Mughal dynasty showed artistic and architectural innovation by blending Islam and Hinduism. Hinduism embraces other religions, and gurus are seen as spiritual figures pursuing enlightenment.

시바 나타라자

남인도 전역에 걸쳐 시바 나타라지는 춤의 신으 로 숭배된다. 힌두교 철학과 인도 예술사 의 권위자인 아난다 쿠마라스와미는 시바의 춤은 "모든 예술 혹은 종교 가 표현하고자 하는 신의 활동을 나타내는 가장 명백한 이미지"라 고 말한다.

시바의 춤은 존재하는 것들의 합 일과 그 리듬을 상징하는 것이 다. 활기에 넘치는 자세와 동작 속에 끝없는 창조와 파괴의 역 동성이 표현되어 있다. 시바는 우주의 삶과 죽음을 의미하는 불의 원 안에서 춤 을 추고 있다. 변화하지 않는 궁극을 지향하는 춤 을 추는 신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우주의 에너지는 창조의 '놀이(릴라) 속 에서 새로운 형태를 갖춘다. 나타라자의 생생한 상징은 소위 신의 다섯 가지 행위를 표현하는 것이다. 즉 우주를 창조하고, 우주에서 그 창조 를 보존하고, 네 가지 세계의 시기가 순환하는 가운데 각 시기의 마지막에서 소 멸하고, 신격의 본성을 감추고 참 된 지식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

나타라자의 춤추는 자세와 균 형은 우주의 창조 및 파괴의 원심 력인 타마스라는 속성을 보여 준다. 이는 상키아 철학에서 말하는 우주에 만연한 세 가지 성질(구나) 가운데 첫번째이 다. 시바로 상징되는 타마스(어두움)는 만물의 계속적인 탄생과 그것의 변화 그리고 죽음을 나 타낸다. 보존의 신 비슈누(48~49쪽 참조)로 표현되는 사트바(고요함)는 세상 모든 존재들의 입자를 지탱하는 성질이다. 이 두 성질은 하나가 우주의 입자들을 붙잡아 유지하고 다른 하나가 그것을 분해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 서 충돌(라자스)이 생겨나게 된다. 충돌은 우주 의 입자들을 진동하게 하고 또 입자들이 땅에 붙 어 있도록 하는 중력을 만들어낸다 브라마 신으 로 상징되는 이 충돌은 지각과 사고와 같은 신비 스러운 에너지이자 물질로 우주의 건축자재인 것이다

만물에는 의식이 내재되어 있고 우주에도 의 식이 만연해 있다. 의식은 본래 에너지가 만들어 지는 중심부(빈두)에서 창조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첫번째 단계는 '공간으로 채워져 있다.

이 영역이 바로 타마스의 시바적 측면인 에너지 가 확장되는 세계인 것이다. 무지가 만연하는 시 기인 칼리 유가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그 확장이 가속화되고 모든 것이 가라앉으며 시바가 무시무 시한 파괴의 춤인 탄다바를 추는 때이다.

 

자이나교의 우주론

자이나교의 우주(로카)는 인도에서 만들어진 우 주론 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구조를 가졌다. 자이 나교의 우주론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시작도 끝 도 없는 것이라고 한다. 세계는 무한하고 인격이 없으며 그 어떤 윤리적 작용도 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우주는 창조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 재하고 있는 것이다. 로카 그 자체는 무수히 많 은 영혼들이 끊임없이 재탄생되는 무대이다.

자이나교 철학은 우주를 지바(영혼)와 이지바 (비영혼)라는 두 개의 범주로 나눈다. 그 중에서 도아지바는 다르마(운동), 아다르마(정지), 푸드 갈라(원자), 아카샤(공간), 칼라(시간)의 다섯가 지 근본적인 실체로 이루어진다. 지바는 그 안에 내재된 절대의지로 움직이는 영원하고 초월적인 '순수한 의식으로 이루어진다. 원자의 무력한 집합체에 불과한 육신의 눈과 귀 등의 감각기관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고 인지하는 것이 바로 지 바이다. 지바가 바로 모든 두뇌의 지적 기능을 조 정하고 영적인 지식과 깨달음을 습득하는 주체이 다. 지바는 두 가지의 형태, 즉 바위 풀 등 움직 이지 못하는 것들과 곤충 동물··사람 등 음 직이는 것들로 형상화된다. 이러한 생명의 다양 한 형태는 서로 다른 것으로 인식되지만 내부적 으로는 모두 각각 다른 껍데기 속에 들어 있는지

바들이기 때문에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신 악마 바위 사람 그리고 풀 등 지바가 계속적으로 환생하는 것들 가운데 사람만이 생 의 과정을 통해서 해탈에 이를 수 있다. 자이나 교 철학에서는 지비가 게체적 단계와 욕망에서 풀려나고 업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축복 의 상태가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이것은 수 많은 생을 통해 훈련하고 금욕을 실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단계이다. 신들은 때때로 부귀나 보호를 비는 자이나교도의 숭배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실제 자이나교 우주론에서는 상대적으 로 낮은 위치를 점하고 있다. 신들은 과거의 선 한 업으로 인해 천계에 살고 있지만 그것은 오래 않아 소진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시 이 셋지 바퀴 속의 먼지 바위 구름 세균 등 가련한 신세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환 생은 그 지바의 행위와 업에 따라 70만 년까지 이어진다.

시간과 공간의 원리를 다룬 최초의 자이나교 문헌은 인식론 강해>인데 기원전 3세기경에 편 찬되었고 나중에 많은 부분이 첨가되었다. 이 문 헌은 우주가 위와 아래는 광활하지만 그 가운데 좁다고 하며, 우주가 평상시에 어떤 구조로는 어떤 형상을 이루고 있는가를 상세하게 논하고 있다. 16세기 이후로는 우주가 거대한 인간의 형 상(푸루샤)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이 거대한 실 체는 스스로는 자기 의지가 없고, 계속적으로 환 생하는 지바의 환영에 의해서 영혼이 없는 물질 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단순한 집합체에 불과하 다고 한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지구는 우주의 중간단계라 고 했다. 아래에는 일곱 개 층의 지옥이 있고, 그 중 제일 아래에 있는 것은 어둡고 우주의 발 아 래 가장 잔인한 곳이다. 위로는 14단계로 된 천 상계가 있는데 각기 다른 계층의 신들이 살고 있 다. 가장 높이 있는 곳에는 약간 둥글게 생긴 장 소가 있는데, 이곳은 해탈한 지바들이 더 이상의 환생을 거치지 않고 살고 있는 곳이다.

 

점성학

점성학(고대에는 천문학과 같은 의 미)은 인도에서 1,500년 이상 이어지와 는데, 그 뿌리는 다시 1,500년 정도 더 거슬러 올라간다. 인도의 감성하은 크개두가지 전통을 가시고 있는데 <푸라 나)(49쪽 참조)에서 약술한 신성한 검 성승인 지요미 과학과, 고대 그리스에 서방난한 나탈(탄생) 점심학과 같은 서구 정성학이다.

인도와 서양의 건성학은 공통점이 많다. 두 가지 모두 12궁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각 궁들의 별들의 규칙도 거의 같다.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본격적인 점성술 문헌은 <그리스 탄생 점성이인 네, 미국의 영향을 흡수한 선형적인 제목으로 되 이 있다. 하지만 기요미 요소가 다시 등장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서양의 영향과 인도의 고유 사상이 인도의 점성술과 과학을 자극한 것이다. 새로운 점성술사들이 양쪽의 진동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쌓아갔다. 그들은 지구가 평평하다면 인 도와 그리스에서 별들의 위치가 같을 수 없다는 깨닫고 새로운 지구의 모형을 생각해냈사실을 다. 그것은 바로 원형의 지구였다. 아마도 현대서양과 인도의 점성학 사이의 가 장큰 차이는 시간의 흐름을 재는 데 사용한 원리 가 다르다는 점일 것이다 시일에서는 12궁이 별 들이 실제 움직임과 일치하는가를 보는 '파키선 세계를 사용했는데, 인도에서는 항성시간을 이 응했다. 이 항성제게는 하늘에 있는 뱀의 위치를 기초로 해서 만들어진 데 반해, 사양의 희귀신체 계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이었다.

 

힌두교 사원

5세기 이후 힌두교가 다시 부흥하면서 종교예술 과 건축이 중요한 발전의 단계를 밟아가기 시작 했다. 힌두교 사원들은 이전까지는 주로 나무로 지어졌으나 불교사원의 석조양식처럼 바위에 새 기고 조각하는 건축이 많아졌다. 힌두 조각가들 은 신들이 살고 있다고 알려진 산이나 동굴에 사 원을 석조건물로 지어 사원 자체가 상징적인 연결고리로 남게 된 것이다.

바위를 깎아서 만든 사원들은 고도의 기술과 건축적인 상상력을 보여 준다. 인도의 산에 만든 사원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하라슈트라 주의 엘로라에 있는 카일라샤 사원이다. 8세기와 9세 기에 라슈트라쿠타 왕조의 후원으로 조각된 이 사원은 산중턱에서 거대한 돌을 치워가며 외부와 내부를 조각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카일라샤 사원이 만들어질 무렵의 건축기술은 거의 사원건축에 집중되었다고 할 수 있다. 7~9 세기에 타밀 지역을 통치했던 팔라바 왕들은 이 러한 과정중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수도였던 칸 치푸람이라는 고대도시에는 힌두교 사원이 100 개 이상 있으며, 피라미드형의 석조탑 형식으로 각기 뛰어난 건축미를 자랑한다. 팔라바 왕들의 이러한 업적은 10~11세기의 촐라 왕조에 의해서 계승되었다. 그들은 탄자부르, 강가이콘드아홀라 푸람 그리고 치담바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커 다란 첨탑을 가진 사원들을 세웠다. 촐라 왕국의 수도였던 탄자부르 중앙에 있는 사원들은 전체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는데, 높이가 63m로 인도 남부에 있는 사원건축물 가운데 가장 높다. 탄자 부르 사원은 어두운 복도의 내부 벽을 따라 길게 새긴 신화를 그대로 옮긴 듯한 상세한 벽화, 돌과 청동을 이용한 뛰어난 건축물로 유명하다. 그 뒤를 이은 왕조들은 사원 안에 건축물을 더 만들고 고푸라리는 탑 형식의 독특한 입구 문 을 세워 촐라 시대 건축물을 더욱 정교하고 아름 답게 만들었다. 고푸라가 있는 이러한 거대한 건 축물들은 면적도 넓지만 높이도 그 두 배가량 되 기 때문에 사원의 크고 작은 건축물들뿐 아니라 마을 전체는 물론 그를 둘러싼 지역들까지 굽어 보고 있다. 고푸라의 층수는 일정하지 않은데, 층 이 올라갈수록 넓이와 전체 크기는 조금씩 작아 지고 그 꼭대기는 아치 천장으로 이루어 져 있다.

16세기와 17세기 남부 인도에서는 비자야나 가라 왕조와 그 왕들의 후원으로 힌두교와 문화 부흥이 일어나 다시 한번 사원건축의 황금기의 를 맞았다. 이전의 종교제도들이 혁신되고 확대 되었으며, 이것은 층층이 놓인 신전의 중심으로 올라가는 고푸라가 가득한 도시가 형성되는 결과 를 낳았다. 이러한 대규모 건축은 부분적으로는 종교사상·문학·예술 등에 대한 중앙기구의 지 원으로서 힌두교 사원에 대한 지지 때문이기도 했다. 사원은 단순히 신들이 머물고 있는 집이 아니라, 그 자체로 천계를 표현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사원이 신과 여신들이 머무는 신전으로 여겨 졌다는 사실은, 힌두교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모 티브인 조각과 그림들로 그 외벽과 내부를 덮고 있는 것으로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는 특히 인도 남부에서 더 잘 볼 수 있다. 수많은 신들이 그 지 위고하에 따라 아래로는 사원의 주춧돌 하나에서 부터 위로는 가장 위에 있는 신전과 층층이 놓인 고푸라 문들 속에 묘사되어 있다. 16세기 이후 인도 남부에서 건축된 높다란 사 원들은 회반죽으로 본을 뜬 생생하고 다양한 신격체 들이 건축물을 온통 뒤덮고 있다. 예술가들 은 신전의 주인이 되는 주요 신들을 묘사하는 데 서 그치지 않고 그 신의 가족 구성원까지 일일이 조각하거나 그림으로 그렸다. 예를 들면 시바, 비슈누, 모신 등을 중심부에 두고 그 주위에 그 신 의 가족 구성원을 묘사하는 식이다. 이처럼 사원 건축에 조각이나 그림으로 묘사되는 대상은 반드 시 천상계의 신격들에 제한된 것은 아니었다. 신 들보다 하위세계에 사는 존재들, 예를 들면 중간 계에 살며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하고 다니는 간다라, 춤을 추는 압사라, 곤봉이나 다른 무기를 움켜쥐고 있는 괴상한 모습의 문지기까지 모두가 사원건축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동물과 새들도 포함되는데, 특히 신이나 여신이 타고 다니는 모습을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 남 부 인도에서는 어느 사원에서나 사자의 얼굴과 몸을 하고 있는 알리를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다.

 

사원 문의 움푹 패어 있는 곳과 둥근 아치 부분에 만들어진 알리들은 특히 사원의 탑 꼭대기 장식 의 주요한 모티프이다.

 

무굴 왕조

인도 무굴 왕조의 첫번째 황제였던 바부르와 마 지막 대황제였던 아우랑제브는 시인이었다. 이슬 람 세력이 처음 인도에 침입했을 때는 무력을 사 용해 파괴를 일삼았지만, 1526~1707년 무굴 왕 조를 통치한 왕들은 대체로 고유의 종교에 대해 서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그들의 호화스러운 생 활과 힘은 무굴 왕조의 예술과 건축물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인도에 들어온 최초 무슬림은 아랍 상인들로, 8 세기에 해당 지역의 힌두 왕들과 교역하려고 편자 브와 신드 지방에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12세기부 터는 터키인들과 아프간의 술탄들이 거의 매년 북 인도에 약탈하는 무리들을 보냈다. 1340년까지 델 리의 술탄들은 데칸과 말라바르 해안(지금의 타밀 나두와 케랄라)의 일부를 포함한 24곳의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15세기 동안에는 힌두 비자야나 가르와 북쪽의 라지푸트 왕조들이 이슬람의 팽창 을 저지했다. 1526년 바부르가 들어와 무굴 왕조 를 세우고 첫번째 황제가 되었다. 그런데 델리 술 탄들은 인도로 파고들어 오는 외국인 정도로 비쳐 졌지만, 여섯 명의 무굴 황제들은 자신들이 이슬 람교에 속한 인도인이라고 여러 번 말했다. 이러한 무굴 통치기간에 힌두와 이슬람의 사상·예 술·건축 등이 '서로 점차적으로 섞이게 됐다.

악바르(1556~1605)는 그 중에서도 가장 위 대한 황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힌두 왕의 딸을 부인으로 삼아서 이슬람 조상뿐 아니라 힌두 조 상까지 두게 되는 매우 유리한 조건을 만들었다. 무굴인들은 힌두교도 가운데서 장군, 행정관료, 철학자, 장인들을 고용했다. 거대한 건축계획들 은 무굴 황제와 지방의 힌두 왕조들 간의 완벽한 협조 아래 착수되었다. 대부분의 화려한 모스크 와 대규모 무덤 건축물은 힌두 장인들과 페르시 안 장인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힌두교 사 원들이 다양한 신들로 외적인 우주를 화려하게 형상화한 데 반해, 무굴 모스크들은 알라, '유 일한 신'을 상징했다.

알라는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여 러 형태나 이름으로 묘사될 수는 없다. 힌두교도 들처럼 수많은 인격화된 이미지들을 동원하기보 다 무굴 모스크는 추상적이면서도 기하학적인 디 자인으로 가볍고 산뜻한 느낌을 준다. 화장과 환 생에 중점을 둔 힌두교와 달리, 이슬람교는 매장 과 사후세계를 중시해 황제의 무덤은 인도의 건축 에서 주요한 형태로 남았다. 아그라에 있는 타지 마할, 시칸드라에 있는 악바르의 무덤 등과 같은 거대한 무덤은 인도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힌다.

 

구루

힌두교는 그 중심 교리가 유동적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선교단을 파견하는 식의 종교 전파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힌두교는 세계의 주요 종교들 가운데 가장 관대하고 절충적인 자세를 보여 준다. 다른 종파의 존재를 부정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포용하고, 상대 종파의 신들도 자신들의 신과 같은 신격으로 인식하는데, 근원적 실체의 다양한 성격을 반영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해탈과 깨달음의 메시지를 가지고 해외로 다니는 인도의 구루들은 정신적 수양을 중시하는 동양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이러한 구루들은 외국인들에게는 모호한 대상이기도 하다. 구루들이 자기부정, 명상, 물질에서 벗어나 영혼의 해탈을 추구할 것을 가르치다가 때때로 갑자기 동화처럼 부자가 되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가장 악명 높은 인물은 바가반(구세주) 라즈니쉬일 것이다. 그는 미국에 "나는 메시아"라며 상륙했다가 불명예를 안고 떠난 전형적인 구루이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신경쇠약증세에 빠져 있다고 믿고 일상을 벗어나는 정신적 충격을 줌으로써 자신에 대한 쓸데없는 집착을 깨주려고 했다. 사이 바바와 마찬가지로 라즈니쉬도 젊은 시절에 일찍 깨달음에 도달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신성을 주장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간디는 이와 반대로 자신은 그저 "진리를 따르는 보잘 것 없는 구도자일 뿐이라고 했지만 몇백만의 사람들이 그를 성인으로 존경했다.

 

인도 리처드 워터스톤 치음/ 이재숙 옮김 종교와 의례, 신과 우주, 명상과 요가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