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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기술] 불패의 리더이순신, 그는 어떻게 이겼을까_119

The Battle of Nojong was the final battle of General Yi Sun-shin, where the Joseon navy was victorious against the Japanese forces, but Yi Sun-shin was killed in the process. During the battle, he was wearing only a red ironclad jacket without his armor, which led to rumors of suicide. Yi Sun-shin was a war hero and gained the hearts of the people, so his death brought great sadness to the Joseon navy and the people. The battle marked the end of the Japanese invasions of Korea and left a legacy of power struggles and political controversies in the aftermath.

노량해전

1. 바람 앞에 맨몸으로 설 때 비로소 인생의 주인이 된다

1598년 음력 11, 순천 앞바다에는 긴장감이 팽팽했다. 어떻게 살아서 돌아가려는 일본군과 그들을 끝내 살려 보내지 않겠다는 이순 신의 조선 함대가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순신에게도 사자를 보냈다. 살아서 돌아 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순신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문제 가 생기고 말았다. 순천 왜성에 갇혀 있던 일본군 연락선 두 척이 명나 라 군 진영을 통해 빠져나갔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회유에 넘어간 전 린이 일본군의 연락선이 통과하는 것을 묵인해주고 말았던 것이다. 이순신은 아연 긴장했다. 일본군 연락선의 임무는 편했다. 그것은 구 원군 요청일 것이다. 이제 사천 고성 등지에서 철수 준비를 하면 일본 군들이 고니시 유키나가를 구하기 위해 달려올 것이다.

 

적을 살려 보내지 않겠다

이순신은 오히려 협공을 받게 된 상황이었다. 사천 등지에 모여 있 는 적선은 최소 200여 척, 순천 왜성에는 1 5,000여 명의 일본군이 있었다. 반면 조선 함대는 판옥선 83척에 명나라 전선 십수 척이 고작 이었다. 만약 앞뒤로 협공을 당한다면 조선 수군 역시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순신은 뒤에서 접근하는 적 이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1598 11 18일 늦은 오후, 이순신은 전군에 명령을 내렸다. 즉각 순천 앞바다 봉쇄를 풀고 전 함대를 노량으로 진격하도록 했다. 사천의 적이 순천 앞바다로 진격해 올 수 있는 길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남해 섬 먼 바다를 돌아 미조 상주 지금의 남해군 남면과 서면을 거쳐 오는 길이 있었고 또 하나는 가장 짧은 길인 노량으로 들어오는 길이 있었다. 보통의 경우 적은 가장 짧은 해로인 노량을 거쳐 올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신중했다. 함대의 일부를 미조 알바다로 보내 혹 시라도 아군의 허를 찌르기 위해 먼 길로 우회하는 적이 있는지 살피 도록 했다. 그러고는 주력 함대는 노량으로 진격시켰다. 경남 하동과 남해가 마주 보는 좁은 뱃길, 남해대교가 놓여 있는 그곳이다. 많은 적 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역시 좁은 물길이 유리했던 것이다. 이미 바다는 침혹처럼 어두워져 있었다. 별다른 탐조 시설이나 레 이더 같은 첨단 시설이 없는 상태에서의 야간 항해는 위험이 뒤따랐다. 그러나 그런 점을 염두에 둘 여유가 없었다. 일본군도 마지막 적진을 위해 야간 항진을 해 오고 있을 것이다. 이 순신은 최대한 침묵 항해를 지시했다. 알여드랫 날 달이 바다를 비추 고 있었다. 이순신은 함대를 섬 그늘로 바짝 붙여 항진시켰다. 어느 전투나 마찬가지지만 누가 먼저 적을 발견하느냐, 그래서 누가 선제공 격을 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노량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다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이순 신의 조선 수군은 1 6,000여 명, 이때 명나라 군은 이순신 함대와 한 참 떨어져 있었다. 앞선 순천 왜성 전투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은 명나 라 수군은 전투력이 형편없이 떨어져 있었다. 그들은 구원뱅이라기보 다는 차라리 이순신 함대의 집이었다. 조선 수군들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 싸움이 되리라는 것을! 백전노장의 그들이었지만 긴장감은 어느 때보다 더했 다. 적 역시 결사의 자세로 전투에 임할 것이다. 패하고 돌아가는 그들, 본국에서는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 만약 여기서 누군가가 이순신의 목을 가져간다면 그는 전쟁 영웅이 될 것이다.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비록 조선 명나라 정벌은 실패했지만 그들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이순신의 목을 가져간다면 그는 일약 영웅이 될 수도 있는 상황, 그래서 그들은 더 적극적일 것이다. 조선 수군의 목이라는 전리품을 챙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치열한 마지막 전투

이순신 역시 만감이 교차했다. 지난 7, 습한 목숨을 지 바다에 묻지 않았던가? 그 길고도 참혹했던 전란이 이제 끝나려 하고 있었다. 마지막 승전고를 올릴 수 있을 것인가? 이 전란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 것인가? 전쟁 중에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조선 수군을 모두 일 는 아름을 당했다. 비록 자신은 백의종군의 몸으로 묶여 있었지만 지난해 여름, 조선 수군의 칠천량 참패 소식에 그는 아득한 절망감을 느 꼈다. 그리고 기적처럼 수군을 재건하여 이제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전쟁은 그에게 시련을 안겨주었다. 어머니를 잃었고 사랑하는 막내아들을 잃었다. 지난 7, 아니 무관이 되어 북방으로 떠돌던 저 30대 초반부터 20여 년, 그에게는 따뜻한 가정이란 없었다. 아랫목에 앉아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 했던 적이 있기나 했던가? 이기 리라, 이겨야 하리라! 단 하나의 적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이 바다를 가득 메운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저들을 그냥 돌려 보내지 않으리라. 이순신은 노량에서 기다렸다. 내일 아침이면 이 바다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인가. 달빛이 부서지는 저 바다 멀리, 일본군의 선단이 검은 그림자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방어래를 물려라!” 방어래는 군사들의 잡담을 막기 위해 입에 물리는 나뭇가지였다. 이순신은 섬 그늘에서 기다렸다. 이순신과 조선 수군들은 적을 기다 렸다. 얼마나 많은 적이 몰려오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드디어 일 본군 선단의 앞머리가 노량의 좁은 물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일본군 들은 사방에다 대고 조총 사격을 가하면서 다가왔다. 조선 수군을 발 견한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매복이 있을지 몰라 반응을 살피려는 의 도로 보였다. 밤하늘을 찢는 듯한 조총 소리가 높았다. "기다려라!" 이순신은 긴장하는 수군들을 진정시켰다. 드디어 총통 사거리까지 적의 함대가 들어왔다. 그러나 아직은 적 함대의 선두, 적의 허리를 잘 라야 한다. 이순신은 기다렸다. 드디어 거대한 함대 무리가 노량의 한 가운데로 들어왔다. "방포하라!" 이순신이 낮고도 짧게 명령했다. "방포하라!" 그러자 장수들이 이순신의 명령을 크게 복창했다. 조선 수군들의 손길이 바빠졌다. 화포장은 화약 심지에 불을 붙였다. 심지가 타들어 가는 것과 동시에 이미 장전하고 있던 수많은 발사체가 밤하늘을 날 았다. 대장군전과 장군전, 그리고 단석이 날아올랐다. 천지를 진동하 는 방포 소리가 밤바다를 뒤덮었다. 이순신은 전 함대를 적의 허리를 향해 진격시켰다. 조선 판옥선의 포격을 받은 적함들은 허둥대기 시작했다. 조선 수군의 포격은 여전히 위력적이었다. 적선에 명중한 장군전과 단석들은 곧바로 적선에 타격을 입혔다. 일본군도 조총과 활로 대응사격을 해 왔다. 그러나 조선 수군들은 전 혀 위축되지 않았다. “적의 허리를 잘라라!" 이순신은 곧장 근접전을 시도했다. 전에 없던 전술이었다. 거북선 이 있을 때는 거북선을 적진 깊숙이 돌격시켰지만 지금은 판옥선밖에 없는 상황, 근접전은 포격전에 비해 아군의 피해가 늘어날 수밖에 없 는 전법이었다. 그러나 노량의 좁은 바다에서 적을 완전히 섬멸하기 위해서는 근접전밖에 없다는 것을 이순신은 알고 있었다. 이순신이 바라는 것은 왜적의 전멸! 결국 근접전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적의 함대는 선두와 후미로 분산되었다. 얼핏 보기에도 300여 척이 넘는 적선, 노량의 좁은 바다는 곧 치열한 접전장으로 변했다. 곳곳에 서 조선 판옥선이 적선을 들이받는 소리가 났다. 우지끈 돛대가 부러 지고 일본 전선의 뱃머리가 부서졌다. 일본군의 조총 사격에 조선 수 군들도 쓰러져갔다. 이순신도 직접 활을 잡았다. 시위를 놓을 때마다 적이 쓰러졌다. 그러나 물리쳐도 물리쳐도 적은 줄어들지 않았다. 조 선 판옥선으로 등선(登船)을 시도하는 일본군도 있었다. 판옥선 갑판에 서는 처절한 백병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조선 수군과 일본군은 한 덩 어리가 되어 흘러가면서 싸웠다.

 

깊은 슬픔이 승전의 기쁨을 덮다

자정쯤 시작된 전투는 여명이 밝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피아간에 사상자가 얼마인지 알 수조차 없었다. 다만 눈앞에 적이 있었고 그 적 을 물리쳐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길고 긴 밤이었다. 옆에 있던 전 우가 쓰러져갔다. 호령하던 장수가 전사했다. 적은 눈빛을 읽을 수 있 을 만큼 가까이 있었다. 명나라 도독 진린은 전투 초반, 멀찍이서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나 그도 장수였다. 용맹한 조선 수군들의 분투를 보고 그도 마침내 출전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진린은 곧 일본군에게 포위되어 위기에 빠졌 다. 이순신은 일본군의 포위망을 뚫고 진린의 전선을 구해냈다. 진린 은 새삼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저토록 뛰어난 장수가 어찌하여 조선 에 났던가? 대국 명나라에서 태어났더라면 더 큰 영화를 누릴 수 있었 으리라………………. 멀리 동녘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전세는 기울고 있었다. 일본 군은 퇴로를 찾으려 했다. 그들은 관음포로 몰려들어 갔다. 관음포는 남해 섬의 깊숙한 만이었다. 얼핏 보면 이 바다와 저 바다가 연결된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물길이 막힌 곳이었다. 일본군은 그곳을 물 길이 뚫린 곳으로 착각했다. 관음포로 몰려들어 간 일본군은 앞길이 막히자 최후의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이순신은 천천히 전장을 둘러보았다. 이제 적의 주력군은 완전히 갇혔다. 저들만 섬멸한다면 이 전란은 우리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아 침 해가 떠올랐다. 찬란한 빛이었다. 눈부시도록 찬란한 빛이었다. 이 제 저 빛이 새로운 조선의 앞날을 밝혀줄 것인가. “전 함대 총공격하라!” 이순신은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조선 수군들은 느낄 수 있었다. 이 싸움은 우리가 이겼다는 것을, 마침내 이 전란을 우리 손으로 끝낼 수 있다는 것을……………. 조선 수군은 이순신 대장선 뒤를 따라 관음포로 돌 격해 들어갔다. 마지막 힘을 내고 있었다. 관음포에 갇힌 일본군은 필 사적으로 활로를 찾고 있었다. 일부 적선이 조선 수군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고 있었다. “잡아라! 단 하나의 적도 살려 보내지 마라!” 이순신은 직접 독전고 북채를 쥐었다. 그리고 북을 두드리기 시작 했다. 그 순간이었을까, 도망치면 일본 전선의 후미에 조총수들이 배치되 는 것이 보인 것이, 투연 포연 속에서 일본군 조총이 이순신을 노리고 있었다. 혼전 중이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순간, 어쩌면 이순신은 자 산을 노리는 적의 총구를 보았는지 모를 순간, 일본군 조총에서 불을 뿜었다. 그와 동시에 이순신은 가슴에 묵직한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쓰러졌다. 즉각 조카가 달려오고 부장들이 달려왔다. 조선 수군들을 방패로 이순신을 둘러쌌다. 조카 이완이 이순신을 부축했다. "숙부님……..“ "싸움이 급하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이순신의 유언대로 그의 죽음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 수군은 전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정오가 되기 전, 노량 앞바다에 포성이 잦아들었다. 대신 조선 수군 의 함성 소리와 감격에 겨운 눈물이 가득했다. 일본군은 수백 척의 피 해를 남기고 퇴각했으며 순천 왜성에 숨어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도 남해 먼바다를 통해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장군, 이겠소이다. 우리가 이겼소이다." 사사건건 이순신의 발목을 잡던 명나라 도독 진린이 이순신의 대장선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는 곧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어야 했다. 이순신의 전사 소식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진린은 세 번이나 쓰러지면서 이순신의 시신 곁으로 다가왔다. 이순신의 전사 소식은 곧 조선 수군 전체에 알려졌다. 승전고 높인 노량 관음포 바다에는 깊은 슬픔이 흘렀다. 조선 수군들은 갑판에 주 저앉아 통곡했다. 승전의 기름보다 장군을 잃은 슬픔이 더 컸던 것이 다. 우리 손으로 전란을 끝냈다는 자랑보다 어버이 같은 이순신을 일 은 슬픔으로 조선 수군들의 봉곡은 오래도록 그칠 줄 몰랐다. 임진왜란을 통틀어 가장 길고 치열했던 노량해전 조선 수군의 승 전과 조선국의 승리, 그리고 이순신의 전사로 노량해전은 끝났으며 마침내 길고 길었던 임진왜란도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 인생은 스스로 완성하는 것이다

전란의 끝, 권력의 소용돌이에서

이순신의 최후, 그것은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 중의 하나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싸음이 급하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그렇게 이순신은 전사했다. 조선국삼도수군통제사로서 제1 선에서 적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해군 최고 사령관이 전장에서 죽어 간 것이다. 이순신이 죽고 그날로 임진왜란은 끝이 났지만 그의 죽음 을 둘러싸고 술한 논란이 있었다. 논란의 첫 번째 근거는 이순신이 전사 당시 갑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갑옷을 벗은 채 붉은 철릭만 입 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전투가 한창인 때, 적과 바로 마주한 백전노장 이순신이 왜 갑옷을 벗었을까?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이순신의 자살 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죽고 싶었다는 것이다. 아니 자신은 오늘 이 자 리에서 죽어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당시의 최고 권 력자 선조와 연관해서 해석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미 선조로부터 두 번이나 백의종군을 명 받았던 이순신, 무군지 죄, 즉 임금을 업신여겼다 하여 죽음 직전까지 내몰렸던 이순신, 과연 선조는 이순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조선 조정의 일부 대신 들은 이순신을 어떤 존재로 여기고 있었을까. 전쟁 막바지, 임금과 조정 대신들은 전후 권력이 어떻게 개편될 것 인지에 더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전후 복구 문제를 거론하는 대신조 차 없었다. 힘의 향방이 어디로 쏠릴 것인가, 선조와 왕세자 광해군 의 관계는 어찌 될 것인가, 어느 붕당이 득세할 것인가가 더 큰 관심 사였는지 모른다. 이런 분위기의 핵심에 이순신이 있었다. 본인은 의 도하지 않았지만 이순신은 선조를 비롯한 조정 대신들의 주목의 대 상이었다. 누가 뭐래도 이순신은 전쟁 영웅이었다.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나라 를 오로지 혼자 막아내지 않았던가? 7년 내내 단 한 번의 패전도 없이 남해와 서해 바다를 굳게 지킨 덕에 종묘사직을 보존할 수 있지 않았 던가? 더구나 이순신에게는 임금도 조정 대신도 갖지 못한 것이 있었 다. 그것은 바로 민심이었다. 전란 내내 조선 백성들은 이순신을 따랐 다. 이순신이 가는 곳에는 백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적어도 이 순신 옆에만 있으면 죽지는 않는다는 믿음이 그들에게 있었다. 임금도 조정 대신도 이것을 가장 두려워했을 것이다. 이순신이 전쟁 영웅 이 되어 한양으로 개선하는 날이면? 더구나 이순신이 불측한 마음을 품고 1 6,000여 조선 수군, 그 백전노장 강병을 이끌고 한강을 거쳐 한양으로 들어온다면 누가 그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조선의 장수다

그렇다면 이순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순신의 생각은 단순했 다. 눈앞의 적을 무찔러야 했다. 결코 적을 살려서 돌려보낼 수는 없었 다. 지금 저들을 고스란히 살려 돌려보낸다면 내년 봄 또다시 쳐들어 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저들은 이 강토와 백성을 도륙냈던 원수들이 아니던가? 이순신은 더 단순했다. 그는 어디까지나 조선 수군 삼도통 제사였다. 무인이었다. 무인은 적과 싸워야 하고 싸우면 반드시 이겨 야 한다는 생각만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물론 이순신도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장수들 중에는 더 이상 싸 우지 말자고 건의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긴다 하더라도 조선 수군도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럴 바에야 고니시 유키나가의 요구대로 길을 열어주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었을 것이다. 임금과 조정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자신 이 이 전쟁에서 영웅이 되는 것이 무한한 영광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알았을 것이다. 언젠가는 정치와 권력 투쟁의 희생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짐작했을 것이다. 그의 나이 54, 세상의 이치를, 권력 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연륜이었기에일부 역사학자들은 노량해전은 치르지 않아도 좋을 전투였다고 한다. 돌아가기를 간청하는 일본군을 그냥 돌려보낸다 해서 누구도 이 순신을 원망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명나라도 조선 조정의 일부도 반 대하던 전투가 아니던가. 그러나 이순신은 자기의 길을 끝내 외면하 지 않았다. 그는 장수로서, 조선의 장수로서 마지막까지 자신의 임무 에 충실했다. 운명 같은 자신의 길을 끝까지 걸어갔다. 그것은 아름다 운 완성이었다. 그는 적과 싸웠고 그리고 이겼다. 그리고 전투의 막바 지에 그는 전사했다. 그것으로 그는 영원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만약 이순신이 마지막 노량해전을 피했다면 어찌 되었을 것인가. 그동안 이순신이 쌓은 모든 업적이 빛바래지는 않았을까.

 

나 자신의 길을 걸어라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을 때, 자신의 원칙을 지키고, 자신의 길을 충실히 걸을 때, 그 사람의 인생은 완성된다. 오늘날 이순신이 우 리에게 다시 울림을 주는 것은 고집스럽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 그 용 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세상의 수많은 의혹의 시선과 의심의 논리를 그는 간단하게 제압해버렸다. 자신을 향해 불어오는 바람에 맨몸으로 섰던 그 용기로 그는 스스로 인생을 완성했던 것이다. 일생을 살다 간 사람에게 남는 이름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자신이 걸어온 길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정치인은 정치인으로, 경제인은 경 제인으로 완성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자신의 길 위에서 아름다운 정 점을 맞는 사람을 보기가 쉬운가. 한때는 화려했으나 말년은 비참했 던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숱한 정치가들이 살다 갔지만 정치에서 인생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은 드물다. 평생 기업을 꾸리며 경제인으로 살다 갔지만 훌륭한 경제 인으로 평가받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자신의 길 위에서 죽기를 원 한다. 운동선수는 그라운드에서 쓰러 지겠노라 장담한다. 그것은 그라운드 에서 심장마비로 죽겠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가장 훌륭한 선수로 기억되기 를 원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일 것이다. 자 신의 일에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일, 그 리고 마침내 가치를 남기고 죽는 것, 그 것이야말로 인생의 완성일 것이다. 신은 공평하여 누구에게나 가치 있 는 삶을 부여했다. 그것을 완성하는 것 은 오로지 인간의 몫이다. 지금 나의 삶은 가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의 완성을 향해 가라. 아무도 대신 갈 수 없는 좁고 고통스러운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라. 내 앞에 남아 있는 생, 그것의 주인은 나 자신이며 그것을 완성해야 할 의무가 나에게 있다. 지금도 바람은 분다.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된다. 나에게 불어 오는 고난과 고통의 바람, 그 앞에 맨몸으로 서라. 그것이 진정한 용기 이다.

 

불패의 리더이순신, 그는 어떻게 이겼을까

윤영수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