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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기술] 불패의 리더이순신, 그는 어떻게 이겼을까_114

The Battle of Ungcheon was a battle that took place when Admiral Yi Sun-sin tactically decided to engage in an amphibious operation. The battle reflects the situation where Yi had to undertake an amphibious operation, which he had previously avoided. The Japanese forces had established a strong naval front, but Yi Sun-sin managed to land his troops, including the Right Volunteer Army, and attack the Japanese forces from the flank. Although the battle ended in victory, the attack plan on Busan was disrupted due to negotiations with the Ming dynasty, leaving Yi Sun-sin disappointed and returning to Yeosu. The strategic change, challenging conventional thinking, played a vital role in the battle.

                          [자신을 공격해야 상대를 이길 수 있으며 자신을 공격하는 것, 그것은 고정관념과의 대결이다.]

 

자신의 강점을 공략하라

웅천해전

1. 자신을 공격해야 상대를 이길 수 있다

어느덧 겨울이 깊어지며 해가 바뀌었다. 임진년의 전란이 계사년으 로 이어지고 있었다. 전황에도 변화가 있었다. 명나라 군의 개입, 명 나라 이여송의 4만 부대는 곧 평양성을 탈환했고 일본군은 한양까지 물러났다. 그러나 벽제관 전투에서 명나라 군은 대패하고 평양성에 머물렀다. 이즈음 명나라는 일본군과의 강화 교섭을 시작했다.

 

육군이 합세하다

1593 1월 당시 조선, 일본, 명나라 모두 전쟁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일본군은 명나라의 참전과 전염병과 혹한으로 수많은 군 사를 잃었다. 조선 역시 명나라 군의 군량미 조달과 명나라 기병대의 말먹이 보급에 애를 먹고 있었다. 수많은 군사들이 굶주렸으며 도망 치기 시작했다. 이제 전쟁은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풀어야 할 상황 인지도 몰랐다. 이즈음 여수의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는 새로운 명령 이 떨어졌다. 명나라 군이 개입하였으므로 육군과 합동으로 부산을 치라는 것이었다.

 

농사를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웅천 앞바다. 부산을 치려면 웅천의 적을 먼저 쳐야 했다. 그냥 지나 쳤다가는 틀림없이 조선 수군의 배후를 칠 터였다. 지난해 이순신은 이 바다에서 안골포해전을 치렀고 부산해전을 위해 이 바다를 지나다 녔다. 해가 바뀌었건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적선과 백성들의 피해는 점차 늘어만 갔다. 웅천 역시 이순신이 싸우기에 불리한 곳이 었다. 안골포 서쪽에 있는 웅천은 나중에 적들이 왜성을 쌓을 만큼 요 새화되어 있는 깊은 만이었다.  1593 2 6, 이순신은 89척의 연합 함대에 병력 1 4,000여 명 을 거느리고 여수를 출발했다. 조정의 구상대로 명나라 육군이 부산 으로 진격하기만 한다면 부산의 적을 섬멸할 수 있으리라! 부산의 적 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해 가을, 부산해전에서 이순신에게 참패를 당 했던 일본 해군은 겨울을 지나면서 전선을 더 보강하였다. 겨울 동안 일본을 오가며 부지런히 전선을 확충했던 것이다. 일본군은 본거지인 부산에 500여 척, 그리고 전진기지랄 수 있는 웅천에 115척의 전선을 배치해두었다. 오히려 지난해보다 전선의 수가 늘어난 형국이었다. 이순신으로서도 난감한 일이었다. 적선은 부수고 또 부수어도 유령처 럼 오히려 늘었다. 그러나 이번은 다를 것이다. 조선 육군과 명나라 육군이 부산을 공 격해주기만 한다면 일거에 바다에서 저들을 모조리 수장할 수 있으리 라. 그렇게 된다면 이 참혹한 전란도 끝이 날 것이다. 실제로 겨울을 넘기면서 전쟁의 참상은 조선 땅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엇 보다 농사를 망친 백성들의 고통이 너무나 컸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유난히 잦은 혹한과 폭설은 식량난을 가중시켰다. 대부분의 백성들이 심각한 식량난에 시달렸다. 일부 지역에서는 식인, 즉 사람을 잡아먹 는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실제로 식인 사례가 빈번하여 조정에서 문 제가 되기도 했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전란을 끝낸다면 내년 봄에는 일본군의 대응 전략에도 변화가 없었다. 그들은 절대로 이순신과 맞서 싸우려 하지 않았다. 100여 척이 넘는 전선을 그대로 포구에 묶 어둔 채 육지에서만 응전하려고 했다. 적의 준비는 치밀했다. 이미 패 전을 당한 경험이 있는 그들, 웅천의 주변 야산에 진지를 파고 조선 함 대를 기다렸다. 그것은 해전이 아니었다. 해전이라 하면 양측 함대가 바다 위에서 대치하고 포격하고 쫓고 쫓기는 것이어야 하지만 일본 수군은 오히려 육군 흉내를 냈다. 바다 위에서의 전투는 승산이 없다 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의승병이 상륙전에 앞장서다

2 10일 이순신 함대는 밀물을 타고 웅천으로 쳐들어갔다. 적의 대응은 완강했다. 특히 웅천 앞의 야산에 위치한 적의 육지 진지에서 날 아오는 포격과 조총은 조선군에게 큰 위협이었다. 전투는 지지부진했 다. 포구를 향해 들어가던 조선 수군들이 주춤했다. 적의 야산 진지 포 격에 막혀 웅천의 적선에 제대로 총통을 쓸 수도 없었다. 더구나 일본군은 바다 한가운데 목책을 설치해두었다. 바다를 빙 둘러 대형 통나 무를 박아놓은 것이다. 조선 함대가 포구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애물이었다. 견고한 목책 앞에서 조선군은 총통 사격을 했지만 효 과는 미미했다. 대신 목책에 접근하는 조선 함대를 향해 육지에서 쏘 는 일본군의 조총과 화살은 위협적이었다. 높은 육지에서 바다를 내 려다보고 사격을 하는 그들이었다.

"전 함대, 퇴각하라! 천천히, 천천히 퇴각하라!"

이순신은 전투가 지지부진하자 퇴각 명령을 내렸다. 그러면서 이순 신은 적진을 예의주시했다. 아군 함대가 물러나면 혹시 적선이 뒤쫓아 나올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적은 단단히 작정을 한 듯,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으며 단 한 척의 배도 출전시키지 않았다. 이순 육군과 함께 부산을 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웅천의 적을 섬멸해야 했 신은 가까운 포구에서 군사들을 쉬게 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명나라 다. 언제 명나라 육군이 부산에 당도할지 모르는 상황, 당장이라도 부 산으로 오리는 연락이 오면 낭패였다. 등 뒤에 적을 두고 싸울 수는 없 는 노릇이 아닌가.ㅠ침착해야 한다. 장수가 초조해하면 장졸들은 더 흔들리는 법! 내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마음을 다잡은 이순신은 다시 웅천을 공격했다. 2 12, 2 18, 연이어 공격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설상가상 아군 판옥선 두 척이 파손되기까지 했다. 좁은 포구에서 배를 돌리다가 아군 판옥선끼 리 부딪쳐 선체가 파손되고 부상자까지 발생했다. 아군 전함이 파손되 기는 개전 이후 처음이었다. 적에게는 견고한 철옹성처럼 보이던 조선 판옥선, 그 배에만 타고 있으면 어떤 위험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조선 수군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비록 적의 공격에 의한 파손은 아니 라 하더라도 철석같이 믿었던 판옥선의 파손은 조선 수군에게 충격이 되고도 남았다. 2 19일 밤, 이순신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상륙할 것이오!" 이순신의 입에서 떨어진 말에 장수들은 모두 놀랐다. 전혀 이순신다 운 전술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이순신은 철저히 상륙전을 회피해왔다. 일본군은 단병접전에서 이미 수많은 전투 경험이 있는 군사들이라 칼 싸움에 능하다는 것은 이순신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것이다. 그에 반해 조선 수군은 배 젓기와 총통 발사에 능하지만 적과 직접 맞서 싸우는 백병전의 경험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조총으로 무 장한 육지의 적을 향해 상륙을 하겠다고 이순신이 결심한 것이다. "이미 적도 우리를 잘 알고 있소. 아군이 상륙을 감행하리라고는 중 에도 생각지 못할 것이오, 웅천의 양 방면에 은밀히 아군을 상륙시켜 적진을 교란합시다. 그 틈에 포구 깊숙이 아군이 쳐들어가면 승산이 있을 것이오." 일순 이순신의 임시 군막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상륙은 소승들에게 맡겨주시지요." 침묵을 깨고 나선 사람은 놀랍게도 머리를 짧게 깎은 승려, 의승장 (義將) 삼혜와 의능이었다. 이들은 600여 명의 승병을 이끌고 이순신 함대에 합류한 승려들이었다. "수군보다는 그래도 산에서 살아온 저희 중들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순신은 지그시 승병들을 바라보았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의 활약은 놀라웠다.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가장 미천한 신분으로 떨어졌 던 그들이 막상 전란이 터지자 조선 팔도 각처에서 떨쳐 일어났다. 이 미 금산전투에서 의병장 조현과 함께 800여 명의 의승병들이 전사했 다. 기록에는 조현과 700의사라고만 남아 있지만 일부 사학자들은 여 러 정황과 기록으로 당시 조현 부대에는 800여 명의 승려가 더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권율의 행주산성 싸움에서도 의승병들의 활약 은 눈부셨다. 가장 방어하기 어려운 서북 능선을 끝까지 막아낸 것은 관군이 아닌 의승병들이었다. 이순신과 함께 싸운 삼혜와 의능에 대한 기록은 자세하지 않으나 이 싸움에 이들이 참전한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가 뚫지 못하면 상륙군이 전멸한다.

이순신은 의승병들에게 웅천의 서쪽인 제포로 상륙할 것을 지시했 다. 의승병들이 상륙을 자청하자 수군 가운데도 상륙하겠다는 지원자 들이 생겼다. 이순신은 정규군에게 웅천의 남쪽인 남양으로 상륙하도록 했다. 그것은 은밀한 작전이었다. 600의 승병에 1,100명의 수군을 이순신은 은밀히 상륙시켰다. 육지의 두 방향과 바다. 세 방면에서 적을 압박할 작전이었다. 이순신 함대가 다시 웅천으로 쳐들어갔 다. 일본군은 여전히 산 위의 진지에서 저 항했다. 이때 이들 진지를 향해 접근하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바로 이순신 이 상륙시킨 조선의 의승병과 수군들이었다. 엄폐물에 몸을 감추 고 적진을 노려보는 의승병과 수 군 상륙군들, 칼과 창을 잡은 그들 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이제 저 바 다에서 포성이 오르면 적과 얼굴을 마주 보고 싸워 야 한다. 과연 저들의 조총과 칼을 이길 수 있을까? 바다를 향해 진을 치고 있는 적에게 최대한 가까이 접근한 조선군들은 숨을 죽인 채아 군 함대의 포격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 드디어 바다 위의 이순신 대장선에서 커다란 대 장군전이 발사되는 것을 신호로 조선 함대가 일제히 포격을 시작했다. 동시에 제포와 남양의 두 군데로 상륙한 의승병과 수군들도 때를 같이하여 일본군 진지를 향해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나타난 조선 상륙군을 맞은 적은 매우 당황했다. 바다 쪽만 신경 쓰며 모든 포와 조총을 그쪽으로만 집중하다가 측면 공격을 받은 것이다. 조선군의 화살 공격에 일본군은 조총으로 대항했다. 적의 조총은 매우 위력적이었다. 그리고 일본군은 노련했다. 100년의 전쟁 경험이 있는 그들, 그들은 상대와 가까울수록 위력을 발휘했다. 서로 간에 치열한 사격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조선 상륙군의 전력은 한계가 있었다. 상륙전이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려면 적에게 접근하여 근접전을 벌여야 하건만 일본군의 조총과 일본도 앞에서 상륙군은 제 역할을 못 해내 고 있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군들이 조선 상륙군을 향해 접근해 왔다. 그 시각, 바다에서도 필사적이었다. 조선 수군들이 톱과 도끼를 들 고 물로 뛰어들어 일본군이 설치한 목책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조선 수군이 목책에 근접하자 일본군의 집중 사격이 쏟아졌다. 적지 않은 수군들이 목책에서 조총과 화살을 맞았다. “돌격하라! 모든 총통을 발사하라!" "우리가 뚫지 못하면 상륙군이 전멸한다!" 이순신은 수군들을 독려했다. 독전고가 쉬지 않고 울렸다. 조선 수군들은 필사적으로 포격을 가했다. 적선과 적의 진지를 향해 끊임없 이 장군전과 단석 그리고 조란탄을 쏘았다. 드디어 적의 목책 일부가 무너졌다. 이제 조선 수군은 적선을 향해 정확하게 포격할 위치를 잡 을 수 있었다. 그러나 좁은 목책에서의 포격은 한계가 있었다. 쏘아도 쏘아도 100척이 넘은 적선은 줄어들지 않았다. 한꺼번에 일자진을 펼쳐 포격을 할 수 없었다.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판옥선만이 포격을 했다. 드디어 웅천 앞바다의 적선들이 서서히 침몰하기 시작했다. 시 커먼 연기가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더 포격을 가한다 면 적의 함대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승리했으나 함성은 없었다 "장군, 물이 빠지고 있습니다!" 또다시 썰물이었다. 물이 빠지면 조선 판옥선들이 그대로 뻘밭에 갇히게 될 터, 이순신은 입술을 깨물었다. 희생에 비해 전과가 만족스 럽지 못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적선의 절반 이상이 파괴되었 다. 이 정도라면 적의 예봉은 충분히 꺾었을 것이다. "퇴각 신호를 올려라! 상륙군에게도 신호를 보내라!" 곧이어 어두워지는 바다 위로 신기전이 올랐다. 육지의 적과 결사적인 전투를 벌이던 상륙군들도 이 신호를 보았다. "퇴각하라!" 조선 상륙군들이 퇴각하기 시작했다. 부상자들을 이끌고 시작한 퇴 각, 일본군은 악착같이 추격해 왔다. 그들이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조선 수군이 지금 물을 빠져나온 물고기처럼 육지로 올라와 있었다. 그러잖아도 전과에 목말라 있던 일본군들이었다. 처절한 퇴각전이 갯 벌 위에서 벌어졌다. 이순신은 함대를 대기시켜놓은 채 총통에 조란 탄을 발사시켰다. 아군도 맞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들이 당하는 것을 눈뜨고 볼 수는 없었다. 더러는 조선 수군의 조란탄에 쓰러지고 더러는 일본군의 조총과 칼에 쓰러지면서도 조선 상륙군은 퇴각하고 있었다. 쓰러지는 의승병과 부하들을 바라보는 이순신의 눈에는 불꽃 이 튀었다. 마침내 처절한 철수가 완료되었다. 이순신은 살아 돌아온 부하들과 의승병들의 어깨를 일일이 두드려주었다. 피와 땀과 혈투성이가 된 그들………………. 그러나 군사들 사이에서 예전처럼 승리의 함성은 오르지 않았다. 승전 이전에 쓰러져간 전우들의 모습이 그들 가슴을 무겁게 했기 때 문이었다. 군사들을 위로한 이순신은 홀로 자신의 지휘소에 올라 오래 오래 저물어가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희생이 었다. 적의 의표를 찌른 상륙작전, 작전만으로 볼 때 그것은 훌륭한 작전이었고 성공적인 작전이었다. 단 한 번도 시도하지 않던 기습 상륙 전을 감행하여 어렵게 치른 웅천해전, 그러나 그는 함대를 여수로 돌려야 했다. 그토록 갈망하던 명나라 육군과 합동으로 부산을 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명나라가 일본과 50일간의 휴전 협상을 체결해버렸던 것이다. 전투가 아니라 전쟁의 승리, 그 염원을 웅천 앞바다 에 묻어놓고 이순신 함대는 여수로 귀환했다. 그 아쉬움이 컸기 때문 일까. 이순신은 웅천해전의 결과조차 정확하게 기록해놓지 않았다. 평소의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2. 자신을 공격하라

고정관념과 맞서라

언제나 그렇듯이 결단은 어려운 것이었다. 더구나 그동안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작전을 결정하며 이순신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조선 수군의 상륙작전! 조선 수군은 바다 위에서 강했고 파도 위에서 자유로웠다. 따라서 개전 이래 조선 수군은 단 한 번도 육지에서 적과 싸운 적이 없었다. 이순신 자신이 상륙전을 엄격히 통제했기 때문이 었다. 일본 수군 전력의 핵심이랄 수 있는 적의 전선을 격침하는 데 중 점을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웅천해전은 힘들었다. 해안에 견고한 목책을 설치한 채 산 위에서 반격해오는 적, 반드시 물리쳐야만 수륙합동작전으로 부산을 칠 수 있었기에 웅천의 적은 반드시 제압해야 할 대상이었다. 몇 차례 의 공방전이 큰 성과가 없자 이순신은 상륙전이라는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공격이었다. 상륙전은 결코 하지 않는다 는 자신의 원칙에 대한 공격이었다.

 

자신을 공격하는 것, 그것은 고정관념과의 대결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그에 대항하는 영국·프랑스 모두는 탱크의 중요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양측 모두 경쟁적으로 탱크 를 전선에 투입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는 탱크 부대를 보병 부대 에 배속했다. 전투의 승패는 결국 보병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에 너 무 집착했던 것이다. 보병이 어느 지점을 차지하여 깃발을 꽂아야 이 기는 것이라는 사고에 빠져 있었던 터, 그래서 그들의 탱크는 보병의 작전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쳤다. 영국과 프랑스의 탱크는 보병과 함 께 느릿느릿 움직였다. 반면 독일은 달랐다. 독일은 탱크 부대가 작전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독일은 독립된 기갑사단을 만들고 거기에 프 과 기동성을 갖춘 보병이 지원하도록 했다. 결과는 뻔했다. 기갑 정식 개념을 갖고 있던 독일은 탱크 부대를 적의 전선 한 곳에 집중시켜 그 곳을 돌파, 적의 후방 깊숙이 파고들어 후방을 교란했다. 전쟁은 보명 에 의해 가름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림으로써 새로운 전술을 수립했 고 그것은 보기 좋게 적의 의표를 찔렀던 것이다. 자신에 대한 공격은 마케팅 현장에서도 볼 수 있다. 세계적인 상표 를 가진 면도기 회사가 있었다. 경쟁사가 날이 두 개 달린 신제품을 선 보이자 이 회사 역시 날이 두 개 달린 새 제품을 내놓았다. 그것을 그 동안 자신들이 만들었던 면도기보다 훨씬 좋은 것이라고 광고했다. 자신의 제품에 대한 공격으로 시장 방어에 나선 것이다. 이렇게 두 날 면도기 시장이 안정되어가자 이번에는 날이 한 개인 일회용 면도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 일회용이 자사 제품의 날이 두 개인 면도기보다 훨씬 낫다고 광고했다. 소비자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했으 나 곧 일회용 면도기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자신에 대한 공격, 자사 제 품에 대한 공격으로 경쟁사와 소비자의 의표를 찌른 이 회사는 지금 도 여전히 세계 최고의 면도기 제작사로 남아 있다.

 

자신의 강점을 공략하라

싸워야 할 목표가 있는가. 어떤 목표를 공략하고 있는가, 상대의 의 표를 찌르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먼저 자기 자신부터 공 격하라! 자기가 가진 최고의 장점, 그것부터 공격하라! 자신을 공략해 야만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 선거전에 나온 후보 중 명철하고 이성적인 후보가 있다고 가정해보 자. 그는 대중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데 천부적인 자질이 있다. 사람들은 그의 연설에 숨을 죽이고 그 논리정연함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 것이 강점이다. 드디어 텔레비전 토론회, 모두가 그의 달변을 기대하 고 있다. 이번에는 어떤 논리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상대 후보도 바짝 긴장했을 것이다. 이때 그는 자기 자신을 공격해야 한다. 그가 자랑하는 최고의 강점 을 공격해야 한다. 냉철한 논리와 명석한 두뇌를 가진 후보,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머리만큼 가슴도 차가운 사람으로 인식할 지 모른다. 말을 들어보면 다 옳은 것 같은데 어쩐지 '인간적'으로 끌 리지 않는 느낌을 받을지 모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강점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간과하는 한 이길 수 없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다른 전략을 세워야 한다. 1분 가량 주어진 인사 시간에 자신의 웅대한 꿈과 탁월한 정책을 내세우는 대신, 지금 이순 간에도 자신을 대신해 시장바닥을 돌며 지지를 호소하는 아내를 들먹 여야 한다. 그녀의 헌신에 감사하며 선거전 결과에 관계없이 영원히 사랑하고 아낄 것이라고 촉촉한 목소리로 말해야 한다. 상대 후보와 유권자는 보기 좋게 그에게 의표를 찔릴 것이다.

 

변화구인가 직구인가, 상대의 의표를 찔러라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부터 시작되는 상대의 의표 찌르기, 그러나 여기에는 정해진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세계 최고의 컴퓨터 회사가 있다. 성능도 우수하고 소비자의 인식 도 좋다. 다만 한 가지 흠이라면 가격이 비싸다는 것! 그래서 어느 심만만한 컴퓨터 회사가 고품질 중저가 컴퓨터를 들고 나왔다.

 

놀란 세계 최고의 회사가 대응책을 마련한다.

그렇다면 경쟁사와 소비자의 의표를 찌르기 위해 가격을 낮춰볼까? 그래서 가격을 낮췄다고 치자. 신규 업체는 가만 앉아 있을 것인가. 그 들은 선발 업체의 의표를 찌르기 위해 오히려 고품질 고가격의 제품 을 내놓을지 모른다. 이렇게 되면 선발 업체가 오히려 싸구려라는 이 미지에 빠져들지 모른다. 따라서 선발 업체는 싼 가격으로 도전하는 후발 업체가 있을 때 더 비싼 제품을 내놓는 것도 하나의 대응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자신에 대한 공격과 의표 찌르기는 치열한 머리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다. 과연 투수는 다음 볼을 변화구를 던질 것인가 직구를 던 질 것인가, 그 짧은 인터벌 순간, 타자와 투수는 엄청난 머리싸움을 한 다. 이처럼 자신에 대한 공격은 가혹하고 상대 의표 찌르기는 예술의 경지에 닿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상대가 전혀 생각지 못한 전술, 예상치 못했던 전략, 꿈도 꾸지 못했 던 프로젝트를 들고 나와 마지막에 흐뭇하게 웃을 수 있는 의표 찌르 기. 그러나 어설프게 자주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변칙이 잦으면 상 대가 얕본다. 밑천이 드러난다. 둔중한 중심을 잡은 상태에서 의표를 찔러야 최대한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의표 찌르기는 사기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가능한 것이다.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다시 점검하고 그것을 한 단계 넘어설 때 가능한 것이다. 자신을 스스로 공격하라.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의표를 찔러라. 그러나 되찔리지는 마라! 찌르려다 되찔리면 더욱 아픈 법이기에!

 

[승리의 기술] 불패의 리더이순신, 그는 어떻게 이겼을까

윤영수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