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ttle of Hansan Island was notable for Admiral Yi Sun-sin's strategy of employing the Radix naval formation to decisively defeat the Japanese fleet. The Japanese forces were cut off from their supply routes through the southern sea, and Yi Sun-sin lured them into a narrow sea where he skillfully formed an encirclement network. The Radix formation effectively surrounded the Japanese fleet, with the Geobukseon blocking the ends, collapsing the Japanese army's formation. In this battle, the Japanese fleet lost 59 out of 73 ships, and Yi Sun-shin's strategic victory was marked as a significant naval battle in history.

[그 누구보다 자신을 믿어라, 믿음으로 불확실성을 극복하라]
한산대첩
1. 주먹은 자신이 쥐는 것이다
일본군은 초조했다. 육군은 파죽지세로 평양성까지 차지했으나 남 해 바다가 문제였다. 생각지도 않은 이순신의 조선 수군 출현으로 연 전연패, 보급로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일본군의 애초 계획은 남 해와 서해를 통해 한강과 대동강으로 보급을 하는 것이었다. 군량과 무기, 지원병 등을 모두 해상으로 수송할 계획이었다. 그것이 조선 수 군에 의해 막히면서 육로 수송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로서는 최고의 수송 수단이던 배를 이용하는 대신 말과 인력으로 보급품을 수송해야 했다. 이는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10만 군사의 육로 보급을 위해서는 2,000여 대의 수레가 필요했다. 수레 한 대에 최소한 말 두 마리, 호위 군사를 4명이라고 했을 때 보급에만 4,000여 마리의 말과 약 1만여 명의 병력이 필요하다. 보급을 담당한 군사와 말이 소모하는 군수 물자만도 적은 물량이 아니었다. 엄청난 전력 손실이 아 닐 수 없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그 즈음 일어나기 시작한 조선 의병 들, 이들은 후방에서 일본군의 보급로를 공격했다. 당연히 원활한 보급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따라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일본군으로서는 반드시 해로를 뚫어야 했다. 일본 수뇌부는 결단을 내렸다. 일본 수군 전력을 총집결하여 이순신 함대를 무너뜨리고자 했다. 일본은 개전 이래 처음으로 수군 장수들을 모두 모았다. 육군을 따라 북상했던 일본 수군의 용장 와키자카 야스하루도 해군에 전격 투입했다. 이순신에게 이 소식이 전해졌다. 이순신은 고심했다. 지금까지의 적과는 다를 것이다. 지금까지는 연안 포구에 정박해 있던 소규모 적 부대를 섬멸했다면 눈앞에 닥친 전투는 전면전이 될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적을 막아야 하나.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이순신은 한산 앞 바다를 선택했다. 일본군은 거제도와 통영 사이의 좁은 바다 견내량 을 통해 서진(西進)을 시도할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나아가서 적을 맞으리라!
이기기 위해서는 특별한 전술이 필요하다
1592년 7월 8일, 이순신 연합 함대는 미륵도의 당포에 주둔하고 있 었다. 일본군이 견내량 북단에 나타났다는 첩보가 입수되었다. 적선은 73척, 원래 연합 함대를 꾸리기로 했던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전공을 탐내어 자신의 함대만을 먼저 출동시켰다. 이순신과 조선 수군으로서 는 매우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적이 견내량에 나타났다면 곧 공격해 올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피할 수 없는 대접전이다. 그 렇다면 남은 것은 어디서 싸울 것인가, 어떻게 싸울 것인가였다. 이순신은 한산 앞바다를 선택했다. 견내량은 물길이 좁고 암초가 많은 바다로 120여 척이 넘는 양측 전선이 엉켜 싸운다면 아군의 피해 도 적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패주한 적이 거제와 통영 고성 방면 으로 상륙한다면 백성들이 입을 피해도 불 보듯 뻔했다. 그렇다면 일 거에 적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전략이 필요했다. 조선 판옥선은 56 척, 전선 숫자만 봐서는 적보다 적은 상황,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적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선제공격을 시도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이순신 함대가 일본 전선을 찾아다니며 전투를 벌였다 면 이번에는 반대로, 모든 채비를 갖춘 일본 정예 수군 대부대가 공격 해 오는 상황이었다. 특별한 전술이 필요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작 전이 필요했다. 이순신은 오래 고심했다. 기세가 오른 적, 그동안의 패전을 일거에 만회하려는 적을 무찌를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이순신은 마침내 진중회의를 열었다. 원균과 이억기 두 수군절도사를 비롯, 각 진영의 장수들이 모였다. 이순신은 전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천천히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적을 유인하여 학익진을 펼칠 것이오!" 이순신의 선언에 장수들이 놀랐다. 학익진(鶴翼), 학익진이라니? 물론 장수들도 잘 알고 있었다. 학인진이란 대형을 학의 날개처럼 넓게 펼쳐 그 안에 적이 들어오도록 하여 포위하는 진법을 일컫는다. 그러나 그것은 주로 육전에서 사용되는 전술이었다. 적의 예봉이나 본 대를 아군의 품으로 들어오게 하여 사방을 둘러싸는 진법, 유능한 장수들이 즐겨 사용하는 전술로 학익질을 펼치려면 잘 훈련된 군사가 필요했다. 지휘관의 신호에 따라 모든 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야 한다. 자칫 지휘 전달이 잘못된다면 학의 날개가 찢겨 나가고 그렇 게 되면 포위망이 뚫리는 것과 동시에 적의 반격에 노출될 수도 있다. 장수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특히 반대 의견이 많았다. 이순신이 구 상하는 작전에는 여러 걸림돌이 있었다. 어떻게 적을 유인할 것인가, 과연 적이 아군의 유인 전술에 넘어올 것인가, 설령 적이 아군의 유인 에 걸려든다 하더라도 판옥선으로 적의 함대를 에워싸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학익진을 펼치려면 함대가 서로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반월 형의 일정한 진형을 유지해야 한다. 자칫 몇 척이라도 간격을 맞추지 못하거나 대열이 흐트러지면 작전은 실패하고 말 것이다. 그 틈새를 뚫고 적이 빠져나가 후미와 측면을 공격할 수도 있다. 장수들은 이것 을 걱정했다. 자칫하다가는 아군 판옥선끼리 충돌하는 불상사도 발생 할 수 있는 것이 학익진이었다. 이순신 역시 이런 점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러나 할 수 있다고 믿 었다. 그동안 이순신은 연합 함대를 이끌고 진법 훈련까지 하지 않았 던가? 진법 훈련이란 함대의 형태를 여러 가지로 변형시키는 훈련이 었다. 첩자진(위), 일자진(陳), 장사진(長蛇凍), 방진(方陣), 원진 등의 진법 훈련, 수군들이 자신감을 갖고 훈련 때처럼만 해준다 면 학익진도 가능하리라 믿었다. "가능할 것이오! 그동안 우리는 수십 차례도 넘게 진법 훈련을 하지 않았소? 우리 군사들을 믿고 해봅시다!" 이순신은 휘하 장수들을 설득했다. 더구나 지금 조선 수군에게는 두 척의 거북선이 있었다. 그동안은 여수 본영에서 만든 거북선 한 척 만이 실전에 배치되었으나 방답에서 만든 거북선이 완성되어 출전했던 것이다. 거북선을 학의 양 날개 끝에 배치하여 적선을 학익진 안에 가두기만 하면 필승지세라고 설득했다. 장수들은 이순신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학익진을 능가하거 나 대체할 만한 전략이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견내량 북단에 정박하 고 있는 적을 어떻게 유인할 것인가, 적은 과연 우리의 유인책에 속을 것인가. 이순신은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적장은 그동안 육지에서만 싸운 장수라 하지 않는가. 그는 지금 그동안의 패전을 설욕하기 위해 몸이 달아 있을 것이다. 아직 조선 수군의 위력을 제대로 모른 채 의욕 만 앞서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쉽게 유인책에 넘어올 가능성이 있다.
학익진, 학의 날개로 덮어라
회의는 끝났다. 적을 유인하여 한산 앞바다에서 결전을 하기로 했 다. 이순신은 즉각 5, 6척의 판옥선을 띄워 견내량 북쪽 덕호리 포구 에 주둔하고 있는 와키자카 야스하루 부대를 공격하도록 했다. 조선 판옥선을 본 와키자카 함대는 곧 응전해 왔다. 이순신의 예상대로였 다. 적장은 한시 바삐 전공을 세우고 자신의 진가를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에게 자랑하고 싶은 조급증이 있었다. 포구를 향해 쳐들어가면 조선 판옥선이 일본군의 응전에 뱃머리를 돌렸다. 그러자 기세가 오 른 일본군 전 함대가 조선 판옥선을 쫓아 나왔다. 개전 이래 단 한 척 의 조선 판옥선도 격침시키지 못한 일본군들이었다. 일본군은 아무런 의심 없이 조선 판옥선을 뒤쫓았다. 일본 기록에 보면 약 3리를 뒤쫓 았다고 쓰여 있다. 당시 일본의 1리는 우리 식으로 환산하면 약 10리, 그러니까 조선 선봉대와 일본 함대는 약 12킬로미터에 걸친 추격전을 벌였던 것이다. 말이 추격전이지 그것은 조선 수군의 유인책이었다. 유인책은 조선 함대로서는 매우 위험한 작전이었다. 일본 전선의 속도는 조선 판옥선을 능가했다. 그러나 장거리인데다 견내량 좁은 바닷길을 잘 아는 조선 함대는 쉽사리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암초 와 섬 사이를 넘나들며 적선을 유인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산 위 의 조선군 탐망군들에 의해 그대로 이순신에게 보고되었다. 탐망군들 은 깃발로 이순신에게 조선군과 일본군의 현재 위치를 알렸을 것이 다. 이순신은 주력 함대를 두 개로 나누어 한산도와 미륵도 섬 그늘에 매복하도록 했다. 드디어 저 멀리 조선 함대가 견내량을 빠져나와 한 산도 앞바다를 지나고 있었다. 그 뒤로는 일본 함대가 새까맣게 뒤쫓 고 있었다. 그들은 연신 조선 함대를 향해 조총과 활을 쏘아댔다. “기다려라! 누구든 명령 없이 움직이는 자는 내 직접 참수할 것이다!" 이순신은 긴장하는 조선 수군에 엄명을 내렸다. 초조한 가운데 드 디어 조선 함대가 시야에 크게 들어왔다. "지금이다! 전군 전 속력으로 진발하라!" 드디어 한산도와 미륵도 양안에 매복해 있던 조선 함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함대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신속히 움직였다. 양쪽 섬에서 일렬 종대로 나온 함대는 자연스럽게 한산도와 미륵도 사이의 바다를 일자로 막아섰다. 양 진영 함대의 맨 끝에는 거북선이 각각 배치되어 있었다. 이 거북선이 바로 학의 날개 끝이 되었다. 조선의 주력 함대가 섬 그늘을 빠져나와 그물망을 형성하는 것과 동시에 쫓겨오던 판옥선 들도 방향을 90도로 틀었다. 다가오는 일본 함대를 향해 포격 태세를 갖춘 것이다. 일자로 길게 늘어선 함대의 가운데 부분은 물살에 약간 밀리면서 조선 함대는 자연스럽게 폭이 깊은 반월형 진형을 갖추었 다. 조선 판옥선을 쫓아오던 왜장 와키자카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 었다. 너댓 척의 조선 배를 추격해 왔는데 어느 순간 조선 주력군이 눈 앞을 막아선 것이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산맥 같기도 했고 결코 빠져 나갈 수 없는 그물 같기도 했다. '멈춰라! 함정이다!"
한산대첩의 이름을 새기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일본 배의 선두가 조선 함대를 보고 놀라 멈추자 영문도 모르고 따라오던 후미의 전선이 앞선 배를 들이받기 시작했다. 전투가 벌어지기도 전에 이미 일본 함대는 진형이 무너지 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조선 함대는 넓게 펼친 날개를 조금씩 조여오 기 시작했다. 날개의 양끝은 거북선이 맡았다. 드디어 외곽부터 조여 오던 조선 함대에서 포격이 시작되었다. 진퇴양난, 바로 그것이었다. 일본 함대의 후진은 불가능한 상태! 정면과 측면은 조선 함대에 완전 히 둘러싸여 있었다. 일본 장수들의 독려로 조총 사격을 가해 왔으나 조선 함대는 노련했다. 마치 먹이를 가둔 맹수처럼 서두르지 않았다. 차근차근 정밀 포격을 하면서 일본 함대를 격파했다. 일부 일본전선이 포위망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지만 포위망 바깥쪽에는 무시무시 한 거북선이 있었다. 거북선은 빠져나가려는 일본 전선들을 차례로 담과했다. 학의 날개에 갇힌 일본 전선, 그들에게 학의 품은 지옥이었다. 회전 반경이 큰 일본 함대는 좁은 공간에서의 활동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평저선의 조선 함대는 자유자재로 방향을 바꾸며 포격을 가했다. 발 느린 적을 가둬두고 외곽에서 하나씩 공격하는 조선 함대! 포격망도 정확하게 형성되었다. 적이 가운데 몰려 있어 대략만 조준해도 명중 률이 높았다. "포위망을 뚫어라! 한 곳을 집중 공격하라!" 왜장 와키자카는 독려를 거듭했다. 몇몇 일본 전선이 조선 함대의 한 군데를 노리고 밀고 들어왔다. 한 차례 포격이 끝난 그 틈을 노리고 들어왔다. 육탄으로 뚫고 나갈 태세였다. 그러나 그것도 오산이었다. 한쪽 면의 포격이 끝나면 조선 배는 방향을 빙글 돌려 반대편에 장전 하고 있던 총통으로 포격을 해왔다. 와키자카는 눈앞의 현실이 꿈처 럼 느껴졌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고작 20여 일 전, 용인에서 1,500여 명의 기마병으로 조선 육군 6만여 명을 궤멸시키지 않았던가. 그런데 자신 있던 해전에서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이렇게 무너지다 니! 마침내 와키자카의 배도 강력한 조선 수군의 포격을 받고 침몰하 기 시작했다. 바다에 빠진 와키자카는 간신히 거제도로 헤엄쳐 갔다. 그는 불타는 한산 앞바다를 넋이 빠진 채 바라보았다. 일본 패잔병들 은 뗏목을 엮었다. 부하들이 엮은 뗏목을 타고 가면서도 그는 실감할 수 없었다. 단 한나절 만에 73척의 대함대 중에서 59척을 잃었고 9,000여 명의 군사를 잃었다. 그것은 현실이었다. 그 여름 바다에는 햇살이 눈부셨다. 이순신은 잔적 소탕에 여념이 없는 군사들을 둘러보았다. 그들 하나하나가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모두가 어렵다던 학익진을 훌륭하게 펼쳐 보인 자신의 부하들, 아니 조선 수군들. 그들이 바로 기적 같은 승리의 주역이었다. 조선수군은 단 한 척의 전선도 손상당하지 않고 고스란히 적의 대함대를 격 멸시켰다.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한산대첩은 그렇게 전사의 한장을 장식하게 되었다. BC. 216년 한나빌이 로마를 침공했을 때, 로마는 즉각 대규모 군대를 일으켜 한니발을 막으려고 했다. 당시 한니발의 병력은 기병 1만 명에 보병 4만 명이었다. 반면 로마 군은 기병 7만에 보병 8만 명, 당시 주 학군이던 기병만 비교해보아도 7:1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로마 군의 압승이 예상되었다. 병력에서 절대 염세인 한니발, 이때 한니발이 들고 나온 전법이 바로 하익진과 비슷하다. 카르타고와 로마 군은 비슷한 대형으로 마주 섰다. 즉 중앙에는 보병을, 양쪽 날개에는 기병을 배치했다. 이순신이 학익진의 양 날개 끝에 전력이 뛰어난 거북선을 배치한 것과 일맥상 통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양 진영의 군사 배치가 비슷한 형태 로 보였다. 여기에서 한니발은 기발한 용병술을 선보인다. 당시 한니 발의 카르타고 군은 여러 국가의 연합군이었다. 스페인과 갈리아 군, 그리고 아프리카 보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아프리카 보병은 훈련이 잘된 강병인 반면 갈리아 군과 스페인 군은 상대적으로 전력 이 떨어졌다. 한니발은 전력이 약한 갈리아 군과 스페인 군을 진영의 한가운데, 앞으로 볼록 나가게 배치했다. 즉 로마 군과 가장 가까이 근접하도록 했던 것이다.
2. 그 누구보다 자신을 믿어라
믿음으로 불확실성을 극복하라
그것은 어려운 결정이었다. 한산대첩이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까 닭, 그것은 이순신의 고뇌에 찬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순신의 한산대첩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바로 학익진에 있다. 누구도 학익진 을 해전에 적용하리라 생각지 못할 때 이순신은 그것을 펼쳤고 그리 고 멋있게 성공해냈다. 이순신 이전, 세계 해전은 그야말로 육박전에 백병전이었다. 그것을 이순신은 종통을 이용한 포격전 개념으로 바꾸 었다. 그 포격전에서 이순신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본격적인 진법을 적 용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학익진이었다. 학익진은 오래된 전법 중의 하나이다. 고대 전쟁에서도 이 학익진 을 볼 수 있다. 물론 그때는 학익진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겠지 만 카르타고의 영웅 한니발도 이와 비슷한 전법을 펼친 적이 있다. 드디어 로마 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로마 군의 첫 번째 공격 목표 는 당연히 가장 가까이 있는 한니발 부대의 정중앙이었다. 한니발의 중앙 보병, 즉 갈리아 군과 스페인 군은 로마 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 다. 로마 군 보병에 밀려 중앙에 배치했던 갈리아 군과 스페인 군이 뒤 로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볼록하던 대형의 가운데가 뒤 로 처지는 오목한 형태로 변했다. 분명히 로마 군이 진격하고 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로마 군은 한니발의 카르타고 군 한가운데로 몰려들 었다. 바로 이 순간에 한니발은 측면에 배치해두었던 강력한 아프리카 보병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이들 아프리카 보병은 로마군의 측면을 공격했다. 당황한 것은 로마 군이었다. 돌아서려 해도 이미 한니 발 부대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 동시에 한니발은 양 날개에 있 던 기병에게 명령을 내려 보병과 분리된 로마 기병을 공격하게 했다. 이제 로마 군의 대형은 무너지고 한니발 군의 대형은 더욱 밀집하여 로마 군을 포위 공격했다. 이 전투에서 로마 군은 약 7만의 전사자를 냈다. 비록 병력이 열세 라 하더라도 탁월한 진범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니발은 그 진법을 무엇이라 이름 붙였는지 모르지만 그 것은 학익진과 흡사한 배치였다. 이처럼 화려한 학익진, 그러나 전선을 이용하여 학익진을 펼치기어 는 위험 부담이 적지 않다. 육지와 달리 바다는 날씨와 파도 등 미묘한 변수가 많아 전 함대의 속도와 방향을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순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50여 척이 넘는 전선을 일사불란하 게 지휘할 수 있을 것인가. 조선 수군은 이순신의 지휘를 한 치 오차 없이 수행해낼 수 있을 것인가. 이순신 자신도 반신반의했으리라. 그 때 그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모든 것을 운에 맡기고 한번 해보자는 심 정이었을까. 그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막연한 믿음으로 도박을 하기 에 이순신의 위치는 너무나 절박했다. 이순신에게 가장 큰 약점은 자신을 대신할 만한 장수와 군대가 없 다는 것이었다. 이순신은 조선의 마지막 버팀목이었다. 이순신 스스 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조선 수군의 단 한 번 패배는 곧장 조선이라는 나라의 멸망을 의미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는 불확실성에 함부로 도전할 수도 없었다. 과연 학익진을 펼칠 것인 가 말 것인가. 그 선택의 기로에서 이순신이 택한 것은 자신이 펼치려 는 진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었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믿었던 것 이다.
실행 키를 두드려라
때로는 자신이 하고 있거나 준비하는 일에 회의가 들 때도 있다. 이 것이 맞는 길인지, 과연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할 때가 있 다. 과연 이 계획대로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불확실할 때가 많다. 많은 경우의 수를 짚어보며 검토에 검토를 거듭해도 마지막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사의 판단을 바라 거나 경험자에게 조언을 듣고자 한다. 그렇다면 타인의 판단과 조언 은 또 믿을 만한가. 남의 의견을 듣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마지막 선택은 아무도 대신 해주지 않는다. 많은 의견을 듣되 마지막 선택은 자신이 하라! 일단 선택한 후에는 엄청난 책임감과 중압감이 닥쳐올 것이다. 그렇더라도 마지막 선택은 자신이 하라! 그리고 그것을 이겨 내라! 자신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나 자신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실제로는 오만과 아집으로 나타날 우려는 없는가. 피할 수 없는 딜레마이 다. 나를 믿어야 하면서도 끊임없이 나를 부정해야 하는 모순! 그렇다 면 과연 나는 어떻게 나를 믿게 만들 것인가, 내가 믿어도 좋을 나 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최선의 선택을 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라.
모든 사안을 연구하고 신중하게 생각하라, 신중하면서도 신속하게 결 정하라.
미국 최초의 기갑 사령관이자 2차 대전 당시 노르망디 전투에서 큰 말라. 상황에 가장 맞는 계획을 세우려고 노력하라"고 했다. 상황이란 공을 세운 조지 패튼 장군, 그는 "계획을 세우고 상황을 맞추려 하지 마치 생물처럼 움직이고 변한다. 상황이 발생하면 그 상황에 맞는 계 획을 세워야 한다. 상황을 탓하지 마라. 그것은 기민하게 판단하지 못 한 데 대한 핑계일 뿐이다. 한산대첩 당시 만약 이순신이 적에게 기습을 당했다면 어땠을까. 그때도 이순신은 학익진을 펼치겠노라며 함대를 둘로 나누고 매복시 켰을까. 상황이 달라지면 그는 역시 그 상황에 맞게 전략을 세웠을 것 이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을 믿고 실행 키를 두드렸을 것이다. 자신과 자신이 훈련시킨 조선 수군을 믿고서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면, 이제 자신을 믿어라! 스스로 믿지 못하면서 어찌 남을 믿겠는가. 나의 능력을 믿어 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열쇠, 바 로 자신의 손 안에 있다.
불패의 리더이순신, 그는 어떻게 이겼을까
윤영수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