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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재미있는]사기 열전_91

Li Si, originally from Chu, realized early that people's nature is shaped by their environment. He moved to Qin, where he advised the king on the ideal time for unification, eventually rising to a high position. After the king’s death, Li Si secretly handled the succession and made key decisions. However, his actions, including manipulating the succession process, eventually led to a harsh regime that caused widespread discontent, culminating in a popular uprising.

천하 경륜인가, 야비한 술수인가?

이사 : 사람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이사李斯는 초나라 사람이다. 그가 젊은 시절 군郡의 아전으로 있었을 때의 일이다. 이사는 아전의 숙사 화장실에서 쥐들이 더러운 것을 주워 먹다가 사 람이 가까이 가자 잔뜩 겁을 집어먹으며 도망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와 달리 창고 안으로 들어간 이사는 쥐들이 창고 가득 쌓아놓은 곡식 을 먹고 살면서도 사람들을 전혀 겁내지 않음을 보고 탄식했다. “사람이 현명하다 어리석다 하는 것도 비유하면 저 쥐와 같다. 스스 로 처한 환경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리고는 순경荀卿(순자)에게 가서 '제왕의 기술', 즉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을 배웠다. 이사는 평소 초나라 왕은 섬길 만한 인물이 못 되고 여섯 나라 모두 약소하여 큰 일을 도모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사는 학문을 마치고 강대국 진나라에서 출세하려는 뜻을 스승 순경에게 비쳤다. “저는 때를 만나면 주저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만승의 제후들이 서로 세력다툼을 하고 있는 시기로 유세가들이 정치를 주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진나라 왕은 천하를 집어삼키고 제帝라고 칭하면 서 다스리려 하고 있습니다. 이때야말로 벼슬 없는 선비가 능력을 펼쳐 야 할 때이며, 유세하는 자가 활약해야 할 시기입니다. 비천한 위치에 있으면서 무엇인가 출세할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마치 짐승이 고깃 덩어리를 보고서도 사람들이 그들을 쳐다본다 하여 억지로 참고 지나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비천한 것보다 더한 슬픔은 없습니 다. 오랫동안 비천하고 곤궁한 처지에 있으면서 세상 부귀를 비난하고 영리榮利를 미워하며 스스로 고상한 체하는 것은 선비의 본래 마음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장차 서쪽으로 가서 진나라 왕에게 유세 하겠습니다."

 

이사가 진나라에 이르렀을 때 마침 장양왕(자초, 시황의 부친)이 죽었 다. 이사는 여불위의 문하에 있다가 진나라 왕인 정을 설득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이사는 진나라 왕에게 진나라가 제帝라 일컫고 나 머지 6국이 진나라에 복종하고 있는 지금이 천하통일의 적기임을 유세 했다. 이에 흡족해진 진나라 왕은 이사에게 장사長史(궁궐의 일을 총괄하는 관 리의 우두머리)의 벼슬을 주었다. 그후 비밀리에 모사를 동원하여 각국의 제후를 금과 옥으로 설득하고, 제후국의 명사에게 뇌물을 바쳐 진나라 와 결탁하게 만들고, 말을 잘 듣지 않는 자는 예리한 칼로 암살하고, 왕 과 신하를 이간질시킨 뒤 장수를 보내어 그들 나라를 치게 한 일은 모 두 이사의 계책에서 나온 것이었다. 드디어 진나라 왕은 이사를 객경客 卿으로 삼았다.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사양하지 않아 그 높이를 이룬다

그후 진나라에 타국 출신의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추방령이 내려 졌다. 이사는 추방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도 들어 있음을 알고 진나라 왕에게 이런 상소문을 올렸다. 신이 들으니, 관리들이 객인客ㅅ을 쫓아낼 것을 의논했다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그것은 잘못된 일인 것 같습니다. 옛날 목공은 인재 를 구하여 서쪽으로는 융에서 유여를 데려오고(후에 목공은 유여의 계책 으로 12융족을 정벌), 동쪽으로는 원에서 백리해를 얻었으며, 송나라에 서 건숙(백리해의 친구)을 맞아들였고, 진晉나라에서 비표(후에 진晉나라의 성을 함락시킴)와 공손지(후에 진秦나라에서 상대부上大夫가 됨)를 불러들였 습니다. 이 다섯 사람은 진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아닌데도 목공은 이들을 중용하여 20여 국이나 병합하니, 마침내 서융에서 우두머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효공 때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었던 상앙, 혜왕 때 6국 합종을 깨뜨려 동서남북으로 땅을 넓혔던 장 의, 소왕 때 왕실을 강력하게 하고 진나라로 하여금 제업帝業을 이루게 했던 범수, 이들은 다 객인이었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본다면 어찌 객인이 진나라를 망쳐버렸다고 하겠습 니까? 일찍이 저 네 왕들이 객인을 배척하여 나라 안에 들이지 않고 선비들을 멀리하여 등용하지 않았다면, 진나라는 부유하고 이로운 실 익이 없었을 것이고 강대하다는 명성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폐하께서 좋아하시는 보석과 음악은 다 외지의 산물이며 총애 하시는 여인 또한 외지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을 쓰는 것은 그 렇지 않습니다. 그 인물의 사람됨이 옳은지 그른지를 묻지 않고, 굽은 지 곧은지를 가리지 않고, 진나라 사람이 아닌 자는 물리치고 빈객이 면 내쫓으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곧 여색과 음악과 주옥은 소 중히 여기고 사람은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제후를 제 압하는 패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신이 들으니, '땅이 넓어야 곡식이 많이 나고, 나라가 커야 사람이 많으며, 군대가 강성해야 병사도 용감하다고 합니다. 태산太山은 한 줌 의 흙도 양보하지 않아 그 높이를 이루었으며, 크고 넓은 바다는 가느 다란 개천물도 거부하지 않아 그 깊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왕들은 어떠한 백성도 물리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덕을 온 천하에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에는 사방의 구분이 없고 백성들에게 는 다른 나라의 차별이 없습니다. 진나라 또한 천하를 밝히려면 진나 라 사람이건 객인이건 가리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객인을 쫓아내어 적국을 이롭게 하면, 나라가 위태롭지 않기를 바랄지라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상소문에 감복한 진나라 왕은 객인에 대한 추방령을 취소하고 이 사의 벼슬을 회복시켜 그의 계책을 받아들였다. 이사의 벼슬은 정위廷 尉까지 이르렀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 진나라는 마침내 천하를 통일하고 왕을 높여 황 제라고 하였다. 이사는 승상이 되었다. 진나라는 한 자尺의 땅도 남에게 봉해주는 일이 없었고, 황제의 자제를 내세워서 왕으로 삼는 일도 없었 으며, 공신들을 제후로 삼지 않았는데, 이 모두 후일에 내란의 근심거 리를 없애기 위함이었다.

백성을 어리석게 만들어야 세상을 비난하지 않는다

시황제 34년의 어느 날, 함양궁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제나라 출신인 순우월淳于越이 황제에게 주나라 시대에 시행하던 봉건 제(혈족과 공신에게 땅을 주어 다스리게 하는 정치체제)의 회복을 간하자, 이사 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인 군현제(전국을 군과 현으로 나눈 뒤 황제가 직접 관리를 파견하여 다스리는 정치체제)를 주장하며 이렇게 말했다. “봉건제의 회복처럼 옛것을 주장하는 이들은 조정에 들어와서는 속 으로 비난하고 물러나서는 거리에서 쑥덕거립니다. 그들은 군주를 비 난하는 것을 명예로 여기고, 왕의 명예를 왜곡시키면서 스스로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비방을 만들어냅니다. 이와 같은 것을 금지하지 않으면 위로는 군주의 권위가 떨어지고 아래 로는 당파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신께 아됩니다. 모든 문학과 《시경》·《서경제자백가(여러 스승의 백 가지 학설)의 책을 모두 나라에 바치게 한 후 태우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이 명령을 내린 지 30일이 지나도 시행하지 않는 자는 이마에 먹물을 들이는 형벌을 가해 성을 쌓는 강제노동을 시키십시오. , 의약·점복 占卜·농사·원예에 관한 책은 폐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약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관리를 스승으로 삼아 배우게 하면 될 것입니다.” 진나라 시황제는 이사의 말을 받아들여 <시경>·<서경제자백가의 책을 몰수하여 불에 태웠다. 이것이 바로 분서焚書 사건이다. 시황제는 자신이 세운 나라가 영원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왕의 시호를 없애고 1세世, 2세世로 했다. 이렇게 하면 당연히 제국이 만세萬世까 지 지속되리라 믿었다. 또한 자신이 제국의 황제로서 영원히 살기를 바 랐다. 그래서 신선사상을 신봉하는 도인道노생과 후생에게 불로장생 의 약초를 구해오라 시켰다. 그런데 이들은 거금만 챙긴 채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시황제는 죄 없는 유생儒生들에게 분풀이를 했는 데, 조정을 비판한다는 죄목으로 유생들을 얽어매어 구덩이 속에 생매 장시켰다.  이 사건이 바로 갱유坑儒인데, 앞의 분서와 묶어 '분서갱유'라는 이름 으로 지금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이 사건은 백성들을 어리석게 만들어 서 천하의 그 누구도 옛것을 끌어들여 지금 세상을 비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법도를 분명하게 하고 율령을 정하는 일은 모두 시황제 때에 비롯되었 다. 또한 문자를 통일하고 방방곡곡에 이궁離宮(황제가 행차시에 유숙하는 궁)과 별관을 두루 지어 두었다. 그 다음해에는 천하를 순방하고 밖으로 사방의 오랑캐를 물리쳤는데, 이는 모두 이사의 건의에 의한 것이었다.

처세를 잘하는 자는 화를 복으로 만든다

이사의 맏아들 이유李由는 삼천군三川郡의 태수가 되었다. 아들들은 모두 진나라 공주에게 장가들었고, 딸들은 모두 진나라의 여러 공자들 에게 시집을 갔다. 이유가 휴가를 얻어 함양으로 돌아오자 이사의 집에 서 술자리를 열었다. 모든 관청의 장들이 이사의 집에 와서 그의 장수를 기원하는 잔을 올리게 되었다. 그 바람에 이사의 문 앞에는 몇 천 대 의 수레와 말들이 줄을 이었다. 이를 보고 이사가 탄식했다. "아아, 나는 순자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사물이 지나치게 강성해 지는 것을 금해야 한다', 나는 원래 평민이며, 시골 마을의 백성일 뿐 이었다. 그런데 주상께서 재주도 없고 아둔한 나를 모르시고 발탁하여 오늘의 이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지금 남의 신하가 된 자로서 나보다 위에 있는 자가 없으니, 이 정도면 부귀가 극에 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물은 극에 달하면 반드시 쇠하게 마련이 아닌가. , 이 몸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지......" 시황제 37, 황제는 막내 아들인 호해胡亥와 승상 이사, 환관 조고 高등을 데리고 지방 시찰 길에 나섰다가 사구沙邱에서 병이 나 위독했 다. 이때에 시황제의 맏아들 부소扶蘇는 장군 몽염과 함께 국경을 지키 고 있었다. 황제는 환관 조고를 시켜 다음과 같이 유서를 만들어 부소 에게 전달하게 했다. '군사는 장군 몽염에게 맡기고, 부소는 함양에 와서 나의 영구를 맞 아 장례를 거행하라. 그러나 유서가 사자에게 내려지기도 전에 시황제는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이사는 황제가 밖에서 붕어하고 태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 에서 국난을 당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국상을 비밀에 붙여야 한다고 생 각했다. 시황제의 죽음을 아는 사람은 시황제의 막내아들 호해,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 등 몇 사람뿐이었다. 호해는 시황제 소생의 20여 명 의 아들 중 황제의 남다른 사랑을 받아온 아들이다. 그들은 황제의 유해를 온량거라는 수레 속에 안치하고, 정사를 돌보 는 일을 비롯하여 식사를 올리는 일 등을 생전과 똑같이 하였다. 물론 온량거 속에는 황제 대신 환관이 숨어서 결재를 대신하였다. 그러나 환관 조고는 황제가 죽자 생각을 바꾸었다. 그의 손에는 밀봉 한 편지와 옥새도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편지를 위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환관 조고가 호해에게 말했다. "황상의 유언대로 한다면 장자 부소가 황제가 될 것입니다. 천하의 권력을 잡느냐 잃어버리느냐 하는 것은 공자와 저와 승상의 손에 달려 있으니 잘 생각해보십시오, 남의 신하가 되는 것과 남을 신하로 부리는 일이 어찌 같을 수 있겠습니까? 호해가 주저하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자 조고는 다시 한 번 속삭여 호 해의 마음을 바꾸어 놓았다. 그런 후 승상 이사에게 가서 호해에게 했 던 말을 하자, 이사는 반대하고 나섰다. 고조가 말했다. "승상께서 스스로 생각해봐도 아시겠지만, 승상은 장군 몽염과 비교 할 때 능력과 공이라든지 모든 면에서 뛰어나지 못합니다. 또한 황제의 장자 부소는 몽염을 신임하고 있습니다. 이 조고는 본래 환관이라는 천 한 벼슬아치입니다. 다행히 문서를 잘 처리하는 재주로 궁중에 들어오 게 되어 일을 본 지 20여 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동안 본 바로는 승상이 나 공신들 가운데 2대를 이은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마침내는 다 죽 임을 당했지요. 맏아들인 부소가 황제가 된다면 틀림없이 몽염을 승상 으로 삼을 것이고, 승상께서는 지방 벼슬자리도 못 얻고 쫓겨날 것입니다. 그러니 호해를 황상의 후사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승상은 여전히 높은 지위를 지킬 것입니다." 이사가 말했다. 나는 황상의 유언을 받들어 하늘의 명령에 따르겠소. 우리가 달리 결정해야 할 일이 무엇이 있겠소?" 조고가 말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편안한 것을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고, 위태로운 것을 편안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편안하고 위태로운 것을 결정하지 못한다면 어찌 성인의 지혜를 가졌다 일컬을 수 있겠습니까?" 이사가 말했다. "대체로 충신은 죽음을 회피하려 요행을 바라지 않으며, 효자는 부모 를 위하여 부지런히 노력할 뿐 위태로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오. 왕 의 신하된 자는 각각 자기의 직분을 지킬 뿐이오. 당신은 그런 말을 더 는 하지 마시오. 내가 죄를 짓길 바라오? 조고가 말했다. "신이 들이니, 성인은 변화하여 사물에 얽매임이 없고, 변화에 따르 고 시대에 호응하며, 끝을 보고 근본을 알며, 지향하는 바를 보고 귀착 되는 바를 안다고 합니다. 사물이란 본래 이런 것입니다. 어찌 고정불 변의 법칙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천하의 권세는 호해에게 달려 있으며, 저는 그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습니다. 대체로 밖에서 안을 제어하는 것을 혹뿐이라 하고, 아래에서 위를 제 어하는 것을 적이라고 합니다. 가을에 서리가 내리면 잎과 꽃이 떨어 지고 봄에 얼음이 녹아 물이 거세게 흐르면 만물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필연의 법칙입니다. 당신은 어찌 그리 판단이 더딥니까?" 그런데도 이사가 형제의 순서를 바꾸어 황제를 정하여 환란이 일어 난 나라를 예로 들며 불가의 입장을 표하자 다시 조고의 설득이 계속되 었다. “위와 아래가 힘을 합하면 오래 갈 수 있고, 안과 밖이 하나가 되면 일의 겉과 속이 없어집니다. 승상께서 신의 계책을 받아들이면 봉후封 侯의 지위를 누리어 대대로 고孤(제후가 자신을 일컫는 호칭)라고 일컬으며, 반드시 선인과 같이 장수하고 공자·묵자와 같은 지혜를 얻게 될 것입 니다. 그러나 지금 이 기회를 버리고 좋지 않는다면 화가 자손까지 미 칠 것입니다. '처세를 잘하는 자는 화를 복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승상 께서는 어떤 것을 선택하시렵니까?" 이사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홀로 난세를 만나 죽지도 못하니, 어디에 목숨을 의탁할 것인 가!" 이사는 결국 조고의 끈질긴 설득에 마음을 바꾸었다. 조고·호해· 이사 세 사람은 모의하여 시황제의 조서를 받은 것처럼 꾸미고, 승상은 호해를 세워 태자로 삼았다. 또 부소에게 내린 편지를 이렇게 고쳤다. 부소는 군대 감독관 자리에 있으면서도 직책을 다하지 않고 자주 짐 의 일을 비방했으니 자결하라. 그리고 장군 몽염 역시 황제의 아들인 부소를 보살필 의무를 다하지 않았으므로 자결하라. 얼마 후 변방에서 황제의 유서를 받은 부소는 사람이 어진지라 곧 자결하고, 장군 몽염은 그 조서를 따르지 않은 죄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진나라를 천자의 나라로 만들었던 이사의 최후

함양으로 돌아온 호해는 진나라의 2세二世 황제로 즉위하고 국상을 발표했다. 호해는 조고를 낭중령中令(궁궐 문을 지키는 관리)이란 높은 벼슬에 앉혀 항상 가까이 두었다. 이에 조고는 정권을 쥐고 흔들게 되 었다. 조고는 호해에게 시황제 때보다 엄격한 법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그 법령으로 선제의 옛 신하와 황족들을 잔인하게 멸족시켰다. 또한 아방 궁을 짓고 곧게 뻗은 큰 도로와 넓은 도로를 건설하느라 국세를 더욱 무겁게 거둬들였다. 자연히 백성들의 불만은 점점 커져갔고, 마침내 초 나라의 수비병인 진승·오광 등이 반란(B.C. 209년 진나라 말기에 시황제가 죽은 뒤 민간에서 일어난 반란 사건. 중국 역사상 처음 발생한 농민반란이다. 반란 은 6개월 만에 실패로 끝났으나,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난 유방과 항우의 공격 에 진나라는 멸망하고 만다)을 일으켰다 이사는 여러 번 간언하려 했지만 2세 황제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삼천군의 태수인 이사의 아들 유가 오광 등 반란군의 행군을 저지하지 못한 일로 이사가 곤란에 처하게 되었다. 이사는 신변 의 위험을 느끼고 2세 황제에게 아첨하여 용서를 받고자 혹독한 법치를 주장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을 읽은 2세 황제는 기뻐했다. 이리하여 신하를 더욱 엄격하게 다루고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많이 거둬들이는 자를 현명한 관리로 여 겼다. 그러다 보니 길에서 다니는 사람의 반은 형벌을 받은 자들이고, 형벌을 받아 죽은 자는 날마다 거리에 쌓이게 되었다. 또 사람을 많이 죽인 관리를 충신이라고 했다. 한편 조고는 권력을 휘둘러 개인적인 원한관계가 있는 사람을 많이 죽였다. 조고는 대신들이 자신의 일을 2세 황제에게 직접 간할까 두려 워 아예 2세 황제가 직접 대신들을 만나지 못하도록 했다. 이렇게 하여 조고는 단독으로 황제를 모시고 정치적 권력을 더욱 마음대로 휘둘렀 다. 그뿐만 아니라 조고는 이사를 위하는 척하면서 아들의 일을 꼬투리 잡아 역모를 공모한 죄로 옥에 잡아넣었다. 우매한 2세 황제는 이사를 조고에게 넘겨 조사하도록 했다. 이사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아아 슬프구나, 도리를 모르는 왕과 어찌 천하를 논하리요! 옛날 하 나라 걸왕(주색에 탐닉하다 나라를 망친 폭군)은 관용봉을 죽이고, 은나라 주왕은(달기라는 요녀독부에게 빠져 주무왕周武王에게 멸망당함) 왕자 비간을 죽이고, 오나라 왕 부차는 오자서를 죽였다. 이 세 신하가 어찌 불충하 였겠는가? 그러나 죽음을 면치 못했다. 지금 나의 지혜는 이들 세 사람 을 따를 수 없고, 2세의 무도함은 걸왕·주왕·부차보다 심하니 내가 충성을 바쳐도 죽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날 그는 형제를 죽이고 충신을 죽이고 또한 대역사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세금을 무겁 게 징수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이런 데다 조고 같은 환관이 이미 천하 의 반을 차지했건만 황제는 깨닫지 못하고 조고에게 놀아나고 있다. 내 반드시 도적이 함양을 함락시키고 그 폐허에 고라니와 사슴이 뛰노는 것을 보리라." 조고는 이사의 종족·빈객까지 다 체포한 뒤 이사를 역모죄로 심문 했다. 이사는 너무 억울하여 옥중에서 진나라를 천자로 만든 자신의 공 로를 상기시키는 글을 썼다. 그러나 조고가 중간에서 가로채니 2세 황 제에게 전달될 리 없었다. 얼마 후 이사는 조고의 고문에 못 이겨 2세 황제 앞에서 있지도 않은 죄를 자백했다. 결국 2 2 7월에 이사는 함양의 시장 바닥에서 참형을 당하고 말았다. 그의 삼족 역시 사형을 당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다 이사가 죽고 나서 2세는 조고를 중승상中丞相으로 삼았다. 조고가 크 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모든 일을 결정했다. 이제 진나라에서 조고의 권력 앞에 벌벌 떨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어느 날이었다. 조고는 자신의 권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 는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이라고 했다. 2세가 좌우에 있는 신하들 에게 물었다. "이것은 사슴이지?" 신하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했다. "말입니다." 2세는 놀라서 자기가 정신이상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래서 2세는 태복太卜(점을 치는 관리)을 불러 점을 치게 했다. “폐하께서 봄가을로 거행하는 제사 때 경건한 마음가짐을 가지지 않 았기 때문에 이러한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덕을 많이 쌓아 재계齋戒(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일을 멀리하다)를 제대로 하시 고 제사를 지내신다면 괜찮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2세는 재계한다면서 곧 상림원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에 가서 날마다 새를 쏘고 짐승을 사냥하며 놀았다.

3세 만에 끝난 천자의 나라

어느 날 2세가 사냥을 하다. 상림원에 들어온 사람을 활로 쏘아 죽였 다. 조고는 그의 사위 염락樂을 시켜 이렇게 탄핵했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모르나 사람을 죽인 뒤 그 시체를 상림원으로 옮 겨놓은 자가 있다." 그리고 조고가 2세에게 간하는 척하면서 섬뜩한 말을 했다. "천자가 아무 이유 없이 죄 없는 사람을 죽였으니 귀신도 폐하의 제 사를 받지 않을 것이며, 하늘이 재앙을 내릴 것입니다. 따라서 궁궐에 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재앙을 물리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2세는 궁에서 나와 망이궁望夷 거처했다. 며칠 후 조고는 군사를 이끌고 망이궁에 쳐들어가 황제를 위협하여 자살하게 했다. 조고는 옥 새를 손에 넣고 황제의 복장을 하였는데, 곁에 있던 신하들이 아무도 따르지 않았고, 궁전에 올라갔으나 궁전이 세 번이나 무너지려고 했다. 조고는 하늘이 돕지 않고 신하들도 이를 허락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시황제의 손자인 자영을 불러 옥새를 주었다. 자영은 즉위했지만 조고의 허수아비가 될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거 짓으로 병을 꾸며 조고가 문병하러 왔을 때, 환관 한담韓談을 시켜 그를 찔러 죽이도록 하고 그의 삼족을 멸했다. 자영이 황제가 된 지 얼마 뒤 패공沛公(유방)의 군대가 함양에 쳐들어 왔다. 진나라의 문무백관 중에 싸우는 자는 한 명도 없었으며 모두 자 영을 배반하고 도망쳤다. 자영은 처자식와 함께 옥새가 달린 끈을 목에 걸고 길가에 나와 항복했다. 자영은 패공에 의해 관리에게 넘겨졌으나, 초나라 항왕項王(항우)에게 죽임을 당한다. 마침내 진나라는 천하를 잃 고 말았다. 이사는 시골의 미천한 곳에서 태어나 제후들을 유세한 끝에 진시황 을 보좌하여 진나라가 제업帝業을 이루게 하고 자신은 승상이 되었다. 이사는 육경六經의 대의를 꿰뚫었으면서도 정치를 밝게 하여 군주의 결 점을 보충하는 데 쓰지 않았다. 또한 높은 벼슬에 있으면서도 아첨하 고, 구차하게 영합하여 법령만을 엄하게 하고 형벌을 혹독하게 하였으 며, 조고의 그릇된 말을 들어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세웠다. 제후들의 마음이 돌아선 뒤에야 비로소 군주에게 간언하려 했으니, 그때는 너무 늦었다. 사람들은 이사가 충성을 다했으나 형벌을 받아 죽었다고 말한다. 그 러나 그 근본을 살펴보면 세상의 논의와는 다르다. 권모술수와 아첨에 능하지 않았다면 이사의 공은 주나라를 천자의 나라로 만든 주공이나 소공과 같은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을 것을...

 

소설보다 재미 있는 사기열전

지은이 : 사마천

편역자 :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