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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재미있는]사기 열전_90

Jing Ke was an assassin tasked by Prince Dan of Yan to kill King Zheng of Qin (later Emperor Qin Shi Huang). He used the head of a Qin general and a map as a ploy to approach the king but failed in his assassination attempt. This led to Qin's retaliation and the eventual downfall of Yan. Jing Ke's unwavering commitment to his mission and his sacrifice are remembered as symbols of loyalty and bravery in history.

전국시대 최후를 장식한 자객

형가 : 사소한 시비는 등 뒤로 하고 떠났던 사람

위衛나라에 형가荊軻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천하를 돌아다니며 출 세를 위해 애를 써 보았지만 변변한 벼슬자리 하나 얻지 못했다. 어느 날 그는 유차라는 마을을 지나다가 갑섭이라는 자와 검술에 대 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 의견이 서로 다르자 갑 섭이 눈을 부릅뜨며 성을 내고 노려보았다. 그러자 형가는 아무 말 없 이 짐을 싸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또 한 번은 한단에서 노구천魯句踐이 라는 자와 장기를 두었는데, 노구천이 화를 내고 꾸짖자 형가는 아무 말 없이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모두 형가를 비겁 한 인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뒤 연나라로 건너간 형가는 축筑(거문고와 비슷한 악기)을 잘 타는 고 점리高漸離라는 자와 친하게 지냈다. 형가는 술을 즐겨서 날마다 고점 리와 함께 연나라 저잣거리에서 술을 마셔댔다. 그러다 술이 취하면 고 점리는 축을 타고 형가는 음악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형가는 비록 술꾼들과 사귀어 놀기는 했지만, 그의 사람됨이 침착하고 깊으며 독서 를 좋아하여 천하 곳곳의 어질고 호걸스러운 현인들과 교유했다. 그러 다 형가는 처사(벼슬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 전광田光선생과 사귀 에 되었다. 전광선생은 형가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알아보고 잘 대접 하였다.

노쇠한 천리마는 둔마보다도 달리지 못한다

얼마 뒤, 진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던 연나라 태자 단이 도망쳐 귀국 했다. 태자 단은 진나라 왕 정과 어린 시절 친구였는데, 정이 왕이 되면 서 인질로 잡혀 있던 자기를 푸대접한 것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원한을 갚으려는 상대가 너무 강한 나라의 왕인지라 단의 힘이 미치지 못했다. 그 뒤 진나라 왕 정은 군사를 산동 지역으로 보내 제나 라와 초나라, 삼진을 쳐 제후국의 땅을 차츰 차츰 잠식하더니, 급기야 는 연나라의 땅마저 넘보려고 했다. 이때에 진나라 장군 번오기가 진나라 왕에게 죄를 짓고 연나라로 도 망쳐 망명을 요청했다. 단이 허락하려고 하자 단의 태부(태자의 수석 스 승) 국무가 말했다. "번오기를 받아들이시면 반드시 진나라에 보복을 당할 것입니다. 대 체로 위태로운 일을 하면서 편안함을 찾고 화를 만들면서 복을 구하려 한다면, 계책은 얕아지고 원망만 깊어질 뿐입니다. 한 사람과의 사립 때문에 국가의 재난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것은 원한을 보태고 화를 조장하는 격이 됩니다.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은 새털을 가 져다 화로의 숯불 위에서 태우는 것처럼 아주 쉬운 일입니다. 마침 전 광선생이란 분이 여기에 와 있는데, 매우 지혜롭고 용감하고 침착하니 함께 일을 모의할 만합니다.” 얼마 뒤 태자 단이 전광선생에게 극진한 예를 치르며 난국을 타개할 비책을 물었으나 전광선생은 사양했다. “신이 들으니, 준마는 기운이 왕성할 때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릴 수 있 으나 노쇠하면 평범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신은 늙어 장 성하던 때의 힘은 다 사라지고 없습니다. 저 대신 저와 친한 형가를 천 거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라면 나라를 위해 힘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단이 허락하니 전광선생은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물러났다. 전광선 생이 문까지 나왔을 때 전송하던 단이 주위를 살피면서 말했다. “저와 선생 사이에 나눴던 이야기는 나라의 큰 일이니 누설하지 마십시오." 전광선생은 머리를 숙이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광선생은 곧 형가에게 찾아가 태자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모두 설 명하고 난 뒤 이렇게 말했다. “내가 들으니, 나이 들고 덕이 있는 사람은 남에게 의심받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하오. 태자는 나에게 일을 맡기면서 우리가 말한 것은 나라의 큰 일이니 누설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소. 이것은 태자가 나를 의심하기 때문이오. 대부분 일을 행할 때 남의 의심을 사는 것은 절개 있고 의협심이 있는 사람의 행동이라고 할 수 없소.” 그런 뒤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급히 태자에게 가 이렇게 전해주시오. 전광은 이미 이 세상에 없으 며, 비밀은 영원히 지켜졌다고.”

천하 형세를 뒤바꿀 만한 사람의 목

형가가 드디어 태자 앞에 나아갔다. 전광선생이 자결한 것을 전해 듣 고 태자는 탄식해마지 않았다. 그런 뒤 형가에게 말을 꺼냈다. “지금 조나라가 위태롭습니다. 만약 조나라도 진나라에 짓밟히면 화 는 곧 우리 연나라에 미칠 것입니다. 지금 헤아려 보건대 천하의 온 나 라가 힘을 합하여 싸우더라도 진나라를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연합군의 군대가 아니라 진나라 왕 정을 찔러 죽일 수 있는 용사입니다. 용사가 목적을 달성한다면 진나라는 혼란에 휩싸 이게 되고 이때에 제후들이 합종하여 진나라를 공격한다면 비로소 진 나라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이 저의 가장 큰 소원입니다. 그 러니 이 일을 그대가 맡아주십시오." 형가는 태자의 부탁을 처음에는 사양했지만, 태자가 머리를 조아리 며 여러번 부탁하니 마침내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자는 곧 형가 를 상경으로 삼고, 시설이 제일 좋은 객사에 머무르게 했다. 그리고 날 마다 진귀한 음식과 어여쁜 미녀들을 보내주는 등 형가를 위해서라면 작은 일도 신경을 써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진나라가 조나라를 무너뜨 리고 조나라 왕을 포로로 잡은 뒤 기세를 몰아 연나라로 쳐들어오고 있 었다. 그래도 형가는 떠날 채비를 하지 않았다. 태자가 조급하여 형가 에게 그 이유를 묻자 형가가 비로소 말문을 열었다. “지금 진나라로 가더라도 믿을 만한 것이 없으면 결코 진나라 왕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습니다. 진나라 왕은 번오기 장군을 황금 1,000근 과 1만 호의 식읍을 내걸고 찾고 있습니다. 만일 번장군의 머리와 연나 라의 비옥한 땅 독항督亢의 지도를 얻어 진나라 왕에게 바친다면, 진나 라 왕은 기뻐하며 저를 보자고 할 것입니다. 그때 신은 진나라 왕을 죽 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태자는 허락하지 않았다. "번장군은 갈 곳이 없어 나에게 몸을 의탁한 사람입니다. 나의 사사 로운 욕심 때문에 번장군의 목을 베는 일은 차마 할 수 없습니다. 원컨 대 선생께서 달리 생각해주십시오.” 형가는 다시 간했다. 그러나 태자가 차마 결정하지 못하자 번장군을 찾아가 태자의 고심을 전한 뒤 이렇게 말했다. "진나라에서 장군을 잡기 위해 상금을 내걸고, 또한 장군의 부모와 종족을 다 살해했습니다. 지금 연나라의 근심을 풀어주면서 장군의 원 수를 갚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번오기가 형가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제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형가가 말했다. “원컨대 장군의 머리를 진나라 왕에게 바치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진 나라 왕은 흡족하여 신을 보자고 할 것입니다. 그때 신이 진나라 왕을 찌르면 장군의 원수를 갚고 연나라가 받은 치욕도 씻을 수 있을 것입니 다. 장군께서는 그럴 뜻이 있습니까?" 번오기는 이 말을 듣자, 손을 움켜쥔 채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신이 밤낮으로 이를 갈고 가슴을 치며 고대하던 바입 니다. 당신이 가르쳐 주어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태자가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시체에 엎드려 매우 슬프게 울었다.

자객은 한 번 가매 다시 돌아오지 못하네

형가가 떠날 순간이 왔다. 태자는 천하 제일의 비수에다 독약을 칠하 게 한 뒤 그것을 형가에게 주고, 연나라의 어린 용사 진무양秦舞陽을 조 수로 삼아 형가를 대동케 했다. 그런데 형가는 진무양 대신 자기의 객 인客ㅅ을 대동하려고 시간을 끌었다. 그러자 태자가 말했다. “시간이 없습니다. 혹 후회되십니까? 그렇다면 진무양을 먼저 보내 겠습니다." 형가는 성을 내며 태자를 꾸짖었다. “진무양 같은 어린 놈은 사지死地의 일을 처리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재촉하시니 신이 지금 진무양을 데리고 떠나겠습니다.” 드디어 형가가 출발했다. 형가의 임무를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은 태 자와 함께 국경에 있는 역수까지 나가 형가를 배웅했다. 강가에서 도조 신道祖神에게 제사를 지낸 뒤, 고점리는 축을 타고 형가는 여기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형가가 슬픈 음색으로 노래를 부르니 듣는 사람들은 모 두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그 가사는 이러했다. 바람은 스산하고 역수는 차가워라. 장사가 한 번 가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네. 노래를 마치고 형가는 수레에 올라 떠났는데, 끝내 뒤를 돌아보지 않 았다.

뜻이 명확하고 그 뜻을 속이지 않았던 사람, 자객

진나라에 들어간 형가는 천금의 뇌물을 돌려 진나라 왕을 만나 볼 수 있게 되었다. 함양궁咸陽宮에서였다. 형가는 번오기의 머리가 든 함을 받들며 나아 가고, 진무양은 그 뒤에서 독항의 지도가 든 상자를 들고 따랐다. 그런 데 진무양은 얼굴빛이 새파랗게 변하더니 벌벌 떨고 있었다. 이에 진나 라의 여러 신하들이 의심하자 형가가 웃음을 띠며 사과했다. “북쪽 오랑캐 땅의 비천한 사람이라 일찍이 천자를 배알한 적이 없기 때문에 떨고 있는 것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그를 용서하시고 사신 의 임무를 마치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진나라 왕이 형가에게 말했다. "진무양이 가지고 있는 지도를 그대가 가져오시오.” 형가는 진무양의 지도를 넘겨받아 진나라 왕에게 올렸다. 진나라 왕 이 둘둘 말린 지도를 펴본 순간, 비수가 드러났다. 그러자 형가는 왼손 으로 진나라 왕의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비수를 잡아 진나라 왕을 찌 르려 했다. 그러나 비수가 몸에 닿기 전에 진나라 왕이 놀라 반사적으 로 물러서 소매만 베어져 떨어졌다. 진나라 왕이 칼을 빼고자 했으나 워낙 장검이라 칼을 빼내지 못하고 칼집만 잡았다. 형가가 진나라 왕을 쫓아가자, 진나라 왕은 기둥을 돌 며 달아났다. 여러 신하들은 경악했으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모두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그리고 진나라 법에 의하면, 전상殿上에 무기를 갖고 올라가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사형이었다. 그래서 호위 무장들은 무기를 잡고 있었 으나 감히 전상에 올라가지 못했다. 이와 달리 형가는 전상에서 진나라 왕을 쫓아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진나라 왕이 달아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좌우 신하들이 말 했다. "왕께서는 칼을 등에 지고 빼십시오!" 진나라 왕은 칼을 등에 지고 마침내 칼을 뽑아 형가를 내리쳐서 그의 왼쪽다리를 베었다. 형가는 쓰러지면서 비수를 진나라 왕에게 던졌다. 그러나 명중시키지 못하고 구리 기둥을 맞혔다. 그러자 진나라 왕은 다 시 형가를 쳐서 여덟 곳을 베었다. 형가는 체념한 듯 기둥에 기대어 웃 으며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진나라 왕을 꾸짖었다. “널 사로잡아, 각 제후국들이 빼앗긴 땅을 되돌려 받으려고 했는 이때 좌우의 신하들이 몰려와서 형가를 죽였다. 이 사건으로 진나라 왕은 연나라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여 사정없이 연나라를 치도록 하였 다. 열 달 만에 계성이 함락되니, 연나라 왕 희喜와 태자 단 등은 동쪽 요동으로 숨어 나올 생각을 안 했다. 결국 희가 단의 목을 베어 강화를 청했으나 진나라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 뒤 5년 만에 진나라는 마 침내 연나라를 멸망시키고 연나라 왕 희를 사로잡았으며, 그 다음해에 천하를 통일하고 칭호를 황제皇帝라고 하였다. 고점리는 날품팔이로 이 집 저 집 옮겨다니며 숨어살다가, 가난 속에 서 이렇게 살아보았자 끝이 없겠다 싶어 사람들 앞에 정체를 드러내고, 보따리에서 축을 꺼내 손님들 앞에서 축을 타기 시작했다. 진나라 시황 이 축 타는 솜씨가 빼어난 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고점리를 불러들였 다. 알고 보니, 고점리는 형가와 친분이 두터웠던 사이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시황은 고점리의 축 타는 솜씨를 아까워하여 용서하는 대신 소 경으로 만들었다. 그런 뒤 항상 고점리를 옆에 두고 축을 타게 했는데, 그때마다 시황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느 날 고점리는 축 속에 납덩어리를 감추어 두고는 시황이 불러주 기를 기다렸다. 고점리는 시황이 안심하고 귀를 기울일 때 갑자기 축을 들어 시황을 내리쳤으나 맞지 않았다. 결국 시황은 고점리를 죽였다. 이 일 때문에 시황은 죽을 때까지는 타국 출신의 사람을 다시는 곁에 두지 않았다. 노나라 장수 조말부터 형가, 고점리에 이르기까지 당시 활약한 자객 들은 그 의기대로 뜻을 이루기도, 혹은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노구천 은 형가가 진나라 왕을 찌르려다 실패한 이야기를 듣고 혼잣말로 이렇 게 말했다. "아아! 아깝구나, 그가 칼 쓰는 법을 계속해서 익히지 않은 것이. 내 가 너무나도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도다! 지난날 내가 그를 무시했을 때, 그는 속으로 나를 얼마나 비웃었을까." 형가를 비롯한 당시의 자객들은 뜻을 세움이 명확하였고, 자신들의 뜻을 바꾸지도 않았다. 그들의 이름이 후세에 전해지는 것이 어찌 망령 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소설보다 재미 있는 사기열전

지은이 : 사마천

편역자 :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