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ratitude transforms everyday life into a joyful journey, much like going on a picni c. Successful individuals, such as Hyundai founder Chung Ju-yung and Bill Gates, a ttribute their happiness and success to finding joy and thankfulness in their work, no matter how challenging. They approach each day with excitement, viewing their tasks as opportunities rather than burdens. Similarly, Brother Lawrence, a humble monastery cook, turned his kitchen into a "small heaven" by serving with gratitud e, which eventually led to his promotion to monastery leader despite his lack of for mal education.
The beauty of gratitude can also be found in the simple pleasures of life. Returning to Korea after 8 years in the U.S., the author reflects on newfound thankfulness for Korean food, natural landscapes, and the proximity of family. Unlike in the U.S., wh ere cultural and geographical limitations made life less vibrant, Korea's diverse sce nery, mountains, and traditional foods bring daily joy. The freedom to enjoy familia r dishes like kimchi and the opportunity to explore nature, such as hiking Mount Bu khan, offer a deep sense of gratitude.
Small pleasures, like riding a bicycle for daily commutes, evoke memories of youth and provide both physical and emotional benefits. Moreover, being close to family after years of separation abroad brings profound appreciation for shared moments and support.
Ultimately, gratitude is a mindset that transforms challenges into blessings and ord inary routines into extraordinary moments. Whether in work, relationships, or daily experiences, a thankful heart finds joy in the smallest details, turning life into a seri es of meaningful adventures.
겨울
감사는 사뿐히 내려앉는 맑은 눈꽃 같은 것
날마다 소풍 가는 삶
성공한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자신의 일을 소중히 여기고 열정과 도전으로 임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 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과 기쁨으로 일하 면서 어느 순간 일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일을 즐기는 그들은 날마다 설레는 마음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신의 일터로 향한다. 이제 고인이 된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은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날마다 회사를 출근할 때 소풍 가는 기분으로 나갑니다. 일 하러 나가는 것이 아니라 소풍 가는 날처럼 즐거운 마음과 희망을 가 지고 오늘 할 일을 그려 봅니다." 그러자 한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회장님, 골치 아픈 일이 잔뜩 쌓여 있는 날도 소풍 가듯 이 즐거운 마음으로 나갈 수 있습니까?" 정 회장의 대답은 걸작이었다. "나는 골치 아프고 힘든 일이 쌓여 있는 날은 그 일이 해결되었을 때의 기쁨을 떠올리며 회사로 출근합니다." 세계 최고 갑부 빌 게이츠 역시 비슷한 말을 남겼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일 일하러 가는 일이 즐겁고 감사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일터에는 항상 새로운 도전과 기회와 배울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일에 대한 열정과 감사가 있다. 꼭 그들이 회사 CEO이기 때문은 아니다. 자신의 일을 감사히 생각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아무리 하찮은 허드렛일이라도 행복하게 여기고, 결국 그 일로 성공하게 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은 꼭 높은 자리에 오르고, 돈을 많이 벌고, 권세를 얻는 것이 아니다. 일을 통해 행복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일을 감사하고 그 일을 즐기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 사람은 사람들의 사랑과 환영 그리고 인정을 받게 마련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부수적으로 따라오게 된다. 우리에게 브라더 로렌스로 더 많이 알려진 니콜라스 헤르만은 어 린 10대 시절 전쟁에 출전했다가 부상을 입어 다리를 절게 되는 불운을 겪었다. 그 후 여러 일을 전전하다가 나이 오십이 넘어 카르멜 수 도원의 주방 일을 맡게 되었다. 그는 비록 다리는 불편했지만 비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주방일 에 임했다. 음식을 정성스레 만들면서 부엌을 작은 천국이라고 생각 하면서 말이다. 또한 자신이 만든 식사를 수도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항상 감사했다. "하나님! 저의 부족한 요리 솜씨로 귀한 천사들을 섬길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리 하찮은 일도 사명감을 가지고 하면 소중한 일이 된다고 믿 은 그는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이고, 접시를 닦고, 부엌을 청소하는 일들이 수많은 교인들 앞에서 설교하는 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그리고 20여 년의 세월을 한결같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방 일을 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생겼다. 수도사들은 점차 그를 존경하게 되었 고, 나중에는 그를 수도원 원장 후보로까지 추천한 것이다. 평신도 수 도사는 원장 후보가 될 수 없는 것이 원칙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 다. 결국 그는 수도사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수도원 원장의 자리에 올 랐다. 사실 그에게 인간적으로 내세울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교육도 전혀 받지 못했고, 다리는 불구였으며, 가정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날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힘든 부엌일을 하면서도 밝 은 미소로 "나의 인생은 그저 감사하고 행복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감사와 행복으로 매순간 살 수 있었던 브라더 로렌스는 어 느날 국왕 루이 12세의 방문을 받았다. 수도원을 방문한 국왕은 그에 게 행복의 비결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행복의 비결은 섬기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일하면서 감사할 수 있는 삶은 날마다 소풍 가는 즐거운 인 생을 살게 된다. 시카고에서 지낼 때 가끔 나는 가족들과 함께 박물관 또는 미술관 을 관람하곤 했다. 그곳에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고, 전시회도 자주 열려 유명 화가들의 작 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미술관에서 피카소,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고흐, 고갱, 르느와르, 모네, 밀레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을 내 눈으 로 직접 보았을 때, 그 전율은 정말 대단했다. 그림을 볼 줄은 모르지만, 그림을 통해 느껴지는 감동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수많은 명화들 중에서도 나의 눈을 끈 그림은 역시 밀레의 '만종'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넓은 들판에 소박한 차 림의 농부 부부가 기도하고 있는 만종의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일과 삶을 결부시킬 때면 밀레의 '만종'을 떠올린다. 그림 속의 주인공들처럼 노동과 신앙이 하나 되어 있는 모습은 내가 꿈꾸는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밀레는 농촌 풍경과 일하는 농부만을 즐겨 그린 화가인데, 그의 모 든 작품 속에는 언제나 노동과 신앙이 잘 조화를 이루고, 겸손과 경건 함, 감사와 사랑이 잘 스며들어 있어, 보는 이 로 하여금 잔잔한 신앙 을 느끼게 해준다. '만종'에 묘사된 풍경은 마치 성경 속 보아스와 릇의 아름다운 사 랑을 연상하게 한다. 붉게 물든 저녁노을의 들녘에서 고단한 일손을 멈추고 조용히 기도하는 젊은 부부의 경건한 모습과 멀리 예배당 종 탑 사이로 퍼지는 낙조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저녁 예배 준비를 알리는 교회의 은은한 종소리가 작은 마을에 울 려 퍼지고, 종일토록 추수하던 젊은 부부가 일손을 멈추고 조용히 고 개 숙여 기도를 한다. "주여, 오늘 하루도 주님을 위하여 땀 흘려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 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들이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경건하게 머리 숙여 기도하는 장면을 떠올릴 때면 일터에서, 삶의 현장에서 진정으로 감사하는 자의 모 습이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의 일을 생각할 때, 날마다 소풍을 가는 듯 즐거운 마음으로 일터로 향하는 꿈을 꾼다. 비록 김밥과 음료수를 챙겨 놀러가는 소풍 은 아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소풍을 떠난다. 일이 놀이는 아니지만 놀이처럼 글과 씨름하고 책과 친구가 되어 종일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직장인들이 사무실에서 업무 시간 동안 일하다 휴식 시간에 커피를 마시듯이, 나도 부지런히 글을 쓰다 피곤에 지치면 오솔길을 따라 산책하며, 맑은 공기를 들이키면서 잠깐의 휴식을 즐긴다. 일찍이 막심 고리끼는 "일이 즐거우면 인생은 낙원이지만 일이 의 무가 되면 인생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감옥과 수도원의 생활은 겉으로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 만 안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삶이다. 거친 식사, 험한 잠자리, 열악한 환경 등 모두가 비슷한 것 같지만 죄수들은 불평과 요구로 하루가 지나가고, 수도사들은 감사와 찬양으로 하루가 지나간다. 동일한 원소인 탄소로 만들어진 석탄과 다이아몬드가 엄연히 다른 것처럼, 똑같은 환경에서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의 삶을 만드는 인생이 있는 반면, 다 타버린 쓸모없는 석탄재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인생도 있다. 결국 자신의 일을 가치 있고,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본인 자신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감사하며 사는 인생엔 더 많은 열매들이 풍성하게 맺힐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의 자리는 엉겅퀴와 가시만이 무 성하게 자랄 것이다. 나의 일터를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는 사람만이 일의 즐거움을 통 해 행복도 삶의 보람도 경험할 수 있다. 나의 기업의 지경을 넓히는 성공의 핵심 코드가 감사임을 잊지 말자.
나의 감사
북한산 자락의 감사 글방에 칩거하여 어눌한 글 한 줄 쓰다가 감사(느티)나무 바위에 걸터앉아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구름과 태양을 보고 까치들을 벗 삼아 오솔길을 걷는다. 이것만으로 나는 행복하고 충분한 감사할 수 있다
한국 생활에서 느끼는 감사
약 8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뒤 곰곰이 감사할 일들을 떠올려 보니, 감사할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세계 의 여러 곳을 다녀보았지만, 우리나라만큼 좁은 땅덩어리이면서도 산과 바다와 강을 골고루 갖춘 나라는 드물었다. 한국에서 생활하며 예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한 감사 제목들이 쏟아졌다.
우선, 첫번째는 음식에 대한 감사이다. 미국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냄새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때문에 외출할 시에는 항상 조심하면서 한국 음식을 자제하는 것이 나에게는 큰 고통이었다. 한국 음식을 먹은 날은 냄새 제거를 위해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일도 많았다. 잘 아는 친구 목사님은 김치 냄새 때문에 도서관에 들어가지 못하 는 황당한 일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음식 맛도 한국에서 먹 던 맛이 제대로 나지 않아 늘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 그나마 타국에 서 우리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으며 지냈다. 한번은 아이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집필을 위한 자료 수집 차 2주 가까이 미국 남부지방을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 기간 동안은 한국음식을 전혀 먹지 못했다. 나에게는 거의 고문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얼마나 고생했는지 여행 이후로 햄버거나 피자, 샌드위치를 보는 것 조차 힘들어할 정도였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살던 집을 내놓았을 때는 수개월 동안 집 에서 한국 음식을 아예 해 먹지도 못했다. 집에서 김치 냄새나 된장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날마다 커피를 끓여서 커피 향이 집안에 배도 록 해야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감사한 일은 우리나라의 구수하고 정겨운 음식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그 동안 냄새 때문에 잘 먹지 못했던 온갖 종류의 탕들을 실컷 먹을 수 있 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냄새가 진동하는 청국장을 끓여 먹 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저 신기하고 감사하기만 했다.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남의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 인가.
둘째는 자연에 대한 감사이다. 특별히 내가 살던 미국 일리노이 주의 시카고 지역은 고층 빌딩과 공원이 많고, 미시간 호수도 있어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힌다. 그렇지 만아쉬운 점은 산이 없다는 것이었다. 일리노이 주는 우리나라만한 땅덩어리이지만 남산 정도의 산은 고 사하고 아이들이 놀 만한 조그마한 뒷동산도 찾을 수 없다. 주 전체가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평지일 뿐이다. 그래서 답답할 때면 늘 동네 에 남산만한 산 하나만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으로 8년의 세 월을 지냈다. 그러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눈만 돌리면 사방에 산이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선 북한산이 보이고, 앞뒤에 이름 모 르는 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사방을 겹겹이 두르고 있다. 더군다나 나의 '감사 글방'은 북한산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라 산이 주는 위엄 앞에 그저 감탄하며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 가까운 친구 목사님 가정과 우리 부부가 함께 북한산을 등 정하였다. 상쾌한 공기에 향긋한 흙내음, 솔잎 사이에서 불어오는 실 바람이 이마와 가슴 사이로 스며들어, 모처럼 흘린 비지땀을 식혀 주 었다. 산을 오를수록 몸은 힘들었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정상에서 내 려다보는 서울의 도심은 생각보다 넓고 아름다웠다. 정상에 잠시 머 물러 있는 동안, 산은 나의 귓가에 바람 소리로 이렇게 전해 주는 듯 했다. '더 멀리 보고 온라인에 살아라. 너무 눈앞만 봤어. 그리고 정상은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제 막 사라지는 온라인에 워라.' 산이 내게 준 귀하 디귀한 선물이었다. 나는 산 위에서지만 세상에서 찌든 몸속의 노폐물을 말끔히 씻어 내고, 맑고 신선한 공기 가득 채워 내려왔다. 산에 올라 자연을 주 즐기다 보니 에머슨 시인의 시구가 불현듯 떠올랐다. "우리가 왔던 아름다운 꽃을 맛보고 고운 풀과 새들의 노래와 별들의 역사와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아름다운 것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맑은 시내와 푸른 하늘과 큰 웅덩이 사이 놀기 좋은 그늘과 상큼한 공기와 시원한 바람과 멋진 꽃을 타는 나무를 짙어 하 나님, 감사합니다."
셋째는 자전거다.
나는 주로 대중교통수단으로 이용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구입하는 것이 자전거였다 아침저녁으로 나는 이 모든 것이 출퇴근용으로 이용한다. 나의 서 재인 '감사 글방' 이라는 법은 2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자전거로는 5분이면 충분하다. 자동차를 이용해도 자전거보다는 빠르지 않다. 오히려 걸어서 가는 날보다도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시간이 더 걸릴 때 가 허다하다. 그래서 나는 추운 날이나, 눈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날은 도보나 자전거를 이용한다. 사실 한국에 돌아와서 1년이 넘도록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았다. 아 니 평생 구입하지 않을 생각까지 했다. 대중교통 수단도 너무 좋고, 집도 전철역 가까운 곳에 있어서 자동차의 필요를 그다지 느끼지 못 했다. 그런데 처남이 외국 생활을 오래한 동생네가 차 없이 사는 것이 안 쓰러워 보였는지 새 차로 바꾸면서 자신이 타던 차를 물려주어 부득이하게 차를 소유하게 되었다. 차를 받은 지는 몇 달 지났지만 아직 주행 거리는 고작 100Km도 안 됐다.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차는 자기를 이용해 주기만을 바라며 나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기다려라. 아이들 방학이 되면 국토 순례를 하면서 실컷 이용해 줄게.' 그만큼 나는 자전거를 애용한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여러 가 지 감사한 생각을 많이 했다. 시골에서 자전거를 타고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는데, 그 시절의 향수가 떠올라서 좋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10년은 더 젊어진 것 같아 좋다. 다리 근육도 청년 때처럼 굵어지고 튼실해졌고 건강도 좋아져 여러 모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비록 경치 좋은 곳을 구경하며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리는 것은 아니지만 서민들의 정겨운 삶이 묻어 있는 동네 골목길을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며 지나올 때면 시골의 고향 길을 지나는 것 같아 푸근 하기까지 하다. 마지막으로 한국 생활에서 감사하는 것은 부모님과 형제들을 자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으며 가장 마음에 걸렸던 점은 부모님을 자주 뵙지 못한 것이었다. 집안에 큰 일이 생겨도 형제들과 전화로만 의논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가장 안타까웠다. 아버지께서 협심증 수술을 하셨을 때, 장모님께서 고 관절 수술을 하셨을 때도 전화로만 안부를 확인할 수밖에 없어 마음의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뿐 아니라 장남으로서 명절 때 부모님을 찾아가 뵙지 못한다는 것 또한 한없이 죄송스러웠다. 그러다가 한국에 나와서 부모님과 형제들, 친지들을 자주 볼 수 있 고, 언제든 쉽게 연락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시골 에 사시는 부모님은 우리 가족이 한국에 나온 이후로 서울 나들이가 빈번 해지셨다. 그것도 계절별로 농사지은 것들을 싸 가지고 몇 번을 다녀가셨다.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 하시는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그저 감복할 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옆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는 외국에 살아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사이다. 누님과 형제 네 식구들이 인사 동에서 음식점을 하고 있는데, 가끔씩 씻고 차를 갖고 함께 지내다 오면 이것이 행복하고 감사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주변에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은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살면서 느끼는 특별한 감사의 제목이다. 이 땅에 살면서, 나만이 누릴 수 있는 감사 거리를 찾고 있으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이다. 한국이라는 아름다운 나라에 한국인으로 살 아가는 것만으로도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만한 감사 거리가 생긴다.
One's whole life in appreciation
전광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