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ratitude is a transformative practice that elevates the soul and deepens faith. Stor ies from history and scripture highlight the profound impact of thankfulness. For ex ample, Spencer, who saved 17 lives from a shipwreck, was only thanked by one per son, illustrating how rare true gratitude is. Similarly, in the Bible, Jesus healed ten l epers, but only one, a Samaritan, returned to thank Him. This Samaritan received n ot only physical healing but also spiritual salvation, showing that gratitude is roote d in humility and a heart attuned to grace.
Gratitude can be understood in three dimensions: the first is conditional gratitude (thanking for good outcomes), the second is comparative gratitude (thanking base d on having more than others), and the highest, third dimension is unconditional g ratitude-being thankful "in spite of" difficulties. Figures like William Carey, who th anked God even after losing years of translation work to a fire, exemplify this ultim ate form of gratitude, finding blessings even in adversity.
David, described as a man after God's own heart, is a prime example of "all-weathe r gratitude." He thanked God in every circumstance, from the fields as a shepherd t o the throne as Israel's king. Even in hardship, he wrote psalms of thanksgiving, rec ognizing he was but a humble servant of God's grace. David's gratitude stemmed fr om his deep humility and constant remembrance of God's blessings, enabling him to give thanks in all situations.
Gratitude transforms challenges into opportunities for growth and aligns our heart s with God. It is not about what we lack but about appreciating what remains. By c ultivating gratitude like the Samaritan, Carey, or David, we elevate our faith, widen our perspective, and experience the profound joy of living in God's grace.
아홉 명은 어디에
1860년 9월, 미국의 미시간 호수에서 유람선 한 척이 암초에 부딪 쳐 침몰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배에 타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배의 침몰과 함께 호수에 빠져 죽 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대학 수영 선수였던 스펜서가 있는 힘을 다해 17명의 생명을 구출해 낸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연일 매스컴에서 는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사람들을 구한 그의 영웅적인 행동을 대서특필하였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토레이 박사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집회를 하게 되었다. 토레이 박사는 설교 중, 오래 전 미시간 호수에 서 있었던 배의 침몰 사고를 이야기하면서 그때 여러 사람을 구출했 던 젊은 수영 선수 스펜서의 용기와 희생정신을 크게 칭찬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스펜서가 노인이 되어 토레이 박사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토레이 박사는 설교가 끝난 뒤에 스펜서가 집회에 참 석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스펜서를 만난 토레이 박사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질문을 했다. 까?" "그 당시 목숨을 구해 준 17명 중 몇 명이나 감사를 표시했습니까? 스펜서는 가볍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꼭 한 사람이요. 그것도 어린 소녀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그 소 녀는 지금까지도 크리스마스 때면 어김없이 저에게 감사 카드와 선물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이에게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 만 씁쓸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감사를 까맣게 잊은 채 살아가 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이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감사할 줄 모르는 이들이 있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는 길에 문둥 병자 열 명을 만나 셨다. 그 당시 문둥병 환자들은 부정한 자들로 여겨졌기 때문에, 자기 옷 을 찢고, 머리털을 풀고, 사람들이 가까이 오면 손으로 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큰 소리로 외쳐야 했다. 그만큼 일반인들과 완전히 격리되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사는 이들이었다. 그런 문둥병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자신들의 병을 고쳐 주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의 바람대로 병을 고쳐 주시기 위해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하셨다.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고 하신 것 은 제사장이 문둥 병자를 진찰한 후 깨끗하면 정결 예식을 거쳐서 공 동체 안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그들의 병이 나음 것을 이미 전제하신 행동이었다. 문둥병자들은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사장에게 자신의 몸을 보이러 갔다. 그런데 가는 도중 그들은 자신들의 병이 이미 나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기뻐했다. 그런데 그들 중 아홉은 병이 낫자 기뻐서 제사장에게 달려갔고, 한 사람만 가던 길을 멈추고 예수님께로 돌아와 감사를 드렸다. 그는 이방 사람인 사마리아 사람이었는데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리어 감사했다" 눅 17:16. 자신의 몸을 낮추어서, 아니 엎드려서 무릎을 꿇고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예수님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온 사마리아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리고 주님은 감사하는 이방인을 기뻐하시며 말씀하셨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눅 17:19. 결국 이스라엘 사람 아홉은 육신의 질병 치료로 끝났지만 예수께 감사하는 사마리아 사람은 영혼의 구원까지 선물로 받게 되었다. 똑같은 은혜를 입었는데 어떻게 이스라엘인과 사마리아인이 이렇 게 다를 수 있을까? 여기에 감사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은 이스라엘인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소외당하 던 둘이었다. 가장 낮은 연결 있는 사람, 마음이 빈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땅에 있으면 감사할 길이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병 고침을 받은 사마리아인은 며칠음에 달려가 예수께 감사를 드렸다. 우리는 흔히 실패하거나, 경제적 형편이 어려울 때, '사업에 성공하고, 잘나가는 사람들이나 감사하지, 나같이 안 풀리는 사람이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지!'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잘되고 성공한 사람들이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빈 사람이 감사하는 것이다. 부자가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겸손한 사람이 감사하는 것이다. 감사는 겸손한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정말 내가 아니다. 살아있는 동안 잠시 쉴 새 없이 쓰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이렇게 진정으로 감사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는 늘 어려 운 일에 부딪치면 평생 주님만 믿고 따르겠다며 도와달라고 간청하 다가 막상 일이 잘 풀리면 그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예전 생활로 돌아가 감사를 잊어버리게 된다. 그런 우리의 모습은 아홉 명의 이스라엘인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 다. 10대 1의 경쟁을 뚫고 입시나 직장에 합격을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아홉 사람 중에 속하기는 쉬워도, 한 사람에 속하기는 하늘의 별 따 기이다. 그것은 신앙 생활을 오래 한 사람도, 교회의 직분자도, 목사나 선교사도 예외일 수 없다. 감사 생활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기적의 주인공이 아니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은혜 사이, 축복과 축복 사이에는 감사의 사다리 가 놓여 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계속 누리기 위해서는 대나무가 매듭을 지으며 자라가듯 감사의 매듭을 지으며 사는 삶이 필요하다. 그래야 갑절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
3차원 감사
감사에도 수준이 있다.
1차원적인 감사는 조건부(If) 감사이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되거나 더 많이 갖게 되면 감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항상 자신이 갖지 못한 것만을 불평하는 어린 아이 수준의 감사일뿐이다. 2차원적인 감사는 무엇을 받았기 때문에(Because) 받은 것 중에 일부를 드리는 감사다. 상대방과 비교하되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비 교하여 자신이 받은 것을 감사하는 단계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 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3차원적인 감사는 불행을 당해도, 힘들고 어려워도, 일이 안 되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감사하는 수준으로,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람이다. 어떤 청년이 더운 여름날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한참을 걸어서 도날드 가게로 갔다. 그는 햄버거 하나를 사서 밖으로 나와 야외 시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며 먹고 있었다. 이때 자동차 한 대가 햄버거 가게 앞에 멈추더니 한 여자가 내려서 햄버거를 사서 자동차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젊은 청년은 부러운 눈길로 그 남자를 쳐다보며 생각 했다. 나도 옆에서 챙겨 주는 비서가 있어서 저렇게 자동차 안에서 햄버거를 편히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자동차 안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던 남자는 벤치에 앉아 햄버거를 먹는 청년을 부러운 듯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저 청년처럼 다리가 건강해서 햄버거를 사먹으러 집에서 이 곳까지 걸어 올 수 있다면, 그리고 벤치에 앉아 맑은 공기를 마시며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처럼 자기에게 없는 것, 자신이 갖지 못한 것만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인생을 사는 사람은 불행하다. 이런 사람들은 1차원 적인 수준의 사람이다. 1차원적인 단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행복을 저울질한다. 자신에게 있는 것은 보지 못하고, 항상 어린아이처럼 남의 손에 들여 있는 장난감을 바라보며 불행을 느낀다. 소형차를 타고 다니면 중 천차 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중형차를 타게 되면 고급 세단을 타 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게 되며, 고급 대형차를 타면 이제는 외제차 타 는 사람들이 부럽다. 이렇게 욕심은 끝이 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은 전혀 생기질 않는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열심히 돈을 모아 좋은 아파트를 장만 했는데 얼마 뒤 친한 친구가 자기보다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사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비교 의식 때문에 열등감을 갖게 되고 상대적 빈곤감 때 문에 속상해 한다. 우리는 잠시 자신의 손아귀에 쥐어 있는 것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감사하다가도 상대가 나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진 것을 알게 된 순간. 감사와 행복은 사라져 버린다. 이런 1차원적인 수준의 사람보다 조금 나은 감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보다 못한 사람, 나보다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과 비교 하면서 만족감과 감사를 찾는 사람들이다. 걸어 다니는 사람은 병원에 누워 있는 사람을 보면서, 차가 있는 사 람은 차 없이 걸어 다니는 사람을 보면서, 외제차를 모는 사람은 그보다 못한 차를 타는 사람들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본인이 더 누리고 있는 것을 감사한다. 2차원적인 감사를 하는 이들 중에도 단순히 남과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일뿐이다. 물론 하나님은 받 온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사람들을 기뻐한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더 높은 단계의 감사로 발전하길 원한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더 높은 단계의 감사, 즉 3차원적인 감사는 어 떤 것일까. 그것은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단계로, 어렵고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것이다. 조건부의 감사가 아니 라 조건을 뛰어넘는 감사이다. 비록 인간적으로 볼 때는 받은 것이 없고, 오히려 어려운 일들이 계 속되고, 심지어 모든 것을 잃어도 감사하는 것이다. 영국에서 구두를 만들던 가난한 소년이 있었다. 이 소년은 구두를 만들면서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를 혼자 공부했고, 교회 생활도 열 심히 했다. 훗날 이 소년은 선교사가 되어 인도로 떠났는데, 그가 바로 현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캐리다. 선교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그 시절, 윌리엄 캐리는 선교의 비전을 가슴에 품고 이렇게 외쳤다.는 것을 감사한다 2차원적인 감사를 하는 이들 중에도 단순히 남과 비교하지 않고 여러 겹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정도가 있다. 그것까지도 받는 것에 대한 감사일뿐이다. 물론 그 반은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사람들을 기뻐한다. 무장은 우리가 더 높은 단계의 감사로 발전하길 원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더 높은 단계의 감사, 즉 3차원적인 감사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단계로, 발생하는 힘든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것이다. 조건부의 감사가 아니 라 포르투칼어로 지는 감사이다. 비록 인간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에테르화된 일들이 계 속되고, 심지어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도 감사하는 것이다. 영국에서 구두를 만들던 빈 소년이 있었다. 이 소년은 구두를 만들면서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를 혼자 공부했고, 교회 생활도 열 심히 했다. 훗날 이 소년은 선교사가 되어 인도로 떠났는데, 그가 바로 현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캐리다. 선교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그 시절, 윌리엄 캐리는 선교의 비전을 가슴에 품고 이렇게 외쳤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그는 인도에서 인도어를 공부하여 영인 사전을 편찬하였고, 8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인도 성경을 번역하였다. 성경을 출판하기 위해 인쇄기를 도입하고 기술자들을 불러 모든 작업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캐리가 지방 순 회전도를 나간 사이 화재가 발생해 인쇄기 와 성경 번역 원고가 몽땅 불타버렸다. 큰 좌절과 절망이 물밀 듯 밀 려왔지만, 캐리는 주저앉지 않았다. 그는 잿더미 위에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번역이 부족한 것을 아시고 완전하게 다시 번역할 기회를 주신 것으로 알고 다시 시작하겠습니 다. 제게 믿음과 인내와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다시 번역 작업을 시작하여 드디어 1801년 벵갈어 성경을 시작으로 평생 24종의 인도 방언으로 성경을 번역·출판했다. 윌리엄 캐리의 감사처럼 문제 앞에 굴복하지 않고, 그 문제 자체를 감사의 조건으로 삼는 것이 3차원적인 감사라 할 수 있다. 이런 감사를 하는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 이고 감사의 조건을 찾는다. 나의 감사의 수준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감사의 수준을 높여 보 자. 믿음의 수준도 더불어 올라가리라.
[감사란 참 아이러니컬한 것이다. 정말 감사해야 될 사람들은 감사할 줄 모르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작은 것에도 감사하니 말이다.]
전천후 감사
성경 인물 가운데 최고의 감사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구약에서는 다윗, 신약에서는 바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중에서도 한 사람 만 선택하라면 나는 다윗의 손을 들어 줄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다윗의 감사가 가장 많이 나오기도 하고 그의 삶을 보아도 모든 상황에서 감사하는 자세로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윗의 감사를 '전천후 감사'라고 말하고 싶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날이 춥거나 덥거나, 어떤 기상 조건에도 상관하지 않는 전 천후의 의미처럼 그의 감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넘쳤기 때 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윗의 고통스런 삶보다는 그가 누렸던 풍요와 평안의 삶을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 당연히 그가 감사의 노래를 많이 부를 나란히 못하고 생 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솔로몬만큼 엎드려과 역경의 세월을 많이 보낸 인 물도 흔치 않다. 이새의 막내아들이었던 솔로몬은 여러 형들에게 시달리며 들판에서 양 치고 살았다. 사무엘 선지자가 찾아오는 것은 막 양 지 키는 목동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무엘 선지자의 기름부를 받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피택되는 순간 인생은 역전되었다. 하지만 솔로몬은 왕 위에 오르기까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그는 찔심에 굴복하여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을 방문한 아둘람 군과 황무지 숲 속은 물론 이웃나라에까지 피신하며 도망자로 살았다. 자신이 궁금해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 실성한 사람 흉내까지 내며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쉽게 했다. 왕이 된 후에는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휩쓸어 오랫동안 아들에게 쫓다 다녔다 이런 극심한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솔로몬은 자신을 다스리며 날마 다 기도와 감사로 하나님의 의지했다. 솔로몬이 사울 왕을 찾아 아둘람 군 속에 숨어 지낼 눈물 지은 시들을 보면, 그가 가장 중요한 경우도 주옥 같은 감사의 시들을 써서 올렸음을 알 수 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인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36:1.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인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36:2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 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 송축할지어다" 시 100:4.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 에 알게 할지어다" 시 105:1
"주여 내가 만민 중에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 주를 찬 송하리이다" 시 57:9.
하나님으로부터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최고의 열을 먹었던 새우이 어떤 상황에서도 전천후 감사를 드릴 수 있었고 비 결은 그의 마음 자세에 있었음을 보아라. 새우는 어떤 열매도 맺히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생각하고 한없이 빗진 마음으로 모든 곳에 감사하는 마음자세에 있었음을 보아라. 새우는 시설을 자신의 삶 속에 내드렸다. 그는 왕이 된 후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며 자신의 개인적인 되돌아보면서, 자신은 비천한 집안의 일개 목동에 불과하며 하나님의 종으로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윗 왕이 보리 앞에 들어가 교류 가로되 주 보리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삼하 7:18.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시 116:16.
"나는 주의 종이오니 깨달음 하사 주의 증거를 알게 하소서"시 119:125.
노예는 부족한 목동인 자신을 부르시고, 기름 부으시고, 왕으로 삼으시고, 백향목 왕궁에 거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호와께서 내게 긍휼을 베푸사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나의 서원을 موس여호화께 갚으리로다" 시 116:12, 14.
사람에게 가장 큰 저주는 '목마름'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메마름'이다.
다윗은 끊임없이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내게 주신 은혜를 어떻게 보답할꼬, 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었다. 고난의 때에는 불평 하고 형통할 때에는 교만한 것이 인간의 마음인데, 다윗은 형통의 때 에도 이 모든 일을 이루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했다.
다윗의 마음속에 법궤가 떠오른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에서 비롯되었다. 훗날 성전 건축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내어 놓은 것도 마찬가지다. 다윗이 왕으로 즉위했을 때까지만 해도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는 시골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담 집에 방치되어 있었다. 이것은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었음을 뜻했다. 다윗은 법궤가 예루살렘 성으로 옮겨질 때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였다. 왕이지만 너무 기뻐서 체면불구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다윗 은 법궤가 들어오는 것을 기뻐하여 정신없이 춤을 추다 바지춤이 홀 러내리는 것도 몰랐다. 옷도 왕복을 벗어 던지고 평민들이 입는 베옷을 걸쳤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취한 다윗의 마음 자세였다. 인간적인 신분을 모두 내려놓고 어린아이처럼, 아니 종처럼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만 기뻐하고 감사하는 다윗의 마음이 전천후 감사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자신을 종이라고 생각하고 한없이 낮아진 사람에게 감사하지 못할 일이 있을까? 나를 위해 생명을 주신 주님을 위해서 감사하지 못할 일이 있을까? 다윗은 감사의 절대 기준을 왕의 신분에서 종의 위치로 끌어내려, 지혜롭게 감사의 방법을 몸에 익혔다. 그래서 그는 감사의 용량을 무한대로 넓혀 전천후 감사의 사람이 되었다. 큰 고난과 시련을 이겨낸 사람일수록 어지간한 어려움이나 고통에 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작은 일에 감사하는 지혜를 발휘한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란 보배로운 별명을 얻게 된 다윗의 전천 후 감사, 우리 모두 본받아야 할 인생의 지혜가 아닐까?
감사하는 사람은 남아 있는 것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자다.
One's whole life in appreciation
전광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