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ratitude is a powerful virtue that transforms lives and aligns us with God's will. We often overlook the many people who have supported us, including parents, mentor s, and God, who deserves our ultimate gratitude. Stories of faithful individuals illus trate the transformative power of gratitude. A church elder, mistakenly announced as pledging a higher donation, reflected on his blessings and willingly gave, realizin g his life was a "300-unit" gratitude life. Similarly, Henry Ford, upon a newspaper er ror exaggerating his donation, embraced it as God's will and donated generously.
The Bible teaches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1 Thess. 5:18). This is evident in figures like Daniel, whose unwavering faith led him to thank God even when it ris ked his life in the lion's den, and God delivered him. Gratitude, even in trials, reveal s trust in God's sovereign plan. A woman who prayed in gratitude for her husband, despite his flaws, witnessed a miraculous transformation in him. Rabbi Akiva's than kfulness, even when he lost his belongings, saved his life from bandits, demonstrati ng God's unseen protection.
Gratitude is not limited to positive situations; it requires maturity to thank God duri ng hardships. It is a forward-looking "front drum" practice, trusting in God's plan b efore understanding the outcome. True gratitude transcends circumstances, fosteri ng humility in success and resilience in failure. Gratitude transforms trials into bles sings, aligns us with God's will, and opens the way for miracles. By cultivating gratit ude, we not only honor God but also experience peace, joy, and purpose in life.
감사할 대상을 찾아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래서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면 감사해야 할 분들이 너무 많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신 부모님으로부터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기까지 알게 모르게 도와주시고 이끌어 주신 분들을 생각하면 감사해야 할 분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도 우리의 감사를 제일 먼저 받아야 할 분은 단연 하나님이 시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주님께 감사기도를 올리고 감사 헌금도 드린다. 언젠가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감사 헌금에 얽힌 한 장로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목사님의 교회에서는 매년 절기가 돌아오면 교인들에게 미리 봉투를 나눠 주고 작정 헌금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것을 예배 시간에 목사님이 꼭 발표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목사님이 예배 시간에 차례대로 이름을 호명하다 작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한 장로님이 작정한 헌금 액수를 발표하는데, 그만 30만 원 작정현 금을 300만 원을 작정헌금 하셨습니다." 해버린 것이다. 장로님은 깜짝 놀라며 당황해 했다. 그러나 아무 말 하지 않고 나중 에 발표된 300만 원을 기꺼이 헌금했다. 얼마 뒤 목사님은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후 장로님을 만나서 미안 하다며 사과를 했다. 그러자 장로님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 셨다는 것이다. “목사님, 저는 제가 30만 원짜리 감사 인생인 줄 알고 30만 원만 헌 금하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목사님의 입을 통해 300만 원짜리 감사 인생이라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사실 주일에 30만 원의 10배인 300만 원 작정헌금 발표를 듣고 몹시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하나님께 그 문제를 내어 놓고 많은 기도를 드렸 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지난날들을 헤아려 보니, 제 인생은 목사님께서 강대 상에서 발표하신 대로 30만 원짜리 감사 인생이 아니라 300만 원짜리 감사 인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진짜 300만 원짜리 감사 인생이 되기 위해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결국 감사의 크기는 깨달음의 크기이고, 감사는 은혜를 깨닫는 데 서 출발하는 것이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예수님도 말씀 하셨는데,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큰 재물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은혜 를 깨닫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미국을 세운 청교도들은 재물에 대해 두 가지 책임을 강조했다. 첫째는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할 책임이고, 둘째는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어야 할 책임이었다. 그래서 청교도가 세운 나라인 미국에서는 부 를 사회에 환원하는 기부 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다. 빌 게이츠, 워렌 버핏, 카네기, 록펠러, 존 워너메이커, 헨리 포드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돈만 많이 번 부자들이 아니라 나누는 일에도 부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재물을 얻게 해준 시민들 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지역의 복지시설인 도서관, 학교, 교회, 고 아원, 양로원, 병원 등을 지어 보답하였다. 한번은 자동차 왕인 헨리 포드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을 방문 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에 한 고아원을 방문했는데, 고아 원생들을 위해 강당을 지어 줄 것을 약속하고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2천 파운드를 기부하기로 약정하였다. 그런데 다음 날 그 지역 신문에 헨리 포드의 기부에 대한 머리기사 가 뜻밖에도 이러한 내용으로 실리고 말았다. "헨리 포드 회장이 고아원을 위해서 20,000파운드를 기부하기로 약속하다." 2천 파운드가 2만 파운드로 잘못 기재되어 나온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안 고아원 측에서는 바로 포드 회장을 찾아와 정중히 사과했다. 그 리고 신문사에 정정기사를 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헨리 포드가 미 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냥 두십시오. 모두 하나님의 뜻 아니겠습니까? 신문 기사에 실 린 대로 20,000파운드를 내겠습니다. 대신 고아원 강당이 완공되면 강당 입구에 이런 글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헨리 포드의 뜻이 아니 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 지어진 강당' 이라고요." 문득 나는 진정 감사해야 할 분들에게 감사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 이 들었다. 동시에 내가 감사해야 할 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 다.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은 많은 분들의 수고와 희생과 가르침 덕 분인데, 그분들의 은혜에 감사해야 함을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살지 않았나 싶다. 나에게는 좋은 인생 스승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이 자리까지 '4' 라는 사람이 있게끔 이끌어 주신 은사이자 멘토이신 홍정길 목사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홍 목사님 밑에서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은 신학대학원 1학년 때부터였다. 그때는 결혼한 지 한 달도 채 안 되었기 때문에 신대원 생활과 결혼 생활, 그리고 목회자로서의 생활이 모두 초년생이었다. 힘들다면 힘들 수도 있는 시기였는데, 내가 지칠 때마다 힘이 되어 주 신분이 바로 홍 목사님이셨다. 다른 교회에 비해 전도사 사례도 후했고, 학비도 전액 지원해 주셨 다. 더군다나 교회 신문을 만들 수 있도록 기회도 주셔서 출판, 편집 일에도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지금 이렇게 책을 쓰는 사람으로 서게 된 것도 모두 그 시절의 경험들이 발판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내가 처음 맡은 사역은 청소년 사역이었는데, 그 일을 시작한 지 5 년째 되었을 때,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고픈 열정이 마음 에 불일 듯 일어나 책 출판을 생각하게 되었다. 여러 선배 목사님들께 이런저런 조언도 구하고 의논도 드렸지만. 어떤 분도 긍정적으로 답해 주시는 분이 안계셨다. 모두들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을 때, 나는 망설임 끝에 홍 목사님을 뵙기로 결정했다. 비록 부족하고 허점투성이인 글이긴 하지만 내순 수한 열정과 꿈이 담긴 원고를 들고 홍 목사님께 출판을 의논드렸을 때의 두근거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홍 목사님마저 회의적으로 생각하신다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하 지?' 하는 걱정도 앞섰다. 무명의 청소년 사역자의 글을 누가 읽어 주 겠는가, 하는 소극적인 마음이 불현듯 들기도 했다. 목사님께 조심스럽게 원고를 내밀며 떠듬떠듬 출판에 대한 말씀을 드린 후 홍 목사님의 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홍 목사님의 반응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전광 형제, 한번 부딪혀 봐. 전광 형제는 청소년 사역에 남다른 열 정이 있으니, 틀림없이 이 책이 귀하게 쓰임 받을 거야." 홍 목사님은 흔쾌히 출판을 권하시면서 추천사까지 써 주시겠다고 하셨다. 목사님의 격려에 힘입은 나는 큰 용기를 얻어 출판사 문을 두 드릴 수 있었다. 그 후로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 서게 될 때나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꼭 홍 목사님을 찾아갔다. 한번은 강도사 시절, 갑자기 뉴질랜드 이민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달음에 달려가 홍 목사님께 의논을 드렸다. 목사님 은 내 계획을 찬찬히 들어보시더니 조심스럽게 말씀을 꺼내셨다. '전광 형제, 혹시 상황이 변해 이민을 못 갈 수도 있으니 아무에게 도 알리지 말고 신중하게 준비하는 게 좋겠네." 나는 무슨 일이 생기겠나 싶어 이민 갈 것을 확신하고 모든 준비를 끝내 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이민자들이 몰리는 바람에 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부끄럽기도 하고 뵐 면 목도 없었지만 다시 홍 목사님을 찾아갔다. 이민을 못 가게 된 자초 지정을 말씀드렸더니 목사님께서 한마디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었다. "그래, 그러면 그 일은 없던 것으로 하고 나와 함께 여기서 일하는 게 어떻겠나?" 두 말 없이 철없는 나를 다시 받아주시는 홍 목사님이 눈물겹도 록 감사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남서울교회에서 전임 사역을 하게 되었다. 그 뒤 나는 홍 목사님의 소개로 시카고에서 목회를 하게 되었고, 목사님이 코스타 집회 인도 차 미국에 오실 때면 늘 찾아 뵙고 교제를 나누었다. 한번은 시카고 우리 집에 들르신 홍 목사님께 신중히 앞으 로의 진로 방향을 의논드렸다. 그때 홍 목사님께서는 정말 의미심장한 말씀을 해 주셨다. "한국교회에는 목회자는 많은데 좋은 글로 한국교회를 섬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나는 전 목사가 글로 한국교회를 섬겼으면 좋겠 어." 그러시면서 목사님은 나의 손을 꼭 붙잡고 이렇게 기도하셨다. "하나님, 전광 형제를 필립 얀시와 같은 저술가로 사용해 주옵소 서. 그의 글로 한국교회와 성도들을 섬길 수 있도록 축복해 주옵소서." 홍 목사님의 축복기도 후에 나는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 컨을 저술하게 되었고, 넘치는 독자들의 사랑으로 지금까지 행복한 글쓰기를 해 오고 있다. 홍 목사님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시며 나의 글 쓰는 일에 늘 지원 사격을 해 주신다. 그 다음 책인 성경이 만든 사람 백화점 왕 워너메이 커의 책 제목도 홍 목사님이 직접 지어 주셨으며 책에 대한 여러 가 지 아이디어도 제공해 주셔서 부족한 글이 좀 더 알차게 거듭날 수 있었다. 나는 홍 목사님을 생각할 때마다 '가족'이라는 두 글자가 떠오른 다. 가족은 모든 것을 함께 한다. 가족은 사정에 따라 멀리 떨어져 있 어도 가족이다. 가족 중에는 똑똑한 자식도 있고 못난 자식도 있고, 건강한 자식도 있고 몸이 불편한 자식도 있다. 그렇지만 한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이듯 지난 18년의 세월을 목사님과 함께 했다. 좋은 은사를 만나 귀한 목회를 배우고, 친형제와도 같은 동역자들 과 함께 너무 많은 혜택을 누리며 행복한 인생을 지나온 것이 그저 감 사하기만 하다. 홍 목사님을 통해 너무 많은 것을 받고 누렸는데 아무것도 보답하 지 못하는 것이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받은 사랑 을 온전히 다 갚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만큼 내가 받은 사랑이 크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보답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 으로 나의 남은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리라. 그리고 홍 목사님 과 같이 후배들을 이끌어 주고 그들 인생의 멘토가 된다면 그분께 조 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 되리라.
[하루에도 수백만 가지의 기적이 일어나지만 그 기적을 기적으로 믿는 사람에게만 기적이 된다.
-로버트 슐러]
벼랑 끝 감사
다니엘의 감사는 평안할 때 한가로이 드린 감사가 아니라 생명 의 위협 속에서 목숨을 담보로 드린 감사였다. 그는 어린 나이에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나라 없는 설움과 가족들 과 헤어지는 아픔을 겪었으며, 고난과 피눈물로 인생을 출발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않고 꿋꿋 하고 의젓하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갔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 안에서 일찍 뜻을 정하였고, 세상의 달 콤한 유혹이 자신을 넘어뜨리려고 할 때마다 믿음으로 위기를 이겨 낸 멋진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다니엘의 감사는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꿈 해몽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왕은 꿈을 꾸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꿈은 기억나지 않 고 마음에 번민이 가득하였다. 왕은 술객들을 불러 엄명을 내렸다. "내가 꾼 꿈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그것을 해몽해 보거라. 그렇지 않으면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박사들과 술객들 모두 왕이 꾼 꿈과 해몽을 알지 못해 죽게 될 위 기에 처했을 때 다니엘이 나타나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을 그가 어린 시절 뜻을 정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를 기뻐하셨고 '은총 받은 자'로 인생을 살도록 하셨다. 그가 하나님께 왕의 꿈을 해몽 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을 때, 하나님은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지혜뿐 만 아니라 세상을 이길 능력도 허락해 주셨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드 렸다. "나의 열조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 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바 일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단 2:23. 다니엘은 이 일로 왕의 총애를 받게 되었고, 승승장구하여 먼 훗날 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물론 그의 삶의 대부분은 신앙 안에서 평탄한 인생이었지만 왕과 정권이 바뀔 때 만나는 위기도 여러 차례 있었다. 바벨론 시대가 지나 가고 페르시아 시대로 정권이 바뀌면서 다리오가 왕이 되었을 때 그 는 인생에서 최대의 성공과 위기를 함께 맞이했다. 다리오 왕은 전국을 120도로 나누어 방백 120명과, 그 위에 총리 셋을 두어 나라를 다스렸다. 왕은 지혜롭고 민첩한 다니엘을 총리 가운데도 가장 총애하여 선 임 총리로 임명하였다. 그런데 나머지 총리 둘과 방백들이 시기 질투하여 그를 내쫓으려 고 갖은 음모를 꾸몄다. 그들은 다니엘의 윤리적인 면과 경제적인 면에서 허물을 발견하고 자 은밀히 내사를 벌였다. 혹시 여자와의 스캔들 문제는 없는지, 자신 의 직위를 이용해 남몰래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 축적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샅샅이 뒷조사를 실시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없다는데 그는 아무리 털어도 먼지 한 톨 나오질 않았다. 오히려 털면 털수록 그의 깨끗하고 정직한 이미 지만 부각될 뿐이었다. 그들은 청렴결백한 다니엘을 흠잡을 데가 없자 다른 각도에서 그 를 올무에 빠트릴 계략을 시도했다. 그것은 종교적인 면으로 접근해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을 모함의 도구로 삼는 것이었다. 앞으로 30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그 사람 을 사자 굴에 던져 넣는 계략이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날마다 세 번 씩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는 다니엘을 올무에 빠트릴 유일한 덫이라 기뻐하며 왕의 어인을 받아냈다. 왕은 충성스러운 신하를 죽이려는 간신들의 음모인 줄도 모르고 그저 자신을 신격화 시키려는 법령으로 착각하고 어인을 찍었다. 결국 다니엘은 그들의 중상모략과 음모에 걸려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면 사자 굴속에 던져질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법령은 이미 공포되었고, 30일 동안 창문을 닫고 몰래 숨어서 기도 하거나 아니면 30일 동안만 잠시 기도를 멈추면 그들의 계획을 수포 로 돌릴 수도 있었을 텐데, 다니엘은 그리하지 않았다. 계략을 꾸민 간신들도 그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향한 다니엘의 믿음을 일찍이 간파하고 있었고, 그가 결 코 하나님을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의 예상대로 다니엘은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평소대로 기도 하였다. 그것도 그냥 기도가 아니라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죽음이 엄습해 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 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 더라"단 6:10. 다니엘은 기도하면 죽는 것을 알았다. 그는 감사하면 죽는 것도 알 았다. 사자의 밥이 되어 온 몸이 갈기갈기 찢겨질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끝까지 기도했고, 끝까지 감사했다. 살얼음판을 걷 는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그의 감사기도는 입술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 놓고 감사하는 다니엘의 순교적 감사야말로 감사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니엘은 끝까지 굴하지 않고 감사하며 기도한 일로 사자 굴속에 던져졌다. 그러나 하나님은 배고픈 사자의 입을 막았고, 그를 살려 사자 굴속으로부터 건지셨다. 대신 그를 죽이려고 음모의 덫을 놓았 던 사람들은 사자의 밥이 되도록 했다. 결국 죽음 앞에서도 평생 감사를 드린 다니엘은 다리오 왕과 고레 스왕 시대까지 형통을 누리는 축복의 사람이 되었다. 이처럼 다니엘은 우리에게, 기도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고, 깨끗하고 정결하게 사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으며, 늘 변함없이 감사하는 사람만이 위기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가장 깊은 감사는 고난을 통과한 사람의 감사다.]
해변 거하시는 두 아들은 천국 이에요, 다른 하나는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가을
감사는 톡 터질 것 같은 열매의 풍성함 같은 것
앞 북을 쳐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 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범사 감사'가 무엇인가? 그 의미는 곧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모 든 일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감사하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인생의 양지에서도, 인생의 음지에서도 동일하게 감사하 라는 것이다. 범사 속에는 긍정과 부정이 함께 들어 있다. 인간의 기쁨과 즐거움뿐 아니라 슬픔과 괴로움도 들어 있다. 인간의 온갖 희비가 다 들어 있는 것이 범사다. 그렇지만 범사 감사는 긍정과 부정을 초월해서 절대 긍정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영적인 차원이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 나님의 눈으로 볼 때만 가능한 것이다. 주님께서 평생 감사의 삶을 우리 모두에게 의무로 주셨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 모든 일이 잘되고 형통할 것으로 착각하며 늘 감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막상 그렇지 못한 황당한 일들을 만날 때 왜 그런가 하면서 의아해 한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를 믿는다고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난다고 말하 지 않았고, 오히려 고난과 역경을 당할 때조차도 범사에 감사할 것을 교훈 하였다. 한 여 집사님이 장밋빛 꿈을 가지고 결혼 생활을 시작했는데 신혼 초부터 남편이 술에 취해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오는 바람에 결혼 생활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10년의 세월이 흘러도 남편의 술버릇은 여전했고, 집사님은 홀로 가슴앓이를 하며 신앙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토요일 밤 늦은 시간, 그날도 변함없이 남편은 술에 잔뜩 취해 만신창이가 되어 현관 입구에 쓰러져 있었고, 여 집사님은 남 편을 겨우 끌어다 눕혔다. 그러면서 매일 이렇게 술주정뱅이 남편과 씨름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을 토로했다. "하나님, 왜 제가 그렇게 기도했는데도 남편이 변하지 않을까요. 왜 제 결혼 생활이 이렇게 엉망이 되어야 하나요? 하나님, 이제 저도 더 이상 못 참겠어요." 10년 넘게 쌓이고 쌓인 설움에 대성통곡을 하며 기도 아닌 기도를 하다가 지난주 들은 목사님의 설교말씀이 불현듯 떠올랐다. '범사에 감사하라. 그러면 기적이 일어난다!' 그렇지만 감사할 게 하나라도 있어야지 싶어 고민하다 보니 좀 우 습기는 하지만 몇 가지 감사거리가 떠올랐다. "옆에서 정신없이 코골며 자는 남편을 쳐다보면 한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 감사합니다. 언젠가 좋은 남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니 감사합니다. 저렇게 술은 취했지만 다 른 데 안 가고 항상 집을 잘 찾아와서 잠을 자니 감사합니다. 술은 좋 아해도 여자라고는 아내밖에 모르니 감사합니다. 다른 남편들은 술 만 먹으면 손찌검이나 심한 주사를 해서 식구들을 한숨도 못 자게 한 다고 하는데 그런 일은 없으니 감사합니다.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어 도 아직까지 병원에 한번 안 간 것도 감사합니다. 술 먹은 다음 날 아 직까지 하루도 결근한 적이 없으니 감사합니다. 토요일에는 술을 더 많이 마셔서 주일날은 어김없이 잠만 자니 제가 교회에 가는 데 방해 받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감사기도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한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왔지만 불평보다는 감사를 하니 속이 후련해지고 기쁨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떠오르는 대로 감사기도를 읊조리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목이 말라 잠에서 깨어 보니 아내가 웃으면서 계속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며 기도하는 게 아닌가? 남편이 놀라서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여보, 한밤중에 잠 안 자고 뭐 하는 거야, 뭐가 좋아서 혼자 싱글벙글하는 거야?" "여보, 당신과 사는 것이 너무 감사해서 그래요." 그러면서 지금까지 기도했던 감사의 내용을 모조리 말해 주었다. 순간 남편의 얼굴 표정이 심각하게 변하더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보였다. "여보, 내가 술을 먹고 당신 속을 그렇게 썩였는데도 나와 사는 것 이 감사하다고 하니 고맙소. 이제부터는 술 끊으려고 노력 하겠소. 그리고 내가 교회 나가는 게 그렇게 소원이라면 당장 내일부터라도 나가겠소!" 10년 넘게 눈물로 기도해도 꿈쩍 않던 남편의 마음이 단 한 번의 감사기도로 움직이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여 집사님의 이야기처럼 지금 당장 감사기도만 하면 나의 골 치 아픈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문제를 감사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하나님 은 문제를 바꾸셔서 일을 해결해 주시는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는 분 이라는 것이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의 마음 밭을 바꾸셔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도록 역사하신다. 여 집사님도 10년 동안 남편을 바꾸려고만 했지 자신을 바꾸려는 시도는 전혀 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해가 안 되고,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어려 운 일들을 만난다. 그러나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을 가지고 인생을 살라고 하셨다. 결국 신앙의 안목으로 보면 모든 것이 합력하 여 선을 이루실 것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유대인 탈무드에 보면 존경받는 랍비 중 한 사람인 아키바의 이야 기가 나온다. 어느 날 그가 먼 길을 여행하게 되었다. 책을 보기 위한 등잔과 시 간을 알리는 수탉, 먼 길을 위한 나귀와 유대 경전인 토라를 가지고 떠났다. 여행 도중 날이 저물어 한 마을에 들어가 잠을 청하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거절하였다. 언제나 감사하는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모든 것을 좋게 하시는 하나님이 더 유익하게 하실 거야.' 그는 오히려 감사하며 마을 한 모퉁이에 천막을 치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길에서 노숙 하려니 잠이 오질 않아서 토라를 읽으려고 등불을 켰다. 그런데 그만 바람에 등불이 꺼지고 말았다. 그는 '하나님이 더 유익하게 하실 거야.' 하면서 또 감사했다. 다시 잠을 청하며 누우려 하자, 이번에는 사나운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에 나귀가 놀라 멀리 도망쳐 버렸다. 이쯤 되면 불평이 나올 법도 한데 그는 '하나님이 더 유익하게 하실 거야.'라고 감사했다. 나귀가 도망치는 바람에 수탉도 놀라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에게 남은 것이 라 고는 토라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더 유익하게 해주실 거야.' 하며 또 다시 감사했다. 이튿날 아침 날이 밝아. 그는 짐을 챙겨 마을로 들어갔다. 그런데 전날 밤 도적 떼가 습격하여, 마음은 쑥대밭이 되었고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만일 등잔이 켜져 있었다 면, 그리고 나귀나 수탉이 울부짖었다면, 그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항상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아키라를 하나님께서 지키시어 주 신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고 인생길을 살아간다. 아니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인생길을 걸어간다. 더 솔직히 말하면 지금 일어나는 일도 그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왜 그때 그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는다. 그리고 그제야 감사한다. 뒷북 치는 사람이 인생에서 성공하기는 힘들다. 무엇에든지 성공 하려면 앞 북을 쳐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따르는 지도자가 되는 것 이다. 감사도 뒤늦게 치는 뒷북 감사는 효력이 약하다. 앞 북 감사를 드려 야 주님이 더욱 기뻐하고 인생의 길을 활짝 열어 주신다. 범사 감사 가 바로 앞 북을 치는 감사다.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항상 앞 북을 치며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감사는 형통을 과시하는 액세서리도 아니고, 인생의 고통과 상관 없는 사치품도 아니다. 범사 감사는 인생의 양지와 음지 모두에서 교만 하지도 않고, 비굴 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다. 성공했을 때 감사하는 사람은 교만하지 않으며, 실패했을 때 감사하는 사람은 좌절하지 않는다. 앞북 감사로 하나님의 마음을 고동치게 하자.
One's whole life in appreciation
전광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