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ratitude is the essence of life, and being alive itself is a miracle worth appreciatin g. Apostle Paul, despite enduring immense suffering-imprisonment, beatings, shi pwrecks, and life-threatening dangers-emphasized gratitude in all circumstances. He urged believers to "give thanks in all things," as gratitude aligns with God's will. Paul's "thorn in the flesh," likely a physical ailment, taught him humility, dependen ce on God, and detachment from worldly glory. Rather than removing the thorn, G od assured him,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leading Paul to rejoice in his weakn ess as it revealed God's strength.
The Pilgrims, too, embodied this gratitude during their harsh journey to the New W orld. Despite hunger, disease, and death, they thanked God for His provision, leadi ng to the first Thanksgiving. Their gratitude amidst hardship laid the foundation for a tradition of thankfulness in America.
Gratitude has the power to transform trials into blessings. Procter & Gamble's foun der, through gratitude, turned a production mistake into the renowned "Ivory" soa p brand. Similarly, a Japanese soldier paralyzed by illness experienced miraculous recovery by repeating "Thank you" daily, proving the healing power of gratitude.
Everyday life is full of miracles, from breathing to walking. Recognizing these blessi ngs fosters joy and faith. Gratitude not only brings peace but invites divine interven tion, turning despair into hope and trials into triumphs. Ultimately, gratitude is a p owerful force that transforms lives, heals hearts, and creates miracles.
다시 감사, 살아 있다는 것보다 더 큰 감사가 있을까?
우리가 매일 아침 습관처럼 눈을 뜨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생각되 지만 오늘 아침만 해도 다시 눈을 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이 얼 마나 많을까? 한번이라도 내가 숨 쉬고 걷고 달리고 말할 수 있음에 감사해 본 적이 있는가? 오늘 살아 있음을 감사해 보았는가? 살아 있음은 기적이다. 그리고 기적은 감사의 충분조건이다. 성경 인물 중에 복음을 위해서 사도 바울만큼 많은 고난을 당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는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고난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렇게 전했다.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였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 11:23-27. 바울은 또한 아시아에서 당한 고난이 너무 혹독하고 감당하기 어 려워 살 소망까지 끊어졌으며, 마치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같 았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입을 열 때마다 강조한 말은 '감사'였다. 바울은 자신의 모든 서신에서 범사에 감사할 것을 반복 적으로 강조하였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 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7, 18.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 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 카사네키우
또한 그는 우리를 향해서 "쉬지 말고 감사하며 살전 2:13, "범사에 하 나님께 감사하며"엡 5:20,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 3:15고 도전한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사람이면서 모든 것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자 신은 육체적인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면서 건강한 사람들에게 감사하 라, 감사하라, 감사하라고 권면한다. 사도 바울의 감사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 가시 감사'라 할 수 있다. 그는 몸에 육체의 가시를 지녔는데, 이는 다름 아닌 몸의 질병이었다. 육체의 '가시'로 인해 그는 늘 괴로워했다. 그를 그토록 괴롭힌 육체의 가시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학자들은 안질 또는 간질병이었으리라 추측한다. 다메섹 도상에서 햇빛보다 더 강한 빛을 본 후유증으로 안질을 앓았을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그가 서신을 기록할 때에 대부분 대필을 시킨 것과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갈 4:15는 갈라디아 교인들에 게 보낸 서신을 예로 든다. 그런데 가시가 간질병이었을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성경구절로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갈 4:14 가 있다.
어쨌든 그는 육체의 가시로 많은 고통을 당했으며, 이것이 복음음 전할 때 조롱받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 일로 주님께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세 번씩이나 간절히 기 도하였다. 어느 목회자가 암으로 수술을 받고 투병 생활 중에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님, 제 아픔이 너무 커서 그 아픔이 가족들의 아픔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제 아픔이 너무 길어서 그 아픔이 교회 의 어두운 그늘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제 아픔이 유별 나서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바울도 주님 앞에 그렇게 기도하였다. 육체를 고통스럽게 하고, 복 음 전파를 방해하는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반복적으로 기도 했다. 그런데 주님의 응답은 가시를 제거해 주신 것이 아니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하셨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예스(Yes) 대신 노(No)라는 기도 응답을 받은 것이다. 가시가 무엇인가? 가시는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지만 사람을 심히 고통스럽게 하고 몸속에 박혀서 끝없이 괴롭히는 것이다. 아마도 바 울은 자신의 육체의 가시만 해결된다면 모든 문제가 깨끗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해 주시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실망하 거나 낙담하지 않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감사했다. 주님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했기에 그런 감사가 나왔을 것이다. 자신의 뜻대로 일이 풀릴 때에는 누구나 감사할 수 있다. 그러나 주 님이 내 생각대로 응답해 주시지 않을 때에는 불평과 원망만 쏟아낼 뿐 감사하는 마음이 쉽게 들지 않는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의 감사와 순종의 태도는 우리 자신을 부끄럽게 만든다. 이처럼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는 감히 입에서 나올 수 없는 감사가 바로 '가시 감사'이다. 장미꽃 감사가 어린아이의 감사라면 가시 감사는 성숙한 사람만이 드릴 수 있는 차원 높은 감사인 것이다. 열 손가락 중 한 손가락에만 가시가 박혀도 그것에 신경이 쓰여 다 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마찬가지로 열 가지 감사할 일이 있어도 한 가지 섭섭한 일이 생기 면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한 가지 힘든 일이 열 가 지 감사를 꽉 틀어막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 가지 장미꽃 감사보다 한 가지 가시 감사가 더 어렵고 귀한 감사이다. 장미꽃으로 열번 백번 감사하는 것보다 가시로 인 해고통 받을 때 한 번 감사하는 것을 하나님은 더 기뻐하고 축복하신다. 가시 감사는 성도의 간증이며 복음 증거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진심으로 자신의 육체의 가시를 주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은혜 삼을 수 있었을까? 첫째, 육체의 가시는 바울을 겸손하게 만들었다. 그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훌륭한 율법학자 가말리엘의 문 하생이었고, 로마의 시민권을 가졌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 자랑할 것이 많았다. 하지만 가시 때문에 자신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로마 시민권을 자랑하거나, 좋은 가문과 율법학자로 어깨에 힘을 주려고 할 때마다 가시는 그의 육체를 찔렀다. 가시는 그가 교만하지 못하도록 주님이 주신 선물이었다. 가시가 없었다면 그는 주님 앞에 나와서 엎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가시가 그를 주님 앞에 서도록 한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가시는 그가 미워서가 아니라 그가 피조물로서의 존재 위치를 잊지 말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주님은 가시를 통해서 우 리 인생을 만들어 가는 분이시다. 둘째, 바울은 가시를 통해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되었다. 그는 가시 때문에 엎드려 기도하였고, 결국 주님의 뜻을 발견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 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 니라"고후 12:10. 그는 자신이 약한 데서 주님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나는 것을 깨달 았다. 절망과 좌절 속에 소망이 있고, 환난 속에 지혜가 있으며, 고난 이 주님께로 가는 생명의 길이라는 것을 안 것이다. 그는 이를 깨닫고 더 이상 가시 때문에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였다. 셋째, 가시는 바울을 세상 영광에 집착하지 않도록 했다. 사람이 이 땅에 살면서 피해야 할 가장 무서운 것은 세상에 집착하 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돈, 명예, 권력, 쾌락에 집착하다 결 국은 돈의 노예, 권력의 노예, 명예의 노예, 쾌락의 노예가 되어 주님 을 잃어버린다. 인간이 결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음을 분명히 알기에 성경은 세상 의 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통해 세상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길 수 있는 고차원적인 신앙의 모범이 되었다. 고통을 주는 육체의 가시, 나를 괴롭히는 가시 같은 인간관계들.... 가시는 나를 찌르고 괴롭히는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다. 그러나 가시 로 인해 내가 무릎을 꿇고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울의 고백처럼 나를 더욱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은혜의 선물이 된다.
[어떤 이는 장미를 보고 왜 가시가 있느냐고 불평하지만, 어떤 이는 가시 중에도 장미가 피는 것을 감사한다.]
청교도들의 감사
미국의 개척 역사는 청교도들의 눈물의 감사로 시작되었다. 청교도들은 항해술이 취약했던 1620년 오직 신앙의 자유를 위해 모든 위험을 불사하고 메이플라워 호에 몸을 싣고 신대륙을 향해 떠 났다. 180톤의 메이플라워 호는 146명이 항해하기에는 작은 배였으며, 사람들은 항해 도중 파도의 위험뿐 아니라 극심한 기아와 질병에 시달렸다. 1620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 날, 그들이 117일간의 험난한 항해 끝에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을 때는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었다. 그들은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에 걸렸으며, 전 염병까지 돌아서 봄이 되기도 전에 44명이 목숨을 잃는 뼈저린 아픔을 겪었다. 더군다나 신대륙의 기후 조건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보리와 밀을 가지고 와 토양이 다른 낯선 땅에 심어 첫 농사에서도 완전히 실패하 고 말았다. 그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에 시달렸고, 극심한 추위에 고통을 당했으며,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을 붙들고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때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청교도들을 도왔다. 인디언 추장인 사모세트는 몇 종류의 씨앗을 가져다 주었고, 재배 기술도 알려 주었다. 그의 직접적인 도움으로 옥수수, 호박, 감자 등의 햇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다. 이에 청교도들은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잔치를 열었다. 감자, 옥수수, 호박으로 만든 팬케이크를 굽고 칠면조 고기를 요리해 함께 나누어 먹으며 신대륙에서의 첫 추수감사절을 가졌다. 이것이 전통이 되어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이 된 것이다. 신대륙에 도착한 후 3년이 지나서 매사추세츠 주의 주지사 윌리엄 브래드 퍼드는 감사절을 제정하여 모든 청교도들이 지킬 것을 공포 했다.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금년에 풍부한 수확을 주셨습니다. 인디언의 도움을 받아 옥수수, 밀, 콩, 호박과 여러 채소를 심 게 해주셨고 자라나게 하셨습니다. 숲에서 사냥을 하고 바다에서는 생선과 조개들을 넉넉히 거둘 수 있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야만인의 습격에서 보호하시고 여 러 질병에서 지켜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순례자들에게 선포합니다. 주후 1623년 11월 29일 목요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모여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이 모든 축복을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 의 예배를 드릴 것을 선포합니다." 이렇게 추수감사절은 매사추세츠 주와 코네티컷 주에서 연례행사로 치러졌으며, 점차 미국 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다가 1789년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 11월 26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하고 온 국민이 이 날을 지키도록 하였다. 그러나 3대 대통령 제퍼슨은 추수감사절이 왕정시대(미국이 영국의 지배하에 있던 기간)의 관습이라는 이유로 중지시켰으며, 그 후로 50년 이상 중단되었던 추수감사절 행사를 링컨 대통령이 국가적인 국경일로 선포하여 다시 '추수감사절'이 부활하게 된 것이다. 링컨은 추수감사절을 국경일로 제정하며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나는 우리의 경건한 조상, 청교도들이 미국 땅에 감사의 씨로 뿌린 신앙의 유산을 우리 후손들이 잘 계승하도록 이 날을 국가 축제일로 선포합니다." 그 후 역대 대통령들이 추수감사절에 '감사 메시지'를 발표하는 것은 전통이 되었다. "험하고 고생스러운 시대에 초라한 경제력을 가졌던 우리 조 상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훨씬 편하고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 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의 위기는 좋은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 대통령)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하신 은혜에 대하 여 헌신과 봉사의 정신으로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 우드로 윌슨(28 대 대통령)
"이 가을의 하루를 추수감사절로 정하여 생명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축복을 감사하는 것은 우리 미국인의 슬기와 경건이 드러난 전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 프랭클린 루스벨트(32대 대통령)
청교도들이 처음 감사의 예배를 올렸을 때는 그들이 아직 황무지 벌판에 있었을 때이다. 그들은 풍요로운 수확과 행복한 환경에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옥 수수와 감자 몇 개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때에 하나님께 감사했던 것이다. 넘쳐나서 드린 감사가 아니었다. 황무지에 씨를 뿌렸을 때 열매를 주신 하나님, 겨울에 심한 추위와 싸웠으나 통나무집을 주신 하나님, 생명을 위협하는 인디언도 있었 지만 낯선 외국인들에게 농사법을 가르쳐 준 착한 원주민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던 것이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감사를 발견한 것이 감사절의 정신 이었다.
청교도들의 일곱 가지 감사 조건
첫째 180톤 밖에 안 되는 작은 배지만 그 배라도 주심을 감사.
둘째, 평균 시속 2마일로 항해했으나 117일간 계속 전진할 수 있었음을 감사.
셋째, 항해 중 두 사람이 죽었으나 한 아이가 태어났음을 감사.
넷째, 폭풍으로 큰 돛이 부러졌으나 파선되지 않았음을 감사.
다섯째, 여자들 몇 명이 심한 파도 속에 휩쓸렸지만 모두 구출됨을 감사.
여섯째, 인디언들의 방해로 상륙할 곳을 찾지 못해 한 달 동안 바다에 서 표류했지만 결국 호의적인 원주민이 사는 곳에 상륙하게 해주셔서 감사.
일곱째, 고통스러운 3개월 반의 항해 도중 단 한 명도 돌아가자는 사 람이 나오지 않았음을 감사.
감사가 만든 기적
미국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 '프록터 갬블 비누회사'를 설립 한 할레이 프록터 사장은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는 신실한 신앙인으로 회사가 어려웠을 때도 두려워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 려 감사하며 철저히 십일조 생활을 한 사람이었다. 한번은 직원의 실수로 기계 작동 시간을 잘못 맞추는 바람에 엉뚱 한 비누제품이 생산되어 회사는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었다. 부서 책 임자는 담당 직원을 심하게 질책했고, 이 직원은 본인의 실수로 회사 가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을 책임지고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나 회사가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프록터 사 장은 흥분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그는 침착하게 문제를 수습해 나 가는 과정에서 잘못 만들어진 비누제품을 분석한 결과 특이한 점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비누가 가벼워서 물에 뜬다는 점이었다. 프록터 사장은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비누가 물에 뜨면 목욕할 때 더 좋지 않을까? 결국 프록터 사장의 역발상으로 엉뚱한 이 비누는 연구를 거듭해 '아이보리'라는 상품으로 시장에 출시되었다. 아이보리 비누는 나오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결과 회사는 유명세를 타 세계적인 비누 회사로 발전했고, 늘 감 사하는 프록터 사장은 아이보리 덕분에 거부가 되었다. 지금까지 아이보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누로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프록터 사장처럼 어려움과 절체절명의 순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했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한 놀라운 기적이 결과로 돌아오게 된다.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했다. "인생에는 두 종류의 삶이 있다. 하나는 기적 같은 건 없다고 믿는 삶이요,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믿는 삶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인생은 후자의 삶이다." 또한 마이클 프로스트는, "현대인은 일상 속에서 전율하는 법을 모 른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기적 자체가 아니라 기적을 보는 우리의 눈이다."라고 말했다. 일상의 삶 자체가 기적임을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병 원의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 가 보면,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 는 일상적인 것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적 같은 일인지 쉽게 느낄 수 있다. 굳이 아인슈타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굴레를 한 꺼풀만들 추고 감사의 눈으로 그 속을 들여다보면 기적 아닌 것이 없다. 물론 기적의 의미는 사람마다 각자 다를 수 있다. 식물인간에게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기적이다. 중환자들은 숨만 마음대로 쉬 어도 기적이다. 음식은 고사하고 물만 마실 수 있어도 기적이다. 어떤 사람은 사막의 반석에서 물이 나와야 기적이라 생각하지만 사막에서 물 한 모금 얻는 것도 기적이다. 중풍으로 오랫동안 누워 있 던 사람에게는 지팡이를 의지해 걷기만 해도 기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이다. 일본의 해군 장교 가와가미 기이치는 전쟁이 끝난 후 고국으로 돌아와 눈앞에 펼쳐진 현실에 차마 입을 다 물 수가 없었다. 처참하게 변한 고국의 상황, 피폐해진 거리를 보면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었다. 어디를 가나 군인만 보면 "저것들 때문에 우리가 패전했다."며 손가락질하고 노려보는 사 람들 때문에 그는 매일 분노와 좌절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 고통의 세월을 보내다가 급기야 그는 심한 병을 얻게 되었다. 얼굴을 제외한 온 몸이 마비되어 마치 식물인간처럼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병원에서 정신과 의사인 후치다 씨의 진료를 받게 되었다. 후 치다 씨는 환자인 가와가미, 기이치 장교에게 물었다. "기이치 선생, 낫고 싶으세요?" "예, 낫고 싶지요" "그럼 제가 시키는 대로 할 수 있겠어요?" "예,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럼, 저를 한번 따라해 보세요. '감사합니다!'" 매일 분노와 적개심으로 가득했던 기이치 장교는 갑자기 “감사합 니다."라고 말하려니 입이 움직이질 않았다. "오늘부터 '감사합니다' 란 말을 하루에 1만 번씩 하셔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만이 당신의 마비된 몸을 치료해 줄 수 있습니다." 의사가 돌아간 후 기이치는 병석에 누운 채로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라도 매일 “감사합니다."를 되뇌어야 했다. 처음에는 병을 고 치기 위해 억지로 내뱉다시피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감사 합니다."라는 말이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것 같았다. 분노와 적개심으 로 불편했던 상태가 사라지면서 마음 또한 평온하게 변화되기 시작 했다. 그의 얼굴에도 평온이 찾아오고 행동도 점점 부드러워졌다. 그를 대하는 가족들도 기이치 씨의 변화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잔뜩 경직되고 우울했던 집안 분위기도 한결 밝아졌다. 이제 예전처럼 화목한 가정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하루는 막내아들이 감나무에 홍시가 빨갛게 익은 것을 보고는 '저 홍시를 아버지께 갖다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들은 잘 익은 홍시 두 개를 따서 아버지의 방문을 열었다. "아버지, 감 드세요!" 그때 아버지 기이치가 "감사합니다."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아, 이럴 수가!' 신기하게도 마비되어 꼼짝도 하지 못한 손이 움직이자 그도, 그의 아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에서 일어난 기적은 그 이후 팔, 다리 등 몸 구석구석까지 이어졌 다. 굳어 있던 그의 몸은 마치 감사의 주문에 의해 마법이 풀리듯 그렇게 풀리고 있었다. 감사하는 마음에서 기적의 씨앗이 자라난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 어떠하든지 감사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마음에는 평안과 기쁨이 찾아오고, 결국은 불치의 병도 극복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감사는 절망을 밀어내고 희망을 끌어오는 기적의 힘을 가지고 있다. 감사는 산수의 덧셈이나 곱셈과 같아서 감사하면 할수록 그곳에는 크고 작은 기적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감사가 없는 삶은 뺄셈이나 나눗셈과 같아서 받은 축복까지도 잃어버린다. 기적은 감사가 충만할 때,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때 일어난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작은 감사를 통해 일상에서 작은 기적을 주시지만, 가끔 역경과 시련의 때에도 크게 감사하는 사람을 통해 큰 기적을 베푸신다.
One's whole life in appreciation
전광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