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key to happiness lies in gratitude. The Talmud teaches that the wisest person is one who learns, and the happiest is one who lives with gratitude. Grateful people t end to be healthier and happier, while those who do not appreciate life often face p hysical and emotional struggles. Gratitude regulates the heart, improves digestion, and promotes well-being, whereas complaints harm health. Surprisingly, happines s is not tied to wealth or material conditions, as evidenced by Bangladesh ranking as the happiest country despite being one of the poorest. Their happiness stems fr om gratitude for small things and strong family and community bonds. In contrast, people in wealthier nations often feel isolated and dissatisfied due to comparisons. Happiness is subjective and depends on one's mindset. It grows not from possessio ns but from valuing and being thankful for what one has. Grateful hearts unlock ha ppiness, as even life's mundane moments, like peaceful routines, become precious gifts when seen through gratitude. Personal experiences of hardship, such as carin g for an injured child or enduring challenges, reveal the profound value of ordinary life. Gratitude transforms not only difficult times but also restores joy, purpose, and passion. Ultimately, a life of gratitude, as expressed in Psalm 136 and countless per sonal blessings, is the true foundation of happiness and fulfillment.
행복해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기 때문에 행복하다.
봄 : 감사는 가슴속에서 피어 오르는 아지랑이 같은 것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
유대인의 인생 독본인 탈무드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라는 말이 있다.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건강하고 행복 하다. 감사하지 못하면 마음과 육체는 병들기 쉽고 불행하게 된다. 신체는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감사하면 맥박이 고르게 되고 위장의 활동을 도와 소화력을 증진시켜 기분까지 상쾌하게 만 들기 때문에 건강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불평은 혈액순환을 방해하여 맥박을 급하게 하는 동시에 위 장의 운동을 정지시켜 뱃속으로 들어온 음식의 소화를 거부해 건강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소유의 유무와 환경의 조건에 상관없이 감사하는 사람들은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언젠가 세계 54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행복 지수를 조사해서 발 표한 것을 보았다. 그런데 행복 지수가 물질적 소유 또는 환경의 조건 에 반비례하게 나타나 행복의 척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가장 행복한 나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최빈국인 방글라데시가 뽑혔다. 그 뒤를 이어 아제르바이잔이 2위, 나이지리아 가 3위에 올랐다. 반면에 경제 대국이며 최고의 문화시설과 교육환경, 자연환경 등을 두루 갖춘 선진국들인 미국, 스위스, 독일, 캐나다, 일본 등이 40위권 밖으로 밀려나 큰 충격을 던져 주었으며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 지 수 또한 23위에 머물렀다. 그런데 가장 행복 지수가 높은 방글라데시가 어떤 나라인가?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나라의 100분의 1수준인 2백 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다. 인구 밀도는 세계 1위이고 문맹률도 90%를 육박한다. 해마다 국토의 80% 이상이 홍수에 잠겨 수해로 고통 받 는다. 천연자원도 없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교육 시설이나 의료 시설도 열악하다. 그렇다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문화나 레저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는 양극화되어 있고, 뇌물과 부정부패가 만연 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행복 지수는 높다. 그들 중 대부분은 아 침에 일어나면 출근할 직장이 없고, 공부할 학교도 없고, 심지어 몸이 불편해도 찾아갈 병원도 없다. 그러나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작은 것에 감사하며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 가족들과 이웃들 간에 끈끈한 유대관계를 통해 행복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행복의 요인을 보면 선진국의 경우에 소득 상승이 더 이상 개인의 행복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데 비해, 가난한 나라의 경우에는 소 득이 조금만 나아져도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또한,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인간관계의 끈끈한 정이 삶의 행복 으로 이어진 반면, 선진국의 사람들은 오히려 인간관계에서 비롯한 소외감과 소유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빈곤감 때문에 불행을 더욱 심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처럼 행복 지수는 객관적인 조건이나 지표보다는 행복하다고 느 끼는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에서 차이를 보인다. 사실, 행복에는 절대 기준이 없다. 어느 수준이 되어야 행복하고 불행한 것인지 정답이 없는 것이다. 행복에는 교과서나 참고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공식이나 모범 답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다만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정도에 따라 행복의 크고 작음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은 소유에 비례하기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에 비례한다. 행복은 없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 자족하는 것이다. 있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된다. 없는 것에 대한 불평이 있는 것에 대한 감사로 변할 때 비로소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남들보다 가진 것이 없어도 있는 것에 대해서 자족하고, 작은 것이 라도 내 삶을 채워 주는 조건이 있다면, 감사하며 사는 것이 곧 행복 이다. 그래서 칼 힐티는 그의 '행복론'에서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을 감사로 꼽았다. "감사하라. 그러면 젊어진다. 감사하라. 그러면 발전이 있다. 감사하라. 그러면 기쁨이 있다." 지극히 작은 일에도 감사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행복 지수도 높다. 사람은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며 살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이다. 감사는 분명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가는 그의 감사함의 깊이에 달려 있다. 감사할 줄 모르면서 행복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평범한 날들의 소중함
일전에 나는 농촌에서 목회하시는 어느 목사님의 글을 읽고 너무 나 공감이 되어 나도 모르게 웃은 기억이 있다. 그 시골 목사님은 날마다 반복되는 목회 사역이 지루해서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고 한다. 자고 일어나면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예배, 주일예배, 낮에는 심방, 그 사이 시간들은 짬짬이 설교 준비.... 이러한 생활 패턴은 어느 목사님이나 거의 비슷하겠지만, 아무튼 시골 목사님은 너무나 조용한 시골에서의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생각을 확 돌려놓은 한 사건이 일어났다. 목사님은 선물 받은 진돗개를 기르고 있었는데 이 진돗개가 새끼 세 마리를 낳게 되었다. 그런데 새끼를 낳고 며칠 후인 늦은 토요일 밤에 어미 개가 안절부절하면서 깨갱 깨갱 울어대는 것이 아닌가. 진돗개를 길러 본 경험이 없어 온 가족이 허둥대다가 동물병원에 연락을 했다. 그러나 너무 늦은 시간이라 모두들 퇴근했는지 전화 받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목사님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날이 밝기 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다음 날 목사님은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주일 설교 준비도 해야 했지만, 모든 게 엉망이 되어 버렸다. 어미 진돗개와 새끼들이 동시에 우는 소리에 어떻게 새벽 예배를 드렸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혼미 했다. 오죽 마음이 급했으면 어미 개와 강아지들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까지 했을까. 날이 밝자마자 목사님은 얼른 수의사를 모셔왔다. 어미 진돗개와 새끼들의 상태를 꼼꼼히 진찰한 수의사는 어미 개가 소화 불량이라 새끼들이 젖을 빨지 않은 통에 젖이 불어 아파서 그렇게 짖어 댄 것이라며 응급처방으로 어미 개의 젖을 짜주었고, 새끼들 에게는 우유를 먹여 다행히 어미 개와 새끼들을 원상태로 회복시켰다. 그제서야 일상의 평온은 다시 찾아왔다. 겨우 일이 해결되어 안심이 된 목사님은 주일 설교 준비도 못한 채 강단에 섰고, 예배 시간 내내 진땀을 흘렸다고 한다. 늘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 지루하다고 만 느꼈던 목사님은 하룻밤 사이 일어난 작은 소동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을 생각하며, 그 뒤로 지극히 평범한 일상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 여기고 날마다 감 사하며 살게 되었다고 한다. 나 또한 미국 생활을 시작한 지 2년쯤 되었을 때, 매일매일의 일상 이 너무나 단조로워 지겨운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삶의 의욕이 바닥을 치는 기분 이랄까. 삶에 대한 설렘이나 기대감 없이 흐르는 시간을 떠나 보내는 나의 일상에는 행복도, 감사도 없었다. 우중충한 시카고의 날씨처럼 마음에도 어두운 그늘을 드리운 채 최소한의 의무감으로 살아가던 때였다. 교회를 섬기는 일에 있어서 도 첫 순간의 마음처럼 뜨거운 열정과 헌신 그리고 비전과 희망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마음은 온통 차가운 냉기로 가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성민이가 다치는 일이 일어났다. 교회에 새로 부임한 목회자 가정에 교인들과 심방 가는 길에 어린 아들 성민이를 데리고 갔는데, 아이들이 함께 놀다가 카펫 위에 떨어 진 이쑤시개가 아들 발에 박혀 버린 것이다. 당장 병원으로 가서 X레이 촬영을 하고 결과를 기다렸지만 이쑤시개의 위치는 잘 보이지 않아 대강의 치료만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 단 상태를 지켜보기로 하고 다음 날 학교에 보냈는데, 하교 후 집에 들어서는 아들의 발을 보니 부을 대로 퉁퉁 부어 오른 것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아이를 차에 태우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병원에서는 작은 이쑤시개 조각들을 찾느라 혈안이 되었다. 결국, 몇 조각 찾는 걸로 수술을 끝낸 후 항생제 처방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이의 발은 가라앉을 기색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걷지도 못할 정도가 되자 안 되겠다 싶어 병원으로 다시 향했다. 이번에도 수술대에 오른 어린 아들은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이번에도 이쑤시개와 관련된 이물질은 찾지 못했다. 결국 담당의사가 MRI 촬영을 권했지만 우리의 형편으로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일이라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어린 아들은 못난 부모 때문에 약 7개월을 고생했고, 다행히 의사의 주선으로 MRI 촬영을 무료로 받게 되어 마침내 바늘처럼 가느다란 이쑤시개 조각 하나를 빼낼 수 있었다. 나중에 현상한 필름을 보니 이쑤시개의 부러진 반쪽이 네 번째 발가락 뼈에 교묘하게 딱 달라붙어 있었고, 뼈의 일부분과 똑같이 바늘처럼 하얗게 보여 육안으로 식별하기에도 불가능해 보였던 것이다. 이렇게 이쑤시개 가시를 빼 내고서야 아들의 발이 아물기 시작했다. 나는 몇 달 동안 날마다 아들의 발을 보듬으며 주님의 피 묻은 손으로 안수해 주실 것을 눈물로 기도하였다. 그때 비로소 일상의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 가슴 깊이 깨달았다. 아이들이 아침에 학교에 갔다가 오후에 돌아오고, 아내가 아침에 일터로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고, 나 또한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로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일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지만, 감사하고 감격하며 살아야 할 하나님의 은총의 시간임을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서야 알게 된 것이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죄로, 7개월 동안 병원을 다니는 일에 매주 또는 격주 월요일마다 시간을 반납하면서 평범한 일 상의 소중함에 관한 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것도 아들이 고통 당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면서 말이다. 그 일 이후 지금까지 평범한 일상을 감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내 인생에 가장 어둡고 힘들었던 시기에 말씀을 통해 인생의 비전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감사를 회복하는 것과 동시에 다시 희망과 기쁨, 열정, 헌신, 눈물을 회복하였다. 감사가 내 인생을 밝은 빛 가운데로 이끌어 준 것이다.
[평범한 삶에 대해 감사하는 자세는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감사기도이다.]
버이킷
100만 번의 감사
길면 길고 짧으면 짧았던 8년 정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 땅을 밟으면서 감사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다. 나는 가족들을 이끌고 고향 땅의 풋풋하고 정겨운 향기를 맡으며 부모님이 계신 강원도 철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가정예배를 드렸다. 다들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모두 둘러앉아 함께 찬송을 부르고 어머니께서 대표로 기도를 하 셨는데, 참으로 감회가 새로웠다.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묵상할 성경 본문으로 시편 136편을 정한 후 '감사 생활'이라는 제 목으로 은혜를 나누었다. 이 시편을 묵상하는 동안에 '이것을 기록한 기자는 감사가 생활화 된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곳에는 "감사하라"는 말씀이 무려 26번이나 나오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마지막 구절까지 한 절도 빠지지 않고 '감사'가 넘치고 있다. 선하신 하나님, 지금도 구체적으로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께 서 행하신 26가지 내용을 시편 기자는 조목조목 감사하고 있었다. 감사는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 님의 크신 은혜를 깨달은 사람이고, 날마다 감격하며 감사의 삶을 사 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편 기자가 26가지 감사의 조건을 찾아서 감사했던 것처럼, 우리 가족도 그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 26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가족들과 감사 제목을 하나하나 나누며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도 참으로 크신 은혜를 베푸셨구나,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부모님께도 감사 제목을 한 가지씩만 말씀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무엇보다도 너희들 모두가 돌아와서 이렇 게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 가장 감사하다."고 하셨다. 어머니와 달리 아직은 믿음이 연약한 아버지로부터 이런 고백을 들으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 옛날 부모님께서 주님을 영접하시고 구원 받으셨을 때의 감 격이 되살아났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아버님의 구원을 위해 40일 새벽기도를 작정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새벽기도를 하면서 아버지가 하나 님을 만나고 그분의 은혜를 알게 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런데 마지막 40일째 되던 날 교회에 나가길 완강하게 거부하시던 아버님이 마음 문을 여시고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신 것이다. 그 일로 나는 정말 주님은 살아 계시는구나, 확신할 수 있었다. 당시 풋내기 신자였던 내가 처음 겪은 귀한 영적 체험이었다. 감사 목록을 적으면서 우리 4남매 중에 유일하게 주님을 믿지 않았던 누님의 가정이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순간도 떠올랐다. 누님의 구원을 위해서는 25년간을 기도했는데, 미국에 있을 때 우 리 집에 놀러 온 누님이 주님을 만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 때의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컸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 오르고 절로 감사 찬송이 흘러나온다. 누님 자신도 놀라운 주님의 은혜에 수없이 눈물을 흘렸고, 입술에 서는 감사의 고백이 떠나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과 누님의 구원의 순 간들을 떠올릴 때면 26번이 아니라 100만 번의 감사로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실제로 텍사스의 한 성공한 실업가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 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100만 번 기록한 책을 내려고 출판사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책의 제목은 '100만 번의 감사'였다. 그런데 원고에는 100만 개의 감사 제목 내용들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감사합니다."라 는 말만 가득 적혀 있었다. 결국 어떤 출판사에서도 출판하겠다는 제 의를 해오지 않았다. 사실 그는 단지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100만 번이라도 감 사해야 하며, 그것이 우리 인생의 축복과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술과 여자에 빠진 채 폐인이 되어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주님을 만나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고 사업가로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놀라운 은혜와 감격을 한 권의 책에 담기를 소망했던 것이다. 아무튼 해프닝으로 끝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만약 그 책이 출판 되었다면 나는 아마 한 권 사서 소장했을 것 같다. 사업가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한때 하나님의 은혜가 너 무 감사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노트에 빼곡히 적었던 기억이 있다. 가슴 설레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느껴본 사람이라 면 100만 번도 더 쓸 수 있을 것이다. 시편 기자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라"고 했다. 그의 감사는 26번만의 감사가 아니라 지면만 허락한다면 100만 번 이라도 감사할 수 있을 것처럼 시 전체에 감사가 넘쳐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입술에서 감사가 넘치는 것은 마음에 감사가 넘치기 때문 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감사가 되는 것이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되지 않을 것이 없다. 시편 기자가 자신의 인생 속에 인자하신 주님이 행하신 일을 하나 하나 감사했던 것처럼 내 인생에 임했던 주님의 축복을 가만히 헤아려 보면 어떨까? 26번의 감사가 아니라 100만 번의 감사로도 부족함을 느낄 것이다.
One's whole life in appreciation
전광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