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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문학 소설에 대하여] 오만과 편견-347

Mrs. Bennet glories in marrying off two daughters,
Bingley and Jane quit Netherfield for a house near Derbyshire within thirty miles of Elizabeth,
Kitty improves under her sisters’ gentler society while Lydia’s influence is checked,
Mary stays home, meets the world more, and adapts without the old humiliating comparisons,
Lydia and Wickham drift from post to post on debts as Elizabeth sends small aid but blocks petitions,
Darcy never admits Wickham to Pemberley yet helps professionally when needed,
Georgiana learns from Elizabeth a livelier, equal marriage dynamic,
Lady Catherine rages, then—at length—moves toward reconciliation,
Miss Bingley swallows pride to keep visiting rights at Pemberley,
the Gardiners remain cherished as the catalysts of the match,
and the appended author sketch traces Austen’s quiet life, anonymous publications, and parlor-focused craft,
eschewing wars and industry to satirize gentry manners and marriage as the vehicle of social critique,
centering women’s constraint, rational duty, and self-discovery as modern character-making,
her “small worlds” reflecting, by irony, the larger society beyond the drawing room.

 

베넷 부인은 가장 자랑스러운 두 딸을 시집 보내는 날, 어머 니로서의 섭섭한 마음보다는 행복함이 더 앞섰다. 뒷날, 그녀 가 얼마나 뿌듯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빙리 부인을 찾았으며 또 다아시 부인에 대해 이야기했는지 추측하고도 남을 만한 일이 다. 그녀의 가족들을 위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녀는 그토 록 많은 딸들에게 짝을 지어주려는 간절한 소원을 성취했으므 로 그 후의 나날에는 한결 현명하며 상냥스럽고 분별 있는 부 인이 되는 행복한 결과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토록 현저하게 바뀐 가정의 행복이 구미에 맞지 않을지 도 모를 그녀의 남편에게는, 부인이 이따금 신경질 부리고 여 전히 바보스럽게 지내는 편이 행복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베넷 씨는 둘째딸이 매우 보고 싶었다. 다른 일보다 딸에 대한 애정 때문에 그는 자주 집을 비우곤 했다. 특히 전혀 예기치 못한 때 를 골라 펨벌리에 가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빙리와 제인은 네더필드에서는 1년 정도밖에 머물지 않았 다. 어머니가 메리턴의 친척 바로 가까이서 지낸다는 사실은 그의 사람 좋은 성품이나 그녀의 상냥함으로도 매우 견디기 힘 든 일이었다. 그의 누이들 염원이 성취되었으니 그는 더비셔 근처 지방에다 저택을 구입했다. 제인과 엘리자베스에게는 다 른 일들 말고도 서로 30마일 안에 살게 되어 행복했다. 키티는 대부분의 시간을 두 언니들과 보낸 것이 실질적으로 큰 득이 되었다. 지금까지 알고 지내던 것보다는 훨씬 높은 수 준의 사교계에 나오게 되자 그녀는 크게 향상되었다. 리디아만 큼 걷잡을 수 없는 그런 성격도 아닌 데에다가 리디아를 본받 을 필요도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적당히 주의와 감독을 받자 그 전에 비해 덜 조급하고, 덜 무지하고, 덜 단순해졌다. 물론 리디아와 어울리는 불리한 상태에 빠지지 않게 보살핌을 받았 다. 예컨대, 위컴 부인이 무도회니 젊은 남자를 들먹이며 와 있 으라고 계속 초청해도 베넷 씨는 가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 은 것이다. 메리는 집에 남은 유일한 딸이었다. 그녀는 혼자 앉아 있기 힘든 어머니 때문에 공부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메리는 전에 비해 세상과 훨씬 많이 접해야 했지만, 매일 아침 손님 이 오는 것을 이제는 참을 수 있었다. 이제 언니들의 아름다움 과 자기를 비교해 굴욕을 느낄 필요가 없어져서 기꺼이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는 게 아닐까 하고 아버지는 추측했다. 위컴 리디아에 관해서 말하자면, 두 사람의 성격은 언니들이 결혼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위컴은 엘리자베스가 전에 몰랐던 배은망덕이나 기만을 이제는 다 알게 되었을 것이 라고 믿어 가면서 그것을 현명하게도 체념하고 넘어갔다. 온갖 사건이 있었는데도 그는 여전히 다아시 씨를 구슬리면 한 재산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엘리자 베스가 결혼했을 때 리디아에게서 받은 축하 편지는 위컴 자신 은 아니라 해도 적어도 그의 아내는 그러한 희망을 품고 있음 을 명백히 말해 주고 있었다. 편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리지 언니에게.

결혼을 축하해요. 내가 위컴을 사랑하는 반만큼이라도 언니가 다아시 씨를 사랑한다면 언니는 정말 행복할 수 있을 거예요. 언 니가 큰 부자가 되셨다니 정말 좋아요. 달리 별로 할 일이 없을 때엔 우리 생각도 해주세요. 위컴이 무언가 궁정에 자리를 얻기 바라고 있는 걸 내가 분명히 알고 있고, 우리는 남의 도움 없이 살 만큼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할 거예요. 매년 3, 4백 파운드 정도라면 어떤 자리도 좋겠군요. 마음이 내키지 않거든 형부한테는 이 일을 말하지 말아주세요.

그럼 이만.

 

엘리자베스는 분명히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 답장을 쓸 때 에 그런 따위의 요구나 청탁은 일체 못하도록 노력했다. 그러 나 자기 용돈을 이리저리 절약해서 스스로 마련한 구원 자금은 자주 보내주었다. 헤픈 씀씀이에다 장래를 고려하지 않는 두 사람의 생활 방식에 맡겨져 있는 한 그들의 수입은 모자랄 것 이 뻔했다. 두 사람이 주둔지를 바꾸게 될 때마다 제인이나 그 녀 자신 중의 어느 한쪽에 그들의 빚을 청산하는 데에 도움을 달라는 요청이 반드시 날아들었다. 두 사람의 생활 방식은 다 시 평화가 찾아와 제대하고 나서도 극도로 불안정했다. 그들은 값싼 주택을 구하느라 이리저리 이사를 다녔으며 그러면서도 언제나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한 것이다. 리디아에 대한 그의 애 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관심으로 변질되었다. 그녀의 경우는 좀더 오래 지속되어 나갔다. 젊은 데에다가 예절은 말이 아니 었지만 남의 처가 된 사람으로서의 필수적인 체면을 손상하는 일만은 절대로 하려 하지 않았다. 다아시 씨는 그를 펨벌리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엘리자 베스를 위해 직장 일로는 그 후에도 원조해 주었다. 리디아는 남편이 런던이나 바스에 혼자 즐기러 나들이를 했을 때에는 이 따금 펨벌리를 방문했다. 빙리네에는 두 사람 다 오래 머무르 게 마련이어서 마음 좋은 빙리 씨까지도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암시하는 판이었다. 빙리 양은 다아시 씨의 결혼을 매우 분하게 생각했지만, 펨 벌리를 방문하는 권리를 지속시키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 기 때문에 그녀의 모든 분노를 누그러뜨렸다. 전에 비해 조지 애나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다아시 씨에게는 지금까지와 거의 다름없이 싹싹했고, 엘리자베스에게는 지금까지 빌린 채무를 갚듯 뒤늦게 한꺼번에 예의를 차렸다. 펨벌리는 이제 조지애나의 집이 되었다. 그리고 다아시 씨가 원하던 대로 시누이 올케 사이가 좋았다. 두 사람은 애당초 저 마다 마음속에 가졌던 바와 조금도 다름없이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조지애나는 세상에서 엘리자베스를 제일 높게 평가했 다. 하긴 처음 한참 동안은 오빠에게 말을 건넬 때의 올케의 발 랄하고 장난기 어린 말투를 대할 때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들은 것은 사실이다. 자기의 애정을 압도하고 남은 경의를 불러일으 키곤 했던 오빠가 드러내 놓고 농담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을 눈앞에서 보게 된 것이다. 예전 같으면 꿈에도 해보지 못한 생각이, 이제 그녀를 차지 하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의 행동을 보고, 그녀는 남편도 여 자에게 무람없게 굴 수 있다는 점을 이해했다. 열 살씩이나 손 아래인 누이동생에게는 함부로 하는 것을 허용치 않으나, 남편 이 되고 나면 아내에게 그것을 허용한다는 것을 그녀는 이해한 것이다. 캐서린 영부인은 조카의 결혼에 대해 매우 분개했다. 결혼 이야기가 정해졌다는 사실을 써보낸 편지의 답장에서 자신의 평소 성품을 그대로 드러냈으며 꾸짖음이 극에 달았고, 특히 엘리자베스에 대해 모욕적인 언사를 써보내는 바람에 모든 교 류가 끊어졌다. 마침내 엘리자베스의 설득에 의해 그는 상대방 의 바르지 못한 예의를 너그럽게 보게 되고 화해를 구하는 심 정이 되었다. 이모 쪽에서는 그보다는 더 고집을 부렸지만, 그 녀의 분노는 그에 대한 애정 때문이든 아니면 그의 아내가 어 떻게 처신하는지 보고 싶은 호기심 때문이든 수그러들었다. 그 리하여 직접 펨벌리로 거동해서 그들을 만나기까지 했다. 그런 안주인의 존재만이 아니라 안주인의 외삼촌 내외의 방문으로 인해 그곳 수풀이 더럽혀졌는데도 말이다. 두 사람은 가드너 부부와 늘 친밀하게 지냈다. 엘리자베스는 물론, 다아시 씨도 그들을 가슴 깊이 사랑했다. 그리고 엘리자 베스를 더비셔까지 데려옴으로써 두 사람을 맺어준 계기가 되 었던 두 분에 대해 두 사람 모두 언제나 변함없는 감사의 마음을 간직했다.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은 어린 시절을 목사인 아버지 조지 오스 틴(George Austen)이 근무하던 조그마한 마을에서 보냈다. 오스틴 의 가족은 비교적 문학적 성향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소 설에 관심이 많았으며 오스틴이 살던 스티븐턴이라는 작은 마을은 오스틴의 문학적 재질을 뒷받침 해주는 데 있어 필요 충분한 조건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1801년에 목사직을 은퇴하고 바드 로 거처를 옮겼다가 1805년에 별세하자, 오스틴 가족은 1809년까지 여러 곳으로 이사를 다녀야 했다. 아버지를 여의고 가장 친했던 친 구 앤 레프로이(Anne Lefroy) 마저 사망하는 쓰라린 경험은 그녀의 작품 성향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수년 동 안의 방황 끝에 1809년에 사우댐프턴에서 초턴으로 이주 정착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오스틴은 여생을 보내게 된다. 그녀의 고향에서 멀지 않는 이곳에 정착한 후 오스틴은 다시 집필을 시작, <분별과 감 수성(Sense and Sensibility)>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을 출판하기에 이르고, 1814년에는 <맨스필드 파크(Mansfield Park)>를 출판한다. 1814년에서 1815년에 걸쳐 집필한 <엠마(Emma)) 1815 8월에 출판되었고, 계속해서 <설득(persuasion)) <노생거 사원(Northanger Abbey)>도 수정 출판되었다.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은 일생을 집안 식구와 친지들 사이에서 만 보내며 지극히 소극적인 삶을 살았다. 여러 곳을 여행하거나 대 중에게 알려지는 일도 없이 독신 생활을 꾸려나간 것이다. 그녀가 쓴 소설들은 모두 익명으로 출판되었는데, 그녀 사후인 1818년에야 <노생거 사원(Northanger Abbey)> <설득(Persuasion)>이 출판되 면서 저자가 그녀임이 밝혀졌다. 그만큼 그녀는 일생 동안 소설 쓰 는 일에만 전념했고 그녀 특유의 소설 양식을 창출해내는 데에만 힘쓴 것이다. 즉 개인 생활에 치중한, 대화가 중심이 되는 소설의 전 개 방식이나 등장인물 간의 관계가 주로 집안 식구나 친구들로 한 정되는 것 등은 오스틴의 생애가 그대로 옮겨진 소설에서 주로 만 날 수 있는 특징들인 것이다. 그녀의 소설을 '응접실 소설'이라 불리기도 하는 데 그 이유는 가 정내, 즉 응접실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주로 다루었기 때문이 다. 그러나 당시 중류계급이나 중상류계급의 일상생활이라는 것이 소음악회나 친척, 이웃 간의 파티 그리고 소풍이었다는 것을 상기 해보면 그녀의 소설이 환경적 요인에 의해 쓰여 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는 플롯이 있기는 하나 그것 때 문에 작중인물이 끌려 다니는 일은 없다. 오히려 인물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어떠한 결말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 결말은 대개의 경우 결혼이다. 일생동안 결혼이라는 체험을 해보지 못한 그녀 로서는 결혼이야말로 가장 운명적인 조건이며 인생의 모든 방향을 결정 짓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 결혼 이라는 종점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리얼한 살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성의 시대와 낭만주의 시대인 감성의 시대를 걸쳐서 살았던 오 스틴은 한사코 비감성적인 소설을 고집해서 썼다. <노생거 사원>에 서 엿볼 수 있는 풍자적 요소를 보아도 그렇고, 더 나아가서 그녀의 소설이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e)의 폭풍 같은 감상주의에 의해 '답답하다'고 일축당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실제로 소설의 기 능이 당대의 사회 문제를 비판, 풍자, 지적, 고발하는 데에 있다고 할 때, 나폴레옹이 유럽 전역을 휩쓸면서 그 시대를 좌지우지하던 때에 씌어진 오스틴의 문학 세계에서는 전쟁을 위시한 인간의 문제 는 없고, 기껏해야 남자가 태도를 바꾸거나 젊은 여성이 편견을 버 리는 그런 내용만이 주류를 이룬다. 군인이 등장하기는 하나 처녀 를 데리고 도망치는 것 정도의 묘사에 그친다. 이처럼 오스틴 소설의 배경은 주로 시간의 흐름이 없는 닫혀진 사회에 기반을 둔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특히 <오만과 편견>이 이씌 씌 어진 때는 바이런(Byron)ㆍ셀리(Shelley) 콜리지(Coleridge)·스 콧(Scott) 등의 작품들이 한창 절정을 이루던 시대였고, 서정적인 발 라드가 출판된 지 이미 한 세대가 지난 후였다. 그러므로 브론테가 오스틴에게 '탁 트인 전망이나 천국과 지옥으로 향하는 황야도 없이 답답한 남녀 이야기나 썼다'고 한 것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오스틴의 소설은, 18세기 후반의 중류 계급에서 일어나는 일상 생활 중 특히 남녀의 결혼을 둘러싼 문제를 극적이고 사실적 으로 서술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smollett 의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회문제의 파노 라마도 없고 산업혁명 이후 영국사회가 당면한 상황에 대한 언급도 없으며 이 당시 사회가 안고 있던 불안정한 사회문제나 빈민문제 같 은 것도 없다. 그러나 이성의 시대에서 감성의 시대로 옮겨가는 단 계에서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태도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한 시대 의 밀도 있는 분석적 표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해준다. 그러므로 오스틴의 작품 속에는 시대적 가치나 당시 사회의 삶의 모습이 어느 작품에서보다도 면밀하고도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오스틴의 문학세계는 일종의 제한된 사회에 대한 풍자적 역할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그 풍자는 이 시대 지주계급의 사고 방식을 정 확하게 전달해준다. 풍족하게 여가를 즐기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지주계급 및 중류 계급의 허상과 실상을 오스틴 소설은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사회의 지주 계급의 생활은 그 시대의 경제문제 를 직시하지 않고 오직 개인적 욕망에 충실하고 사치에 몰두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므로... 오스틴 소설에 등장하는 각 가정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작은 사회를 이루며 작은 우주를 이루고 있다. 이 소우주는 너무도 선명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그 너머에 자리잡고 있는 좀더 큰 세계를 비춰 주는 것이다. 한 사회의 사치스러운 문화는 그 주변의 비참함과 배 고픔의 또 다른 표현이고, 한 시대의 세련된 문화는 잔인한 아이러 니를 동반하여 얼마나 많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빈곤에 시달리는가 를 나타내 주기 때문이다. 오스틴은 민중이 겪는 배고픔과 가난을 직접 다루는 대신 간접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표출시킨 것이다. 오스틴은 이와 같이 지주 계급 생활의 뒷전에서 그들의 생활을 통해 또 하나의 핍박받는 사회를 간접적으로 나타냈다. 그녀가 소 설에서 의도한 또 하나의 핍박받는 사회의 양상은 이 시대의 여성 에 대한 억압이었다.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로서 행동에 제한을 받 고 갇혀 지내는 상황에서 오스틴 소설의 여주인공들은 오스틴 자신 과 같은 여성들에 대한 역사적인 기술을 소설에서 해내고 있는 것 이다. 여자의 입장에서 남자들의 세계를 경험하고 다른 여성들과 만나며 그들의 집안을 묘사함으로써 스스로 경험한 자신과 자신의 생활에 대해 역사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실제로 셰익스피어 이후 처음으로 독자는, 믿음직하고 사려 깊으며 야심과 재치를 바탕으로 남자들로부터 독립된 사고를 하는 여성들을 오스틴의 소설에서 만 날 수 있다. 이들은 지성과 감성을 바탕으로 남자들에게 도전을 꾀 하며 그들과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정열도 소유하고 있다. 오스틴 소설의 강력한 내적 갈등은 여주인공들의 개성과 야망이 사회적 도덕들에 의해 압박받는 데에서 생긴다. 여성이 당면해 있 는 곤경은 그들이 아내로서 얼마나 적절한가에 의해 가치가 평가되 는 사회에 태어남으로써 시작된다. 그 사회에서 여성은 하나의 다 소곳한 아내와 어머니로서 정착되고, 그들의 생애는 사회가 규정하 는 이상적인 여성상에 의해 제약받는 것이다. 오스틴의 여섯 개의 소설은 전부 이러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각 소설의 여주인공은 점 차 자아를 깨닫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아를 성취한다. 그 들은 타법을 잘해야 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사회 의 요구에도 순응해야 한다. 그들은 자아 발견과 자아 성장의 길을 여정으로 삼는다. 자아 성취를 위해 자신과 투쟁하는 것이다. 작가 는 아들이 자아 성취에 얼마나 성공하고 실패하는지 독자로 하여금 관단토록 놓아둔다. 오스틴의 소설들이 여주인공들의 자아 발견의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고 할 때, 작가가 아들에게 깊이 심어주는 또 다른 인간관 은 합리적인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인간이다. 이때의 의무는 종교나 가문에 대한 의무가 아니라 여성 개개인이 자신들에게 충실 해야 하는 내적인 의무라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개성적이고 인간 적인 자아의 성취를 위해 투쟁하는 주인공들의 인간상은, 19세기 이후의 문학 작품들이 추구해온 주제로서 오스틴을 현대와 연결시 켜주고, 영국 소설의 전통을 세우는 데 일익을 담당한 그녀의 문학 적 위치를 새삼 확인시켜준다.

 

Adaptations compress the epilogue into a montage of weddings, removals, and reciprocal visits,
upgrade Kitty and settle Mary via brief prop-driven beats (books, piano),
sketch Lydia–Wickham’s instability with moving boxes, unpaid bills, and flashy parties,
render the Pemberley marriage dynamic through Georgiana’s POV shots and Elizabeth’s witty ripostes,
handle Lady Catherine’s thaw by letter voiceover or a wordless threshold nod,
leave Miss Bingley’s tight smile as a comic tag satirizing rank and face,
spotlight the Gardiners as match-catalysts with fishing/travel inserts and map cuts,
use a turntable set to flow Longbourn–Pemberley–market town in one breath on stage,
let a musical set the reason/selfhood theme in a solo like “A Gentleman’s Daughter,”
teach the “small canvas, large society” thesis in classes and docs,
close on intercut two-shots of the two couples and a drifting aerial to juxtapose modes of happiness,
roll credit cards noting Austen’s anonymity, drawing-room craft, and women’s narrative import,
and modernize the letter motif in contemporary remakes as DMs, invitations, and job postings.

 

제인 오스틴 지음오영숙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