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Meryton, Elizabeth hears Wickham’s story and accepts his account of Darcy’s injustice;
Mr. Collins flatters the ladies and parades his vanity while awkwardly mingling with the young women;
The Netherfield ball is announced, sending the Bennet household into expectant excitement;
On the night, Wickham’s absence disappoints Elizabeth and sharpens her coldness toward Darcy;
Forced to dance the first two with Collins, she endures a mortifying start;
She unexpectedly accepts Darcy’s invitation, but their talk misfires and tension rises;
Meanwhile Collins keeps trumpeting his connection to Lady Catherine de Bourgh;
Bingley and his sisters favor Jane while keeping distance from the rest;
Miss Bingley disparages Wickham and defends Darcy, clashing with Elizabeth;
Elizabeth continues to credit Wickham and distrust Darcy;
Jane quietly nurtures hope with Bingley;
Thus the ball becomes a night where Wickham’s absence, Darcy’s strain, Collins’s awkwardness, and Jane’s budding joy intersect, hardening misreadings and prejudices.
베넷 씨 부부는 딸들이 이모와 약속한 것에 대해 아무런 반 대도 하지 않았다. 콜린스 씨는 손님 자격이라 단 하루 저녁이 라도 두 분을 남겨놓고 가기가 꺼려진다고 말했으나 괘념치 말 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다섯 명의 사촌과 이튿날 저녁 시간 에 맞춰 마차를 타고 메리턴으로 향했다. 아가씨들이 응접실에 들어서자, 위컴 씨가 이모부의 초대에 응해 이미 도착해 있다 는 반가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자리에 앉자 콜린스 씨는 가만히 주위를 돌아보고 이런 저런 칭찬을 할 마음의 여유를 가졌다. 그는 크고 질 좋은 가구 에 감탄해 자신이 로징스의 어느 여름용 응접실에 앉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필립스 부인은 애당초 그런 비교가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로징스가 어떤 곳이고, 소유자가 누구인 지 설명하였으며, 그곳 응접실 가운데 하나를 설명하면서 벽난 로나 선반 장식 하나에도 800파운드쯤 한다고 말하자, 그의 비 교가 얼마나 굉장한 찬사인지 알았으며, 그가 자신의 응접실을 로징스의 가정부 방과 견주어도 기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콜린스 씨는 신사들이 합석할 때까지 캐서린 영부인과 그녀 의 저택에 대해 말했고, 자신의 별 볼일 없는 처소를 얼마나 멋 있게 고쳤는지 가끔 객담을 섞어가며 자랑하면서 시간을 보냈 다. 필립스 부인은 그의 말을 귀담아 듣고 나서 그를 더욱 높게 평가했으며, 그런 사실을 좀더 빨리 이웃에게 전하기로 마음먹 었다. 그러나 사촌의 떠벌이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었던 아가 씨들은 음악이나 연주했으면 했고, 자신들이 만든 복제 도자기 가 벽난로 위에 놓인 것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기 에 기다림이 지루하기만 했다. 그러다 드디어 기다림이 끝이 났다. 신사들이 다가온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위컴 씨가 오는 것을 보면서 그가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지극히 매력적이라 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주둔 부대의 장교들은 대체로 좋은 평판을 듣는 신사들이었는데, 그 장소에 있는 사람들은 그중에 서도 나은 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컴 씨의 몸매, 용모, 태도와 걸음걸이는 그 누구보다 훌륭했다. 위컴 씨는 넓적한 얼굴에 살이 찐 데다가 코가 막혀서 숨 쉴 때마다 포트와인 냄새를 풍기며 들어온 필립스 이모부에 비해 다른 장교들이 훨씬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과 견줄 만큼 멋져 보였다. 위컴 씨가 많은 여인의 눈길을 한몸에 받은 행복의 주인공이 라면, 엘리자베스는 그가 드디어 곁에 앉기로 한 행복의 여주 인공이었다. 그리고 그가 고작 그날 밤에 비가 오고 있으며, 장 마철이 시작될 것 같다는 말을 했을 뿐인데도, 매우 친절하게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엘리자베스는 아무리 시시한 화제라 도 누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흥미를 느낄 수 있음을 깨달 았다. 위컴 씨와 장교들 같은 경쟁자 탓에 콜린스 씨는 아가씨들 시선에서 멀어져 초라한 처지가 되었다. 아가씨들에겐 그가 없 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필립스 부인만큼은 열심히 그 의 얘기를 들어주어 가끔 말을 건넬 수 있었고, 그녀가 쉬지 않 고 주의를 기울여준 덕분에 커피와 머핀(옥수수 가루를 섞어 살짝 구은 작고 둥그스름한 빵)도 그럭저럭 먹을 수 있었다. 카드 테이블이 놓이자 콜린스 씨는 휘스트(네 명이 하는 카 드놀이)에 끼어 부인의 배려에 보답할 기회를 얻었다. "당장에는 이 게임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그가 말했 다. "하지만 기꺼이 배워 보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제 처지 에서는………………." 필립스 부인은 무척 고맙다고 인사를 하긴 했지 만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까지 다 들을 여유가 없었다. 휘스트 놀이에서 빠진 위컴 씨는 다른 테이블로 가서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는 엘리자베스와 리디아 사이에 앉았다. 처음에 는 리디아가 대화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듯 보였다. 그녀가 말 을 시작하면 아무도 끼어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제비뽑기 놀이 또한 수다만큼 좋아하는 탓에 차츰 카드 놀이에 빠졌고, 베팅해서 이기겠노라 큰소리를 치느라 누군가에게 관 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위컴 씨는 카드 놀이의 진 행을 어느 정도 따라가면서 엘리자베스와 대화할 기회를 얻었 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가장 궁금하게 여기던 이야기, 즉 다 아시 씨와 그가 어떻게 알게 됐는지에 대해 들을 수 있으리라 고는 바라지 않았지만 그의 말이라면 언제든 들어줄 자세가 돼 있었다. 사실 그녀 입장에서 그 신사의 이름을 꺼내기도 힘들 었다. 그러나 뜻밖에 그녀의 궁금증이 풀렸다. 위컴 씨 쪽에서 그 얘기를 먼저 꺼낸 것이다. 그는 네더필드가 메리턴에서 얼 마나 멀리 떨어져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녀가 대답하자 망설이면서 다아시 씨가 그곳에 얼마 동안 머물러 있었느냐고 물었다. "한 달쯤 됐나 봐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그녀가 덧붙였다. "그분은 더비셔에 엄청난 재산을 가 지고 계신다죠?" "그렇습니다." 위컴 씨가 대답했다. "정말 어마어마하지요. 일 년에 버는 것만 1만 파운드니까요. 그분에 대해 가장 정확한 사실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저뿐일 겁니다. 어릴 적부터 그분 집안과 특별한 관계였거든요." 엘리자베스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제 우리가 만났을 때 차갑게 대하는 걸 보셨지요. 그러니 놀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아시 씨와는 잘 아는 사이신가요. 베넷 양?" "적당히 알지요." 엘리자베스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 다. "그 사람하고 한집에서 나흘이나 보냈는데 무척 기분 나쁜 분이던데요." "제게는 그분이 기분 나쁜 분인지 아닌지 말씀드릴 권리가 없군요. 그런 의견을 말할 자격이 없지요. 워낙 오래전부터 서 로를 세세하게 잘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공평한 심판자가 될 수 없는 것이죠. 자연히 한편으로 기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 만 당신의 의견을 들으면 사람들이 놀랄 겁니다. 다른 곳에서 는 그렇게 잘라 말하지 않으시겠죠? 여기야 가족끼리니 그러 시겠지만." "확실히 말하지만, 네더필드라면 몰라도 이 부근 어디서든 제가 방금 한 얘기를 감출 까닭이 없어요. 하트퍼드셔에서는 그분을 좋아할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그분의 오만을 누구나 기분 나쁘게 생각하거든요. 아무도 저보다 좋게 말할 사람은 없을걸요." "누가 됐더라도.” 잠시 뜸을 들인 위컴이 말을 이었다. "실제 로 됨됨이 이상 평가받지 못한다고 제가 아쉬울 까닭은 없겠지 요. 하지만 그분은 실제 됨됨이보다 못하게 평가받지 않거든 요. 대개 그분이 바라는 대로 봐준답니다." "제가 아는 건 조금이지만 성격이 까다로운 분임에는 틀림 없어요." 위컴은 고개를 저었다. "그분이 말이지요." 기회가 오 자 위컴이 말을 꺼냈다. "이 고장에서 얼마나 더 오래 머물지 알고 싶군요." "글쎄요, 알 수 없어요. 제가 네더필드에 있는 동안 그분이 떠난다는 얘긴 한 번도 못 들었거든요. 그분이 가까이 있다는 게 주둔 부대에 체류하려는 당신 계획에 차질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다아시 씨 때문에 내쫓길 일은 없습 니다. 나를 만나기 싫으면 그가 떠나야지요. 우리 사이는 사실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라 그를 만나는 게 늘 고통스럽지만, 그 렇다고 제가 피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세상에 내놓고 할 수 있 는 얘기지만, 제가 얼마나 그분한테 온전한 대우를 받지 못하 고, 그분이 그런 사람이란 사실이 가슴 아플 뿐입니다. 그분의 선친께서는 정말 세상에서 가장 착한 분이셨고, 제가 만난 사 람 가운데 가장 진실한 벗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아시 씨와 같이 있을 때면 늘 선친이 남긴 숱한 애정 어린 추억 때문에 그의 됨됨이가 뼈에 사무치도록 비통하답니다. 다아시 씨가 제 게 한 행동은 터무니없고 부끄러운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분이 어떤 행동을 해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선친 의 희망을 저버리고 영혼을 욕되게 하지 않는 한 말이에요." 엘리자베스는 화제가 흥미로워지자 그의 말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화제가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더 묻지는 못했다. 위컴 씨는 메리턴과 이웃, 사교계 등 좀더 일반적인 화제를 끄집어냈다. 자신이 이 고장에서 지금까지 겪은 일들이 매우 만족스러웠는지, 사교계를 말할 때에도 진지하면서도 확실하 게 관심을 드러냈다. "제가 주둔 부대로 오기로 한 가장 큰 이유가......." 그가 말 을 이었다. “이곳에서 열리는 사교 모임이 지속적이고 무척 홀 륭하다는 것 때문입니다. 이 부대는 아주 평판이 좋고 지내는 데에도 큰 불편이 없다고 알려졌거든요. 친구인 데니가 그렇게 말하더군요. 메리턴 부근에는 훌륭한 분이 많고 장교들에 대한 관심 또한 크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실 제게는 사교가 반드 시 필요합니다. 워낙 깊은 좌절을 겪은지라 외로움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지요. 그래서 직장과 사교적 모임이 꼭 필요하지 요. 원래 군대 생활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여 건이었지요. 목사가 돼야 했어요. 그렇게 교육을 받았거든요. 그리고 좀 전에 얘기한 그 신사만 허락했더라도 지금쯤 성직자 로서 넉넉한 고정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어쩜 그럴 수가!" "맞습니다. 돌아가신 다아시 어른께서 증여권이 있던 직위 가운데 최상의 것을 제가 물려받도록 유언했습니다. 그분이 제 대부였거든요. 그런 만큼 저를 끔찍하게 사랑하셨지요. 그분의 은혜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저를 위해 많은 수입을 남 겨주실 생각이셨고, 실제로 그렇게 해놓았다고 믿으셨죠. 하지 만 기회가 됐을 때에는 이미 그것은 다른 사람 차지가 되고 말 았습니다." "어쩌나!" 엘리자베스가 소리쳤다. "헌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요? 어떻게 유언을 무시할 수 있지요? 혹시 재판을 해서 돌려받을 수 없었나요?" "유언에 분명히 언급된 사항이 아니어서 법의 도움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명예를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어른의 의지를 의 심하지 않겠지만 다아시 씨는 그걸 무슨 단순한 권고 사항인 양 다루었지요. 게다가 제가 무절제하고 분별없는 생활을 했다 는 식으로 몰아가면서 제가 목사로서 모든 권리를 상실했다고 선언해 버린 거랍니다. 목사 자리는 2년 전 제가 막 차지할 나 이가 되면서 마침 비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차지 한 거죠.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내가 그 자리를 상실할 만한 어떤 일도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흥분을 잘하고 부주 의한 성격이라 그분에 대한 제 견해를 너무 드러내서 얘기한 적은 있습니다. 그 이상의 어떤 나쁜 짓도 한 적은 없지요. 어쨌 거나 중요한 건 그 사람과 나는 지극히 다른 종류의 인간이고, 그 사람이 저를 무척이나 싫어한다는 점입니다." "정말 충격적이네요! 온 세상에 망신을 당해야 할 만한 일이 군요."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죠. 하지만 내가 나서서 창피를 주고 싶지는 않아요. 그 친구 부친을 잊어버릴 때까지는 싸움을 걸 거나 정체를 까발릴 의사가 없습니다." 엘리자베스는 그의 그런 마음가짐이 좋았다. 속내를 알아갈 수록 그의 모습이 어느 때보다 훌륭해 보였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말을 끊었다가 엘리자베스가 입 을 열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걸까요? 어째서 그렇게 잔인 한 행동을 하게 된 걸까요?" "저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싫어합니다. 그 까닭은 질투심 때문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고인이 된 다아시 씨가 저에 대한 애정을 덜 지녔으면 다아시 씨가 나에게 더 잘 대했 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그의 부친은 저를 유별나게 사랑하셨 고, 그게 어릴 적부터 아들에겐 불만이었던 모양입니다. 성격 상 그 사람은 우리 사이에 깔린 경쟁, 혹은 자주 드러났던 편애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거죠." "다아시 씨가 그토록 질이 안 좋은지 몰랐네요. 그 사람에게 호감을 가진 적은 없지만,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곤 생각지 않 았거든요. 대체로 사람들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보였어도 그런 악의에 찬 앙갚음과 부당한 행위나 인간성을 잃은 행동을 할 정도로 낮은 부류의 사람이라곤 짐작하지 못했어요." 그녀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이 언젠가 네더필드에서 자신은 화가 나면 풀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대를 절대 용서하 지 않는 성격이라고 강조하던 게 생각나네요. 아주 못된 성격 임에 틀림이 없군요." "그런 문제에 대해서라면 무슨 말을 하게 될지 모르겠네요." 위컴이 대답했다. "제 입장에선 그 사람에 관한 한 공정해지기 힘들거든요." 엘리자베스는 다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큰소리로 말했 다. "선친의 대자이자 벗이며 특별히 사랑받던 사람에게 그렇 게 대하다니!" 그리고 '당신처럼 얼굴만 봐도 호감이 가는 홀 륭한 청년을' 이라고 덧붙이고 싶었지만, 그냥 "더구나 어릴 적 부터 가까이 지내던 동무를!" 하는 데에 그쳤다. "우리는 같은 교구의 같은 장원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의 대 부분을 같이 보냈습니다. 같은 집에서 살면서 어울려 놀았고, 둘 다 훌륭한 부친의 보살핌 아래 있었습니다. 제 부친은 당신 이모부인 필립스 씨와 같은 직업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돌아 가신 다아시 씨의 재산 관리를 돕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일생을 펨벌리의 재산을 관리하는 데에 바치셨지요. 다아시 어 른은 부친을 매우 높게 평가하였고, 가장 가까운 친구로서 신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제 부친의 헌신적인 재산 관리에 보답을 해야 한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씀하셨답니다. 제 부친이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이 먼저 저를 위해 목사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때 부친께선 그게 저에 대한 애정의 빚이며, 자신에 대한 고마움의 빚이라고 여기셨을 겁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엘리자베스가 소리쳤다. "그렇다 면 다아시 씨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선생님께 공평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는 게 이상하군요. 그 정도 동기라면 옳지 못한 일 을 할 수 없었을 텐데요. 그건 전부 옳지 못한 행동이지요." "정말 놀라운 일이긴 합니다." 위컴이 대답했다. "그 사람 행 동에는 모두 자존심이 작용하니까요. 자존심이야말로 그 사람 의 유일무이한 친구인 셈이죠. 다른 어떤 감정보다도 자존심만 이 그나마 옳은 행동 비슷한 거라도 할 수 있게 했으니까요. 하 긴 누구라도 완벽하게 일관된 행동을 할 수는 없겠지요. 특히 그 사람이 제게 한 행동의 배경에는 자존심보다 더 강한 다른 동기가 숨어 있었고요." "그런 질긴 자존심이 자신한테 무슨 도움이 된 적이 있기는 한가요?" "있지요. 그 사람은 자존심 때문에 너그러워질 때가 있습니 다. 예컨대 돈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거나 친절하게 대하고, 소 작인들에게 호의를 베풀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해 준 적이 있 습니다. 가문의 자존심, 말하자면 자식으로서의 자존심이 그렇 게 만든 것이죠. 자신의 부친에 대한 자부심은 이루 말할 수 없 으니까요.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거나 평판을 떨어뜨리는 일, 또는 펨벌리 저택이 영향력을 잃지 않도록 애쓰는 것들이 유력 한 동기죠. 그 친구는 오빠로서의 자부심도 굉장합니다. 때문 에 동기 간의 사랑이 조금 섞인 후견인으로서 여동생에게 무척 사려 깊고 상냥하게 대해 주지요. 그래서 당신 역시 그처럼 사 려 깊고 훌륭한 오빠는 본 적이 없다는 칭찬의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다아시 양은 어떻지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상냥한 아가씨라고 할 수 있으면 좋겠 지만, 다아시 집안을 나쁘게 볼 수밖에 없는 저로서는 곤혹스 럽군요. 사실 그 아가씨도 오빠와 매한가지입니다. 몹시, 정말 몹시 오만합니다. 어릴 적엔 다정하고 붙임성이 있어 저를 많 이 따랐습니다. 저 역시 오랜 시간 같이 놀아주곤 했지요. 하지만 이제 저하곤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나이는 열댓 살인데 기 품 있고 많은 교양을 갖추었다고들 하지요. 부친이 고인이 된 이후 런던에서 그 아가씨 교육을 챙기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답니다." 몇 차례 말을 끊고 다른 얘기를 섞다가 엘리자베스는 다시 앞서의 화제를 끄집어냈다. "그 사람이 빙리 씨와 친구 사이란 게 놀라워요! 빙리 씨는 항상 명랑하고 상냥한 분인데 어떻게 그런 분하고 친구가 되었 을까요. 두 사람의 마음이 통하는 게 정말 이상하군요. 빙리 씨 를 아세요?" "전혀, 모릅니다." "친절하고 다정한 기분 좋은 분이죠. 다아시 씨의 사람됨을 잘 모르는 게 분명해요." "아마 그럴 겁니다. 하지만 다아시 씨도 때에 따라선 좋은 친 구가 되기도 합니다. 재능이 모자란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겐 적당히 말동무가 됩니다. 신분이 비슷한 사람끼리 있을 때와 그렇지 못한 사람을 대할 때완 사 람이 달라지지요. 오만함이 어디 가겠습니까? 그래도 부자들 을 대할 때에는 아량 있고 공평하며 열심이고 합리적인 데에다 명예를 중히 여기고 부드럽기까지 할 겁니다. 재산과 지위가 있으면 먼저 접고 들어가니까요." 휘스트 놀이가 끝나고 사람들이 다른 탁자로 모여들었다. 콜 린스 씨는 엘리자베스와 필립스 부인 중간을 차지했다. 필립스 부인은 콜린스 씨에게 얼마나 땄는지 의례적으로 물었다. 그는 돈을 따지 못했으며, 할 때마다 잃기만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필립스 부인이 염려해 주자 매우 진지한 태도로 자기는 돈을 잃은 것에 조금도 괘념치 않으며, 그 정도의 돈은 별게 아니라 면서 미안한 생각은 거두어 달라고 부탁했다. "한번 카드 놀이를 시작하면." 그가 말했다. "그럴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부인, 다행스럽게 5실 링 정도 잃은 건 큰 손해가 아니니까요. 이렇게 말할 수 없는 사 람도 많겠지만 저는 캐서린 드 버그 영부인 덕분에 적은 금액 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답니다." 그 말을 듣고 위컴 씨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콜린스 씨를 잠깐 쳐다본 뒤 엘리자베스에게 그가 드 버그 집안과 매우 친 밀한 사이인지 물었다. "캐서린 드 버그 영부인과 앤 다아시 영부인이 한 자매라는 건 아시지요? 그러니 그분은 다아시 씨의 이모시지요." "전혀 몰랐습니다. 캐서린 영부인 집안 내력은 잘 모릅니다. 그저께가지만 해도 그런 분이 계신지도 몰랐으니까요." "그분의 딸인 드 버그 양은 대단히 많은 유산을 물려받을 예 정입니다. 특히 모든 사람이 그 아가씨와 사촌인 다아시 씨가 두 집안의 재산을 합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말에 엘리자베스는 애처로운 빙리 양을 떠올리며 살짝 웃 음 지었다. 그가 이미 다른 사람과 혼인할 생각이라면 빙리 양 의 관심은 전부 물거품이 될 것이고, 그의 여동생에 대한 그녀 의 사랑이며, 칭찬이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니까 말이다. "콜린스 씨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캐서린 영부인과 그 딸을 전부 좋게 말씀하십니다만, 그 이면에는 감사의 마음 이 그분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것은 아닌지요. 부인이 콜린스 씨의 후견인이긴 하지만 오만하고 잘난 체하는 사람이 아닌지 미심쩍더군요." "그런 분이 맞습니다." 위컴이 대답했다. "그분을 보지 못한 게 몇 해 되었지만 제가 한 번도 그 부인에게 호감을 느껴 본 적 도 없을뿐더러, 오만불손한 태도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대체로 분별력이 뛰어나고 머리가 무척 좋다고 알려진 분인데, 제 생각에 그 부인의 능력은 지위와 재산, 권위적인 태도, 그리 고 자신의 친척이라면 아주 우수한 지적 능력을 지닌 게 당연 하다고 여기는 그 조카의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 같더군요." 엘리자베스는 무척 타당한 설명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서로 만족해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드디어 카드 놀이가 끝나고 식 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옮긴 탓에 다른 숙녀들도 위컴 씨의 관 심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 필립스 부인 댁 저녁식사 때의 시끄러운 분위기 때문에 더는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지만 예의가 바른 것을 보고 모두 그에게 호감을 가졌다. 그의 말은 어떤 말 이든 적절했고 행동 역시 품위 있었다. 이모 댁을 떠나면서 엘 리자베스 머리에는 온통 그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집으로 가는 동안 줄곧 위컴 씨와 그가 한 말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내뱉지는 못했다. 리디아와 콜린스 씨가 쉬지 않고 떠들었기 때문이다. 리디아는 줄기차게 제비뽑기 티켓과 자신이 잃은 피시(카드 놀이에서 점수 계산에 쓰이는 조각)와 딴 피시에 대해 얘기했 다. 콜린스 씨는 필립스 내외의 상냥함을 언급하면서 자신은 휘스트에서 잃은 걸 조금도 괘념치 않는다고 강조하면서 식사 때 나온 요리 가짓수를 열거하기도 했다. 또 자신 때문에 사촌 들이 비좁지나 않은지 염려를 표하느라 마차가 롱본의 집 앞에 설 때까지 할 말이 너무 많아 어쩔 줄을 몰랐다.
이튿날 아침 엘리자베스는 지난 밤 위컴 씨와 나눈 대화 내 용을 제인한테 전했다. 제인은 놀란 마음에 근심스럽게 얘기를 들었다. 그녀는 다아시 씨가 병리 씨와의 우정에 걸맞지 않는 사람인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다고 성격상 위 컴 씨처럼 선한 사람을 못 믿는다는 건 옳지 못했다. 위컴을 정 말로 냉대했을 가능성만으로도 그녀는 동정심을 불러일으켰 다. 그래서 그녀는 두 남자를 좋게 해석하고, 그들 나름의 행동 을 옹호하면서 받아들일 수 없는 건 우연이나 착오로 치부하였다. "추측하건대" 재인이 말했다. "둘 다 서로 오해한 것 같아. 우리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지, 이해관계 때문에 다른 사람들없지." 이 이간질을 했을 거야. 어느 한 사람에게 죄를 덮어 씌우지 않 는 한 우리로선 두 사람 관계가 벌어진 원인이나 사정을 알 수 없지“ "맞는 얘기야. 그런데 언니,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두 사 람 사이를 벌어지게 한 사람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그 사 람들도 변호가 필요하지 않아? 안 그러면 누군가는 나쁜 사람 이 돼야 하니까." 비웃으려면 비웃어. 하지만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아. 예, 리 지야, 생각 좀 해보령, 이게 다아시 씨를 얼마나 부끄럽게 만드 는 일인지, 선친이 소중히 여기던 사람을 그렇게 박대했다니. 더욱이 생계가 보장된 목사직까지 약속한 분인데, 그럴 리가 없어, 자기 인격을 조금이라도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것은 못하지, 가장 친하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하다니. 그럴 리 가 없어." 내 생각에는 위엄 씨가 어제 한 얘기가 지어낸 것이라기보 다 빙리 씨가 속았던 것 같아. 그분은 그와 관련된 이름이나 사 실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하더라고, 그게 거짓이라면 다아시 씨에게 반증해 보라고 하지, 뭐, 위컴 씨는 정말로 진실한 표정 이었거든." "정말 어려운 문제구나, 안쓰럽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모르겠네." "미안한 얘긴데, 너무 뻔한 거 아니니?" 그러나 제인 역시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빙 리 씨가 만약 속은 거라면 진실이 드러났을 때 그가 무척 괴로 워할 것이라는 점이다. 관목 숲에서 이런 이야기가 오갈 때 화제의 당사자인 사람들 이 두 자매를 불러냈다. 기다리던 네더필드의 무도회 날짜가 다음 주 화요일로 잡혀 빙리 씨와 그의 누이동생들이 초대 의 사를 전하기 위해 직접 찾아온 것이다. 빙리 자매는 제인에게 가까운 친구를 다시 만나 반갑고, 지난번 헤어진 뒤 오랜 세월 이 흐른 느낌이라면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거듭 물었다. 그들은 다른 가족들에게는 거의 눈길조차 보내지 않았다. 베넷 부인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했고, 엘리자베스에게도 의례적인 말을 건넸을 뿐이며, 나머지 사람들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았 다. 얼마 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특히 빙리 씨가 놀랄 정 도로 황급히 일어나 베넷 부인의 정중한 인사를 피하고 싶다는 듯 그 집을 떠났다. 네더필드의 무도회는 베넷 집안의 모든 여인들에게 무척 유 쾌한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베넷 부인은 무도회가 제인을 위해 열리는 것이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더욱이 의례적인 초대장을 보낸 것이 아니라 직접 빙리 씨가 초대한 점을 자랑스럽게 여 겼다. 제인은 두 친구와 같이 보낼 저녁과 그녀들 오빠의 환대 속에서 행복한 하룻밤을 지낼 상상에 빠져들었다. 엘리자베스는 위컴 씨와 여러 번 춤을 출 기대감과 다아시 씨의 표정과 행 동을 통해 모든 것을 확인하리라 생각하며 즐거워했다. 캐서린 과 리디아가 바라는 즐거움은 특정한 사람이나 사건과 연관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들 역시 엘리자베스처럼 그날 밤의 반 정 도의 시간은 위컴 씨와 춤을 출 작정이지만, 그만이 만족할 만 한 유일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러나 무도회는 무도회였다. 메 리까지도 무도회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털어놓았을 정도였다. "아침 시간에 혼자 있을 수 있다면.......” 그녀가 말했다. "그 것만으로도 충분해, 저녁에 모임에 가는 걸 희생이라고 생각지 는 않아. 우리에겐 사교가 필요하니까. 나는 오락과 유희를 즐 기는 게 좋다고 여기는 사람 가운데 하나야." 엘리자베스는 무도회에 대한 기대 때문에 매우 쾌활해져서 필요 이상으로 대화를 피하던 콜린스 씨에게까지 빙리 씨의 초 대에 응할 것인지, 만약 응한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춤을 추고 노는 게 정당한 것인지 물었다. 뜻밖에도 그는 그런 일에 대해 조금도 꺼려하지 않았고, 춤을 춘다고 대주교나 캐서린 드버 그 영부인에게 책망을 받게 될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는 걸 알 수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콜린스 씨가 말했다. "저는 괜찮 은 신분의 청년이 점잖은 사람들을 위해 여는 무도회를 결코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대는커녕 그날 밤 여러분의 손을 모두 잡아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양, 특히 당신께 처음 두 번의 무도에서 손을 잡을 기회를 주었으면 합 니다. 제인 양, 당신을 놔두고 엘리자베스에게 청하는 게 당신 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그러니 이해 바 랍니다." 엘리자베스는 난처했다. 사실 처음 두 번의 춤을 위컴과 추 리라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콜린스 씨가 벼르고 있다니. 엘리자베스의 명랑한 성격이 그렇게 뭉개진 적 은 없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위컴 씨와의 즐거운 시간은 잠시 미뤄 둘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별 도리 없이 콜린 스 씨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엘리자베스는 그가 춤을 청한 데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에 머릿속 이 어지러웠다. 그녀는 그제서야 베넷 집안 딸 가운데 자신이 헌스퍼드 목사관의 안주인 자격이 있고, 로징스에 별다른 방문 객이 없을 때에 커드릴 테이블(4인조 카드 놀이)에 머릿수를 채울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뽑혔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콜린스 씨는 그녀에게 더욱 친절하게 대했고, 자신의 재치와 명랑함에 대해 여러 차례 칭찬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그 생 각은 이내 확신으로 굳혀졌다. 그녀는 자신이 풍기는 매력에 만족한다기보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 판국에 어머니는 그들이 결혼한다면 매우 기쁠 것이라는 의사를 은근히 드러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척했다. 자칫 대 답했다가는 심각한 말싸움이 벌어질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콜 린스 씨가 프러포즈를 안 할지도 모르고, 실제로 그때까지 그 로 인해 말다툼을 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네더필드의 무도회를 준비하거나, 그에 대해 이야기할 거리 가 없었더라면 베넷 집안의 아래 두 딸은 애처로운 꼴이 되었 을 것이다. 무도회에 초대를 받은 날부터 당일까지 날마다 비 가 와서 두 딸은 한 번도 메리턴으로 산책을 나갈 수 없었다. 이 모에게서도, 장교들에게서도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네더필드 에 신고 갈 구두에 쓸 장미꽃 모양 장식도 하인을 시켜 사왔다. 엘리자베스도 날씨 탓에 자신의 인내심이 시험당하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고약해진 날씨 때문에 위컴 씨와 가까워질 기회를 잃은 것이다. 그나마 그녀들을 기다리는 화요일에 열리 는 무도회가 없었더라면 키티와 리디아에게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을 참고 기다리라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위컴 씨가 초대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 다. 네더필드의 응접실에 들어서자마자 그곳에 모인 붉은 제복 차림의 사람들 가운데 위컴 씨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어쩌면 그런 염려는 당연한 것이었는데도 무도회에 가면 그를 만나게 되리라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그녀 는 그날 평소보다 훨씬 신경을 써서 옷을 입었고, 위컴 씨 마음 속에 여전히 정복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완전히 정복하리라 다짐하면서 애써 쾌활하게 준비했다. 그런데 그 순간, 빙리 씨 가 장교들을 초대하면서 다아시 씨의 기분을 고려하여 위컴을 일부러 안 부른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 의 심이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위컴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의 친구 데니의 말을 통해 알았다. 의아해하는 리디아가 이 유를 묻자 데니 씨는 위컴은 볼일 때문에 그 전날 런던에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면서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 친구가 이곳에서 누군가 만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공교롭게 이 시점에 볼일이 생기지는 않았겠지요." 리디아는 그 말을 듣지 못했지만 엘리자베스는 분명히 들었 다. 위컴이 안 오는 까닭이 추측과 다르더라도 어쨌든 다아시 씨 탓임이 확실하기에 큰 실망감이 치밀었고, 다아시 씨가 다 가와 인사할 때 도저히 공손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다아시 씨 에게 관심을 쏟고 참고 포용하는 것은 위컴 씨를 모욕하는 일 이었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 씨와 어떤 말도 하지 않기로 마 음먹었다. 때문에 조금 불쾌한 기색으로 다아시 씨를 외면했으 며, 화난 마음은 빙리 씨와 대화하는 동안에도 누그러지지 않 았다. 빙리 씨의 우정이 지나치게 다아시 씨 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언짢은 기분을 오래 유지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자신의 기대가 무너지기는 했지만 그 사실에 오래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일주일 동안 한 번도 못 봤던 샬럿 루카 스에게 마음 상한 얘기를 모두 한 다음, 이내 사촌 콜린스 씨의 묘한 언행을 화제로 삼으면서 그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러 나 처음 두 번의 무도가 다시 그녀를 곤란하게 했다. 한마디로 고행이었다. 콜린스 씨는 공연히 점잖은 체하며 배려보다는 핑 계를 늘어놓았으며, 부주의한 실수를 하면서도 알아차리지 못 하는 등 유쾌하지 못한 상대였다. 이런 사람과 춤을 추면서 생 기는 수치와 참담한 꼴을 모두 겪은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그 에게서 풀려나는 순간 살 것만 같았다. 이어서 그녀는 한 장교와 춤을 추었다. 그와 위컴에 대해 애 기하면서 위컴이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준다는 말을 듣고 웬만 큼 기분이 좋아졌다. 춤이 끝나자 엘리자베스는 샬럿 루카스에 게 돌아갔다. 그리고 둘이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다아시 씨가 춤을 신청했다. 너무나 갑작스런 일이라 그녀는 얼떨결에 승낙 을 하고 말았다. 춤을 마치고 다아시 씨가 금방 돌아갔기 때문 에 혼자 남은 엘리자베스는 얼을 빼고 있던 자신이 짜증스러웠 다. 샬럿이 위로하듯 말했다. "어쩌면 좋은 분일지 몰라." "천만에! 그거야말로 최악의 불행이야. 미워하기로 작정한 사람이 좋은 분일지 모른다니, 차라리 악담을 해라!" 그러나 다시 춤추는 시간이 돌아와 다아시 씨가 춤을 청하러 오자 샬럿은 그녀에게 어리석게 행동하지 말고, 그보다 열 배 나 중요한 남자의 눈에 불쾌하게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충 고했다. 엘리자베스는 아무런 대꾸 없이 춤추는 무리에 섞였 다. 그녀는 다아시 씨의 상대가 되면서 자신이 보인 위엄에 스스로 놀라면서 사방을 둘러보니 주위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같 은 감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둘은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침묵이 춤을 두 번 추는 동안 이어질 거라 고 생각했으며, 자신이 그것을 깨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하 지만 그가 얘기를 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고 의례적인 인사말을 몇 마 디 던졌다. 그 말에 대꾸한 뒤 그는 다시 말문을 닫았다. 몇 분 간의 침묵이 흐르고 그녀가 다시 말을 건넸다. "다아시 씨, 이번엔 당신이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않아요? 제 가 춤 얘기를 했으니 이번엔 당신이 방의 크기랄지, 몇 쌍이 모 였다든지 하는 말을 하셔야죠." 다아시 씨는 살짝 웃음을 지으며 무슨 말이든 그녀가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했다. "좋아요.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해요. 조금 있으면 저도 개인이 여는 무도회보다 공개 무도회가 훨씬 흥미롭다고 말할지도 몰 라요. 하지만 지금은 어떤 말도 하지 않겠어요." "그럼 춤출 때에 규칙에 따라 얘기를 하십니까?" "때론 그렇지요. 30분이나 같이 춤을 추면서 말이 없다면 이 상하게 보이겠지요.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말하는 수고를 덜 어주기 위해 가만히 있는 게 도움이 되겠죠." "지금 같은 경우에는 당신 기분에 따른 건가요, 아니면 내 감정에 맞춘다고 여기시는 건가요?" "양쪽 다예요." 엘리자베스는 능청을 떨며 대답했다. "왜냐 하면 저와 당신은 취향이 늘 비슷하게 보였거든요. 둘 다 사교 적이지 못하고 말수도 적고....... 우리가 말을 할 때에는 모든 사람이 경탄하며 박수를 쳐 후손에게 전해질 정도는 해야 하니 까요." "그건 당신의 성격과 다른 것 같군요." 그가 말했다. "그리고 내 성격과도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 말할 수 없을 것 같네요. 당 신이 내 성격을 충실히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분명합니 다만." "제 말에 대해 스스로 이렇다. 저렇다 해선 안 되겠지요." 다아시 씨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둘은 춤이 끝날 때 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가 엘리자베스 자매들 이 메리턴에 종종 산책을 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 렇다고 대답하면서 결국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덧붙였다. "언 젠가 거기서 뵈었을 때에는 저희가 어떤 분을 새로 사귀고 있었지요." 곧바로 그 말의 효과가 나타났다. 평소보다 더한 오만함이 얼굴에 가득했다. 그러나 그는 침묵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용기가 부족함을 탓하면서도 말을 잇지 못했다. 조금 뒤 입을 연 다아시 씨가 거북스럽게 말했다. "위컴 씨는 좋은 인상을 타고났고 친구를 잘 사귀지만 그런 사람을 잘 유지하는지는 분명치 않아요." "불행하게도 두 분 사이가 멀어진 건 사실이지요." 엘리자베 스가 강조했다. "그래서 일생을 두고 괴로움을 견뎌야 할 것같 군요." 다아시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화제를 바꾸기를 바라는 듯 보였다. 바로 그때 윌리엄 루카스 경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들 곁을 지나 반대쪽 방으로 가려던 참인 듯했다. 그는 다아 시 씨를 보고 걸음을 멈춘 채 정중하게 인사를 한 뒤 그의 춤과 상대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았다. "정말 멋진 춤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춤을 추는 사람은 본 적 이 없습니다. 상대 분도 당신만큼 잘 추시더군요. 이런 즐거움 을 앞으로도 종종 누렸으면 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좋은 일이 (제인과 빙리를 힐끔 보면서) 생겼으면 합니다. 대단한 경사가 아니겠습니까! 다아시 씨에게 부탁하고 싶지만 더 이상 방해하 지 않겠습니다. 두 분 사이의 멋진 대화를 끊는 걸 바라지 않으 실 테고, 일라이자 양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저를 나무라는군 요." 다아시 씨는 윌리엄 경이 끝으로 한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 다. 그러나 윌리엄 경이 자기 친구에 대해 넌지시 언급한 얘기 에는 강한 인상을 받은 듯이 춤을 추고 있는 빙리와 제인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상대를 향례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윌리엄 경이 방해해서 우리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까먹었 내요" "아무 애기도 하지 않았어요. 윌리엄 정이 우리보다 할 얘기 가 없는 사람을 방해하진 못했을 테니까요. 벌써 두세 가지 화 제가 밀려났고, 앞으로 무슨 얘기를 더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책에 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그가 살짝 웃음을 머금었다. "책이요? 그건 아니에요. 우린 같은 책을 읽은 적이 없고, 또 읽었다 해도 같은 감정으로 읽은 건 아니겠죠.” "그건 유감입니다. 하지만 사정이 그러하면 화제로서 모자 람이 없네요. 서로 반대되는 의견을 비교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럴 순 없어요 무도회장에서 책 이야기라니요. 제 머릿속 에는 늘 다른 것들이 가득 차 있으니까요." "이런 곳에선 항상 '지금'에 집중한다는 얘긴가요?" 그가 의아한 듯 붙었다. "맞아요. 항상 엘리자베스는 화제와 관계없는 생각을 마음 리며 무심코 대답했다. 그녀가 다른 생각을 떠올린 것은 이내 엉뚱한 외침으로 나타났다. 다아시 씨, 일전에 당신이 관용이 부족하고 화를 잘 누그러뜨리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하셨던 게 기억나는데요, 그림 화를 낸 때 무척 심각하게 낸다는 얘긴가 맞습니다." 그가 단호하게 대꾸했다. "편견 탓에 잘못된 생각을 따르지는 않고요?" "그린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만 자기 생각을 절대 바꾸지 않는 사람들은 처음에 판단을 감 해야 할 의무가 있지요." "무슨 의도로 그렇게 묻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단지 당신 성격을 그려 보려는 것뿐이에요" 그녀는 심각할을 떨치려 애쓰면서 말했다. "그걸 분명히 해보고 싶거든요 "그렇게 해서 무슨 결론이라도?"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잘 진행이 안 돼요. 당신에 관한 다 큰 얘기를 많이 들어서 종잡을 수가 없어요." "다른 얘기들이......" 그는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 "많이 있 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로서는 베넷 양,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내 성격에 대해 억측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봐야 누구에게도 좋을 리가 없을 것 같아 우려스러우니까요." "그래도 지금 아니면 기회가 영돌아오지 않을 텐데요" "딱히 그러시다면 막지 않겠어요." 그는 차갑게 내뱉었다. 그녀는 말을 잊지 않았고 좋은 말없이 춤을 계속 춘 뒤 갈라섰다. 두 사람 모두 기분이 썩 좋지 않 았는데, 정도가 같은 건 아니었다. 다아시 씨는 엘리자베스에 게 매우 좋은 감정을 품었기 때문에 이내 그녀를 용서했지만 노여움은 다른 사람에게 향했다. 잠시 뒤, 빙리 양이 엘리자베스에게 와서 공손하면서도 경멸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자, 일라이자 양, 조지 위컴을 꽤나 좋아한다죠! 제인 언니 가 그 사람 얘기를 하면서 몇 가지를 묻더군요. 헌데 듣다 보니 그 청년이 다른 얘기를 다했으면서도 자기 부친이 돌아가신 다 아시 씨의 청지기였음을 잊어버리고 말을 안 했더라고요. 하지 만 친구로서 충고하겠어요. 그 사람 얘길 무작정 믿어서는 안 돼요. 다아시 씨가 그 사람을 냉대했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그 러기는커녕 얼마나 친절하게 대했는지 몰라요. 오히려 조지 위 컴이 다아시 씨에게 굉장히 못되게 굴었는데도 다아시 씨는 줄 곧 친절을 베풀었던 거라고요.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다아시 씨는 잘못한 게 없고요, 조지 위컴의 이름을 듣는 것조차 참기 힘들다고 하네요. 우리 오빠도 그를 빼놓고 다른 장교들만 초 대할 순 없었지만 그가 알아서 빠졌기 때문에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고 있지요. 위컴 씨가 이 고장에 온 것 자체가 엄청난 실례 지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어처구니가 없네요. 아무 튼 좋아하는 분의 잘못이 드러나서 안타깝네요. 하지만 그 사람 집안 내력을 고려하면 더 나은 행동을 바라는 게 무리지요." "당신 말을 들으면 그의 잘못과 집안 내력이 같은 의미인 것 같군요." 엘리자베스가 화를 내며 말했다. "제가 듣기엔 그의 잘못 가운데 가장 잘못된 것이 다아시 씨 청지기 아들이라는 사실인 것 같으니까요. 헌데 그 점에 대해 확실히 말씀드리자 면 그분이 제게 직접 이야기를 했답니다." "미안하네요." 빙리 양이 경멸조의 웃음과 함께 엘리자베스 를 외면하며 쏘아붙였다. "괜한 참견을 용서해 주세요. 선의로 한 말이니까요." "건방진 계집애!" 엘리자베스가 혼자 내뱉었다. "그렇게 허 술한 공격으로 내 생각을 바꾸려 했다면 오산이지. 너는 자신 이 고집불통이고 무식한 것과 다아시 씨의 단점을 더 드러낸 것밖에 없잖아." 그녀는 그 문제에 대해 빙리 씨에게 물었던 언 니를 찾았다. 제인은 매우 만족스럽고 달콤한 웃음을 지으며 행복이 가득한 표정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흡족한 밤을 보내는지 눈치 챌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곧바로 언니의 상 태를 알 수 있었고, 바로 그때 위컴에 대한 연민과 그의 적들에 대한 분노, 그 밖의 모든 것에 대한 생각이 없어지고, 그저 제 인이 품은 뜻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다. "언니가......." 엘리자베스가 언니 못지않은 웃음을 띠면서 말했다. "위컴 씨에 관해 어떤 얘기를 들었는지 궁금해. 하지만 언니는 아주 즐거워서 다른 사람 생각할 겨를이 없겠지. 그렇 다 해도 용서할게." "아닌데.” 제인이 말했다. "왜 그분을 잊겠니. 하지만 바라는 답변을 해줄 수는 없구나. 빙리 씨는 그분의 이력을 낱낱이 알 지도 못하고, 게다가 다아시 씨를 화나게 한 사정은 아예 모르 더라고, 그래도 친구의 훌륭한 행동이랄지, 성실함과 명예에 관해서라면 증명할 수 있다는구나. 위컴 씨는 사실 다아시 씨 한테 받은 대우보다 훨씬 적은 대우밖에 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기는가 보더라. 또 빙리 씨나 누이가 말하는 걸 들어본 결과, 안타깝게도 위컴 씨는 썩 좋은 사람이 아닌 모양이야. 무척 경 솔해서 다아시 씨에게 신뢰를 얻지 못한 거 같아." "빙리 씨는 위컴 씨를 잘 모르잖아?" "그래, 지난번 아침에 메리턴에서 처음 만났대." "그럼 보나마나 다아시 씨한테 들은 거겠네. 그만하면 됐어. 헌데 목사직에 관해선 뭐래?" "그 일에 관해선 분명히 기억하는 바가 없다더군. 몇 차례 다 아시 씨에게 듣기는 했대. 아무튼 조건을 달고 준 걸로 알던 데." "빙리 씨가 말하는 게 진실임은 분명하겠네." 엘리자베스가 열을 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분의 확신만으로 내 생각을 바 꿀 수 없는 점도 이해해 주기를 바라. 빙리 씨 같은 사람이 변호해 주는 것만으로도 그의 말을 신뢰해야 할지 모르지. 하지만 빙리 씨도 모르는 대목이 많고 이는 부분도 다아시 씨에게 들 은 게 전부니까, 나로서는 여전히 위컴 씨와 다아시 씨에 대한 견해를 바꿀 수가 없어." 이어 두 사람은 관심이 일치하고 견해가 다르지 않은 화제를 끄집어냈다. 제인은 빙리 씨의 관심이 불러온 행복하면서도 조 심스러운 희망을 얘기했고, 엘리자베스는 즐거운 마음으로 다 들어주면서 온갖 말로 언니의 자신감을 끌어올리려 애썼다. 그 때 빙리 씨가 그들 대화에 끼어들자 엘리자베스는 루카스 양에 게 갔다. 루카스 양은 엘리자베스에게 방금 전의 상대가 어땠 는지 물었다. 엘리자베스가 대답하기 전에 콜린스 씨가 다가와 조금 전 운 좋게도 무척 기막힌 사실을 알아냈다고 열을 올리 며 말했다. "정말 신기한 발견입니다." 그가 말했다. "이 방에 제 후원자 와 아주 가까운 친척이 계시더군요. 우연히 그 신사 분이 이댁 여주인 역할을 하는 아가씨에게 당신 사촌인 드 버그 양과 그 분의 모친이신 캐서린 영부인의 존함을 꺼내는 걸 들었습니다. 무척 신기한 일이죠. 이곳에서 캐서린 영부인의 조카 분을 만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사실을 알고 지금 인사할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 인지요. 지금 가서 인사드려야죠.
This passage functions as a key set-piece of “first impressions and rumor-driven misreadings,” often cited today to discuss gossip, image politics, and confirmation bias, and in screen/stage adaptations—such as the 1995 BBC series and the 2005 film—the ball sequence is shot to cross-cut Elizabeth–Darcy gazes against Wickham’s charm, visually staging the seeds of misunderstanding and subtle emotional shifts.
제인 오스틴 지음/ 오영숙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