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tal systems, unlike analog which continuously represent real-world values, discretize information into quantized levels—trading off exact fidelity for robust transmission and storage—and as illustrated by historical examples like Korea’s beacon signal system or modern EPROM, EEPROM, and flash memories, digital representations may distort actual data due to quantization error, but their reproducibility, reliability, and capacity to maintain signal integrity even with minimal noise make them "accurate" in engineering contexts; further, the evolution of ROM from immutable memory to rewritable non-volatile memory highlights how modern digital technology strategically sacrifices continuous precision in favor of manageable, scalable systems where accuracy is achieved through high bit-depth, making digital perception of precision a product of engineering trade-offs rather than perfect truth.
광개토대왕비
금석문은 원칙적으로 그 글을 새긴 돌이 파괴되기 전까지는 그 내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나, 광개토대왕비처럼 인위적으로 조작되 거나 변조될 수도 있다. 원래 몸은 수정은 안 되고 읽기만 되는 메모리를 뜻하지만, 2장에서 반도체란 말이 물성적 의미에서 집적회로(IC)까지 의미하는 말 로 어의 전성했듯이 ROM이란 말도 원래의 의미에서 어의 전성되어 요즘은 휘발성인 RAM에 대응되는 말로 전원을 꺼도 데이터가 날아 가지 않는 비휘발성 메모리도 의미하게 되었다. 이런 메모리에는 이피롬(EPROM), 이스퀘어피롬(E'PROM) 플래시 메모리(flash memory)등이 있다. 이런 메모리들은 이름에는 ROM이란 명칭이 들어가지만 사실은 쓰기도 가능하다. 먼저 EPROM(Electrically Programmable Read Only Memory)은 전기적으로 프로그램할 수 있는 즉, 데이터를 쓸 수 있는 ROM이란 뜻으로 EPROM은 셀은 한 개의 NMOS로 이루어져 있다. 이 NMOS는 외부에서 높은 전압(약 15볼트 이상)을 10밀리초(ms) 이상 길게 가하면 문턱 전압이 5볼트 이상으로 높아지는 특별한 NMOS이다. 그러니 1 즉, VDD가 들어와도 오프 되어 그림 12.12의 CELL 11처럼 마치 NMOS가 없는 것처럼 동작한다. 데이터를 지우는 것읍 문덕 전압을 도로 보통의 NMOS보다도 낮은 약 -2볼트 정도로 되돌리는 것 인데 자외선에 20여 분 쪼이면 그렇게 된다. E'PROM(Electrically Erasble Programmable Read Only Memory)은 EEPROM이라 표기하기도 하지만 E'PROM이란 말을 더 많이 사용한 다. 통상적으로 전자 공학에선 약자에서 같은 철자가 두 번 반복되 면 제곱 표시를 한다. E'PROM은 NMOS 두 개로 썰어 이루어져 있 는데, 한 개는 보통의 NMOS, 다른 한 개는 높은 전압을 외부에서 가 하면 문턱 전압을 5볼트 이상으로 올릴 수도, -2볼트 정도로 낮출 수도 있는 특별한 NMOS이다. 이런 성질을 이용하여 그림 12.12의 CELL 11과 같이 사용하거나 낸드 타입 롬에서 문턱 전압이 -2볼트 정도인 NMOS처럼 사용하여 데이터를 저장한다. E'PROM은 문턱 전압을 전기적으로 높이거나 낮출 수 있어서 자외선을 쪼임 필요가 없다. 플래시 메모리는 EPROM과 E'PROM의 장점을 따서 EPROM처럼 한 개의 NMOS로 셀을 구성한다. 또 E'PROM처럼 자외선 없이 쓰고 지울 수 있게 특별한 NMOS를 사용한 메모리로 내부에서 높은 전압을 생성시키는 회로를 내장하고 있어서 사용자는 그냥 보통 VDD만 을 입력으로 주기에 RAM처럼 읽고 쓰면 된다. 그러면서도 비휘발성 메모리라서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를 잃지 않아 플로피 디스켓처럼 사용할 수 있다. 요즘에 플로피 디스켓을 대체한 메모리 스틱이 바로 이 플래시 메모리를 이용한 제품이다. 플래시 메모리에서 낸드 타입 플래시, 노 어 타입 플래시 하는 것은 마스크 롬에서의 그것과 동일하다. 즉 그 림 12.10의 CELL 11과 같은 역할을 하게 하기 위하여는 그 NMOS의 V₁를 약 5볼트 정도로 높여 놓으면 W1 = 1이 되어도 그 NMOS는 온 되지 않아 그림 12.10의 CELL 11과 같이 NMOS가 없는 것과 마찬가 지 효과가 나타나고, 그림 12.13 CELL 00, CELL 11과 같은 역할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NMOS들의 V₁를 -2볼트 정도가 되게 전기 적으로 조절해 놓으면 된다. 이런 EPROM, E'PROM, 플레시 메모리는 마스크 ROM처럼 완전 영구적이지는 않고 수십 년 정도만 그 데이터를 잃어 버리지 않는 반 영구이다.
조선시대의 디지털 통신
"디지털이란 무엇인가? 아날로그와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에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은 최신 것, 정확한 것, 정밀한 것을 말 하고 아날로그는 낡은 것, 부정확한 것, 덜 정밀한 것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과연 이런 생각들이 맞는지 살펴보자. 혹자는 최초의 디지털 통신을 모르스 부호라고 얘기하는데, 필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굳이 동의하라고 강압적으로 나오 면 '최초로 2진수를 사용한 전기적 디지털 통신'이라고 바꾸어서 동의하겠다. 불꽃이나 연기로 통신하던 봉화는 고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여러 민족이 사용했다. 일단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통일신라 시대부터 전국적인 봉수체계를 갖추었다. 그렇지만 백제 온조왕 때나 가야의 수로왕 때도 봉화를 사용한 흔적들이 있다. 여기서는 그 체계가 현 재까지 제대로 전해 내려온 조선시대의 봉수제도를 살펴보자. 조선시대 봉수대에는 봉화를 올리는 거화기가 다섯 기 설치되어 있다. 육지의 경우 평시에는 봉화를 한 개만 올리다가 적이 국경에 나타나면 두 개, 국경에 근접하면 세 개, 침입하면 네 개, 아군과 접 전을 하면 다섯 개의 봉화를 올렸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이다. 봉수 대의 거화기 1기가 1비트(bit)에 해당하는 비가중치(unweighted) 5비 트 디지털이었다. 비가중치라는 말은, 만약 봉화 세 개를 올릴 때, 왼 쪽부터 세 기의 거화기에 나란히 거화를 하든, 오른쪽부터 세 기의 거화기에 나란히 거화를 하든, 홀수번 째 거화기 세 기에 거화를 하 든 모두 같은 뜻을 표현한다는 소리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2진수'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나 그렇 다고 꼭 맞는 말도 아니다. 디지털 공학은 처음부터 현재까지 2진수 를 사용해 왔다. 그런데 엄밀하게 2진수라고 하면 자리수마다 가중 치가 있는 것이다. 10진수에서 123이 왜 백이십삼인가? 아라비아 숫 자는 0~9로 열 개밖에 없는데 어떻게 10을 초과하는 숫자를 표현할 수 있는가? 그것은 가중치를 두기 때문이다. 즉 123에서 3은 3이지 만, 321에서 3은 3이 아닌 300이다.
즉 123 = 1×10²+2×10'+3×10° = 1×100+2×10+3×1 이기 때문이다. 2진수에서도 마찬가지다.
11100 = 1×2+1×2+1×2+0×2+0×2° = 1×16+1×8+1×4+0×2+0×1 = 28(10진수) ...(식 13.1)
00111 = 0×2+0×2°+1×2²+1×2+1×2° = 0×16+0×8+1×4+1×2+1×1 = 7(10진수) ...(식 13.2)
10101 = 1×2+0×2²+1×2²+0×2+1×2° = 1×16+0×8+1×4+0×2+1×1 = 21(10진수) ...(식 13.3)
그런데 가중치가 없다면, 11100 = 1×1+1×1+1×1+0×1+0×1 = 1+1+1+0+0 = 3(10진수) ...(식 13.4)
00111 = 0×1+0×1+1×1+1×1+1×1 = 0+0+1+1+1 = 3(10진수) ...(식 13.5)
10101 = 1×1+0×1+1×1+0×1+1×1 = 1+0+1+0+1 = 3(10진수) ...(식 13.6)
조선시대 봉수제도는 식 13.1~13.3이 아니라, 식 13.4~13.6에 해당한다. 2진수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이런 가중치 없이 단지 1이 몇 개냐, 혹은 0이 몇 개냐만 따지는 복호화기(decoder)가 있다. 1을 수은 기둥으로 본다면 온도계의 눈금처럼 눈금 칸에 가중치가 없이 단지 1의 개수만을 따진다 하여 온도계형 복호화기(thermometer decoder)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그런 온도계형 복호화기는 9장에서 소개한 기본 디지털 게이트들로 회로가 꾸며지고 모두들 그 회로를 아날로그 회로라 하지 않고 디지털 회로라 한다. 즉 조선시대 봉수제도는 2진수 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디지털 통신이다. 디지털은 대체로 2진수를 사용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2진수의 수체계(가중치)를 따르지 않고 그 숫자 자체만 따라도 디지털이라 한다. 마치 영어를 쓰 지는 않되 영어의 알파벳은 따다가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까 '디지털 =2진수'라는 말이 대체로 맞기는 하지만,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디지털스위치' 혹은 '디지털 = 온/오프'라는 말이 보다 더 정확하다고 하겠다.
디지털은 정확하다
막대 자의 길이를 바르게 적은 것은 다음 중 어느 것 인가?
[막대기 자의 길이]
====================================
→
0 1 2 3 4 5 6 7 8
====================================
(가) 4 (나) 4.5 (다) 4.7 (라) 5
일단 아래 글을 손으로 가리고 정말로 문제를 풀어 보면 흥미가 더할 것이다. 마음을 정하기 전까지는 여기부터 손으로 가리기 바란다. 정했으면 손을 떼라. 어느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는가? (b) 4.5 아니면 (c) 4.7이라고? 정답은 (d) 5이다. 그럴 리 없다고? 돋보기로 자세히 보라고? 인쇄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아니다. 답은 (d) 5이다. 모든 자연과학이나 공학에서는 측정 계기의 해상도(resolution)보다 더 측정해서는 안 된다. 막대기의 자는 눈금이 1단위로 되어 있다. 즉 해상도가 1이지 0.5나 0.1이 아니다. 따라서 더 정밀하게 측정하려면 더 정밀한 자를 가져다가 측정해야 한다. 이것은 디지털이란 말이 생기기 훨씬 전에 이미 과 학자들이 실험 데이터를 채취할 때 사용해 왔다. 이것이 디지털이다. 정답이 5라면 정말 막대의 길이가 5인가? 아니다. 디지털은 사실과 같지 않다. 그림 13.3을 보면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를 좀 더 살펴보면 (a)는 실제 막대의 길이다. (b)는 아날로그에서 막대의 길이를 재는 방법이다. 막대의 길이를 그대로 잰다. (c)는 디지털에서 막대의 길 이를 재는 방법이다. (c)를 전자공학에서는 양자화(quantization)라고 하는데 대표값을 구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즉 길이가 0.5 미만은 모 두 0으로, 0.5 이상 1.5 미만은 모두 1로, 1.5 이상 2.5 미만은 모두 2 로 표시하는 식이다. 그래서 실제 막대의 길이가 0.7인 것도 1로, 실 제 길이가 1.4인 막대도 길이가 0.7인 것의 두 배나 되지만 역시 1로 표시한다. 그래서 길이 0.7인 막대는 +0.3인 오차(error)를, 길이 1.4 인 막대는 -0.4의 오차를 가진다. 전자공학에서는 이것을 양자화 과 정에서 생기는 오차라 하여 양자화 오차(quantization error)라고 한 다. 디지털은 사실을 왜곡시킨다. 즉 정확하지 않다. 정확하기는 아 날로그가 더 정확하다. 측정하는 사람의 시력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아날로그에서는 길이가 0.7인 막대와 1.4인 막대를 최소한 같이 취급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다들 디지털이 정확하다고 하는 것일까? 하물며 유명한 전자공학과 교수님들조차도?
다시 조선시대 봉수제도로 돌아가 보자. 봉화 세 개를 올리면 적이 근접한다는 의미인데 적이 100리 밖에 왔는지, 10리 밖에 왔는지 알 길이 없다. 그렇다면 봉화를 개수로 표현하지 말고 봉화의 폭으 로 표현을 하면 어떨까? 즉 평상시나 100리보다 멀리 근접하면 1미 터 폭으로 봉화를 올리고, 그 거리에 반비례하여 국경을 침입하면 11미터 폭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즉 70리까지 근접하면 4미터 폭의 봉화를 올리고, 35리까지 근접했으면 7.5미터 폭의 봉화를 올리는 것이다. 이러면 훨씬 더 정확하게 정보를 보낼 수 있지 않은가? 이것이 아날로그이다. 그러면 국경의 봉수군이 적이 35리까지 도달한 것을 확인하고 7.5미터 폭의 봉화를 올렸다고 하자. 그런데 그 다음 봉수대에서 그 봉화의 폭이 7.5미터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봉수대 간의 거리에 따라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봉 수대에서는 7미터 폭의 봉화로 인식하고 7미터 폭의 봉화를 올렸다. 세 번째 봉수대에서는 6.5미터 폭의 봉화를, 네 번째 봉수대에서는 6.0미터,.... 이런 식으로 목멱산(지금의 남산 봉수대까지 도달하면 1 미터 폭의 봉화 즉, 평상시의 봉화가 오를 것이다. 국경에서는 적이 35리까지 근접하여 난리가 났는데, 중앙에서는 국경이 평안한 것으 로 판단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반면 실제로 조선시대처럼 봉화의 개수로 표현을 했다면 다음 봉 수대에서 이전 봉화가 쥐꼬리처럼 가늘게 보였건, 코끼리 다리만큼 두껍게 보였건 세 개의 봉화는 계속 세 개로 전달되어 목멱산 봉수 대에 이르러 중앙에서도 적이 얼마나 근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 무튼 적이 국경으로 접근하고 있는 비상 사태임을 인지할 것이다. 그래서 디지털이 정확하다는 것이다. 비록 사실과 오차가 있기는 하 지만 일단 디지털화(양자화)된 데이터는 저장이나 전달시에 더 이상 오차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디지털이 더 정밀하다고 하는데..... 조선시대 봉수제도는 고려시대 봉수제도를 이어받기는 했지만 거화기의 개수를 고려시대의 4기에서 5기로 늘렸다. 고려시대의 봉 수제도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선시대의 거화기가 하나 더 있으니 뭔가 정보를 세밀하게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 때는 평시에 한 개, 적이 출현하거나 국경에 근접하면 두 개, 국경을 넘으면 세 개, 접전을 하면 네 개를 올렸다면 고려시대의 봉화 두 개는 적이 출현했다는 소리인지, 국경으로 이동해 오고 있 다는 소리인지를 구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디지털에서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거화기의 개수 즉, 비트 수를 늘려야 한다. 여기 10센티미터까지 잴 수 있는 자가 있다고 하 자. 눈금을 2비트를 사용해 매겼다면 2²=4즉, 10cm/4=2.5cm이므 로 눈금 간격이 2.5센티미터인 자가 되었을 것이다. 다들 이 자를 정 밀한 자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8비트를 사용해 눈금을 매 겼다면 2"=256 즉, 10cm/256= 약 0.04cm 다시 말해 0.4밀리미터 간격으로 눈금이 새겨진 것이다. 보통의 자들이 1밀리미터 간격의 눈금을 사용하고, 사람이 맨눈으로 0.1밀리미터까지 식별할 수 있으 니 8비트를 사용해 눈금을 새긴 자는 다들 정밀한 자라고 말할 것이다. 하물며 10비트를 사용했다면 혀를 내두르거나 누가 자에다 색칠을 했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요즘 디지털에서는 사람이 인식하지 못할 만큼 충분한 비 트 수를 할당하기에 사람들은 정밀하게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충분 한 비트 수를 할당하려면 회로가 복잡해지고 커진다. 거화기가 네 기였던 고려시대의 봉수대보다 다섯 기를 사용한 조선시대 봉수대 는 규모도 커지고 관리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즉 디지털이라는 용어 자체는 생긴 지 기껏해야 50여 년밖에 되 지 않았지만 수천 년 전인 고대시대부터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공존 했고, 2진수를 사용한다기보다는 2진수의 숫자 자체를 사용하는 온/오프만 따지는 것이며, 디지털은 근본적으로 실제와 오차가 있 지만 그래도 충분한 비트 수를 할당하여 사람들이 정확하고 정밀하 게 느끼게끔 속임수(?)를 쓰는 것이다.
반도체 제대로 이해하기 강구창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