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clesiastical principalities, sustained with minimal effort by religious institutions and empowered by Popes Alexander VI, Julius II, and culminating in Leo X's strong papacy, illustrate that lasting stability and independence—especially in temporal rule—ultimately depend on a principality’s own army, not on unreliable and dangerous mercenaries.
[교회형 군주국]
이제 교회형 군주국(principato ecclesiastico, ecclesiastical principality)을 논의하는 일만 남아 있는데, 이 경우 모든 시련은 교회국가를 얻기 전에 생깁니다. 왜냐하면 교회형 군주국은 역량을 통해서 또는 운명을 통해서 얻게 되는데, 그 유지에는 이 둘 중 어느 것도 필 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이 국가들은 고래의 종교적 제도에 의해서 유지되는데, 그 제도들은 군주가 어떻게 살고 처신하든 그의 지위를 유지할 만큼 충분히 강력하기(효율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기/역자) 때문입니 다. 군주는 국가를 소유하고 있으나 방어할 필요가 없 으며, 신민들을 다스리기 위해서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비록 군주가 국가를 방어하지 않은 채 내버려둔다고 하 더라도, 국가를 그들에게 빼앗기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신민들은 비록 적절하게 다스려지지 않더라도, 그 일에 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들은 군주를 몰아낼 수도 없으며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군주국들이야말로 안전하고 축복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들은 인간의 마음이 감지할 수 없는 초월적인 권능에 의해서 다스려지므로, 논의하는 것 을 삼가겠습니다. 이 국가들은 신에 의해서 세워지고 유지되기 때문에 그것들을 검토하는 것은 오직 오만하 고 경솔한 인간의 처사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교황 알렉산데르의 즉위 이전에 는 이탈리아의 주요 정치세력들은 (단순히 '강대국'들 뿐만 아니라 영주나 하급 귀족은 물론 심지어 가장 미 약한 세력마저도) 교회의 세속권력을 대수롭지 않게 생 각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교회의 세속권력이 이제 는 프랑스 왕과 같은 인물마저도 두려워할 만큼 강성 해졌는가 하고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 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권력은 프랑스 왕을 이탈리아에 서 몰아냈을 뿐만 아니라 베네치아 공화국마저도 몰락 시켰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사건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 지만, 다시 환기시킨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의 샤를 왕이 이탈리아를 침입하기 이전에 이 나라는 교황, 베네치아 공화국, 나폴리 왕국, 밀라노 공국 그리고 피렌체 공화국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각 세력들은 주로 두 가지 관심에 몰두했는데, 그 하나는 외세가 이탈리아를 무력으로 침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이고,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의 어느 세력도 더 많은 영 토와 힘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많 은 우려의 대상이 된 세력은 교황과 베네치아 공화국 이었습니다. 베네치아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다른 세력들은 페라라를 방어할 때처럼 동맹을 결성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귀족들은 교황의 권력을 견제하는 데이 용되었습니다. 로마의 귀족들은 오르시니와 콜론나라 는 두 개의 파벌로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늘 서로 반목, 대립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교황의 면전에서 무기를 휴대할 정도로 교황의 권위를 취약하고 무력하 게 만들었습니다. 간혹 식스투스와 같이 기백이 있는 교황이 즉위하기도 했지만, 그의 행운이나 지혜도 이러 한 난관을 극복하는 데에 충분하지는 못했습니다. 교 황의 재위기간이 짧은 것도 그 이유라고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교황의 재위기간은 10년 정도였습니다." 이 기 간 동안에 어느 한 파벌을 제거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 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설사 어느 교황이 콜론나 파 를 제거하는 데에 거의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 에는 오르시니 파에 적대적인 교황이 즉위하여 콜론나 파의 재기를 도우는 결과를 초래하곤 했습니다. 그렇다 고 해서 그 교황이 오르시니 파를 제거할 만큼 충분한 시간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 결과 교황의 세속권력 은 이탈리아에서 거의 무시되어왔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데르 6세가 교황에 즉위하게 되자 그는 역대 어느 교황보다도 탁월하게 돈과 군사적인 수단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습니다. 발렌티노 공작을 앞세웠으며, 프랑스의 침입에 의해서 제공된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여, 공작의 경력을 논하면서 제가 앞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모든 것을 성 취했습니다. 비록 알렉산데르의 목적은 교회가 아니라 공작의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었지만, 그가 죽고 공작이 몰락한 후 교회가 그의 노력의 결실을 물려받아 교회의 권력은 강화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율리우스 교황이 등장했는데, 그는 교 희가 이미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교 회는 로마냐 전 지역을 장악했고, 로마의 귀족들은 무 력화되었으며, 그 파벌들 역시 알렉산데르의 강력한 조 치에 의해서 몰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율리우 스 교황은 이전의 알렉산데르 교황에게는 없었던 축재 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율리우스는 자 신이 이미 물려받은 것을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확대했 습니다. 그는 볼로냐를 점령하고, 12) 베네치아 세력을 파 괴하고, 프랑스 군을 이탈리아에서 몰아낼 계획을 세웠 습니다. 이 모든 계획은 성공을 거두었고, 게다가 특정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권력을 확대하기 위 해서 이 모든 일을 성취했기 때문에, 이 점에서 그의 공적은 칭송받을 만했습니다. 그는 오르시니 파와 콜론나 파를 이전처럼 무력한 상 태로 유지했습니다. 비록 그들 중 몇몇 지도자들이 반 란을 꾀하려고 했지만, 두 가지 요인이 이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교회의 권력이 매우 강력해서 그들 을 압도했던 것이고, 둘째는 어느 파벌이든 그들을 이 끌 수 있는 추기경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추기경은 이 들 파벌들의 반목의 원인이었는데, 그들은 추기경을 지 도자로 삼게 되면 언제나 분규를 일으키곤 했습니다. 로마 안에서나 밖에서나 파벌들을 형성하는 것은 으레 추기경들이었고 귀족들은 자신들이 속한 파벌을 지지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고위 성직자들 의 야심이야말로 귀족들 사이의 모든 알력과 분쟁의 근 원이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결과, 교황 레오 10세 성하는 현재와 같은 매 우 강력한 교황권(pontificato, papacy)을 가지게 되었습 니다. 그리고 전임 교황들이 무력을 통해서 교황권을 위대하게 만들었듯이, 레오 10세 역시 자신의 타고난 선 량함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른 덕을 통해서 교황권 이 더욱 위대하고 존경의 대상이 되도록 만드실 것을 기 원합니다.
[군대의 다양한 종류와 용병]
이제까지 저는 처음에" 언급했던 상이한 모든 종류의 군주국에 대해서 상세히 논했으며, 그 번영과 쇠퇴의 이 유에 관해서도 상당히 고찰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많은 사람들이 군주국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사용해 온 방법들을 검토했습니다. 이제 저에게 남은 것은 앞 에서 언급한 모든 군주국이 채택할 수 있는 공격과 방 어의 일반적인 방법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앞에서 저는 군주가 권력의 확고한 토대를 가지는 것이 얼마나 필요 한지를 역설한 바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군주는 항상 몰락하고 말 것입니다. 모든 국가의 주된 토대는 (세습 군주국이든 신생 군 주국이든 복합 군주국이든) 좋은 법과 좋은 군대입 니다. 좋은 군대가 없으면 좋은 법을 가지기란 불가 능하고 좋은 군대가 있는 곳에는 항상 좋은 법이 있 기 때문에, 저는 법 문제는 제쳐놓고 군대 문제를 논의하겠습니다. 그런데 군주가 자신의 국가를 방어하는 데에 사 용하는 무력은 그 자신의 군대이거나, 아니면 용병 (mercenario, mercenary)이거나 외국의 원군, 또는 이 세 가지가 혼합된 혼성군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용병 과 원군은 무익하고 위험합니다. 자신의 영토를 보전하 기 위해서 용병에 의존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자신의 영토를 결코 안정되고 안전하게 통치할 수 없을 것입니 다. 왜냐하면 용병이란 분열되어 있고, 야심만만하며, 기강이 문란하고, 신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동 료들과 있을 때는 용감하게 보이지만, 강력한 적과 부 딪치게 되면 약해지고 비겁해집니다. 그들은 신을 두려 워하지 않으며 사람들과 한 약속도 잘 지키지 않습니 다. 당신의 파멸은 적의 공격이 지연되고 있는 만큼 지 연되고 있는 데 불과합니다. 따라서 당신은 평화시에는 그들에게, 전시에는 당신의 적에게 시달릴 것입니다. 이 모든 이유는 그들이 당신에게 아무런 애착도 느끼지 않 으며, 너무나 하찮은 보수 이외에는 당신을 위해서 전 쟁에 나가 생명을 걸고 싸울 어떤 이유도 없기 때문입 니다. 당신이 전쟁을 하지 않는 한, 그들은 기꺼이 당신 에게 봉사하지만, 막상 전쟁이 일어나면 도망가거나 탈 영합니다. 기실 이탈리아가 최근에 겪은 시련은 다른 어 떤 이유보다도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용병에 의존한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이 점을 주장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물론 이 용병들의 일부 는 무기력하지 않았으며 다른 용병들과 싸울 때 용맹 을 떨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외국군의 침입이 시작되 었을 때." 일거에 그들의 진면목이 드러났습니다. 그리 하여 프랑스의 샤를 왕은 이탈리아를 백묵 하나로 점령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악으로 이러한 사 태에 처하게 되었다"고 말한 사람은 진리를 말한 셈입 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믿은 죄악이 아니라 제가 적 시한 죄악입니다. 그리고 이는 군주들의 죄악이었기 때 문에 그들 역시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서 처벌을 받았 습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군대가 가지고 있는 결함을 좀더 ㄷ 확히 보여주고 싶습니다. 용병대장들은 매우 유능한 물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 이 유능한 인물이라면, 당신은 그들을 신뢰해서는 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항상 자신들의 고용주인 신을 공격하거나 당신의 의사에 반해서 다른 자들을 격함으로써 오직 자신만의 권력을 열망하기 때문 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평범한 인물이라면, 당신은 당연히 몰락하게 될 것입니다. 무력을 자기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용병 이건 아니건) 누구나 이런 식으로 행동하기 마련이라 는 이유로 반론을 제기한다면, 우선 저는 무력이란 군 주나 공화국에 의해서 사용된다는 구분에 입각해서 대 꾸하겠습니다. 전자의 경우, 군주는 최고 통수권자로 서 친히 군대를 인솔해야 합니다. 후자의 경우, 공화국 은 그 시민을 장군으로 파견해야 합니다. 만약 파견된 자가 유능하지 못한 것으로 판명되면 교체해야 합니다. 파견된 장군이 유능하면, 그가 월권하지 않도록 법적인 통제수단을 확보해야 할 것입니다. 경험에 따르면 자기 군대를 가진 군주와 공화국만이 성공할 수 있으며, 용 병은 어떤 것도 성취하지 못하고 오히려 해만 끼칠 뿐 입니다. 일개 시민이 권력을 탈취하는 일은 외국 군대에 의존하는 공화국보다 자신의 군대를 가진 공화국에서 더욱 어려운 법입니다. 수세기 동안 로마와 스파르타는 자력으로 무력을 갖추었고 독립을 유지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스위스가 적 습니다. 고대의 용병제로서 언급할 가치가 있는 사례는 첫번째 전쟁이 끝난 후 용병대장들이 본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고용한 용병의 공격을 받아 거의 정 복당할 뻔했습니다. 비슷하게 에파미논다스가 죽은 후 테베인들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를 자신들의 군대의 장군으로 삼았는데, 그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 들의 자유를 박탈하고 말았습니다. 필리포 공작이 죽 은 후, 밀라노인들은 프란체스코 스포르차를 장군으 로 고용하여 베네치아에게 대항했습니다. 그러나 스포 르차는 카라바조(Caravaggio)에서 베네치아인들을 격파 한 후, 그들과 연합하여 자신을 고용한 밀라노인들 을 도리어 공격했습니다. 나폴리의 조반나 여왕에 의해 서 장군으로 고용된 스포르차의 부친은 돌연히 그녀 의 무력을 박탈했고 그 결과 여왕은 자신의 왕국을 지키기 위해서 아라곤의 왕18)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비록 베네치아인들과 피렌체인들이 과거에 용병을 고 용해서 영토를 확장했지만, 그 용병대장들은 권력을 탈 취하지 않고 영토를 방어해주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 에 관한 한, 피렌체는 매우 운이 좋았다는 것이 저의 소 견입니다. 왜냐하면 위협이 될 만했던 유능한 장군들 중의 일부는 승리를 거두지 못했고, 다른 일부는 저항 에 부딪쳤으며, 또 다른 일부는 야심을 성취하기 위해서 다른 곳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승리를 거두지 못한 장군은 존 호크우드인데, 그의 충성심은 그가 승리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성공했더라면, 피 렌체를 장악했을 것이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합니다. 스 포르차 집안 출신들은 항상 브라체시의 군대와 경쟁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두 파벌은 서로 견제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자신의 야심을 충족시키려고 롬바르디아 에 갔으며, 브라초는 교회와 나폴리 왕국에 적대적이었 습니다. 좀더 근래의 사건으로 눈을 돌려보겠습니다. 피렌체 인들은 파올로 비텔리를 장군으로 고용했는데, 그는 매우 유능하여 일개 시민의 신분에서 시작하여 매우 높 은 명성을 얻은 인물입니다. 만약 그가 피사를 점령했 더라면, 피렌체인들이 그를 계속해서 그 자리에 고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 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피렌체의 적군 의 장군으로 임명되기라도 했더라면, 피렌체인들은 달 리 방어할 수단이 없어 궁지에 몰렸을 것이기 때문입니 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그를 계속 고용했더라면, 그는 피렌체인들의 위에 군림하는 지위에 올랐을 것입니다. 베네치아인들의 발전사를 보더라도 그들이 자신들의 군대로, 곧 귀족과 무장한 인민들이 아주 능숙하고 용 맹스럽게 전쟁에 임했을 때에(즉 그들이 이탈리아 본토 에서 전쟁을 하기 전에), 그 나라는 안전했고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본토에서 전쟁을 하게 되자마자 그들은 그들의 용맹(virtú)을 포기하고 이탈리아 의 전쟁 관습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처음으 로 내륙의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용병 대장들을 두려워할 만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병합된 영토가 아직 많지 않았고 베네치아 인들의 명성이 아주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카르마놀라의 통솔하에 영토를 확장함으로써 그들의 과오는 명백해졌습니다. 그들은 (그의 통솔하에 밀라 노 공작을 격파했기 때문에) 그가 매우 유능하다는 점 을 알게 되었지만, 반면에 그가 전쟁을 마지못해 수행 하고 있다는 점도 깨달았습니다. (그 자신이 승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를 계속 고용해 서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병합된 영 토를 잃을 각오를 하지 않는 한, 그를 해고할 수도 없 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를 살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후에 베네치아인들은 용병대장으로 바르톨로메오다 베르가모, 로베르토 다 산 세베리노, 피티글리아 노 백작 등을 기용했습니다. 이 장군들에 대해서 베네 치아인들이 우려했던 것은 장군들이 승리한 후에 생길위험이 아니라, 그들이 패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실로 이 러한 우려는 나중에 바일라(Vailà) 전투에서 현실화되 었는데, 그들은 한 번의 전투에서 그들이 800여 년 동 안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얻었던 것을 일거에 잃고 말았 습니다. 이처럼 용병을 쓰는 것은 결과적으로 완만하고 느린 사소한 이익이 있는 반면에, 돌발적이고 놀라운 손해를 가져오기 마련입니다. 이런 사례들은 오랫동안 용병들에게 좌지우지당했던 이탈리아에서 끌어온 것들이기 때문에 저는 이 용병들 에 관해서 좀더 상세히 검토하고 싶습니다. 용병의 발 생과 발전을 검토하면, 그 해결책을 구하기가 쉽기 때 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근래에 (신성 로마 제국의/역 자) 황제의 권력이 이탈리아에서 그 토대를 상실하게 되 었고, 교황의 세속권력이 증대되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해서 이탈리아가 많은 국가들로 분열되었는가를 알아 야 합니다. 그 이유는 많은 대도시들이 (이전에 신성로 마 제국 황제의 지지를 등에 업고) 그들을 억압하던 귀 족들에게 대항하여 무기를 들고 일어났고, 교회 역시 자신의 세속권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이러한 반란들을 조장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더불어 많은 다른 도시에서 시민들이 군주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 로 교회와 몇몇 공화국들이 이탈리아를 지배하게 됨에 따라서, 성직자들과 군무(軍務) 경험이 없는 시민 지배 자들은 외부인들을 고용하여 전투를 치르기 시작했습 니다. 로마냐 사람인 알베리코 디 코니오 가 용병부대의 중요성을 최초로 널리 알렸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다 른 용병들이 등장했는데, 그중에는 당대에 이탈리아를 지배했던 브라초와 스포르차체의 용병이 전면에 부상하 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뒤를 이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용 병을 지휘하는 많은 다른 장군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세운 혁혁한 무훈(武勳, virtú)의 결과, 이 탈리아는 샤를 왕에게 공략당하고, 루이 왕에게 약탈 당했으며, 페르난도 왕에게 유린당하고, 스위스인들 에게 수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용병대장들은 자신들의 명성을 드높이려고 보 병을 등한시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자신들 의 국가가 없는 데다가 고용되어야 먹고 살 수 있었으 므로, 적은 수의 보병은 그들의 명성을 높이는 데에 도 움이 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대규모의 보병을 유지 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보병을 소홀히 한 것입니다. 그 런 이유로 그들은 일정한 수입을 유지하고 명성을 성취하는 데에 적당한 만큼의 기병을 거느렸습니다. 그 결 과 2만 명 규모의 군대에서 보병이 고작 2천 명 정도에 불과한 사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가능 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들이나 병사들의 고 통과 위험을 덜려고 했으며 전투에서 서로 죽이는 일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 대신 그들은 상대방을 포로로 생 포했는데, 몸값을 요구하지도 않고 풀어주었습니다. 그 들은 요새화된 도시를 야간에는 공격하지 않았으며, 도 시를 방어하는 용병들 또한 포위군에 대한 공격을 주 저했습니다. 야영을 할 때에도 그들은 방책이나 외호로 주위를 방어하지 않았으며 겨울에는 전투를 하지 않았 습니다. 이러한 모든 관행들은, 제가 말한 것처럼, 고통 과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군대의 규율로서 허용되고 채 택되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활동 결과로 이탈리아는 노예화되고 수모를 겪게 되었습니다.
[원군, 홍성군, 자국군]
원군(援軍)이란 당신이 외부의 강력한 통치자에게 도 움을 요청했을 때 당신을 돕고 지켜주기 위해서 파견 된 군대인데, 이 또한 용병처럼 무익한 군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원군은 최근에 교황 율리우스에 의해서 이 용된 적이 있습니다. 교황은 자신의 용병부대가 페라라 전투에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스페인의 페르난 도 왕에게 자신을 도울 군대를 파견하게 함으로써 원 군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원군은 그 자체로서는 유능하고 효과적이지만, 원군에 의지하는 자에게는 거 의 항상 유해한 결과를 가져다줍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패배하면 당신은 몰락할 것이고, 그들이 승리하면 당신 은 그들의 처분에 맡겨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대 역사에서도 이런 사례들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지만, 저는 근래에 일어난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사 례를 논의하고 싶습니다. 그의 결정은 너무나 성급했다 고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페라라를 얻기 위해서 외국 군주의 수중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다니! 그러나 그는 운이 좋아서 잘못된 정책에서 초래된 결과를 감수하 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요청한 원군들이 라벤나에서 패주했을 때 스위스 군이 도착하여 (그와 다른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승자를 몰아냈고, 그 결과 그는 도망가버린) 적들의 수중에 넘어가지도 않았 고, 게다가 승리를 거둔 자는 원군이 아니라 다른 군대 였으므로, 원군의 처분에 내맡겨지는 상황에 처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피렌체는 전혀 무력이 없었기 때문에, 피사를 정복하기 위해서 1만 명의 프랑스 병력 을 끌어들였습니다. 이 정책으로 인해서 피렌체는 자신 의 시련의 역사에서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를 맞이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콘스탄티노플의 황제'는 동족과 싸우기 위해서 1만 명의 투르크 병력을 그리스로 불러 들였는데, 전쟁이 끝난 후에도 투르크 군은 돌아가 려고 하지 않았으며, 이를 발단으로 해서 그리스는 이 교도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승리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원군을 이용 해도 좋을 것입니다. 원군은 용병보다 훨씬 더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원군을 이용하면 파멸하게 되는 것은 확실합니다. 원군은 일사불란한 군대이며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는 데 익숙해 있습니다. 그러나 용병은 승리하더 라도 당신을 해칠 수 있는 지위에 이르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기회가 필요합니다. 용병은 당신이 고용 하고 보수를 주기 때문에 하나의 단일체를 형성하지 못 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용병의 장군으로 임명한 제3의 외부인은 즉각적으로 당신을 해칠 수 있을 정도의 권위 를 구축하지 못합니다. 요컨대 용병의 경우에는 그들의 비겁함이나 전투를 기피하는 태도가 위험하고, 원군의 경우에는 그들의 능숙함과 용맹(virtú)이 위험합니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는 항상 이런 군대를 이용하는 것 을 피하고 자신의 군대를 양성합니다. 그들은 외국 군 대를 이용하여 정복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군대 로 패배하는 것을 택합니다. 외국 군대를 이용하여 얻 은 승리를 진정한 승리로 평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관해서 저는 주저하지 않고 체사레 보르자와 그의 행적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공작은 (전원이 프랑 스인인) 원군을 이용하여 로마냐 지방을 침공했고, 그 들과 더불어 이몰라와 푸를리를 점령했습니다. 그러 나 그는 그들을 불신했기 때문에 그후에는 용병을 이 용했습니다. 그는 용병이 덜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 에 오르시니 파와 비텔리 파의 용병에 의존했던 것입니 다. 그러나 뒤늦게 그 가치나 충성심이 의심스러웠기 때 문에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용병을 해체한 뒤에 자신의 사람들'로 군대를 편성했습니다. 이 세 종류의 군대 의 차이는 공작이 단지 프랑스 군대를 이용했을 때와 오르시니 파 및 비텔리 파의 군대를 이용했을 때 그리고 자신의 군대를 키워서 군사적으로 자립했을 때, 그가 누렸던 명성을 각각 비교해보면 명백합니다. 그가 자 신의 군대를 명실상부하게 장악한 것을 만인이 보았을 때, 그는 더 위대하게 되었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존경 을 받았습니다. 이탈리아의 사례도 아니고 최근의 사례도 아니기 때 문에 인용하는 것이 주저되지만, 시라쿠사의 히에론은 이미 언급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를 해야겠 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시라쿠사인들이 그를 그 들 군대의 장군으로 임명했을 때, 그는 곧 그 용병부대 가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대장들이 우리 이탈리아의 용병대장들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리고 그는 그들을 계속해서 이용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체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을 모두 참 살했습니다. 그후에 그는 외국 군대가 아니라 자신의 군대로 전쟁을 수행했습니다. 저는 또한 구약에 나오는 한 인물을 적절한 사례로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가서 팔레스타인의 용사인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했을 때, 사울은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서 다윗에게 자신의 무기와 갑옷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갑옷을 입어본 후, 그것 을 입고는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하여 싸울 수 없기 때 문에 자신의 투석기와 단검으로 적과 대결하겠다고 말 하면서 이를 사양했습니다. 요컨대, 타인의 무기와 갑 옷은 당신의 힘을 떨어뜨리거나, 몸을 압박하거나, 아 니면 움직임을 제약할 뿐입니다. (루이 11세의 부친인) 샤를 7세는 행운과 역량에 의해 서 프랑스를 영국으로부터 해방시킨 후, 프랑스를 자 국군으로 방어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기병과 보병 으로 구성된 군제(軍制)를 도입했습니다. 그의 아들 루 이는 나중에 보병을 폐지하고 스위스 군을 고용하 기 시작했습니다. 이 커다란 실수는 다른 실수들과 결 부되어 (이제 와서 명확해진 것처럼) 프랑스 왕국을 현 재와 같은 위기상황에 몰아넣었습니다. 23) 스위스 군의 지위를 강화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는 나머지 군대의 사기를 저하시킨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보병을 해체 하고 그의 기병을 외국 군대에게 의존하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서 그의 기병은 스위스 보병과 연합 하여 싸우는 데에 익숙해져서 스위스 군 없이는 전투에 서의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렀기 때문입 니다. 그 결과 프랑스 군은 스위스 군보다 열등한 지위 에 놓이게 되었고, 스위스 군이 없는 프랑스 군의 모습은 적에게 허약한 군대로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프 랑스 군은 일부는 용병으로, 일부는 자국군으로 구성 된 혼성군의 성격을 가졌습니다. 그러한 혼성군은 순수 한 원군이나 용병보다 훨씬 더 낫지만, 순수한 자국군 에는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저는 위의 사례로써 충분하 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샤를 왕이 만들어놓은 군제 가 발전했거나 적어도 그대로 유지되었더라면, 프랑스 왕국은 무적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신중함이 부족하기 때문에, 제가 앞 에서 소모성 열병을 두고 말한 것처럼, 24 일견 매력있게 보이는 정책을, 그 속에 있는 독성을 깨닫지 못한 채 시행합니다. 그러므로 일찍이 초기 단계에 독성을 간파 하지 못하는 군주는 현명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러 한 능력은 단지 소수에게만 주어질 뿐입니다. 로마 제 국이 쇠퇴하게 된 단초를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고트 족을 용병으로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는 점 을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정책은 로마 제국의 힘의 원천을 고갈시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로마 제국에서 나온 모든 활력(virtú)을 고트 족이 흡수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어떤 군주국이든 자신의 군대를 가지지 못하면 안전할 수 없다고 결론짓겠습니다. 오히려 그러 한 군주국은 위기 시에 자신을 방어할 역량이 없기 때문 에 전적으로 운명에 의존해야 할 뿐입니다. 현명한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무력에 근거하지 않는 권력의 명성처 럼 취약하고 불안정한 것은 없다"라는 격언을 마음에 깊이 새깁니다. 그리고 자신의 무력이란 자국의 신민 또 는 시민, 아니면 자신의 부하들로 구성된 군대를 말하 며, 그밖의 다른 모든 것들은 용병이나 원군입니다. 자 신의 무력을 조직하는 올바른 방법은, 제가 이미 인용 한 네 사람이 사용한 방법을 검토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부친인 필리포스를 비롯한 다른 많은 군주들과 공화국들이 자신들의 국가를 무장하고 조직한 방법을 이해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사용한 방 법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냅니다.
군주론 지은이 : 니콜로 마키아밸리
옮김이 : 강정인, 김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