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a student who has never studied before starts, it's effective to focus on a single subject. The protagonist, Yuseong, had only played around but found enjoyment in studying by concentrating on math. This helped him develop study habits, build confidence, and gradually expand to other subjects. Ultimately, the key is finding a study method that suits one's personality and practicing it consistently.
20. 지금껏 놀았는데 공부 시작할 수 있을까요?
여러 과목을 모두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고민하느니 자존심을 세워 줄 '효도 과목을 하나 정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좋다./ 한 과목에 집중하며 공부의 재미를 훨씬 크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유성이는 나와 공부하던 고등학생 누나의 손에 이끌려 온 학생이다. 착한 누나는 너무 노는 동생이 늘 걱정이라고 몇 번 말을 했었 는데 어느 날 "대견스럽게도 이놈이 공부를 해야겠다고 하네요"라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놀아서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몰라 한다는 것이 누나의 또 다 큰 고민이었다. 누나에게서 전해 들은 유성이의 성적은 '전교 꼴등을 겨우 면 하는 정도'였다. 유성이와는 '한 우물만 판다'는 생각으로 선택과 집중의 전략으로 공부했 다. 우선 한두 과목을 골라 공부하며, 공부를 한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경험하 게 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공부할 환경이 안 되었든 흥미가 없었든 지금껏 공부를 안 하던 학생들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후에도 방향을 잡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놀고 후회 하고 또 놀고 그렇게 공부와는 점점 멀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아래의 학생 면담 내용은 그 답답함이 어떤 것인지 잘 드러내고 있다.
일단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노력하더라도 꾸준히 해 나갈 수가 없어요. 마음 은 따르는데 그놈의 머리가, 몸이 안 따라 줘요. 자꾸 놀았던 것이 생각나서 마음을 굳게 먹어도 며칠 지나면 다시 놀게 돼요. 공부는 하고 싶어도 안 되 고 아무것도 모르겠고, 해도 다른 아이들을 따라갈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겠 다. 될 대로 돼라, 아예 포기하고 놀자는 식이 되죠..
사정이 이러니 공부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더라도 정작 공부는 하지 못하고 열등감과 상처만 얻고 다시 놀게 되는 것이다. 놀던 아이들이 마음먹고 공부 를 시작할 때에는 그 방법과 방향을 알려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유성이의 경 우는 누나가 그 하소연을 들어주어 매우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유성이가 공부를 안 했던 이유는 그저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는 생각 없이 놀았고 중학교에 가서도 그다지 공부에 대한 관심이 생기지 않았는데 중학교 친구들은 초등학교 때와는 노는 강도가 달라 더욱 재미있게 놀 수 있었다. 그렇게 1, 2학년을 보내고 나니 고등학교에 갈 걱정도 되고, 학 교에서도 점점 성적만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심해져서 함께 '자유롭던 친구들은 탈선에 이르기 시작했단다. 그때가 2학년 말, 공부를 하려고 보니 수업 을 제대로 들어 본 적도, 시험 공부를 해 본 적도 없어서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어영부영 겨울방학을 보내 중 3이 시작되었다.
만사 제치고 놀던 것도 재능! 공부할 때도 이 재능을 살려라
유성이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3학년 3월 말이었다. 내가 학생들을 만날 때 지키고자 하는 원칙은 '어제까지의 너를 잊어라'이다. 유성이도 마찬가지 였다. 지금까지의 성적이 어떻든 하려는 마음이 생겼으니 반은 성공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도 이 '답 없는 녀석'을 어떻게 구워삶아야 할까. 우선 학생의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부모님의 걱정, 선생님의 잔소리, 친구 들의 분위기가 어떻든 만사를 제치고 신나게 놀 수 있는 '쿨함'은 아무나 가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또한 성격과 기질에서 비롯되는 '재능'이라 할 수 있다. 순하기 그지없고 마음 여린 학생들은 공부가 하기 싫어도 며칠 게으름 을 부리다 말 뿐 대놓고 공부와 담을 쌓지는 못하기 마련이다. 유성이의 특성이 이러하니 이것을 공부할 때에도 써먹어야 한다. 유성이에 게는 매일의 공부 목록을 적으라거나 일주일의 공부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지키라는 식의 방법이 먹히지 않는다. 지금까지 놀던 '가닥'이 있는데 어찌 그런 좀스러운 행동을 견딜 수 있겠는가.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이 뭐야?" "없는데요." "그럼 제일 만만한 과목은?" "그래도 해 볼 만한 과목이 있을 거 아니야. 그나마 덜 지겹다든지." "수학이요." 의외였지만 유성이가 고른 것은 수학이었다. 다른 것은 외우고 쓰고 귀찮은 데 수학은 어떻게든 풀면 되는 것이니 그나마 골치가 덜 아프다는 것이다. 그 래서 우선 첫 번째 타깃은 수학으로 정했다. "공부에 대한 생각이 많겠지만 지금부터 중간고사 볼 때까지는 수학 공부만 하자. 신나게 수학만 파는 거야." 다행히도 중간고사는 예체능 과목의 시험을 보지 않는다. 자연히 공부 과목 의 부담이 덜한데, 그나마도 유성이에게는 만만치 않은 분량들이다. 그 모든 공부를 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고민하느니 유성이의 자존심을 세워 줄 '효도 과목'을 하나 정해서 그 과목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좋다. 이 방법은 만사 제쳐 놓고 놀았던 유성이의 특성에 맞는 방법이다. 다른 과목 제쳐 놓고 한 과목에만 집중하는 것도 크게 불안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성 이는 다른 과목을 소홀히 한다는 불안감보다 한 과목에 집중하며 얻는 공부 의 재미를 훨씬 크게 느낄 수 있을 거라고 판단되었다. "4월 말에서 5월 초에 중간고사를 보니까, 지금부터 한 달 정도 남은 거다. 그치? 그럼, 그때까지 수학만 공부해 보자. 그 대신 수학만큼은 완벽하게 하는 거야." 유성이는 해 볼 만하다고 했다. 어렵고 하기 싶은 공부를 시작한다는 부담 이 아니라 무언가 재미있는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보이는 긴장감과 흥분을 엿볼 수 있었다. 이 공부를 위해 한 달 동안 지키기로 유성이와 약속한 내용 은 다음과 같다.
1) 마음에 드는 수학 문제집을 하나 장만한다
지금은 교과서 풀기도 버겁겠지만 시험 공부를 하려면 교과서만으로는 부 족하다.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이나 보충 교재로 쓰는 문제집이 있다면 따로 사지 않아도 좋다(학교에서 사라는 문제집을 충실히 다 푸는 학생은 거의 없다). 그렇 지 않다면 하나 마련한다. 학교 교과서와 동일하게 구성된 자습서도 좋고 디 자인이 마음에 드는 문제집도 좋다.
2) 수학 시간은 무조건 집중한다
학교에서도 수학 시간에는 수업에 집중한다. 다른 과목 시간에는 수업을 듣든지, 평소대로 자든지, 음악을 듣든지 마음대로 해도 좋다. 공부한답시고 갑 자기 모든 행동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내가 열심히 공부하기 로 약속한 수학 시간만큼은 반드시 공부한다. 선생님이 문제를 풀면 나도 풀 고, 못 풀면 표시해 두고, 숙제를 내 주시면 열심히 한다.
3) 집에 돌아오면 반드시 복습한다
수학 수업이 있었던 날은 집에 돌아와서 반드시 그날 수업했던 내용을 복습 한다. 교과서는 물론, 수업 시간에 받은 프린트물이 있다면 그것도 함께 가져 와 복습해야 한다. 복습을 할 때에는 수업 나갔던 진도를 다시 공부한다고 생 각하지 말고 수업 시간을 '리플레이'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선생님이 어느 부분에서 중요하다고 했는지, 어떤 순서로 설명이 이어졌는지 등을 다시 되 새겨 보는 것이다. 그래야 수업 시간이 통째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이 습관은 유성이가 어려워하는 '외울 것 많고 복잡한 다른 과목들을 공부할 때에도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4) 학교 진도만큼 문제집을 풀어 나간다
하교 후 잠이 들기 전까지의 시간은 이렇게 복습과 해당 진도의 문제 풀이 로 시간이 지나간다. 학교에서 보는 교재로 복습을 하는 것은 그 수업이 있었 먼 날 모두 해치우기로 하고 수학 수업이 없는 날과 주말에는 문제집을 푼다. 학교 수업을 들은 후이니 단원 앞의 정리는 다시 보지 않고 넘어가고 문제만 풀어 본다. 모르는 것이 나오면 교과서로 돌아가 학교 수업을 회상하면서 힌 트를 얻고 문제집의 요약 정리와 해설은 부가적으로만 이용한다. 그래야 그 단원에 대한 사고 체계가 학교 수업을 기준으로 일관성 있게 엮어지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학교 수업 진도를 따라가며 교과서와 문제집을 충실히 공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내가 따로 공부 계획을 세울 부담이 줄어들고 중간고사 시험 공부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이렇게 '한 우물만 파는' 공부의 목적은 공부의 부담을 줄이면서 재미를 느끼기 위한 것이다. 유성이는 그나마 만만한 수학을 골라 공부를 시작하는 부 담을 덜 수 있었고 한 과목만 공부한다는 특이한 상황을 즐겼다. 한 과목만 공부하는 것이니 게으름도 피우지 않았다. 한 달 후 유성이의 중간고사 수학 점수는 66점이었다. 5점에서부터 30점까지 화려했던 예전의 점수에 비하면 매우 칭찬할 만한 점수다. 그러나 유성이는 이번 공부에서 수학 점수 말고도 얻은 것이 많다.
1) 공부를 시작했다 : 어렵게 공부를 시작했다가 다시 놀게 되는 수많은 학생들을 생각하면 이것 만 해도 유성이의 성공은 대단히 다행스럽다고 할 수 있다.
2) 수업에 집중하는 연습 : 비록 수학 한 과목뿐이었지만 수업 시간에 집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체험 할 수 있었다. 이는 다른 과목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공부 태도이다.
3) 복습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 유성이는 수업 시간에 봤던 것을 다시 한 번 보며 '뭔가 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 성취감은 다음 시간 복습의 원동력이 된다. 일단 복습의 재미를 경험하면 습관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4)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에 익숙해졌다 : 유성이는 공부하는 자신이 어색하다고 했다. 초등학교 이후로 책상에 앉아 본 기억이 거의 없고, 숙제도 소파에서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했기 때문 이다. 그런데 책상에 책 펴고 앉아 제대로 공부하니 공부하는 폼도 나고 공부 시간도 전보다 길어졌다.
5) 다른 과목도 공부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 다음 시험에는 수학 말고도 몇 과목을 더 골라 보기로 했다. 수학 공부를 했 던 것처럼 다른 과목도 수업 잘 듣고 집에서 복습하며 진도만큼 문제 풀고 공 부하면 될 일이다. 유성이의 성적이 모든 과목에 걸쳐 고르게 오르는 것은 이 제 시간 문제이다.
유성이는 시간을 정해 두고 공부하는 것보다 해야 할 것을 정해 두고 공부 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이는 비판적 탐구적 사고력이 강한 학생들의 공통 점이기도 하다. 이런 학생들은 방향과 목표량이 정해지면 그 후에는 자신의 공부에 간섭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유성이가 앞으로 길러야 할 것은 자신의 공부 관리를 스스로 해 나가는 능력이다. 지금까지는 학교 진도에 따라 자신 의 공부 분량이 자동으로 정해졌으니 어려움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스스로 진 도를 나가야 하는 공부도 있고, 스스로 공부의 분량을 정해야 하는 경우도 생 긴다. 그 방법을 배운다면 자기 마음대로 공부를 조절해 나가는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목표를 정하고 즐기며 쫓아갈 줄 아는 유성이를 보며 그 아이가 미래에 어 떻게 자신의 성과를 만들어 나갈지 예측해 볼 수 있었다. 주변의 술렁임에 마 음을 뺏기지 않고 자신의 색깔을 유지하는 과감함은 엄청난 재산이다. 이전 에는 이러한 특성을 '활용'하여 놀았지만 이제는 공부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공부는 자기의 모든 개성과 특징을 버리고 도 닦듯 하는 것이 아니다. 나다움 을 살려 내가 가장 자연스러울 수 있는 방법으로 하면 된다. 유성이는 그 실 천이 어떤 것인지 보여 준 학생이라 할 수 있다.
나에게 꼭 맞는 공부 방법 찾는 법
현재의 상태가 어떻든 지금보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나다운 공부 법'을 찾아야 한다. 나다운 공부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학습 효율을 만들 어 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개 남들 따라 하기를 편리해하고 편안해하기 때문에 자신을 들여다볼 생각은 안 한다. 이러다가는 삼전사기에 끝낼 수 있 는 공부를 칠전팔기까지 끌고 가게 된다. 남과 나를 보는 비율은 3:7 정도여 야 한다. 남의 이야기는 참고만 하자. 나에게 꼭 맞는 공부 방법은 나 자신이 가장 잘 안다는 것을 명심하자.
남보다 나를 먼저 보아야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공부는 내가 이전보다 더 성장하기 위하여 하는 것이지 남들을 따라가기 위 해 하는 것이 아니다. 남들을 따라가기 위해 공부한다면 언제까지나 남의 뒤 만 쫓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놀았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내가 모범생이라고 해서 전혀 자랑할 일도 아니다. 어제까지 내 가 어떠했든 오늘 나의 공부는 나의 새로운 성장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하루하루에 충실하자.
나의 특성을 파악하여 그에 어울리도록 공부전략을 세우자
남들과 비교하여 열등한 점만을 찾아내는 것에 익숙한 학생들은 나의 개성 을 찾는 것을 매우 어색해한다. 그러나 나의 특성이 나다운 공부를 할 수 있 게 하는 열쇠이다.
지금 내 상태에서 실천할 수 있는 공부를 시작하자
남처럼 혹은 남만큼 하려는 공부는 효과도 없고 힘만 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공부의 목표와 분량을 정하자. 나에게 꼭 맞는 교재나 학원, 선생님은 어디에도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내가 공부를 못해 수업을 못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수업이 나에게 맞게 진행되지 않는 것뿐이다.
21. 학교는 저랑 코드가 안 맞아요
공부란 그런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 누구도 말릴 수가 없다./ 내가 남과 다른데, 어찌 남과 같은 방법으로 공부해서 성공할 수 있겠는가./ 남들과 같은 길이 아니더라도 괜찮으니 나다운 방법으로 노력하자.
재용이는 공부 빼고 다 잘한다. 우선 생긴 것부터 멋지다. 쌍꺼풀진 큰 눈에 훤칠한 키 때문에 어딜 가나 여학생들의 곁눈질을 받는다. 넘치는 유머 감각 과 붙임성 좋은 성격으로 친구들을 평정하고 있으니 언제나 인기 만점이다. 재용이가 나를 만난 건 중학교 졸업 후의 진로를 상담하기 위해서였다. 고 등학교 '진학'을 당연한 전제로 놓지도 않았다. 재용이는 고등학교에 갈지 말 지를 포함한 포괄적인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재용 어머니는 공부는 좀 못하지만 비뚤어지지 않고 커 준 아들이 고맙다고 하셨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은 으레 '노는 애'로 취급되잖아요.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쁜 길로 빠지는데 재용이는 그렇지 않았어요. 얼마나 다행 이에요. 친구들하고 놀러 다니면서는 싸움에 휘말리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래 도 재용이가 누구를 때리고 해친 적은 없어요. 다른 애들도 뭐 그러고 싶겠어 요. 공부 못한다고 주변에서 무시하니까 괜히 밖에 나가서 힘 자랑하는 거지 요. 재용이는 본성이 착해요. 집에서도 참 잘하고요." 훌륭한 어머니다. 요즘 세상에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해서든 인문계 고등학교 좀 보내 주세요"라는 부탁을 안 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공부할 때 뭐가 제일 어려워?" "다요." "공부를 일부러 안 하는 거 같은데? "예혜, 사나이가 쪼잔하게 무슨 공부예요."
공부 빼고는 다 잘하는 학생들
재용이는 공부를 조금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와 전혀 상관없이 살고 있었 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하는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학교에 가는 것은 친구들 만나 놀기 위해서이고 수업 시간은 그냥 지나가는 시간이었다. 특히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읽거나 앞에 나가서 문제를 푸는 것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들끼리 있을 때는 온갖 재치와 유머로 대장 노릇을 하다가도 수업 시간에 뭘 해 보라고 하면 말도 잘 못하고 아무것도 생 각나지가 않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에도 더듬더듬하고, 앞에 나가면 칠판에 점 하나 찍지 못하고 몸만 꼬다가 들어오곤 했다. 학교 선생님들도 그런 재용이를 아는지라 고학년이 되어서는 자존심이 상할 까 걱정되어 책 읽기를 시키지 않는 선생님도 계셨다. 그러나 어떤 선생님은 일부러 면박을 주며 평소 시끄러운 재용이에게 '복수'를 하는 분도 있었다.
나의 진로를 고민하는 것은 건강한 현상
재용이의 언어 능력이 부족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대화를 할 때에는 거침 이 없다. 체육 대회 때에는 반 아이들을 다 휘어잡아 응원도 이끌고 오락 시 간에는 온갖 재치로 분위기를 띄운다. 중학교에 와서는 연극부로 활동하며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연극에서 주인공 역도 멋지게 해냈다. 주인공이니만큼 대사도 많았는데 모두 외운 것은 물론 버벅거리지도 않았다. 재용이는 온몸에서 상대방을 설득하고 이끄는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그러나 결코 응원단장이나 오락부장은 맡지 않았다. 교탁 앞에 서거나 마이크를 잡으면 다시 얼어 버리기 때문이다. 즉, 재용이는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데에는 남들을 능가하고, 정해진 말을 해야 할 때에는 입이 닫히는 것이다. 어머니는 재용이가 유독 공부할 때만 머리가 안 돌아가고 책을 잘 못 읽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어릴 때는 얼마나 장난이 심했는지, 초등학교 때 수영장에 놀러 갔다가 팔 꿈치를 크게 다쳤어요. 수술을 세 번이나 했거든요. 어린 애가 큰 수술을 해 야 하니 전신 마취를 했어요. 전신 마취라는 게 사람을 죽였다 살리는 거잖아요. 그런 걸 세 번이나 했으니 머리에도 안 좋은 영향이 있었을 거예요." 성적이 안 나온다는 점 말고는 재용이는 다른 학생들과 다를 바가 없다. 아 니, 다른 학생들보다 훌륭한 듯하다. 탁월한 사회성 하며, 어른들과도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자연스러운 태도는 학교에서 배운 '공경'이라는 단어가 따 로 필요 없음을 느끼게 한다. 고등학교 진학에 대해서도 다른 학생들은 갈지 말지에 대한 의문조차 갖지 않지만 재용이는 더 폭 넓은 선택을 하고 싶어 했 다. 재용이의 진로 고민이 더 건강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성적이 안 나오는 학생들만 갖는 특권 이기도 하다. 재용이와 같은 학생들 을 보며 '고등학교도 못 가서 쩔쩔 땐다'고 표현하는 사람은 분명 남들 하는 대로만 따라가며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일 것이다. 중학교를 마치면 의무 교육은 끝난다. 즉 고등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재용이는 고등학교를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자유가 주어졌다. 학 교를 가든 안 가든 어떤 형태로든 더 배우고 커야 하는 것은 평생 해야 할 숙 재이므로 그런 맥락에서 고등학교를 가는 것뿐이다.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판에 박힌 공부를 싫어하는 재용이에 게는 대안 학교의 수업도 즐거울 것이다. 아니면 학교를 다니지 않고 검정고 시를 보거나 방송통신고등학교 수업을 이수할 수도 있다. 첫 번째 상담을 마치고 재용이와 어머니는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돌아갔 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재용이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가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자존감도 회복되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았으니 학교를 다니지 않고도 잘살 수 있을 거 라고 아주 살판이란다.
학교 밖에도 나의 길은 있다.
입시철을 보내며 재용이는 우선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대안 학교에 가려고 생각도 해 보았으나 재용이가 배우고 싶어 하는 자동차나 핸드폰 만 드는 기술은 배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대안 학교든 뭐든 재용이에게는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학교 환경이 자연과 접해 있고 자유로운 분위 기는 좋았지만 그뿐이었다. 여전히 국영수를 공부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 기 때문이다. 나는 재용이를 보며 토론식 수업이니 어쩌니 하는 것도 지극히 학교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에게나 통하는 특성화된 대안이라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우선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그마저도 재용이가 싫어한다 면 그때 대안 학교로 전학할지 여부를 선택하기로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 한 학기쯤 지났을까, 재용이는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학교가 재미없어요." "다들 재미없어해, 그런데도 그냥 다니는 거야, 졸업해야 하니까." "다니기 싫은데요." "정말 다니기 싫어? 하긴, 네가 배우고 싶은 건 그 학교에서도 알려 주지 않을 거야. 그치? 네." "그럼 다니지 말자." 어머니도 재용이를 위해 최선의 선택은 아닌 것 같다고 하셨다. "실업계 고등학교도 마찬가지예요. 인문계처럼 죽어라 공부를 하지 않을 뿐 이지 대학 가려고 자격증 따고, 그중에서 공부 좀 잘하는 애들은 따로 분리해 서 보충 수업하고, 무슨 경진 대회 같은 게 있으면 상 탈 만한 애들만 또 연습 하고, 나머지 애들은 그냥 들러리로 학교 다니는 기분인가 봐요. 재용이는 누 가 시켜서 하는 걸 싫어해요. 재용이가 배우고 싶은 걸 알려 주지도 않지만 비슷한 걸 배울 수 있다고 해도 좋은 환경은 아닌 거 같아요." 그래도 학교를 그만 다닌다는 것이 아쉬워서 비인가 학교나 위탁형 학교 등을 알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재용이는 학교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재용이 가 기운 빠져하는 것을 보니 선생으로서 할 짓이 아닌 것 같아 미안해졌다. 억지로 학교에 밀어넣을 필요는 없다. 재용이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른들이 불안하니까 학교를 고집하는 것뿐이다. 학교에서 권하는 대로 공부하지 않는 다고 해서 큰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재용이는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혼자 해 보기로 했다. 가르쳐 주는 곳도 없을 뿐 아니라, 있더라도 큰돈이 필요한 기업 연수 프로그램들뿐이었다. 그 래서 학교를 다니지 않는 대신 방송통신고등학교를 통해 고등학교 졸업 자격 을 얻기로 했다. 어머니가 행정 처리를 하느라 학교를 오가는 동안 재용이는 인터넷을 뒤져 산업 디자인과 제품 설계 등에 쓰이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구하고 나와 함께 서점에 가서 프로그램을 따라 해 볼 수 있는 책을 샀다. 그 후 재용이는 순조로웠다. 잠잘 때 말고는 한자리에 30분 이상 앉아 있는 법이 없었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 책을 보며 공부할 때에는 6~8시간씩 버티 기도 했다. 공부란 그런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 누구도 말릴 수가 없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서 공부할 때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냥 그 길밖에 없는 것 같으니 가는 것뿐이다. 더 심각한 것은 남들 이 다 하는 그 공부를 잘하고 있다고 해서 안심한다는 점이다. 내가 남과 다 른데, 어찌 남과 같은 방법으로 공부해서 성공할 수 있겠는가. 남과 비슷해야 안심이 된다면 이미 획일화되어 나를 잊어버렸다는 증거이다. 나의 능력을 가장 잘 이끌어낼 방법이 무엇일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스무 살까지 살아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재용이는 대학교에 가지 않거나 가더라도 천천히 가게 될 것이다. 재용이가 대학교에 가지 않는 이유는 간단 하다. 국영수 시험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국영수 시험 봐야 해요? 그럼 안 할래요." 농담처럼 해치우는 재용이의 대답에는 이 나라 교육의 문제들이 모두 녹아 들어 있다. 너무 익숙해져서 문제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도 얼마나 많은가. "그럼 나중에 가. 먼저 직장을 구해서 일부터 배우고, 경력이 몇 년 쌓이면 특별 전형 같은 걸로 시험 없이 들어갈 수 있을 거야." "그럼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행복한 내가 되는 길을 찾자
재용이와의 만남은 나에게 큰 생각거리를 던져 주었다. 특목고나 SKY 대신 온 우주를 앞에 두고 진로를 고민하는 재용이가 감탄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것인지, 그 가치를 무엇으로 실현할 것인 지가 진짜 진로 고민 아닐까, 재용이는 졸업장이야 어떻든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원하는 방법으로 배우고 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선택의 폭이 좁 아지는 평범한 친구들은 꿈도 꾸지 못할 자유로움이다. 모든 학생들이 이렇게 살 수는 없을까. 나다운 방법으로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 이다. 남들과 같은 길을 가야 안심이 되고, 그중에서 잘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인 듯 절박하게 매달리는 모습들이 애처롭다.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한 다고? 지금 행복할 수 없는데 어떻게 미래에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 미래에 는 또 미래의 미래를 위해 여전히 힘들게 살게 되지 않을까. 지금의 행복을 최선을 다해 누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매 순간을 행복하게 사는 현 명한 방법일 것이다.
대안 교육, 나다운 성장의 실현
재용이가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않고 혼자 공부하는 것은 '홈스쿨링'이라고 할 수 있다. 직역을 하자면 집에서 공부를 한다는 의미이지만 그 근본은 학교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대안 제시에 있다. 입시교육으로 중병을 앓 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대안 교육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 초기에는 획일 적인 장소, 커리큘럼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진정한 나를 만들어가는 교 육의 분위기가 퍼졌었는데 점차 대안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우수한 성적을 내는 것으로 관심이 옮겨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안 교육의 형태
대안 교육를 수행하는 대표적인 기관은 대안 학교'이다. 보통의 학교처럼 매일 등교를 하고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 섞여 공부를 하는 것은 같지만 수 업 운영이나 과목 편성, 학사 일정 등이 비교적 자유롭다. 대안 학교 중에서 도 정부의 인가를 받은 학교는 졸업 시 정규교육과정을 마친 것과 같은 학력 이 인정되지만, 인가를 받지 않은 학교는 학력이 인정되지 않아 비 인가 학교에 다니는 학생 중 졸업 학력을 얻고 싶다면 따로 검정고시 준비를 해야 한 다. 외국에서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는 홈스쿨링도 활발하다. 홈스쿨링을 하는 학생들의 학습과 과제를 관리하는 기관도 있으며 정규 학력 을 인정해 주기도 한다.
대안 교육에 유리한 학생들
대안 교육은 모든 사람이 각자의 가치를 살려 성장해야한다는 생각을 바탕 에 둔다. 같은 내용을 모든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교육으로는 사람을 제대로 길러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학생들이 대안 교육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대안 교육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므로 일부 의 학생들만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특히 유별나다는 이유로 일반학교에서 성장하지 못하는 학생, 일반학교에서 성장하기에는 유난히 뛰어난 재능을 가 진 학생이 대표적이다. 외향, 예술성, 천재성, 능동성, 탐구, 몰입 등 일반 학 교 교육에서는 충분히 이끌어주기 어려운 성향을 가진 학생들이라면 대안 교 육을 고려해 보아도 좋다.
22. 이과 진학하려니 그 동안 외고 공부한 게 아까워요
몇 십 년 후에 내가 어떻게 될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것을 염두에 두고 지금을 초조하게 보내는 것만큼 미련한 짓은 없다. 지금의 내 생각에 충실하여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나 자신에게 진실한 선택을 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윤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외고 준비를 했다. 특별히 특목고 입시를 준비했다 기보다 원래 고등학교는 외고를 가야하는 것처럼 당연한 느낌으로 공부를 했 을 뿐이다. 똘똘하고 성실하니 해야 할 공부들은 철저하게 잘해 냈다. 중학교 에 와서도 늘 상위권이었고 외고 진학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중 3 이 시작될 무렵 비로소 '자아(自我)'라는 것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일까. 꼭 외 고를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당연히 외고에 갈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문과를 집중적으 로 했어요. 그래서 수학보다 영어를 더 잘하고요. 그런데 요즘에는 좀 혼란스러워요." "뭐가?" "외고를 간다면 대학 갈 때도 문과를 가야 할 텐데 그럼 어떤 직업을 선택하 게 될지 잘 모르겠어요. 범위도 좁고요, 하고 싶은 게 없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게 되는 시기는 사춘기 이후이다. 비로소 '내가'라 는 주어를 고민하는 문장에 넣게 되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칭찬이 동기 유발의 전부이던 어린이 시절이 지나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무 엇을 해야 행복할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하는 식의 고민이 머리 를 드는 것이 바로 사춘기이다. 그런 점에서 윤이의 혼란은 지극히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나의 욕구가 사람들이 알아주는 방향과 똑같지 않다는 점. '내가 좋 아하는 것은 음악인데 돈벌이가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건설 회사에 취직 했다' 같이 흔하디흔한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다. 윤이의 고민은 현대를 살아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꿈과 현실의 괴리인 것이다. "네가 하고 싶은 건 어떤 건데?" "약사나 수의사가 되면 좋을 거 같아요. 그러면 이과를 택해야 하는데, 외고 를 가게 되면 이과를 갈 수가 없잖아요. 그렇다고 과고 갈 실력은 전혀 안 돼 요(웃음). 외고 공부를 계속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특목고,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자기도 모르게 외고와 과고 두 가지로 진로를 좁 혀 버린다. 윤이의 고민을 좀 더 '대놓고' 풀어 보면 이렇다. "문과에는 제가 원하는 직업과 관련된 과가 별로 없어요. 약사나 수의사에 관심이 있는데 그러려면 이과를 가야 하잖아요. 과고 갈 실력은 안 되니까 이 과를 가려면 일반고를 가야 하는데, 일반고 가기는 제 성적이 너무 아까워요. 그냥 외고를 갈까요? 외고 가 봤자 가고 싶은 학과에 갈 수도 없는데 외고 공 부를 계속해야 할까요? 학원비도 많이 들고 힘들어요. 일반고는 대충 공부해 도 갈 수 있잖아요." 외고 진학이 윤이의 진로에 도움이 된다면 남은 기간 온 힘을 다해야 하겠 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진 심으로 원하지 않을 때는 나를 넘어서는 힘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부 를 하는 내내 '이걸 계속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윤이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가장 잘해 내는 법이야. 지 금까지 해 왔던 외고 공부는 그냥 부모님이 하라고 해서 한 거잖아, 초등학교 때는 외고가 뭔지도 몰랐고, 내가 어떤 직업을 갖는 것이 좋을지 생각할 겨를 도 없었으니까 그저 외고만 가면 다 해결되는 줄 알고 공부를 시작한 거고, 단지 지금껏 해 왔던 게 아까워서 계속하는 것은 미련한 공부 아닐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면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아."
하고 싶은 것이 불분명하다면 잘하는 것을 택하는 것도 방법
이런 '정답'은 윤이도 모를 리 없다. 윤이네 부모님도 물론 알고 있다. 그러 나 현실은 복잡한 법. 어떤 고등학교를 나왔느냐에 따라 사회 생활도 달라지 고, 학교 선배들이 이미 좋은 곳에 많이 나가 있으므로 좀 더 유리할 수 있다 는 점도 외고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윤이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과 갈등을 품고 계속 공부를 해 나갔다. 무 슨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니 외고 공부하던 책을 불태울 일도 없고, 일상 으로 돌아가 하던 공부를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한 외고 공부가 아니니 어느 날 갑자기 그만둔다는 것도 어색한 일이었다. 일반고는 그저 가만히 있 어도 적당히 갈 수 있겠지만 성실한 윤이에게 '그냥 논다'는 것은 더 어색한 일이다. 그렇게 중 3을 보내고 윤이는 외고 입시에서 떨어졌다. 진로와 맞든 맞지 않 든 오랫동안 공들여 왔던 결과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실망하는 것은 당연 한 일이다. 많이 울고 많이 자면서 겨울방학을 맞이했다. 오랜만에 만난 윤이 는 살이 좀 붙어 있었다. "만날 책상 앞에 앉아만 있어서 그런가 봐요. 시험 끝난 다음에도 그냥 잠만 자고 그래서 살이 많이 쪘어요." "다시 한 번 이과 문과 선택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더 좋네. 그치? "네(웃음)." "이과 갈 거니?" "잘 모르겠어요. 약대에 가고 싶기도 한데, 지금은 또 그냥 그래요." 누가 자신의 진로를 정확히 알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거침없이 선 택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특히 중고등학교 시절은 경험하는 것, 만나는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는 시기이다. 지금의 내 생각에 충실하 여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몇 십 년 후에 내가 어떻게 될지를 아 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것을 염두에 두고 지금을 초조하게 보 내는 것만큼 미련한 짓은 없다. 약사가 되고 싶어 이과를 택했다면 내가 하고 싶어 택한 것이니 책임감이 생기고,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으니 열정으로 공부하게 된다. 후에 약대에 진 학하지 못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일이다. 약대에 진학했더라도 약사 가 되지 않고 연구원으로 남을 수도 있으며 제약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했다는 책임감, 열정을 갖고 몰두하는 느낌, 자발적인 집중력이 무엇인지 경험하는 것은 성공의 자산이 된다. 이것들은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향해 노력할 때에만 얻어지는 것이다. 나는 윤이가 일반고에 가게 된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윤이가 원하는 이 과 선택의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학기가 끝나갈 무렵 문과 이과 예비 조사가 있었다. 윤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문과에다 동그라미 를 쳤다고 했다. "고등학교 와서 공부를 해 보니까 수학이랑 과학이 어렵더라고요. 영어는 어려워져도 하면 될 거 같은데, 수학이랑 과학은 자신이 없어요." 이과에 진학하려니 외고 공부한 게 아깝다던 고민은 이렇게 결말이 났다. 아까워서 안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없어 못 가게 된 셈이다. "생각을 바꿔, 넌 수학, 과학이 어려워서 이과를 못 간 게 아니야. 영어를 더 잘하니까 문과를 가기로 결정한 거야." "어, 맞아요." "이과든 문과든 상관없어. 진로는 언제나 변하는 거니까. 요즘에는 문과 이과 상관없이 전공에 지원하도록 열어 놓은 학교들도 많아. 대학 갈 때에는 이런저런 전공들 사이에서 고민하게 될 거야. 문과이과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돼."
내 마음이 끌리는 곳이 정답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좋은 성적이 오히려 진로 선택의 장애물이 된다. 성 적 순대로 학교와 학과가 나열되어 있으니 가장 높은 곳으로만 가려고 하는 것이다. 늘 칭찬과 기대를 받으며 공부를 해 왔으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속 깊은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점수가 아까워 또는 주변에서 무조건 좋은 학교에 가라고 부추기는 소리에 고민만 할 뿐이다. 철이 들어 감에 따라 우수한 학생들의 열정이 식어 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안타까운 일이다. 내 마음이 끌리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이름 있는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끌린다면 그것이 정답이다. 외고 대신 일반고에 가서 이과에 가는 것이 내가 원하는 직업에 유리하다면 그것이 정답이다. 일반고 가기에 성적이 아깝다는 생각도 불필요한 착각이며, 성적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일 반고 간다는 생각도 어이없는 열등감일 뿐이다.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 모든 불행은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에서 비롯된다. 내 마음의 소리에 집 중하자. 나 자신에게 진실한 선택을 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니 그저 성실히 노력하는 것으로 입증해 보이자, 잘해 낼 수 있다.
진로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은실이는 윤이와 비슷하면서도 정반대의 고민을 했다. 이미 이과를 선택하 여고 2까지 마쳤으면서도 법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고3을 앞두고 문과로 바 꾼 것이다.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다. 학급 반장을 도맡아 하며 착실히 공부를 잘해 나가던 학생이 갑자기 다 지난 문과 이과 고민을 하고 있으니 선생님 이나 학생들이나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은실이의 생각이 확고해지자 담임 선생님은 요상한 말로 은실이를 설득하 기 시작했다. 교과서도 다시 사야 하고 반 편성도 다시 해야 하니 번거롭다. 너 하나를 위해 교과서를 한 권만 주문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반 편 성을 다시 하면 학급 정원 초과의 문제가 생기니 그냥 문과로 남아라, 이과 과목은 혼자 공부하고 수능 시험만 이과로 택하라는 것이다. 은실이는 화가 났다. 웃기기도 했다. 학생은 인생을 걸고 진로를 고민하는 데 선생님들이 보이는 태도는 뭔가. 일 처리하기 귀찮으니 그냥 있으라니 어 이가 없다. 부모님은 모든 선택을 은실이에게 맡겨 두었다. 결국 교장실까지 찾아갔다. "학교가 뭐 하는 곳이에요? 학생들 가르치고 키우는 곳 아니에요? 반 편성 하기 편한 대로 진로 지도하는 거예요? 교과서 사기 번거로우니까 이과 과목 은 가르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는 거예요?
진심으로 원해야 추진력이 생긴다
당찬 은실이는 할 말을 다 하고 교장실을 나왔다. 그래도 학급 정원 초과는 인정될 수 없는 일. 서류상 반 편성은 그대로 둔 채 실제 학교 생활은 이과반 에서 하며 이과반 수업을 들었다. 수행평가는 교무실에 가서 따로 하는 일이 많았다. 인원 파악에서부터 점수 산출까지 은실이를 빼야 할 일과 포함해야 할 일 때문에 헷갈리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단체 생활 하는 학교에서 혼자 뭐 하는 짓이냐며 화를 내는 선생님도 있었다. 얼마나 눈치가 보였을까. 그래도 은실이는 잘해 냈다. "재밌는 일도 많았어요. 선생님들을 따로 만날 일이 많으니까 좋은 말씀도 많이 해 주시고요.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도 더 많이 들고요." 은실이는 결국 법학과에 진학했다. 진로 선택이 중요하다지만 선택한다고 다 이루어지던가. 선택 후 이루어 가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하고 싶은 마음 이 있어야 추진하는 힘도 생긴다. 내 미래는 내가 만들어야 하는 법, 무엇을 고민하는가. 간절히 원하는 것으로 택하자.
중학생 자기주도 학습법
이지은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