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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기술] 불패의 리더이순신, 그는 어떻게 이겼을까_107

During the early stages of the Imjin War, Admiral Yi Sun-sin carefully analyzed the Japanese military strength and prepared for battle. In the Battle of Okpo in 1592, Yi Sun-sin used the cannon of the Joseon Navy to conduct a long-range artillery battle, overwhelming the Japanese forces and achieving the first victory. As a result, the Joseon Navy defeated the Japanese forces without a single casualty, and their confidence was boosted to secure further victories in the following battles.

 

         [이겨본 자만이 이긴다]

 

옥포해전

1. 동쪽으로 쏜 화살은 동쪽으로 간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20여 일, 15만 일본군 선봉은 파죽지세로 북 진에 북진을 거듭했다. 기어이 한양에 입성한 일본군 병사들의 발은 온통 피멍과 물집이 잡히고 부르터 있었다. 한양 함락을 목표로 부산 에서 진격을 개시한 일본군은 전투보다는 북진을 위해 강행군을 했던 셈이었다. 그만큼 조선 육군의 저항은 미미했던 것이다. 물론 동래 부 사 송상현, 부산진 첨사 정발, 충주 배수진의 신립 장군 등이 사력을 다해 저항하다 영웅적으로 전사했지만, 일본군의 조총에 맞서기란 처 음부터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었다. 전란 소식을 듣고서도 이순신은 20여 일이나 지나도록 출전하지 않 은 채 여수의 전라좌수영에 머물고 있었다. 몇 번에 걸쳐 경상우수사 원균이 참전을 요청했지만 이순신은 군사를 움직이지 않았다

 

신중한 선택, 승산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공식적인 절차도 필요했다. 아무리 전란 이지만 일선 장수가 함부로 군사를 움직일 수는 없었을 터. 그렇다면 그동안 이순신은 무엇을 했을까? 이순신은 다른 지역에서 있었던 전 투를 바탕으로 일본군의 전력을 탐색했을 것이다. 적의 전력은 어떤 지, 무기는 어떤 것이며 주로 어떤 전술을 쓰는지 관찰하고 분석했을 것이다. 적을 모르고서야 이길 수 없지 않은가? 신중하게 기다리던 이순신은 마침내 출전을 결행했다. 조정에서 적 군과 싸우라는 공식 문서가 도착한 다음이었다. 1592 5 3, 여수를 떠난 이순신은 당시 경상우수사이던 원균 과 합류했다. 이순신은 판옥선 24척의 함대를 거느리고 있었고 원균 은 4척만을 가까스로 수습하고 있었다. 지금의 거제시 옥포만에 적이 있다는 첩보가 입수되었다. 이순신은 작전회의를 열었다. 마침 전라좌수군과 경상우수군의 연합 함대에는 당시 옥포 만호이던 이운용이 있었다. 이순신은 그에게서 옥포의 지 형에 대해 자세히 들었다. 옥포만은 넓고도 깊어서 넓은 바다 쪽에서 처들어간다면 적에게 쉽게 노출될 것이 뻔했다. 일본군 몰래 기습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당시 판옥선의 속도를 봐도 기습전 은 무리였다. 판옥선은 평소에는 꽃과 노를 함께 이용하지만 전투시 에는 돛을 접고 오로지 노의 힘만으로 운행해야 하기에 속도가 느렸 다. 돛을 접는 것은 적의 화공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순신은 그동안 수집한 모든 정보를 분석하고 적의 무기 체계를 파악했다. 당시 일본군은 최첨단 무기인 조총을 확보하고 있었다. 수 군도 조총을 이용했다. 주력 무기는 조총과 활, 그리고 그들이 자랑하는 일본도가 전부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싸울 것인가? 조선 수군의 판옥선에는 총동이 있 었다. 조선 수군이 적의 조종 피해를 입지 않고 적선을 격파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은 포격전이었다. 일본군 조종의 유효 사거리에 비해 조선 총통의 사거리는 훨씬 멀었다. 조선 총통의 경우 500보 넘게 발사체를 쓸 수 있지만 일본군 조종의 유효 사거리는 100보 내외, 따라서 먼 거 리 포격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다고 이순신은 판단했다. 또한 조총은 인명 살상용이지만 조선 수군의 총통은 목재로 된 일본군 전선을 파 괴할 만한 위력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한 후 이순신은 원거리 포격전이라면 승산이 있 다고 판단했다. 이순신이 자신의 작전을 설명했다. 그러나 원균 등 용 맹한 다른 장수들은 원거리 포격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이 생 각하는 승리란 적에게 접근하여 그들의 목을 베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적선에 아군의 전선을 접근시키고 적이 후퇴할 경우 상륙하여 끝까지 추격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순신은 이런 의견 올 단호하게 거부했다.

"접근전은 허락하지 않는다. 적이 도망치더라도 결코 상륙하지 마라 "적의 수급(머리)을 취할 생각하지 마라, 적의 배를 격파하는 자의 전공을 높이 살 것이니라." 원균 등 일부 장수들은 불만스러웠지만 이순신의 전라좌수군이 주력군이었으니 그의 작전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진격, 두려워하지 마라!

마침내 이순신의 조선 연합 함대는 옥포 앞바다로 진격했다. 그때 까지 조선 수군이 오는 것을 모르고 방심하던 일본의 도도 다카도라 군은 전선의 뱃머리를 육지 쪽으로 대놓은 채 노략질에 한창이었다. 그들은 개전 이후 제대로 전투다운 전투를 치러보지 못했다. 듣던 대 로 조선군은 오합지졸이었다. 조선 육군은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무 너졌으며 조선 수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안심한 그들은 벌써부터 승 전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드디어 이순신 함대가 옥포만 입구에 다다랐다. 적선은 30! 포구 곳곳에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멀리서 적선을 바라보는 이순신은 만감이 교차했다. '저들인가? 이 나라를 순식간에 도륙낸 왜적이 저들이란 말인가?‘ 전쟁에 나가 처음으로 일본군을 마주한 조선 수군들 역시 긴장과 두려움에 떨었다. 옥포를 바라보는 조선 수군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런 병사들을 바라보는 이순신의 마음 또한 착잡했다. '적은 백 년 넘게 전쟁만 해온 무리, 과연 우리 수군이 이길 수 있을 까? 이겨야 한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전란, 첫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앞날은 없다. 이겨본 자만이 이길 수 있는 법! 동쪽으로 쓴 화살은 동쪽으로 날아가지 않던가?’ 이순신은 함대를 포격 사거리까지 진격시켰다. 그러고는 일자진을 멸치게 했다. 원균의 판옥선까지 모두 28척이 일렬 횡대로 늘어섰다. 아직은 조선 수군의 판옥선 앞머리가 적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상태로는 전투가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조선 수군의 총통 대부분은 배의 측면에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총통이 적선을 향하게 하려면 배를 돌려야 했다. "전함대 우현으로!"

이순신의 명령에 따라 조선 판옥선이 90도로 회전했다. 이제 배의 측면에 있는 총통이 적선을 향했다. 뒤늦게 이순신 함대를 본 일본군은 부랴부랴 전투 태세를 갖추고 조선 수군을 향해 진격해 오기 시작했다. 일본군은 뱃전에 늘어서 조 총 사격을 가해 왔다. 순간 벼락 같은 총소리가 옥포 바다를 가득 메웠다. 그 소리에 조선 수군들이 몸을 움츠렸다. 조선 육군도 그러했다. 조총 총탄이 날아오기도 전에 소리에 놀라 전열이 무너졌던 것이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엄청난 총소리에 대부분의 육군은 제대로 싸워보 지도 못하고 도망쳤던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적의 조총은 우리 배에 미치지 못한다. 천자총통 을 준비하라!" 이순신의 명령에 따라 화포장과 포수들이 천자총통에 대장군전을 장전했다. 천자총통은 조선 수군이 보유한 총통 중에서 가장 큰 것이었다. 천 자총통은 자체 무게만도 200킬 로그램이 넘는 대형 총통이 다. 조선 수군은 이 총통을 동 차에 실어 이동시켰다. 총통에 들 어가는 대장군전은 앞부분이 쇠로 된 대형 화살로 화살 가운데에는 날개가 달 려 있다. 그 길이만도 270센티미터가 넘었 다. 이것을 천자총통에 넣어 쓸 경우 900보가량 날아간다는 기록이 남 아 있다. 900보라면 약 1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다. 3미터에 가까운 대 형 화살이 1킬로미터를 날아간다면 그 충격이 어떻겠는가? 실제로 육 군사관학교에서 총통에 대장군전을 장전해 발사해본 결과 석축에 50 센티미터 가까운 구멍이 났다. 대정군전은 날아가서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게로 적의 성벽이나 배에 치명상을 입힌다. 얇은 삼나무 판자로 만든 일본군 전선은 대장군전을 맞으면 그대로 갑판부터 배 밑바닥까지 구멍이 뚫리고 그 구멍으로 바닷물이 솟아올라 침몰하게 되는 것이다. 총통의 구조는 비교적 간단하다. 쇠로 만든 커다란 통으로 아래쪽이 막혀 있는 원통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막혀 있는 맨 아래쪽에 적당량 의 화약을 넣고 그 화약에 닿을 수 있도록 종이로 꼰 심지를 만들어 총 통에 나 있는 심지 구멍으로 밀어 넣는다. 화약을 넣은 다음 바로 대장 군전을 넣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격목이라는 나무토막을 끼운다. 이 는 화약이 폭발할 때 그 폭발력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격목 대신 흙을 다져 넣는 경우도 있다. 입자 고운 흙을 다져 넣 어 폭발력을 유지시키려는 것인데 이를 토격이라 한다. 화약을 넣고 격 목을 박은 다음 총통 입구에 대장군전을 넣는다. 이제 화살 앞머리가 적진을 향한다. 그런 다음 화포장은 심지에 불을 붙인다. 물론 심지 구 멍은 총통의 몸체에 만들어져 있다. 심지에 붙은 불이 타들어가 화약이 폭발하면서 격목과 대장군전을 함께 날려 보내는 것이다.

 

쓰러지는 적, 승리를 확인하라

"방포하라!" 화포장이 떨리는 손으로 심지에 불을 붙였다. 심지가 타들어가자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둔중한 충격이 뱃전에 전해졌다. 무게 33킬로 그램에 길이가 3미터 가까운 대장군전이 천자총통에서 발사되었다. 대장군전은 까마득히 멀어져가서 적선을 넘어 옥포 포구에 떨어졌다. "넘어갔습니다." 포수가 즉각 보고했다. "화약을 줄여라! 포신을 낮춘 후 방포하라!" 다음 순간 일제히 조선 판옥선에서 총통이 발사되었다. 대장군전, 차대장군전, 그리고 단석들이 어지러이 날았다. 조선군의 포격을 받 은 일본군은 혼비백산했다. 대장군전이 떨어진 일본군 전선에는 그대 로 구멍이 뚫렸고 커다란 단석 역시 구멍을 냈으며 그 틈으로 바닷물 이 치솟기 시작했다. 단석이란 둥근 돌덩이로, 이는 입구가 큰 '완구'라는 총통에 넣어 발사하는 무기였다. 일본군으로서는 모든 것이 처음 보는 신무기들이 었다. 그들은 조총과 활로 대적했으나 사거리 밖이었다. 일순 숨이 멎 는 듯한 공포가 그들 사이를 휩쓸고 지나갔다. 조선 판옥선 28척은 한꺼번에 200여 발 의 포격을 가했다. 조선 총통의 방포 소 리는 일본군 조총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조선 수군이 쏜 발사체들이 넓은 화망을 형 성한 채 끊임없이 날아들었다. 30여 척의 일본 전선이 힘없이 격파되어갔다. 일본군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그제서야 이순신은 접근을 명령했다. 군사들에게 적의 실체를 보여 주고 그들이 조선군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지 직접 보여주고 싶었 다. 판옥선의 격군들이 노를 저어 이미 전의를 상실한 일본군 가까이 로 접근했다. 드디어 적이 화살 사정거리까지 들어왔다. "사수 준비하라!" 뱃전에 늘어선 조선 수군들이 팽팽하게 시위를 당겼다. 그동안 수 없이 많은 화살을 과녁을 향해 날렸던 조선 수군이었다. 이순신의 활 쏘기 훈련은 엄격했다. 그러나 사람을 향해, 적을 향해 날리기는 처음이었다. 시위를 당긴 팔들이 가늘게 떨렸다. "발사!" 이순신의 명령과 함께 사수들이 시위를 놓았다. 날아간 화살은 수 많은 일본군을 쓰러뜨렸다. 화살에 맞은 일본군은 뱃전에 쓰러지거나 바다로 고꾸라졌다. 조선 수군들 자신도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을 믿 기 어려웠다. 적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그들이 날린 화살에 맞아, 총 통에 맞아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군사들 사이 에 일었다. 조선 수군들은 쉬지 않고 화살을 날렸다. 이순신은 안도했다. 이제 적진은 완전히 무너졌다. 적선은 겨우 6척 만이 해안을 끼고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옥포 앞바다는 불타는 적선과 물에 빠진 일본군 시체로 가득했다. 조선 수군은 목청껏 함성을 울렸다. 그들이 이긴 것이다. 누구도 믿지 못했던 승전, 야차 같 다는 일본군을 단 한 명의 전사자도 없이 완벽하게 격파했던 것이다. 그렇게 이순신과 조선 수군의 첫 전투 옥포해전은 승전으로 끝이 났다.

 

2. 이겨본 자만이 이긴다

이겨놓고 싸워라

마침내 출전을 결심한 이순신, 그는 임진왜란이 단 한 번의 전투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전선은 넓고도 길게 형성되었 다. 무엇보다 이미 일본군 주력군이 육지로 진격하며 주요 거점을 장 악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또한 수많은 일본군 후발대가 대마도를 떠나 속속 부산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하루 이틀, 한두 번의 전투로 끝 날 전쟁이 아니었던 것이다.

서기 645, 당나라 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 고구려 장수 양만 춘은 안시성에서 그들을 맞았다. 안시성 싸움에서 양만춘이 이끄는 고구려군은 30만 당나라 대군의 공세를 막아냈고 결국 당 태종은 심 각한 부상을 입은 채 퇴각하고 말았다. 안시성 한 곳의 싸움이 전쟁을 판가름해버린 경우다. 그러나 임진왜란은 달랐다. 특히 해전은 육지의 전투와 또 달랐다. 전장은 드넓게 펼쳐진 바다, 언제 어디서 어떤 적과 마주칠지 알 수 없 는 노릇이었다. 한 번의 해전으로 이 전쟁을 끝낼 수 없다는 것을 안 이순신, 그는 긴 싸움을 준비했다. 그래서 첫 전투가 무엇보다 중요했 다. 앞으로 치를 숱한 전투를 위해서라도 첫 싸움, 서전은 반드시 이겨 야만 했다. 첫 전투 승리를 위해 그가 준비한 전술, 그것은 원거리 포 격전이었다. 그리고 이순신은 조총보다 총통()이 훨씬 위력적이라는 사실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나폴레옹이 짧은 기간에 정복왕이 될 수 있었던 것도 포병을 잘 운 용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이전 시절은 기마병이 주력군이었으나 나 폴레옹은 적의 기마병을 포격으로 간단히 제압하여 정복전쟁의 영웅 이 되었던 것이다. 원거리 포격전을 기획한 이순신, 적과 아군의 무기 체계를 연구한 다 음 전술을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적중했다. 이미 이겨놓고 싸운 것이다. 조선 수군은 단 한 명의 전사자도 없이 첫 해전에서 압승을 거 두었다. 이순신은 일단 안도했다. 조선 수군들도 적에 대한 공포감을 없앴다. 앞으로도 이길 수 있으리라. 이겨본 자만이 이길 수 있으므로,...

 

실패는 실패를 부른다

중국 축구가 이른바 공한증에 걸려 있다고 한다. 경기력이나 체력 면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데도 경기만 벌어지면 번번이 지는 것이다. 홈그라운드에서 광적인 응원을 받으며 경기를 치러도 결과는 같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연이라고는 말할 수 없 을 것이다. 혹시 이겨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한국 팀과 붙으면 꼭 진다는 생각에 먼저 위축되어 있던 것은 아닌지. 만약 중국 이 단 한 번만이라도 큰 경기의 진검 승부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이겨본다면 앞으로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한 번의 승전 경험, 한 번의 성공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하는 일마다 잘 안 된다는 사람이 있다. 사업을 한답시고 이것저것 열심히 시도는 해보는데 항상 폐업과 개업을 되풀이하는 사람이 있다. 왜 그럴까? 처음부터 철저히 준비하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이게 잘 안 되면 다른 거 찾아보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 러다 보니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찔러보다가 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볼 일이다. 삼겹살 장사로 재미를 본 사람은 불닭 장사 를 해도 짭짤하다. 반면 김밥 장사가 시원찮았던 사람은 치킨집이든 피자집이든 고전을 면치 못한다. 성공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가장 큰 고민인 취업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력서 와 자기소개서라면 자다가도 줄줄 외울 정도지만 번번이 취업에 실패 하는 사람, 그 역시 첫판에 철저히 준비했어야 했다. 한 번도 성공해본 경험이 없기에 원서만 내다가 결국은 만년 취업재수생이 되고 만다. 물론 칠전팔기도 있고 인생 역전이라는 말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 은 첫판이요 첫 싸움이다.

 

첫판에 이겨야 한다.

중요한 일일수록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생각 으로 신중하고 치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첫판을 이겨본 자는 성취감 과 자신감을 백배 충전하여 다음 싸움에도 최선을 다한다. 이겨본 자 는 승자의 기쁨만이 아니라 패자의 처절함까지도 경험할 수 있다. 무 너진 상대를 보며 패자의 비참함까지 느낄 여유가 있는 것이다. 반면 이겨보지 못한 자는 승자만이 누릴 수 있는 충만감을 알지 못 한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패자의 정서에 익숙해지고 만다. 실패가 두 번 세 번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실패에 익숙해져 스스로 실패의 논리 를 만들어낸다. 즉 자기변명에 급급한 것이다. 내가 진 것은 나의 잘못 이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며, 큰 잘못이 아니라 작은 실 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스스로 위안하고 합리화한다. 이것이 반복되다 보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 자신의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조차 모르게 되고 마는 것이다.

 

일단 이겨놓고 시작하라 

나 자신의 경우는 어떤가? 이기기가 어려운가?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하는가? 곰곰이 생각해보라! 언제 이겨보았는가? 온 세상을 다 얻은 듯했던 기억이 있는가? 있다면 그때를 돌이켜보라. 목표한 것을 이루었을 때, 넘보기 어려운 경쟁 상대를 이겼을 때를 떠올리면 지금 도 온몸에 새로운 힘이 솟지 않는가.

만약 단 한 번도 그런 기회가 없었다면 다시 시작하라. 이길 수 있는 상대를 만나 싸움을 걸어라. 투견을 키우는 한 방법, 처음부터 결코 강 한 상대와 맞서게 하지 않는다. 약한 상대를 골라 스파링을 시킨다. 승리의 기쁨과 기억을 만끽하게 해주기 위해서다. 만약 아직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면, 그래서 더 가능성이 많은 사 람이라면 지금 당장 약한 상대를 골라라, 상대적으로 입사하기 쉬운 회사도 괜찮고 국가고시보다 약간 쉬운 시험도 괜찮다. 비싼 상품이 안 팔린다면 대중적이고 접근하기 쉬운 상품을 갖고 주변 사람부터 공략하라. 그리하여 성공하라! 지는 것은 습관이다. 이기는 것 역시 습관이다. 이순신이 첫 해전 옥 포에서 가장 주력했던 것, 그것은 처음 전투에 나서는 조선 수군에게 승리의 기쁨, 승전의 기억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첫판에 이겨라. 그 뒤에는 승승장구가 기다린다. 만에 하나 첫판에 이기지 못했다면 단 한 번만이라도 이겨보라. 고스톱을 쳐도 선이 선을 잡지 않던가? 잘 안 되면 '3'이라도 스톱을 불러라. 그리고 당신이 패를 쥐고 흔들어라. 서전의 승리, 그 기억이 자신을 바꾸어놓을 것이다.

 

불패의 리더이순신, 그는 어떻게 이겼을까

윤영수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