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an Que was a legendary physician with extraordinary medical skills and insight, capable of treating patients who appeared to be beyond saving. He gained fame by reviving the Crown Prince of the State of Guo and highlighted the importance of early diagnosis and treatment through the case of the Marquis of Qi. Bian Que identified six incurable diseases, pointing to misguided attitudes and ignorance about illness as barriers to effective treatment. Humbly describing himself as a doctor who merely "helped those who could be saved," he emphasized that the essence of medicine lies in understanding and addressing the root causes of disease.

의술을 하늘까지 떨치면 질투를 받는다.
편작·창공 : 명의는 천리 밖의 환자의 병명도 알아맞힌다
편작扁鵲의 성은 진秦이고 이름은 월인이다. 그는 젊었을 때 한 여관 의 관리인으로 지냈다. 객사에 장상군長桑君(장상張桑은 성이고, 여기서 군君 은 타인에 대한 존칭)이라는 노인이 객사에 와서 머물렀는데, 편작은 그를 비범한 사람으로 여겨 언제나 정중하게 대했다. 장상군 역시 편작이 보 통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던 어느 날, 장상군은 편작에게 비방의 약과 의학의 비술이 적힌 책을 전수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편작은 장상군이 준 약을 30일 동안 물에 타서 마셨는데, 투시력이 생겨 담 너머 저편에 있는 사람까지 보 였다. 이러한 능력으로 환자를 진찰하니, 오장 속에 있는 종양이 죄다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편작은 자신의 투시력을 감추고 진맥을 잘 짚는 의원처럼 행동했다. 편작은 의원이 되어 어떤 때는 제나라에 머물기도 하고, 어떤 때는 조나라에 머물며 환자를 돌봤다. 편작이라는 이름은 조나라에 있을 때 붙여진 호이다. 진晉나라의 권세가 조간자趙簡子가 병이 들었을 때의 일이다. 편작이 그의 투시력으로 조간자를 살펴보더니, 3일 내에 병이 나을 것이라 말 하며, 조간자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그 내용까지 알아맞혔다. 3일 후과 연 편작의 말대로 조간자의 몸은 회복되었고, 조간자는 편작에게 전답 4만 무畝를 상으로 주었다. 그뒤 편작은 곽나라로 갔다. 그때 마침 괵나라의 태자가 죽었다. 편 작이 곽나라 궁문 앞에 가서, 의술을 좋아하는 중서자中庶子(태자의 교육 과 관리 등을 담당하는 관직)에게 물었다. "태자가 무슨 병 때문에 죽었습니까?" 중서자가 답했다. "태자의 병은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고 뒤엉켜 발산되지 않다가 갑자기 몸 밖으로 터져나와 몸속을 해친 것입니다. 정기正氣가 사기邪氣 를 누르지 못하여 그 사기가 쌓여 발산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양기는 느려지고 음기는 움직임이 급해져 죽은 것입니다." 편작이 물었다. "언제 죽었습니까?" 중서자가 답했다. "닭이 울 때부터 방금 사이입니다." 편작이 다시 중서자에게 물었다. “시체를 염습했습니까?" "아직 안 했습니다. 죽은 지 반나절도 안 됩니다." 중서자의 이 같은 대답에 편작이 다시 말했다. “신은 제나라 발해의 편작이라고 합니다. 아직 태자를 뵌 적은 없었 습니다만, 불행히도 죽었다고 하니 신이 태자를 살려보겠습니다.” 중서자는 편작을 질책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생은 함부로 요망한 말씀을 하시면 안 됩니다. 이미 죽은 태자를 어찌 살릴 수 있다고 하십니까? 제가 들으니, 옛날에 유부라는 명의는 환자의 옷을 풀어 헤쳐 환부를 보는 것만으로 병의 징후를 알아냈으며, 피부를 가르고 살을 열어 끊어진 힘줄을 잇고, 오장을 깨끗이 씻어 정 기를 다스리고 신체의 기능을 회복시켜 놓았다고 합니다. 만약 선생의 의술이 그와 같다면 태자를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능력도 없으면서 살리겠다고 한다면 삼척동자라도 웃을 노릇입니다.” 편작은 중서자의 말을 듣고 있다가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했다. "당신이 말하는 의술은 대나무 구멍으로 하늘을 엿보고, 틈을 통해 무늬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의술은 환자의 맥을 짚어보거나 얼굴 빛을 살펴보거나 진찰을 하지 않아도, 증세만 듣고도 병의 내부까지 훤 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병의 징후는 표면에 드러나는 것이므로, 천 리 밖의 환자의 병도 명의는 병명을 알아맞히는 경우가 아주 많은데, 이것은 말로 설명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내 말을 정 믿지 못하겠다 면 당신이 들어가서 태자를 살펴보시오. 태자의 귀에서는 소리가 나고 코는 벌름거리고 있을 것이며, 태자의 음부 쪽 허벅지를 어루만져 보면 아직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실력이 부족한 의원은 병명을 의심한 채 과잉 진료한다
중서자는 편작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곧바로 궁궐로 들어가 곽나라 임금에게 보고했다. 곽나라 임금은 그 말을 듣자 매우 놀라워하며 중문 中門까지 나와서 편작을 만나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의 높은 명성은 이미 오래전에 들었으나 뵐 기회가 없었소. 만 약 선생께서 이렇게 작은 나라까지 찾아와 주지 않았다면, 산 자식을 땅속에 파묻을 뻔했습니다." 편작이 말했다. "태자의 병은 시궐이라는 병입니다. 대체로 양기가 음기 속으로 흘러들어가서 위冑를 움직이고 경맥과 낙맥을 막히게 하고 방광까지 흘 러내려갑니다. 때문에 양맥은 아래로 내려가고 음맥은 위로 치솟아 양 기와 음기가 모이는 곳이 막혀 통하지 않게 됩니다. 결국 태자는 음기 가 파괴되고 양기가 끊겨 혈색이 없어지고 맥이 어지러워져, 마치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태자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대 개 양기가 음기로 들어가 오장을 누르는 자는 살아날 수 있지만, 음기 가 양기로 들어가 오장을 누르는 자는 죽습니다. 이런 현상은 몸속에서 오장의 기가 거꾸로 치솟을 때 갑자기 생기는 것입니다. 명의는 이런 병을 알아맞히고 치료하지만 실력이 부족한 의원은 이를 의심하고 안 절부절못하며 과잉 진료합니다." 편작은 제자에게 숫돌에 침을 갈게 한 뒤, 이것으로 몸 표면에 있는 삼양三陽과 오회五會를 찔렀다. 그로부터 조금 지나서 태자가 소생했다. 편작은 제자에게 오분五分의 고약과 팔감八減의 약제를 섞어서 달인 다 음 이것을 양 겨드랑이 밑에 번갈아 붙이도록 했다. 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게 되자, 편작은 다시 태자의 음과 양의 기를 조절하면서 20 일 동안이나 탕약을 먹였다. 그러자 태자는 완전히 회복되었다. 이 일 로 세상 사람들은 편작을‘능히 죽은 사람도 살리는 명의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편작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죽은 사람을 살려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살 수 있는 사람을 일 어나게 해주었을 뿐이다.” 명의라도 고칠 수 없는 병이 있다 편작이 제나라에 들렀을 때, 제나라 환후桓侯(여기서는 누구를 가리키는 지 알 수 없으나 환공桓公 전오田午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측된다. 춘추전국시대 제 나라에는 환후는 없고 환공만 있었는데, 사마천은 '제환후'라고 하였다)가 그를 빈객으로 맞이했다. 편작은 궁궐로 들어가 환후를 뵙고 말했다. "지금 군께서는 피부에 병이 있습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깊어질 것입 니다." 환후는 믿지 않았다. "과인에게는 병이 없도다.” 편작이 물러가자 환후는 좌우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의원이 이익을 좋아하여, 병 없는 사람에게 병이 있다고 하여 공을 이루려 하는구나." 5일 뒤에 편작이 다시 환후에게 말했다. "군의 병이 혈맥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더욱 깊어지 겠습니다." 그래도 환후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과인에겐 병이 없도다." 편작이 나가자 환후는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5일 뒤에 편작이 환후에게 말했다. "군의 병이 위장 사이까지 퍼졌습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 합니다." 비로소 환후는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으나 대답을 하지 않았다. 편작 이 물러가자 환후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5일 후 편작은 또 환공을 보았 으나 아무 말 하지 않고 물러나왔다. 환후가 사람을 시켜 그 이유를 묻 자, 편작은 이렇게 대답했다. "병이 피부에 있을 때는 탕약과 고약으로 치료할 수 있고, 병이 혈맥 까지 펴졌을 때는 침으로 치료할 수 있소. 또한 병이 위와 장까지 퍼졌 을 때에는 약주藥酒로 치료할 수 있소. 그러나 병이 골수까지 퍼졌으면, 비록 사람의 생명을 관장하는 신일지라도 손쓸 수가 없는 것이오. 환 후의 병이 바로 골수까지 들어가 있으니, 나로서도 드릴 말씀이 없었던 것이오." 그로부터 5일 후 환후는 병석에 눕게 되었고, 사람을 시켜 편작을 불렸으나 편작은 이미 행방을 감춘 뒤였다. 환후는 결국 편작의 말대로 죽고 말았다.
여섯 가지 불치병
성인이 병의 기미를 먼저 알고, 명의에게 조기 치료할 수 있도록 손을 쓴다면 웬만한 병은 나을 수 있다. 사람들이 근심하는 바는 병이 많은 것이고, 의원이 근심하는 것은 병을 치료할 방법이 적은 것이다. 편작이 물러가자 환후는 좌우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의원이 이익을 좋아하여, 병 없는 사람에게 병이 있다고 하여 공을 이루려 하는구나." 5일 뒤에 편작이 다시 환후에게 말했다. "군의 병이 혈맥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더욱 깊어지 겠습니다." 그래도 환후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과인에겐 병이 없도다." 편작이 나가자 환후는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5일 뒤에 편작이 환후에게 말했다. "군의 병이 위장 사이까지 퍼졌습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 합니다." 비로소 환후는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으나 대답을 하지 않았다. 편작 이 물러가자 환후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5일 후 편작은 또 환공을 보았으나 아무 말 하지 않고 물러나왔다. 환후가 사람을 시켜 그 이유를 묻자, 편작은 이렇게 대답했다. "병이 피부에 있을 때는 탕약과 고약으로 치료할 수 있고, 병이 혈맥까지 펴졌을 때는 침으로 치료할 수 있소. 또한 병이 위와 장까지 퍼졌 을 때에는 약주藥酒로 치료할 수 있소. 그러나 병이 골수까지 퍼졌으면, 비록 사람의 생명을 관장하는 신일지라도 손쓸 수가 없는 것이오. 환 후의 병이 바로 골수까지 들어가 있으니, 나로서도 드릴 말씀이 없었던 것이오." 그로부터 5일 후 환후는 병석에 눕게 되었고, 사람을 시켜 편작을 불 했으나 편작은 이미 행방을 감춘 뒤였다. 환후는 결국 편작의 말대로 죽고 말았다.
편작과 창공은 진나라의 명의로 전설적인 인물이다. 편작은 그가 지은 <맥서>에서 여섯 가지 불치병에 대해 언급했는데, 무당의 말만 믿고 의사를 믿지 않는 것도 불치병의 하나로 보았다. 그래서 고칠 수 없는 여섯 가지의 것이다. 교서 가지의 병이 존재하는 병의 근본을 논하지 않는 것이 첫번째 불치병이요. 몸을 .가볍게 알고 재품을 소중히 여겨 병을 치교하지 않는 것이 두 번째 불치병이다 을 입고 음식 먹기를 적정히 하지 못하는 것이 세 번째 불치병이요. 양과 음이 오장에 함께 있어 기가 안정되지 않는 것이 네 번째 불치병 이다. 몸이 피폐해질 대로 피페해져 약을 복용할 수 없는 것이 다섯번 째 블치병이요, 무당의 말만 믿고 의원을 믿지 않는 것이 여섯 번째 불 치병이다. 이 중에서 하나만 있어도 병을 치료하기 어렵다.
진정으로 자를 위하는 의원이로다
편작의 이름은 천하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 한단에 들렸을 때는 그곳 사람들이 부인을 소중하게 여간다는 말을 들고 부인과 의원이 되었으 며, 낙양에 들렀을 때는 노인을 존중한다는 말을 듣고 눈병 귓병 중풍 등을 치료하는 노인병 의원이 되었다. 또 함양에 들렸을 때는 그곳 사람들이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말에 소 아과 의원이 되었다. 이렇듯 편작은 각 지역의 인정 풍속에 맞추여 의료과목을 바꾸어 치료했다. 편작은 점쟁이나 주술에 의한 병의 치료를 강력히 반대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점쟁이나 주술사의 반발뿐만 아니라 의술이 편작에 미치 지 못하는 의 원들의 질투를 불러일으켰다. 진나라의 태의령(의약 정에 괴고 관리) 이혜는 편작이 자신의 의술보다 뛰어난 것을 시기하여 자객을 보내 편작을 찔러 죽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맥법에 관한 것은 다 편작의 이론을 따로고 있다
정확하지 않은 의서는 모두 버려라
태창공은 제나라의 태창(나라의 식량을 보관하던 창고)의 우두 머리로 성은 순우, 이름은 의이다. 그는 젊어서부터 의술을 좋아 하여, 같은 마을에 사는 양경에게서 의술을 배웠다. 양경에겐 의술을 계승할 아들이 없었으므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의서와 황제와 편작이 지은 맥서를 창공에게 전수해주었다. 창공은 3년 동안 의술 을 전수받으며 환자를 치료하였는데, 책에 적혀 있는 대로 효험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그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제후 국들을 돌아다니며 노닐기만 하고 때로는 병자들을 잘 치료해주지 않아 환자들 중에 원망하는 자가 많았다. 문제 4년, 어떤 사람이 창공을 고발하는 글을 올렸다. 창공은 형벌에 처해지게 되어 장안으로 압송되었다. 이때 그의 막내딸이 “자신이대신 죄갈을 치르겠으니 아비를 살려달라”고 글을 옮렸다.
황상이 이를 갸륵하게 여게 조서를 내려 창공에게 명하기를, 죄를 용서주는 대신 그동안 환자를 치료했던 사례들을 소상히 적어 바치라 고하였다. 그래서 창공이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바쳤다.
신의 스승 양경 비밀스런 의서를 제게 전해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의서를 모두 버려라. 그것은 정확한 것이 아니다. 나에게는 옛 의원들이 전한 황제와 편작의 의서가 있는데, 거기에는 얼굴에 나타나는 다섯 가지 안색을 보고 병을 진단하여 병자가 소생할 것인지 죽을 것인지를 예측하여 치료하는 방법과 약론에 대해 서 매우 정밀하게 기록되어 있다. 나의 이 의서를 죄다 너에게 가르쳐 주겠노라." 이에 신은 두 번 절한 뒤 의서를 건네받았습니다. 이 책들을 읽고 또 읽고 3년 동안 스승에게서 의술을 전수받아 환자를 치료하니 드디 어 효험이 나타났습니다. 지금은 스승이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났으 며, 제 나이 39세가 됩니다. 제나라의 시어사侍御史(법 집행을 주관하고 문서를 관리하는 관원) 성成을 치료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가 두통을 호소하여 신이 그를 진맥하였습니다. "당신의 병은 심각하여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는 물러나와 그의 아우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이 병은 저疽라는 것으로 몸 안에 생기는 종기를 말하는데, 5일 후 면 부어오르고 다시 8일이 지나면 고름을 토하며 죽을 것입니다." 성은 제가 예상한 날짜에 죽었는데, 그 병은 술을 마시고 여자를 탐 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 《맥서》에 따르면, '경맥에 이상이 있 고 맥박이 고르면 그 병이 힘줄과 골수에서 생긴 것이고, 맥박이 때때로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이면서 높아지는 것은 그 병이 술과 방사에서 온 것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제나라 왕의 어린 아들에게 병이 들었을 때의 일입니다. 신이 맥을 진찰한 뒤 이렇게 진단을 내렸습니다. "기격병이옵니다. 기가 흉격 사이에 모여 생긴 병이지요. 증상은 음 식이 내려가지 못하고 때로는 담痰을 토하게 되지요. 이 병은 근심거 리가 있으면서 억지로 여러 번 과식한 데서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곧 하기탕下氣湯을 지어서 마시게 했더니, 하루 만에 기가 내 려가고 3일 만에 병이 나았습니다. 《맥서》에 '맥박 뛰는 것이 빠르다 가 느려졌다가 하여 규칙적이지 않은 것은 병이 주로 마음에 있는 것 이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제나라 낭중령郎中令(궁궐 문을 지키는 관리) 순循이 병이 들었을 때의 일입니다. 여러 의원들은 모두 기가 거슬러올라가 심장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여 침을 놓았습니다. 그러나 신은 맥을 짚어본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병은 산증疝症입니다. 대소변을 볼 수 없게 만들지요." 그래서 신이 화제탕火劑湯을 세 번 마시게 했더니 병이 나았습니다. 이 병은 지나치게 여색을 탐하여 생긴 것이었습니다. 신이 맥을 짚었 을 때 산증이라고 진단한 것은 오른손 촌구맥 부분의 기가 격하였고 맥에서 오장의 기를 느낄 수 없었으나 맥박이 거칠고 빨랐기 때문입니 다. 그리고 체 내에 열이 있어 소변이 붉었던 것이지요. 제나라 왕의 태후가 병에 걸리자, 신을 불러 진맥하게 했습니다. 신 은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풍단(열병)이 방광에 잠시 머물러 있어, 대소변을 보기 어렵고 오줌 이 붉은 것입니다." 그래서 화제탕을 두 번 마시게 하니, 대소변을 보고 오줌 색깔이 원 래대로 돌아왔습니다. 이 병은 땀을 많이 흘린 뒤 그대로 말려서 생긴 것이었습니다. <맥서》에 '손가락 끝으로 세게 짚어보아서 맥이 크고 단단하고, 가볍게 짚어보아서 맥의 기세가 강한 경우 병이 신장에 있 다고 나와 있습니다. 제나라 장무리章武里라는 고을에 조산부라는 사람에게 병이 들었을 때의 일입니다. 신이 맥을 짚어보았습니다. "폐의 소단인데, 게다가 한열병까지 왔습니다. 소단은 소갈중의 하 나로 소변이 누렇고 갈증이 나는 병이지요." 그래서 곧 그의 가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병은 고칠 수 없으니 음식 봉양이나 잘 하십시오. 5일 뒤 죽을 것입니다." 과연 그는 신이 말한 날짜에 죽었습니다. 이 병은 몹시 화가 난상태에서 교접한 관계로 생긴 것이었습니다. 《맥서》에 '폐에서 열이 나 면 맥박이 고르지 않고 무력하며 온몸이 점점 쇠약해진다고 나와 있 습니다. 제나라의 중위中尉(수도를 경호하는 벼슬) 반만여潘滿如가 아랫배의 통 증을 호소하였을 때, 신이 맥을 짚어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뱃속에 응어리가 생겼습니다. 일명 '유적하'라는 병이지요. 중위가 방사하는 것을 중지하지 않으면 30일 안에 죽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20일 만에 피오줌을 누고 죽었습니다. 일찍 죽은 것은 술 마신 채 방사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맥서》에 '삼음맥드陰脈이 한꺼 번에 뛰고 있으면 30일 만에 죽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위에 열거한 것 이외에도 병을 치료한 사례는 많습니다. 그러나 오 래 되어서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또 기억할 수 없는 것은 감 히 아릴 수 없어 이것으로 글을 마칩니다.
진맥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병
황상이 창공에게 물었다.
"증세는 같은데 진단방법이 다르며 또 어떤 자는 죽고 어떤 자는 죽 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 그러자 창공이 대답했다. "병명은 다르나 증세가 비슷한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옛날 성인이 진맥법을 만들어 이에 의해서 음양을 조절하고 사람의 맥 을 나누어 각각 그것에 이름을 붙이니, 천지의 이치와 상응하고 사람의 생리에 부합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갖가지 병의 증상을 파악하고 진 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 법을 깨달은 명의들은 병명을 정확히 구분하 지만 서툰 의원은 혼동합니다. 그렇지만 맥법을 다 열거하여 시험해볼 수는 없습니다. 환자를 진찰할 때, 도량度量을 가지고 맥의 부위를 구별 하여, 이것으로 같은 이름의 병일지라도 환부가 어디 있는지에 따라 진 단을 달리해야 합니다." 황상이 다시 물었다. "의원이 정한 환자의 사망 날짜가 틀린 이유는 무엇 때문이오?" "그것은 모두 음식조절과 감정조절, 잘못된 치료방법과 관련이 있습니다." 창공의 대답에 황상이 다시 질문했다. "지난날 제나라의 문왕이 병들었을 때, 진찰과 치료를 하지 않은 것 은 무엇 때문이오?" “문왕을 치료해주면 그 대가로 신에게 벼슬자리를 줄 것이고, 그러면 벼슬에 얽매이게 되어 의원의 직무를 소홀히 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 래서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집안의 생업을 더럽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문왕이 병에서 회복되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이오?" 황상의 질문에 창공이 대답했다. “문왕의 병을 진찰해보지는 않았지만, 그는 천식 때문에 머리가 아프 고 눈이 밝지 않았다고 합니다. 신이 생각건대 그것은 병이 아니었습니 다. 그는 너무 비만하여 몸을 움직이지 않은 관계로 뼈와 살이 균형을 잃어 병이 생긴 것입니다. 그로 인해 천식이 생긴 것이므로 고칠 수 없 는 병이었습니다. 《맥서》에 이르기를, '나이 20세에는 맥기가 강하니 달리는 것이 좋으며, 30세에는 빨리 걷는 것이 좋고, 40세에는 편안히 앉아 있는 것이 좋으며, 50세에는 편안히 누워 있는 것이 좋고, 60세 이 상이 되면 기력을 깊이 감춰 보호하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문왕은 20세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창 달려야 할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잘 걷지 못하였으니, 이는 천도天道의 사계절의 운행법칙에 순응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뒤에 들었습니다만, 의사가 그에게 뜸을 뜨고 나서 병이 더 심해졌다고 합니다. 이것은 잘못 처방한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죽지 않을 수 있습니까. 소위 기라는 것은 음식 조절을 잘 하고 계절 변화에 맞춰 몸가짐을 알맞게 해서 기를 밖으로 발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20세를 역무易貿(혈기를 유통시키고 교체시키는 것)라고 하는 것입니다. 의법에서는 이때에 침을 놓거나 뜸을 떠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침을 놓거나 뜸을 뜨면 맥이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빨 오라지기 때문입니다.” 황상이 다시 창공에게 묻는다. "병을 진단하여 생사를 예측할 때 실수한 적은 없었소?" "신이 환자를 치료할 때는 반드시 먼저 진맥을 짚어본 뒤에 치료를 합니다. 맥이 순조로운 사람은 치료할 수 있지만, 쇠약하거나 거스르는 사람은 치료할 수 없습니다. 신이 맥을 정밀하게 짚지 못할 때에는 생 사를 예측하고 치료하는 일에 때때로 실수를 저지릅니다. 신도 실수 없 이 완벽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편작은 뛰어난 의술 때문에 화를 입었고, 창공은 숨어 살았어도 형벌 을 받았다. 창공은 막내딸이 조정에 글을 올려 사정을 아뢰고서야 편안 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래서 노자는 ‘아름답고 좋은 것은 상서롭지 못 한 그릇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편작과 창공 같은 사람을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소설보다 재미 있는 사기열전
지은이 : 사마천
편역자 :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