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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재미있는]사기 열전_99

Jie Po maintained his loyalty even in the battle against Xiang Yu, and though he was once punished by Emperor Gao of the Han dynasty, he was later forgiven and rose to a high position. Nan Po endured humiliation during his impoverished years, but eventually gained the throne and became a prime minister. Yuan Ang gave honest advice to the emperor, restoring political balance and warning against the excessive power of officials. Furthermore, Yuan Ang opposed Cao Cao, and after Cao Cao's execution, he became the prime minister. Despite his position, Yuan Ang believed in showing tolerance even to those who were criticized.

난세의 주인공, 협객

계포·난포

 

초나라에 계포季布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약자를 돕고 체면을 소 중히 여기며 신의를 지키는 사람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계포 는 항우의 장수가 된 이후 자주 한나라를 공격하여 왕을 괴롭혔다. 항 우가 죽자, 한고조는 방을 내걸었다. '계포를 숨겨주는 자가 있으면 삼족을 멸하리라.' 계포는 복양현의 주씨周氏 집에 숨어 있었다. 주씨는 계포를 변장시 켜 노나라의 대협사 주가朱家에게 팔아 넘겼다. 주가는 그가 계포라는 것을 알면서도 종으로 사들여 아들이 있는 가운데 이렇게 말했다. "밭일은 이 종에게 맡기고, 식사는 꼭 그와 함께 먹도록 하라" 주가는 계포의 인품을 알아보고, 수레를 몰아 고조의 신임을 받고 있 는 여음후陰侯 등공(하후영을 가리킨다. 초나라 사람들은 현령縣슈을 공소이라 불렀는데, 하후영이 등현의 현령을 지냈기 때문에 등공이라 하였다)을 찾아갔다. “계포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황제께서 잡아 죽이려 합니까?" 등공이 대답했다. “계포가 항우를 위하여 싸울 때 황제를 여러 번 곤경에 빠뜨렸기 때 문이오." 주가가 물었다. "군이 보시기에 계포는 어떤 사람입니까?" 등공이 대답했다. 천하를 가진 자는 사사로운 원한을 앞세우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입니다." 주가가 다시 물었다. "신하된 자는 저마다 자신의 주인을 위해 일을 합니다. 계포가 항우 를 위해서 일한 것은 그의 직분 때문이었습니다. 항우의 신하라고 해서 모두 죽여야 한단 말입니까? 황상께서는 이제 막 천하를 소유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사사로운 원한을 가지고 사람을 찾아 죽이려 하니, 이는 천하의 사람들에게 천자의 도량이 넓지 않다는 것을 보이는 일이 됩니 다. 또 계포는 현명한 사람이므로 추격에 쫓기어 도망가다 오랑캐 나라 인 월나라로 들어간다면 이것은 적국을 돕게 만드는 일입니다. 이러한 처사는 오자서가 초나라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그 시신에 채찍질을 한 것과 같은 결과를 낳는 일입니다. 군께서 진정으로 황제를 위한다면 어째서 계포를 위해 주청하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등공이 황제에게 주가가 말한 대로 주청하자 황제는 계포를 용서해주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계포는 황제의 부름을 받았다. 계포가 황제를 만나 사과하자, 황제는 그를 낭중中으로 임명했다.효혜제 때 계포는 중랑장中將이 되었다. 이즈음 오랑캐 왕 선우가 무례하게도 여태후를 모욕하는 서신을 보내왔다. 선우와 여태후는 홀 아비와 과부이니, 서로 어울려 참아왔던 정을 마음껏 나누어 보자는 내 용이었다. 이에 여태후는 당장 여러 신하를 불러 선우를 칠 계책을 물 었다. 여태후의 동생 남편인 상장군上將軍 번쾌가 호언장담했다. 모리야신에게 군대 10만을 주신다면 가서 흉노의 수도를 짓밟아 버리겠습 니다." 여러 장수들이 다 번쾌에게 아첨하느라 이렇게 말했다. "지당한 말입니다.” 그러자 계포가 나서며 말했다. “번쾌를 참형에 처해야 합니다. 옛날에 고조께서는 군대 40만을 동원 하셨건만 오히려 평성에서 곤경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10만 군사로 흉노의 수도를 짓밟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는 태후마마를 기 만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진나라가 오랑캐 정벌을 무리하게 진행했기 때문에 진승 등이 전란에 신음하던 무리들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데 번쾌는 또 마마의 면전에서 아첨을 하며 천하를 요동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계포의 직간에 전殿 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했고, 태후는 조 회를 파하고 다시는 흉노를 정벌하는 일을 논의하지 않았다.

 

황금 100근보다 계포의 허락 한 마디를 얻기가 더 어렵다

계포는 하동河東의 수령이 되었다. 이때 계포의 명성은 더욱 알려져 감히 천자의 명성을 위협할 수준이 되었다. 그래서 조정에 불려갔다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는 효문제를 안심시킨 뒤 다시 하동으로 돌아온 적 도 있었다. 페이도 거의 계포와 동향 사람으로 조구생曹丘生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변사로 서 권세가의 명성을 등에 업고 금전을 긁어모을 생각만 하는 자였다. 조구생이 두장군竇長君(문제 황후의 오라버니)을 자주 찾아간다는 소문이 나자 계포는 두장군에게 조구생을 가까이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얼마 후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조구생이 직접 계포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초나라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황금 100근을 얻는 것보다 계포의 허락 한 마디를 얻기가 더 어렵다'고 합니다. 저도 초나라 사람이고 족하 또한 초나라 사람입니다. 내가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족하의 명성을 알린다면 족하의 명성은 천하에 더욱 알려질 게 아닙니까? 이러한데, 어째서 족하께서는 저를 미워하십니까?" 계포는 조구생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조구생을 수개월 동안 이나 상객으로 머무르게 했다. 얼마 후 조구생이 가는 곳마다 계포의 명성은 더욱더 알려지게 되었다.

 

가난할 때 치욕을 참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다

난포樂布는 양나라 사람이다. 그는 양나라 왕 팽월이 평민이었을 때 서로 교유하였다. 두 사람은 가난하여 술집 심부름꾼을 하는 등 함 께 고생을 하기도 했다. 훗날 연나라 왕 장도는 난포를 장군으로 삼았 는데, 장도가 반란을 일으키자 한나라는 연나라를 공격하고 난포를 사 로잡았다. 이때 양나라 왕 팽월이 이 소식을 듣고 황제에게 진언하여 난포를 위해 돈을 바쳐 죗값을 보상하고 양나라의 대부로 삼았다. 난포가 사신으로 제나라에 가 있을 때였다. 한나라는 팽월을 잡아다 가 모반죄로 삼족을 멸하고, 팽월의 머리를 낙양에 매달아 놓고 다음과 같이 조서를 내렸다. "감히 팽월의 시체를 거두어 돌보는 자가 있으면 무조건 엄벌에 처할 것이다." 난포는 제나라에서 돌아오자, 팽월의 머리 아래에서 마치 살아 있는 사람에게 말하듯이 제나라에 돌아온 일을 아뢰고 제사를 지내주며 통 곡하였다. 아전이 난포를 체포하고 그 사실을 조정에 보고했다. 고조가 끌려온 난포를 꾸짖었다. "짐의 엄명이 있었건만 네놈이 이를 어긴 걸 보니, 팽월과 함께 모반 한 것이 틀림없다. 여봐라, 어서 저놈을 삶아 죽여라!" 병졸들이 당장 그를 잡아 끓는 가마솥으로 끌고 가려는데, 난포가 돌아보며 말했다. "한 마디만 하고 죽게 해주십시오." 고조가 물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느냐?" "폐하께서 형양과 성고에서 항우에게 패하셨을 때, 항우가 서쪽으로 더는 진격할 수 없었던 것은 팽왕(팽월)이 한나라와 힘을 합쳐 초나라 군 대를 자주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그때 팽왕이 머리를 돌려 초나라 편이 되었더라면 한나라가 파멸됐을 것이고, 한나라 편이 되었더라면 초나 라가 파멸됐을 것입니다. 또 해하의 전쟁에서도 팽왕이 참가하지 않았 다면 항우를 멸망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큰 공을 쌓았 음에도 폐하가 군사를 징발할 때 평왕이 병들어 나가지 못하자 그를 의 심하여 베어 죽이고 가족까지 멸하였습니다. 이를 보고 공신들은 자신 들도 팽왕과 같은 꼴을 당할까 두려워 벌벌 떨고 있습니다. 지금 팽왕 이 죽었으니 신은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합니다. , 어서 삶아 죽이십시오." 이에 고조는 난포의 기개에 마음이 움직여 그의 죄를 용서하고 도위 都尉(각 군郡의 군사 총책임자)에 임명했다. 효문제 때에 난포는 연나라의 재상이 되었고 장군에까지 이르렀다. 난포는 드러내놓고 이런 말을 했다. “가난하고 힘들 때 치욕을 참지 못하면 사내 대장부라 할 수 없고, 부 귀할 때 뜻대로 하지 못하면 현명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예전에 자신에게 은덕을 베푼 자에게는 후하게 보답하고, 원한 이 있는 자들은 반드시 법으로 파멸시켰다. 항우와 같은 큰 기개를 품었기에 계포는 용맹함으로 초나라에 이름 을 드날렸으며, 싸움터에서는 적의 깃발을 여러 번이나 빼앗았으니 장 사라고 할 수 있다. 계포는 형벌을 받고 남의 종이 되어서도 목숨을 부 지하였다. 어찌하여 그렇게까지 몸을 낮추었는가? 이는 아마도 자기의 재능을 자부했기 때문이다. 치욕을 받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은 이유는 자신의 재능이 쓰일 곳이 있다면 언제든지 상황을 역전시켜 뜻한 바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리라. 이런 까닭에 마침내 한나라의 명장이 된 것이다. 현명한 자는 진실로 자신의 죽음을 값지게 여긴다. 대체로 비첩婢妾 이나 천한 사람이 격분하여 자살하는 것은 진정 용기가 있기 때문이 아 니라 다시 일어설 힘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난포가 팽월의 죽음을 슬퍼하고 곡한 뒤에 끓는 물로 끌려가는 것을 마치 집에 돌아가는 것처럼 한 행동은 그가 진실로 처신할 바를 알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이다.

 

너무 강하면 꺾이는 것이 세상의 진리이다

원앙 : 사직의 신하는 군주와 함께 존망을 같이한다

원앙은 초나라 사람으로, 효문제가 즉위하자 형 쾌의 추천으로 중랑 中郞이라는 벼슬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 무렵 승상으로 있던 강후絳侯 주발은 효문제의 전적인 신임을 받아 위세가 대단했다. 강후는 조회를 마치고 나올 때마다 늘 의기양양한 모습이었고, 황제 또한 강후에게는 항상 공손하게 예를 표하며 전송하였다. 이를 보고 원앙이 황제께 나아 가 말했다. “폐하께서는 승상이 어떠한 신하라고 생각하십니까?" 황상이 말했다. "이 나라 사직을 지키는 신하이다." “강후는 공신일 뿐 사직을 지키는 신하는 아닙니다. 사직의 신하란, 군주가 살아 있을 때 군주와 함께하고, 군주가 망하면 같이 망해야 합 니다. 외척인 여후의 세력들이 정권을 거머쥐었을 때, 여러 여씨들이 제멋대로 승상이 되고 왕이 되어 유씨의 황통은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 었습니다. 그때 강후는 태위로서 병권을 잡고 있으면서도 방관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여후가 세상을 뜨자, 그는 쥐고 있는 병권으로 외척을 제거하는 공을 우연히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신이라 할 수는 있으나 사직의 신하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승상은 폐하께 매우 교만하고 폐하는 겸손하시니, 이는 신하와 군주가 예를 잃고 있는 것입 니다. 따라서 폐하께서 취할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되옵니다." 원앙이 간언한 뒤 비로소 효문제와 강후의 군신간의 예가 바로잡히 게 되었다. 이 일로 강후는 원앙을 원망했다. “내가 그대의 형과 친한 사이인데, 그대가 감히 조정에서 나를 헐뜯 다니!" 그러나 원앙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훗날 강후가 모반죄에 걸려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그를 위해 아무도 변호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때 원앙만은 강후가 죄가 없다고 변 호하였다. 강후가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은 원앙의 힘이 상당히 컸기 때문 이다. 원앙의 사심 없는 행동을 계기로 두 사람은 깊은 친분을 맺었다.

 

천자의 수레를 함께 탈 수 있는 자는 영웅호걸이다

효문제 초기에는 왕권이 미약했다. 그래서 여러 제후와 왕들이 모반 을 꾀하였다. 원앙은 효문제의 아우 회남淮南의 여왕이 모반죄에 연루 됐음을 알고 사전 대책을 세울 것을 황제에게 간언하였다. 그러나 황제 는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러다 사건이 터지자 황제는 비로소 원앙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의 사후 대책대로 일을 수습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원앙의 명성은 조정에서 더욱 높아졌다. 원앙은 항상 원칙에 근거하여 말하였으며 세상의 일 에 개탄했다. 어느 날 효문제가 자신이 총애하는 환관 조동을 수레에 같이 태우고 외출하려 했다. 그때 원앙이 수레 앞에 엎드려 간했다. "신이 들으니, 천자의 수레를 함께 탈 수 있는 자는 천하의 영웅호걸 뿐이라고 합니다. 지금 한나라에 비록 인재가 모자란다고 하나 폐하께 서 어찌 궁형을 받은 자(환관)를 태우신단 말입니까?" 그러자 황제는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조동을 내리게 하였다. 조동은 서럽게 울면서 수레에서 내렸다. 어느 날이었다. 효문제가 패릉의 험준한 산길을 달려서 내려가려고 하였다. 그때 원앙은 말을 타고서 수레와 나란히 붙어 수행하면서 말고삐를 단단히 잡아당겼다. 그러자 황제가 원앙에게 말했다. "장군은 겁나는가?" "신이 들으니, 천금을 가진 부잣집 아들은 마루의 가장자리에 앉지 않으며, 백금을 가진 부잣집 아들은 난간에 기대어 서지 않는다고 합니 다. 또한 현명한 군주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몰아 험준한 산을 달려 내려가시려고 하는데, 만일 말이 놀라 수레가 부숴지 기라도 한다면 종묘와 태후를 무슨 면목으로 대하시겠습니까?" 원앙의 말을 듣고 황제는 산길을 수레로 내려가는 것을 중지했다.

 

높고 낮음에 질서가 있으면 위아래가 화목하다

문제는 신부인愼夫人을 총애하여 궁궐에서 항상 두황후竇皇后와 같은 줄에 앉게 했다. 황제가 상림원上林苑으로 나들이하러 갔을 때 두황후 와 신부인도 따라갔는데, 낭서장郞暑長이 자리를 같이 마련하자, 원앙 은 신부인의 자리를 아래로 밀어놓았다. 그러자 신부인이 화가 나 앉으려 하지 않았고 문제도 노하여 궁궐로 돌아가버렸다. 원앙은 황제 앞에 나아가 이렇게 간했다. “신이 들으니, 높고 낮음에 질서가 있으면 위아래가 화목하다고 합니 다. 폐하께서 이미 황후를 세우셨으니 신부인은 첩에 지나지 않습니다. 첩과 처가 어찌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것이 결국 높 고 낮음의 질서를 잃는 근원이 됩니다. 지금 폐하께서 신부인을 위해 하신 행동은 도리어 화를 부를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인체('사람 돼 지'라는 뜻이다. 여태후呂太后는 남편인 한고조가 죽자, 한고조가 생전에 총애했던 척부인을 시기하여 사람을 시켜 척부인의 손발을 자르고 두 눈을 뽑아버리고 귀에 유황을 붓고 벙어리로 만들어 항아리에 가두어서 돼지우리에 두었다)의 사건을 잊으셨습니까?" 황제가 기뻐하며 신부인을 불러 원앙의 깊은 뜻을 설명해주었다. 신 부인은 원앙에게 황금 50근을 하사하였다. 그러나 원앙은 자주 직간을 했기 때문에 궁궐 안에 오래 있지 못하고 농서군의 도위都尉로 좌천되었다. 그는 사졸을 아끼고 인자하게 대했기 때문에 사졸들은 그를 위하여 죽기를 다툴 정도였다. 후에 그는 제나라 의 재상이 되었고, 다시 오나라의 재상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위급할 때 도와주는 자가 진정 훌륭한 사람이다

원앙은 평소부터 조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조가 있는 자리 에는 원앙이 피하고, 원앙이 있는 자리에는 조조가 피했다. 효문제가 세상을 떠나고 효경제가 즉위하자, 오나라와 초나라에서 모반을 했다. 그러자 조조는 오나라에서 재상으로 지냈던 원앙의 경력을 문제삼아 그를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원앙은 황제의 외척인 두영의 힘을 빌려 살아날 수 있었다. 두영은 원앙과는 본래 사이가 좋았으나 제후 억멸책 을 주장하는 조조와는 사이가 벌어져 있었다. 제후들 또한 위기의식을 느껴 조조를 미워했다. 그후 상황이 역전되어 원앙이 태상太常(구경九卿 중의 하나)이 되고 어사대부였던 조조는 저잣거리에서 참형을 당한다. 오나라와 초나라의 반란군이 격파된 뒤 황제는 원앙을 초나라의 재 상으로 삼았다. 그 뒤 원앙은 상서를 올려 자신의 의견을 말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앙은 병으로 벼슬을 내놓고 집으로 돌아와 있 었다. 원앙이 낙양의 도박꾼 극맹劇孟이라는 자를 잘 대우하자 마을의 부자가 이렇게 불평했다. “내 들으니 극맹은 도박꾼이라고 합니다. 장군께서는 어째서 그 같은 자와 교제하십니까?" 원앙이 대답했다. “극맹은 도박꾼이긴 하나, 그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에 조문하는 자의 수레가 천 대가 넘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남보다 뛰어난 데가 있기 때 문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위급한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루아 침에 위급한 일이 생겨 아는 사람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고 합시 다. 이때에 어버이를 핑계로 도와줄 수 없다고 변명하거나 집에 있으면 서도 없다고 따돌리지 않고서 선뜻 도와줄 사람을 들라면 사람들은 모 두 극맹을 지목합니다. 그대는 언제나 말을 끄는 몇 명의 시종을 데리 고 다니지만, 위급한 일이 생겨도 그들이 당신을 버리지 않을 사람들이 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원앙은 이렇게 부자를 꾸짖고 교유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여 러 제후들이 원앙을 훌륭하게 여겼다. 그뒤 원앙은 경제가 양나라 왕梁王(경제景帝의 동생)을 후사로 삼으려고 했을 때 반대한 일로 양나라 왕의 원망을 사게 된다. 결국 원앙은 양나 라 왕이 보낸 자객에게 목숨을 잃었다. 원앙은 비록 학문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주변 상황을 잘 파악하여 일 을 처리하는 능력이 뛰어났으며, 어진 마음을 바탕으로 대의를 세우고 세태를 개탄하기도 했다. 효문제가 즉위하자 비로소 그의 재능이 발휘 될 기회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원앙은 오나라와 초나라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단 한 번 황제를 설득하는 기지를 발휘했을 뿐, 두 번 다시 그의 뜻을 발휘할 기회는 얻지 못했다. 그는 명성을 좋아하고 현명함을 자랑하다 결국 이름 때문 에 망한 것이다.

 

소설보다 재미 있는 사기열전

지은이 : 사마천

편역자 :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