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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재미있는]사기 열전_97

Han Xin was a brilliant general who rose from a life of humiliation to lead the Han dynasty to unify China through his exceptional military strategies. He gained fame as a master tactician, employing strategies like the "Battle Formation with Water at the Back", forcing his troops to fight with desperation and securing victory. However, after his success, his arrogance and conflicts with the ruling power led to Emperor Liu Bang’s mistrust, resulting in his tragic demise. His story highlights the importance of talent and perseverance while also reflecting the harsh realities of political power.

사냥을 마치면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

한신 : 바짓가랑이 밑에서 단련시킨 천하의 큰 뜻

한신韓信은 회음湘陰 사람으로, 가난하게 살았다. 그는 관리도 되지 못한 채 그저 빈둥거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남들처럼 장사를 하여 살림 을 꾸려갈 능력도 그에겐 없었다. 언제나 남에게 빌붙어서 먹기를 좋아 하니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싫어하였다. 한신은 일찍이 회음의 속현인 하향下 남창南昌 정장亭長(정후의 우 두머리)에게 두어 달을 빌붙어 먹은 적이 있었다. 그때 정장의 아내는 한 신을 미워하여 새벽에 일찍 밥을 지어 이불 속에서 혼자 먹어버리고 식 사 때에 찾아온 한신에게는 밥을 차려주지 않았다. 한신은 그 뜻을 알 아채고 성을 내며 정장과 절교하고 떠나버렸다.

한신이 성 아래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여러 하인들이 빨래 를 하고 있는데, 그 중 한 여인이 굶주린 한신을 보고 밥을 주었다. 그녀 는 빨래가 끝날 때까지 수십 일 동안이나 한신에게 밥을 주었다. 한신 이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 반드시 이 은혜를 갚으리다.”“가엾게 여겨 밥을 드렸을 뿐이오. 스스로 벌어먹지도 못하는 사람에 게 어찌 보상을 바라리오!" 여인은 톡 쏘듯이 말하고 가버렸다. 회음 사람들 중에 한신을 업신여 기는 한 젊은이가 빈정대며 말했다. “그 허우대에 장검을 즐겨 차고 있으나, 실은 비겁한 졸장부다.” 그러자 여럿이 한신을 놀려대며 창피를 주었다. “이봐, 한신, 죽음이 두렵지 않거든 그 칼로 나를 찌르고, 죽음이 두 렵거든 나의 바짓가랑이 밑으로 기어나가라.”한신은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머리를 숙이고 바짓가랑이 밑으로 기어나갔다. 그러자 시장 사람들이 한신을 겁쟁이라고 비웃었다. 그후 한신은 항량項梁(항우의 숙부)과 함께 항우의 휘하에 들어갔으나 눈에 띄지를 못했다. 그래서 한나라로 건너가 보잘것없는 벼슬살이를 했으나 오히려 죄를 저질러 참형을 당하게 되었다. 한신이 참형대에 서 서 하늘을 우러러보다가 관리를 보고 말했다. “주상께서는 천하를 손아귀에 넣기를 바라시지 않습니까? 어째서 장사를 베어 죽이려 하십니까?" 관리는 한신의 말을 기이하게 여겨 형을 집행하지 않고 한왕漢王(한고 조 유방)에게 천거했다. 한왕은 한신을 좋아했으나 그다지 뛰어난 인물로 여기지 않아 치속도위治栗都尉(식량 담당 군관)라는 작은 벼슬 하나를 내려주었다.

 

왕국王國을 가져다줄 신하, 제국帝國을 가져다줄 신하

어느 날, 한신이 행군 중에 도망치자 잇따라 한나라 왕이 가장 신임 하는 승상 소하蕭何도 도망쳤다는 보고가 왕에게 올라왔다. 이에 한나 라 왕이 몹시 화를 냈으나, 한편으로는 양팔을 잃어버린 것 같아 실망 이 컸다. 얼마 후 소하가 돌아와 한왕을 뵈었다. 한왕은 기쁨을 감추고 꾸짖었다. "그대가 도망하다니 무슨 일이오?" "신은 도망친 것이 아니라, 도망친 자를 붙잡으려고 뒤쫓아간 것입니 다." "그럼 그대가 붙잡으려 한 자는 누구요?" "한신입니다." 한왕이 이번에는 진짜 화를 내며 꾸짖었다. "이제까지 도망간 장수가 많았지만 공은 한 번도 뒤쫓아간 일이 없었소. 어찌하여 한신 따위를 뒤쫓아가 붙잡으려 한단 말이오?" 그러자 소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다른 장수들이야 어디서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하를 다 뒤 져봐도 한신과 같은 인재는 없을 것입니다. 왕께서 한중漢中(초나라의 군 이름)의 왕으로 머무는 것에 만족하신다면 한신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나 천하를 잡으려 하신다면 기필코 한신이 필요합니다." "나 역시 뜻은 천하에 두고 있소, 어찌 마음 답답하게 이 한중에 머무르고자 하겠소?" “왕의 뜻이 천하에 있다면 한신을 쓰십시오. 그리하면 한신은 머무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또 도망칠 것입니다." "내 공의 말을 믿고 그를 장수로 쓰겠소." "장수도 한신에게는 작은 벼슬입니다." "그러면 대장으로 쓰겠소." "그러면 한신도 만족할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 한신을 불러서 대장으로 임명하려고 했다. 그러자 소하가 말했다. "지금 왕의 태도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거만하고 무례합니다. 대장 을 임명하는 데 어린애들 병정놀이하듯 일을 처리하십니다. 왕께서는 길일을 택해 목욕재계하시고 광장에 무대를 설치하여 예를 갖춘 뒤 한 신을 대장으로 정중하게 임명해야 합니다." 한나라 왕은 소하의 말대로 정중하게 예를 갖추어 한신을 대장으로 임명했다. 별로 이름도 없던 사람이 대장이 되자 여러 장수들이 깜짝 놀랐다. 한신이 배례를 마치고 무대 위로 오르자, 한나라 왕이 말했다. "승상이 자주 대장의 이야기를 하였소, 과인에게 가르칠 계책이라도 있소?" 한신이 오히려 한나라 왕에게 물었다. "지금 천하의 대권을 다툴 경쟁자는 동쪽에 있는 항왕(항우)이지요?" "그렇소." "그럼 대왕께서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항왕과 비교하여 누가 더 용맹 하고 어질고 굳세다고 생각하십니까?" 한나라 왕은 묵묵히 생각하다가 말을 꺼냈다. "내가 그만 못하오." 그 말에 한신은 두 번 절하고 다시 말했다.

“네, 그러합니다. 신 역시 대왕의 생각과 같습니다. 그러나 신은 항왕을 섬긴 적이 있기에 그의 단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항왕이 한 번 소리 치면 천하가 다 놀라지요. 그러나 그는 어진 사람을 알아주는 데 인색 합니다. 그러니 이는 평범한 남자의 용기일 뿐입니다. 그는 예를 다해 사람을 대하기는 하나 공功을 나누어줄 때에는 도장이 망가지고 깨질 정도로 만지작거리며 꾸물대니 이는 부녀자의 인소일 뿐입니다. 항왕은 천하의 패자임을 자처하나 모시고 있던 초나라 의제義帝를 죽이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여 천하 백성들의 인심을 잃고 있습니다. 게다가 항복해온 진나라 병사 20만 명을 속여서 구덩이에 처넣어 죽이 니 진나라 사람들이 항왕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대왕께서는 항왕과 달리 점령지의 백성들을 터럭만큼도 해치 지 않았으며 진나라의 가혹한 법들을 폐지하고 삼장三章의 법(타인에게 상해를 입힌 자나 도둑질을 한 자에게 벌을 내리고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 다)만을 둘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진나라 백성들 가운데 대왕께서 진나 라의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군대 를 이끌고 항왕이 점령한 진나라 땅에 들어가신다면 격문을 전하는 것 만으로 싸움 없이 평정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한나라 왕이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너무 늦게 한신을 얻었구나!" 한나라 왕이 마침내 한신의 계책을 좇으니, 한나라 원년 8월에 드디 어 초나라가 점령하던 진나라 땅을 평정하였다. 그리고 한나라 2년에 는 위魏나라를 평정하니 한韓나라와 은나라가 다 항복해왔다. 한나라 왕은 드디어 제나라와 조나라의 군대와 연합하여 함께 초나 라를 공격했다. 이 전투에서 한신이 한나라 왕과 형양에서 만나 초나라 군대를 경京·삭索 땅 사이에서 물리쳤다. 그 때문에 초나라의 군대는 결국 서쪽으로 진출할 수 없게 되었다.

 

어리석은 장수는 병법을 고수하고, 명장은 병법을 역이용한다

 

한신이 장이와 함께 동쪽으로 가서 조나라와 대나라를 치고자 했 다. 조나라 왕과 성안군成安君 진여는 이를 미리 알고 군사를 정형의 어 귀에 집결시켰는데, 그 수가 20만이나 됐다. 그러나 광무군廣武君 이좌 거李左車가 성안군에게 이런 계책을 올렸다. “지금 정형의 길은 수레가 나란히 지나갈 수 없고, 기병도 대열을 지 어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비좁습니다. 원컨대 군께서 신에게 기병 3만 명만 빌려주신다면 정형에서 그들의 군량미 수송로를 끊어놓겠습니다. 군께서는 방어벽만 높이 쌓고 교전하지는 마십시오. 그러면 저들은 앞 으로 나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때 우리 기병 이 그 후방을 끊어놓고 들판에는 저들이 약탈할 만한 식량을 없앤다면 10일이 못 되어서 두 적장(한신과 장이)의 머리를 바칠 수 있습니다. 부디 군께서는 신의 계책을 좇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거꾸로 우리가 저 두 사람의 포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안군은 고개를 저었다. “병법에 이르기를, 아군의 병력이 적의 10배가 되면 적을 포위하고, 두 배가 되면 적과 싸운다고 했습니다. 병력 면에서 우리가 훨씬 유리 할 뿐만 아니라, 지금 한신의 군사는 먼 거리를 달려왔기 때문에 피곤 이 역력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러한 적을 치지 않고 피한다면 뒤에 큰 적의 공격이 있을 때엔 어떻게 대처하겠습니까? 제후들은 우리를 겁쟁 이라고 얕보며 손쉽게 쳐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한신은 정형 어귀에서 약 30리 떨어진 곳에 군대를 야영 시키고, 밤중에 날랜 기병 2,000명을 선발해 어디론가 보냈다. 그런 후 군사 만 명을 선발대로 보내고 본대는 물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하니 이 른바 배수진背水陣이었다. 조나라 군대는 이를 바라보고는 병법도 모른 다며 크게 비웃었다.새벽이 되어서였다. 한신이 대장의 깃발을 세우고 북을 울리게 하면 서 싸우는 척하니, 조나라 군이 성을 거의 비우고 한신의 군대를 공격 해왔다. 한신이 그들을 물가의 진영까지 유인해놓은 다음 갑자기 말머 리를 돌려 덤벼들었다. 한신의 군사들이 필사적으로 덤벼들자 조나라 군대의 기세가 꺾였다. 이렇게 싸우는 동안 한신이 미리 내보냈던 기병 2,000명은 어느새 비어 있는 조나라의 성 안으로 들어가 조나라의 깃발을 다 뽑아버리고 한나라의 붉은 깃발 2,000개를 세워놓았다. 조나라의 군대는 한신 군대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성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성으로 돌아와 보니 성 위에 모두 한나라 깃 발이 꽂혀 있는 게 아닌가! 이에 성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병사들은 우왕 좌왕하더니 달아나기 시작했고, 장수들은 그런 병사들을 막기 위해 칼 을 휘두르기에 바빴다. 이 혼란을 놓치지 않고 한나라 군사가 앞뒤에서 습격하니 조나라의 군대는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결국 한신의 군사 는 성안군을 잡아 물가에서 참살하고 조나라 왕 헐을 사로잡았다. 곧이어 광무군 이좌거가 한신 앞에 생포되어 왔다. 그러자 한신은 곧 그의 포승을 풀어주고 그를 동쪽으로 향하여 앉게 하고, 자신은 서쪽으 로 향하여 마주앉은 다음 이좌거를 스승으로 섬겼다. 싸움에서 승리한 후 축하 잔치가 벌어졌을 때 여러 장수들이 한신에게 물었다. "병법에, '산이나 언덕을 오른쪽으로 하여 배후로 삼고, 물이나 연못 을 앞으로 하여 왼쪽에 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대장군께서는 반 대로 강물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하여 싸움에서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것 이 도대체 무슨 전술입니까?" 한신이 대답했다. "이것도 병법에 나와 있는 것이다. 다만 제군들이 깊이 살피지 않았 을 뿐이다. 병법에 이르기를, ‘죽음의 땅에 빠뜨린 뒤라야 살게 할 수 있으며, 망하는 땅에 둔 뒤라야 흥하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 우리 병사들은 소위 저잣거리의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끌어 모은 오합지졸의 병사들이다. 따라서 이들을 죽음의 땅에 두어 스스로 싸우도록 만들지 않고 그들에게 살아날 수 있는 땅을 준다면 다 달아날 것이니 어찌 그 들을 쓸 수 있겠는가?" 여러 장수들이 모두 탄복해서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신 등이 따를 수 없는 전술입니다." 싸움에 진 장수는 용맹을 말할 자격이 없다 한신이 이좌거에게 물었다. "지금 제가 북쪽으로 연나라를 치고 동쪽으로 제나라를 치려고 하는 데, 좋은 방책이 없겠습니까?" 이좌거가 사양하며 말했다. "신은 들으니, 싸움에 진 장수는 무예와 용맹을 말할 자격이 없으며, 망국의 신하는 정치를 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신은 포로입니다. 어찌 대사를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한신이 말했다. "제가 들으니, 백리해가 우虞나라에 있을 때는 우나라가 망했으나, 진 秦나라에 있을 때는 진나라가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백리해가 우나라에 있을 때는 어리석었다가 진나라에 있을 때는 현명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군주가 그를 중용했느냐 안 했느냐 의 차이일 뿐입니다. 진실로 성안군이 당신의 계책을 들었더라면 저는 이미 포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안군이 당신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 한신이 당신을 모실 수 있게 되었을 뿐입니다." 이어 한신이 결연하게 말했다. “저는 마음을 다하여 당신의 계책에 따르겠습니다. 부디 사양 마시고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러자 이좌거가 말문을 열었다. "신이 들으니, 지혜 있는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은 실수가 있 고,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반드시 한 번은 쓸 만한 것이 있다 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미치광이의 말도 성인은 채택한다고 했습니다. 장군은 전공이 혁혁한 데다 이제 조나라 20만 군대까지 물리쳤으니 위 엄이 천하에 진동합니다. 이런 점이 장군에게는 유리합니다. 그러나 잇 따른 전쟁으로 백성은 피로하고 병사들은 피곤하여 실은 쓰기가 어렵 습니다. 이런 점이 장군에게는 불리합니다. 그런데 장군께서는 그런 병사들을 이끌고 또 연나라를 칠 계획이십 니다. 이 싸움은 틀림없이 지구전이 될 것이고, 또한 연나라가 제나라 와 연합이라도 한다면 유방과 항우의 싸움은 그 우열을 분간하기 어렵 게 될 것입니다. 어리석은 신의 생각에, 그것은 잘못된 계책이라고 생 각됩니다. 그런 까닭에 용병을 잘하는 자는 단점을 동원해 남의 장점을 치지 않고, 장점을 가지고 남의 단점을 치는 것입니다." 한신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떠한 계책을 써야 합니까?" 이좌거가 대답했다.“우선 싸움을 멈추고 군대를 휴식시키며 조나라의 백성들을 보살펴 준 뒤에 연나라로 향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 뒤에 유세가에게 우 리 군대의 우수한 점을 연나라 왕에게 알리면 연나라 왕은 감히 복종하 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후에 연나라와 똑같은 방법으로 제나 라를 설득하면 제나라는 미리 겁을 집어먹고 항복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다면 천하의 일을 다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의사소 한신이 말했다. "정말 좋은 계책입니다." 그리고 이좌거의 계책을 좇으니 과연 연나라는 한신에게 항복해왔 다. 한신은 한나라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장이를 조나라 왕으로 삼도록 청하였다. 한나라 왕은 이를 받아들여, 장이를 조나라 왕으로 세워 그 나라를 평안하게 다스리도록 하였다. 그후 한나라 왕은 한신을 상국相 國으로 삼아 제나라를 치게 했다. 한신은 군대를 이끌고 제나라에 도착하기 전, 한나라 왕의 밀명을 받 은 역이기가 세 치 혀로 제나라를 설득하여 항복을 받아냈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에 한신은 제나라 공격을 중지하려고 했다. 이때 범양의 변사 괴통이 한신을 찾아와 말했다. “장군은 정식 조서에 따라 제나라를 치려고 하는데, 밀명을 받은 역이 기가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어디 장군에게 중지하라는 조서가 있었습니까? 역이기는 한낱 변사로서 세치 혀를 놀려 제나라의 70여 개 성을 항복시켰습니다. 이에 비해 장군께서는 수만 군대를 이끈 지 일 년이 넘도록 겨우 조나라의 50여 개 성을 평정했을 뿐입니다. 장수로 있은 지 수년인데, 도리어 하찮은 변사의 공만도 못합니까?" 이 말이 옳다고 생각한 한신이 불끈하여 제나라를 치기 위해 황하를 건넜다. 이때 제나라는 역이기의 설득에 넘어가 항복하고는 역이기를 위해 술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한신이 이 틈에 무방비 상태인 성을 함 락시키고 수도 임치에 이르렀다. 제나라 왕 전광田廣은 역이기가 자기 를 속였다고 생각하여 그를 삶아 죽이고 달아나 초나라에 구원을 청했다. 그러나 한신은 초나라 군대마저도 수공水攻 작전을 펴서 무너뜨렸 다. 한나라 4, 드디어 한신은 제나라 왕에게서 항복을 받아내어 제나라를 평정했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배반하면 상서롭지 못하다

한신은 사람을 보내어 한나라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나라는 거짓말을 손바닥 뒤집듯 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언제 변하 여 초나라에 붙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임시로 왕을 세워서 진압해야 합 니다. 부디 신을 이곳의 임시 왕으로 세워주신다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릴 것이라 믿습니다." 이때에 한나라 왕은 형양에서 초나라에 포위되어 곤경에 처해 있었 는데, 사자가 올린 한신의 글을 보자 격분할 수밖에 없었다. “짐이 여기서 곤경에 빠졌는데, 구원해주지는 못할망정 왕이 되겠다고?" 그러자 옆에 있던 장량張良과 진평陳平이 일부러 한나라 왕의 발을 밟 고는 왕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왕께서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니 한신을 왕으로 세워 잘 대우하여 고분고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틀림없이 변을 일으킬 것입니다." 이 말에 한나라 왕이 크게 깨닫고 꾸짖어 말했다. "대장부가 제후를 평정했으면 진짜 왕이 될 것이지, 임시 왕은 또 무슨 소리란 말이냐!" 그리고 장량을 보내어 한신을 제나라 왕으로 세운 뒤 초나라를 쳤다. 이에 겁을 집어먹은 항왕은 우이 출신의 무섭武涉이란 자를 밀사로 보 내, 제나라 왕 한신을 만나 설득시키도록 하였다. 무섭은 먼저, 한나라 왕이 신의가 없는 사람이라 장차 한신 또한 버릴 것이라고 말을 꺼낸 뒤 이러한 논법으로 한신을 유혹했다. “지금 항왕과 한나라 왕 두 사람의 싸움에서 승리의 저울추는 족하足 下(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흔히 사용하는데, 비슷한 연배와 신분 사 이에서도 쓰였다. 또한 제후간의 호칭으로도 쓰였다)에게 있습니다. 족하가 오 른편에 추를 던지면 한나라 왕이 이기고, 왼편에 추를 던지면 곧 항왕 이 이길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항왕이 망하면 다음엔 족하를 쓰러뜨릴 것입니다. 족하는 항왕과 연고가 있습니다. 어째서 한나라를 배반하고 초나라와 연합하여 천하를 삼분하여 왕이 되지 않습니까? 이런 기회를 놓치면서 한나라만 믿고 초나라를 치다니, 지혜 있는 자는 본래부터 이와 같이 합니까?" 그러나 한신은 거절하며 말했다. "신은 일찍이 항왕을 섬겼으나 벼슬이 낭중에 불과했으며, 지위는 하 급 무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나의 간언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계책도 써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초나라를 배반하고 한나라로 간 것입니다. 한나라 왕은 나에게 상장군을 주고 수만의 군대를 주었습니 다. 스스로 옷을 벗어서 나에게 입히고, 밥을 가져와 나에게 먹였습니 다. 나의 진언과 계획을 받아들여 써주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내가 지금 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남이 나를 깊이 믿고 있는데 내가 그를 배반하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비록 죽을지라도 내 마음은 바꿀 수 없을 것입 니다. 나의 이런 뜻을 항왕에게 전해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소이다.”

 

귀천은 관상에 달려 있지만, 성패는 결단에 달려 있다

무섭이 떠난 뒤 제나라 사람 괴통이 천하 권력의 향방이 한신에게 있음을 알고, 한신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일찍이 사람의 운세를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한신이 물었다. "선생은 어떤 식으로 관상을 봅니까?" “귀하게 되느냐 천하게 되느냐는 관상에 달려 있고, 근심이 생기느냐 기쁨이 생기느냐는 얼굴빛에 달려 있으며, 성공과 실패는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이 방법으로 상을 보면 만의 하나라도 실수하는 일이 없습니다." 한신이 다시 물었다. "좋습니다. 그럼 선생이 보시기에 과인의 상은 어떻습니까?" "잠깐 좌우 신하들은 물러나게 해주십시오." 한신이 주위 사람들을 물러가게 하자 괴통이 조용히 말했다. "당신의 얼굴을 보니 벼슬은 제후로 봉해지는 데 그치며, 그것도 위태롭고 불안합니다. 그러나 장군의 등을 보니 고귀하기가 이를 데 없습 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천하에 처음 난이 일어났을 때, 영웅호걸 등이 왕이라 자칭하고 천하의 선비들을 부르니 선비들이 구름처럼 합하고 안개처럼 모여들어서 물고기의 비늘처럼 반짝였으며 불처럼 번지고 바람처럼 일어났습니다. 이 당시에 목표는 오직 진나라를 타도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초나라와 한나라 두 나라만 남아 천하를 다투고 있습 니다. 초나라는 형양 땅에 이르기까지는 승승장구했지만, 그후에는 패 전을 거듭해 서산西山에 가로막혀 더 진격할 수 없게 된 지가 3년이 되 었습니다. 한나라는 조그마한 공도 세우지 못한 채 연전연패했습니다. 형양에서 패하고 성공에서 상심하여 결국 원宛·섭葉 땅 사이로 달아났 습니다. 이는 소위 지혜 있는 자와 용맹한 자가 다 함께 괴로움을 당하 는 형국입니다. 이제 두 군주의 운명은 족하에게 달렸습니다. 족하가 한나라를 위해 싸우면 한나라가 이기고, 초나라 편이 되면 초나라가 이길 것입니다. 그래서 신은 마음에 숨김없이 간과 쓸개까지 바치어 어리석은 계책을 올리고자 합니다. 족하께서 진실로 신의 계책을 써주신다면 한나라와 초나라 양편을 다 이롭게 하고, 두 왕과 함께 천하를 삼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형세는 어느 편에서도 먼저 좌지우지할 수가 없습니다. 족하와 같은 어진 분이 제나라 땅을 근거지로 하여 거사한다 면 천하는 바람처럼 달려와서 호응할 것이니 누가 감히 듣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체로 하늘이 주는 것을 갖지 않으면 도리어 벌을 받으 며, 때가 왔을 때에 감행하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받는다고 합니다. 부디 깊이 생각하십시오." 그러나 한신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한나라 왕은 자신의 수레로 나를 태워주고, 자신의 옷으로 나를 입 혀주고, 자신의 먹을 것을 나에게 먹여주었습니다. 내가 듣기에, 남의 수레에 타는 자는 남의 근심을 제 몸에 싣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남의 근심을 제 마음에 품으며, 남의 밥을 먹는 자는 남의 일을 위해 죽는다 고 하였습니다. 내 어찌 사적인 이익을 위해 의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 까? 세금이나 이에 대한 괴통의 대답 역시 준비된 것처럼 막힘이 없었다. "족하께서는 스스로 한나라 왕과 친하시다고 생각하고 만세의 업을 남기려고 하십니다. 그러나 신이 가만히 생각건대 그것은 잘못입니다. 지금 족하께서는 충성을 다해 한나라 왕과 친교하고자 하지만, 그 충성 은 그 옛날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쳤으나 결국 왕에게 버림받은 신하의 충성만큼은 못합니다. 옛날 대부 종種과 범려는 망해가는 월나라를 다시 있게 만들고 월나라 왕 구천을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고 공을 세워 이름을 떨쳤지만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들짐승이 이미 다 없어지면 사냥개는 삶아 먹히게 마련입니다. 당신은 부디 이런 일을 거울로 삼으십시오. 또 신이 들으니, '용맹과 지략이 뛰어나 군주를 움직이게 하는 자는 몸이 위태롭고, 공로가 천하를 덮는 자는 상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족하께서는 위나라와 조나라 그리고 연나라와 제나라, 또한 남쪽의 초 나라까지 위협하고 평정했습니다. 이것을 두고 이른바, '공로는 천하 에 둘도 없고 지략은 아무 때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지 금 족하께서는 군주를 움직이게 하는 위력을 지녔으며, 천하의 어떤 상 이라도 족하의 큰 공로를 덮을 순 없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족하께서 초나라로 돌아가시더라도 초나라 사람이 믿지 않을 것이며, 한나라에 돌아가도 한나라 사람 역시 떨며 두려워할 것입니다. 족하께서는 이러한 위대한 힘과 큰 공로를 가지고 어디로 돌 아가려고 하십니까? 남의 신하로 있으면서도 군주를 벌벌 떨게 할 만한 위력이 있고, 그 이름이 천하에 드높습니다. 신 생각에 족하께서는 분 명 위태롭게 될 것이 뻔합니다." 한신이 감사의 예를 표하며 말했다. "충분히 잘 알았으니, 좀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맹호라도 머뭇거리고 있으면 벌이 쏘는 것만 못하다

며칠 뒤에 다시 괴통의 설득이 이어졌다. “대체로 남의 진언을 듣는 것은 일의 성패의 조짐이며, 계획은 성패 의 기틀이 됩니다. 진언을 잘못 받아들여 계책을 그르치고도 오래도록 편안한 자는 드뭅니다. 진언을 듣고 조금도 실수 없이 실행하면 어떠한 말이 끼어든다 해도 혼란에 빠지지 않으며, 계책을 세우는 데 본말을 잃지 않으면 어떠한 말이 끼어든다 해도 어지럽게 만들 수 없습니다. 대체로 한두 섬의 녹봉(해마다 벼슬아치가 봉급으로 받는 물품)을 지키기에 급급한 자는 재상의 지위를 지키지 못합니다. 그런 까닭에 지혜는 사물의 선악을 분명하게 가려내지만, 의심은 행 동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터럭만한 작은 계획에 연연해한다면 천하의 대세를 잃게 됩니다. 또한 지혜로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결단하여 감행하지 않으면 백 가지 화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맹호라도 머뭇거리고 있으면 벌이 침으로 쏘는 것만 못하며, 천리마가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으면 노둔한 말의 느릿한 걸음만 못하고, 진秦나라의 맹분孟賁과 같은 용사라도 의 심만 하고 있으면 보통 남자들의 업적만 못하다'고 합니다. 순임금이나 우임금과 같은 지혜가 있다 할지라도 입 안에서만 웅얼 거리고 말하지 않는다면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지휘하는 것만 못합니 다. 이것은 실천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잘 알려주는 말입니다. 대체로 공은 이루기는 어려우나 실패하기는 쉽고, 때는 얻기 어려우나 잃기는 쉽습니다.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습니다. 부디 깊이 살피십시오." 그러나 한신은 스스로 자신의 공이 제일 많으니 한나라가 결코 자신의 제나라를 빼앗지 않을 거라고 믿고서 한나라를 배반하지 않았다. 괴 통은 자신의 계책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친 척한 뒤 무당이 되었다. 그후 항우가 패하자 한나라 왕은 한신의 제나라 왕 자리를 빼앗고 대 신, 초나라 왕으로 삼고서 하비 땅에 도읍을 정하도록 하였다.한신은 초나라에 도착하자 일찍이 그에게 밥을 먹여주고 빨래를 해 주던 여인을 불러 천금을 주었다. 그리고 하향의 남창 정장에게 백전百 錢을 주면서 말했다. "그대는 소인이다. 남에게 은덕을 베풀려면 끝까지 베풀어라." 또 자기에게 바짓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라고 시킨 자를 찾아내어 초 나라의 중위中尉(무관으로 수도의 치안을 담당했다)로 임명하고 여러 장군과 재상들에게 말했다. “나를 욕보이던 그때, 내 어찌 이자를 죽일 수 없었겠는가? 하지만 이자를 죽인다 해도 내 이름이 세상에 알려질 길이 없었기에 꾹 참고 오 늘의 공을 성취할 수 있었다."

 

토끼가 잡히면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 얼마 후 한나라 왕의 원수인 초나라 장수 종리매鐘가 한신에게 몸 을 맡겼다. 이 때문에 한신이 모반한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이에 한나라 왕은 조서를 내려 종리매를 체포하라고 했다. 보내주어 의심을 풀 것인가, 끝까지 보호해줄 것인가, 이 사이에서 한신은 갈등하고 있 었다. 종리매가 이를 알고 화를 내며 말했다. "한나라가 초나라를 함락시키지 못하는 것은 공과 이 종리매가 있기 때문이오. 만약 저를 체포하여 스스로 한나라에 잘 보이려 한다면, 나 는 지금 자결하겠소. 그러나 공도 또한 망할 것이오." 그리고 한신을 꾸짖었다. "공은 훌륭한 인물이 아니오." 그리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신은 종리매의 머리를 가지고 한 왕을 뵈니 한왕은 무사를 시켜서 한신을 포박하고 뒷수레에 실었다. 한신이 탄식하며 말했다. “과연 사람들의 말이 맞구나! '날쌘 토끼가 죽고 나면 훌륭한 사냥개 는 삶아 먹히고, 높이 나는 새가 없어지면 좋은 활을 치워버린다'고 하 더니, 천하가 이미 평정됐으니 내 어찌 삶아 먹히지 않으랴!' 한나라 왕이 말했다. “어떤 자가 공이 배반했다고 고했도다." 그리고는 한신을 포박한 뒤 칼을 씌웠으나, 한신의 공이 워낙 컸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죄를 면하여 주고 회음후로 삼았다. 이후부터 한신은 한나라 왕이 자기의 유능함을 두려워하여 미워함을 알고 항상 병을 핑계대고 조회에 나가지 않거나 왕을 수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는 한나라 왕에 대한 원망만 키워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신이 번쾌 장군의 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번쾌가 꿇어앉아 절을 하며 한신에게 말했다. "무슨 바람이 불어 왕께서 신의 집까지 왕림하셨습니까?" 한신은 문을 나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면서 탄식했다. "오래 살다 보니 번쾌 따위와 같은 등급이 되었구나!" 아녀자의 술수에 속은 것도 하늘의 뜻이다 한나라 왕이 어느 날 조용히 한신과 함께 여러 장수들의 능력을 가지고 등급을 매기면서 품평하고 있었다. 한나라 왕이 물었다. "나와 같은 사람은 얼마 정도의 군대를 거느릴 만한가?" 한신이 대답했다. “폐하는 10만 명을 거느릴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럼 그대는 어떠한가?"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한나라 왕이 웃으며 말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사람이 어째서 나에게 사로잡혔는가?" “폐하께서는 군대의 장수가 될 수는 없어도, 수많은 장수를 거느릴 수는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이 폐하에게 사로잡힌 까닭입니다. 또 폐하는 이른바 하늘이 내리신 분이라 사람의 힘에 의해 일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후 한신은 거록군鉅鹿郡의 태수로 떠나는 진희와 역모하기로 밀약 을 했다. 진희가 밖에서 치고 한신은 안에서 일어나자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여후呂后(유방의 아내)가 이를 미리 알고 진희의 반란이 진압됐 다는 소문을 퍼뜨린 뒤 이를 기념한다며 한신을 불러냈다. 결국 한신은 여후의 계략에 속아 장락궁長樂宮에 들어가다가 무사에게 포박당했다. 여후는 한신의 목을 베도록 했다. 한신은 죽으며 이런 말을 남겼다. “내 미련하게 괴통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이제 아녀자의 술수에 속았으니 어찌 하늘이 시키는 일이 아니겠는가!" 한왕은 진희의 난을 진압한 뒤 장락궁으로 돌아와 한신이 죽었음을 알고, 한편으로는 기뻐하고 한편으로는 측은하게 여기면서 물었다. “한신이 죽을 때 뭐라고 하던가?" 여후가 말했다. “괴통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은 게 한스럽다고 말했습니다.”한왕은 제나라에 조서를 내려 괴통을 잡아 올리라고 했다. 얼마 후 괴통이 잡혀오자 한왕이 물었다. “네놈이 회음후에게 배반할 것을 사주했느냐?" 괴통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신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못난 작자가 신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아 화를 자초했습니다. 만일 그 작자가 신의 계책을 받아들였더라면 폐하께서 어떻게 그를 벨 수 있었겠습니까?" 한왕이 크게 노했다. "이놈을 당장 삶아 죽여라.” 괴통이 말했다. "아아, 원통하구나! 이 몸이 삶아지다니." 그러자 한왕이 물었다. "너는 한신에게 배반하라고 교사했다. 무엇이 원통하단 말이냐?" 괴통이 막힘없이 언변을 늘어놓았다. "진나라의 법도가 문란해지더니 산동 땅이 크게 어지러워지고, 진나라와 성이 다른 사람들이 아울러 일어나 천하의 영웅호걸들이 까마귀 떼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진나라가 사슴을 잃으니 천하가 모두 그 사슴 을 쫓았습니다. 이때에 키 크고 발 빠른 자(한왕)가 먼저 이것을 얻었습 니다. 도척(사람의 생간을 회를 쳐 먹었다는 유명한 도둑)의 개가 요임금을 보 고 짖은 것은 요가 어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개는 본래 자기의 주인이 아닌 사람을 향해 짖습니다. 신은 그 당시 한신만 알았을 뿐, 폐 하는 알지 못했습니다. 또한 폐하처럼 천하를 호령하겠다고 나선 자들 이 많았습니다. 돌아보건대 그들이 폐하처럼 되지 못한 이유는 그들의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폐하께서는 그들을 모두 삶아 죽이겠습니까?" 한왕이 명령을 내렸다. "이 사람을 석방하여라.” 그리고 괴통의 죄를 용서하였다. 한신이 비록 포의(벼슬이 없는 사람)로 있을 때에도 그의 뜻은 여러 사 람과 달랐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너무나 가난하여 장사지 낼 수가 없었지만, 결국 높고 널찍한 땅에 어머니의 무덤을 크게 만들 고 그 곁에 1만 호의 집이 들어서게 했다고 한다. 이는 왕후의 무덤에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에 한신이 도를 배우고 겸양한 태도로 자기의 공을 자랑하지 않 고 자기의 유능함을 자랑하지 않았다면, 한나라에 대한 공훈功勳은 아 마도 주공周公·소공召公·태공망太公望 등의 공훈과 견줄 수 있었을 것 이고, 후세에 제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려고 힘쓰지 않고 천하가 이미 안정된 뒤에 반역을 꾀했으 니, 친인척이 모두 화를 당한 것도 마땅하다.

 

소설보다 재미 있는 사기열전

지은이 : 사마천

편역자 : 김민수